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화 > 정액 중독 공시생 (4)
서로 적당히 배부르고 식사가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본론으로 들어갔다.
"요즘 공부는 잘되냐?"
"씨…. 술맛 떨어지게 그런 건 왜 물어봐?"
"내가 산 술인데 물어볼 수도 있지."
"…신경 꺼. 잘하고 있으니까."
거짓말이다.
그동안 봐온 김민아의 성격상 정말로 잘 되고 있다면 지금처럼 짜증스러운 기색으로 대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서큐버스 시스템의 정기 소모량을 통해 '정액에 중독돼서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다'라는 전제가 거의 사실이라고 확인하기도 했으니 이번 질문은 단순한 확인 작업에 불과했다.
"그런 것 치곤 요즘 표정이 엄청 안 좋아 보이던데."
"표정은 무슨. 애초에 웃으면서 공부하는 사람이 어딨냐? 진짜 아무 문제 없거든?"
"민아야."
"뭐, 뭐야. 갑자기 왜 정색하고 그래?"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려고 했었는데, 요 며칠 동안은 진짜 표정도 안 좋아 보이고 집중도 못 하고 자주 멍하게 있었잖아. 실제로 내가 몇 번 지나다녔었는데 눈치도 못 챘었고."
"그건…."
적당히 지어낸 말이었지만 나름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는지 김민아의 표정은 서서히 굳어가고 있었다.
"너한테는 별거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여기 와서 처음 사귄 친구가 너야. 아는 사람도 너밖에 없고. 솔직하게 말해주면 안 될까?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내가 도와줄 수도 있잖아."
반쯤은 진심이었다. 내가 벌인 일이기는 하지만 김민아의 상태가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고, 실제로 도움을 주기 위해 이러고 있는 거였으니까.
유서연과는 달리 원한이랄 것도 없는 데다가 시작이야 어쨌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지에서 유일하게 친하게 지내고 있는 상대였으니 고마운 마음도 있고.
"뭐야, 오글거리게…."
고민하고 있다.
기분 나쁘다는 듯한 말투와 달리 김민아는 이미 슬금슬금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성격 자체가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성실한 만큼 김민아는 이런 식으로 정면으로 부딪치는 행동에 약했다.
"……."
잠깐의 침묵 동안 김민아는 솔직하게 말할지 말지 고민하는 듯 몇 번이고 입가를 달싹였다.
나는 조용히 김민아의 선택을 기다렸다.
김민아가 입을 연 것은 꽤 길게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으…. 비웃으면 안 된다?"
"안 비웃을게."
"쉽게 말하지 마. 진짜 이상한 얘기란 말이야."
"쉽게 말하는 거 아니야. 진짜로 안 비웃을게."
"미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안 그래."
"아직 듣지도 않았으면서…."
이쪽의 확답에 김민아의 표정이 한층 더 찝찝하게 변했다.
그래도 말하기로 한 결심은 그대로였는지, 결국에는 짧게 한숨을 쉬며 진심을 털어놓았다.
"정액 있잖아…."
"어, 정액…?"
살짝 당황한 척 말을 더듬어주자 김민아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그, 그게 맛있어서…."
"정액이?"
"그러니까, 정액이 너무 맛있어서 자꾸 떠오르고 먹고 싶어서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고…."
황당한 이야기다.
나야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 놀랄 것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분명히 당황했을 상황이었다.
"어…. 그게 왜 맛있지…?"
"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냐…?"
김민아는 우울한 목소리로 한탄했다.
목소리만이 아니라 표정까지도 완전히 무너졌다. 이렇게까지 우울한 표정의 김민아는 처음 봤다.
"그래서 오늘 그렇게 달려들었었구나?"
"그, 그 얘긴 하지 마…."
우울한 와중에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모양인지 김민아의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
평소와의 갭 때문인지 묘하게 놀려주고 싶은 모습이었다.
"사실 맛이야 네 취향이 독특하다고 생각하면 될 테니까 일단 넘어가고. 문제는 계속 떠올라서 집중이 안 된다는 부분이겠네. 어느 정도로 심하길래 그래?"
"나도 몰라…. 그냥 입이 심심하면 무조건 떠오른다고 생각하면 돼. 그냥 문득 정신을 차렸더니 떠올리고 있을 때도 있고."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중증이다. 하기야, 이 정도는 돼야 중독이라고 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따로 뭘 먹어도 그래? 어차피 여유도 좀 생겼겠다. 과자라도 사 먹으면…."
"담배는 피워 본 적도 없긴 한데. 금연하는 느낌이야. 그 왜, 금연한다고 껌 씹는 사람들 있잖아. 뭐라도 입에 넣어야 할 것 같아서 껌이라도 씹는데 아무리 씹어도 부족해서 결국 담배로 돌아가는 거. 그런 느낌…?"
"…심각하네."
알기 쉬운 설명에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군대에서도 전역하기 전에 금연하고 나간다면서 시도하는 인간들이 여럿 있었지만 제대로 끊어서 나간 인간은 한 명도 못 봤다.
오히려 스트레스에 후임들이나 안 갈구면 다행이었지. 대부분은 성질까지 더러워져서 여러모로 민폐였다.
"정액을 먹으면 괜찮아지긴 해?"
"대여섯 시간 정도는. 그 뒤에는 다시 슬금슬금 올라오다가 다음 날 되면 다시 똑같아지고."
"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하긴 했는데 막상 들어보니까 뭐 해결할 방법이 없네."
"어차피 그럴 것 같았어. 너무 신경 쓰지 마."
괜찮다는 듯이 말하고는 있지만 실망한 듯 축 처진 어깨나 묘하게 지친 표정은 숨기지 못했다. 사실 저렇게 포기해버리면 그거야말로 곤란한 일이지만.
"어쨌든 공부는 해야 할 거 아니야."
"나도 몰라. 어떻게든 참아 봐야지."
"그걸 못 참아서 힘든 티를 팍팍 내고 집중도 못 하고 있으면서 말은 쉽게 한다."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김민아는 이쪽을 째릿 노려보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어쩌긴. 당장 공부는 해야 하니까 하루 한 번씩은 먹어야지. 일 때문에 좀 피곤하긴 해도 아예 못 싸는 것도 아니고. 좀 이상한 말이긴 한데, 도와줄 테니까 내껄 먹는 걸로 하자."
"응…?"
조금 전까지 보였던 화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김민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얼빠진 소리를 흘렸다.
"네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나 몰라라 하겠어. 어쨌든 정액 먹으면 반나절은 괜찮아진다며. 그때 집중해서 공부하면 되지."
"아니, 피곤해서 안 불렀다며?"
"그러니까. 피곤해도 못 싸는 거 아니라고. 싸면 더 피곤하긴 하겠다만 어차피 낮잠 좀 자면 멀쩡해져."
"그, 그래도…."
"그래도는 뭐가 그래도냐? 네가 지금 남 걱정할 상황이 아닌데. 해준다고 할 때 얌전히 받아. 나중 가서 딴소리하지 말고."
"……."
김민아는 입술을 짓씹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마도 속으로 엄청나게 갈등하고 있을 것이다.
머리로는 이건 아니라고,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당장 눈앞에 해결법이 있으니 고민하는 것이다.
"아, 그래도 돈은 못 줄 것 같은데. 기분 좋은 건 똑같긴 해도 피곤한 상태에서 싸면 진짜 엄청 지치거든. 돈까지 주긴 좀 그래."
"거, 거기까진 안 바래!"
살짝 덧붙인 말에 김민아는 화들짝 놀라며 손사래를 쳤다.
반쯤 주객이 전도되긴 했지만 지금 와서는 이쪽이 희생해가며 자신이 도움받는 입장이 돼버렸으니 성실한 성격의 김민아가 돈까지 받아내려고 할 리는 없었다.
"시험은 언제야?"
"…4월."
"그럼 얼추 세 달 남았네. 일단 그때까지는 매일 하는 걸로 하자. 남은 문제는 그 뒤에 생각하기로 하고."
"고, 고마워…."
"누가 보면 합격시켜준 줄 알겠네. 공부나 열심히 해. 이래놓고 떨어지면 그게 더 큰 일이니까."
이걸로 매번 6만 원씩 빠져나가던 지출이 사라졌다.
유서연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펠라에 쓰기엔 상당히 아까운 액수였던 것이 해결됐으니 내 쪽에서 감사해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럼 오늘은 들어가서 푹 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불러. 어차피 아침부터 공부하잖아?"
"으응…."
미안한 건지 고마운 건지. 아니면 둘 다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민아는 가게를 나와 고시원에 돌아와 각자의 방으로 갈라질 때까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마지막에 작게 중얼거리듯 인사를 건넸다.
"…잘자."
그리고 다음 날.
김민아에게 문자가 온 것은 오전 6시 반. 김민아 역시 일찍 일어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일찍 일어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김민아 : 일어났어?]
일어난 게 아니라 문자 소리에 깬 것이지만 어쨌든 잠에서 깼다는 사실 자체는 마찬가지.
좀 더 자고 싶긴 했지만 일단 답장을 보내보자 곧바로 답장이 돌아왔다.
[최민석 : 일어났어. 지금 올 거야?]
[김민아 : 응. 바로 갈게.]
정말 답장하자마자 바로 온 모양인지 1분도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응…."
김민아는 입장이 뒤바뀐 탓인지 평소와 달리 우물쭈물하는 기색이었다.
'이것도 좋은데?'
태도가 어떻든 간에 얼굴이 예쁘면 그림이 된다.
오히려 평소의 모습에 익숙해진 만큼 지금 보이는 모습 역시 나름 귀엽게 느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르라고 해서 하긴 했는데…. 혹시 자고 있었어…?"
"또 자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 어차피 쉬는 날이라 늦잠 잘 생각이기도 했고."
신경 쓰지 말라고 말은 했지만, 김민아의 입장에서는 마냥 그럴 수도 없는 모양인지 표정에서 미안해하는 기색이 훤히 드러났다.
"됐으니까 빨리하고 공부하러 가. 나도 마저 잘 거니까."
쓸데없이 시간 끌 생각은 없었기에 그대로 팬티를 벗어 던지며 자지를 드러냈다.
잘 때는 반팔 한 장에 팬티만 입고 자기 때문에 김민아가 뭐라고 할 틈조차 없었다.
"읏…!"
막 자고 일어난 탓에 한껏 발기해 있는 자지의 모습을 확인한 김민아의 몸이 흠칫 떨렸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왜 서 있는 건데…!?"
"아침에는 원래 이래. 아침 발기도 모르냐?"
"그 정도는 알거든!? 그냥 조금 놀라서 그런 거거든!?"
"알았으니까 빨리하기나 하자. 나 졸려."
"아, 알았어…."
반쯤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며 침대 등받이에 등을 기대 김민아가 올라올 자리를 만들어주자 김민아 역시 주춤주춤 침대에 올라와 몸을 숙였다.
"후우…."
마치 심호흡이라도 한 것처럼 깊게 흘러나오는 한숨이 자지를 간질이자 또다시 힘이 들어가며 불끈 떨려왔다.
"그럼…."
"잠깐만. 하기 전에."
"뭐, 뭔데."
"잘 먹겠습니다. 해야지. 제일 좋아하는 거잖아."
"미친놈아!"
슬쩍 던져본 농담에 김민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빽 소리쳤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심란해 죽겠는데…!"
"그래서 도와주는 거잖냐."
"나쁜 새끼…."
김민아는 이쪽을 째릿 노려보면서도 손을 뻗어 자지를 꽉 움켜쥐고 고개를 천천히 숙이며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