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2화 (6/12)

∞ ∞ ∞

무거운 눈꺼풀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어째서인지 나는 달리는 차 안이었다. 술에 녹은 의식 탓에 통제를 잃은 몸이 쿵, 차창에 머리를 갖다 박았다.

“정신 들어요?”

낮은 목소리가 옆자리에서 들렸다. 본능적으로 더듬거리던 내 손이 기어를 잡은 손을 찾았다. 손등을 겹쳐 잡았다가 흠칫 놀랐다. 닿은 손이 뜨거웠다. 자꾸만 풀어지는 눈가에 힘을 줘 운전석에 앉은 이를 확인했다. 처음 보는 남자에 놀라서 전신이 뻣뻣이 굳었다.

어떻게 된 거지?

“당신…… 누구야?”

“경찰입니다. 집 앞에 쓰러져 있었는데 기억 안 납니까?”

경찰……? 상대를 안심시키려 밝혀 왔을 정체가 내겐 역효과였다. 머리가 깨질 듯 쑤셔 왔다. 기억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지금 경찰과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건 알았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들키지 않게 안전벨트를 풀어냈다.

“내려, 내려 줘요.”

속이 울렁거렸다.

“진정해요. 지금 병….”

“당장 차 세워.”

“병원에 가는 것뿐입니다.”

믿을 수 없었다. 집 안이 엉망이었다. 이 남자도 그 피비린내 나는 풍경을 봤을 거란 생각에 사고가 뒤엉켰다. 내 몸은 쓸모없는 머리를 포기하고 무작정 잠금장치를 풀어 차 문을 벌컥 열었다. 검은 아스팔트가 급류처럼 발아래를 빠르게 지나갔다.

“어어, 뭐 하는 거야! 이런 미친…!”

끼이이익!

차가 급하게 속도를 줄이며 갓길로 방향을 틀었다. 어깻죽지를 붙잡는 손을 털어 내고 속도가 줄어든 틈에 그대로 차에서 몸을 내던졌다. 땅바닥을 몇 번 구르며 부딪힌 어깨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일어나 도보로 달려갔다.

“우욱…!”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무릎이 꺾였다. 누군가 위를 쥐어짜는 것 같은 구토감이 치밀었다. 독한 액체가 목구멍을 난도질하며 솟구쳤다. 이윽고 뜨끈한 아스팔트 위로 핏물 섞인 알코올이 왈칵 쏟아졌다.

“허억… 헉.”

익사 직전 물속에서 건져 내진 때처럼 돌연 모든 감각이 선명해졌다. 차들의 경적이 고막을 찢고, 부러진 쇄골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숨을 들이마시자 산소가 몸에 퍼지며 잃어버렸던 기억이 빠르게 돌아왔다.

“아, 옥상.”

뜨거운 손이 몸을 강제로 일으켰다. 뿌리치려고 몸부림쳤다. 옥상으로 가야 했다.

“놔, 건들지 마. 놓으라고…!”

뒤늦게 기억을 끄집어냈건만 해진 의식은 다시 끊어졌다.

군데군데 칠이 까진 회색 철문 너머가 소란스러웠다. 그에 비하면 내가 있는 두 평 남짓의 공간은 흔한 시계조차 걸려 있지 않아 고요했다. 녹슨 철제 테이블 하나와 같은 재질의 의자 두 개가 전부였다. 나는 그중 안쪽 의자에 앉아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물이 담긴 종이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신이 들었을 때 나를 감시한 듯 보이는 경찰이 두고 간 것이었다.

「장 형사님이 잠시 기다리시라고 하셨습니다.」

저 철문을 닫고 나가면서 경찰은 그렇게 말했다. 긴장으로 입이 말랐다. 연이어 토악질해 댄 터라 목이 탔지만 마실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철문을 봤다. 잠겨 있진 않았다.

도망갈까. 나비가 아직 옥상에 있을까?

사실 옥상으로 기어 올라간 그게 뭔지 정확히 보지 못했다. 그것 역시 거지 같은 환영의 일부였던 걸까? 하지만 벽을 긁던 그 소리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의 팔다리를 손쉽게 잘라 내던 낫처럼 날카로운…… 커다란 곤충의 다리.

도망가려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양 철문이 듣기 싫은 소음을 내며 열렸다. 문에 박혀 있던 시선은 자연스레 들어오는 이에게로 향했다. 아까 전 운전석에 앉아 있던 형사였다. 키가 크고 싸늘한 인상이었다. 한쪽 눈썹을 가로지르는 흉터 탓에 더 그래 보였다.

아마도 그가 장 형사인 모양이었다. 끝이 치켜 올라간 삼백안이 힐끗 내 얼굴을 확인한다. 눈이 마주치자 흉터 진 눈썹과 멀쩡한 눈썹이 서로 어긋나며 사나운 인상을 만들어 냈다.

“술 좀 깼습니까.”

표정과 다르게 감정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무뚝뚝한 어투였다.

“……죄송합니다.”

그냥 주정뱅이 취급을 당하는 편이 나았기에 얌전히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장 형사는 내 맞은편 의자를 끌어 털썩 앉았다. 얇은 비닐 파일이 테이블 위에 던져지듯 놓였다. 그 소리를 끝으로 취조실로 보이는 공간에 묵직한 침묵이 깔렸다. 철문은 거대한 덩치에 가로막혔다. 고개를 숙인 그대로 눈동자만 들어 지금 내게 가장 위협적인 상대를 관찰했다.

테이블 끄트머리에 걸친 투박한 손에는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보여 주듯 오래된 흉터와 얼마 되지 않은 상처가 마구잡이로 얽혀 있었다. 뼈가 불거진 손목과 이어지는 상반신 역시 크고 두꺼웠다. 장 형사는 몸은 내게로 향한 채 고개만 돌려 문 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고개가 다시 내게 돌아오기 전, 시선을 내렸다.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이선우 씨.”

내게 높임말을 쓰고 있지만 낮은 목소리는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그 입에서 나온 내 이름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마치 다 알고 있으니 속일 생각 말라는 경고처럼 들렸다.

장 형사는 테이블에 팔꿈치를 걸치고 검지로 마른 입술을 쓸었다. 망설이는 건가? 장 형사의 미간이 미미하게 구겨진다. 뭔가 아주 많이 거슬려 보였다.

“뭘 찾고 있었습니까? ……나비?”

묻는 음성은 덫을 놓듯 조심스러웠으며 뚫어지게 보는 시선은 집요했다.

“키우던…… 고양이가, 없어져서.”

실수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에 돌처럼 둔해진 혀를 겨우 움직였다. 내 얼굴을 보고 고양이를 키울 것처럼 생겼다던 아래층 남자의 감상이 부디 이 형사에게도 먹히기를 바랐다.

“아…… 고양이.”

모호한 반응으로 장 형사는 입술을 쓸던 손가락을 내려 턱 끝을 쓸다가 두 손을 깍지 껴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그 진동에 종이컵 속 물에 작게 파문이 일었다. 상대의 의중을 알 수 없으니 시선의 움직임, 호흡의 박자, 심지어 혀의 위치 하나하나까지 의식이 되었다.

“그래서 옥상에 가려고 했습니까?”

“……네.”

“확인해 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역시 환영이었던 건가. 실낱같은 희망마저 잘려 나갔다. 긴장으로 솟아 있던 어깨가 처졌다. 하지만 장 형사의 확답에도 이유 모를 찝찝함이 남는 건 왜일까. 창문이 열린 베란다와 아파트 외벽에 긁힌 자국…….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아파트 최근에만 실종 사건이 두 건이나 발생한 건 압니까? 한 명은 그쪽과 같은 동에 사는 주민인데요.”

갑작스러운 직구에 급히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장 형사가 말하는 두 건이라 함은 경찰이 직접 조사 중인 택배 기사와 옆집 노인일 가능성이 제일 컸다. 말하는 걸 보니 죽은 애인이 나와 함께 살았다는 사실이나 아래층 놈이 사라졌단 사실까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아는 사입니까?”

어딘가 수수께끼 같은 질문이다. 유도 신문일까?

“옆집 할머니라면 얼굴 정돈…….”

눈썹을 찌푸린 매서운 표정에 시선이 절로 떨어졌다. 불안한 침묵 속에서 나를 쳐다보는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손이 돌연 비닐 파일을 열어 종이 몇 장을 펼쳤다. 나는 빠르게 그것들을 훑었다. A4 용지에 인쇄된 것은 푸르스름한 CCTV 사진이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두 사람이 앞뒤로 서 있다.

“…….”

허벅지 위에 두었던 주먹을 움켜쥐었다. 흐릿했지만, 몰라볼 정도는 아니었다. 누가 봐도 나와 아래층 남자였다. CCTV에 기록된 날짜는 엊그제 새벽 네 시. 연달아 이어지는 사진은 나와 아래층 남자가 같이 29층에서 내리는 장면으로 끝났다. 너무도 명백한 증거에 눈 밑이 경련했다.

“얼굴만? 이 남자도?”

투박한 검지가 아래층 남자의 얼굴을 툭툭 두드린다. 머리가 멈추고 혀가 얼어붙었다.

“이선우 씨. 이 남자도 압니까?”

깜빡이지 못한 눈이 시큰해졌다. 들켰나? 들키지 않았더라도 꼼짝없이 들킬 위기였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할까?

그래. 도망치자.

여기서 붙잡혔다간 나비를 찾기란 영영 불가능했다. 방심한 틈에 갑자기 달려들면 팔다리 하나쯤은 부러뜨릴 수 있을 거다.

뜨거워진 눈을 들어 위협적인 상대를 마주할 때였다. 장 형사의 등 뒤에 철문이 벌컥 열렸다. 상체만 문 안으로 밀어 넣은 중년의 남자가 나와 장 형사를 번갈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장 형사, 지금 여기서 뭐 해?”

장 형사는 대답도 하지 않고 CCTV 사진을 모아 비닐 파일에 쑤셔 넣었다. 어딘가 급한 손놀림이었다.

“어? 뭔데, 누군데.”

“쯧.”

장 형사가 혀를 차는 소리에 날카로운 이명이 귀를 스쳤다. 중년의 형사는 인상을 팍 쓰며 취조실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급변한 상황에 정신을 붙들려고 볼 안쪽을 세게 깨물었다.

“왜 대답 못 해, 너. 어?”

“택배 기사 실종 사건 아파트 주민입니다.”

“야. 이 사건 끝났어. 과장님이 지시한 거 몰라서 이래?”

과장님의 지시. 그 말이 머리에 박혔다. 장 형사에게 짜증을 내던 중년의 형사가 실수했다는 얼굴로 내 눈치를 힐긋 살핀다. 그러나 이내 들어도 별수 없으리라 생각한 건지 나를 돌려보내란 명령만 남기고 나갔다. 철문이 거칠게 닫혔다.

“하아…….”

긴 한숨을 쉰 장 형사가 비닐 파일을 대충 구겨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불안한 눈으로 장 형사의 움직임을 좇았다. 성의 없이 떨어진 장 형사의 시선이 내 앞에 놓인 종이컵을 힐끔 본다.

“괜찮아지셨으면 돌아가셔도 됩니다.”

장 형사는 미련 없이 취조실을 나갔다. 아무런 문제 없이 이곳을 나갈 수 있게 되었지만 일어설 힘이 없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사건이 끝났다니……. 죽은 애인이나 동생은? 정작 실종 신고가 됐을 그들은 제쳐 두고 아래층 놈에 대한 건 왜 물은 거지? 정황상 그놈이 죽었다는 것까지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는데……. 단지 날 떠보려고 물어본 걸까? 과장님의 지시란 건 또 뭐지?

그러고 보니 집 앞에 쓰러져 있던 날 발견한 게 장 형사라면 그가 내 집 앞까지 찾아왔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유야 어찌 됐건 장 형사는 날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 이름과 사는 곳까지 알고 있었다. 나아가 나와 아래층 남자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도 아는 눈치였다. 그만큼 내 신변 조사를 마쳤다면 동생의 실종을 모를 리 없었다.

“아니…… 혹시.”

신고가 아직 없었다면 가능했다.

동생이 죽은 지 며칠째지?

다 죽어 가던 뇌가 전기 충격을 가한 것처럼 살아났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비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내고 싶었다.

만일 정말 죽었다 하더라도……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진 내가 나비를 지켜야 했다.

“나비한텐 나밖에 없어.”

종이컵에 든 물과 함께 환영의 찌꺼기들을 단숨에 삼켰다. 경찰들이 뭘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더 나아가 나비의 행방까지도, 경찰을 잘만 이용하면 쉽게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철문을 열고 나왔다. 파티션으로 나뉜 경찰서 내부는 어수선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불쑥 튀어나온 나를 힐끔거렸으나 말리는 이는 없었다. 덕분에 파티션 위로 툭 솟아오른 머리통을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짧은 앞머리 아래로 흉터 진 짙은 눈썹을 향해 걸어갔다.

“저, 장 형사님…?”

떡 벌어진 두툼한 어깨 너머로 슬쩍 고개를 튼 장 형사는 안 가고 뭐 하냐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까의 일로 내뿜는 분위기가 퍽 살벌하다. 왠지 이 사람이어야 한다는 확신이 들었다.

“저 좀 집까지 태워 주세요.”

“……예?”

되묻는 음성이 한참 만에야 돌아왔다.

“저 몸이 아직…….”

황당하다는 기색이 조금 벌어진 눈초리에 맺혔다가 이내 사라진다. 무심해진 삼백안이 모니터로 돌아갔다. 역시 거절인가.

“순찰차로 모셔다드리라고 전달하죠.”

누그러진 목소리가 사무적인 투로 말했다. 당기면…… 당겨질 것 같았다. 마른 입술을 축이고 밀어붙였다.

“장 형사님한테 부탁드리는 겁니다.”

한껏 치켜 올라간 눈이 매섭게 나를 쏘아본다. 개의치 않고 허리를 조금 숙이며 목소리를 낮췄다.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히, 그러나 무시하긴 어렵게, 머뭇거림을 섞어 속삭였다.

“할 말이…… 있어요. 둘이서만.”

힘이 잔뜩 들어간 눈썹이 서서히 느슨해졌다. 잠시 말이 없던 장 형사는 어딘가를 확인했다. 장 형사의 시선 끝에 아까 성화를 부리던 중년의 형사가 등을 지고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다.

“먼저 가 있어요. 검은색. 7882.”

이번엔 장 형사가 내게 속삭였다.

경찰서를 나왔을 때 날은 이미 저물어 있었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푹푹 쪘고, 우거진 나무에 매달린 매미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언제 밤이 됐지. 날이 이렇게 더웠던가.

당황스러웠다. 내 시간이 어디쯤 와 있는지 가늠이 안 됐다.

경찰서 바로 앞 주차장에서 장 형사가 일러 준 번호판을 단 차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얼른 그 옆에 가서 장 형사를 기다렸다. 낮 동안 데워진 차에서 후끈한 열기가 뿜어지고 있어 아직 으슬으슬한 몸을 차에 기대고 숨을 골랐다. 여전히 둔하긴 했지만, 술을 다 토해 내서인지 다행히도 몸은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있는 듯했다.

“타요.”

갑자기 나타난 장 형사가 곧장 운전석 문을 열었다. 퍼뜩 기대 있던 몸을 세우고 조수석 손잡이를 잡았다. 지금부터 나는 장 형사란 추를 내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여야만 했다. 그가 내 장기 말이 되거나, 반대로 그가 친 덫을 내가 밟게 되거나, 확률은 반반이었다.

차에 타 문을 닫았다. 에어컨 바람을 세차게 틀어 놓은 장 형사는 바로 차를 출발시키지 않고 핸들을 잡은 자세로 요지부동이었다. 여기서 이야기를 할 생각이라면 곤란했다. 경찰서가 코앞이라 좀 불안했다. 아픈 척이라도 해야 하나.

“저, 왜 그러시는…….”

“벨트.”

“아.”

다른 사람 차의 조수석에 앉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한데다가 긴장감이 겹쳐 벨트 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한시바삐 장소를 옮겼으면 해 얼른 벨트를 채우자 미덥지 않다는 양 장 형사가 말을 더했다.

“또 뛰어내리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네.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침묵 속에서 차가 출발했고 목적지는 이미 아는 곳이니 장 형사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날 집에 데려다준다는 명목하에 따라 나온 척해도 그는 내 이야기에 아주 관심이 많은 게 분명했다. 그의 무관심은 단지 내가 먼저 입을 열게 만들어서 스스로 증거를 흘리도록 하려는 위장에 불과할 터이다. 나는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말을 골랐다.

“형사님은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까.”

“수사 중인 사건이라 말 못 합니다.”

장 형사는 입을 다물었다. 무뚝뚝한 남자를 곁눈질로 살폈다. 역시. 자신을 감추고 내가 먼저 껍질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리려는 수작임이 분명하다.

“얼굴만 아는 정도 아니에요.”

“누구 말입니까?”

영악한 사냥꾼을 잡으려면 스스로 미끼가 되어 모습을 드러내는 수밖에 없다.

“그날…… 그 남자 집에 갔어요.”

“아래층에 사는 남자 말입니까?”

조금의 운도 필요했다. 잘 벼려진 사냥꾼의 촉이 미끼 냄새를 맡고 내 쪽으로 이끌리고 있음을 느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강간당했어요. 그 남자한테.”

끼이익!

차가 급정거하는 바람에 벨트가 가슴을 압박했다. 뒤따라오던 차가 빠앙! 경적을 울리며 추월해 갔다. 그러나 장 형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았다.

“이런 사이도 아는 사인가요. 장 형사님.”

크게 벌어진 삼백안의 작은 동공이 흔들린다.

사냥꾼은 생긴 것만큼 잔인하지 못했다. 쫓던 짐승이 상처 입고 쓰러지면 기회를 노려 물어뜯는 대신 전의를 잃고 놓아주는 쪽이었다.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였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으려는 사건에 목을 매는 형사란 쓸데없이 정의롭기 마련이니까.

추는 내게 기울었다. 나는 아래층 남자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울 작정이었고, 그건 그리 어렵지 않을 듯싶었다.

“왜 그럽니까?”

현관 앞에 다다라서 불현듯 시뻘겋게 젖었던 집 안 풍경이 생각나 머뭇거리자 장 형사가 물었다. 나는 뒤에 있는 장 형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눈을 꾹 감았다 뜨며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바로 그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현관문을 열었다. 집은 지진이라도 맞은 모양새였지만 피 냄새와는 거리가 멀었다. 열린 찬장 아래로 잡다한 물건들이 쏟아져 있었고, 그 사이에 빈 술병이 나뒹굴었다. 주방 한가운데에는 마른 토사물 자국이 말라붙어 있다. 난장판 속에서 멀쩡한 냉장고를 확인하며 몸을 틀어 등 뒤에 서 있던 장 형사에게 길을 내줬다.

“들어오세요.”

현관으로 들어선 장 형사가 티 나지 않을 만큼 눈썹을 구기고 집 안을 둘러보았다. 사건 현장으로 보일 법했지만 내게서 풍기던 술 냄새가 이 광경을 단순한 술주정의 흔적으로 무마시켜 주길 바랐다. 고양이가 없어져서 그랬다기엔 지나칠지라도 같은 남자에게 강간당한 트라우마를 가진 피해자라면 이해할 만한 수준이지 않을까 싶었다.

“앉아요.”

아까부터 어둡게 가라앉은 표정의 장 형사는 순순히 내가 가리킨 소파에 앉았다. 나는 식탁 의자를 끌어와 그와 비스듬한 위치에 마주 앉았다. 다시 찾아온 침묵은 사뭇 결이 달랐다.

얼굴에 난감한 기색을 내비친 장 형사의 두 눈이 할 말을 찾듯 거실 바닥을 돌아다녔다. 달라진 그의 태도가 날 피해자로 대하고 있는 듯 느껴졌으나 아직 부족했다. 나는 준비된 대사의 첫 줄을 읊었다.

“처음 협박을 받기 시작한 건 한 달 전쯤부터입니다.”

“협박이요?”

장 형사의 고개가 들렸다.

“제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요.”

“아.”

그럴듯한 거짓말을 위해 진실을 섞었다. 장 형사가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짧게 탄식했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반응이 민망한지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그는 조심스레 시선을 맞춰 왔다.

“신고는…….”

“안 합니다. 못 하죠.”

장 형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낮은 숨을 뱉으며 허리를 굽혔다. 무릎에 팔꿈치를 댄 장 형사가 두 손을 깍지 꼈다. 허공을 보는 얼굴에 파렴치한 범죄자에 대한 혐오감이 짙게 어려 있다.

“제가 장 형사님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 건…….”

내게 향하는 눈동자를 확인하고 일부러 뜸을 들이며 입술을 물었다가 놓았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다는 느낌으로 시간을 끌었다.

“그 남자가 강간범이라서가 아니라,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입매를 굳히고 내 이야기를 들은 장 형사가 두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하아…….”

깊은 한숨을 내쉰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꺼진다.

“사실.”

드러난 얼굴엔 경계심이 완전히 걷혀 있었다. 나는 숨을 멈춘 줄도 모를 정도로 장 형사에게서 나올 말에 집중했다.

“증거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아직 실종자들에 대한 흔적도, 시체도 찾지 못했습니다. 전에……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이 동만 주변 CCTV가 다 훼손됐어요.”

장 형사의 말을 듣자 어렴풋이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찾아온 형사가 지금 눈앞의 장 형사란 사실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복구된 건 얼마 안 됐습니다. 그래서 4일 전, 엘리베이터에서 그쪽과 같이 찍힌 게 유일한 흔적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건 정말 이상했다. CCTV 훼손은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문제?

혹시라도 나비에 대한 정보가 나올까 봐 몸까지 내밀며 마른 입술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선우 씨.”

“……예?”

갑자기 불린 탓에 대답이 한발 늦게 튀어 나갔다.

“그쪽 말대로 난 보통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이상 말해 줄 마음은 없는지 돌아갈 낌새였다.

“그러니까 다음에 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바로 신고해요. 혹시 마음 바뀌거나 해도.”

“쯧.” 버릇처럼 혀를 찬 장 형사가 뒷머리를 털었다.

“이만 가 보겠습니다. 쉬어요. 술은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따라붙는 이명을 견디려 짧게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 장현욱입니다.”

“……네?”

“제 이름.”

뜬금없이 이름을 밝힌 장 형사가 인상을 구겼다.

“괜찮은 겁니까?”

“네. 괜찮…… 괜찮아요.”

장 형사의 뒤로 멀쩡하던 집 안에 역겨운 붉은 광경이 플래시백 됐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장 형사는 집을 나가면서 내가 힐끗거리던 주방을 한 번 돌아보고는 떠났다.

곧장 의식이 모래처럼 부서졌다. 과부하 된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나는 어떻게든 장 형사가 남긴 단서들을 정리하려고 애썼다.

똑똑.

날 방해하려고 혈안이 된 노크 소리가 또 찾아왔다. 발밑이 미지근하게 젖는다. 그대로 소파에 엎드려 두 팔로 머리를 감쌌다.

“그만 나 좀 내버려 둬. 제발 꺼지라고!”

똑똑.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귀를 틀어막았다.

똑똑. 냉장고 속 머리들이 나를 원망한다.

똑똑. 아마도 내가 미치거나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 ∞ ∞

차가운 손이 내 이마를 매만졌다. 몸을 뒤채자 등에 닿은 가죽 소파가 삐걱거렸다. 희미하게 의식이 깨어나 내가 소파에 누워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곁에 앉은 누군가의 존재가 흐릿하게 느껴졌다. 나를 다독여 주듯 머리카락을 쓸어 준다. 눈을 감은 채 얌전히 기꺼운 손길을 받아들였다. 대가 없이 주어지는 다정한 접촉에 의식이 도로 가라앉는다.

“그게 널 두고 어디로 갔을까?”

다정하지 않은 섬뜩한 미성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의식이 늘어지는 내겐 그저 흥얼거림처럼 들렸다.

“음?”

무언가가 가만히 배를 덮는다. 큭큭, 웃는 떨림이 나비가 헤집어 놓고 간 배 위로 전해졌다. 그리고는 차가운 숨이 거머리처럼 귓가에 달라붙었다.

“어디 감히 겁도 없이 씨를 품으려고 했어. 아가, 충고 하나 해 줄까?”

웃음기가 가신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꺼져 가는 의식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꿈도 꾸지 마. 넌 내 대용품일 뿐이야.”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무서웠다.

∞ ∞ ∞

“장 선배. 이거 걸리면 징계로 끝날 일 아닌 거 아시죠?”

“문이나 뜯어.”

어제 이선우를 만나고 현욱은 아침부터 2901호를 찾았다. 간밤에 현욱이 알아낸 바론 2901호 남자는 무직이었고 간단한 인적 사항만 봐도 주말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움직일 만한 위인은 못 되었다.

그러니까 오후 두 시가 되도록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건 냄새를 맡았다는 징조였다.

“아이 씨.”

투덜거리던 후배가 이럴 경우를 대비해 경비실에서 빌려 온 빠루를 현관 틈으로 끼워 넣었다.

우드득, 드득.

힘겹게 뜯어낸 문짝을 벌리고 들어간 집 안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아…… 이거 딱 보니까 벌써 튄 거 같은데요?”

후배 말대로 어딘가 모르게 위화감이 곳곳에 묻어났다. 급하게 정리한 흔적이 여기저기서 눈에 걸렸다. 집 안을 샅샅이 뜯어보던 현욱의 시야에 거실 한구석에 중량별로 놓여 있는 덤벨이 들어왔다. 5kg짜리 하나가 순서를 무시하고 가장 무거운 것 뒤에 놓여 있었다.

현욱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령을 감싸 들었다. 쩌억 하고 떨어진다. 바닥에 들러붙어 있던 부분이 갈색으로 물들어 있다. 오래된 혈흔이었다.

“어떡하죠. 쫓아 볼까요? 어어, 선배? 어디 가세요!”

뒤도 돌아보지 않고 2901호를 나온 현욱은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현욱이 3001호 앞에 서자 뒤따라온 후배가 어리둥절했다.

“장 선배. 이 집은 왜요.”

현욱은 대답하지 않고 초인종을 눌렀다. 단조로운 벨 소리가 끝날 때까지 기척이 없었다. 초조해진 현욱은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길어지는 연결 음에 “쯧.” 하고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의 버릇이 튀어나왔다.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연달아 두 번 눌렀을 때 전화가 먼저 연결됐다.

“택배 기사 실종 사건 OO 아파트 3001호 이선우 전화번호 알아봐.”

현욱은 앞뒤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지시했다. 현욱의 감이 맞는다면 느긋하게 설명하고 자빠져 있을 시간이 없었다.

―하…… 거기 또 가셨어요? 서 과장님 아시면….

“새끼야, 전화번호 부르라고!”

감감무소식인 문 너머가 불길했다. 주말 오후였다. 단순히 외출했을 수도 있지만 다년간 형사 생활을 하며 체득한 현욱의 감이 불길함을 감지했다. 현욱이 어제 만난 이선우란 남자는 퍽 위태로워 보였다. 짧은 순간 동안 시시각각 다른 사람처럼 변하던 모습이 모르긴 몰라도 온전치 못한 정신 상태임이 역력히 느껴졌다. 고양이는 핑계인 게 분명했다.

현욱은 옆에서 영문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후배의 어깨를 손등으로 툭 쳤다.

“야. 너 올라가서 옥상 확인해 봐.”

“옥상이요? 네.”

―선배 문자로 보냈습니다.

곧바로 핸드폰이 진동했다. 현욱은 전화를 끊고 문자로 온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연결 음 후, 문 안쪽에서 희미하게 벨 소리가 들려왔다.

“이선우 씨! 안에 있습니까?!”

현욱은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드리곤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집 안에서는 응답 없이 벨 소리만 공허하게 울려 댔다. 작게 욕을 뱉은 현욱이 후배가 두고 간 빠루를 들어 문틈에 끼워 넣었다. 검은 반소매 티셔츠 밑으로 드러난 두꺼운 팔 근육이 단단하게 부풀고 꽈득, 문짝이 단번에 떨어져 나갔다.

“이선우 씨!”

문을 열자마자 어제 그가 앉았던 소파 아래에 널브러진 하얀 팔이 보였다. 현욱은 신발을 신은 채로 뛰어 들어갔다. 소파에서 굴러떨어진 자세로 엎드려 있는 이선우는 어제 보았던 차림 그대로였다. 어질러진 집 안도 마찬가지였다. 현욱은 황급히 그를 돌려 눕혔다.

베란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 집 안의 공기가 뜨거웠다. 그런데도 이선우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현욱은 그의 목덜미와 손목에 상처가 없음을 확인하고 양 볼을 눌러 입술을 벌렸다. 다행히도 독을 마신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증상은 없었다. 입술에 닿은 손가락으로 옅은 숨이 느껴졌다.

“아, 선배! 문을 또 뜯으시면…… 헉, 이 사람 죽은 거예요?”

“아니. 구급차 불러.”

현욱은 차갑게 식어 있는 뺨을 아프지 않게 두드렸다.

“이선우 씨.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축 늘어져 있던 몸이 돌연 발작하듯 현욱을 끌어안았다. 방금까지 쓰러져 있던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는 힘이었다. 그에게 이유 없이 붙잡히는 일이 현욱에겐 벌써 두 번째였다.

“……가지 마, 내가…… 잘못했어. ……제발.”

이선우가 얼굴을 묻은 가슴팍이 속절없이 젖어 가고 있었다.

응급실은 현욱이 찾아올 때를 아는 것처럼 항상 아비규환이었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현욱에게도 응급실은 씻어 내기 힘든 나쁜 기억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었다.

3년 전, 화장실에서 목을 맨 아버지를 처음 발견한 게 현욱이었다. 훤한 대낮에 현욱은 축 늘어진 아버지를 업고 달렸다. 급히 심폐 소생술을 했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그 하루 전날, 현욱의 핸드폰에는 아버지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찍혔다. 드문 일이었지만 당시 큰 사건을 맡았던 현욱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통화를 잠시 미뤄 두었다.

고작 하루, 아니 반나절이었다. 현욱은 평생 아버지가 전화를 건 이유를 들을 수 없게 될 줄 몰랐다.

“선배. 그럼 저 먼저 갑니다?”

현욱은 꺼림칙하게 묵직한 어깨를 휘휘 돌렸다.

“어. 가라. 고생했다.”

응급실 침대에 딸린 커튼을 걷고 나가려던 후배가 걸음을 떼다 말고 다시 현욱을 돌아봤다.

“장 선배.”

침대 위에 죽은 듯 누워 있는 이를 우두커니 보던 현욱이 눈썹을 들어 올려 말해 보란 신호를 보냈다. 두 팔을 허리에 얹은 후배가 별안간 앞머리를 벅벅 쓸어 넘겼다.

“꽂히면 끝장 봐야 직성 풀리는 선배 성격, 저도 잘 아는데요. 그래도 이번엔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이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 과장님 지시예요. 까닥하면 옷 벗어야 해요.”

“내가 알아서 해, 인마.”

현욱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저를 보는 후배의 뒤통수를 툭 쳤다.

“에이 씨. 나도 몰라요.”

후배가 휙 커튼을 젖히고 나갔다. 저렇게 투덜거려도 부르면 이유도 묻지 않고 튀어나오는 기특한 녀석이었다.

현욱은 병원 냄새만 맡으면 뻐근해지는 목덜미를 풀었다. 두 걸음 정도의 좁은 공간에 덩치들이 꾸역꾸역 끼어 있던 터라 답답했는데 한 놈이 빠져나가고 나니 그나마 숨통이 좀 트였다.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라…….”

후배의 걱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이선우의 주변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이미 끝난 일이어야 했다. 왜인지 이유는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 의해 묻히는 사건은 대중에 알려진 것보다 더 비일비재했다.

물론 현욱은 이런 부당한 지시가 있을 때마다 징계를 먹었다. 미운털이 박힐 만큼 박혔고 높으신 양반들에게 말 안 듣는 개인 현욱은 요주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경찰서 실세인 서 과장이 직접 묻으라고 지시한 탓에 현욱에 대한 관리 감시가 더 심해졌다.

“하아…….”

현욱은 좀처럼 깨어나지 못하는 이선우를 내려다보았다. 정확한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진 시간이 좀 걸렸고 그를 살펴본 의사는 과로나 스트레스쯤으로 진단했다. 가벼운 진단이었으나 현욱의 입은 썼다. 그 스트레스의 원인을 어제 본인의 입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의사에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골치가 아파져 현욱은 엄지로 관자놀이를 꾹꾹 지압했다.

현욱도 처음에는 단순 실종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건을 파면 팔수록 수상한 점이 줄줄이 딸려 나왔다. 그중 하나가 눈앞의 이선우였다.

실종된 택배 기사가 담당한 배달 구역이자, 또 다른 삼십 대 남자 실종자 핸드폰의 마지막 발신지인 아파트로 첫 현장 탐문 조사를 나간 날, 짧게 마주쳤던 기억으로도 그때의 이선우와 지금의 이선우는 상당히 느낌이 달랐다. 그사이 이선우가 겪은 불미스러운 사고의 책임에서, 사건을 맡았던 형사인 자신은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저가 직성을 풀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모른 척하고 미뤄 둔 대가는 이런 식의 죄책감으로 돌아왔다. 3년 전부터 현욱이 가장 견디기 어려운 종류의 감정이었다.

저야 옷을 벗으면 그만이었지만 이선우는 그 트라우마로 저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하고 있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2901호 남자가 이선우를 노리고 있을 가능성도 무시 못 했다.

증거는 훼손됐고, 무엇보다 본인이 신고할 의지가 없으니 피해자이자 유일한 증인은 신변 보호도 불가능. 부당한 외압으로 수사는 지지부진. 그야말로 앞뒤로 꽉 막힌 상황.

“쯧.”

담배가 급하게 당긴 현욱은 이선우의 하얀 팔에 연결된 링거를 확인했다. 투명한 팩에 노란 액체가 절반쯤 남아 있었다. 아주 잠깐만 자리를 비우려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흰 낯이 일그러지며 닫힌 눈꺼풀이 들썩였다. 현욱은 침대에 붙어 서서 허리를 굽혔다.

“이선우 씨. 어디 아파요?”

현욱의 목소리를 들은 이선우가 눈을 떴다. 부연 눈동자가 현욱을 응시하는가 싶더니 초점이 돌아오자마자 길을 잃고 방황했다. 현욱은 얼른 말을 덧붙였다.

“병원입니다. 혹시 어제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니,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힘없는 고갯짓이 필사적이었다. 그를 안심시킬 만한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아 현욱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자세한 검사 결과는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최대한 목소리에 힘을 뺐다. 제 말투가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든다는 걸 잘 알았다.

“검사……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얀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예. 일단 급한 대로 보호자 불렀습니다. 아무래도 결과는 가족이 들어야 할 것 같아서.”

“……가, 족…?”

상태가 나빠서인지 이선우는 단 두 개의 발음조차 어려워했다.

“전화한 지 좀 됐으니까 곧 올 겁니다. ……이선우 씨 진짜 괜찮은 거 맞습니까?”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은 사람처럼 눈과 입을 벌린 이선우의 안색이 눈에 띄게 파래졌다. 이유를 모르는 현욱은 당황했다. 아무래도 뭔가 실수한 듯싶어 일단 이선우를 진정시키려는데 커튼 뒤로 말소리가 가까워졌다.

“이선우 환자분 이쪽에 계세요.”

다가오는 이가 간호사라는 걸 현욱이 알아챔과 동시에 커튼이 걷혔다. 그런데 커튼 안으로 들어선 사람은 남자였다. 남자는 현욱 쪽으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곧장 침대 위 이선우를 쳐다보았다. 마치 그가 거기 있을 줄 알았던 것처럼 흔들림 없는 시선이었다.

“잠깐 사이에.”

희미하게 중얼거린 입술이 엷게 휘었다. 가까이 서 있던 사람이 현욱이 아니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찰나였다. 현욱이 통화를 한 사람은 이선우의 모친이었다. 불쑥 쳐들어온 침입자의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많이 힘들었나 봐, 형.”

언뜻 듣기에도 다정한 말투.

이선우를 부르는 호칭을 듣고 침입자의 정체를 파악한 현욱은 경계심을 풀었다. 당연히 어머니가 올 줄 알았는데 남자는 혼자였다. 현욱이 예상하지 못했을 뿐,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어서 현욱은 돌아가 보겠단 인사를 하려고 이선우를 보았다.

그런데 이선우의 반응이 이상했다. 이미 허옇게 질린 얼굴에 그나마 남아 있던 핏기마저 완전히 가시고 벌겋게 충혈되어 부릅뜬 눈은 동생을 마주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몇 해 전, 지하철 공중화장실에서 잔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시체를 하필이면 당시 신입이던 현욱의 후배가 처음 발견한 일이 있었다. 현욱이 뒤늦게 현장에 도착했을 때, 더러운 타일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던 후배가 꼭 저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을 보고만, 그런 표정.

침대 발치에 서 있던 남자가 이선우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현욱은 본능적으로 그의 팔뚝을 붙잡아 세웠다. 줄곧 이선우에게 향해 있던 고개가 저를 잡아 세운 손을 내려다본다.

“이선호 씨?”

현욱은 이선우의 뒷조사를 하며 얼핏 본 이름을 꺼냈다. 그것에 반응해 서서히 눈을 든 남자는 그제야 현욱의 존재를 인식한 듯 검은 눈동자에 현욱을 담았다. 어딘가 곤두선 면이 있는 이선우와 다르게 순해 보이는 눈매가 보기 좋게 휘었다.

“전화해 주신 형사님이시죠. 감사합니다.”

살가운 투로 감사 인사를 전한 남자가 손을 내밀어 자연스레 악수를 청했다. 현욱은 떨떠름하게 그를 놓아주고 손을 마주 잡았다. 잠깐 쥔 손이 죽은 사람의 것처럼 식어 있어 현욱은 저도 모르게 흠칫했다.

“바쁘실 텐데 그만 가 보셔도 돼요.”

남자의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닮은 듯, 닮지 않은 형제였다. 두 사람 다 수수한 분위기여도 티가 나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호감형이냐 하면 그건 조금 다른 문제였다. 현욱처럼 대놓고 사나운 인상은 아니더라도 눈앞의 형제는 묘하게 인상이 좋지 않았다. 형 쪽이야 그간 현욱이 아는 바가 있어서라지만 싱긋 웃고 있는 동생은 이유도 없이 꺼림칙했다.

현욱은 마주한 남자의 얼굴 위에 이선우의 얼굴을 덧씌워 보았다. 둘은 같은 그림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처럼 닮아 있었다. 비슷한 점은 모호한데 차이점은 명확했다.

정신을 잃었을 때마저 날이 서 있는 듯한 형과 반대로 동생은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헤프게 웃었다.

본래 성격이든 아니든, 이 상황에 생글생글 웃음을 뿌리는 태도로 봐서 아마 동생 쪽은 자기 형이 근래 무슨 일을 당했는지 모르는 듯했다. 현욱은 뒤늦게 아차 싶었다. 2901호 남자와의 일을 숨기고 있었을 이선우가 갑자기 마주한 동생을 보고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마른 입술을 달싹이다가 현욱은 결국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고 고개를 까딱였다.

“그럼 전 가 보겠습니다.”

동생이 현욱을 지나쳐 침대 머리맡을 가리고 서는 바람에 현욱은 끝내 이선우를 보지 못하고 돌아섰다. 커튼을 막 걷고 나가자 검사 결과가 나온 모양인지 차트를 든 간호사와 마주쳤다. 현욱이 몸을 비켜서자 간호사가 커튼 안으로 들어갔다.

“이선우 환자분 피 검사 결과 염증 수치가 높게 나와서 정밀 검사 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막 한 발을 뗀 현욱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아뇨. 이제 막 형이 잠들어서요. 다음에 할게요.”

닫힌 커튼을 휙 돌아본 현욱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 잠깐 사이에 잠이 들었다고?’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뻔히 보호자가 있는데 커튼을 열고 들어가 확인하는 것도 그림이 이상했다. 이 이상 관여할 자격이 그에겐 없었으므로 현욱은 이내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응급실을 나온 현욱은 주차장 근처 흡연 구역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가족에게 무사히 인계했는데 미적지근한 불안함이 가시질 않아서 발이 병원 근처를 맴돈 탓이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현욱이 뒷수습을 맡긴 후배였다.

―장 선배. 문짝 복구해 놨습니다.

“어. 옥상은.”

―그것도 잘 잠가 두라고 전했습니다. 쓰읍. 근데 그보다요.

“왜.”

―3001호 문짝에 달려 있던 도어록이 좀 특이하던데요.

현욱은 얼마 피우지도 않은 담배를 무심코 재떨이에 뭉개 버렸다.

“뭐가 어떻게 특이한데.”

―아니. 그 왜 있잖아요. 안에서도 잠기는 거요.

“안에서 잠겨? 그게 뭔 소리야.”

―보통 치매 노인들 가출 방지용이라고 안에서도 열쇠로 열어야 하는 특수 모델이 있는데, 그게 달려 있던데요?

“치매 노인?”

서류상으로만 확인한 이선우의 가족 관계는 단출했다. 생존해 있는 조부모는 없었고 부모는 양쪽 다 치매와 거리가 멀었다. 어머니 쪽은 아직 한참 젊고, 아버지 쪽은 현직 개인 병원 의사였다.

―예. 그니까 못 나가게 가둬 두는 용인 거죠. 쉽게 말하면.

“가둬?”

키우는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던 이선우의 말이 스쳤다.

‘고양이 때문에 달아 둔 건가?’

현욱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이제 와 돌이켜 보니 울며불며 찾아다닐 정도로 애착을 쏟는 고양이의 흔적이 그 삭막한 집 안엔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뭘…….’

―선배? 듣고 계세요?

“어…….”

그딴 게 달려 있을 거면 3001호의 문이 아니라 2901호의 문이어야 앞뒤가 맞았다. 심각한 표정으로 현욱이 두 번째 담배를 꺼내 무는 순간 이선우의 동생이 주차장에 나타났다. 동생의 등에 업힌 이선우의 팔이 축 늘어져 이리저리 흔들렸다. 현욱이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링거액이 반쯤 남아 있었다. 다 맞으려면 못해도 30분은 더 걸린다는 뜻이었다.

“일단 끊어 봐.”

이유도 모르고 욱한 현욱은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짓눌러 버리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큰 보폭으로 걸어가 검은 SUV에 타려던 이선호를 불러 세웠다.

“이선호 씨.”

현욱을 발견한 이선호가 미묘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형사님. 아직 안 가셨네요.”

그러고는 적의 없이 미소 지었다. 현욱은 이선호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 이선호가 웃을 기분이 아님을 간파하는 건 현욱에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

거친 한숨부터 내뱉은 현욱이 누가 봐도 정신을 잃은 형을 업고 부랴부랴 병원을 나온 괘씸한 동생을 비뚜름하게 쳐다봤다.

‘뭐가 그렇게 바빠서.’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선우 씨, 혼자 있을 상태가 아닙니다.”

선명한 검은 눈동자가 두어 번 깜빡였다. 이선호는 뭔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으음.” 하고 목을 울렸다.

“보기보다 친절하시네요.”

헤프게 웃으며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그 헛소리에 현욱은 속으로 미치고 펄쩍 뛰었다. 이선우가 겪은 사건에 대해 말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라 답답함만 커졌다.

“쯧. 그쪽 형, 그쪽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태입니다.”

“형사님.”

비스듬히 서 있던 이선호가 몸을 돌려 현욱을 똑바로 마주했다. 조금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와 다르게 웃고 있는 표정은 한결같았다. 현욱은 아까의 생각을 정정했다. 인상이 나쁜 건 동생 쪽뿐이라고.

“혼자 둔 거 반성하고 있어요, 여러모로……. 제가 알아서 할게요. 제 형이니까.”

이선호는 제 형을 고쳐 업고 SUV 뒷좌석 문을 열었다. 이선우보다 조금 더 커 보이긴 했으나 그는 신체 건장한 성인 남성인 이선우를 어렵지 않게 뒷좌석에 눕혔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히 문까지 닫은 그가 난데없이 “아.” 하고 탄식했다.

“형 앞에선 혀 차지 마세요. 형이 싫어해요. 그거.”

그때까지도 묵묵히 서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현욱에게 입 모양만으로 ‘쯧.’ 혀 차는 시늉을 한 이선호가 스치듯 뒷말을 중얼거렸다.

“뭐, 더 볼일도 없겠지만요. 그럼.”

이선호가 현욱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현욱은 그가 운전석에 오르고, 헤드라이트를 켠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현욱의 감이 경고했다. 느낌이 좋지 않다고.

∞ ∞ ∞

띠디딧. 띠디딧.

반복되는 기계음이 알람 시계 소리라는 걸 깨닫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렸다. 의식이 모호하기도 했지만, 귀를 거스르는 소리가 낯설어서였다.

아직 병원인 건가.

하얀 배경 속에서 날 내려다보던 장 형사의 얼굴이 잠시 나타났다가 연기처럼 흩어졌다. 느슨한 의문에 눈을 떠 보니 처음 보는 방 안의 침대 위였다. 병원처럼 보이진 않았다.

띠디딧. 띠디딧.

짜증 나는 소리부터 차단하려고 머리맡에 놓인 알람 시계를 확인했다. 모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네모난 전자시계는 뜻밖에도 눈에 익은 모양새였다. 기억 속 장 형사의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는 듯했다.

검사를 했다고 해서 놀랐다. 내 몸은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장 형사가 그랬다. 가족을 불렀다고. 그 사실을 인식하자 꼬리뼈부터 소름이 끼쳐 올랐다.

장 형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왔는데……. 그 누군가의 얼굴이 검게 칠해져 있다.

“아…….”

머리가 아파져 더는 떠올릴 수가 없었다. 몸이 기억을 떠올리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의식을 집중할수록 더해지는 고통에 옆으로 돌아누우며 머리를 짚었다. 시각을 달리하자 방 안이 다르게 느껴졌다.

“여긴…….”

처음 보는 방이 아니었다. 나는 도망치듯 침대를 벗어났다. 무늬 없는 회색 벽지도, 파란 하늘이 보이는 작고 네모난 창문도, 누워 있던 싱글 침대도, 전부 익숙했다.

“내가 왜… 여기에…….”

방문을 열자 일자로 뻗은 복도 끝에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악몽처럼 나타났다. 아무리 살살 밟아도 삐걱거리며 비명을 지르던 계단 아래에서 달그락달그락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렸다. 누군가 있다. 후각을 자극하는 갓 지은 밥 냄새에 머리칼이 쭈뼛 선다.

“제가 올라가서 깨워 볼게요.”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꼼짝없이 발을 묶었다. 피할 새도 없이 계단 아래에서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이 정면으로 마주친 순간,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내가 아직 꿈속인 건가? 어떻게 저 자식이…… 살아 있는 거지?

“일어났네. 좋은 아침. 형.”

내 손으로 죽인 동생이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이게 무슨…….”

정말로 개 같은 악몽이었다. 동생은 내가 그때 분명 죽였는데…….

축축한 기억은 흙탕물에 쓰러진 동생을 끝으로 어둑해졌다. 도중에 정신을 잃어 동생이 나비에게 먹히는 장면까진 내 눈으로 보지 못했다. 깨어났을 때 나를 안고 있던 나비의 모습을 보고 당연히 먹혔을 거라고 여겼는데, 설마 동생이 살아 도망쳤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가정에 목덜미를 타고 식은땀이 흘렀다.

“형. 거기 서서 뭐 해? 내려와서 아침 먹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려면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리처럼 삐걱거리는 계단을 꾸역꾸역 내려갔다. 오른쪽으론 마당의 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넓은 거실이 있고, 왼쪽엔 유난히 해가 잘 들던 주방이 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매끄러운 원목 식탁에는 신문을 펼쳐 들고 앉은 아버지가 있었다. 그 뒤로 앞치마를 두르고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의 뒷모습까지 전부 기억 속 그대로 눈앞에 펼쳐졌다.

넋을 놓고 그 풍경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 다른 점을 찾아냈다. 내가 앉던 자리에 온전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따뜻한 밥알에 윤기가 흘렀다. 그건 꿈에서도 불가능하던 일이었다.

“앉아, 형.”

동생이 손수 빼 준 의자에 홀린 사람처럼 앉았다. 예전처럼 앞치마를 벗은 엄마가 자리에 앉자 아버지가 신문을 접었다.

꿈이 아니다. 내 기억보다 조금 늙은 얼굴들을 마주하고 깨달았다. 비현실적인 상황이지만 이건 현실이었다.

“병원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놀랐어.”

엄마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내가 너한테 상처 줬다는 거 알아. 선우야.”

놀랍게도 내게 하는 말이었다. 내가 그 말을 얌전히 듣고만 있은 이유는 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였다.

선우야.

엄마는 날 그런 식으로 불러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여기에 내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은 있지만, 불러 주던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동안 마음고생 많았지?”

더는 들어 줄 수가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밀려난 의자가 요란하게 쓰러졌다. 언제나 날 없는 존재 취급하던 여섯 개의 눈알이 내게 쏠린다.

“하…….”

어이가 없었다. 눈가가 시큰했다. 돌연 모든 의문이 사라졌다. 이건 결코 꿈이 아니다. 내겐 악몽보다 현실이 더 끔찍했으니까 확실했다. 누군가 후두부를 칼로 찌르는 듯 뒷골이 당겨, 나는 식탁 모서리를 집고 머리를 숙였다.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는데…….”

“형.”

손목에 감겨 오는 기분 나쁜 감촉을 거칠게 떨쳤다.

“당신들 나 버리고 싶어 했잖아요.”

“선우야…!”

내 앞에 차려진 음식들을 쓸어 버렸다. 날아간 접시가 깨지고 쓰레기가 된 음식물이 바닥과 벽에 튀었다. 뭐라 말을 하려던 엄마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꼭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았다.

날 기어이 미친 패륜아로 만들어야 속이 시원해 부른 걸까. 악마의 자식이니 뭐니 떠들어 대며 내 목을 조른 값은 고작 밥 한 공기로 때우며 저는 속죄했다 생각하는 걸까.

치가 떨렸다.

“아니라고 하지 마. 당신들 인생에 흠 남기지 않으려고 입 다물고 데리고 살았을 뿐인 거 내가 정말 모를 줄 알았어? 아니라고 발뺌하고 싶으면 적어도…… 숨기려는 노력이라도 했었어야죠. 안 그래요? 아버지.”

아버지는 침묵했다. 지독한 방관자. 나를 태어나게 하고, 내가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방관한 자가 끝까지 침묵했다.

“이딴 웃기지도 않는 짓거리…… 필요 없으니까 다 집어치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집을 뛰쳐나왔다. 얇은 천으로 가려 둔 과거가 재를 날리며 등 뒤에서 무너진다. 걷잡을 수 없는 붕괴에 휩쓸리지 않으려 푸르게 빛나는 마당을 다급히 가로질렀다. 변하지 않은 공기며 냄새에 평생 잊으려고 노력한 기억들이 잡초처럼 자라났다.

“형. 형!”

애타게 부르는 소리에 발이 우뚝 멈췄다. 겁도 없이 저를 한 번 죽였던 사람을 뒤따라온 동생이 내 앞에 선다.

“형. 잠깐만. 태워다줄게.”

태워 줘? 네가 날?

속을 알 수 없는 낯짝을 들여다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저 머리를 내려쳤던 감각이 흐리지만 아직 남아 있는데. 내 위로 쏟아지던 차가운 빗물과 피 냄새, 살기 어린 저주까지, 고스란히 내 안에 새겨져 있는데!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동생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래. 네가 정 그러고 싶다면.”

동생이 환히 웃었다. 당장 죽여 버리고 싶었다.

동생은 조수석 문을 친히 열어 주기까지 했다. 기가 찼다. 차 안에 앉아 보닛을 돌아 운전석에 오르는 동생을 눈으로 좇았다. 살아 있는 거로도 모자라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다. 날 당장 어떻게 하려는 속셈은 없는 것 같았지만 죽었다 살아난 놈이니 무엇 하나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먼저 선수를 칠까 고민했다. 손바닥에 땀이 고이고 숨이 찼다. 차 내부의 산소가 모자라서 창문을 내렸다.

“어제 병원에 있던 형사는 어떻게 만난 거야?”

동생은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사람이랑 무슨 일 있었어?”

“너.”

동생을 노려봤다. “응.” 하고 대답하는 동생은 정말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평온하기만 했다.

“내가 분명히 죽였어. 그 캠핑장에서.”

정면을 보고 있는 동생의 눈이 크게 벌어진다.

“형…….”

서서히 놀란 기색이 가라앉는가 싶더니 별안간 “풋.”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 황당함을 넘어 머리가 하얘졌다.

웃어…?

“어젯밤에 그런 꿈이라도 꿨어?”

동생은 속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아무리 봐도 눈앞에 있는 놈은 동생이 맞았다.

그렇다면 내가 머리를 박살 낸 그 새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내가 진짜로 미친 걸까?

“미안해, 형.”

그래, 그때도 지금처럼 내게 사과했다.

“갑자기 집에 데려와서 놀랐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는데……. 나도, 형도.”

알아들을 수 없는 미친 소리를 해 대는 걸 보니 미친 건 내가 아니라 동생이었다.

“오늘 일은 내 잘못이야. 내가 성급했어. 나, 형한테 최선을 다하고 싶어. 형이 괴로울 일은 없을 거라고 약속할게.”

약속……. 가장 믿었던 존재에게 배신당한 나에게 약속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하물며 존재조차 미심쩍은 동생의 말이 가치가 있을 리 만무했다.

“네가 나한테 최선을 다해? 나랑 뭘…… 어쩌고 싶은 건데?”

그런데도 의문이 드는 것이다. 뭐가 동생을 이렇게 변하게 했는지가.

“우리 진짜 가족이 되자. 형.”

동생의 말에서 번득한 기시감을 느꼈다.

예고도 없이 다시 마주하게 된 그 집의 식탁은 암울한 과거의 기억 중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처형대였다. 하루 두 번 앉아야 했고 그 수만큼 비참함과 고립감을, 형벌처럼 그들 앞에서 씹어 삼켜야 했으니까.

그런데 오늘은 전혀 달랐다. 김이 피어오르는 하얀 쌀밥이 내 앞에 놓여 있었고 엄마는 한때 내가 바라마지 않던 눈으로 나를 바라봐 주었다. 그때와 똑같은 배경에서 틀린 그림 찾기처럼 날 괴롭게 한 부분들만 수정된 풍경.

누군가 목적을 가지고 고의로 연출한 장면이지 않은가.

맥이 풀렸다. 이거였나. 나비가 내게 돌려주고 싶다고 한 것이…… 고작.

이걸 위해서 그날 캠핑장에서 동생을 먹지 않았단 건가. 가치 없는 의문이었다. 옆자리에 버젓이 앉아 있는 동생이 그 증거였으니까.

이제야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동생이 살아 있었으니 날 불안하게 만든 실종 신고도 애초에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여유로웠던 나비의 태도가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라고 생각하니 배신감이 들었다.

그날 숲속에서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 나비는 동생을 살려 두었고 세뇌를 했든, 최면을 걸었든, 내가 모르는 수작을 부려서 오늘, 이 거지 같은 가족 상봉을 만들어 낸 거다. 끝까지 날 속이다니…….

주먹을 꽉 쥐게 만드는 원망과 배신감은 금세 흘러내리고 스르륵 벌어지는 손바닥 안에서 잔잔한 안도가 퍼졌다.

나비는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저 입에 발린 소리라고 치부했지만, 일을 이렇게까지 벌였으니 그 말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 진심일 테다. 그러니까 옆에 앉은 동생은 나비가 나를 위해 만든 연극의 꼭두각시라는 말이다. 이게 전부 나비가 꾸며 낸 일이라면…….

그렇다면 혹시 나비가 어딘가에서 날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꼭두각시에는 필히 실이 달려 있기 마련이니까. 나비의 하얗고 매끄러운 손과 연결된 실이.

“네 말 믿어도 돼?”

잠자코 운전 중이던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 믿어 줘, 형.”

신호에 걸린 차가 부드럽게 정차했다. 고개를 내게로 돌린 동생과 눈이 마주쳤다.

“만약, 어떻게 해도 진짜 가족이 되지 못하면……?”

묻는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 줄게.”

동생의 미소가 생전 처음 다정하게 느껴졌다. 나비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처럼 부드럽게 마음을 녹인다. 그 얼굴을 보니 확신이 들었다. 적어도 ‘그렇게’ 될 때까지는 나비가 날 지켜보고 있을 거란 강렬한 확신에 심장이 뛴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감정이 북받쳤다.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목이 뻐근하도록 벅찬 숨을 삼켰다.

“……고마워. 진짜로 고마워.”

“……울지 마. 형.”

가짜 동생의 거짓 위로가 그럴듯하게 들려서 두 손바닥 안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나비가 아직 내 곁에 있다. 내가 역겨워서 떠난 게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냉장고 속에 있던 것이 나비의 머리가 아니라 정말로 다행이었다.

차창 밖은 의식하지 못하는 새에 고속도로에서 아파트 단지로 바뀌어 갔다. 한 치 머뭇거림 없이 차가 멈춘 곳은 정확히 내가 사는 동 앞. 내비게이션은 목적지가 찍혀 있지 않은 상태였으나 동생은 길 한번 묻지 않고 여기까지 차를 몰았다. 당연하게도 나는 동생에게 집 주소를 알려 준 적이 없다.

놀라진 않았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된 엄마도 그렇고, 그들과 나비 사이에 내가 모르는 뭔가가 존재할 거란 가정에 신빙성이 더 해졌을 뿐이다.

그게 도대체 뭘까.

기어를 파킹에 고정한 동생이 나를 본다. 그럴 수가 없는데 태연하기만 한 얼굴이다.

“눈 부었네.”

낮지도 높지도 않은 수평의 음성으로 열기가 도는 눈가를 지적한다. 고개를 돌려 한심한 얼굴을 숨겼다. 가짜일지라도 동생이었고 다 죽어 가던 동생 앞에서조차 울지 않은 나였다. 내 눈물이 저 때문이라고 착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울고 싶을 만큼 최악이다.

나비에 관한 생각으로 내 정신은 퍽 물렁물렁해져 있었다. 더 추태를 보이기 전에 이쯤에서 거리를 두려고 차 문고리를 잡았다. 혹시나 잠긴 건 아닐지 걱정했으나 차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형. 나 자고 가도 돼?”

운전석으로 휙 돌아가는 고개를 막을 수 없었다. 폭탄처럼 떨어진 요구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동안 뇌를 거치지 않은 대답이 먼저 나갔다.

“아니.”

너무 당황해 미쳤냐는 소리조차 덧붙이지 못했다. 동생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놀란 눈으로 멀뚱히 날 보다가 한발 늦게 말귀를 알아먹은 듯 허공을 더듬거리며 시선을 내렸다.

“……그렇구나.”

내가 거절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었다. 미친 새끼. 더는 표정 관리가 불가능해져 차 문을 마저 밀어젖혔다.

“형.”

두 발을 땅에 딛기가 무섭게 동생이 다시 나를 불러 세웠다.

“내일부터 출근이지? 잘 자.”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에 몸이 경직됐다. 동생은 지나치게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순간, 동생이 내가 몇 호에 사는지 모르지 않을 거라는 불길함이 스쳤다. 어쩌면 현관의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솟았다.

아니다. 집이나 회사 일 정도야 서류상 가족인 동생이 알려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알 수 있는 정보였다. 그 의도는 여전히 소름이 끼쳤지만.

애를 써 술렁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굳이 돌아보지 않은 채 아파트 입구로 걸어갔다.

시동이 걸린 차의 엔진 소리가 등 뒤에서 끈질기게 버텼다. 내가 현관 안으로 들어설 때까지도 그르렁거리며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끝까지 동생이 떠나는 걸 확인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이따위 소름 끼치는 가족 놀이를 얼마나 더 지속해야 하는 거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쳐졌다. 그 낯짝들을 보고 있노라면 물귀신 같은 그들이 날 늪으로 끌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안녕하세요.”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경비원이 내게 살가운 인사를 건네왔다. 낯이 익은 얼굴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피하며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경비의 손에 은색 열쇠 더미가 잘그락거렸다.

“저기.”

“예?”

나를 지나쳐 가던 경비가 돌아봤다.

“옥상 좀…… 볼 수 있을까요.”

경비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 열쇠 더미를 만지작거린다. 경계심이라곤 없던 푸근한 얼굴이 조금 곤란한 기색을 한다.

“아이고, 그게 지난번에 형사들이 와서 당분간 꼭 잠가 놓으라고 하도 신신당부를 해 가지고……. 뭐 중요한 거예요?”

장 형사가? 옥상엔 아무것도 없다고 했는데.

“왜 잠그라고 하던가요.”

경비가 고개를 기우뚱하며 군청색 모자를 괜히 한번 고쳐 썼다.

“듣기로는 그놈의 택배 기사가 빈집털이범이라던가……. 다른 동 주민들도 금붙이니 현금이니 몇 집 털렸다고 그러던데……. 나야 자세히는 모르고 경찰 양반들이 위험하다니까 그냥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난데없이 튀어나온 이야기에 사고가 따라가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손을 들어 한꺼번에 쏟아지는 경비의 말을 막았다.

“잠깐. 잠깐만요. 지금 무슨 말씀을…….”

주름진 눈을 동그랗게 뜬 경비가 여태 몰랐냐는 듯 “아유.” 하고 탄식했다.

“그 왜 거진 두 달 전엔가 경찰들도 몇 번 오고 그랬는데, 영 몰랐나 보네. 실종된 백운택배 기사요.”

백운택배, 까마득히 잊고 있었을 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단어였다. 열려 있던 현관문과 피가 낭자하던 집 안, 소파에 앉아 있던 나비의 입에서 떨어진 모자, 피가 튄 모자의 로고, 그리고 잇자국이 선명하던 손가락. 강렬한 기억들이 어제 일인 양 생생했다.

그날 내가 느꼈던 두려움과 혐오까지도.

경비원의 말이 진짜라면, 그럼 그날 나비는 무고한 택배 기사를 공격해 잡아먹은 게 아니라…….

가슴 한구석에서 파스스 부서진 가루가 날렸다. 내 안에 견고히 정립되어 있던 괴물의 형체가 이기적 편견과 속단의 껍데기를 깨부순 잔해였다. 너무 늦게 드러난 실체를 마주하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중요한 거예요?”

“……예?”

경비의 물음에 멍청히 되물었다.

“찾으려는 거. 중요한 거냐고요.”

답은 뻔히 정해져 있는데 말문이 막힌다. 되찾을 수만 있다면 내 전부와 맞바꿔도 좋을 만큼 중요했지만 나는 그에게 괴물이라 낙인찍고, 상처 입히고, 끝내는 도망쳐 버릴 때까지 몰아세운 가해자였다. 무지를 갑옷처럼 두르고 사랑해서라고 끔찍하게 자위하면서.

그렇지만 아직은 되돌릴 수 있다. 나비가 날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하루빨리 나비를 찾아내야 했다. 찾아만 낸다면 이번에야말로 나비에게 내게 남아 있는 피와 살이라도 바쳐 내 믿음을 맹세해 보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중요해요.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거예요.”

경비는 잃어버린 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자신이 다시 한번 둘러봐 주겠다며 엘리베이터에 타려 했다. 옥상에는 나비가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굳이 두 번이나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장 형사 쪽도 거짓말일 가능성은 적었다. 그가 옥상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면 어떤 식으로든 내게 언급해 단서를 얻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을 테니까.

그러니 나비는 그곳에 없다.

결론을 내린 나는 착각한 것 같다고 둘러대서 경비를 돌려보냈다. 지금 어설프게 나비의 주의를 끌어서는 안 됐다. 내가 저를 찾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면 더 꼭꼭 숨어 버리거나, 진짜 죽음으로서 날 끊어 내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혼자서 30층에 도착해 습관적으로 도어록에 손을 가져다 댔다.

“……뭐야.”

처음 보는 도어록에 당황해 현관문에 붙은 호실 팻말을 확인했다. 3001호, 내 집이 맞았다. 검지가 비밀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도로 내려가다가 그 아래 노란 쪽지를 건드렸다. 끝이 위로 삐친 굵직한 필체에서 급하게 쓴 티가 났다.

[전화 줘요. 장현욱]

장현욱……?

한참 만에야 그게 장 형사의 이름임을 인지했다. 어제 내가 집 안에 쓰러져 있었다고 했던가. 장 형사가 어떻게 알고 문을 뜯어내 들어왔던 모양이다.

연이은 재방문의 목적까지 궁금해하기엔 너무 지쳐 있었다. 얼른 들어가 쉬고 싶어서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 쓰여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연결 음은 짧았다.

―지금 집에 들어가는 겁니까?

장 형사가 다짜고짜 물어 왔다. 현관 비밀번호를 인질로 삼아 밑도 끝도 없이 시작된 심문에 순간 짜증이 치밀어 노란 쪽지를 구겨 버렸다.

“번호 뭡니까.”

―마음대로 바꿔서 미안합니다. 급하게 고치느라.

“번호. 뭐냐구요.”

말투에 털어 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감정이 덕지덕지 달라붙었다. 핸드폰 너머로도 충분히 느끼고도 남을 만큼.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이선우 씨 핸드폰 번호 뒤에 네 자리요.

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바뀐 번호를 치자 새 도어록이 명쾌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집 안에 들어서고 나서야 뒤늦게 미련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하아…….”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부어오르는 눈가를 쓸었다. 장 형사는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패 중 가장 유용한 패였고 그는 나비가 만든 인형 따위가 아니었다. 가뜩이나 까다로운 상대를 잘 구슬려도 모자랄 판국에 감정적으로 대응해 버렸다. 지금으로서는 장 형사를 이용해 나비를 찾아내는 것이 내가 세울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계획이라는 사실이 변함없는데도.

욕실로 들어가 옷도 벗지 않고 샤워기 아래 섰다. 그리고 정신이 번쩍 들 만큼 차가운 냉수를 틀었다. 물줄기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처럼 피부를 찌르며 타고 내렸다.

“실수하면 안 돼.”

피해자를 가장해 장 형사를 완전히 내 편으로 만들고 동시에, 내 가짜 가족 행세에 나비가 가장 방심했을 때. 철저히 위장해 그때를 노려야 했다.

“절대 실수하면 안 돼.”

내가 연기해야 할 두 가지 역할을 머릿속에 새겨 넣으며 한 번 더 주문처럼 되뇌었다. 더는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는 다짐을 뼛속까지 새겨 넣었다.

욕실에서 나오니 핸드폰에 메시지가 연달아 와 있었다. 얼얼해진 몸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발신인이 다른 두 개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형. 앞으로 저녁은 본가에서 같이 먹자. 퇴근 시간 맞춰서 데리러 갈게.]

[2901호 남자 실종됐습니다. 보여줄 게 있습니다. 연락 기다릴게요.]

어느 것에도 답장하지 않고 핸드폰을 뒤집어 놨다. 몸을 허물어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정신을 붙들고 감각을 둔하게 해 주던 찬 기운은 텅 빈 몸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금세 증발했다.

나비가 누웠던 자리를 손바닥으로 쓸어 보았다. 끌어안고 입 맞추고 싶었다. 너는 괴물이 아니라고, 괴물은 멍청한 나였노라고 잠이 들 때까지 다독여 주고 싶었다. 사랑한다고 죽을 때까지 말해 주고 싶었다.

한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나비를 대신해 나를 찾아왔다. 공허함이 야금야금 내 살을 발라 먹으며 크기를 키운다. 완전히 잡아먹히지 않으려 이불을 그러쥐었다.

“흑…….”

무언가 터져 나오려는 잇새를 깨물었다. 아예 베개에 머리를 파묻어 구멍이란 구멍을 틀어막았다.

내가 싫었다. 너무 힘들었다. 나비가 보고 싶었다.

∞ ∞ ∞

“대리님. 휴가 동안 살이 좀 빠지셨어요…?”

출근해 막 자리에 앉으려는 참에 나를 본 남자 사원이 말을 걸어 왔다.

“……예.”

굳은 성대에서 쇳소리가 났다.

밤은 압사할 정도로 나를 짓누르면서도 끝끝내 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환영마저 사라진 지독한 불면이었다. 밤이 옅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가물가물해지는 의식을 억지로 끌어 잡았다. 그리고 의미도 없는 현실로 돌아왔다. 내가 일궈 놓은 삶에 미련이 남아서는 결코 아니었다. 오로지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기 위해서였다.

“나도 순간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더 멋있어지셔서. 그쵸.”

나를 둘러싸고 조잘조잘 떠드는 소리가 골을 때리며 메아리쳤다.

“아. 정원 씨 왔어요? 대리님 좀 봐.”

시선 끝에 예 주임이 들어왔다. 마주친 예 주임의 눈동자가 급격히 떨린다. 겁에 질린 예 주임의 얼굴을 보자 나비의 허상이 어른거렸다. 내게 등을 보이고 멀어지는 나비의 뒷모습이 벌써 희미했다.

깔깔 웃어 대는 소리에 제대로 먹지 않은 빈속까지 울렁거렸다. 도대체 뭐가 저렇게 웃기지? 의자 등받이를 꽉 쥐었다. 제발, 저 입 좀…….

“입 좀 다무시죠.”

그게 내 입에서 나온 말인 줄은 사무실 전체가 순식간에 조용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질린 얼굴을 한 예 주임이 뒷걸음질 치며 사라졌다. 귀찮게 굴지만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시끄럽네요. 아침부터.”

나는 불쾌함을 선명히 드러내며 자리에 앉았다.

“……아, 죄송해요.”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그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든 이제 알 바 아니었기에 개의치 않고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했다. 어젯밤에 장 형사가 보낸 메시지의 내용이 마음에 걸렸다.

[2901호 남자 실종됐습니다. 보여줄 게 있습니다. 연락 기다릴게요.]

초조함에 엄지손톱을 물어뜯었다. 경찰이 아래층 남자가 사라진 걸 알았다. 수사가 나를 향할지, 사라진 아래층 놈을 향할지 미지수였다. 보여 줄 것은 또 뭐란 말인가. 내가 남긴 증거가 아니길 바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진짜 증거였다면 집이든 회사든 들이닥쳐 연행했을지언정 도어록을 고쳐 주고 태평하게 문자나 주고받고 있진 않았겠지.

어찌 됐든 장 형사와 대면은 불가피했다. 나는 더 미루지 않고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7시쯤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얼마 안 가 답장이 왔다.

[그럼 집으로 가겠습니다.]

집은 나비가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입력창에 ‘제가 경찰서로’까지 적었다가 지웠다. 장 형사의 진의도 파악하지 못했는데 경찰서에서 만나는 건 스스로 적의 입안에 머리를 들이는 꼴이었다. 어디가 적당할지 고민하는 사이 5분이 흘렀다. 다시 핸드폰이 진동했다.

[아니면 내가 회사 쪽으로 가죠.]

내 고민을 눈치챈 듯한 제안이었다. 허튼짓을 벌이기 어려운 공공장소이면서 사람들에 섞여 눈에 띄지 않을 만한 곳. 저쪽에서 먼저 제안한 것치곤 나쁘지 않다.

[알겠습니다.]

장 형사에게 회사 주소를 전송했다. 눈을 감고 피로에 전 얼굴을 쓸어내렸지만 한 톨도 덜어 낼 수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건 6시 50분이 막 되었을 때였다. 드르륵, 의자가 끌리는 소리에 예 주임이 화들짝 놀라 나를 쳐다보는 바람에 의도치 않게 눈이 마주쳤다.

“몸은…….”

예 주임은 내내 담아 둔 것처럼 불쑥 말을 꺼냈다.

“괜찮으세요?”

아직도 그런 걱정을 하고 있다니 의외였다.

“예 주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입니다.”

서둘러 예 주임과 거리를 벌려 사무실을 벗어났다. 차는 주차장에 둔 채로 회사 건물을 나왔다. 밖은 숨이 막힐 정도로 무더워 셔츠 안으로 금방 땀이 배어났다. 회사 앞에 정차된 차들 사이를 살펴보는 도중 전화가 걸려 왔다.

―이선우 씨.

통화를 연결하고 잠깐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장 형사의 낮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금 어딥니까.

“여기…….”

시선을 도로 쪽으로 보내며 운을 떼자마자 낯익은 차가 갓길에 섰다.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고 운전석에 앉은 장 형사가 핸드폰을 든 채 고개를 내밀었다. 치켜뜬 삼백안이 유독 서늘하다. 어제의 통화가 원인인지 몰라도 기분이 별로인 듯 보였다.

“타요.”

무의미한 망설임을 접고 장 형사의 차에 탔다. 에어컨 바람이 셌다. 땀이 밴 몸에 갑자기 강한 냉기가 닿아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몸 괜찮은 거 맞습니까? 그 뒤로 병원 안 갔어요?”

굵직한 검지가 버튼을 연달아 눌러 바람 세기를 줄인다. 줄줄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내심 안도했다. 장 형사는 2901호에서 내가 범인이라는 증거를 찾지 못했을 거다. 언뜻 들어선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 형사의 말에는 일말의 긴장감도 담겨 있지 않았으니까. 그렇담 내가 주눅 들 필욘 없었다. 길어져 이따금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직설했다.

“장 형사님. 본론만 얘기하죠. 우리.”

“쯧. ……큼.”

부자연스러운 헛기침을 한 장 형사가 주먹으로 입을 가린다.

감기라도 걸렸나. 병원은 저나 갈 것이지.

이제 보니 심문도 뭣도 아니었다. 이 남자는 단순히 오지랖이 넓었다. 내게 보여 줄 게 뭔지나 빨리 말해 주길 기다리는데 차가 출발했다.

“일단 갑시다.”

어딜? 역시 간단한 이야기는 아닌가 보았다. 성급하게 캐물어서 경계심을 높일 바에야 그냥 시트에 몸을 기대 뻑뻑한 눈을 감았다. 장 형사는 별다른 말 없이 잠잠했다. 졸음이 물밀듯 몰려왔다. 일곱 시가 넘었는데도 환한 창밖을 보며 조금 흐릿해진 나비의 얼굴을 떠올려 보다가 모르는 새 잠이 들었다.

똑똑.

노크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나는 급히 주변을 살폈다. 장 형사의 차 안이었고 빌어먹을 냉장고는 없었다. 익숙한 환청보다 둔탁한 소리였던 것 같기도 했다.

“아,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가겠습니다.”

운전석에 앉은 장 형사가 차창을 열고 밖의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다. 운전석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어디예요, 여기.”

잠긴 목소리가 갈라졌다. 차가 선 곳은 어딘가의 주차장인 듯했고 날은 완전히 컴컴해져 있었다.

“언제 도착한 거예요.”

“얼마 안 됐습니다.”

차 내비게이션의 시계를 보려는데 시동이 꺼졌다. 앞 유리창 너머로 뜻밖에도 커다란 고깃집 간판이 보였다. 너무도 의외인 장소 선정에 넋이 빠져 운전석을 돌아보자 장 형사가 쌀쌀맞은 얼굴로 물었다.

“저녁 아직이죠?”

말투가 시큰둥했다. 갑자기 뭐라는 거지. 장 형사의 의도를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차에서 내리고서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도착한 고깃집은 회사에서 겨우 20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깨우셔도 됐는데.”

앞서가는 뒤통수에 대고 말하자 “저도 눈 좀 붙였습니다.” 하는 대꾸가 돌아왔다. 거짓말이란 게 뻔히 보였지만 두 시간 가까이 자 버린 나로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단골집인지 익숙하게 주문을 한 장 형사는 투박한 손으로 요령 있게 고기를 구웠다. 뒤집을 타이밍에 맞춰 딱 한 번씩만 뒤집더니 다 익은 고기는 가위로 숭덩숭덩 잘라 일정한 크기로 가지런히 늘어놨다. 손놀림이 보기보다 유연했다.

잠이 덜 깨서인지, 장 형사와 마주 앉아 돼지갈비나 먹게 될 줄은 예상 못 해서였는지, 좀체 얼떨떨한 정신이 돌아오질 않았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내고 쌓여 가는 고기를 보고 있으려니 없던 식욕이 솟았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먹어요.”

그 말에 손이 기다렸다는 양 젓가락을 들었다. 달큼한 양념에 절인 고기가 들어가자 모처럼 배 속이 든든해지는 기분이었다. 불판의 고기를 싹 비우고 나서야 갈비 양념 한 방울 없이 깨끗한 장 형사의 앞 접시가 눈에 들어왔다.

귀찮기만 하던 누군가의 오지랖에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분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고기…… 잘 구우시네요.”

“그러는 그쪽은 잘 먹네요. 입 짧을 것 같았는데. 부족하면 더 시켜요.”

“아뇨. 전 괜찮습니다.”

민망함에 슬며시 젓가락을 내려놓자 장 형사가 핸드폰을 꺼내 내밀었다.

“사진첩 확인해 봐요.”

사진?

잠시 망설이다가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잠금이 걸려 있지 않은 화면을 켜고 사진첩 앱을 누르자 좌르륵 뜬 사진 목록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대부분 헐벗은 몸 사진이었다.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뒤섞인 사진을 대충 확인하고 이딴 걸 왜 보라고 한 거냐는 뜻으로 눈만 들어 장 형사를 쳐다봤다.

“마지막 사진.”

무덤덤한 장 형사의 표정을 읽긴 어려웠다. 장 형사의 페이스에 말리는 기분이었지만 찝찝함을 억누르며 시키는 대로 불그스름한 사진 중 유일하게 푸른 마지막 사진을 열었다.

액정 가득히 확대된 사진 속 인물을 가장 빨리 알아챈 것은 심장이었다. 쿵쿵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액정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이 그리워 마지않았던 얼굴을 넋 나간 뇌리에 쾅 들이박았다.

“거기 업혀 있는 사람. 그쪽이죠.”

플래시도 켜지 않은 야간 사진이라 노이즈가 자글자글했다. 그래도 화면 속에 날 업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는 온몸으로 알았다. 나비가 거기 있었다.

“2901호에서 찾은 그 자식 핸드폰입니다.”

사진을 본 순간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아래층 남자가 날 협박하며 보여 준 사진이었으니까.

거친 화면 속에서도 말간 얼굴은 환히 빛났다. 얼마 만에 보는 얼굴인지 까마득했다.

이렇게 못 보게 될 줄 알았다면 나도 찍어 뒀을 텐데. 엄지로 화면 안의 애틋한 뺨을 지워질까 조심조심 쓸었다.

“그 핸드폰은 아직 나밖에 모릅니다. 원한다면 사진은 지워 주겠습니다.”

장 형사가 핸드폰을 가져가려 손을 내밀었다. 나는 우두커니 상처투성이의 뜨거운 손을 바라보았다.

장 형사는 쓰러진 날 병원에 데려다주고, 밥을 먹이고, 이젠 증거까지 지워 주겠다고 말한다. 날 의심하기는커녕 불쌍한 피해자라 여기고 있었다. 오지랖 넓고, 미련하리만치 사람을 잘 믿고,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

그렇다면, 솔직하게 부탁하면 찾아 주지 않을까?

손안에 들어온 작은 나비를 빼앗기기 싫어 꽉 쥔 채 장 형사를 마주 보았다.

“장 형사님. 여기 이 남자…….”

서서히 일그러지는 장 형사의 얼굴이 물에 빠진 것처럼 이지러진다. 그가 물살에 휩쓸려 사라지기라도 할까 봐 내민 손을 덥석 붙잡았다. 어느덧 눈가가 축축했다.

“이 남자 좀 찾아 주세요. 제발.”

둑이 터지고 참아 온 눈물이 넘쳐흘렀다.

∞ ∞ ∞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대고 장 형사는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나는 나대로 머릿속이 복잡해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사진 속 나비의 얼굴을 보자 이성이 날아갔다. 계획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실종된 겁니까. 그 남자도.”

장 형사는 그렇게만 물었다. 나와 나비의 관계는 눈치로 안 듯 거기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다. 이제 와서 발뺌하기도 늦었다 생각해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추가 피해자란 소리나 다름없는 말에 장 형사의 표정이 한층 더 심각해졌다.

“언제요?”

“4일…… 아니, 5일 전이요.”

“이름은요.”

“…….”

벌어진 입에서 소리 없는 탄식이 새어 나갔다. 장 형사의 질문에 숨은 뜻이 없음은 알았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서 나에 대한 동정심과 약간의 참담함까지 느껴졌다. 그런데도 이름을 묻는 예사로운 질문에 약점을 찔린 것처럼 가슴이 요란하게 삐걱거렸다.

“이름이요. 이름하고 나이, 가족 관계, 특이 사항.”

대답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장 형사는 자꾸 물었다. 정체 모를 감정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눌렀다.

“뭐라도 알려 줘야 찾아보든 할 거 아닙니까.”

전에 없이 나지막한 음성으로 장 형사는 나를 설득하려 했다. 추궁도 유도 신문도 아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게 치명상을 입히는 줄도 모르고.

너는 그 괴물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날 단념시키려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그런 괴물을 찾아서 어쩌려는 거냐고 비난하는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나비는 괴물이 아닌데……!

나는 장 형사를 노려봤다.

“이름도 나이도 모릅니다.”

“뭐라고요?”

“그 사진으로도 수색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멀리까진 필요 없어요. 서울…… 아니 이 근처만이라도 좋아요.”

장 형사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내리깐 눈이 취조실에서 봤을 때보다도 더 싸늘했다.

“이선우 씨. 지금 내가 우스워요? 경찰이 무슨 하룻밤 상대나 찾아서 연결해 주는 사람인 줄 압니까?”

“하루……, 그런, 그런 거 아니에요! 전 이 남자 꼭 찾아야 해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다급함에 목소리가 커졌다. 장 형사가 거칠게 입술을 비틀어 그런 나를 비웃었다.

“……하, 이름도 모르는 남자를? 진짜 어이가 없어서.”

처음 보는 장 형사의 빈정거리는 얼굴에 놀란 심장이 덜컥였다. 장 형사는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 잠시 멎은 듯했던 심장이 다시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렇게 돼선 안 돼. 여기서 그가 내게 등을 돌리게 해서는 안 됐다. 급히 핸들 위에 올려진 장 형사의 팔목에 매달렸다. 두꺼운 팔이 움찔거렸다. 그래서 더 꽉 쥐었다.

“저 도와만 주시면 뭐든 할게요.”

“뭐……?”

나는 필사적이었다. 눈에 보이는 게 없었다. 내가 가진 패를 다 사용해서라도 기회를 만들어야 했다. 단 한 번이라도 나비를 다시 볼 기회를!

“제가 아는 거 전부 말할게요. 아래층 남자랑 택배 기사, 옆집, 옆집 할머니 그리고……, 그리고 그 개새끼에 관한 것도……!”

합, 입을 다문 순간 장 형사의 흉터 난 눈썹이 어긋났다.

“개새끼?”

시린 목소리가 정수리에 꽂히는 듯했다. 아. 돌이킬 수 없었다. 잘 벼려진 사냥꾼의 시선이 내 표정을 낱낱이 뜯어보는 중이었다. 온몸의 피가 빠르게 발밑으로 빠져나간다. 실수했다. 실수했다…….

“그, 그게…….”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고 할수록 장 형사의 표정은 냉랭해졌다. 멍청하게 더듬기만 하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머릿속이 온통 하얬다. 장 형사가 자기 팔을 잡은 내 손을 떼어 냈다. 단호한 몸짓에서 그가 내게 견고한 의심의 벽을 세웠음이 뼈저리게 전해졌다.

“이선우 씨. 지금…….”

똑똑.

망가진 신경이 또 환청을 일으킨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엔 장 형사에게도 소리가 들린 듯이 무뚝뚝한 음성을 뱉던 입술이 멎었다. 말을 멈춘 장 형사의 시선은 나를 비켜 조수석 창문을 향했다.

똑똑.

뒤에서 누군가 다시 창문을 두드렸다. 장 형사는 느리게 시선을 내게로 옮겼다. 나는 박제된 것처럼 부동자세로 굳어 있었다.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했다간 나비와의 재회가 산산이 조각날 것 같아 무서웠다.

장 형사가 길게 콧숨을 뱉었다. 그리고 왼손으로 도어 트림의 버튼을 눌렀다.

조수석 창문이 내려가며 차 안으로 더운 공기가 흘러들어 왔다. 미지근한 바람이 뒷머리를 스치고 “하아…….” 누군가의 옅은 한숨이 목덜미를 간질였다.

“나랑 한 약속 깜빡했나 보다, 형.”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에 놀라서 얼어붙었던 고개가 홱 돌아갔다. 허리를 살짝 구부려 열린 틈으로 차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동생이었다.

“안녕하세요. 형사님.”

생긋 웃으며 동생이 나를 건너 장 형사에게 인사했다.

“……제 차인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형 차가 없길래 기다리고 있었는데 창문으로 보이던걸요. 형이.”

“밖에선 안 보일 텐데요.”

한 치의 틈 없이 이어지는 장 형사의 건조한 목소리가 취조실을 방불케 했다. 단지 심기가 뒤틀려 트집을 잡는 건 아니었다. 장 형사의 의심은 합리적이었다. 그 말대로 장 형사의 차는 선팅이 짙었고, 빛 한 점 없는 한밤중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존재 자체가 불합리한 인간이었다. 나는 혹여나 동생이 헛소리를 늘어놓을까 긴장했다.

“제가 밤눈이 밝아서요. 형이 또 형사님께 신세를 졌나 보네요. 제대로 감사 인사드리고 싶은데, 언제 한번 저한테도 시간 좀 내주세요.”

태연하게 대꾸한 동생은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봤다.

“형. 안 내려?”

팽팽한 침묵이 감돌았다. 어느 쪽도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 선택지 사이에서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조수석 문을 여는 쪽을 택했다. 장 형사와 있다간 그의 추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최악보단 차악이 나았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장 형사의 끈질긴 시선이 피부를 찔렀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장 형사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 동생이 인사하며 차 문을 닫았다. 장 형사의 차는 거친 엔진 소리를 내며 빠르게 아파트를 벗어났다. 다시 나를 의심하고 있을 장 형사도 문제지만, 갑자기 나타난 동생도 골치 아픈 문젯거리였다.

“여기서 뭐 하고 있었어?”

결과적으로 도움을 받은 꼴이 되긴 했지만, 이 시간까지 여기서 무슨 수작을 꾸미고 있었던 건지 신경 쓰였다.

“형 기다렸지. 어제 같이 저녁 먹자고 문자 보냈는데. 못 봤어?”

동생은 당연하다는 듯 저가 여기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 해명은 이상했다. 나는 답장도 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기다렸다고?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동생이 힐끔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열 시네. 저녁 먹었어?”

“…….”

그러곤 눈을 접으며 장 형사의 차가 떠난 쪽으로 슬쩍 고갯짓했다.

“저 형사랑?”

뒷덜미가 섬찟해졌다. 나비에게 뇌를 먹히다 말았는지 맛이 가도 제대로 간 표정이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동생에게 하나하나 대꾸해 줄 가치는 없었다. 동생은 나비가 짜 놓은 각본대로 행동할 뿐이었다.

“나 자고 가면 안 돼?”

그 말은 무시하기 어려웠다.

미친 새끼. 왜 자꾸 자고 가겠다는 거지?

“안 돼.”

내내 소름 끼치도록 생글거리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신다. 딴에는 연달아 거절당해서 기분이 나쁜 모양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동생의 기분까지 맞추고 싶진 않았다. 턱을 짧게 치켜올려 대놓고 꺼지란 신호를 보냈다.

“가. 피곤하니까.”

멀뚱히 서 있는 동생을 무시하고 아파트 현관 쪽으로 돌아섰다.

“형.”

무시하고 걸어 나갔다. 뒤에서 몇 발짝 걷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몸이 홱 돌아갔다. 동생이 어깨를 붙잡아 돌린 것이다. 나보다 조금 높은 시선이 내게 달려드는 듯했다.

동생이 나보다 컸던가? 짧은 의문이 일었다.

“저 사람 그만 만나.”

침침한 가로등 불빛을 반사하는 동생의 눈이 어둡다. 찰나 압도되었단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거세게 동생을 밀쳤다.

“내 몸에 손대지 마.”

비틀거리며 밀려난 동생이 눈가를 찌푸렸다. 화가 난 듯한 표정에 혹시라도 일어날 몸싸움을 대비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동생은 그저 내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왜?”

“왜? 너랑 나랑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

“……그런 사이.”

시선을 내리깔고 내 말을 곱씹던 아랫입술이 하얀 이에 미약하게 짓눌렸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동생은 한 발 더 물러났다.

“알겠어. 그럼 형도 그만 만날 거지? 저 남자.”

“……네가 왜 그걸 신경 써?”

“만날 이유가 없잖아. 형이 범죄자도 아닌데.”

나비가…… 그렇게 말했어?

가슴이 욱신거렸다.

“……맞을지도 모르지.”

따박따박 토를 달던 입이 다물렸다. 동생은 입력 오류를 일으킨 로봇 같은 무표정으로 나를 빤히 봤다. 몸도 마음도 지쳤고 날이 더웠다. 쓸데없는 대치였다. 갑갑한 숨을 길게 내쉬면서 감정을 추슬렀다.

“안 만나. 오늘도 그냥 우연히 마주친 거야.”

나비는 그렇게 알아야 했기에 동생에게 변명을 늘어놓는 건 내키지 않았으나 대충 말을 꾸며 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언제 그랬냐는 양 예의 답답한 미소가 퍼졌다.

“내일은 나랑 저녁 먹을 거지?”

주먹을 쥐어 혀끝까지 치민 욕을 참았다. 여기서 혼자 울컥해 봐야 머리에 솜이나 들어찬 헝겊 인형을 두고 화를 내는 것만큼 의미 없는 짓이었다. 게다가 이쪽마저 망칠 순 없었다. 장 형사에게 기대할 수 없게 됐으니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나비를 찾아내야만 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 끌어내는 것이 호랑이를 잡는 가장 빠른 방법일 테니.

“그래. 일곱 시까지 갈게.”

“아니. 내가 데리러 올게, 형.”

“……마음대로 해.”

그때나 지금이나 끈질긴 놈이다. 붙잡지 못하도록 서둘러 돌아서 가는데,

“잘 자, 형.”

그따위 역겨운 인사가 또 따라붙었다.

∞ ∞ ∞

출근해서 오전 내내 울리지 않는 핸드폰을 수십 번도 넘게 확인했다. 어제 죽은 애인을 언급하는 치명적인 실언을 한 이후로 장 형사한테선 연락이 없다. 그게 더 불안한 탓에 어젯밤도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반차를 썼다. 장 형사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본가에 쳐들어가서 뭐라도 알아내는 편이 빠를 거란 결심이 서자 낭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인상을 쓴 고 부장이 뭐라고 떠들어 댔지만 중간에 돌아섰다. 사무실을 나서는 내 뒤로 말 없는 시선들이 뒤따랐다. 괜찮았다. 어차피, 오래 있지 않을 곳이었으니까.

차를 몰아 집 앞에 내리자,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마주쳤다.

“일찍 끝났네, 형.”

연락도 없이 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오후 두 시였다. 저녁을 먹기엔 지나치게 이른 시각.

“너…….”

그렇다곤 하나 당황은 잠시였다. 언제부터 여기 있었냐고 따져 묻기도 귀찮았다. 어제와 같아 보이는 옷차림에 설마 여기서 밤을 새운 건가 싶었지만 그것 역시 걸고넘어져 봤자 내 입만 아팠다.

“기다려. 옷만 갈아입고 올게.”

동생을 지나쳐 현관으로 가려는데, 불쑥 앞이 가로막혔다. 왼쪽 가슴께에서 반대편 옆구리까지 사선으로 가로지른 동생의 팔이 몸에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멈춰 선 그대로 눈만 돌려 앞을 막은 동생을 노려봤다. 눈이 마주치자 동생의 고개가 내 쪽으로 슬쩍 기울었다.

“같이 올라가면 안 돼?”

역시나.

“왜, 내가 안 내려올까 봐?”

아무래도 나비는 저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놓은 연극을 내가 놓칠까 노심초사하는 모양이었다. 밤새 집 앞까지 지키게 하고…….

노력이 가상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동생이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집에 못 들어가게 하는 건지 궁금해서.”

삽시간에 웃음기가 휘발되었다.

“그새 뭐라도 숨겼나……. 그런 걱정이 들어서.”

나를 내려다보며 동생은 입술만 휘어 웃었다.

숨겨……? 씨발.

이가 갈렸다. 나비가 떠난 집에 남은 건 지독한 외로움과 끝없는 불면뿐이었다!

차갑게 식어 굳어졌던 분노가 쩍쩍 갈라지며 시뻘건 속을 흘렸다. 나는 턱을 치켜들고 동생의 귓가에 속삭였다.

“없어. 알잖아, 도망갔어.”

길을 막고 선 어깨를 세게 밀치고 지나쳤다.

“나쁜 새끼.”

울분을 씹어 뱉었다. 나비가 듣길 바라면서.

동생의 차를 타고 본가로 향하는 동안 나는 고집스럽게 창밖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왜인지 동생은 내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그 침묵에 이상하게도 나는 시무룩해진 나비를 떠올렸다. 동생에게서 나비를 떠올리다니 심각한 중증이었다.

“어서 와, 선우야.”

현관문을 열자마자 엄마가 나를 반겼다. 갑작스러운 등장에 하마터면 인상을 찌푸릴 뻔했다. 전혀 달갑지 않은 환대를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따스하고 안락한 위선으로 가득 찬 집이었다.

“저녁에 올 줄 알고 준비를 못 해서 밥 되려면 조금 걸리는데 배 많이 고프니?”

상냥한 말투가 어색했다.

“선우야……?”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있었나 보다.

“아뇨. 천천히 하세요.”

“그럼, 편히 있어. 선호는 엄마 좀 도와줄래?”

동생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더니 이내 엄마를 따라 주방으로 사라졌다. 덕분에 덩그러니 거실에 혼자 남겨진 나는 분위기를 살피다가 조용히 가장 가까운 방문을 열었다. 나비의 단서를 찾을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동생 방을 뒤져 보고 싶었지만 2층을 오가기엔 시간이 충분치 않을 듯했다.

침실인 줄 알고 들어간 곳은 아버지의 서재였다. 바닥에 깔린 두꺼운 카펫이 주춤거리는 발소리를 삼켰다. 달칵, 조용히 문을 닫았다.

방의 중앙에 검은 원목 책상이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양쪽 벽면이 거대한 책장으로 막혀 있어 대낮인데도 방 안은 어두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개방형 책장은 비밀을 숨기기에 적당하지 않아 보였다. 책장을 포기하고 책상으로 가서 서랍부터 전부 열어 봤다. 세 개의 서랍 중 두 개는 잡다한 것들이 들어 있었고 가장 밑에 서랍은 잠겨 있었다.

“열쇠가…….”

책상 위에서 열쇠가 보관될 만한 곳을 전부 뒤졌다. 필기구가 꽂힌 통을 뒤집어 바닥을 확인하고 데스크 매트를 들쳐 봤다. 안경이 들어 있는 케이스며 달력과 시계까지 샅샅이 살펴봤지만 허사였다.

열쇠는 아버지가 지니고 있을지도 몰랐다. 당장 열어 볼 방법은 없으니 어질러진 책상 위를 원래대로 정리했다. 위험을 감수하기엔 아버지는 나비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가장 적은 인물이었다. 역시 동생 쪽이 정답일까.

서둘러 긴 책상을 돌아 나오는데 손끝에 부딪힌 무언가가 툭 쓰러졌다. 책상 끄트머리에 놓여 있던 액자였다. 살풍경한 방 안에 액자라곤 그것 하나였다. 아버지가 이 방의 유일한 액자 속에 넣어 둔 사진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불쑥 솟았다.

뒤집힌 액자를 집어 들었다. 오래된 사진 속엔 젊은 아버지와 안경을 쓴 남자가 함께였다. 하얀 가운을 입고 악수를 하는 모습 뒤로 장기 이식 센터 센터장 임명식이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장기 이식……?”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아버지가 대학 병원에서 센터장을 맡았다는 건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게 장기 이식 센터인 줄은 몰랐던 사실이다.

제 업적을 기록한 사진을 전시해 둔 것이 너무 아버지다워 김이 샜다. 그런데 오래되어서 해진 사진의 모서리 쪽이 눈에 걸렸다. 언뜻 비치는 질감이 액자 뒤에 들어가기 마련인 백지나 나무판 따위와 확연히 달랐다.

홀린 듯 액자 뒷면의 작은 고리들을 돌려 분해했다. 덧대진 나무판을 들어내자 지지대를 잃은 사진이 책상 위로 툭 떨어졌다. 묘하게 소리가 둔탁했다.

조심스레 집어 사진의 테두리를 비틀 듯 문지르자 바스락거리며 한 장처럼 보이던 사진이 두 장으로 분리됐다.

앞의 사진이 위장용이었음을 깨닫자 마른침이 넘어갔다. 아버지가 버리지 못하고 숨겨 놓아야만 했던 의문의 사진을 뒤집었다.

“……이건.”

여자의 사진이었다. 긴 생머리의 창백한 여자가 맨바닥에 앉아 멍하니 이쪽을, 아니 카메라를, 아니…… 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그 여자가 내 친모라는 사실을 나는 첫눈에 알아차렸다.

검은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여자는 어렸다. 어리고 아름다웠다. 여자의 텅 빈 시선에서 나와 같은 공허함이 느껴졌다. 어째서 아버지는 제 손으로 죽인 여자의 사진을 비밀리에 간직하고 있었던 걸까.

문 바깥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두 장의 사진을 겹쳐 액자를 다시 조립하고 정신없이 서재를 나왔다. 조용히 문을 닫고 아무렇지 않게 소파에 앉았으나 내 정신은 액자 속에 갇혀 있었다.

사진 속 여자가 앉아 있던 차갑고 거친 시멘트 바닥. 어두컴컴하고 습한 지하실 냄새가, 이 집 안 어디선가 나는 듯했다.

“형. 선우 형.”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소파 등받이를 두 손으로 짚고 선 동생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제 발 저린 도둑처럼 몸이 굳었다.

“어?”

“몇 번이나 불렀는데. 못 들었어?”

“어……. 왜?”

“왜긴. 밥 먹으라고 불렀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게서 수상한 낌새를 맡았는지 동생이 문득 거실을 휘이 둘러본다. 건조한 시선이 닫힌 방문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듯 스쳐 갔다.

뭔가…… 눈치챘나?

마르는 입술을 축이며 요지부동인 어깨를 은근슬쩍 식탁 쪽으로 밀자 동생의 시선이 곧장 내게 돌아왔다.

“안 가?”

동생은 반사적으로 한쪽 발을 뒤로 물려 닿아 있던 몸을 떨어트렸다. 손대지 말라던 말을 담아 둔 듯한 행동이었다.

“……아니. 가야지.”

동생의 뒤를 따라가며 문득 떠오른 위화감에 집중했다. 뭔가 이상했다. 가까이서 본 동생의 눈빛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동요가 읽혔다. 마치 겪어 보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린아이 같은 눈빛.

“배고팠지? 얼른 앉아.”

식탁 의자에 앉은 엄마 앞에 한 상 가득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전부 모형처럼 보여 조금도 식욕을 자극하지 못했지만 나는 기꺼이 그 시험대에 앉았다.

“입에 맞으려나 모르겠네.”

무언의 압박감을 느끼며 숟가락을 들어 갈색 국물을 떠 마셨다. 당연하지만 나비가 해 주던 것과 다른 맛에 실망하고 말았다. 입꼬리를 끌어 올리기가 더욱 힘겨웠다.

“……맛있네요.”

“선우야. 언제든 밥 먹으러 집에 와도 돼. 그냥 와도 되고. 네 방도 있는 네 집이잖아.”

한 모금 겨우 삼킨 국물이 목에 걸렸다. 게워 내지 않으려 어금니를 깨물고 쓴 물을 삼켰다. 이제는 감탄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 순진하고 세상 물정 모르던 나비가 도대체 어떻게 이들을 구워삶은 건지.

나는 오직 나비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목구멍에 달라붙어 나오지 않는 말을 쥐어짜 냈다.

“저번엔 죄송했어요. 사실…… 저도 돌아오고 싶었어요. 고마워요, 엄마. 그리고 선호도.”

그러면서 일부러 동생의 어깨를 쥐었다. 역시나 손바닥 아래 어깨가 흠칫 튄다.

왜지? 단지 내가 건들지 말라고 해서?

의혹은 동생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더 짙어졌다. 내게 처음으로 이름을 불린 동생의 웃는 얼굴이 어딘가 어색했다. 살짝 숙인 고개는 나를 보지 못하고 식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선 감동해서 내 눈을 봐야 하는 게 아닌가?

“고맙긴. 내가, 엄마가 더 고맙지.”

엄마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마침내 원하던 속죄를 얻어 감격한 표정이었다. 예상대로였고 마땅한 반응이었다. 엄마에게 손이 잡힌 나는 그저 웃었다. 그리고 한때 내 목을 졸랐던 손을 꼭 마주 잡으며 다정하게 말을 꺼냈다. 오늘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한 진짜 목적을.

“엄마. 괜찮으시면 여름 가기 전에 다 같이 한적한 바다로 놀러 가요. 가서 그간 못 한 이야기도 나누고, 제대로 된 추억도 만들고요.”

내 속셈을 꿈에도 모르는 엄마는 갑작스러운 제안에 잠시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의심 없이 기뻐했다.

“가족 여행? 가면 정말 좋을 것 같긴 하다.”

나는 동생을 돌아보았다.

“너도 괜찮지?”

“응. 가요, 엄마.”

“그런데 네 아버지는 좀…… 어렵지 않을까.”

“제가 설득할게요. 다 같이 가자, 형. 가족 여행.”

최선을 다하겠다더니 입에 발린 소리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림이 그럭저럭 보기 좋아 우습게도 제법 뿌듯해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자신이 만든 그림에 만족하고 있을 나비를 생각하자 치밀어오르는 흥분을 꿀꺽 삼켰다.

네 노력을 봐서라도 기분은 내줄게. 그리고 가장 행복한 순간에 전부 밝혀 줄게.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네가 기어 나오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나비를 볼 수 있단 벅찬 설렘에 이번엔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는 기계적인 식사를 끝마치는 데는 생각보다 더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한 그릇을 겨우 비우고 나니 속이 거북했다. 값싼 속죄를 마친 엄마가 개운한 얼굴로 짝 손뼉을 쳤다.

“다음에 봉사 갈 때는 선우 너도 같이 가면 좋겠다.”

동생에게서 얼핏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지만, 자세히 떠오르지 않아 그냥 웃어 보였다. 내 미소를 긍정으로 이해한 엄마가 이제 막 숟가락을 내려놓은 동생을 보았다. 아주 신이 난 표정이었다.

“아, 선호 너 형한테 이것도 말했니?”

“네, 전에 한 번.”

“그래? 잘했네. 시간 날 때 둘이 가서 쉬고 와. 수녀님도 뵙고. 볼 건 없지만 마음이 편해지는 동네야. 선우 너도 맘에 들걸?”

내가 제 아들에게 한 짓을 알면 절대 못 할 말이었다. 게다가 그 동네에 대한 동생의 평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은데, 기묘한 동네라고 에둘러 흉을 보지 않았었나?

애지중지하는 제 아들과 악마의 자식이라던 나를 고립된 촌구석으로 떠밀면서도 엄마의 표정은 퍽 자애로웠다.

“우리 잘생긴 두 아들이 가면 수녀님이 좋아하시겠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변할 수 있는 걸까? 식탁 아래에서 소름이 돋아난 팔을 몰래 쓸었다.

식탁 정리를 돕고 후식까지 먹고 가라는 권유는 거절했다. 그렇게까지 했다간 아직 소화되지 않은 음식들을 엄마 앞에서 전부 게울 것 같았다. 아쉬워하는 엄마를 건성으로 달래고 돌아가려는데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선호는요?”

“응? 화장실에 갔나?”

멋대로 데리러 오겠다고 억지를 쓸 땐 언제고 볼 장 끝나니 방치다. 주변이 고급 주택뿐인 동네라 교통이 불편했다. 택시를 불러도 됐지만, 아까부터 드는 의혹을 확인하고 싶어서 나는 부러 문이 닫힌 화장실에 노크했다. 안에서 쏴아아 쏟아지던 물소리가 멎는다. 나는 고요해진 문 너머로 내 목소리를 흘려 넣었다.

“선호야. 나 집에 갈 건데….”

거기까지 말했을 뿐인데 문이 벌컥 열렸다. 놀란 나는 주춤거리며 문에서 떨어졌다. 문틈으로 얼굴을 내민 동생의 입가가 박박 문지른 듯 붉었다.

“데려다줄게, 형.”

조금 헐떡이는 동생의 턱 끝에서 투명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또다. 또 말도 안 되는 기시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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