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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1 (11/12)

Epilogue 1

마지막 추적

이선우가 사라지고 한 달이 지났다. 퇴원한 이선우의 행방을 찾으려 현욱은 제 신분을 이용해 이선우의 보호자 행세를 했다는 남자의 신상 정보를 깡그리 알아냈다.

한수혁, 37세, 미혼. 흔히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하는 사례의 보육원 출신 의사. 아무리 뜯어보아도 이선우와는 이렇다 할 접점이 없는 생뚱맞은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지인이라면 지인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거기도 관계성이 흐렸다. 별 소득이 없는 뒷조사에 답답해진 현욱은 제 방식대로 하기로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직접 부딪치는 거였다.

서울 한복판,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개인 병원 대기실이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현욱은 곧장 접수대로 갔다.

인상이 좋은 중년 여성 손님이 어려 보이는 접수대 직원과 이야기 중이었다. 현욱은 옆에서 그들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원장님이랑 얘기 잘하셨어요? 다음 배달은 언제예요?”

배달?

현욱의 시선이 어울리지 않은 단어를 내뱉는 접수원에게 향했다. 단발머리에 눈이 큰 여자의 하늘색 유니폼에 <박성아>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여자는 한 손에는 볼펜, 다른 손에는 달력을 들고 중년 여성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현욱의 의아한 시선을 알아챈 듯 말을 덧붙였다.

“원장님 도시락이요.”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지만 좀처럼 연결되는 인물이 없었다.

“다음 주 목요일. 두 세트. 댁으로 보내 드릴까?”

중년 여성의 대답에 접수 직원은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까만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아뇨. 직접 가지러 가신대요. 같이 바람 좀 쐬고 싶으시대요. 요새 바쁘셨거덩요.”

킥킥 웃는 얼굴에 딱 제 나이대다운 발랄함이 넘쳤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그래. 성아도 수고하렴.”

둘은 단순 병원 직원과 손님의 관계가 아닌 듯했다. 일종의 고질병이기도 한 직업병 탓에 현욱은 미심쩍은 시선으로 병원을 나가는 중년 여자를 쳐다보았다.

“예약하셨어요?”

가볍지만 친절한 웃음을 걸친 접수 직원이 현욱에게 물었다. 현욱은 품을 뒤져 경찰 배지를 찾았다.

“아뇨. 경찰입니다. 한수혁 씨를 좀 만나고 싶은데요.”

“경찰?”

접수 직원의 태도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장난기 많아 보이던 얼굴이 냉랭해지더니 부릅뜬 눈 밑이 파르르 떨렸다. 흔치 않은 반응이었기에 현욱은 제 반만 한 몸집의 여자에게 적잖이 당황했다. 이런 선명한 적의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성아 씨. 그냥 들여보내 주세요.”

접수 직원을 어르는 듯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따라 현욱이 뒤를 돌아보았다. 하얀 가운을 걸친 한수혁이 어느샌가 진료실 문을 열고 나와 있었다. 사진으로 볼 때는 비실비실할 줄 알았는데 실제 한수혁은 체격이 제법 좋았다.

“제 손님인 것 같으니, 들어오세요.”

“씨팔.”

접수대 너머에서 들리는 살벌한 욕설에 일순 멈칫했지만, 현욱은 한수혁을 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깔끔한 진료실 책상에 앉은 한수혁이 현욱에게 환자들이 앉는 의자를 권했다. 현욱은 그 권유를 무시하고 물었다.

“날 압니까?”

“그건 제가 물어야 할 말 같은데요.”

‘이 새끼다.’

빙긋 웃는 얼굴을 보자마자 현욱의 직감이 이선호, 나비, 그리고 눈앞의 한수혁이 모두 같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현욱은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다시 물었다.

“이선우. 지금 어디에 있어.”

정적이 흘렀다. 한수혁은 마치 처음부터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는 양 안경을 벗어 내려놓고 현욱을 직시했다. 쌍꺼풀 없는 서늘한 눈매 탓에 무표정한 얼굴이 꼭 잘 만들어진 가면처럼 느껴졌다.

“제가 제 걸 가져가는데. 형사님이 무슨 상관이시죠?”

‘역시 이 새끼였어.’

현욱의 어금니가 바득바득 갈렸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여전하시네요. 다 끝난 사건 혼자서 수사하시느라 고생 많으시겠어요. 그래도 용케 저인 줄 알아보셨네요.”

턱을 괸 한수혁이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딸깍딸깍, 마우스를 움직였다. 대놓고 저를 무시하는 태도에도 현욱은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다.

한수혁, 아니 놈의 정체가 뭔지는 모르지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놈은 단숨에,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현욱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는 존재였다.

“장 형사님껜 고마워요. 제가 없는 동안 선우 곁에 있어 줘서. 근데 여기까지만 하시죠.”

현욱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모니터에서 이쪽으로 옮겨진 놈의 눈알이 온통 새카맸다.

“형사님을 아느냐고 물으셨죠. 이 이상 선우를 찾으려고 하면, 저도 장현욱이란 사람의 모든 걸 알아보는 수밖에 없어요.”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말이 안 통한다는 듯 고개를 저은 놈의 눈이 스르르, 인간의 눈으로 돌아갔다. 믿기 힘든 현상에 현욱은 혼란스러웠다.

“저는 형사님이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내가 아니라, 선우를 찾아 여기까지 온 거라면…… 당신이라는 인간한테 정말 실망할 것 같은데, 어느 쪽이에요?”

지금의 대화로 현욱은 놈에 대해 한 가지만은 확실히 파악했다. 놈은 이선우를 특별하게 여겼다. 마치 사랑하는 사이라는 듯, 현욱은 그 둘을 방해하는 걸림돌이라는 듯, 지껄이고 있었다. 현욱은 그 점이 참을 수 없었다.

“이선우가 너 같은 거랑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놈이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모니터를 현욱 쪽으로 돌렸다. 모니터엔 고화질의 CCTV 화면이 실시간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햇살이 잔뜩 드리운 넓은 거실 창문 너머로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이 보이는 고급 주택의 풍경이었다.

그림 같은 거실 한쪽에 작은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안락의자에 길게 누워 앉은 사람이 차를 마시며 책을 보고 있었다. 부릅뜬 현욱의 시선이 꼼꼼히 그를 더듬었다.

“눈이…… 보이는 거야?”

화면 속의 이선우는 맨눈으로 책을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해 보였다.

“이만하면 충분히 설명됐겠죠.”

놈은 모니터 화면을 다시 돌려 버렸다.

저게 진짜일까? 조작된 영상이라면?

현욱의 이성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부정했다. 그러나 화면 속 이선우는 현욱이 보고 싶었던 모습으로 존재했다. 아마도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없으리란 걸 안 현욱은 고개를 떨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놈의 손아귀에 있는 이선우를 보고 안도해 버렸다.

“……너 같은 놈들이 더 있나?”

“얼마든지 있죠. 형사님이 더 잘 알지 않나요?”

놈의 말장난에 고개를 치켜든 현욱이 버럭 소리쳤다.

“내가 묻는 건…!”

어느새 소리도 없이 코앞에 다가온 놈은 한수혁이 아닌 제 본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신을 찍어 누르는 위압감에 현욱은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

“형사님께 진 빚이 있으니 한 번 더 드리는 기회예요. 다 잊고 지금까지처럼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든지, 여기서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든지.”

현욱은 대답할 생각도 못 하고 마른침만 삼켰다. 저를 내려다보는 새까만 이형의 눈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피식자의 공포는 늘 포식자였던 현욱에겐 낯선 감정이었다.

“잘 생각하세요. 세상엔 형사님 같은 사람이 하나라도 더 필요하잖아요.”

가슴이 서늘해졌다. 자비를 가장한 살기가 금방이라도 그를 찌를 듯 심장을 겨누고 있음이 피부로 느껴졌다. 이길 수 없다. 현욱은 참담한 패배감을 씹어 삼키며 시선을 피했다. 약속한 대로 살벌한 기세는 점점 멀어져 갔다. 아마도 놈이 자신을 순순히 놓아주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터이다. 문고리를 돌려 도망치는 현욱에게 놈은 여유롭게 웃으면서 지껄였다.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요. 형사님.”

장 형사가 진료실을 나가고 나비는 핸드폰을 들었다. 연결 음이 몇 번 반복되자 화면 속 선우가 제 핸드폰을 확인했다.

―나비야.

언제 들어도 듣기 좋은 울림이다.

“무슨 책 읽고 있어?”

선우가 카메라를 향해 책을 들어 보였다. 얼마 전 선우의 부탁으로 사다 준 육아에 관한 책이었다.

―나 구경할 시간 있으면 일이나 하지?

“일하고 있잖아. 이선우 환자 감시.”

어이없다는 듯 웃던 선우가 문득 배를 덮은 얇은 담요를 걷어 냈다.

근래 들어 급속도로 부풀어 오른 배 때문에 선우의 몸 상태가 좋지 못했다. 걱정과 다르게 선우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믿기지 않는지 화장실에 숨어서 자기 배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 보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긴 했지만.

아무튼, 인간 남성의 몸으로는 부자연스러운 현상을 겪으면서도 선우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따금 저도 모르게 배를 감싸거나 불편한 듯 뒤척이는 몸짓에서 어쩔 수 없이 티가 났다.

“왜 그래. 아파?”

걱정이 잔뜩 묻어난 물음에 선우는 순간적으로 배에 몰렸던 신경을, 절 찍고 있는 카메라로 돌렸다. 그런데도 배 안에서 무언가 움직임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아랫입술을 깨물며 선우는 핸드폰에 대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니……. 느낌이 달라. 이번엔 정말 달라.”

배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비가 설명해 주었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하루하루 배가 불러 올 때마다 설렜다. 이건 우리의 사랑의 결실이었으니까.

―사랑해. 선우야.

반사적으로 목구멍까지 나온 ‘나도 사랑해.’라는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나비는 선우와의 약속을 지켜 냈다. 이젠 선우가 보여 줄 차례였다. 그래서 요즘엔 나비를 풀어 주는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나비의 고백을 감상하며 꽃이 핀 정원으로 시선을 보냈다. 잘 먹어 뼈대까지 굵어진 듯한 검둥이가 신이 나서 정원 흙을 파헤치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나비와 검둥이 사이에 또 한 차례 벌어질 신경전을 떠올리자 큭, 웃음이 샜다. 그 소리를 들은 나비가 물었다.

―왜 웃어?

“……그냥.”

―전화 안 끊을 테니까 뭐든 들려줘. 웃음소리든, 숨소리든.

통화를 연결해 두고 일하는 나비의 목소리가 음악처럼 집 안에 울렸다. 넘치는 만족감이 가슴에 뿌듯하게 차오른다. 생전 처음 가져 보는 가족의 집이란 혼자 있어도 전혀 외롭지 않은 곳이었다. 충만한 안락함 속에서 선우는 눈을 감고, 배를 쓰다듬었다.

행복했다. 곧 우리가 이보다 더 완전해질 수 있단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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