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 나만 괴롭히는 팀장 (1)
유서연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집이 부자라는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상냥했고, 가지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들은 부모님께 이야기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손쉽게 이루어졌다.
반에서는 항상 주목 받는 입장에, 친구들 사이에서는 항상 리더 같은 위치에 있었으니 그녀의 성격이 조금, 아니 남들 이상으로 풀어지는 것 역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탈선을 하거나 남을 괴롭히는 일도 없었고, 타고난 머리가 좋은 데다가 천만 원 단위의 고액 과외를 받았으니 대학에 가는 것 역시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문제는 그녀가 대학생이 된 이후에 벌어졌다.
학교라는 공간에 갇혀있던 미성년 때와는 달리 대학교에서의 생활은 굉장히 자유로웠다.
취업에 대한 걱정은 있지도 않았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성인이 된 주변인들은 보다 노골적으로 유서연을 따라다니며 그녀의 비위를 맞추고 단물을 빨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술판을 벌이고 클럽을 전전했다.
술에 취해 거리를 돌아다니고 괜찮은 남자가 있으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방탕함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생활이었다.
유서연의 부모님은 거기까지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어차피 때가 되면 놀고 싶어도 놀지 못 할 텐데. 머리가 나쁜 아이도 아니니 졸업 때까지만 하고 싶은대로 하게 두자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녀의 방탕함이 관용의 범주를 넘은 수준까지 나아갔다는 것이었다.
마약이었다.
클럽에서 은근히 떠돌다가 유서연의 손으로 넘어간 마약은 중독성이 심한 것도 아니고 그저 기분을 약간 좋게 해주는 정도의 물건일 뿐이었지만 그런 가벼운 물건이야말로 마약 중독자를 가장 많이 만들어내는 시작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빨리 들킨 것은 운이 좋았다. 덕분에 중독자가 되거나 범죄자가 되는 일 없이 마약을 끊을 수 있었으니까.
부모님이 아닌 유서연에게 있어서의 문제는, 마약과 동시에 그간 아무런 제약없이 즐겨왔던 방탕한 생활마져 끊겼다는 점이었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경호원에게 감시당하며 집과 학교만을 오갔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아버지의 낙하산으로 백화점에 취직했다.
스스로가 납득하지 못한 채로 직장에 던져지고, 무엇이든 살 수 있을 것만 같던 카드마저 끊긴 유서연의 성격이 나빠지는 것은 당연했다.
직원들에게, 더 심하게는 손님들에게까지 지랄을 떨어대며 문제를 일으킨 유서연은 결국 쫓겨나다시피 타 지역에 있는 물류팀의 팀장직을 맡게됐다.
말이 좋아 팀장이지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앉아있는 것 뿐인 자리다.
결혼 상대는 알아서 구해줄 테니 얌전히만 지내라는 아버지의 말은 유서연에게 있어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항상 자신의 편을 들어주던 어머니도 마약 사건 뒤로는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퇴근 후에도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클럽에 가더라도 예전처럼 물 쓰듯 돈을 쓸 수도 없고, 나이가 찬 만큼 아무 남자나 만나고 다니면 다시 감시를 붙일 거라는 아버지의 엄포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유희라고는 괴롭혀도 뒤탈이 없을 법한 신입 하나를 골라 뽑아 괴롭히는 것뿐이었다.
애초에 마음껏 괴롭힐 요량으로 만만해 보이는 녀석들만 골라 뽑았고,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만들었다.
그 가학적인 행위는 즐거움 까지는 주지 못하더라도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 정도는 되었고, 부모님 역시 그 정도는 넘어가 주셨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온 녀석은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작정하고 굴려도 트집잡기도 애매할 정도로 희미한 싫은 티만 낼 뿐이지 시키는 일은 모두 군말없이 따랐다.
남들이 다 쉬고 있는데 자기만 데려가 일을 하면 눈살을 찌푸릴 법도 한데, 그냥 아무런 생각도 없다는 듯 따르기만 한다.
'재미없어.'
처음에는 오기가 생겨서 이것저것 힘든 일도 시키긴 했지만, 최근에는 그마저도 질려서 그냥 습관적으로 갈구고만 있을 뿐이다.
"새로 하나 뽑아야하나…."
괴롭힘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어쨌든 그건 그녀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유희 거리였으니까.
'이상하고 재미없는 녀석.'
결국 딱 그정도가 유서연이 최민석이라는 인간에게 가진 인상이었다.
며칠 전까지는 말이다.
근래 들어 조금씩 성욕이 끓어오르며 참기 힘들 때가 있었다.
성욕 정도야 원래 있었지만, 적당히 무시하며 지냈고 정 안되겠다 싶으면 자위 한 번으로 해소하고 말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강도가 점차 심해져 무시하기도 힘들고, 자위 한 번으로는 끝나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두 번, 세 번해서 해소하면 된다.
어차피 시간은 남아돌았으니까.
문제는 자위를 할 때면 계속해서 '그녀석'의 얼굴이 떠올라 집중하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흐읏…! 하앙…! 개자식…!"
유서연은 결국 최민석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던 새끼다.
경력도 학벌도 없는 주제에 재수 좋게 자신의 눈에 띄어 쉽게 취업한 녀석.
그런 주제에 아무리 괴롭혀도 별다른 반응도 없어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안 되던 녀석.
항상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무표정한 면상이 재수없었다.
하지만 지금. 유서연의 상상속의 최민석은 그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억누르고 사정없이 범해대고 있는 중이었다.
"흐읍…! 읏…! 씨발…! 흐응…! 뭐라고, 말이라도…! 아앙…! 하앙…!"
자신을 강제로 억누르고 범해대는 주제에 표정에는 쾌락도 분노도 없다. 그저 기계처럼 자신을 범해대고 있을 뿐이다.
쾌감은…. 스스로 위로하고 있을 뿐이지만 여태 했던 그 어떤 행위보다도 몸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하아앙…♥"
쾌감의 끝자락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도저히 자신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환희에 차 있었다.
상상 속에서는 어쩔 도리 없이 억눌려 질내사정을 당하는 순간이었다.
"하아…."
여성의 절정 직후에도 현자 타임 비슷한 것은 있다.
결국 흥분으로 달아오른 머리가 싸늘하게 식으며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일 뿐이니까.
아무튼, 유서연이 느끼고 있는 것은 집에서 별다른 관심도 없는 남자를 상상하며 자위를 해댄 자신에 대한 처량함과 짜증이었다.
"개새끼…."
그가 딱히 무슨 잘못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흥분시키는 그 무표정한 면상은 생각할수록 짜증이 치밀었다.
*
"민석 씨."
"예."
언제나 듣던 목소리지만 요 며칠동안은 목소리에 담긴 짜증 수치가 남달랐다.
물론 그에 대한 불만은 없다. 원인이라면 충분히 짐작이 갔으니까.
"청소 안 하고 뭐해요? 빨리 나오세요."
"알겠습니다."
청소를 시키는 말도 평소와는 다르게 공격적이고 강압적이다.
모르고 당했다면 자신이라도 꽤나 기분이 나빴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군말없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도대체 왜 매번 제가 불러야 하는 거예요? 시키기 전에 알아서 하면 서로 편하잖아요?"
"제 업무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청소가 끝나고 검사도 평소처럼 받으면 될까요?"
이때다 싶어 한껏 쏘아붙이려던 유서연은 이쪽이 곧바로 꼬리를 내려버리자 입꼬리를 부들부들 떨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서큐버스 시스템의 최면 기능을 잘 이용하면 상대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최민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최면을 걸었을 때 소모되는 정기가 적다면 굳이 최면을 걸 것도 없는 사실에 가까운 것이고, 소모되는 정기가 많다면 그렇지 않다는 말이 되니까.
김민아와의 관계로 정기를 쌓는 동안 나는 서큐버스 시스템을 이용해 유서연의 상태를 확인했다.
이유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꽤나 스트레스가 쌓이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 그리고 나를 굴리는 것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려고 했던 것. 그리고 그게 좀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아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까지 알아낼 수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섹스를 하는 데 있어 큰 장애다. 하지만 그걸 호감으로 바꾸는 것도, 섹스까지 갈 정도의 관계로 바꾸는 것도 정기의 소모가 큰 일이었다.
그건 깊게 깔려있는 감정을 바꾸는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순서를 조금 바꾸기로 했다.
처음으로 넣은 최면은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성욕이 쌓인다는 것, 그리고 자위를 할 때면 내가 떠오르는 것, 그리고 나를 떠올리며 자위를 할 때마다 평소 이상으로 흥분하고 더 느낀다는 최면을 걸었다.
이건 있던 상식이나 감정을 바꾸는 게 아니라 그저 성욕이 조금 쌓이고 내가 떠오르게 하는 일일 뿐이었기에 정기의 소모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최면에 걸린 뒤의 유서연이 유독 히스테릭해지고 상태가 좋지 않아진 것을 보면 그녀는 이미 나를 떠올리면서 자위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렇게 한 달 정도를 숙성시켜 유서연의 멘탈을 반쯤 깨 놓은 다음 새로운 최면을 거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이건 예상 못했는데.'
가끔. 유서연의 기분이 굉장히 좋지 않을 때면 휴게실 앞에 배치된 의자에 앉아 업무를 지켜보며 사소한 것들을 트집 잡으며 시비를 걸어올 때가 있다.
오늘의 유서연이 딱 그 상태였다.
평소라면 대충 일을 시켜놓고 휴게실에 들어갔어야 할 유서연은 의자에 앉아 내가 바닥을 쓸고 있는 모습을 꾹 노려보고 있었다.
대처법은 간단하다.
바닥을 꼼꼼하게, 그러면서도 느리지 않게 쓸고 허리만 펴지 않으면 된다.
조금이라도 대충 하거나 허리를 펴기만 하면 한껏 쏘아붙이고 짜증을 낼 준비를 마치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던 유서연의 눈빛은 시간이 지날수록 미묘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아…. 하아…."
날은 이제 12월 중순을 한참 지난 추운 날씨인데도 한여름인 것처럼 땀을 흘리며 가쁘게 숨을 쉬고 있다.
본인은 의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보더라도 야하다고 느낄 만한 상태였다.
어떻게 될 지는 흥미로웠지만 청소는 대충하지 않았다.
청소가 끝났을 때, 유서연은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전보다 거칠게 숨을 흘리고 있는 상태였다.
"청소 끝났습니다."
"…보면 알아요."
"다음은 남은 물건 정리하면 되면 됩니까?"
"그래요. 끝나면…. 보고는 하지 않아도 되니까…."
유서연은 헐떡이듯 숨을 내뱉으며 말하고는 여성 휴게실로 들어갔다.
"일은 안 해도 되겠고."
어차피 내 일도 아니고, 매장 쪽에서 나중에 알아서들 가져갈 것들이니 유서연의 감시만 아니라면 굳이 할 필요 없는 일이다.
그보다 궁금한 건 유서연의 상태였다.
겉으로만 봐도 발정났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으니 지금쯤 자위 삼매경에 빠졌을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여성 휴게실은 정말 급한 볼일이 아니면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곳이었으니까.
"읏……! 앙……!"
밖에서는 들리지 않았지만 문에 슬쩍 귀를 대보니 흐릿하게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