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93)

상무님, 방 잡을까요?

37화

호랑이 굴에 끌려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건 다 거짓말이다.

하찮은 먹이의 생사고락 따위야 그날 호랑이의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법. 호랑이님이 배가 부르고 만사 귀찮은 상황이라면 관대함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글쎄. 먹히는 과정만 더욱 리얼하게 겪지 않을까.

“섹스하고 싶다고.”

바로 지금처럼.

“……어?”

순간 멍해진 시선이 남자의 얼굴을 향했다. 뭘 잘못 들었나 했다. 귀를 의심할 소리를 잘도 지껄여 놓은 남자는 방금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단정한 얼굴이었다.

“근데 오늘은 힘들 거 알아.”

“…….”

“그러니까. 키스만 할게.”

뭐라 반응할 새도 없이 불쑥 다가온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지그시 눌러 왔다. 순간 들이켠 숨이 그대로 멈췄다. 여전히 이 남자의 얼굴에 적응하지 못한 심장이 벌컥거리며 피를 토해 냈다.

“눈 감고.”

바로 입술 위로 느껴지는 속삭임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그제야 제가 남자의 속눈썹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수진이 질끈 눈을 감았다. 동시에 잔뜩 달뜬 숨을 내뱉은 그가 한 번에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작게 내뱉은 신음이 그의 입안으로 빨려 들었다. 급격히 거칠어진 태도에 당황한 그녀가 그의 어깨를 움켜쥐며 고개를 돌려 보려 했지만, 그 시도는 뒷목을 움켜쥐는 손길에 가볍게 제압당해 버렸다. 게다가 이건 제대로 악수(惡手)였다. 작은 반항에 더욱 흥분해 버린 호랑이놈은 숫제 물어뜯을 기세로 그녀의 입술을 빨아들이고 깨물어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하더니 무자비하게 혀를 쑤셔 넣었다.

“흐음!”

완전히 입안을 점령당한 그녀의 목구멍에서 신음인지 비명인지 모를 기묘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미 그와 혀를 나누는 키스를 해 본 적은 있지만, 그때는 말 그대로 가볍게 놀다 나간 수준이었지. 지금 이건 말 그대로 침범. 아니, 침략 그 자체였다.

저도 모르게 뒤로 빠지려는 몸이 거센 힘에 가로막혔다. 커다란 손이 뒷목을 더욱 강하게 움켜쥔 순간 더욱 깊이 맞물린 입술 사이로 힘없는 비명이 새었다. 거친 숨소리 사이로 타액이 진득하게 얽히는 소리가 섞여 든다. 무섭도록 뜨겁고 격렬한 침범에 수진은 정신없이 휘둘리며 헐떡였다.

“읏, 하아…….”

“수진아.”

딱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야 입술을 놓아준 그가 가만히 그녀를 불렀다. 미처 흥분을 감추지 못한 열띤 음성이 지나치게 섹시했다. 더더욱 야릇한 상황을 상상하게 만드는 목소리였다. 이 망할 놈의 호랑이는 목소리조차 잘생겨서 문제다.

그의 섬세한 손가락이 그녀의 턱을 슬쩍 잡아 올리고는 천천히 젖은 입술을 쓸었다. 그 손길이 너무 부드러워서 신음을 토할 뻔했다. 차마 그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어 하염없이 그의 가슴팍에 시선을 고정한 채 숨을 가다듬으려 애썼다. 심장이 너무 뛰는 게 이러다 과부하로 돌연 터져 버린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

그렇게나 무자비하게 파고들 땐 언제고 이제야 제 상태가 염려된 건지. 걱정이 깃든 목소리에 수진은 뻣뻣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해도 되겠다.”

“뭐?”

기막혀 되묻는 말과 함께 입술이 다시 그의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르듯 입술을 물고 다시 빨아들이는 것을 시작으로 한결 달콤하고 농밀하게 움직이는 혀가 입안 곳곳을 찌르고 휘젓는다. 연신 솟아나는 타액을 빨아 마시는 소리가 야릇했다. 좀 더 확실해진 흥분. 사타구니 부근이 찌릿하게 울리고 허벅지 사이를 조이게 만드는 감각이 아랫배로 고여 든다.

“하아…….”

그녀의 입에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순간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주저앉을 뻔했다. 저도 모르게 그의 팔을 움켜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 올린 그가 다시 입을 맞췄다.

그때부터는 제가 뭘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생각을 할 수 없게 만드는 키스가 이어지고 몸이 붕 떠오르는가 싶더니 폭신한 이불이 등에 닿았다. 눈을 깜빡이며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열기 가득한 숨결과 함께 묵직한 남자의 체중이 제 몸에 겹쳐지고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지그시 몸을 눌러 오는 무게감. 완전히 온몸을 덮어 버린 체온이 아찔하다. 그리고 이상했다. 언제부터 젖어 있었는지 모를 속옷도. 뜨겁게 곤두선 채 그의 가슴팍에 짓눌리는 조그만 유두도. 모두가 저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온몸의 감각까지 몽땅 그에게 휘둘리는 듯한 이 느낌이 너무도 생경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사실은 좀 무서웠다. 결국 그의 가슴팍을 밀쳐 내며 버둥거렸다. 꽉 잠겨 버린 목구멍에서 울 것처럼 흔들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주, 준성아…….”

“알아.”

툭하니 대꾸한 준성이 가슴팍에 올라온 손을 붙잡으며 발갛게 젖은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췄다. 낯선 흥분에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힘겹게 정신을 추스르려 하는 그녀가 가련했다. 그 가련함이 참기 힘들 정도로 욕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눈으로 보니까 꼭 내가 널 납치라도 한 것 같잖아.”

“…….”

“근데 기분은 괜찮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기함하며 바라보자 유유히 웃던 준성이 몸을 숙여 이마를 마주 댔다. 얄밉게 웃음 가득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더 못된 짓 해 보고 싶어.”

경악으로 휘둥그레진 눈이 그를 향했다. 실컷 빨아들여 더더욱 붉게 부풀어 버린 입술이 병아리처럼 뾰족하게 튀어나왔다. 늘 뽀얗기만 했던 얼굴에는 어느새 홍조가 붉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은 탄식이 입안에 머물렀다.

대체 왜 이렇게 예쁘게 태어나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건지.

불안하게 떨리는 눈동자도. 숱이 가지런한 눈썹과 동그란 이마도. 샤워의 흔적인지 땀인지 모를 물기에 젖어 있는 잔머리카락부터 난처한 듯 부푼 입술을 짓씹는 하얀 이까지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대로 한입에 삼켜 버리고 싶을 정도로 먹음직스러웠다.

이렇게 보니 포획한 사냥감을 어떻게 먹어 치울지 고민하는 짐승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진짜 짐승들은 음식을 앞에 두고 저처럼 성기를 발딱 세우고 있진 않을 테지만.

“네가 날 그렇게 만드네.”

기막힌 듯 헛웃음을 짓는 여자의 입가로 그가 늘 애타게 그려 온 보조개가 살포시 떠올랐다. 처음 본 그날부터 그의 시선을 붙들고 놓지 않았던 그 흔적이.

이러니 내가 어떻게 참아.

기다렸다는 듯이 움푹 팬 볼우물에다 입을 맞추고 난 그가 다시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삼켰다. 이젠 멈춰야 하는데. 지금도 충분히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걸 알면서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이제 그만. 아니, 조금만 더.

아득히 먼 곳으로 밀려난 이성의 외침을 외면하며 나긋한 여자의 몸을 쓸어내렸다. 인내심은 이미 제 체취로 가득한 옷을 걸치고 나온 여자와 마주한 순간 바닥을 드러냈다.

그녀를 위해 편의점에 들렀을 때도 콘돔을 발견하고서 잠시 고민했었다.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그 생각을 지우고 필요한 것만 사고 돌아와야 했다. 그건 나름의 제어 장치였다. 콘돔이 손에 있다면, 그걸 쓸 일이 생겼을 때 참지 못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질 테니까.

관계를 확실히 하기 전에 몸부터 나눠 버리는 건 그녀에겐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야 했다.

그런데 정작 꿈에 그리던 여자를 품에 안고 나니 그 결심이 바스라진다. 솟구치는 욕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등허리를 쓸고 매만지던 커다란 손이 가쁘게 오르내리는 여자의 가슴팍으로 이동했다.

“흐윽! 자, 잠깐만!”

수진은 서슴없이 제 가슴을 움켜쥐는 손길에 기함하며 그 손을 붙잡았다. 열기 가득한 숨을 내쉬던 그가 멈칫한 것과 동시였다.

“너, 이거…… 손 이거.”

“뭐가?”

나직한 되물음에 심장이 꾹 죄어든다. 잠기다 못해 갈라진 목소리가 느긋한 식사를 방해당한 맹수의 그르렁 소리 같아 등골이 다 오싹했다. 아무리 그래도 할 말은 하자. 아직도 가슴에 철썩 붙어 떨어지지 않는 손을 꽉 움켜쥔 수진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키, 키스만 하는 거 아니었어?”

“내 키스엔 이것도 포함이라.”

“저기, 우리 사이에 다소의 의견 차이가 발생한 것 같은데……!”

짐짓 심각하게 말을 꺼내 봤지만 귀에 들어가기나 한 건지. 준성은 아주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로 한참 동안 그녀의 눈을 응시하던 그가 쿡쿡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간신히 제자리에 붙들어 놓은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와, 너…… 그렇게 웃으면…….

반칙이라니까.

아찔하다 못해 주마등이 아른거리는 순간이었다. 저 잘생긴 얼굴이 보여 주는 효과는 엄청났다. 여기서 살아남으면 당장 심장 검진부터 받아야 하는 건가. 그런 황당한 생각은 바로 티셔츠 아래로 들어온 손이 맨살을 쓰다듬는 것과 동시에 싹 사라졌다. 순식간에 올라온 손이 파르르 떨리는 젖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아흣!”

비명에 가까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손바닥을 다 채우고도 남는 살덩이가 부드럽게 뭉개지고 더욱 꼿꼿해진 유두가 쓸릴 때마다 기묘한 감각에 절로 온몸이 비틀렸다.

“잠깐 준성아……. 송준성……!”

“그래. 나 준성이야.”

뭐라 말을 꺼내려고 한 건지조차 잊었다. 나른한 대답에 몸이 더 달아오르고 말았다. 열감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섹시했다. 절로 다리 사이가 젖어 드는 목소리. 아득해진 정신을 붙들며 흐느끼자 준성은 다시 진하게 입을 맞춰 왔다.

이렇게 쓸려 가는구나.

어느 틈에 깨달았으면서도 수진은 그의 행동을 막을 수가 없었다. 헐렁한 반바지 밑단으로 스며든 손이 허벅지를 지나 골반뼈까지 어루만져도. 무릎이 벌어지고 이미 축축한 다리 사이로 그의 허벅지가 끼어들어도. 얄궂은 손길이 단단히 뭉친 유두를 비비고 긁어내려도 그녀가 내놓을 수 있는 건 억눌린 신음뿐이었다.

견디지 못한 수진이 바르작거리며 몸부림을 쳤다. 가만가만 달래듯 등을 토닥이던 준성이 속삭였다.

“쉬, 괜찮아.”

“흐윽, 난 그게 아니…… 흣!”

반쯤은 코를 통해 흘러나온 목소리가 쾌락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런 그녀가 귀여워 못 견디겠다는 얼굴로 입을 맞춰 대는 남자의 공세에 수진은 현실을 부정하듯 도리질을 치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너 이러다 후회한다고.”

“안 해.”

“바, 바보야! 생각은 좀 하고 대답을……. 아, 아파!”

남의 속도 모르고 목덜미를 깨무는 통에 비명을 지른 수진이 그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려 댔다. 제 딴엔 정말 세게 때렸는데도 아픈 기색조차 없이 천연덕스럽게 웃기만 하는 남자를 보고 있으려니 기가 막힌다.

“어우 씨! 이러다 진짜 내가 들러붙어서 안 떨어지면 어쩌려고 이래! 내가 얼마나 집요한 사람인지 알기나 해? 진짜 스토킹도 할 거야!”

“좋은데?”

“뭐?”

생각지도 못한 말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순간 그녀의 이마를 쓸어 넘기던 준성이 씩 웃으며 덧붙였다.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너 설마 변……태였니?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자 다시 웃음을 터뜨린 준성이 은근하게 속삭였다.

“그럼 허락하는 거다.”

그래서 결론은 왜 그쪽이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