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 정액 중독 공시생 (3)
"미안한데, 진짜 급한 일 있어서 간다! 나중에 봐!"
쾅!
"뭐지…?"
김민아가 도망치듯 나가고, 순식간에 조용해진 방에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최면을 건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오늘의 김민아는 분명히 이상했다.
평소라면 펠라를 하면서도 중간중간 숨도 돌리고, 대화도 주고받고 했었는데. 오늘은 왠지 그런 여유도 없이 펠라만 해댔다.
"평소보다 잘하기도 했고."
김민아의 펠라 실력이 늘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서연을 경험해보기 전의 생각이었다.
나나 김민아와는 경험 횟수 자체가 다른 유서연의 펠라는 신세계나 다름없었고, 그만큼 김민아의 펠라가 얼마나 단조로운지를 알았다.
오늘 김민아를 부른 건 그냥 한 발 빼고 싶었는데 유서연을 호출하기 귀찮아서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웬걸. 막상 펠라를 받아보니 평소와는 확연하게 느낌이 달랐다.
처음에는 조금 찐득하게 달라붙는 것을 빼면 평소와 다를 건 없었다.
두 번째는 이쪽에서 말을 거는 걸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곧바로 자지에 달라붙었고, 평소와는 달리 청소라도 하는 것처럼 귀두에 묻은 쿠퍼액을 하나하나 빨아먹더니 말 한마디 없이 다시 펠라에 돌입했다.
세 번째는 아예 쉴 틈도 없이, 유서연 만큼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이쪽의 약점을 공략하는 것처럼 곳곳을 혀로 괴롭히며 평소보다 빠르게 정액을 뽑아냈다.
심지어 이쪽이 중간중간 했던 말은 아예 듣지도 못한 모양이고.
"어떻게 된 거지?"
정액을 맛있게 먹는 거야 이쪽이 그렇게 최면을 걸었으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아예 유서연처럼 뭔가에 굶주린 듯이 달라붙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내가 걸었던 최면이 분명…."
내용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1. 고시원 총무는 요금 6만 원에 거주자들의 성욕 해소 서비스를 진행한다.
2. 정액의 맛이 묘하게 중독되서 삼키고 싶다. 바닥을 더럽히는 것도 신경 쓰이니 삼킨다.
"이 두 개밖에 없는데 뭐가…."
김민아의 상태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던 도중. 문득 그럴듯한 해답이 떠올랐다.
"설마, 중독된다고 최면을 걸어서 그렇게 된 건가?"
그냥 '맛있다'고 느끼는 것과 '중독'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는 맛있다고 느끼기도 하고 더 먹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다. 하지만 후자라면 단순히 더 먹고 싶다는 수준을 넘어 말 그대로 중독되어버리는 것이다.
"어이가 없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진심으로 어이가 없어 큭큭 웃음을 터트렸다.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한 달 넘게 내 정액을 삼킨 김민아는 완전히 정액에 중독되어버렸다는 뜻이다.
거기까지라면 문제없었을 것이다.
중독이건 뭐건 정액은 마약처럼 법에 저촉되는 것도 아니고 신체에 해로운 것도 아니니까. 게다가, 그동안은 문제없이 매일 정액을 먹을 수 있었으니 더더욱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 것은 내가 유서연을 손에 넣으면서 김민아의 성욕 해소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물론 나야 만족스럽게 성욕을 해소하고 있었으니 문제가 없었겠지만 나와 달리 김민아는 갑작스럽게 정액의 공급이 끊긴 탓에 끙끙 앓았을 테지.
'그러고 보면 요즘은 서비스 안 부르냐?'
전날 대수롭지 않게 물어봤던 것 역시 한계에 이른 김민아가 보낸 일종의 신호였을 것이다.
그래도 자존심은 센 성격이었으니 참다 참다 못해 빙 둘러서 물어본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또 미안하네."
유서연처럼 원한이 있는 사이도 아니고.
오히려, 최면 덕분이기는 해도 집을 나오고 나서 처음 사귄 친구가 아닌가.
"공부도 해야 할 텐데."
김민아의 집안 사정은 대충 알고 있다.
우리집처럼 개판은 아니었지만 가난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었고, 때문에 자진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시생이 된 것이 김민아의 현 처지였다.
잘은 몰라도 아까처럼 자기 스스로도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면 당연히 공부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 뻔했다.
"…민아한테는 꽤 신세를 지기도 했고. 제대로 케어해 줘야겠지?"
물론 서로가 윈-윈(Win-Win)하는 방식이 되긴 하겠지만.
나는 곧바로 서큐버스 시스템을 실행시키고 생각에 잠겼다.
"우선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중독 쪽인데."
서비스를 받는 시점에서 글러 먹긴 했지만 김민아의 공부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근데 그 넋 나간 표정을 못 보는 것도 아쉽고."
본판이 워낙 미인인 만큼 정액 맛에 푹 빠져 녹아내리는 김민아의 표정은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아예 진짜 마약처럼 만들어 버려?"
물론 최면은 어디까지나 최면일 뿐이지 정액의 성분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정액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던가 스트레스가 풀린다던가 하는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미 정액에 완전히 중독된 만큼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생각난 순간 곧바로 김민아의 최면 설정에 내용을 입력했다.
[정액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
[해당 최면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4,000P가 필요합니다. 적용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푸핫."
필요한 정기를 확인한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유서연을 건드리면서 확인해본 바에 따르면 포인트가 적게 필요한 것들은 이미 대상의 상태가 최면과 거의 일치한다는 뜻이다.
수치가 100까지 내려가지 않는 이유는 '어떻게 기분이 좋은가'의 차이거나 본인이 그 상태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액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해당 최면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8,000P가 필요합니다. 적용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필요한 양이 조금 늘었지만 여전히 숫자는 낮다.
최면에 걸리기 전의 김민아에게 이런 최면을 걸려고 했다면 정기가 10만은 우스울 정도로 많이 필요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후하게 쓸 수 있겠네."
정액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 드는 포인트가 적기도 했고. 매일 유서연을 따먹으면서 얻은 포인트도 상당으니 조금 무리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정액을 먹으면 스트레스가 싹 풀리고 하루 동안은 잡념이 떠오르지 않고 집중이 잘 된다.]
[해당 최면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50,000P가 필요합니다. 적용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갑자기 확 늘었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효과 시간을 이틀로 늘려봤더니 필요 정기가 2만이나 늘어났다.
아쉽게도 거기까지는 포인트에 여유가 없었기에 하루로 만족하기로 했다.
[최면이 적용되었습니다.]
적용 버튼을 누르자마자 모아뒀던 정기 수치가 순식간에 확 줄어들었다.
"이렇게까지 해줬으니 뽕은 제대로 뽑아야겠네."
우선은 김민아와의 관계를 다시 재정립해야 한다.
나는 곧장 김민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최민석 : 오늘 저녁 치맥 콜?]
아무리 쪽팔리다지만 매일 라면만 먹고 사는 김민아로서는 치맥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을 것이다.
"근데 왜 답장이 안 오지…?"
아니, 답장은커녕 문자 옆에 있는 숫자도 사라지지 않는다.
"설마 차단한 건 아니겠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김민아에게 답장이 온 것은 기다리다 지쳐 몇 판이나 게임을 돌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김민아 : 콜.]
평소처럼 쿨한 답장이다.
딱히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김민아는 이렇게 쿨하고 쌀쌀맞은 모습이 매력이었으니까.
[최민석 : 지금 바로?]
[김민아 : 30분만 기다려.]
[최민석 : ㅇㅋ]
30분이면 정말 최소한의 준비만 하고 나가겠다는 뜻이다.
김민아만 그런 건 아닌 모양이지만 머리까지 감고 나올 때는 1시간이 넘게 걸리는 일도 흔했으니까.
"나도 씻을…. 필요는 없겠지?"
양치는 어차피 먹고 들어와서 하면 되는 일이고, 잠깐 근처에 있는 치킨집에 가는데 머리까지 감을 필요는 없다.
샤워는 오히려 하지 않는 편이 좋다. 김민아는 자지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하는 듯했으니 말이다.
결국 대충 빈둥거리며 30분을 때우고 밖으로 나와보니 늘 입는 추리닝 차림의 김민아가 평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놈의 추리닝은 맨날 입냐?"
"지는 청바지에 파카만 입으면서 남 말할 처지고?"
"난 이렇게 입어도 몸 좋아서 핏 사는데?"
"나도 존나 예뻐서 이렇게 입고 나가도 번호 따이거든?"
"아니, 진짜 길거리에서 번호를 따는 사람이 있긴 해? 안 쪽팔리나?"
"너 같은 아싸는 모르겠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도 흔하게 일어나는 법이란다."
"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네."
"그러게 누가 까불래? 빨리 가기나 하자. 배고프다."
대놓고 도망쳤던 것 치고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태도다.
김민아의 속내를 완전히 알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어물쩍 넘어가는 것을 노리는 걸지도 몰랐다.
"매번 먹던 데로 갈 거야?"
"오늘은 내가 먹고 싶은 데로 가자. 레드 허니 콤보는 좀 참고."
"…마음대로 해."
레드 허니 콤보는 김민아의 모스트 치킨인지라 같이 치킨을 먹을 때는 항상 김민아의 취향에 맞춰 가게를 골랐지만 오늘은 해야 할 얘기가 있었으니 적어도 칸막이가 설치된 가게로 가야 했다.
다행히 근처에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설치된 치킨집이 있었기에 따로 장소를 찾을 필요는 없었다.
"뭐야. 어디로 가나 했더니 비비큐야? 여긴 쓸데없이 비싸기만 하고 별로던데."
"누구 때문에 매번 레드 허니 콤보만 먹었더니 깔끔한 후라이드가 좀 땡기더라고."
"누, 누가 내 입맛에 맞춰 달랬어?"
"맞춰달라곤 안 했는데 뭐 먹고 싶냐고 물어보면 매번 레드 허니 콤보만 찾았지."
"……."
애초에 더치페이도 아니고 이쪽이 사주는 입장인 만큼 김민아로서는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가게에 들어가 구석진 자리를 골라 앉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컵에 담긴 맥주가 먼저 테이블에 올라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곧바로 컵을 들고 맥주를 꿀꺽꿀꺽 마신다.
나야 별로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김민아는 술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 만큼 한 번에 컵을 반이나 비워놓고 나서야 쿵 소리를 내며 컵을 내려놨다.
"크으…."
"완전 아저씨가 따로 없네."
"뭐래. 맥주는 원래 이렇게 먹는 거거든?"
내가 큭큭 웃으며 말하자 김민아는 당당하게 반박하면서도 귀를 살짝 빨갛게 물들였다.
'본론은 다 먹을 때쯤에 들어가는 게 좋겠지?'
굳이 가게까지 와서 먹기도 전에 밥맛을 떨어뜨릴 필요는 없으니까.
술이 맥주인 만큼 크게 취하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취기가 오른 상태라면 김민아가 더 솔직해질 수도 있고 말이다.
이쪽의 속은 조금도 모른 채 치킨을 기다리고 있는 김민아의 모습에 내심 입맛을 다셨다.
오늘을 기점으로 나와 김민아의 관계는 빠르게 변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