< 75화 > 노예 2호 길들이기 (4)
얼마나 낼 거냐고?
돈으로 설득한다는 방법은 정 안 되겠다 싶으면 해야지 하고 생각만 했던 방법이었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얼마를 낼지는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민석 역시 다른 남자들처럼 먼저 자신을 원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얼마나 내야 하지…?"
돈을 내고 남자랑 관계를 맺는다는 일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도대체 얼마를 내야 하는가.
오피를 기준으로 잡자면 1번에 15만 원.
거기에 외모나 몸매에 따라 추가 금액이 붙는다.
임예진 역시 우월한 외모와 몸매 덕분에 8만 원이라는 추가 금액이 붙었고, 그걸 남자에게 적용시킨다면 얼마나 잘 생기고, 얼마나 몸이 좋느냐로 결정될 것이다.
최민석은 얼굴도 잘생긴 편이고, 몸도 근육이 꽉 잡혀 보기 좋은 편이었으니 추가금액이 꽤 붙을 것이다.
거기에, 그 커다란 자지와 엄청난 정력을 생각하면….
"얼마지…?"
모르겠다.
거기에 시간이나 횟수도 생각해야 하는데, 그와의 관계는 2시간으로는 부족했고, 횟수 역시 4번으로는 모자랐다.
"그냥 확 백만 원쯤 질러버릴까?"
그냥 섹스만 해도 일당이 백만 원이다.
이런 조건을 거절할 남자가 있을까?
게다가 딱히 지갑 사정이 여유로워 보이지도 않았으니….
"…아니야."
이왕 돈을 쓸 거라면 한 번에 큰 액수로 확 찍어누르는 게 낫다.
정말로 그가 자신에게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남자라면 관계를 한 번으로 끝내고 싶지도 않았고, 장기적인 관계를 생각한다면 차라리 돈으로 묶어놓는 게 나았다.
[임예진 : 5백만 원이면 충분할까요?]
섹스 한 번에 5백만 원.
솔직히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액수다.
물론 임예진 역시 한 번에 5백만 원이라고 생각하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다.
소위 말하는 스폰 관계.
몇몇 손님들에게도 제안받았던 돈을 받고 상대의 애인이 되어주는 관계를 그에게 제안할 생각이었다.
물론 임예진의 재력으로 달에 5백만 원이라는 액수를 감당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벌어둔 돈만으로도 어느 정도 관계 유지는 가능할 것이고, 그사이에 그를 꼬셔서 가까운 관계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연인 관계로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 못 놓쳐."
연애 감정 따위가 아니다.
애초에 불감증이라는 임예진의 특이 체질은 여태 만나왔던 모든 남자에게 연애 감정을 품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유일하게 자신에게 쾌락을 알려줄 수 있는 남자라면, 절대로 놓칠 수 없다.
연애 감정 같은 건 그다음이었다.
"왜 답장을 안 하는 건데…."
이 정도면 바로 좋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1분 가까이 답장이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 다시 초조해진다.
조금만 더 기다릴까?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상황이 아니다 보니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다.
결국 임예진은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냈다.
[임예진 : 부족한가요? 그럼 천만 원 드릴게요.]
이왕 쓰는 김에 크게 쓴다.
달에 천만 원은 정말로 무리다. 그래서야 반년도 만날 수 없을 테니까.
이번 한 번만 천만 원으로 불러내고, 정말로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지 확인한 다음 5백만 원으로 타협하면 되겠지.
하지만 최민석은 그녀가 쌓아온 상식이 통하는 인간이 아니었다.
[최민석 : 어지간히 급하신 것 같은데, 쓸데없이 간 보지 마시고 낼 수 있는 액수 최대로 불러보세요.]
"이, 이…! 미친 새끼가…!"
평소 짜증은 쉽게 내도 욕 같은 건 잘 하지 않는 임예진이었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도저히 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천만 원을 부르면 안 됐는데…!"
그 행동 하나로 빌미를 잡혀버렸다.
아니, 5백만 원을 불렀을 때부터 눈치챈 걸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자신이 급하다는 걸 그가 눈치채고 강짜를 부렸다는 것이다.
"나쁜 새끼…! 나쁜 새끼…!"
공짜로 해도 손해가 없는 일인데, 도대체 섹스 한 번에 얼마를 뜯어갈 생각이란 말인가.
마음은 됐으니까 꺼지라고, 필요 없다고 욕을 한 바가지는 퍼부어주고 싶은데, 그랬다가는 정말로 영영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럴 수가 없다.
아예 포기하고 있었을 때라면 몰라도, 간신히 가능성을 봤는데 여기서 어떻게 그만둘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결국 임예진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은행 잔고를 확인하고 최소한의 학비와 생활비를 제외한 금액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미쳤어 진짜…."
스스로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행동인데.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스스로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임예진 : 6천만 원까지는 가능해요. 정말로 이게 최대예요.]
졸업할 때까지의 학비나 생활비는 제외한 금액이었지만 6천만 원이 뉘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정말로 한 번에 6천만 원을 줄 생각은 아니다.
그가 이걸로 넘어온다면 직접 만난 뒤에 제대로 얼굴을 마주 보고 협상할 생각이었다.
[최민석 :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토요일에 만나죠. 시간이랑 장소는 금방 보내드리겠습니다.]
"양심 없는 새끼…."
양심이 있으면 이렇게 뻔뻔하게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최대한 화난 티를 내지 않고 알겠다고 대답하자 이내 그에게 약속 시간과 함께 모텔 주소가 적힌 메시지가 돌아왔다.
"두고 봐, 진짜로…."
지금이야 자신이 매달리는 입장이니 참고 넘어가지만, 만약 그 역시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리라.
그렇게 결심했다.
*
약속 당일.
아침 일찍 일어난 임예진은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씻고, 길게 시간을 들여 메이크업을 하고, 미리 코디해둔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어차피 약속 장소가 모텔인 시점에서 최민석은 자신이 뭘 원하는지 훤히 알고 있을 테고, 옷도 금방 벗어버리게 되겠지만 첫인상이라는 건 무시할 수 없다.
옷을 입은 상태에서 예쁘다는 인상을 준다면 옷을 벗은 후에도 인상은 계속 남아 그를 흥분시킬 수 있겠지.
결연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는 모습은 마치 전쟁터에라도 나가는 듯한 기세가 뿜어져 나온다.
물론 다시 그때의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다리 사이는 벌써부터 조금씩 습하게 젖어 들고 있는 상태였지만.
모텔 앞에 도착한 임예진은 곧바로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임예진 : 도착했어요. 어디 신가요?]
[최민석 : 204호로 오시면 됩니다.]
"…먼저 와 있었구나."
그래도 바람맞을 일은 없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돈을 줘서라도 남자를 만나러 오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긴 했지만 이미 자존심을 챙기기엔 너무 멀리 왔다.
짧게 한숨을 쉰 임예진은 곧장 모텔 안으로 들어가 204호를 찾았다.
204호 앞에서 문을 두드리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들어오세요."
초조한 자신과 달리 최민석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다.
최소한 6천만 원이라는 거금을 꿀꺽하러 왔으면 기대하거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것 아닌가.
"…저기요."
"예?"
"제가 6천만 원을 드릴 수 있다고 하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 번에 그걸 다 드리는 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그렇죠."
"드린다고 하긴 했지만…. 네…?"
"그쪽 말이 맞다고요. 섹스 한 번에 6천만 원이라니. 너무 바가지잖아요. 그래서요?"
"그게…."
뭐지?
이건 예상하던 대답이 아닌데.
돈 때문에 만나주기로 한 거 아니었나?
그런데 그걸 그냥 순순히 수긍해버린다고?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음에도 최민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래도 일단 입 다물고 있을 수는 없으니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렇다고 드리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한 달에 5백만 원씩 드릴게요. 대신에 저랑 주기적으로 만나주시면 좋겠어요."
"흐음."
최민석이 워낙 순순히 수긍해버린 탓에 준비했던 말들이 전부 쓸모없어지긴 했지만 이쪽의 의지는 확실하게 정했다.
최민석은 여전히 무슨 생각인지 모를 표정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달에 5백만 원. 나쁘지 않네요.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닌가?"
거의 혼잣말에 가까운 대답이었지만 반응은 확실히 긍정적이다. 굳이 5백만 원이나 부를 필요가 있나 싶었을 정도로.
문제가 있다면, 최민석이 자신의 상식과는 심히 어긋난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받아들이실 건가요?"
"아니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는 시원스러운 대답에 다시 머리가 멍해진다.
자신도 모르게 당황한 표정을 지어버린 임예진은 곧장 멍하게 풀어진 표정을 되돌리며 쏘아붙인다.
"이, 이번 한 번에 6천만 원은 못 드려요."
"저도 받을 생각 없습니다."
"그럼 어쩌자는 건데요!?"
결국은 목소리를 높여버리고 말았다.
평소라면 조금은 참았을 텐데, 욕구가 쌓일 대로 쌓여 잔뜩 예민해진 탓이다.
하지만 최민석은 자신이 갑자기 소리 지르며 따졌음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표정이었다.
"사실 돈은 안 주셔도 됩니다. 주면 좋긴 한데, 돈을 받으면 제가 예진 씨한테 맞춰드려야 하잖아요. 그런 건 좀 별로거든요."
돈이 필요 없다니.
자신이 미리 생각해뒀던 전제 자체를 깔아뭉개는 발언이다.
하지만 아직 놀라기엔 일렀다.
"그 반대라면 좋습니다. 예진 씨가 저한테 맞추는 거죠. 뭘 하고 있든 제가 부르면 나오고, 벌리라면 벌리고…. 그냥 노예가 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미쳤어."
아무렇지도 않게 노예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태도에 이번에는 정말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와 버렸다.
하지만 진심을 담은 매도에도 최민석의 표정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싫으시면 그냥 나가시면 됩니다."
"자, 잠깐만요."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제 노예가 되시던가, 이대로 그냥 나가시던가. 아, 이번에 나가시면 번호는 차단해버릴 겁니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또 나갈 수는 없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라고? 몸이 이렇게 뜨거운데?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미친 인간의 노예가 되는 것도….
아니, 잠깐만.
'결국 여기서 노예가 되겠다고 하면 섹스는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말로 노예가 된다고 해봤자 그걸 누가 인정해준단 말인가.
밖에 나가서 그런 소리 해봤자 미친놈 취급을 받거나 성희롱으로 고소나 당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어차피 5백만 원을 주려고 했던 이유에는 정말로 이 남자가 자신에게 오르가즘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었으니 일단 알겠다고 하고 몸부터 섞어보면 된다.
막상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자신 쪽에서 연락을 끊어버리면 되는 거고, 정말로 가능하다면….
'…몰라.'
그때는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노예라고 해 봐야 결국 그가 원할 때마다 만나서 섹스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돈으로 하는 것보다야 조금 힘들긴 하겠지만 결국 순순히 따르는 척하면서 그를 꼬시고, 조금씩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면 된다.
'그래. 그렇게 하면 돼.'
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마친 임예진은 속으로 각오를 다지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