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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큐버스 시스템-29화 (29/775)

< 29화 > 한 번만 해보지 않을래? (3)

'겨우 이거?'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로 일곱 번째 사정은 남은 정액을 간신히 짜낸 듯 힘없이 끝났다.

물론 최민석에게는 열 번째 사정이었지만 김민아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뭔가 아쉬운데…."

김민아는 얼마 되지 않는 정액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차라리 안 먹었으면 모를까.

마지막에 이렇게 양도 적고 묽은 맛을 보니까 가득 차올랐던 만족감이 팍 사그라드는 느낌이다.

"진짜 이젠 안 나오거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확실히 최민석의 안색이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한참을 혹사당한 것처럼 피로해 보이는 얼굴은 왠지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흐흥."

그래도 한 방 먹였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기에 김민아는 기분 좋게 콧소리를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저녁은 김치찌개에 소주로 하고 싶은데. 괜찮지?"

"알았으니까 좀 자자…."

진이 다 빠진 목소리 역시 통쾌했다.

"몇 시에 먹을래?"

"8시…. 아니, 9시까지만 좀 자자. 알람 해놔도 못 일어날 것 같으니까 좀 깨워줘."

"그러지 뭐. 이따 봐."

"오냐…."

도대체 얼마나 지친 건지. 하반신을 훤히 드러낸 채로 이불을 덮어쓰며 드러눕는 최민석의 모습을 힐끗 내려다보고는 방을 나섰다.

"이제 좀 살 것 같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역시나 정액을 먹으니까 순식간에 잡념이 싹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졌다.

김민아는 곧바로 총무실에 들어가 불을 켜고 부재중 팻말을 치웠다.

오후 2시 기상이라는 기록적인 늦잠으로 총무실을 비워버렸지만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 문자라도 왔을 테고, 고시원의 사장 역시 본인이 직접 와야 할 문제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고시원 운영에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으니 괜찮을 것이다.

의자에 앉아 상쾌한 기분을 만끽하던 김민아는 자연스럽게 최민석의 자지를 다시금 떠올렸다.

"…진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정액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단순히 자지의 크기나 형태, 단단함이 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나다.

고작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성에 관심이 전혀 없다시피 했던 김민아는 어느샌가 진지하게 자지의 크기와 형태에 대해 진지하게 품평을 떠올리게 되어버렸지만 그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조금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였다.

물론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최민석이 건 최면은 어디까지나 성욕 해소 서비스와 정액의 중독성에 대한 것뿐이었고, 그 과정에서 성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동시에 성욕을 느끼고, 반쯤 무관심하던 성에 관심 가지게 된 건 순전히 김민아 본인의 의식의 흐름이었으니까 말이다.

"넣으면 진짜 기분 좋겠지…?"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클수록 좋다고 하고, 야동에서도 대물 자지는 쾌감 타락의 상징이 아니던가.

"한 번만 해보자고 할까…?"

이미 서로 못 볼 꼴 다 본 사이에 새삼 부끄러울 것도 없다.

아니, 부끄럽긴 하겠지만 김민아는 이미 최민석의 자지에 지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처녀? 백마 탄 왕자님에 대한 꿈은 버린 지 오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처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는 첫사랑을 위해 욕구를 참고 살 생각은 없었다.

"그럼 뭐라고 말을 꺼내야 되지…?"

김민아는 나름 진지하게 이런저런 대사를 떠올리며 고민에 빠졌다.

지금 페이스대로라면 이번 시험은 합격할 것이다.

시험에 합격하면 자신은 고시원을 떠나게 될 것이고, 최민석과는 연락을 주고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하겠지.

적어도 그 전에 한 번은 그 자지에 대해 자세히 탐구할 수 있는, 몸으로 확인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최민석과 김민아. 예상치 않게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는 순간이었다.

*

"으…. 진짜 죽겠네."

중간에 휴식 타임이 있긴 했지만 역시 하루에 열 번은 무리다.

특히 마지막에는 불알이 아플 정도로 땡겨오고, 내 스스로도 낯설 정도로 간신히 쥐어짜듯 정액이 뽑혀 나가는데, 그대로 기절해버리는 줄 알았다.

"그래도 다섯 시간은 잘 수 있는 게 어디냐."

지금 상태로는 눈앞에 칼 든 강도가 있어도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칼침을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을 일으키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일단 좀 자자….'

중얼거릴 기운도 없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야, 일어나라니까?"

"아니, 왜 또 깨우는데…."

분명 문 닫는 소리를 들었었는데.

문만 닫고 안 나갔었나?

이렇게 뒤끝을 부릴 정도로 화가 났었다고? 아무리 정액 중독으로 만들어놓고 방치한 사람이 나라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게다가 내가 지칠 때까지 정액을 먹게 해주는 걸로 퉁쳐주기로 했으면서.

사람을 실신 직전까지 몰아붙여 놓고 약속까지 깨끗하게 무시해버리는 김민아의 뒤끝은 심하단 수준을 넘어섰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더니….

"니가 깨워달라며. 지금 9시 5분이거든?"

"엗…?"

김민아의 어이없어하는 목소리에 감겼던 눈이 번쩍 뜨였다.

아직 조금 심하게 졸리고 나른하긴 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것 같던 몸 상태가 어느샌가 멀쩡해져 있다.

스프링을 튕기는 것처럼 몸을 벌떡 일으키자 침대맡에 서 있던 김민아가 깜짝 놀라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뭐, 뭔데…?"

당황한 김민아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정말로 화면에 9시 5분이라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진짜네."

그냥 잠깐 눈만 감았던 것 같은데, 다섯 시간이 지나 있었다.

"너 어디 아파?"

멍하니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도중, 김민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프진 않았는데 죽을 뻔했지.

"아냐, 저녁 먹자고?"

"니가 사준다고 했었잖아."

"그랬지."

마침 배도 고프니 차라리 잘 됐다.

점심도 굶었는데 거기서 실신 직전까지 기를 빨리고 5시간이나 쓰러져 있었으니 이젠 뭐라도 넣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치찌개 먹고 싶다고 그랬었나?"

"맞아. 왜, 딴 거 먹고 싶어? 내가 먹고 싶은 걸로 사주기로 했었던 건 기억하지?"

"기억나니까 쪼지 마. 이게 다 네가 쓰러질 정도로 뽑아내서 그런 거잖아. 다섯 시간이나 잤는데 아직도 피곤해 죽겠다."

"그, 그 정도면 그냥 저녁은 나중에 먹을까…?"

"뭔 소리야? 배고파 죽겠구만. 빨리 가기나 하자. 준비는 다 하고 온 거지?"

"그럼 됐어. 잠깐 밥 먹으러 가는데 준비는 무슨. 빨리 가자."

애초에 이 근처가 고시원이 밀집된 지역이었기 때문에 근처에 간단히 식사를 때울 만한 식당은 많았다.

적당히 근처에 있는 가게를 찾아 들어오자마자 풍겨오는 구수한 냄새에 입맛이 확 돌면서 꼬르륵하고 뱃속이 울린다.

진짜 엄청 배고팠나 보네.

"여기 김치찌개 3인분하고 계란말이 하나 주세요. 처음처럼 한 병도요."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을 마치고 맞은편에 앉은 김민아와 시선을 맞췄다.

"평소엔 치킨만 찾더니 갑자기 웬 김치찌개야?"

"가끔 이렇게 땡길 때가 있거든. 원래는 어제 먹으려고 했는데, 너 기다리느라 못 먹었으니 지금이라도 먹어야지."

"설마 밥까지 굶으면서 기다렸냐?"

"…내가 미쳤냐?"

"새벽에 온 메세지 내용만 보면 제정신은 아닌 것 같던데."

"그, 그건 잊어버려."

무슨 개소리냐는 듯 황당한 목소리로 대답하던 김민아는 이쪽의 반격에 귀를 빨갛게 물들이며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여기서 더 놀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착각이기는 해도 지쳐 쓰러진 사람을 곧바로 깨운 김민아의 독심이 떠올라 오늘은 깔끔하게 비위를 맞춰주고 이번 일을 확실히 넘어가자는 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하여튼 미안해. 아무리 그래도 연락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오늘 사달라는 것까지 사줬으니까 진짜 이걸로 잊어버리는 거다?"

"아, 알았다고…."

방금 자기가 보낸 메세지 내용으로 놀림을 당해서 그런지, 살짝 어색한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그게 전부만은 아닌 것 같다.

뭐라고 해야 할까, 김민아는 명백히 이쪽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제대로 시선을 못 맞추면서도 슬쩍슬쩍 안색을 살피고, 가늘게 떨리고 있는 눈동자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신호다.

이전에 정액 중독에 관한 문제를 털어놨을 때처럼 말이다.

'뭐지?'

딱히 생각나는 문제는 없다.

오늘은 정액도 잔뜩 먹었으니 멀쩡한 상태일 테고, 딱히 화가 난 분위기는 아니다.

그 외에 뭔가 고민이 있나 싶었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에서는 떠오르는 저런 반응을 보일 만한 사정은 떠오르지 않았다.

"뭐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냐?"

"어, 없는데!?"

"근데 말은 왜 더듬어?"

"…안 더듬었는데?"

지금도 살짝 더듬을 뻔했지만 어쨌든 당장 말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유서연은 최면에 걸린 뒤에도 내가 잠깐 쫄았을 정도로 표정 관리가 잘 됐었는데, 아무래도 김민아 쪽은 연기에는 재능이 없는 모양이다.

"그래. 나중에 말하고 싶어지면 말해."

어차피 시험일까지는 건드리지 못하니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몹고 있는 포인트는 시험 이후에 김민아를 확실히 잡아먹기 위해, 그리고 주기적으로 만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쓸 생각이었으니 지금 쓸 수는 없었고.

내가 적당히 대답해주자 김민아의 표정이 또다시 미묘하게 변했다.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섹스 경험과 달리 여자와의 대화 경험은 부족한 나로서는 도저히 김민아가 보내는 신호를 해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아예 신경을 꺼버렸고, 김민아는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는 어색한 기류 속에서 금방 펄펄 끓는 찌개가 식탁 위에 올라왔고, 말없이 식사가 이어졌다.

나도 김민아도 먹는 도중에는 별로 말을 하는 편이 아니라 나는 완전히 식사에 집중했다.

빈속에 뜨거운 국물이 들어오면서 속이 풀어지는 느낌이 끝내준다.

나도 모로게 '크으'하고 감탄을 흘리며 국물을 삼키고 밥에 비벼 먹고, 두껍게 썰린 돼지고기를 집어 먹고, 두툼하게 만들어진 계란말이도 먹는다.

마치 며칠은 굶주린 사람처럼 신나게 음식을 흡입하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고 나서야 살짝 숨을 돌리며 잔에 소주를….

"엥…?"

없다.

분명 한 병 가득 담겨있던 소주가 한 방울도 남아있질 않았다.

우리 테이블에 있던 소주를 투명 인간이 훔쳐 갔을 리는 없으니,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범인이 있을 테이블 맞은편으로 향했다.

테이블 맞은편에는 마침 마지막으로 따른 소주 한 잔을 입 안으로 깔끔하게 털어 넣는 김민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걸 다 마셨냐? 괜찮아?"

"…뭐가."

취했다.

묘하게 한 템포 늦은 짤막한 대답만으로도 김민아가 취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부끄러움이나 흥분과는 다른 의미로 발갛게 달아오른 뺨이나 살짝 풀어진 눈빛은 명백히 취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모습이기도 했고, 목소리 역시 평소랑은 조금 달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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