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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38/93)

상무님, 방 잡을까요?

38화

순식간에 훌렁 올라간 티셔츠가 위로 벗겨졌다. 꺅! 작게 비명을 지르며 두 팔로 가슴을 가려 봤지만 그보다 그의 손이 빨랐다. 양 손목이 붙들린 채 시트에 눌리고 새하얗게 드러난 가슴 위로 남자의 뜨거운 시선이 닿았다.

“예쁘다.”

그의 입에서 나직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진짜 예뻐, 수진아. 미칠 거 같아.”

“하, 하지 마. 읏! 잠깐……!”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 수진이 그 시선을 피하듯 모로 누운 채 웅크려 봤지만 남자는 아랑곳 않고 불거진 날개 뼈 위에 키스를 퍼부으며 나긋한 허리를 끌어안았다.

순식간에 되돌려진 몸이 그의 체중에 눌리는 사이 점차 흘러내려 가던 반바지가 결국 발끝에서 사라지고, 거침없이 허리선을 배회하던 남자의 손길이 남아 있는 속옷 틈을 매만졌다. 그녀의 호흡도 점점 더 거칠어졌다.

이상해.

도무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몸을 보이는 지금이 부끄러워 죽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다. 숨을 쉰다는 게 이토록 버거운 일인 줄은 몰랐다.

더 알 수 없는 건 그런 준성의 움직임에 호응하는 저 자신이었다.

제 입술을 멋대로 헤집어 놓는 그의 뜨거운 입술이 달콤하고, 몸 이곳저곳을 쓰다듬고 주무르는 커다란 손에 가슴이 설레고, 더운 숨결과 함께 새어 나오는 그의 나른한 부름에 온몸이 떨려 왔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 좋았다. 끊임없이 전율이 일고 열이 훅훅 차올랐다. 입술이 빨리고 혀를 농락당하는 동안 등골을 훑어 내리던 짜릿함은 말도 못 했다. 지금까지 왜 그를 피하고 밀어냈던 건지 다 잊어버릴 정도로.

씨근거리는 숨소리. 참다못해 내놓는 신음. 몸 안 깊은 곳에서부터 치미기 시작한 열기가 점점 그에게서 뭔가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멈출 수가 없다. 아니,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한편, 어쩔 수 없는 합리적 의심이 떠올랐다. 그 송준성이 저를 이런 상황까지 끌고 와 버릴 줄이야.

얘가 이렇게 손이 빨랐던가? 원래가 남을 이끄는 데에 능숙했고 원체 못하는 게 없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건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고. 이렇게 사람을 홀리고. 녹여내고…….

대체 이렇게 몇 명이나 그를 안아 봤을까.

“지금 딴생각하는 거 다 보여. 집중해.”

꽤 단호한 말에 흠칫, 숨을 들이켜자 준성은 발갛게 상기된 그녀의 얼굴에 토독토독 입을 맞췄다. 새처럼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이 그의 손에서 형태를 잃을 때마다 그녀의 입에선 나른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천천히 몸을 타고 내려온 더운 입김이 가슴에 닿았다. 아, 하고 신음을 내뱉고서 그의 어깨를 휘어잡은 순간 꼿꼿하게 선 유두가 그의 입안으로 빨려 들었다.

“으흑…….”

그의 혀와 입술이 더 질척하게 유두를 감아 올리자 거침없이 빨고 핥아 대는 소리와 함께 생소한 감각이 퍼져 간다. 찌릿한 전율에 이어 온몸의 피가 끓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도 남은 한쪽 가슴을 실컷 주무르던 손길이 천천히 배를 쓸고 내려가 허리로, 다시 얇은 속옷 하나로만 가려진 엉덩이에 닿았다. 움찔하며 그 손을 붙잡자 고개를 든 준성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아직도 버틸 정신이 남았어?”

“아니, 그게 아니라……. 나, 나 사실 첨이라……!”

조금 놀란 듯 멈칫한 준성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에 더 당황한 수진이 애꿎은 입술만 깨물었을 때였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어, 응?”

중얼거리듯 내놓은 말을 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걸까. 게다가 저 난처해 보이는 표정은 뭐고. 혹시 처음이라 실망한 건가. 요즘엔 처녀를 도리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다던데, 설마 그래서?

아니면, 처음인 주제에 너무…… 쉬워서?

“미안.”

그가 사과했다. 어리둥절해하며 바라본 얼굴엔 뜻 모를 미소가 어려 있었다. 왠지 아까보다 더 흥분한 것도 같고, 기쁜 것도 같은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던 준성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나도 마찬가지니까 불만 없지?”

“뭐어?”

처음이라고?

“말도 안 돼!”

“지금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몸을 일으킨 준성이 티셔츠를 위로 벗어 던졌다. 동시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이럴 것이다, 라고 상상만 했을 때와 눈앞에 닥친 현실은 차원이 달랐다.

떡하니 벌어진 반듯한 어깨와 바짝 올라붙은 가슴팍. 군살이라곤 1g도 보이지 않는 날렵한 허리와 형태가 완벽한 팔뚝까지. 이건 말 그대로 조각이었다. 그야말로 미켈란젤로가 환생해 심혈을 들여 깎아 놓았다면 딱 이런 그림이 나올 것 같은 몸매였다.

그냥 예쁘기만 한 몸매가 아니라 타고난 골격 자체가 남자였다. 그렇다고 우람하거나 둔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쭉쭉 빠져야 할 부분들은 또 라인이 완벽해서 상당히 날렵해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정말이지 더 이상 손을 댈 곳이 없는데, 거기다 딱 보기 좋을 만큼의 야성미를 추가한 건 그야말로 화룡점정. 요즘 말하는 착한 얼굴에 그러지 못한 몸매가 뭔지 여기서 제대로 알아 버렸다.

시간이 멈춘 건지, 아니면 눈을 뜬 채 꿈을 꾸는 건지.

얼마나 그렇게 보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잠시 넋이 나가 있던 그녀의 귓가로 한층 낮아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쳐다보는 거 엄청 흥분되는 거 알아?”

“아……!”

그런 적 없다고 잡아뗄 기회조차 없었다. 가뿐히 그녀의 몸을 덮쳐누른 남자가 다리 사이로 허리를 들이밀었다. 동시에 뭔가 엄청나게 크고 단단한 나무토막 같은 게 사타구니를 지그시 누르는 바람에 식겁한 수진이 숨을 들이켰다.

아니, 잠깐만. 이거 뭐지? 위치상 그거 말곤 생각할 수가 없는데, 설마 그게 이렇게…….

“왜 그런 얼굴인데?”

“뭐, 뭐가 이렇게 커……가 아니라! 그, 그게 지금은 잠깐…… 헉!”

하지만 이제 와서 하는 말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유유히 몸을 쓸고 내려간 손이 어느새 덜렁 혼자 남게 된 속옷 틈으로 밀려 들어와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간 팬티가 간신히 허벅지에 걸린 순간 수진은 소스라치며 그 손을 붙잡았다.

정말 이렇게 해 버리는 거야? 진짜로?

그 순간 찬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수진아. 너…….”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 것도 그때였다. 그 뉘앙스와 마주친 눈동자에서 느껴진 왠지 모를 당혹스러움. 왜 그런 얼굴을 하고 저를 보는 걸까, 의아한 것도 잠시.

주르륵.

눈가에서 떨어진 물기가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다.

모든 게 너무나 순식간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에 당황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걷잡을 수 없이 새어 나오는 흐느낌을 참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이미 흘려 버린 눈물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다.

“미안. 놀랐지?”

가볍게 눈가를 핥은 남자가 물었다. 어딘지 가라앉은 음성에 더 울컥한 수진은 재빨리 눈가를 비벼 내고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한숨처럼 웃음을 터뜨린 준성이 가볍게 그녀의 이마를 튕겨 냈다.

“아야!”

“하여간 김수진 너는…….”

“아니야, 이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놀라서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은 콧물이나 좀 닦고 해.”

“악!”

콧물이라니! 재빨리 이불을 끌어당긴 수진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렸다. 얇은 이불 너머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놀리는 건가? 대충 이불에다 얼굴을 문지르며 묻어나는 물기를 확인하던 수진이 버럭 소리쳤다.

“콧물 없잖아! 왜 거짓말이야!”

“알았으니까, 얼굴이나 보여 줘.”

“잠깐만……. 잠깐, 나 지금……!”

어느새 옆으로 내려온 남자가 그녀를 훌쩍 당겨 안았다. 커다란 손이 이불을 끌어 내리고 잔뜩 열이 올라 붉어진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나자 그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울긴 왜 울어. 그렇게 놀랐으면 차라리 뺨을 때리지.”

달래듯 하는 말에 수진은 또 눈물이 터질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가만가만 그녀의 얼굴과 눈가를 훔쳐 내며 웃는 얼굴에서 말로 다 형언하지 못할 감정이 묻어나고 있었다.

이렇게 조바심을 내며 애달픈 심정을 감추지도 않고. 겁내고 움츠러들기만 하는 상대가 미울지도 모르는데 전혀 그런 내색도 없이. 그저 귀엽다는 듯 등을 쓸어내리고 뺨을 꼬집는 손길에서, 머리카락을 스치는 입술에서 생생한 감정이 밀려든다.

“미안. 내가 너무 급했어. 네가 너무 예뻐서 잠깐 정신을 놨나 봐.”

아직도 흥분으로 가득한 눈을 하고서.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짓는 그의 모습에 도리어 가슴이 아파 수진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싫은 게 아니야.

처음으로 누군가를 안게 된다면 그게 송준성이길 바랐다. 그날이 오늘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그의 손길도 입맞춤도, 너무나 황홀해서 괜찮을 것 같았다. 아니, 하룻밤이라도 좋으니 그를 품에 안아 볼 수만 있다면 이 인생에 후회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을 걸 안다.

이렇게 몸을 나누고 나면 저는 분명 그의 마음까지 바라게 될 테니까.

아니, 이미 너무나도 간절히 그를 바라고 있으니까.

그래서 순간 겁이 났다. 지금도 간신히 이성을 다잡고 있는데, 그에게 안기고 나면 더는 주체하지 못할까 봐. 제 마음이 어디까지 번져 버릴지 알 수가 없어서.

“나도 남잔데 여기서 멈추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더 기다려 주겠다는데 이럴 땐 감동도 좀 받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슬쩍 이맛살을 찡그렸지만 헛웃음이 나오는 것까진 참을 수가 없었다. 입가에 맺힌 미소를 본 건지 그녀의 입술 언저리를 톡톡 건드리던 그가 그녀를 마주 안고서 몸을 돌렸다. 훌렁 그의 몸에 올라타게 된 수진이 움찔하며 양팔로 가슴을 가리자 또 웃음을 터뜨린 준성이 그녀의 콧등을 슬쩍 쥐었다. 괜스레 불퉁해진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뭐야. 막 몰아붙인 건 너잖아.”

홀랑 정신을 다 빼놓고. 난 아직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였는데.

민망한 몸을 최대한 가려 보며 투덜투덜, 중얼거리자 준성이 해맑게 물었다.

“그래? 그렇게 넘어올 만큼 좋았다는 거지?”

“그런 거 아니라니까!”

“하하…….”

발끈하며 달아오른 얼굴을 본 준성이 소리 내어 웃고는 슬쩍 몸을 일으키더니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 얼굴. 되게 보고 싶었어.”

그러고는 천천히 그녀의 뺨을 쓸며 시선을 맞춰 왔다. 한결 다정해진 눈빛.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가 그의 입술 위로 떠올랐다.

“계속 좋아했어. 첫눈에 반한 주제에 네 옆에서 친구인 척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넌 진짜 몰라. 말로 다 못 한다고.”

미치는 줄 알았다, 라며 한숨처럼 덧붙인 말에 가슴이 죄어 온다.

“그런데 간신히 잊고 사나 했더니 눈앞에 떡하니 나타나질 않나. 이상한 문자로 도발이나 한 주제에 도망치질 않나. 하도 얄미워서 놀리다 보니 또 네 반응이 재밌더라. 그러다 보니 정작 해 줄 말은 못 해 주고……. 진짜 바보가 따로 없네.”

게다가 타박이라고 하는 말은 왜 이렇게 다정한 건데. 그의 진심 어린 고백이 너무 기뻐서 또 눈물이 날 것 같다. 다시금 흐려지는 눈에 힘을 주며 물었다.

“왜 그때 말 안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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