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22)

저기 구석진 곳에 세워진 기둥에 한 아이가 매달려 있었다. 딱 달라붙어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눈동자에 눈물이 한가득 맺혀있다. 살짝만 건드려도 바로 눈물을 줄줄 흘릴 것 같은 그 모습에 태유는 봉지를 잔뜩 들고 있다가 문을 여는 태양의 다리를 발끝으로 툭툭 쳤다. 

“태양아. 저 녀석은 뭐야?”

“나를 좋아하는 스토커 꼬맹이에요.”

“저렇게 어린 녀석도 수배 범위였어?”

“그럴 리가 있겠어요.”

피식-하고 웃은 태양은 문을 활짝 열고 태유에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이미 동석에 대한 관심이 다 사라진 태유는 한 짐을 들고 태양의 집으로 들어갔다. 태유가 안으로 들어가자 자전거를 끌어 현관 한쪽에 딱 붙여둔 태양은 얼굴을 돌려 동석을 쳐다봤다. 내내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동석은 태양과 눈이 마주치자 헛숨을 삼켰다. 움찔하고 몸을 떨면서도 이쪽을 쳐다보는 시선을 물리지 않는다. 그것에 피식-하고 웃은 태양은 손가락에 건 열쇠를 빙글빙글 돌리며 집으로 들어갔다. 탁-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태양이 안으로 들어가자 동석의 눈꼬리에 매달려 있던 눈물이 뚝 떨어진다. 

“....저 여시 같은 놈은 또 뭐야...”

멍멍이 같은 놈에 이어 이번에는 여시가 출연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며 동석은 손톱을 세워 기둥을 긁었다. 끼이익-하고 날카로운 소리가 나는 것과 동시에 뒤에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렸다. 움찔-하고 몸을 떤 동석은 급히 얼굴을 돌렸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오던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던 여자는 동석을 확인하는 순간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떴다. 

“너! 황동석!”

“우와아앗! 엄마!!”

동석은 몸을 돌리고 잽싸게 도망을 가려 했지만 여자의 행동이 더 빨랐다. 잽싸게 동석의 목을 한 팔로 끌어안은 그녀는 주먹으로 작은 머리통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너 열나니까 침대에 그냥 누워 있으라고 했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싸돌아다니고 있어!”

“우에에엥! 이것 놔! 난 지금 진지하단 말야!”

“진지하긴 뭐가 진지해! 제발 철 좀 들어라! 내가 너 때문에 동네 창피해서 살 수가 없다!”

“우아아아아앙!!”

“시끄러워! 뚝 그치지 못해?!!”

태교도 잘 하고 임신 중에 뛰어다닌 적도 없는데 어쩌자고 이런 망둥이 같은 녀석이 태어난 건지 모르겠다. 6살부터 속을 썩이니 정말 못 살겠다면서 여자는 동석의 엉덩이를 마구 두드렸다. 그에 비례해서 동석의 울음소리는 커져만 갔다. 아파트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의 울음소리다. 식탁에 봉지를 내려놓던 태유는 뒤를 쳐다보며 말했다.  

“여기는 여전히 시끄럽구나.”

“뭐, 그렇죠. 먼저 들어가서 씻어요.”

“난 괜찮아.”

태유는 봉지를 두고 호수의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금 바깥으로 나온 그의 손에는 상이 하나 들려 있었다. 자기가 발견한 것이 뿌듯한지 상을 위로 든 태유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상은 여전히 있구나. 여기 내가 부서뜨린 곳도 여전하네.”

“뭐. 그렇죠.”

술 먹다가 주먹이 날아가기도 하고 발차기가 작열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태양은 거실로 걸음을 옮기는 태유를 확인하고 먼저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수를 하고 얼굴을 든 태양은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다. 손가락으로 볼과 눈 아래를 꾹꾹 눌러보던 태양은 밖에서 태유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것에 생각이 미쳐 손을 씻고 허리를 세웠다. 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닦은 태양은 밖으로 나와 태유를 쳐다봤다. 그리고 술병을 든 채로 먼저 소주를 마시고 있는 태유를 확인하고는 바로 그 쪽으로 걸어갔다.  

“혼자서 마시면 어떻게 해요?”

“응? 왠지 마시고 싶어져서 말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 성급하다. 술을 마시기 전에 방 좀 치우고 싶었는데. 아직도 식탁 위에 닭 뼈가 그냥 굴러다니고 있는데다 슈퍼에서 나온 과자를 제하면 안주도 없다. 김치찌개라도 만들 수 있는 시간을 주지 그랬나. 태유는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계속해서 소주를 마셨다. 벌써 한 병을 다 마셔가는 것에 태양은 과자 봉지를 뜯으며 말했다. 

“그렇게 마시면 금방 취해요.”

“괜찮아. 그냥 먹고 취하지 뭐.”

취하고 난 다음에 그 뒤처리를 누구에게 하게 할 생각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태양은 소주병을 땄다. 그러자 두 병째를 마시려던 태유가 병을 앞으로 내민다. 병과 병을 부딪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병에 입술을 대고 술을 마셨다. 꿀꺽. 꿀꺽. 넘어가는 소리가 경쾌하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술이 넘어간 부분이 화끈거리고 뜨거워졌다. 태양은 손바닥으로 배를 문지르며 과자를 하나 들어 입에 넣었다. 그러자 눈을 들어 천장을 쳐다보고 있던 태유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지금이 토요일이구나.”

“그러네요.”

“내가 목요일에 촬영을 끝내고 오후에 서울로 왔거든. 그때 도후 녀석은 안 터지는 핸드폰을 하늘로 향한 채 외계인과 수신을 하고 있었지.”

“그래요?”

연락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연락이 되지 않았던 거다. 이쪽도 답답한데 도후는 오죽할까. 성격상 연락이 안 되는 것에 초조해하며 안절부절 못 해 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쯤 이쪽이 화가 나지 않았을까 싶어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을까. 도후의 그 모습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가 있었던 태양은 풋-하고 웃었다. 과자를 들어 입에 넣던 태유는 그런 태양의 얼굴을 흘깃 보며 중얼거렸다. 

“표정이 부드럽구나. 그렇게 도후가 좋아?”

이건 이쪽이 곤란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일부러 저러는 거다. 정말 성격이 안 좋다고 생각하면서 태양은 중얼거렸다. 

“잘 모르겠어요. 어느 부분에서 그 사람한테 끌린 건지. 처음에는 재수 없었는데.....이상하다.”

분명히 처음에는 별 느낌이 없었다. .....정말 별 느낌이 없었을까. 아무 관심이 없고 신경도 안 쓰였다면 도후가 뭘 하는지 전혀 신경도 안 썼을 거다. 하지만 도후가 모델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로 이상하게 주변에서 그의 얼굴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었다. 여기저기에 걸린 도후의 얼굴을 보고 이상하다 했다. 왜 갑자기 그의 얼굴이 잘 보이기 시작하는 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때부터 자신은 도후에게 관심이 있었던 걸까. 저도 모르는 사이 도후에게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이다.

“첫눈에 반한 건가...”

딩동.

중얼거림과 동시에 벨 소리가 울렸다. 그것에 태양은 얼굴을 들어 바깥쪽을 쳐다봤다. 태유 보기가 어색했기 때문에 문 쪽을 쳐다보는 걸지도 모른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첫눈에 반한 운운을 했기 때문에 지금 태유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보기가 조금 그랬다. 그러는 와중에도 벨은 계속해서 울렸다. 

딩동. 딩동.

“나가봐. 벨에서 불난다.”

“다녀올게요.”

태유의 말에 태양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까지 벨소리가 이렇게까지 반가웠던 적이 없다. 잡상인이 와도 딱히 화를 내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태양은 잠금쇠를 열고 문을 열었다. 

“누구세....”

문을 여는 순간 앞에 서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익숙한 체취와 냄새가 났다. 태양은 얼굴을 들어 도후를 쳐다봤다. 도후도 태양을 쳐다봤다. 서로를 쳐다보는 그 순간의 시간이 참 늦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멍하니 도후를 쳐다보던 것도 잠시 태양은 입술을 달싹였다.  

“어? 어떻게 여기에...”

멍하니 중얼거리는 순간 도후의 손이 위로 올라온다. 도후는 태양의 몸을 끌어안고 열정적인 입맞춤을 했다. 놀란 태양은 도후의 팔을 잡았다. 그러지 말라는 듯 팔을 눌러대지만 도후는 물러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입을 맞추다가 벌려진 틈을 타서 혀가 밀고 들어왔다. 그 기세에 밀린 태양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쿠당탕-소리가 날 정도로 심하게 쓰러졌지만 도후가 직전에 허리를 끌어안아서 어디를 아프게 부딪치지는 않았다. 딱딱한 바닥에 뒷머리를 댄 태양은 거센 콧김을 내뱉는 도후를 쳐다봤다. 

“자..잠깐! 기다려 봐요! 읍!”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로 도후의 입에 막혔다. 도후는 꼼지락거리며 품에서 벗어나려 하는 태양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아 고정한 채 계속해서 입술을 비볐다. 꾹꾹 거리며 입술을 누르다가 손으로 턱을 잡는다. 세게 잡는 것에 아파서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도후의 혀가 뱀처럼 입 안으로 들어왔다. 입 안 깊숙이 들어와서 혀와 치열을 감쌌다. 쪽쪽 거리면서 입 안에 있는 수분을 모조리 빨아들이려 하는 것 같은 도후의 행동에 태양은 안색을 굳혔다. 

“그만 하라니까..!!”

태양은 도후의 턱을 잡아 뒤로 밀어냈다. 가까스로 멈춰졌지만 도후는 태양의 저항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쓴 얼굴로 태양을 내려다 봤다. 여전히 태양의 몸을 더듬거리면서 도후는 투명스럽게 말했다. 

“왜 그러는 거야?”

지난 며칠 동안 태양하고는 연락이 안 되지. 얼굴은 보고 싶고, 몸은 걱정되지. 여러 가지 사정이 종합되어서 도후는 머리가 폭발할 지경이 되었다. 그런 순간에 태양의 얼굴이 눈앞에 딱 나타났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일단은 진한 키스라도 해야지 성이 풀릴 것 같았다. 그런데 태양이 왜 이렇게 거절을 하는지 모르겠다. 혹여라도 이쪽이 그동안 연락을 하지 않은 것 때문에 화가 난 걸까.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해서 이쪽에서도 할 말이 있었다. 그러니 일단 그것부터 들어달라는 말을 하려는데 태양이 옆으로 턱짓을 한다. 

“저쪽.”

“저쪽? 지금 무슨 말을 하는....”

도대체 뭘 보라고 이런 식으로 턱을 움직여대는 지 모르겠다. 투덜거리면서도 도후는 얼굴을 돌려 태양이 가리키는 쪽을 쳐다봤다. 그리고 소주병을 입에 문 채로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태유와 눈이 마주쳤다. 

“....................”

바로 입을 크게 벌리고 굳어 버리는 도후에 반해 소주병을 입에 물고 있는 태유는 태연하기만 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입에 물고 있던 소주병을 내리고 느긋하게 손을 흔들었다. 마치 ‘어서 와.’라고 말하는 듯 한 행동이었다. 

태유가 안주를 먹지 않고 그저 술만 마시는 타입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주 3병을 다 마셔 가는데도 안주에는 그다지 손을 대지 않는 모습이 걱정된다. 

“그만 좀 마셔요.”

태양은 앞으로 손을 뻗어 태유의 소주병을 빼앗아 가려 했지만 태유는 싫다는 듯 옆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것에 태양은 앞에 있던 야채샐러드를 손으로 건드렸다. 

“그러면 술만 마시지 말고 샐러드 좀 먹어요.”

“나 야채 싫어한다니까. 고기 먹고 싶다고.”

“그건 나중에 먹어요. 이걸로 참으라고요.”

“싫어. 난 고기를 먹고 싶어. 이봐. 아직 멀었어?”

태유의 말에 주방 안에 들어가 안주 준비 중에 있던 도후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들고 있던 과도를 슬그머니 내려놓고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그러자 거실에 상 하나를 두고 앉아있던 태유와 태양이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에 심장 한 쪽이 쓰려지는 것을 느끼며 도후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금방 만들어서 가지고 갈게.’라고 말했다. 딴에는 나름 성의를 다한 대답이었지만 태유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 듯 바로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든다. 

“바로 가지고 와야지. 난 고기를 먹고 싶다니까.”

“그만해요. 선배. 술도 그것만 마셔요. 알았어요?”

“시어머니 같아.”

“시어머니 같은 내가 싫으면 지금이라도 집에 가던가요.”

“너무하잖아. 냉정하기는.”

“하나도 냉정한 게 아니에요.”

하는 말에 일일이 대꾸를 하는 태양에 태유는 입을 딱 다물고 눈을 내렸다. 그쪽에서 무슨 말을 해도 나는 신경 쓰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듯 한 반항적인 태도에 태양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방으로 들어간 태양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달리 먹을 것이 있나 싶지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도후가 없는 동안 외식에 너무 매달렸으니 말이다. 턱에 손가락을 대고 있던 태양은 슬그머니 눈을 돌려 요리를 하는 도후를 쳐다봤다. 도후는 널려진 닭 뼈를 보고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태유가 있어서 아무 말 없이 그냥 넘어간 거지 이쪽만 있었다면 바로 잔소리를 했을 거다. 태양은 조심스레 도후의 뒤로 가 말을 걸었다. 

“피곤하지 않아요?”

“피곤이라....피곤할 틈이 있을까나.”

중얼거리는 도후의 얼굴은 완벽하게 경직되어 있었다. 

도후는 태양을 하루라도 더 일찍 보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 빡센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 개인컷이나 단체컷은 모두 당겨서 찍을 수 있었지만 바다 위로 비가 내리는 장면은 도무지 어떻게 할 수가 없었거늘 도후의 염원이 너무 커서인지 바로 어제 비가 내려서 중요한 부분도 다 끝낼 수 있었다. 다 끝내고 허겁지겁 준비를 하고 오늘 새벽에 촬영지를 홀로 떠나와서 이렇게 태양에게 왔다. 문을 열고 나오는 태양을 보는 순간 도후는 눈이 뒤집힌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성이 잠시 가출을 해버렸다. 태양을 보고 그렇게까지 극적이고도 황홀하고 가슴이 벅찼던 순간이 달리 또 있었을까. 그냥 그 감정에 휘말려 무작정 태양의 몸을 끌어안았다. 정신없이 입을 맞추고 그 몸을 더듬었다. 까짓것 현관 앞에서 해버리는 거지-라고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왜. 그 순간. 태유가. 눈앞에. 나타나는 거냔 말이다!! 

머리를 붙잡고 악을 쓰고 제 자리에서 방방 뛰고 싶은 기분을 느끼는 한편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 버렸다. 손가락 하나 까닥일 수 없는 상태가 된 도후는 멍하니 있다가 태유가 안주나 만들어오라는 말에 조용히 주방으로 들어갔고, 한 시간이 넘게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제길. 이 내가 저 인간의 안주나 만들고 있어야 하다니. 하지만 태유의 얼굴을 보고 있을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미치고 팔짝 뛸 것 같다. 굳은 얼굴로 파를 썰던 도후는 옆에 서있는 태양을 흘겨봤다.   

“저 녀석은 언제부터 온 거야?”

“2시 반 정도에 집에 온 것 같네요.”

“.....왜 하필 오늘 여기에 온 거야. 아니. 그 전에 왜 저런 녀석이 이 집에 들어와 있는 거냔 말야.”

이 집에 오면 태양이 있을 거라는 생각만 했지 태유가 있을 것이라고는 조금에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 공간은 자신과 태양만의 장소라는 인식이 강하게 있었는데 그것도 태유 때문에 다 망쳐졌다. 두 사람만의 비밀스러운 공간을 침입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든 채 투덜대고 있으려니 허리로 태양의 손이 닿는다. 왜 이러나 싶어 눈을 내리자 은밀한 웃음을 지은 태양이 이쪽을 쳐다보며 속삭였다.  

“나 보고 싶었어요?”

“..........몰라.”

“보고 싶었으면서 왜 연락을 안 했어요?”

“말했잖아. 통화가 안 터졌다니까.”

“핸드폰은 안 터져도 일반 전화는 될 거 아니에요. 근처에 공장이 많았다면 아무 공장에나 들어가서 전화 좀 사용한다고 하고 통화하면 되잖아요.”

“.........................”

태양의 지적에 도후의 표정이 굳어진다. ‘아. 그런 방법이 있었지.’라고 말하는 듯 한 표정이다. 일말의 낭패감을 띄우는 도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 채로 태양은 계속해서 말했다. 

“잠은 모텔이나 호텔에서 잤을 거 아니에요. 부탁해서 거기서 전화를 사용해도 되는 거였을 텐데. 요즘에는 인터넷으로 문자 보내는 것도 가능한데. 그건 모른다 쳐도 일반 전화를 사용할 줄 모르는 건 너무한데요.”

태양은 손가락을 들어 도후의 척추가 있는 부분을 쓰윽 흩어 내렸다. 

허리에서부터 목까지 손가락으로 쓰윽 올리는 것에 도후는 소름이 돋았다. 움찔하고 몸을 굳힌 도후는 이대로 가다가는 손을 베일 것 같아 들고 있던 식칼을 내려놨다. 목을 손으로 잡은 도후는 굳은 안색으로 태양을 쳐다봤다. ‘지금 도대체 뭘 하는 거야?’라고 묻는 듯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는 도후에 반해 태양은 느긋하기만 한 얼굴을 하고 있다. 빙그레 웃음을 지은 태양은 도후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고 발을 세웠다. 그리고 도후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태양의 입술이 갑자기 닿았을 때 도후는 놀랐다. 몸을 비틀려다 싱크대에 골반뼈가 부딪힌 그는 가만히 있었다. 그런 도후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은 채로 태양은 더 세게 입술을 눌렀다. 그리고 천천히 얼굴을 떼며 도후의 볼을 엄지로 쓰다듬었다. 

“나도 보고 싶었어요. 이렇게 보니까 정말 좋네요.”

거실에 있는 태유는 들리지 않게 하려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왜 이렇게 유혹적으로 들리는지 모르겠다. 미소 짓고 있는 태양의 얼굴도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옛날 동화책에서 나오던 남자를 꼬시는 마녀 같다. 태양에게 말하기는 미안한 생각인지라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으려니 태양이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계속 여기에 있지 말고 나와요. 같이 술이나 마셔요.”

그냥 나가기에 뭐했던지 태양은 한쪽에 있던 오이 두 개를 들고 거실로 나왔다. 태유는 다시 와서 바닥에 앉는 태양을 흘겨봤다. 

“주방에서 뭐했어?”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정말이야?”

이번에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파고 들어올 수 없도록 사전에 막듯이 태양은 다른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오이를 먹었다. 미심쩍은 듯 눈을 가늘게 뜬 채로 태양을 쳐다보던 것도 잠시 태유는 다시금 술병을 기울였다. 그러자 얼마 안 있어 도후가 냄비를 통째로 들고 나왔다. 상 가운데에 접은 신문지를 올리고 그 위에 냄비를 내려놓았다. 매콤하게 풍기는 냄새로 도후가 뭘 만들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으면서 태유는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뭐 만들었어?”

“........김치찌개다.”

“그래? 맛있겠다. 고기가 아니지만 김치도 좋아하니까 봐줄게.”

봐주기는 뭘 봐준단 말인가. 그냥 주는 대로 처먹으란 말이다.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것을 간신히 내리누르며 도후는 앞에 놓인 과자를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 거리며 과자를 먹으며 다른 쪽을 쳐다본다. 아직도 분이 안 풀린 모양이다. 하긴 갑자기 달려들어서 짐승처럼 입을 맞추고 당장 덮칠 태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태유에게 들켜 버렸으니 얼마나 무안하겠는가. 보아하니 태유와 사이가 좋은 것 같지도 않던데.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자 그 시선이 느껴진 건지 옆으로 눈을 흘긴다. 부루퉁한 그 모습이 귀여웠다. 태유만 없었다면 볼을 꼬집어 흔들어줬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태양은 도후의 허리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물었다. 

“술은 안 마셔요?”

태양의 손가락이 허리를 쿡 찔렀을 때 놀랐는지 움찔하고 몸을 떨던 도후는 술은 안마시냐는 말에 바로 안색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난 술 못 마셔.”

“그러면 한 모금이라도 마셔요.”

“그러니까 나는......”

“도후는 술은 마시면 안 돼. 한 방울이라도 혀에 닿으면 키스마가 되거든.”

“너 시끄럽....! 웁!”

태유의 입을 막으려 드는 순간 뒤에서 날아온 손이 도후의 입을 막아버렸다. 도후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은 태양은 반쯤 일어나 있던 도후를 억지로 바닥에 주저앉히고는 태유를 쳐다봤다. 

“키스마라니요?”

그리 묻는 태양의 눈빛은 진지했다. 어서 말을 해달라고 말하는 듯 한 태양에게 입이 막힌 상태인 도후는 창백해진 얼굴로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하지마. 하지 말라며 어떻게든 의사를 전달시켜 보지만 태유는 무정했다. 

“알콜이 들어가면 아무에게나 키스를 하거든.”

“....................”

다 끝나 버렸다. 좌절하게 된 도후는 아래로 눈을 내렸고 태양은 그런 도후를 쳐다봤다. 볼에 닿는 태양의 눈초리가 꽤나 매섭다. 지금 태유가 한 말이 정말이냐고 묻는 시선을 보내고 있지만 입이 막혀 있어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딱히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옆으로 눈을 피하는 도후의 행동에 태양의 눈빛이 점점 예리하게 변한다. 의중을 캐내고야 말겠다는 듯 집중해서 도후를 쳐다보던 태양은 되묻듯 중얼거렸다. 

“아무에게나 키스를 한단 말이죠?”

“아무에게나 해. 남자든 여자든 가리지를 앉지. 덕분에 뒤풀이에서 재미있는 일이 많이 발생했지. 그것도 1, 2년 전의 일이고 좀 뜨고 난 후에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더군. 이미지 관리에 들어간 거지.”

그냥 입 다물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 도후는 당장 달려들어서 태유의 입을 막고 주먹으로 세게 후려치고 싶다.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 도후의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내린 태양은 자신의 발목을 잡으며 물었다. 

“그래서 술 안 마시려 했던 거예요?”

“아니. 꼭 그런 이유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니고...솔직히 술이 몸에 안 좋잖아. 일부러 몸에 안 좋은 것을 마실게 뭐가 있을까 싶어서 말야.”

“흐음.”

“...정말이라니까. 몸 생각해서 안 마시는 거야.”

이쪽이 듣기에도 궁색하기만 한 변명이다. 동시에 도후는 왜 이런 식으로 비굴해져야 하는 걸까-하고 고민에 들어갔다. 

술을 마시고 나서 아무에게나 입을 맞추는 버릇은 본인도 원하는 것이 아니고 본인도 그것이 큰 스트레스였다. 그것에 대해서 태양이나 태유가 굳이 지적을 하지 않아도 된단 말이다. 그리고 어렸을 때에는 주는 대로 마셔서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이 이상하게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일부러 술도 안마시고 잘 참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당당하게 그 말을 하면 좋겠지만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태양의 눈빛을 마주할 수가 없다. 혹여라도 태양이 실망이라는 기색을 띠고 있으면 굉장히 마음이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나는 정말 저 녀석에게 약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도후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런 도후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태양은 소주 한 병의 뚜껑을 따 그것을 도후에게 내밀었다. 

“마셔요.”

“에?”

“괜찮으니까 마시라고요.”

도후는 태양이 내민 소주병을 받아들었지만 선뜻 입술을 대지 못했다. 지금 태양이 무슨 생각으로 이 소주병을 건넸는지 알지 못하는데 무턱대고 입을 대고 마실 수는 없잖은가. ‘어라?’싶은 기분으로 도후는 잡은 병에 힘을 줬다. 

“....지금 이걸 마시라고?”

“그래요. 마셔요. 안 좋은 술버릇은 숨기고 있는 게 아니라 고치는 거예요. 지금 나랑 태유 선배 밖에 없으니까 마셔 봐요. 이상한 행동하면 바로 재워줄 거니까.”

그러니까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이쪽을 재울 건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직접적으로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도후는 태양과 태유를 번갈아 봤다. 태양은 그렇다 쳐도 태유가 있는 마당에 쉽게 술병에 입을 댈 수가 없다. 도후는 소주병을 상 위에 올렸다. 

“그냥 안 마실래. 안 마셔도 괜찮아.”

“남자가 언제까지 술을 안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생활 하려면 어느 정도 술을 마실 줄 알아야 하잖아요. 알면서 그래요? 그러지 말고 어서 마셔 봐요. 이상한 행동하면 내가 막아준 다니까.”

“...................”

“어서요.”

거듭되는 태양의 권유를 계속 무시할 수가 없다. 몇 번 망설이던 도후는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어 소주병을 들어 입술에 댔다. 

마실까 말까 하고 몇 번 망설이다가 천천히 안의 액체를 목구멍 안쪽으로 넘겼다. 아주 조금의 소주가 입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그 순간 지난 1년 동안 금주를 했던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었지만 오랜만에 술을 받아들이는 혀가 반가워하며 알콜의 맛을 음미했다. 병을 입술에서 뗀 도후는 얼굴을 아래로 내리고 입맛을 다셨다. 그런 도후를 쳐다보며 태양은 물었다. 

“어때요?”

“당장 올라오는 것은 아니야. 한 30분이나 더 지나봐야 알게 된단 말이야.”

중얼거린 도후는 들고 있는 소주병을 내려다봤다. 

이 초록색 병을 도대체 얼마 만에 손에 쥐게 된 건지 모르겠다. 소주병에 들린 액체를 빙글빙글 돌리며 도후는 침을 삼켰다. 

“오랜만에 마셨더니 맛은 없네.”

“이것 좀 먹어봐요.”

태양은 김치찌개에 들어가 있던 고기를 하나 떠서 후후-바람을 불어 식히고는 도후의 입 앞에 내밀었다. 입을 벌려 그것을 받아먹은 도후는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있네.”

“밥 좀 줄까요?”

“아니. 괜찮아.”

배는 고프지 않았다. 그저 너무 오랜만에 술을 마셨더니 계속해서 마시고 싶다는 기분이 들 뿐이다. 도후는 소주병을 눈앞까지 올리고는 입술 한쪽을 슬며시 올렸다. 

“뭐, 상관없나.”

하긴 일을 하면서 언제까지 술을 안마시고 버틸 수는 없다. 나쁜 술버릇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고치는 것이 제일 현명한 일이 될 거다. 

도후는 얼굴을 돌려 태양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태양의 눈이 살짝 가늘어진다. 그 웃는 얼굴에 도후는 가슴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왜 태양을 보는 순간 이렇게까지 심장이 빨리 뛰는 건지 모르겠다. 연애를 처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자신의 숫총각 같은 반응이 쑥스럽지만 그것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도후는 손을 들어 태양의 허벅지를 만지려 했다. 그 순간 심드렁한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껴들었다.    

“사이좋네.”

“윽.”

또 깜박하고 말았다. 왜 이렇게 앞에 태유가 있다는 것을 깜박하는 경향이 있는지 모르겠다. 무시하고 있으면 제일 곤란한 녀석인데 말이다. 

당황한 도후는 얼굴을 앞으로 돌렸고 보이는 것은 소주병을 입에 물고 있는 태유다. 아래로 눈을 내리뜬 상태인 태유는 도후를 빤히 쳐다봤다. 아무 말을 않고 쳐다보는 것이 때로는 더 기분 나쁠 때가 있다. 차라리 뭐라고 말이라도 하지 뭘 저렇게 마냥 쳐다보고만 있는지 모르겠다. 도후는 옆으로 살짝 몸을 틀었다. 그러자 이번에 태양이 수저에 김치를 떠서 얼굴 앞으로 내민다. 먹으라는 듯 얼굴을 옆으로 기울이는 것에 도후는 당황했다. 앞에 태유가 보고 있는데 지금 이게 무슨 행동이야-라고 말하는 눈빛을 보내 봐도 태양은 묵묵부답이다. 어서 먹으라는 듯 수저만 위로 들고 있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던 도후는 자꾸만 있는 태유의 눈치를 보다가 입을 벌렸다. 태유가 보고 있다는 것에 상관없이 태양이 직접 떠주는 찌개의 맛은 환상이었다. 평소하고 다름이 없는 방식으로 요리를 했는데 왜 이렇게 맛이 다른지 모르겠다. 

우물거리면서 주는 대로 받아먹는 도후에게서 다시금 커다란 검은 개의 모습이 보였다. 내심 뿌듯해진 태양은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맛있어요?”

“내가 한 거니까.”

“그렇죠? 나 내일 갈비 해줘요.”

“알았어.”

“갈비 하려면 내일 아침에 장 보러 가야겠네요.”

“같이 가면 과일도 사줄게.”

“그래요.”

대답을 한 태양은 빙그레 웃었다. 

저 먹을 거 사준다고 했더니 기분 좋은 모양이다. 양끝 입술을 올리며 화사하게 웃는 것에 도후는 몽롱한 상태가 됐다. 아. 정말 예쁘다. 라는 심정으로 헤벌레하고 있으려니 태유의 눈이 양쪽으로 쫙 찢어졌다. 

“되게 바보 같은 얼굴.”

태유의 지적에 바로 표정이 굳어졌다. ‘왜 남이 기분 좋을 때 방해를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눈초리로 노려보는 도후지만 그런 도후의 표정에도 태유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말했다. 

“너 그런 얼굴 되는 거 다른 사람들은 알기나 하냐?”

“내 앞에서만 이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물음의 답은 도후가 아니라 태양에게서 돌아왔다. 속 좀 긁어줘서 도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거나 그가 당황해하는 얼굴을 보고 싶었는데 왜 태양이 껴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태양이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확인한 태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 지금 일부러 나 건드리는 거냐.”

“맞아요. 알았으면 이제 술 그만 먹어요.”

굳은 얼굴이 된 태유는 태양을 무시하고 소주병을 들었다. 하지만 소주병에 입술을 대기도 전에 중간에 나타난 태양의 손이 태유의 손목을 잡았다. 그 행동에 태유는 ‘이것 봐라?’라는 느낌으로 태양을 빤히 쳐다봤다.  

“손 치워.”

“남의 집에 왔으면 적당히 좀 먹어요. 속에서 받는다고 계속 먹다가 토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이 거실 바닥에서 토할 거야.”

“그렇게 하면 치우고 가요.”

“........냉정한 놈.”

“민폐를 끼치는 사람보다는 낫죠.”

굳은 얼굴이 된 태유와 한쪽 입술을 비틀어 올리는 썩소 공격을 날리는 태양.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낀 도후는 침을 삼키며 조심스레 소주병을 입술에 댔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왜 이렇게 냉랭한 공기가 흐르는 거냐며 눈을 데굴데굴 구르려니 태유가 다시금 술을 벌컥 벌컥 마셨다. 태유는 계속 마셨다. 결국 들고 있던 병의 술을 다 마시고 새로운 병을 따는 것에 도후는 옆에 앉아 있는 태양의 손목을 잡고 그리로 몸을 숙였다.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정말 위험하다 싶으면 알아서 쓰러져 자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

“신경 쓰지 말아야 하는 거냐....”

“놔두고 더 마셔 봐요. 키스마라고 하던데 왜 키스하지 않는지 이상하네.”

태양의 말에 소주병을 기울이던 도후의 손이 딱 멈춘다. 무슨 말을 들었나 싶어 동그랗게 눈을 뜨고 이쪽을 쳐다보는 도후를 똑바로 바라보며 태양은 한쪽 입술을 올렸다. 명백하게 도발을 하는 웃음을 짓고 있다. 그것에 도후는 머리 한쪽에 있던 구멍이 뻥-뚫리는 것을 느꼈다. 

“너...”

도후는 눈에 힘을 주고 이쪽을 쳐다봤다. 그 시선이라는 것이 마치 이쪽을 잡아먹을 것 같았다. 당장 옷을 벗겨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먹어버리고 싶다는 듯 말하는 눈빛에 오한이 돋았다. 오싹한 무언가가 허리께에서 위로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태양은 도후를 유심해 쳐다봤다. 이 인간이 과연 어떤 행동을 할까 싶어 가만히 있으려니 도후의 눈이 게슴츠레 해진다. 직감적으로 이상함을 느낀 태양은 바로 도후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찰싹 하고 때렸다. 

막 키스마로 시동이 걸릴 즈음 갑자기 허벅지를 때리는 태양의 행동에 도후는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때리느냐는 식으로 쳐다보는 것에 태양은 태유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제기랄..!”

혀를 찬 도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쏴아아악-하고 물 트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 소리를 들으며 태양은 태유를 쳐다봤다. 태유는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볼이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반은 취해있다. 지금 눈을 뜨고 있어도 절반은 졸고 있는 상태다. 그저 반사적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홀짝거리며 술을 마시며 여전히 발그레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태유나 화장실에 들어가서 열심히 세수를 해서 술을 깨려고 노력하는 도후. 두 사람의 대비 되는 모습에 태양은 샐러드를 입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재미있네.”

그리고 다시금 소주병을 기울였다. 

태유는 이제 여섯 병을 비워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마시는 것 같더니만 그렇게까지 병을 비워가니 배가 부르긴 부른 모양이다. 이쪽을 쳐다보는 태유의 눈동자는 반쯤 풀려 있었다. 

“네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거기다가 같은 말을 반복한다. 처음에는 ‘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건데요?’라고 대꾸도 하던 태양이지만 지금은 입을 다물고 태유를 무시하고 있었다. 샐러드를 들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씹는 태양의 모습에 태유는 트림을 했다. 그러자 진한 소주의 향이 맡아진다. 딸꾹질을 한 태유는 고개를 푹 숙이고는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안 되는 거야. 알고 있어?”

푹 숙이고 있던 얼굴을 위로 들면서 따지듯 말하는 것에 태양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잠이나 자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그 모습에 태유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쓸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면 안 되는 거라니까.”

“알았으니까 자요. 자기 싫으면 누워만 있어요.”

“내가 바보인줄 알아. 누워만 있어도 자게 된다는 걸 모를 줄 알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손을 어느새 바닥을 짚고 있다. 바닥에 누운 태유는 배에 손을 대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다가 다시금 ‘그러면 안 되는 건데..’라고 중얼거린다. 처음에는 이쪽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불만을 토로하던 태유지만 이제는 누구한테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멍하기만 한 얼굴로 위를 쳐다보다가 옆으로 몸을 돌리고 태양을 빤히 쳐다본다. 그것에 태양도 태유를 쳐다봤다. 그러자 태유는 눈을 깜박이다가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그리고 다시 뜨지 않았다. 

“자는 건가.”

겨우 술주정뱅이를 재웠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거기서 일어나려 하지 않는 태유다. 맨 바닥이긴 하지만 그냥 저기서 자게 해야 할 듯 싶어 태양은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그때 마침 화장실에서 도후가 나온다. 비틀 거리는 걸음으로 나온 도후는 태양을 쳐다보더니 멍한 얼굴이 됐다. 평소의 또렷한 얼굴을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빤히 태양을 쳐다보던 도후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다가와 태양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것에 태양도 반쯤 일으켜져 있던 몸을 다시 내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팔짱을 낀 도후가 태양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태양아.”

“왜요?”

“태양아.”

“불렀으면 말을 해요.”

“태양아.”

말을 하라고 해도 소용이 없다.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는가 싶더니 손가락을 들어 볼을 꼬옥 눌렀다. 자기가 눌러놓고는 놀란 듯 바로 손가락을 치웠다. 그러다가 다시금 손가락으로 볼을 찌르고 턱을 누르고 눈 아래와 입술을 건드렸다. 살짝살짝 건드리기만 하는 것이 소꿉장난을 하는 것 같다. 

도후는 아직 완전한 키스마 상태로 돌입하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 변화가 일어날 것 같으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요란하게 세수를 하는 걸로 자신의 내제된 본능을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멍한 얼굴로 이쪽을 빤히 쳐다보다가 손가락으로 얼굴 여기저기를 찌르는 것은 무슨 짓인지 모르겠다. 귀찮고 싫었다면 태양은 바로 도후의 손을 뿌리쳤을 거다. 귀찮긴 했지만 도후의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말은 않지만 이쪽이 좋아서 그렇게 건드려 본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태양은 손을 들어 도후의 손목을 잡았다. 그것에 도후가 눈을 들어 이쪽을 쳐다본다. 도후의 검고 깊은 눈동자를 쳐다보는 순간 심장 한쪽이 간질거리기 시작했다. 기분 좋은 느낌을 받으며 태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 내가 정말로 좋죠?”

물음에 대답이 없다. 여전히 멍하기만 한 얼굴로 쳐다보는 것에 태양은 입술을 올렸다. 

“나도 당신이 좋아요. 꽤 마음에 들어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얼굴을 가까이 접근해 도후에게 입을 맞췄다. 

쪽.

“....태양.....”

“자. 이제 다시 화장실 다녀와요.”

태양이 입을 맞추고 떨어지는 순간 바로 키스마로 변신하려 했지만 태양이 손을 들며 그것을 막는다. 손가락에 입술이 눌려진 도후는 인상을 썼다. 왜 그려냐고 묻는 표정을 짓는 것에 태양은 다시금 ‘화장실 다녀와요.’라고 말했고 그것에 인상을 쓴 도후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순히 화장실로 가고 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모양이다. 몇 걸음 옮기지도 않고 뒤를 쳐다보는 것에 태양은 어서 가라는 듯 손을 까닥였다. 땅이 꺼져라 길게 한숨을 쉰 도후는 몸을 돌리고 터덜거리는 걸음을 옮겼다. 도후가 화장실로 들어가고 문을 닫자 태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태유의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선배. 자요?”

물음에 대답이 없다. 긴 속눈썹을 떨군 채 고른 숨을 토해내는 태유의 모습에 태양은 눈빛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정말 자는 거예요? 자는 척 하는 거예요?”

이번에도 말이 없다. 태양은 손을 들어 태유의 눈앞에 흔들어 봤다. 빠르게 흔들다가 느리게 흔든다. 그것에도 태유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태양은 손을 내리고 잠이 든 태유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화장실 문 앞에 섰다. 

서 있으려니 안에서 물 트는 소리가 난다. 도후가 세수를 하는 소리도 났다. 그것에 태양은 발가락으로 문을 퉁퉁-하고 두드렸다. 

“문 열어봐요.”

잠시 쿵-하는 소리가 난다. 세수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당황한 모양이다. 달칵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도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나갈 거야.”

“나올 것 같아요. 그러니까 빨리 문 열어요.”

“나원 참...”

길게 한숨을 쉬는 소리와 함께 도후가 화장실 문을 열었다. 

도후는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될 것을 뭘 그렇게 재촉을 하는 거냐고 묻는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에는 아직 닦지 않은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태양은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들어 도후의 뺨을 감쌌다. 따뜻한 체온에 도후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에?’하는 소리를 내는 도후의 어깨를 다른 손으로 밀며 태양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태양이 화장실로 들어가고 탁-하고 문이 닫히는 순간 거실 바닥에 누워있던 태유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두어번 눈을 깜박이던 태유는 눈을 들어 닫힌 화장실 문을 쳐다봤다. 얼굴을 길게 빼고 화장실의 문을 쳐다보는 태유의 얼굴은 점점 불쾌함으로 굳어져 갔다. 

“태.....태양아?”

도후는 갑자기 안으로 들어오는 태양의 행동에 놀랐다. 술을 먹어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인상까지 쓰고 있는 도후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태양은 손을 뒤로 해 화장실 문을 잠갔다. 달칵-하는 문 잠그는 소리에 도후는 침을 삼켰다. 꿀꺽-하고 생침 넘어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기분이 이상했던 도후는 얼굴을 내렸고 그런 도후의 앞으로 다가온 태양이 손을 들어 그의 양 뺨을 감쌌다. 태양의 손바닥에 얼굴이 감싸이자 급격히 체온이 올라간다. 더워진 도후는 태양의 어깨를 손으로 잡아 밀어냈다. 

“왜..왜 이러는 거야. 좁은데..”

“좁은 게 무슨 상관이에요. 이리 와 봐요.”

이리 와 보라는 말에 도후는 밀어내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리고 그 손을 내려 은근슬쩍 태양의 허리를 양 손으로 감쌌다. 그런 주제에 입으로는 영판 다른 말을 한다. 

“잠깐만 기다려. 갑자기 왜 이러는....”

“키스마가 어떤지 경험 좀 시켜줘 봐요.”

호흡이 막혔다. ‘지금 뭘 들었지?’라는 기분이 된 도후는 얼굴을 들어 태양을 쳐다봤다. 태양은 웃고 있었다. ‘응?’하고 말하며 눈을 빛내는 태양의 모습에 도후는 표정을 굳혔다. 그리고 다음 순간 팔을 뻗어 태양의 허리를 휘어 감고는 바로 입술을 겹쳤다. 따닥-하고 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퍼졌다. 태양은 바로 인상을 쓰며 투덜댔다. 

“아파요.”

“시끄러워. 도발을 한 주제에....”

그런 식으로 말을 하고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는 것은 잡아 먹어달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알몸으로 덤비는 것과 뭐가 다르냔 말이다. 

도후는 태양의 몸을 문 쪽으로 밀치며 계속해서 입을 맞췄다. 입을 벌려 태양의 입술을 먹어치울 것처럼 빨아들이고 그 속으로 혀를 집어넣는다. 그것에도 모자라 태양의 얼굴 전체에 입을 맞췄다. 쪽쪽 거리는 입맞춤과 혀로 핥아대는 질척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도후의 부담스러운 입맞춤에 태양은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다 도후의 허벅지가 다리 사이로 들어와 남성을 자극했다. 무릎을 들어 성기를 꾸욱-하고 누르는 것에 태양은 입을 벌려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하는 긴 호흡에 도후는 불끈하고 욕정이 치밀어 올렸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그는 태양의 턱을 깨물면서 태양의 티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등과 허리를 쓰다듬다가 위로 올라 날개뼈를 손바닥으로 꽉 잡는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태양의 바지 속으로 집어넣어 엉덩이를 주물거렸다. 그것에 태양은 몸을 비틀면서 도후의 등을 끌어안았다. 도후의 등을 강하게 끌어안고 그의 뺨에 입을 맞추며 태양은 재미있다는 듯 슬그머니 웃음을 지었다. 

“이게 무슨 키스마야. 강간마지.”

“강간은 아니잖아.”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반박의 말을 하는 도후의 목소리는 헐떡거리고 있었다. 헐떡. 헐떡. 하는 호흡이 마치 개 같다. 커다란 개를 품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적으로 그런 표현은 입에 담지 않았다. 왜냐하면 도후와 마찬가지로 이쪽도 헐떡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양은 자신의 몸 여기저기를 주물거리는 도후의 손길에 인상을 쓴 채로 도후의 등을 쓰다듬었다. 탄탄한 등을 쓰다듬다가 아래로 손을 내려 도후의 바지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탄탄한 도후의 엉덩이를 쓰다듬자 바로 ‘뭐 하는 거야.’라는 도후의 당황스러워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양은 앞으로 손을 돌려 도후의 성기를 잡았다. 

“웃!”

당황한 기색의 도후는 바로 태양을 쳐다봤다. 놀라 떨어지려 하는 도후지만 태양은 그냥은 놓칠 수 없다는 듯 성기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그러자 도후의 굵은 성기가 더 힘을 얻었다. 

“뭐...뭐하는 거야!”

“뭐하는 거긴요. 알고 있으면서 뭘 물어요.”

태연한 척 굴고 있어도 내심 태양은 놀라고 있었다. 왜냐하면 도후의 성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미처 알지 못했던 건가. 이런 것을 집어넣었으니까 그렇게나 아팠던 거구나.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고 계속해서 성기를 주물럭거리자 성기의 크기가 점점 커졌다. 

“점점 단단해지네..”

중얼거린 태양은 도후의 팔을 잡아 당겼다. 그러자 다시금 두 사람의 몸이 달라붙게 된다. 엉거주춤하게 선 도후지만 태양이 몇 번 입을 맞추자 금방 흥분했다. 태양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도후는 진한 입맞춤을 나눴다. 안으로 들어오는 도후의 혀에 맞춰 태양도 크게 입을 벌렸다. 얽히는 혀의 질척함에 태양의 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혀가 난잡하게 뒤엉키는 이런 상황이 기분 좋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같은 사내의 성기를 잡게 될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는데.... 태양은 도후의 성기를 잡은 손가락에 천천히 힘을 줬다. 

쿠당탕!!!

갑작스런 큰 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놀란 도후는 바로 입술을 뗐고 그건 태양도 마찬가지다. 그러는 동안에도 밖에서는 챙그랑-이러든가 퍽-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쿵쿵쿵 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곧 끼익-하고 문 여는 소리와 쿵-하고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도후와 태양은 그 동안 눈만 꿈뻑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야?”

“글쎄요.”

중얼거린 태양은 잡고 있던 도후의 성기를 놨다. 손에 묻은 정액을 옷에 대충 문질러 닦은 태양은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잔뜩 흥분시켜 놓고는 그냥 나가 버리는 태양의 행동에 도후는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어딜 가는 거야!’라고 말했지만 태양은 신경 쓰지 않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엉망이 된 거실 꼴을 확인하고는 긴 한숨을 쉬었다. 김치찌개와 샐러드와 각종 과자가 올려져 있던 상은 완전히 뒤집어져 있었다. 여기에 저기에 쏟아져 있는 음식들을 확인한 태양은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이마를 긁적였다. 

“정말이지 성격하고는....”

상의 모양이 약간 이상하다 싶어서 자세히 살피자 한쪽 다리가 완전히 날아가 있다. 전에는 윗부분을 박살내서 어렵게 접착을 해놨더니 이제 아주 못쓰게 해놨구나. 이거 버릴 때에도 돈 들어서 그냥 가지고 있었던 건데 이번에는 미련 없이 갖다 버려야 겠다. 

태양은 베란다로 나와서 유리문을 열고 방충망도 열었다. 유리창에 머리를 기댄 태양은 아래를 내려다 봤다. 한참을 내려다보자 잠바를 걸치며 튀어 나오는 태유가 보였다. 그렇게 술을 마셨으면서도 저 흔들림 없는 걸음이라니. 정말 징하다며 태양은 눈을 깜박였다. 

“웃. 이게 뭐야.”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얼굴을 돌리자 거실을 보고 얼굴을 구기고 있는 도후가 보였다.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고 주변을 살피며 이리로 다가오는 도후의 걸음은 조금 이상했다. 다리 사이의 은밀한 부위가 약간 돌출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태양은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흘렸다. 

“아래 괜찮아요?”

“괜찮을 리가 있겠어. 더는 묻지마.”

앞으로 손바닥을 뻗은 도후의 얼굴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 하반신 운운을 한 번 더 하면 그냥 화장실로 들어가 버릴 것 같아 태양은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심히 불편해 보이는 걸음으로 다가온 도후가 태양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얼굴을 내렸다. 

“어떻게 된 거야.”

“선배가 그냥 돌아간 모양이에요.”

태유는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선회를 하더니 검은 차 앞에 서서 주머니에 꺼낸 무언가로 팔을 휘저었다. 그리고 들고 있던 것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뭔가 싶어서 가만히 있던 태양은 곧 태유가 뭔 짓을 했는지 깨닫고는 아직도 태유를 찾지 못해 아래를 살피는 도후를 쳐다보며 말했다.   

“선배가 방금 당신 차에 무슨 짓을 했어요.”

“뭐? 무슨 짓이라니?”

“동전으로 옆구리를 긁는 것 같아요.”

“뭐?! 저 자식이!!”

놀란 도후는 바로 차를 쳐다봤다. 태유는 찾을 수 없지만 자신의 차는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주변에 있는 어떤 차보다도 위풍당당하게 주차되어 있는 고급스러운 저 차를 긁어놨단 말인가. 눈이 뒤집히는 것을 느끼며 도후는 주먹으로 베란다를 후려쳤다. 

“제길! 내 차!!”

“괜찮아요. 수리하면 되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돈 많이 든단 말이야!”

“그러면 선배한테 청구하면 되잖아요. 흥분하지 말아요.”

“.............!!!”

그래도 흥분이 된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봐도 태양은 무덤덤한 반응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건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니까 너무 열 내지 말아요-같은 반응이 돌아올 거다. 진정하자며 입술을 깨문 도후는 아래를 쳐다봤다. 태유의 모습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지만 저 아래에 있는 차는 확실하게 보였다. 밤이라 캄캄한데도 검은 차가 왜 이렇게 잘 보이는 걸까. 태유에게 몹쓸 일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더더욱 눈에 잘 보이는 모양이다. 

제길. 모처럼 큰마음 먹고 산 차인데....

“나쁜 자식. 똑같이 해주마.”

“그렇게 하던가요.”

대답을 하는 태양의 목소리는 심드렁하다. 이쪽은 차에 기스가 생겨서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아 실의에 빠져 있는데 태양은 왜 이렇게 태연하기만 하단 말인가. 그 태도가 심히 섭섭하기만 했던 도후는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든 채로 태양 쪽으로 손가락을 세웠다.  

“너 태유편 드는 거야?”

“유치하게 지금 편 가르기 하는 거예요?”

그 말 그대로 편 가르기를 하고 이쪽 편을 들어 달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면 분명 유치하다고 하겠지. 도후는 입을 꾹 다물고 아래를 쳐다보기만 했다. 차가운 바람이 뺨을 스치자 어느 정도 마음에 가라앉는 것 같다. 동시에 지금 자신의 상태를 정리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미쳤다고 할 정도로 일정을 빽빽하게 해서 다 소화하고 바로 태양에게 날아왔다. 태양의 얼굴을 보자마자 바로 입술 박치기를 시도했다가 그 모습을 태유에게 들켰다. 어찌어찌 술을 마시게 되어 자신이 키스마가 된다는 것을 태양에게 들키게 되었고 태양의 도발에 넘어가 키스마로서의 훌륭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려고 했는데 중간에 태유가 난리를 쳐서 흐지부지하게 됐다. 하반신은 아직도 반쯤 발기한 상태다. 태어나서 27년을 살았지만 지금처럼 자신이 한심하다고 여겨진 적은 없었다. 나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란 말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한숨을 푹푹 쉬려니 허리로 팔이 둘러진다. 

“왜 그렇게 한숨을 쉬어요?”

얼굴을 내리자 허리를 팔로 감고 딱 달라붙어 있는 태양이 보였다. 태양의 얼굴이 보이자 속이 풀어진다. 동시에 더 답답해졌다. 

“내가 한심하게 여겨져서.”

“왜 한심하게 여겨지는 데요.”

“그냥 이것저것이 한심하게 여겨져.”

“그러면 지금부터 한심해지지 않으면 되잖아요.”

“뭐?”

그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는 순간 태양은 도후의 손을 잡아 거실 쪽으로 밀어냈다. 갑작스레 밀쳐내는 것에 버티고 있을 수가 없었던 도후는 뒷걸음질을 치며 거실로 들어갔다. 뒷걸음으로 몇 걸음 걸어가려니 태양이 거실로 따라 들어와서는 베란다와 연결된 유리문을 천천히 닫았다. 문이 탁-하고 닫히는 것에 도후는 침을 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그런 도후의 눈에서 시선 하나 옮기지 않은 채로 태양은 한쪽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묘한 느낌을 풍기는 웃음이다. 딸꾹질을 한 도후는 저도 모르게 셔츠를 양손으로 잡으며 어물거리며 말했다.  

“지..지금 뭐하려고?”

“글쎄요. 뭘 하려는 걸까요?”

말을 하면서 태양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가볍게 고개를 털며 눈을 아래로 내리뜨는 모습은 끔찍할 정도로 섹시했다.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끼며 도후는 식은땀을 흘렸다. 체온이 올라가 더워지는 것을 느낀 그는 지저분한 방을 손으로 가리키며 화제를 돌리려 노력했다.  

“일단 거실 청소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 정말 엉망이다.”

“놔둬요. 내일 아침에 정리하게.”

“국물은 바로 지워야하는데. 남겨두면 얼룩 남아.”

“남으라고 해요.”

“하지만...”

“유도후.”

“..................”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태양이 이름을 부른다. 그것도 성을 다 합해서 불렀다. 도후는 망연한 표정을 지은 채로 태양을 쳐다봤고 태양은 바로 셔츠를 벗어서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아까부터 계속 입만 움직일 겁니까?”

상반신은 누드. 머리카락은 흐트러진 채로 한쪽 입술을 묘하게 올리고 있다. 태양의 동그란 눈동자에 재미있다는 감정이 떠올라 있는 것을 확인한 도후는 침을 삼켰다. 목이 너무 말라 있어서 한 번 침을 삼키는 걸로는 어림도 없다. 가슴이 콱 막혀서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도후는 이를 갈았다. 

“...제길...! 요부 같은 녀석..!”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음 순간 도후는 태양의 몸을 안아들고 있었다. 도후에게 안겨져서 방으로 들어가면서 태양이 생각한 것은 ‘이건 너무 효과가 좋다.’라는 것이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도발을 한 건데 이렇게 넘어가 주면 살짝 불안해진다. 지금이라도 잔뜩 흥분한 도후를 진정시켜야 할까. 그런 생각으로 슬그머니 눈을 내린 태양은 거센 콧김을 내뿜는 도후의 얼굴을 보고는 위로 눈을 들었다. 

뭐, 그냥 둘까나. 

도후는 태양의 방으로 들어가 바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누워있는 태양의 위에 올라타 그의 온 몸에 입을 맞췄다. 볼과 턱과 목을 계속해서 오가며 입을 맞추며 도후는 옷을 벗겼다. 그리고 태양의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벗기고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로 들어갔다. 

발기된 성기로 태양의 성기를 꾹꾹 눌렀다. 그러다가 다리 사이로 성기를 꾸욱 밀어 넣자 태양은 안색을 굳히며 바로 도후의 목을 양 손으로 잡았다. 목을 조를 듯 잡는 것에 도후는 컥-하고 막힌 숨을 쉬며 태양을 쳐다봤다. 설마하니 관계를 핑계로 자신의 목을 졸라 죽일 셈인가-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도후는 굳은 표정을 하고 있던 태양이 고개를 저는 것에 아-하고 입을 열었다. 

“일단 풀어줘야지.”

“그리고 안에다 하면 안 돼요.”

“나 지금 콘돔 없는데...”

도후의 말에 태양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것에 도후는 급히 말을 바꿨다. 

“안에다 안 하고 밖에다 할게.”

“그걸 어떻게 믿어요. 알아서 빼서 밖에다 할 만큼 당신 자제력이 높은 사람이에요?”

유혹을 하자마자 달려든 것을 보면 그리 자제력이 높다고 생각되지 않는데 말이다. 미심쩍은 듯 쳐다보는 시선에 도후는 어물거리며 말했다. 

“알아서 잘 할 수 있어. 날 믿어.”

“오빠만 믿으라는 멘트는 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하다는 것쯤은 나도 알거든요?”

“나는 다르다니까. 그러니까 좀 믿어봐.”

일단 되는 대로 말을 하고 있는 도후지만 지금 본인이 입으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서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태양하고 하게 되면 정말 큰 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마음은 진정시켰다.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던 그는 태양의 어깨를 잡고 입을 맞췄다. 쪼옥-하고 길게 입술을 누르다가 태양의 몸을 만지작거렸다. 

손끝에 닿는 태양의 피부와 온기에 황홀해진다. 입을 맞추고 있는 것만으로도 공중에 붕붕 뜨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도후는 더 큰 것을 원했다. 태양의 몸을 더듬던 손이 아래로 내려간다. 성급하게 엉덩이를 벌리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손가락에 태양은 몸에 힘을 줬다. 그러자 도후가 괜찮다는 듯 몸을 토닥였다. 

괜찮아. 걱정하지마. 형을 믿어. 

태양은 거칠어진 숨을 고르며 눈을 내렸다. 그러자 가슴을 쪽쪽 빠는 도후가 보였다. 멀쩡한 사내가 반은 인사불성인 상태로 자신의 몸에 매달려 있는 것은 확실히 이상한 광경이다. 이 몸이 그렇게 좋은 걸까. 저렇게 정신이 나간 듯 한 얼굴을 할 정도로 말이다. 그 순간 도후의 잔뜩 발기된 성기가 허벅지에 닿았다. 동시에 태양은 자신의 성기도 도후의 것처럼 단단하게 발기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이건 남한테 뭐라 할 수 없는 상황인건가. 

지금 상황이 우스워진 태양은 피식-하고 웃으며 도후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는 팔에 힘을 줬다. 도후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고 엉덩이를 가르고 들어오는 손가락의 움직임에 입술을 깨물고 신음 소리를 죽였다. 

하아.

누구 것인지 모를 한숨이 들렸다. 도후는 이마에서 흐른 땀이 눈 속으로 들어가자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여 태양의 몸 안쪽의 살을 만지작거렸다. 

타인의 속살을 만진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었던 걸까. 이토록이나 은밀하고 비밀스럽고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던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낀 적이 없는 그런 미지의 감각을 느끼고 있다. 

도후는 목이 타는 것을 느꼈다. 점점 욕망이 강해졌다. 이 강한 욕망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태양이 떨어져야 했다. 도후는 비좁은 곳에서 힘겹게 얼굴을 들어 눈에 보이는 유두에 이를 세워 세게 깨물었다. 

“앗...!”

태양이 소리를 지르며 살짝 떨어지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도후는 태양의 작은 머리를 양손으로 잡아 단단히 고정하고는 곧장 혀를 집어넣었다. 갑작스런 공격에 태양이 이를 세워서 혀를 깨물어 아프긴 했지만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 

도후는 열심히 혀를 움직이며 태양을 흥분시켰다. 그러자 처음에는 이쪽을 밀어내려 했던 손이 등에 둘러진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도후는 태양의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아 위로 올렸다. 그리고 단단하게 발기된 성기의 끝을 태양의 입구에 눌렀다. 

뜨거운 것이 닿는다. 태양은 놀라 바로 입술을 뗐다. 굳은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는 태양을 마주 쳐다보며 도후는 침을 삼켰다. 

꿀꺽.

생침이 마른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그 순간 태양은 입술을 깨물며 눈을 내렸다. 무언의 허락을 받은 도후는 바로 성기로 입구를 눌렀다. 

“....으..!”

뜨거운 것이 파고 들어왔다.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을 느끼며 태양은 입술을 깨물고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삼켰다. 그러자 도후도 아무 말 없이 태양의 몸을 끌어안고 성기를 다 삽입시키는 일에 집중했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는 성기에 내벽의 뜨거운 살이 달라붙었다. 점점 태양의 몸에 파묻혀가는 살의 면적이 넓어질수록 도후의 숨이 거칠어졌다. 강한 쾌감은 기분을 좋게 하는 한편 머리를 아프게 했다. 머리가 부서질 것 같다. 이상한 기분이라고 생각하며 도후는 태양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땀이 느껴진다. 얼굴을 내려 코를 핥자 짭조롬한 맛이 느껴졌다. 더 얼굴을 내려 입을 맞추자 태양이 팔을 들어 단단한 등에 둘렀다. 동시에 태양의 다리가 자신의 허리에 감기는 것을 느끼며 도후는 바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찌걱거리는 젖은 살의 마찰음과 침대의 기울임. 더불어 태양과 도후의 막힌 숨이 터져 나왔다. 둘 다 쾌감과 아픔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젖은 마찰음과 동시에 살이 부딪히면서 울리는 숨소리가 이상했다. 헉헉 거리면서 태양은 어떻게든 도후에게 매달리려 했다. 하지만 깊숙이 파고 들어올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손이 미끌어져 내린다. 주춤거리며 몸이 떨어지려 하면 어김없이 도후가 팔을 내려 태양의 몸을 끌어안았다. 

얼굴을 내려 입을 맞췄다. 옆으로 얼굴을 기울여 혀가 얽히는 진하게 입을 맞추면서 아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힘들어진 태양은 거친 숨을 헐떡이며 뒤로 얼굴을 물렸다. 하얗게 드러난 태양의 목에 이를 세우며 도후는 조금 더 결합을 깊숙이 했다. 

“.....아..!”

짧은 비명과 동시에 따스함을 갈구하듯 딱 달라붙은 둘은 서로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자신의 체온을 서로에게 조금씩 흘러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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