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 불륜 예방 부서 (2)
"하아…."
학원에 가는 딸을 배웅한 성은영은 짧게 한숨을 흘리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지금의 생활은 나쁘지 않다.
남편과는 대학에서 만나 연애 도중에 임신과 함께 결혼. 자신은 대학을 그만뒀고, 남편은 무사히 대기업에 취업해 가정을 책임질 수 있게 됐다.
딸을 낳았을 때는 정말로 행복했고, 남편도 함께 기뻐했다.
지금도 나날이 커가는 딸과 함께하는 생활은 행복하다.
…하지만 남편이 해외 지사로 발령 나서 해외로 나간 지 3년째.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있을 때면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걸까.
남편은 기회만 되면 한국으로 돌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곤 하지만 그마저도 한두 달에 한 번 정도다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했다.
"하아…."
이걸로 두 번째 한숨이다.
차라리 일이라도 했다면 이렇지 않았을 텐데.
생활에 여유가 되는 상황에서 굳이 일자리를 구해서 딸을 방치해둘 수는 없다. 남편에게도 이미 상담했던 내용이었지만 남편 역시 자신이 일하는 것보다는 딸에게 집중해 주기를 바랬다.
애초에 남편은 해외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이런 불평을 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겠지.
"저기, 잠깐 괜찮으신가요?"
"네, 네!?"
도대체 언제 다가온 건지. 갑작스럽게 옆에서 들려온 남자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어버렸다.
물론 자신이 멍하니 있긴 했지만.
"잠깐 조사할 게 좀 있어서요."
"…조사요?"
"네. 간단한 호구조사 같은 겁니다."
"아, 네."
성은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이는 기껏해야 20대 초중반 정도일까.
외모는 미남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잘생긴 편이었다.
옷은 평범하게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이고, 그 외에는 별다른 인상은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갑작스럽게 다가온 남자에게 아무런 경계심도 떠오르지 않았다.
"현재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시나요?"
"남편과 딸이 있어요."
"맞벌이인가요?"
"아니요. 일은 남편만…."
"전업주부시군요."
"네."
성은영의 대답에 남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살짝 웃은 것 같은데 착각인 걸까?
"생활에 따로 불편하신 점은 있으신가요?"
"…딱히 떠오르는 건 없네요."
이번에는 살짝 대답을 망설였다.
어차피 무조건 사실대로 털어놓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애초에 이런 간단한 호구조사에 진심으로 가정사를 털어놓는 사람이 더 드물 것이다.
"남편분의 생각은 어떠실 것 같나요?"
"그이는…. 조금 외로울 것 같아요. 해외에서 일하는 중이라 저와 딸을 자주 만나지 못하거든요."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는 거짓말을 해버렸지만, 해외에서 고생하고 있을 남편의 심정까지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다.
똑똑한 사람인 만큼 해외 생활에도 잘 적응한 것 같았지만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지내고 있는 만큼 힘든 부분이 없을 리가 없다.
성은영은 새삼 남편에 대한 애잔한 마음에 울적한 기분이 들어버렸고, 그 때문에 또다시 지어진 남자의 웃음을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군요. 힘드시겠습니다."
"아니에요. 고생은 남편이 하고 있는 걸요."
내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나는 괜찮다. 성은영은 최대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조금 더 울적해질 것 같아서.
*
"운도 좋지."
나는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성은영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만족스럽게 중얼거렸다.
만약 성은영에게 직장이 있었다면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을 테고, 남편이 있었다면 남편의 시선을 피해야 했으니 일이 좀 더 까다로워졌을 것이다.
하지만 성은영은 장을 보러 나가는 정도의 일이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집에 있는 전업주부였고, 경계해야 할 남편은 해외에 있어 보기 힘들다.
이 정도면 빈집털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으니 만족스러울 수밖에.
"그럼 일단 상황부터 짜야겠는데."
정기야 많지만 남편까지 있는 여자에게 다짜고짜 섹프라느니 스폰 관계라느니 하는 관계를 들이민다고 쉽게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당장 남편에 대해 이야기 한 것만 봐도 몸만 떨어져 있다뿐이지, 남편을 상당히 배려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고.
[남편이 없는 사이에 몸을 달래줄 상대를 원한다.]
[해당 최면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1,800,000P가 필요합니다. 적용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이것 봐."
섹스 프렌드가 이미 있다, 만들겠다도 아니고 원한다는 생각만 넣었을 뿐임에도 이 정도다.
당장 방금 전만 하더라도 성은영에게 [눈앞의 남자가 먼저 경계를 불러일으키는 행동이나 질문을 하지 않는 이상 경계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라는 최면을 거는 데만 2만 포인트를 썼고, 남은 포인트도 70만 남짓한 상황이었으니 정공법은 무리였다.
"그럼 민아 때처럼 해봐야겠는데."
섹스를 원하는 게 아니라, 섹스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것.
그렇게 해서 몸을 먼저 열고, 그다음에 마음 쪽을 허물어야 한다.
"일단 돌아가서 생각할까."
우선은 유서연으로 몇 발 뽑으면서 생각해봐야겠다.
*
딸은 유치원에 갔고, 남편은 해외 파견으로 집에 없다.
집안일이라고 해봐야, 딸과 자신의 2인분의 설거지, 2인분의 빨래. 그리고 매일 하는 청소뿐이라 오전 중에 다 끝내버렸다.
별다른 취미랄 게 없는 성은영에게 이 남은 시간은 그저 멍하니 보내는 시간에 불과했다.
가끔은 TV를 보고, 책도 읽고, 핸드폰으로 유튜브도 보지만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흐른다.
하물며 최근에는 무언가 문제가 생겼는지, 성욕까지 들끓어 더더욱 힘들었다.
"하응…. 항…. 하앙…. 여보오…."
혼자 잠들기엔 지나치게 넓은 부부의 침대에 홀로 누워 스스로를 위로한다.
처음에는 '딱 한 번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최근에는 매일 하는 일과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찌걱…. 찌걱…. 찌걱….
"하아앙…."
딸도 유치원에 가 있는 덕분에 들을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집이었지만 뭔가 죄를 짓는 기분에 성은영은 필사적으로 소리를 죽이며 손가락을 움직인다.
"아앙…! 앙…! 하아앙…!"
부르르…!
"하아아…."
스스로의 손가락으로 가버린 성은영은 그대로 몸을 축 늘어뜨리며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또 해버렸어."
매번 하고 나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그만두겠다고 결심하면서도 다음 날이 되면 다시 달아오른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욕망에 져버린다.
"30대가 되면 성욕이 늘어난다던데…. 그게 원인일까…?"
최근 들어 조금 울적한 기분이 들었으니 그 반동이 성욕으로 표출되는 걸지도 모르고.
아무튼 매일 같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성욕은 도저히 참기 힘들었다.
"보고 싶어요…."
남편과의 잠자리는 여전히 만족스럽다. 하지만 한두 달에 하루 이틀로는 당연히 부족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참아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나날을 보내던 도중.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손님이 찾아왔다.
불륜 예방 부서의 최민석. 남자는 그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나이는 2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인다. 외모는 미남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히 잘생긴 편이었다.
어디서 본 적이 있었나?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그냥 착각인 모양이었다.
"불륜 예방 부서요…?
"예. 들어보셨습니까?"
"그러니까…."
들어본 기억이 있다.
재작년쯤엔가. 여성가족부에서 그런 부서를 만들었다고 듣긴 했었는데, 어차피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생각에 그러려니 하고 잊어버렸던 이름이다.
그런 부서에서 왜…?
아니, 이름만 보더라도 뭘 하는 부서인지는 쉽게 떠올릴 수 있었으니 찾아온 이유 역시 뻔했다.
"그, 저희 부부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요."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어서 제가 찾아온 겁니다. 이미 문제가 생겼다면 '예방'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니까요."
"아…."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막상 들어보면 아귀는 맞는 말이었다.
"그럼 무슨 일로…?"
"확인된 바로는 남편분이 해외로 파견 나가신 상태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맞습니까?"
"…네."
"그게 원인입니다. 아무래도 모든 가정을 대상으로 확인 작업을 하기엔 너무 인력이 낭비되다 보니까, 일부 불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가정을 우선으로 해서 업무를 진행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정말로…."
"오해의 소지가 있었네요. 제가 말씀드린 '불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가정'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환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부부가 한집에서 사는 가정과 따로 떨어져 사는 가정을 놓고 비교한다면 평균적으로 불륜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쪽은 후자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그럴 것이다.
말 그대로 부부 사이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환경만을 놓고 생각한다면 후자 쪽이 훨씬 불륜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일 테니까.
"너무 겁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부서가 맡은 업무가 좀 그렇다 보니 대부분은 극히 비밀리에 업무가 진행되거든요. 이 일이 주변에 알려질 일은 없을 겁니다. 기록상으로 남는 것도 없고요."
남자의 태도는 자연스럽고 친절해서 살짝 안심된다.
"우선은 기본적인 확인부터 해보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준비해온 가방에서 설문지처럼 문항이 몇 개 적혀있는 종이를 꺼내 건넸다.
"간단한 테스트입니다. 여기서 괜찮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곧바로 성은영 씨의 가정은 '안전' 판정을 받고 업무가 종료됩니다. 다만, 거짓으로 진행했다가 발각된다면 불륜 의사가 있다고 판단되어 남편분께 통보가 갈 수도 있으니 사실대로 진행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네!"
어차피 정말로 불륜을 할 것도 아니고. '적당히 좋은 방향으로만 적으면 되지 않을까?' 하고 떠올랐던 생각이 쏙 들어갔다.
남편이라면 자신을 믿어주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남편의 귀에 그런 소식이 들어가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남자가 건네는 종이를 받아들었다.
살면서 몇 번씩은 봤을 정도로 흔한 형태의 검사용지다.
[다음 5가지 보기 중 검사자에게 해당하는 곳에 체크하십시오.]
[1.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보통이다. ④그렇다. ⑤매우 그렇다.]
'…뭐야 이게.'
정말로 별것 아닌 내용이다.
성은영은 곧바로 5번에 체크하고 다음 문항으로 넘어갔다.
[2. 나는 자녀(아들/딸)을 사랑한다.]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보통이다. ④그렇다. ⑤매우 그렇다.]
이번 문항 역시 답은 정해져 있다.
이번에도 곧바로 5번에 체크하고 다음 문항으로 넘어간다.
[3. 나는 현재의 가정이 화목하기를 원한다.]
[①전혀 그렇지 않다. ②그렇지 않다. ③보통이다. ④그렇다. ⑤매우 그렇다.]
대부분의 문항이 이런 식이었다.
결국은 가족을 사랑하냐는 말을 여러 형태로 돌려 물어보는 듯한 질문들.
성은영은 이래도 되나 싶은 기분을 느끼면서도 착실하게 5번에 체크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쭉쭉 내려가던 손이 멈춘 것은 문항이 10번을 넘겼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