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불륜 예방 부서 (3)
[성 관련 지수 테스트]
[11. 나는 남편과의 잠자리(성관계)에 만족하고 있다.]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보통이다. ④그렇다. ⑤매우 그렇다.]
'이, 이게 뭐야?'
이전까지의 평범했던 질문들과 달리 갑작스럽게 노골적으로 변한 문항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저기…."
"예?"
"이, 11번 문항 말인데요…."
"아, 성 관련 지수 테스트 말이군요."
"네…. 그, 질문이 조금…."
성은영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웅얼거렸지만 남자는 이해한다는 듯 멋쩍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부끄러우신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부부 관계에서 성에 관련된 문제는, 특히 불륜에 관해서는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칩니다. 부끄러우시더라도 솔직하게 진행해주셔야 합니다."
"그, 그런가요?"
"불륜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어떻습니까? 배우자를 두고 불륜 이성과 성관계를 맺는….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실 겁니다. 이런 건 마냥 선입견이라고 생각하기도 힘든 부분이죠. 실제로 배우자와의 성관계에 대한 불만이 불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굉장히 흔한 케이스입니다."
'확실히….'
불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의 말대로 도덕적이지 못하고, 성적으로 문란한…. 그런 이미지뿐이었다.
결국 성은영은 이번에도 남자의 말에 애매하게 설득당해 테스트 용지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11. 나는 남편과의 잠자리(성관계)에 만족하고 있다.]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보통이다. ④그렇다. ⑤매우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질문이 변한 것도 아니다.
결국 성은영은 이 부끄러운 문항에 제대로 답변을 체크해야 하는 상황.
'만족…. 하고 있겠지…?'
분명히 그럴 것이다.
남편과의 잠자리 이후 불만을 가졌던 적은 한 번도 없다.
분명히 서로가 기분 좋게 관계를 즐겼고, 관계가 끝난 후에는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으니까.
잠시간의 고민 끝에 성은영은 5번에 체크하고 다음 문항으로 넘어갔다.
[12. 나는 남편에게 밝히지 못하는 성적 취향이 있다.]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보통이다. ④그렇다. ⑤매우 그렇다.]
'그런 게 있나…?'
없다.
애초에 성적 취향이라는 단어 자체에서 마땅히 떠오르는 부분이 없었기에 이번에는 처음으로 1번에 체크.
[13. 나는 남편과의 잠자리(성관계)에서 주도적으로 행동하는 편이다.]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보통이다. ④그렇다. ⑤매우 그렇다.]
'이건….'
조금 애매하다.
막상 기억을 떠올려보면 자신이 남편과의 관계에서 주도적으로 움직인 기억은 딱히 없다.
'그냥 그이가 움직이는 대로 맞췄던 것 같은데….'
그래도 본방에 들어가기 전에 애무 정도는 하는 편인데.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그, 펠라치오나 69자세 같은 애무도 곧잘 하곤 했고.
'…그래도 보통은 되겠지?'
이번에는 5번이 아니라 3번에 체크.
1번도 5번도 아닌 애매한 답변을 골랐더니 살짝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14. 남편도 나와의 성관계에서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보통이다. ④그렇다. ⑤매우 그렇다.]
'왜 이런 질문만 나오는 거야….'
자신도 아니고 남편의 만족도를 체크하라니.
테스트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지만 또 그럴 수는 없어서, 진지하게 답변을 떠올려본다.
'그이가 해달라는 건 다 해주기도 했고…. 애초에 더하고 말고를 내가 정한 적이 없으니까….'
만족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은 딱히 남편과의 성관계에서 거부 의사를 밝혀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남편 쪽에서 항상 '너무 좋았다.', '사랑한다.'라는 느낌의 달달한 멘트와 함께 관계를 마무리 짓지 않았던가.
부족했다면 거기서 더 하자고 했을 것이다. 그래도 자신이 거부하지 않을 거라는 전제는 확실하게 깔려있었을 테니까.
'응. 분명 그이도 만족하고 있을 거야.'
다시 한번 5번에 체크하며 조금의 안도감을 느꼈다.
물론 다음 문구를 읽기 전까지만 말이다.
[15. 나는 성욕이 강한 편이다.]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보통이다. ④그렇다. ⑤매우 그렇다.]
얼마 전까지의 자신이었다면 못해도 3번. 혹은 1번이나 2번을 골랐을 텐데.
최근 들어 시도 때도 없이 들끓는 성욕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 경우는 조금 특이한 케이스니까….'
남편의 해외 파견만 아니었다면, 함께 살면서 자주 관계를 맺었다면 지금처럼 성욕에 시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해외에, 딸은 학교, 학원, 놀러 다니기로 바빠 집에 혼자 있는 시간동안 느껴지는 외로움이 성욕으로 표출되고 있을 뿐이다.
분명 자신은 성욕이 강한 편은 아닐 것이다.
'…3번?'
딱히 부끄러운 게 아니다.
평범한 게, 보통인 게 왜 부끄럽단 말인가.
끝내 성은영은 자기 자신을 설득하지 못하고 1번, 2번이 아닌 3번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다음에 이어지는 문항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처럼, 다시 생각해보라는 양 들이 밀어졌다.
[16. 최근 일주일간 자위한 횟수는?]
[①0회 ②1~2회 ③3~5회 ④6~7회 ⑤7회 이상]
'아으으….'
딱히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얼굴이 뜨거울 정도로 화끈거린다. 아마 지금쯤 자신의 얼굴은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빨갛게 물들어있겠지.
아쉽게도 이번 질문에는 고민이나 타협의 여지가 조금도 없다.
성욕이 들끓기 시작한 이후로는 오전과 잠들기 전에…. 그러니까 하루 두 번은 기본이었고, 가끔은 한 번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두 번씩 할 때도 있었다.
결국 답은 5번이었다.
[17. 7회 이상이라면 기억나는 횟수를 적어주십시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면 '10회 이상', '15회 이상' 같은 방식으로 적으십시오. 이번 문항은 16번 문항에 5번을 체크한 경우에만 답변합니다.]
정확히 몇 번인지는 모르겠지만, 못해도 15회 이상인 것은 확실하다.
어쩌면 20회 이상일지도 모르지만,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믿으며 '15회 이상'이라고 답변을 끄적였다.
[18. 자위를 한다면 대상은?]
[①딱히 없다 ②성인 동영상 ③성인 만화 ④불특정 이성 ⑤남편]
'이젠 몰라….'
여기서 더 부끄러운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멘탈이 너덜너덜해져 버렸다.
그래도 이번에는 남편을 떠올리면서 자위하고 있었으니 윤리적으로는 부끄러울 게 없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 것이다.
[19. 자위를 한다면 어떤 상황을 떠올리며 하는지 적어주십시오. 예시) 평소 남편과의 성관계, 평소와는 다른 장소에서나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행위.]
[ ]
예시가 곧 답변이다.
이미 반쯤 자포자기 상태인 성은영은 예시에 적혀있는 '평소 남편과의 성관계'를 그대로 옮겨적었다.
'이제 끝이야.'
뒷면도 없고, 다음 페이지도 없다.
드디어 이 부끄러운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과 함께 마지막 문항을 조심스럽게 읽어내렸다.
[20. 나는 자위가 아닌 남녀 간의 성관계를 원하고 있다.]
[①예 ②아니오]
'…….'
답변은 그저 예, 아니오밖에 없는 노골적인 질문에 가슴이 철렁인다.
'사실대로 하면…. 아니, 그래도 사실대로 하지 않으면….'
질문을 읽은 순간 곧바로 답변이 떠올랐다.
하지만 사실대로 적으면 이 질문 하나로 결과가 갈릴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대로 적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위험한 일 아닌가?
남편에게 어떤 방식으로 통보가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불륜에 관한 테스트에서 성욕이 쌓였다는 결과가 알려지는 것과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건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결국 성은영은 1번에 체크하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단순한 테스트일 뿐이지만, 여기서 거짓말을 하는 건 남편에게 거짓말을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 도저히 속일 수가 없었다.
"…끝났어요."
"수고하셨습니다."
"그….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지금 바로입니다. 문항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간단한 확인일 뿐이니까요."
"하아아…."
차라리 며칠 시간을 줬다면, 아니 그래도 변하는 건 없겠지만 당장 결과가 나온다니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못하게 되어버린다.
남자는 이미 자신에게 건네받은 용지를 천천히 읽어내리고 있다. 중간중간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무언가를 고민하는 기색도 보인다.
실제로는 5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성은영이 느끼는 시간은 몇 배나 길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어떤…. 가요?"
"우선 기본적인 부부, 가족 관계에 대해서 답변을 드리자면…. 화목한 가정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외로움을 느끼고 계시긴 하지만 그건 혼자 있는 시간이 긴 환경상, 그리고 그만큼 남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뿐이고요."
형식적이지만 사실을 관통하는 말에 살짝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정확하게 정답을 맞췄다면, 성적인 부분엔 대한 답변 역시 듣는 순간 사실이라고 납득해버릴 만한 내용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은 탓이었다.
"성에 관한 부분에서는…. 살짝 위험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 어떤 부분이 위험한가요?"
"우선은 성은영 씨가 테스트에 솔직하게 참여했다는 전제하에 답변해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스스로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답변을 체크했으니 그 부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성은영은 살짝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이어질 남자의 말에 집중했다.
"우선은 11번, 12번, 13번 문항을 보면 성은영 씨는 남편과의 성관계에 별다른 불만도 없고, 오히려 매우 만족하고 있으신 상태입니다. 그렇죠?"
"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그, 그게 왜…."
자신이 가장 안심하고, 확실하게 답변한 문항이 11, 12, 13번이었는데. 거기서부터 지적이 들어오니 간신히 진정시킨 마음이 순식간에 불안해져 버렸다.
"만족스럽기 때문이죠. 남편분이 해외에서 돌아오는 빈도가 어떻게 되나요?"
"…한두 달에 한 번 정도에요."
"바로 그겁니다. 관계는 만족스럽고 행복한데, 횟수는 기껏해야 한두 달에 한 번. 심지어 서로 그럴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해외 파견이라는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이 떨어져 그렇게 됐을 뿐이죠. 아무리 관계가 만족스러워도, 아니 오히려 만족스러울수록 적은 횟수가 아쉬움이 되고, 반대로 부족하다고 느끼게 되는 겁니다."
"그런…."
겉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척하면서도, 마음은 이미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내심 외면하고 있던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사실에 철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