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10/12)

완전한 사육

저 멀리 교회가 불타고 있었다.

“아니야……. 안 돼.”

나비라면 무사히 피했을 거다. 저 안에 있을 리가 없어.

불처럼 번지는 불안을 밟아 죽이며 활활 타오르는 교회를 향해 달려갔다. 교회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사람 키만큼 자란 불길 탓에 경찰들이 접근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매캐한 연기 때문에 나비의 냄새를 전혀 맡을 수가 없어 나는 다급히 교회 바깥을 눈으로 훑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나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렇게나 주차된 경찰차 안까지 살폈지만, 나비는 없었다.

“아니야……. 아니지…?”

믿을 수 없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려 경찰차에 기대 겨우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들여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 교회에서는 새빨간 불티가 쉴새 없이 눈처럼 흩날렸다.

“소방차는?! 씨발, 일 커지면 안 되는데! 웬 정신병자 새끼들 때문에…!”

교회 입구 앞에서 한 경찰이 소리쳤다. 나는 덜덜 떨며 화염을 토해 내는 교회 입구로 다가갔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벼랑으로 추락하듯 몸이 휘청거렸다. 맹렬한 불길이 무자비한 괴물의 혀처럼 교회를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그 새빨간 주둥이 한가운데에 동생의 모습을 한 나비가 서 있었다.

“나비야!”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도 나비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날 바라보기만 했다. 내게 뭐라고 말을 하듯 입술이 움직였으나 열기에 대기가 일그러져 알아볼 수가 없었다. 저기서 꺼내야 했다. 저 바보가 왜 가만히 불 속에 서 있는지 몰라도 끌어내야 했다! 경찰들이 교회로 뛰어드는 내 사지를 붙들었다.

“지금 들어가면 죽어요! 잡아! 얼른!”

나는 몸부림쳤다. 잡힌 팔다리를 뜯어내고서라도 나비를 구해야만 했다. 내가 아니면, 내가 아니면 나비를 구해 줄 사람이 없었다.

“놔! 이거 놓으라고! 제발! 나비야, 나비야!”

화르륵.

갑자기 몸집을 불린 불길이 나비를 완전히 삼키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눈앞이 새빨갛게 변하며 달궈진 쇠몽둥이로 맞은 것 같은 뜨거운 격통이 얼굴을 덮쳤다.

“으악!”

쏟아진 화염에 혼비백산한 경찰들이 나를 놔주었으나 바닥에 넘어진 나는 더 이상 나비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나비를 부르며 바닥을 더듬거렸다. 내 목소리를 듣고 나비가 불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계속 나비를 불렀다.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머리 위에서 우지끈, 하고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뿐이었다.

“피해! 무너진다!”

누군가가 나를 마구 끌어당겼다. 우르릉, 굉음과 함께 발밑이 진동했다. 새까만 어둠 속에서 교회가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나비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을.

바로 눈앞에서 나비를 또 잃었다는 것을.

∞ ∞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었고, 얼굴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얼이 빠진 내게 의사는 화기에 눈을 데 시력 회복이 어려울 거라고 말했다. 내가 궁금한 건 그딴 게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묻지 않아도, 눈이 보이지 않아도, 내 주변에 나비가 없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병원과 경찰에서는 내게 슬퍼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한시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모두가 나를 샅샅이 검사하려 들었다. 나는 그 일에 대한 진술은 물론, 모든 치료를 거부했다. 이미 인간에서 멀어진 내 신체를 들킬까 두려웠다. 누군가 내게 닿기만 해도 발악을 했다.

식사도, 약도 거부하다가 의식을 잃고 다시 깨어났을 땐, 약에 취해 몸도 정신도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숨만 붙은 시체처럼 누워 지냈다.

그리고 어느 날, 장 형사가 찾아왔다.

장 형사는 내가 온전히 피해자 신분이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내가 모르는 그 날의 정황과 현재 사태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수사를 공개로 전환한 날 새벽, 나와 나비가 지내던 마을에서 이선호를 목격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한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의 말에 따르면 마을로 통하는 유일한 길목에 난 좁은 다리 때문에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화재 진압이 늦었고, 교회 뒤편의 산까지 타들어 갈 즈음에서야 부랴부랴 소방 헬기가 투입되었지만, 그때는 잿더미만 남아 사망자들의 신원조차 알아보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했다.

사건은 오랫동안 중증 우울증 치료를 받아 온 동생의 단독 범행으로 일단락됐다.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 두 명이 똑같이 이선호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불타는 교회 안에서 피를 뒤집어쓴 동생을 목격했다. 나는 그제야 나비가 왜 불 속에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었던 거였다. 나 때문에. 나를 지켜야 했으니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장 형사의 말이 끝나고 나는 가슴을 움켜쥐고 목놓아 울었다. 모든 게 후회스러웠다.

장 형사는 침대에 엎어져 우는 내 어깨를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뺨으로 장 형사의 격양된 호흡이 와 닿았다.

“이선우. 사실대로 말해. 그거 사람 아니지.”

장 형사는 다른 이들과 다르게 이 사건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연기처럼 증발했다는 사실을 짐작했을 것이다. 나비가 동생으로 변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으니까. 장 형사는 진짜 범인이 누군지 안다. 그런데도 사건이 나비의 계획대로 마무리되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장 형사의 질문에 미친 놈처럼 울면서 웃었다. 장 형사가 그런 나를 다그쳤다.

“정말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을 겁니까?! 현장에서 내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십자가 아래에 타 죽은 흔적이 남아 있는 걸. 이제 다 끝났다고.”

“십자가…?”

“현장에서 경찰이 교회 안에 있던 이선호가 무너지는 십자가에 깔리는 장면을 봤습니다.”

“아냐……. 아니야! 우윽…!”

장 형사를 밀어냈다. 장 형사가 말한 나비의 마지막 장면이 머릿속에 펼쳐지자 오열인지 구토인지 모를 구역질이 치밀었다. 날 속여서 내가 불게 만들려고 장 형사가 거짓말을 하는 게 분명했다. 나는 간호사를 부르는 장 형사를 다시 붙들었다.

“사람이 아니면.”

장 형사의 시선이 내게 닿아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그만하실 건가요?”

“……그만?”

선명히 느껴지는 장 형사의 기척을 직시했다. 나는 토해 내듯 말했다.

“그래. 당신이 하는 일은 사람 잡는 일이잖아. 이럴 시간에 가서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새끼들이나 잡으라고! 발에 채고도 남을 정도로 썩어 넘치니까!”

“……내가,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압니까? 열흘 동안 미친 개새끼처럼 당신 흔적만 쫓아다녔어. 내가 늦으면 혹시라도 당신이…… 씨발.”

낮게 욕을 뱉은 장 형사가 내 손을 뿌리쳤다.

“병원에서 뭐 하시는 거예요! 환자분 절대 안정 취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만 돌아가 주세요.”

간호사들이 병실에 들이닥쳐 장 형사를 끌어냈다. 티브이에서 들려오는 뉴스 속보에 웅성거리던 병실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던 속초 펜션 일가족 살인 사건의 범인이 사건 피해자 이 씨의 아들 중 한 명인 이선호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수사 초기 함께 용의자로 지목되었던 이 씨의 또 다른 아들, 이선우 씨는 도주하던 범인, 이선호에게 납치, 감금을 당한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수사 결과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범인이 숨어 있던 시골 마을의 한 주민이 공개 수배를 보고 신고하면서 바로 지역 경찰이 현장으로 출동했으나 범인 이선호는 이미 사망한 뒤였습니다.』

뉴스의 내용은 장 형사의 말과 일치했다. 점점 숨이 가빠졌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귀를 막았다.

다 끝났다고……? 아니. 나비는 안 죽었어. 나비가 나를 두고 죽었을 리 없어. 끝까지 내 곁에 있겠다고 약속했어. 나에게 돌아올 거야. 분명히…… 돌아올 거라고.

내가 기다리는 한 나비는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러지 않으면 죽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 ∞ ∞

“붕대를 갈아 드릴 때마다 상태를 확인하려고는 하는데, 눈 뜨기를 아예 거부하세요.”

며칠 뒤, 다시 이선우의 병원을 찾아간 현욱에게 간호사는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전형적 PTSD 증상과 더불어 범인이 친동생이었던 만큼 스톡홀름 증후군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을 현욱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진실을 알아도 증거가 없었다. 끝까지 사건 종결에 반발하던 현욱은 이미 3개월 정직을 먹은 상태였고 이선우를 위해 현욱이 할 수 있는 일이 더는 남아 있지 않았다.

병실에 가 보니 눈도 보이지 않으면서 이선우는 창가에 서서 쌀쌀한 가을바람을 맞고 있었다. 멀리 내던진 시선은 마치 지그시 어딘가를 응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 서서 뭐 하는 겁니까. 마지막 잎새라도 찍어요?”

농담처럼 건넸지만 실은 불안했다. 이선우는 말라비틀어져 추락만을 앞둔 낙엽 같았다. 현욱은 이선우의 곁으로 가 창문을 닫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멍하니 서 있는 이선우의 어깨를 감싸 침대로 옮겼다. 이선우는 얌전히 현욱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뭐 좀 마실래요? 이것저것 사 왔는데.”

혼자 머쓱해진 현욱은 과일 음료가 종류별로 든 상자를 열었다.

“다리는 괜찮은가 보네요.”

펜션에서 봤을 땐 일어서지도 못할 정도로 상처가 깊어 보였는데 침대 위로 몸을 올리는 선우의 움직임은 불편함 없이 자연스러웠다. 현욱은 당근 주스를 한 병 까서 이선우의 손이 닿을 만한 작은 탁자에 올려 두었다.

침대에 누운 이선우가 이불자락을 더듬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욱은 대신 이불을 끌어 올려 주었다. 누군가를 이런 식으로 챙겨 본 적이 없는지라 손짓에 어색함이 그대로 드러나 잠깐이지만 이선우의 눈이 보이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살짝 스친 이선우의 손이 찼다.

“그러니까 창문 앞엔 왜….”

“이래 봤자 소용없어요.”

단호한 어투에 현욱의 말꼬리가 뚝 끊겼다.

“난 아무 말도 안 할 거니까.”

“그래서 오는 거 아닙니다.”

“……그럼. 내가 자살이라도 할까 봐 걱정돼요?”

현욱은 자살이라는 말을 가볍게 입에 담는 이선우를 노려봤다. 아니라는 부정은 할 수 없었다.

“나 죽을 걱정이면 안 해도 돼요. 그냥 겨울을 별로 안 좋아해서 조용히 보내고 싶어서 그러니까, 나 좀 내버려 둬 주세요, 제발.”

“……왜 싫어합니까. 겨울.”

“하아…… 형사님.”

이선우는 피곤하고 귀찮다는 티를 숨기지 않았다. 얼굴 절반을 가린 붕대 아래로도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훤히 보였다. 현욱은 그답지 않게 이선우의 행동에 발끈했다.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말들이 와르르 쏟아졌다.

“올겨울만 눈 딱 감고 나랑 있어 봅시다. 좋아지진 않아도, 생각만큼 싫진 않을지 누가 압니까? 손해 볼 것도 없잖습니까.”

다 지껄여 놓고 막상 현욱은 물을 엎지른 기분에 얼어붙었다. 당황스러웠다. 현욱은 일자로 다물린 이선우의 입술을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입술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대신 이선우가 손을 옆으로 뻗었다. 현욱은 이선우가 자신을 때릴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옆으로 뻗어진 이선우의 손은 활짝 열려 있던 침대 커튼을 움켜쥐어 당겼다. 차르륵, 커튼 레일을 굴러가는 바퀴 소리에 흠칫 놀란 현욱의 멱살이 잡혀 내려갔다.

“읍…!”

현욱의 목덜미가 뻣뻣하게 굳어졌다. 미지근하고 부드러운 살덩이가 입술에 닿았다는 걸 깨달은 순간, 뾰족한 혀끝이 현욱의 입술 사이를 비집으며 침범했다.

떼어 내야 할지, 끌어안아야 할지, 현욱은 판단이 되지 않았다. 다만 처음으로 자신이 겁쟁이임을 알았다. 거침없는 혀가 그런 현욱을 놀리듯 깊게 파고들며 입천장을 찔렀다. 핏대를 잔뜩 세우고 허공에서 방황하던 현욱의 손이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선우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현욱의 몸이 강한 중력에 이끌리듯 앞으로 기울어졌다. 현욱의 힘에 밀려 이선우의 등이 침대에 풀썩 떨어졌다. 둘의 입술 사이로 격정적인 혀가 오고 갔다. 병실의 소음이 멀어졌다. 현욱의 머릿속에서 현실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현욱은 의식적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던 이선우의 목덜미와 허리에 손을 댔다. 닿으면 닿을수록 더 원했다. 움찔 몸을 떤 이선우가 입술 사이로 달뜬 숨을 뱉었다.

“흐읍… 나비야.”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현욱이 벌떡 몸을 세웠다. 입술은 열기로 후끈했고, 숨은 볼품없이 가빴다. 현욱의 손길에 헝클어진 그대로 이선우는 인상을 찌푸리는 현욱을 향해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붕대가 감긴 이선우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표정을 만들어 내는 입술이 젖어 추잡하게 반짝였다.

“……손해예요. 해 봤어요. 다시는 시도해 볼 생각도 안 들 만큼 손해더라고요.”

당황한 현욱은 이선우가 한 말이 머리에 닿기도 전에 황급히 커튼을 홱 걷고 이선우가 만든 밀실에서 도망쳤다. 병실 사람들이 다급히 튀어나온 현욱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피가 식는다. 겨우 한 겹의 커튼 안에서…… 정신을 놓아 버렸다.

병실을 나서며 현욱은 알았다. 이건 이선우의 경고라는 걸. 어쭙잖은 감정으로 함부로 다가오지 말라는 경고.

병원 바깥의 흡연 부스에서 현욱은 담배를 태웠다. 아까 느꼈던 강렬한 감각을 씁쓸한 연기로 지우려 연달아 세 개비를 피웠다. 담뱃불처럼 타들어 가는 초조함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평생 있는 줄도 몰랐던 선을 한순간에 손바닥 뒤집듯 넘어 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인가, 아니면 후회인가.

보름 만에 마주한 이선우는 후 불면 사라질 듯 초췌했다. 그런데도 이선우의 주변에만 강력한 중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현욱은 이선우에게 끌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처음에는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이선우가 살아 돌아온 데에 대한 안도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엔, 이선우의 말마따나 그가 현욱의 아버지처럼 예고도 없이 삶을 포기해 버릴까 불안해서 눈을 뗄 수 없는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방금의 행동은 어떤 변명도 가져다 붙일 수가 없었다.

어쨌든 먼저 저를 끌어들인 건 이선우였다. 섣불리 다가간 것은 자신이지만.

‘사과하는 것도 웃기고.’

현욱은 재떨이에 담배를 지져 끄며 간신히 열기가 가신 입술을 쓸었다.

‘문밖에서 마지막으로 얼굴만 보고 가자.’

타고 남은 건 죄책감도 후회도 아닌 미련인가 보았다.

“환자분! 진정하세요!”

“안정제 놓습니다. 꽉 잡아 주세요!”

잠깐 사이에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현욱은 302호 앞에서 잠시 아연했다.

간호사 여럿이 침대 위에서 난동을 부리는 이선우의 사지를 제압하고 있었다. 링거를 통해 주입된 약물에 움직임이 잦아들자 이선우의 턱과 환자복 가슴에 선명한 핏방울이 눈에 띄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이 피는 다 뭐고.”

현욱은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려 했지만 누가 들어도 날이 선 음성이 튀어 나갔다. 간호사가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환자분이 간호사 귀를 물어뜯었어요.”

현욱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조용히 있고 싶다던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일을 벌였을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다 죽어 가던 이선우가 약에 취해 병든 닭마냥 늘어진 모습을 보고 현욱은 주먹을 쥐어 치미는 분노를 억눌렀다.

“지금 어딨습니까. 그 간호사.”

간호사가 말해 준 처치실로 가자 침대에 걸터앉은 문제의 간호사가 의사에게 귀를 내보이고 있었다. 의사는 상처가 꿰맬 정도로 깊지는 않다며 소독을 한 뒤, 거즈로 귀를 감싸는 간단한 처치를 하고 돌아갔다.

다친 간호사가 현욱을 발견하고 알은체를 했다. 현욱도 기억이 있는 간호사였다. 드물게도 남자였기 때문이다. 남자 간호사가 물렸다는 귀를 만지작거리며 멋쩍게 웃었다.

“이거 때문에 오셨어요? 전 괜찮아요. 그 환자분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닌데…….”

“쌤. 너무 착하신 거 아니에요?”

곁에서 속상하다며 울상을 짓는 여자 간호사에게 현욱은 잠시만 자리를 비켜 달라고 부탁했다. 둘만 남게 되자 남자 간호사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전 진짜 괜찮은데…….”

현욱은 처치실 문을 닫고 혹시 다른 사람이 있는지를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둘뿐임을 확인한 현욱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남자 간호사에게 꽂혔다.

“이선우가 갑자기 당신 귀를 물었다고? 아무 이유도 없이.”

“예?”

별안간 돌변한 현욱의 태도에 남자 간호사가 적잖이 긴장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아…… 네. 그 사건 충격 때문인지 정신이 부, 불안정하셔서 가끔 헛소리도 하시고 그래요.”

현욱은 간호사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두 눈동자가 현욱을 마주 보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허벅지 위에 올려 둔 손은 어느새 안으로 잔뜩 말려 있었다.

‘거짓말이다.’

현욱은 얄팍한 거짓을 금세 간파했다. 사건의 그림이 대강 그려졌다.

마땅히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놈의 자백을 끌어내려면 머리싸움이 필요했다. 그다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으나 장소가 병원인 만큼 경찰서에서 하듯 물리력을 행사하다가 자칫 소란이라도 일어나면 현욱이 더 불리해졌다. 현욱은 남자 간호사에게 태연한 투로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압니까?”

“네? 그럼요. 이선우 환자분 사건 담당 형사셨다고 다들 알고 있죠.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내가…….”

현욱이 인상을 쓰고 한숨을 내쉬자 남자 간호사가 현욱의 숨에 찔리기라도 한 듯이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 한숨은 위협이나 연기가 아닌 차마 떨어지지 않는 단어를 뱉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현욱은 혹시라도 더듬지 않도록 망설이지 않고 한 호흡에 말을 내뱉었다.

“내가 이선우 애인이란 건 몰랐나 보죠.”

“예…?”

“어느 형사가 다 끝난 사건의 피해자 병문안을 밥 먹듯이 드나듭니까?”

“……그, 전… 저는 모, 몰랐…….”

놈은 지나치게 당황해 어쩔 줄을 몰랐다. 현욱이 한 발짝 다가가자 놈이 펄쩍 침대에서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현욱이 쏘아 보내는 무언의 압박에도 놈은 땀만 삐질삐질 댈 뿐 제대로 진술하지 않았다.

‘지가 유리하단 걸 아는 거지. 약아빠진 놈.’

“그럼 이건.”

현욱은 바지 주머니를 뒤져 잡히는 걸 꺼냈다. 100% 즉흥적인 행동이었다.

“이건 뭔지 알겠어?”

놈은 불안한 듯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선우 침대 옆에 놔뒀던 초소형 카메라야. 내가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걱정이 좀 많아서 말이지. 아직 확인 못 했는데, 어떻게…… 같이 볼까?”

눈을 빠르게 끔뻑이던 놈은 대뜸 무릎을 꿇고 어린애처럼 손바닥을 마주 비벼 댔다.

“하, 한 번, 한 번만 봐주세요! 전 좀 만지기만 했어요. 지인짜. 진짜예요, 형사님. 형사님도 아시잖아요. 워낙 특이한 분이셔서 단순한 호기심에 그랬어요. 나쁜 생각은 하나도 없었어요.”

‘특이한 분.’ 사이코패스 살인마인 이선호가 굳이 형인 이선우를 납치하고 감금했다는,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뉴스 보도는 인터넷상에선 아주 맛 좋은 떡밥일 뿐이었다. 몰려든 물고기들이 수많은 루머들을 만들어 냈다. 둘 사이가 이복형제라는 사실이 퍼지면서 이선우가 동생 이선호에게 성적 폭력을 당한 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고 이 사건에 관심이 있는 대중들에겐 기정사실화됐다.

현욱은 끔찍한 범행이 자극적인 이야깃거리가 되는, 막을 수 없는 흐름이 역겨웠다. 사실이 아니어도, 사실이어도 피해자인 이선우에겐 비극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진실은 현욱도 밝혀내지 못했다. 이선우가 모든 검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의료진이 자신의 몸에 손을 대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그 행동이 더더욱 익명에 숨어 시시덕거리던 이런 놈의 역겨운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방금 놈에게 한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면 당장 수갑을 채우고 유치장에 집어넣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경찰이라는 것만 빼고 다 거짓말이었다. 현욱은 얼른 당근 주스의 뚜껑을 손안으로 감췄다.

“일 크게 만들기 싫으면 알아서 조용히 꺼져. 다시는 이선우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고. 혹시 어디서 이 일에 관한 얘기라도 들리면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란 건 알고 있겠지?”

“네, 네. 그럴게요, 그럴게요. 형사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현욱은 이마를 바닥에 찧을 듯 머리를 조아리는 놈을 두고 나왔다. 경찰이면서 이런 일도 해결 못 하는 저 자신에게 화가 났다. 혐오감이 부글부글 끓었다.

“씨발!”

현욱은 애꿎은 벽에 주먹질했다. 놈의 파렴치한 짓거리를 곧바로 유추해 낼 수 있었던 건, 현욱도 이선우에게서 똑같은 유혹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현욱은 그 이후로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이선우는 일 인실로 병실을 옮겼고 그 남자 간호사가 병원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감당할 자신이 없었으므로 현욱은 전화로만 보고를 받았다.

병원에서의 전화는 점점 드물어졌고, 시간은 흘러 현욱의 정직이 끝났다.

―장 선배.

전화를 받자마자 후배의 무거운 목소리가 넘어왔다. 그러지 않아도 쉬는 날에 걸려 온 전화란 대부분 좋은 징조가 아니었기에 막 샤워를 하고 나온 현욱은 한 손으로 머리를 털던 수건을 어깨에 걸치고 통화에 집중했다.

“뭔데.”

―그…… 있잖아요. 찝찝한 신고가 하나 들어왔는데요…….

서론이 길었다. 간단한 통화가 아님을 알고 물기를 뚝뚝 흘리며 소파에 앉아 담배를 끌어왔다.

―선배 ‘그 병원’ 계속 왔다 갔다 하셨죠?

이선우의 병원을 말하는 거였다. 이선우를 보러 가지 않은 지 3개월 넘게 지났지만, 병원에서도 이렇다 할 연락은 없었다. 그러나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 현욱은 24시간 정신력의 20%쯤을 이선우에게 낭비했다. 그런데 별안간 후배가 이선우에 관련된 일을 언급하려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목이 타는 갈증을 느낀 현욱은 후배를 재촉했다.

“날 다 간다. 빨리빨리 말해.”

―3개월 전에 그 병원에서 퇴직한 남자 간호사 실종 신고가…….

“뭐? 실종?”

이선우와 관련된 사람, 그것도 더럽게 얽힌 사람의 실종이라면 범인은 한 사람, 아니 그놈밖에 없었다. 짜릿한 전율이 끼쳐 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지?’

이 일은 현욱과 당사자밖에 모르는 일이었다. 이선우조차도 모르는 일.

현욱은 전화를 끊고 젖은 몸에 그대로 검은 목티를 꿰입었다. 급하게 외투를 챙기고 차 키를 집어 들었다.

다급히 찾아간 병원엔 이선우가 없었다. 현욱을 알아본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이선우 환자분 어제 퇴원하셨는데요?”

퇴원이라니. 보호자도 없이 눈도 안 보이는 이선우가 어떻게.

현욱의 표정을 읽은 간호사가 눈을 굴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 뭐라더라. 이선우 환자분의, 아버지의, 제자라는 분이 찾아오셔서요. 원래는 안 되는데 이선우 씨는 특이 케이스니까 퇴원 수속 밟아 드렸어요.”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현욱은 의미 없다는 걸 알면서도 비어 버린 이선우의 병실로 갔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이선우의 흔적 하나 남지 않은 병실 창문 밖으로 눈송이가 날렸다. 병원 주변에 심어진 정원수마다 휘황찬란한 반짝이가 걸려 있고 몇몇 의료진들은 빨간 산타 모자를 쓰고 있었다. 현욱은 그제야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 ∞

일 인실로 옮겨지고 난 후엔 매일 밤, 나비를 위해 병실의 창문을 열어 두었다. 4층이라고 들었지만, 나비라면 무리 없는 높이일 것이다.

병원에서 나는 계속 나비를 기다렸다. 나비를 기다리기 위해 살았다.

하지만 나비보다 먼저 겨울이 왔다. 겨울은 친히 병실까지 눈이 보이지 않는 나를 찾아와 내게 자신이 왔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 줬다. 이 춥고 외로운 계절을 혼자서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이미 붕대에 가려진 눈을 더 깊이 감고 죽은 듯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나비가 없는 현실 같은 건 살고 싶지 않았다.

오늘도 가혹한 겨울이 텅 빈 병실에 찬바람을 가득 채웠다.

‘뛰어내려. 그냥 콱 뛰어내려.’

웅웅거리는 바람을 타고 그것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를 단념시키려고만 하는 환청을 피해 꿈속으로 도망쳤다.

잠자는 내 곁을 나비가 지키는 꿈이다. 누구도 움직이지 않고, 손을 잡은 채로 시간은 세상이 고장 나기라도 한 것처럼 아주 느리게 흐른다. 천천히 해가 지고, 해가 뜨고, 나는 평화로운 나와 나비의 공간을 그저 지켜본다. 그러나 이내 깨닫는다. 그건 어디까지나 꿈일 뿐이라는 걸.

타닥타닥.

나비를 앗아 간 뜨거운 불길이 내 꿈마저 잡아먹으려 했다. 허둥지둥 눈을 떴다. 시큰한 통증이 느껴질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꿈에서 깼다는 걸 몸에 인지시키려 상체를 일으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양 어둠 속에서 누군가 날 불렀다.

‘선우야.’

휘잉, 머리를 뒤흔드는 차가운 바람에 실낱같은 속삭임이 섞여 있다. 시리지만 부드러운, 나비가 나를 부를 때 내던 향기가 코를 스쳤다. 내가 아직 꿈속인 걸까?

나는 다급히 머리에 감긴 붕대를 뜯어냈다. 너무 오랫동안 감고 있었던 탓인지 탁한 수면 아래를 들여다보는 듯한 희뿌연 시야가 열렸다. 밤바다의 파도처럼 커튼이 물결치듯 움직이는 고요한 병실 어딘가에 뭔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나는 불투명한 시야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나비야.”

목소리가 떨렸다.

“나비야.”

애타게 목소리를 높였다.

“나비야…!”

나비가 나를 찾아올 수 있게.

갑자기 침대 커튼이 차르륵 소리를 내며 닫혔다. 나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바람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침대를 둘러싸며 닫힌 커튼 탓에 시야가 한층 어두워졌다. 차갑게 식어 버석거리는 이불을 움켜쥐며 다시 한번 나비를 불렀다.

“나비…….”

그 순간, 누군가 침대 밑 어둠에 끈을 매어 끌어 올리는 것처럼 커튼 너머로 바닥에서부터 그림자가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소리 없이 커지는 그림자가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아져 내 고개도 따라서 들렸다.

거대하고, 가늘고, 기이한 형태의 그림자가 고요히 바람에 일렁였다.

불안해하지 말라는 듯이 익숙한 향기가 조심스레 병실 안에 퍼졌다. 몰아치는 바람도 그 우월한 향기를 지우지 못했다. 나는 환희에 떨며 커튼 너머의 나비에게 말을 걸었다.

“기다렸어.”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두려워할까 봐 겁을 먹고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는 나비를 달랬다.

“놀라지 않을게. 가까이 와도 돼.”

아주 조금씩 물이 번지듯 그림자가 범위를 넓혔다. 커튼을 향해 손을 뻗자 얇은 커튼을 걷으며 하얗고 긴 것이 천천히 들어왔다. 흐린 시야 대신 손으로 더듬어 단단하고 매끄럽고 차가운 그것의 형태를 가늠했다. 부드럽게 휜 곡선 형태의 그것은 한쪽 면에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나 있었다. 나비의 다리다.

“다쳤구나.”

표면이 군데군데 울퉁불퉁하고 탄내가 났다. 그 뜨거운 불 속에서 얼마나 아팠을까. 먹먹한 가슴으로 뾰족한 다리 끝에 입을 맞췄다.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몸으로 여기까지 오다니 무모했다.

“바보야. 들키면 어쩌려고.”

나비의 다리가 내 목과 가슴을 가볍게 스쳤다. 다른 사람이 함부로 닿았던 자리를 나비가 알아보았다. 달라진 향기가 일렁이며 비강에 스며들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향기다.

“내가 걱정됐어?”

치르릇.

동의하듯 커튼 밖에서 나비가 가냘픈 날개를 떨었다. 이런 와중에도 나밖에 모르는 나비가 사랑스러웠다. 나비가 앞다리 끝을 내 등에 걸치고 약한 힘으로 툭툭 잡아당겼다. 누우라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나비가 하라는 대로 몸을 뒤집어 누웠다.

스슥스슥.

등 뒤에서 커튼이 어딘가에 스치는 소리가 나며 주위에 무거운 어둠이 내려앉았다. 가시돌기가 돋은 다리가 골반을 약하게 할퀴며 헐렁한 환자복 바지를 끌어 내렸다. 나는 나비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아차렸다. 그러자 전신의 피부가 따끔해지면서 내 몸에서 무언가 퍼져 나갔다. 어렴풋이 내 냄새가 공기 중에 있는 나비의 냄새와 섞이고 있음이 느껴졌다. 처음 느껴 보는 기묘한 감각이었다. 내 몸 안에서 나도 모르던 어떤 버튼이 눌린 것처럼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전신이 뜨거워진다. 내 몸이 나비를 강렬하게 원했다.

“하아…… 나비야.”

거대한 나비의 몸체가 침대 위로 올라오며 매트리스가 삐걱댔다. 여러 개의 다리가 타닷타닷, 침대 모서리에 걸렸다.

“헉…….”

나비가 두툼하고 거칠거칠한 배에 무게를 실어 내 등허리를 지그시 눌렀다. 벌어진 허벅지 안으로 동그랗게 말린 끝이 파고든다. 나비의 꼬리가 엉덩이 사이를 밀어 벌리며 구멍을 찾았다. 간지럽고 따끔거리는 낯선 감각에 덜컥 겁이 났다.

이래도 괜찮은 걸까? 그러나 의식과 몸이 분리된 것처럼 기계적인 흥분이 끓어올랐고 구멍은 이미 젖고 있었다. 내 뒤에 있는 건 괴물이 아닌 나비였다. 나비가 내게 해를 끼칠 리 없었으므로 나는 금방 생각을 바꾸고 긴장을 풀었다.

건조하고 까끌까끌한 꼬리 끝의 외골격이 벌어지며 그 안에서 튀어나온 무르고 축축한 나비의 생식기가 꾸역꾸역 젖은 구멍으로 기어들어 오기 시작했다. 나비는 꼬리를 움찔거리며 내 안으로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흐윽…….”

기분이 이상했다. 야릇한 향기와 배 속을 핥는 듯한 생소한 감각이 내가 느낄 수 있는 나비의 전부였다. 나비의 교미는 거친 움직임도, 숨소리도 없는 고요하고 정적인 행위였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홀로 헐떡대던 나는 조심스레 옆에 놓인 나비의 앞다리를 잡았다. 놀란 듯 나비가 다리를 거둬 버렸다.

나비가 보고 싶었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싫지 않다고 말해 주며 하얗고 단단한 피부에 입을 맞춰 주고 안아 주고 싶었다.

고개를 비틀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내 등에 달라붙은 거대하고 새하얀 나비의 본모습이 물그림자처럼 어른거렸다. 나비는 칼날 같은 두 다리를 기도하듯 얌전히 모으고 삼각형의 작은 머리에 박힌 두 개의 검은 눈망울로 한참 높은 곳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다정한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고 생각한 순간, 강렬한 페로몬이 퍼부어졌다.

“아…….”

온몸에 힘이 빠져 베개에 도로 머리를 박았다. 교미는 길었고, 나비가 내 배 속 이곳저곳을 느릿하게 휘젓는 동안 나는 간헐적으로 몸을 떨며 내내 간지러운 미열에 시달렸다.

고요한 시간이 흐르고 푸른 새벽빛이 병실을 비춰 모든 게 조금 더 선명히 보일 때쯤, 교미가 끝났다. 배 안이 무언가로 가득 찼음에도 배가 고팠다. 나른함에 늘어져 있던 나는 내 몸에서 빠져나간 나비가 침대 머리맡 벽을 갉작이며 긁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창밖으로 나가는 나비의 하얗고 투명한 날개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홀로 남아 나비가 긁어 대던 벽을 더듬었다. 여러 개의 파인 직선이 손끝에 걸렸다. 보이지 않아도 읽을 수 있도록 나비가 남겨 놓은 메시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기다려’

나비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나는 수백 수천 번 나비와의 재회를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비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나를 데리러 올지 눈을 감은 채 그려 보았다. 그렇게 나비를 기다리는 나날이 못내 즐거워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3개월 전에 퇴사한 그 쌤 있잖아. 실종됐대.”

복도를 지나가는 작은 목소리가 얼핏 들렸다. 3개월, 벌써 마지막으로 나비를 본 지가 그렇게나 지났나 싶다.

날씨가 좋아 병실 창문을 열어 두어도 그렇게 춥지 않았다. 상쾌한 공기에 머리까지 맑아지는 듯했다. 나는 벗어 둔 환자복을 더듬더듬 개어 침대 위에 올려 뒀다.

“이선우 환자분, 준비 다 하셨어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다가온 간호사가 내 손을 들어 자기 팔을 잡게 하고 길을 안내했다.

“근데 데리러 오신 분은 누구세요? 엄청 멋지시던데.”

“가족이에요.”

“어…… 그래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간호사가 1층 버튼을 눌렀다. 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간호사가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

“아, 맞아. 오늘 생일이시죠? 축하드려요. 하루만 더 있다가 가셨으면 파티라도 해 드리는 건데. 내일 크리스마스라 이벤트도 있거든요.”

간호사는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목소리였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될 얘기였다. 내 생일에 맞춰 데리러 온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마음이 급해 발부터 내딛는 나를 간호사가 잡았다.

“잠시만요. 앞에 사람들이 있어서요.”

조급함에 입안 살을 씹었다. 기다릴 땐 몰랐는데 막상 코앞에 닥치니 일분일초도 견디기 힘들었다. 애끓는 기다림 끝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병원 로비 특유의 소란스러운 공기가 전신을 스쳤다.

“오늘 날씨가 무슨 봄 같아요.”

바깥에 볕이 좋은지 간호사가 감탄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공기 중에서 그리운 냄새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먼저 내게 다가온 것이 있었다.

“어머.”

작게 탄성을 뱉은 간호사가 내 손을 놓쳤다. 내 앞에 선 누군가의 그림자와 싱그러운 장미꽃 향기가 느껴졌다.

“선우야.”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내 이름을 저렇게 다정하게 불러 줄 존재는 이 세상에 하나뿐이었다.

“내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지.”

잠깐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얼마 되지 않는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갔다. 홀로 아픈 시간을 견디고 돌아왔을 나비를 흩날리는 장미 꽃잎과 함께 무작정 끌어안았다.

“이제 아무도 우릴 방해하지 못할 거야.”

나를 마주 끌어안은 나비가 작게 우리 둘만의 비밀을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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