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22)

“허리가 아파.”

중얼거린 태양은 허리에 손을 대고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태양의 말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도후의 얼굴이 조금 더 깊숙이 숙여진다. 도후가 그러거나 말거나 태양의 손은 계속해서 허리에 머물러 있었다. 

도후가 너무 거칠게 움직였기 때문인지 몰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다. 엎드린 상태가 되어 뒤로 손을 뻗어 허리를 주물거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려니 손가락 위로 따뜻한 온기가 닿는다. 도후의 손이 닿는 순간 태양은 얼굴색이 변해서는 냅다 그의 손등을 후려쳤다. 찰싹-하고 호되게 맞은 주제에도 도후는 손을 물리지 않았다. 태양의 손을 치워내고는 발갛게 물이 든 허리를 주물거렸다. 땀이나 정액으로 축축하게 되었지만 그런 것 따위 하나도 상관없다는 듯 정성스럽게 주물거리는 것이 태양의 몸에서 긴장이 풀어진다. 또 동해서 덤비려고 하는 줄 알고 괜히 긴장했다. 엎드린 상태로 도후가 주물거리는 대로 몸이 흔들리고 있던 태양은 눈을 들어 시계를 쳐다봤다. 

집에 들어왔을 때가 9시 가량 되었고 할 때 즈음이 한 9시 반이나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이 새벽 3시다. 도대체 이건 어떻게 된 거냐고 묻고 싶다. 그냥 한번이면 떨어질 것 같았던 도후가 계속해서 달라붙는 덕분에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의외로 사정하는 것도 느려서 정말 힘들었다. 아프다고 하는데도 물러나지도 않고 밀어내도 떨어지지 않았다. 일단 달라붙었으니 자기의 정욕을 다 풀어야 겠다는 남자의 원시적인 욕망이 폭발을 했던 것일까. 그래도 너무 하잖아. 이쪽은 처음이었고 그쪽도 보면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지. 과연 처음이었을까. 참기름을 들고 온 것이 아무래도 수상쩍다. 남자와의 관계를 정말 모른다면 그런 일을 알 수가 있을까. 모델이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들은 말이 많아서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눈을 굴리며 생각을 하던 태양은 흔들리던 몸이 가만히 있는 것을 깨닫고는 뒤로 눈을 돌렸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안마를 멈추고 어느 부위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도후의 얼굴이다. 도대체 뭘 보고 있는 건가 싶어 눈을 내리자 도후의 눈은 자신의 엉덩이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

엉덩이 꼴이 말이 아니었다. 발간 손자국과 빤 흔적이 남아서 알록달록한 상태였고, 거기다가 정액이 묻어 있었는데 다리를 벌리면 더 흘러나오는 것이 있을 거다. 보기 좋다고 할 수도 없고 깨끗하다고도 할 수 없는 곳을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건지 모르겠다. 눈이 발갛게 되어서는 침을 꼴깍 삼켜대는 것에 태양의 표정이 싹 변한다. 태양은 아픈 허리를 유의하며 아주 천천히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러자 ‘아.’하는 소리를 낸 도후가 얼굴을 들고 태양을 쳐다본다.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있는 태양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도후는 아차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난 그저...!”

“또 하고 싶어졌어요? 그렇게나 한 주제에.”

“...................”

“떨어뜨리려고 하면 또 달라붙고, 계속 달라붙었죠. 아프다고 하는데도 허리만 흔들고, 나중에는 억지로 눌러서 파고 들어왔던 거 기억나요?”

태양의 높낮이가 없는 무덤덤한 설명에 도후는 ‘그..그게 그러니까..!’라며 당황이 역력한 표정을 지었다. 

“안에다 하면 안 될 것 같다고 했더니 괜찮다고 말하면서 몇 번이나 안에다 했죠? 알아서 책임을 진다고 말을 했는데 뭘 알아서 책임진다는 건지. 그쪽 덕분에 지금 배가 아주 아프거든요. 나 이러다 설사하면 어떻게 할 거에요?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바닥에 누워 있다가 그대로 지리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괜찮아 내가 치워줄 테니까.”

도후의 얼굴이 발갛게 변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하는 정도의 반응만을 기대했다. 그런데 저런 말을 하고 있다. 태양은 도후를 빤히 쳐다봤다. 노골적으로 쳐다보면 좀 변할 줄 알았는데 그도 아니다. 여전히 진지한 얼굴을 하는 것에 태양은 타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혹시 일부일처제의 남자인가. 한번 관계를 맺은 상대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거 말이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하고의 경험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면.... 

태양은 다시금 도후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봤다. 도후의 얼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눈동자에서 전해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전에 자신의 보던 그 눈이 아니다. 애정이라고 불러야 하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것에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 태양은 얼굴을 숙이며 말했다. 

“됐어요. 그보다 푹신한 곳으로 가고 싶어요.”

“푹신한 곳? 어디에?”

“방 침대요.”

“그 전에 씻어야 하는 거 아냐?”

“나 지금 못 움직여요.”

“그래? 그러면 일단 자리를 옮기자.”

말과 함께 도후는 태양의 몸을 조심스레 안아 올렸다. 흔들림 없이 도후에게 안겨서 들어 올려진 태양은 눈을 깜박였다. 이런 식으로 공주님 안기를 당한 적은 처음이다. 처음이지만 기분이 나쁘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소중하게 대해주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 기분이 들어서 기분은 좋았다. 태양은 침대에 누워 머리 아래에 베개를 베주는 도후의 행동에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바닥에 뭐가 묻었는데 그거 어떻게 할 거에요?”

“내가 닦을게.”

“정말요?”

“그래. 그러니까 안심하고 일단 자.”

그리 말하며 도후는 이불을 들어 태양의 가슴까지 덮고 옆에 앉아 토닥였다. 

이쪽이 어린애도 아닌데 이 무슨 행동인지 모르겠다. 그 전에 알몸의 남자가 옆에 앉아서 저렇게 가슴 두드리기나 하고 있다니. 그게 부끄럽지도 않은 건가. 슬그머니 아래로 눈을 내려 쳐다봐도 도후의 얼굴은 그대로다. 달라지지 않는 뻔뻔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태양은 손을 들어 도후의 턱을 만졌다. 태양의 손가락이 닿았을 때 도후는 움찔하고 몸을 굳히긴 했지만 피하거나 하지 않았다. 태양은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도후의 턱을 만졌다. 색기 하나 없이 쓱쓱쓱-하고 문지르자 꺼끌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벌써부터 툭수염이 나기 시작하는 건가. 하긴 그렇게나 밝히는 것을 보아하니 몸의 털이 빨리 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턱에서 손가락을 떼고 배에 올렸다. 그러자 이쪽을 가만히 쳐다보던 도후가 얼굴을 내려 입을 맞췄다. 쪼옥-하고 길게 입술을 누르던 그는 태양이 거부를 하지 않자 더 용기를 냈다. 

조심스레 혀가 입 안으로 들어와 볼 안쪽을 더듬었다. 치열을 쓰다듬고는 혀를 잡아 당겨 빨아들였다. 쪽쪽 거리는 젖은 소리에도 태양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편안히 있었다. 그러자 도후가 입술을 떼고 손가락으로 태양의 볼을 쓰다듬는다. 엄지로 뺨과 턱을 계속해서 쓰다듬는 도후는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에 태양은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가 궁금해졌다. 

“무슨 생각을 해요?”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태양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태양의 물음에 도후는 입을 열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

“솔직한 대답이네요.”

하긴 이쪽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데 도후라고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아까 개처럼 헉헉 거리고 움직일 때부터 그의 기본적인 성격에 대해서 알아 버렸다. 움직이기 전에는 답답할 정도로 생각을 많이 하면서 막상 일을 벌이고 나면 앞뒤 구분 안 하고 달려드는 타입이다. 그런 타입이 의외로 피곤한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태양은 천을 들어 목 아래까지 끌어당겼다. 그러자 도후가 태양의 턱을 간질거리며 머뭇거린다. 무슨 말을 하고 싶기에 저렇게 망설이는지 모르겠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데요? 답답하게 굴지 말고 말을 해봐요.”

“아직도 아파?”

“당연히 아프죠. 나는 그렇게 달라붙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래?”

중얼거린 도후는 다시금 입을 맞추려 들었다. 입술을 누르고 이로 깨물었다. 그의 손이 이불 속으로 들어가 허리와 엉덩이를 쓰다듬자 태양은 인상을 쓰며 그의 손목을 잡았다. 

“왜 이래요?”

“아니.”

말을 회피하며 시선을 돌리지만 그 속에 남아있는 아쉬움이 전해졌다. 그것에 태양은 혀를 쳤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와 있던 도후의 손을 치워내고 옆으로 살짝 물러났다. 그 약간의 움직임에도 허리가 아프다. 엉덩이가 아팠고 벌려진 다리도 아팠다. 아아-하고 인상을 쓴 태양은 침대에 반쯤 엎드린 상태로 있던 도후를 쳐다보며 빈 옆자리를 두드렸다. 

“이리 와서 누워요.”

“누워도 괜찮아?”

“더 이상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면요.”

태양의 말에 도후는 생각하는 잠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태양의 옆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누웠다. 도후는 태양의 머리를 들어 팔베개를 하게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리고는 옆으로 몸을 돌려 태양의 몸 위로 다른 한쪽 팔을 올렸다. 마치 끌어안듯이 말이다. 마지막으로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짧게 한숨을 쉬며 코를 비비는 도후의 행동에 태양은 눈을 깜박였다. 

이건 지나치게 적응이 빠른 것이 아닐까 싶었다. 관계를 맺은 후에 머리를 부여잡으며 ‘이 일을 어떻게 하란 말이야!’라고 소리치는 것을 바라진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태연하게 반응을 보일 줄은 또 몰랐는데 말이다. 어쩐지 재미가 없다. 그래서 한 번 건드려 볼까-하는 기분으로 태양은 태연하게 물었다. 

“부모님이 알면 어떻게 될까요?”

묻는 순간 베고 있던 팔이 움찔하고 떨렸다. 도후가 슬그머니 눈을 위로 드는 것에 태양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아무 생각 안하고 있죠?”

“........뭐....”

“일단 사고를 치고 보는 유형?”

태양의 계속되는 물음에도 도후는 이렇다 할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던 도후는 계속 달라붙는 태양의 시선에 슬그머니 눈을 내려 태양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는 어떤 유형인데?”

“나는 원래 아무 생각 없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유형이거든요. 일단은 나부터 기분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편한 사고방식이다. 태양처럼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다면 이 나라는 어떤 식으로 굴러가게 되는 것일까. 문득 나라의 미래가 걱정이 된다. 뭐, 이쪽에서 무슨 걱정을 한다고 해서 일이 잘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태양이 왜 이런 질문을 던지는지 모르는 것은 아니다. 지금 도후는 이상할 정도로 편안한 상태였다. 태양을 안기 전에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서 폭발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무렴 어때.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심정이다. 배가 가득 찬 듯 한 만복감이 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굳이 머리가 아픈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팔에 무게가 더해졌다. 태양이 조금 더 위쪽으로 머리를 베며 몸을 붙였다. 조심스레 움직이는 것 같은데도 결국에는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며 아픈 표정을 짓는다. 태양은 아파서 그런 표정을 짓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아래가 불끈했다. 도후는 슬그머니 태양 쪽으로 몸을 숙이며 손가락으로 그의 입술을 꾹 눌렀다. 그러자 태양이 동그란 눈으로 이쪽을 올려다본다. 눈이 마주치자 도후는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더 할 수 있어?”

“하기는.”

태양은 도후의 말에 반박을 하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것이 기회라는 듯 도후는 태양의 뺨에 손가락을 대고 입을 맞췄다. 

역시나 부드럽다. 부드러운 데다가 달콤한 향기가 난다. 왜 일까. 태양은 입술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는데 말이다. 거의 푹 빠져서는 태양에게 입을 맞추던 도후는 천천히 입술을 떨어뜨리고 이마를 댔다. 

태양은 아주 가까이에 있는 도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가 싶더니 손가락을 들어 그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당신과의 관계 중에서 그나마 기분이 좋았던 게 바로 이거에요.”

가장 좋았던 것이 키스뿐이었다는 건가. 태양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한 도후는 눈썹 사이에 주름을 만들었다. 

“이것 밖에 없었던 거야?”

도후의 중얼거림에 태양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가까이 해서는 도후의 호흡이 흘러나오는 입술을 대고 가볍게 문질렀을 뿐이다. 장난을 치듯 입술을 비비기만 했지만 그 행위에 다시금 불끈하게 된다. 도후는 발기한 성기를 태양의 몸 쪽으로 붙이며 벌려진 태양의 입술 사이로 혀를 밀어 넣었다. 그것에 태양이 그만 하라며 찰싹-소리가 날 정도로 등을 때렸지만 도후는 웬만해서는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이번에도 팔이 아팠다. 뭔가 무거운 것이 팔을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전처럼 이게 무엇일까-하는 궁금증은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금 자신의 팔에 머리를 베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침을 삼킨 도후는 슬그머니 눈을 떠서 팔에 머리를 베고 있는 자를 쳐다봤다. 보이는 것은 태양이다. 옆으로 몸을 돌린 태양은 눈을 감고 새근거리는 호흡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잠든 모습을 보는 순간 도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읏..!”

순간 도후의 머리 속으로 어제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제정신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장면들이다. 괴로운 듯 인상을 쓴 도후는 머리를 부여잡으려다 태양이 팔에 머리를 베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주춤거렸다. 그러자 태양이 인상을 쓰며 똑바로 몸을 누우려 한다. 그러다가 정말로 아픈 듯 얼굴을 구기며 입을 벌리고 ‘아얏..’라는 소리를 냈다. 허리가 아픈 모양이다. 놀란 도후는 태양의 어깨를 잡고 조심스레 몸을 눕혀줬다. 그러고 나서야 태양의 미간 사이에 생겨있던 주름이 사라진다. 한결 편안한 얼굴이 되어 잠이 든 그 모습에 안도가 된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길게 한숨을 쉬던 도후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아니. 지금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해하는 거란 말인가. 태양의 미간 사이에 주름이 만들어졌다는 것에 너무 전전긍긍해하는 것이 아니냔 말야. 하지만 태양이 이렇게 아파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 때문이다. 내가 너무 집요하게 굴어서...

그 순간 간 밤의 일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몸을 젖히는 태양과 그런 태양에게 달라붙던 자신. 괴로운 표정 속에서도 일말의 쾌감을 발견하면 정신없이 태양의 몸에 매달렸던 것. 뜨겁고 좁던 그것으로 파고들어가던 자신의.... 

점점 도를 더해가는 망상에 도후는 눈을 꼬옥 감았다 뜨며 중얼거렸다. 

“도대체가....”

어제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건지 모르겠다. 태양은 남자인데다 앞으로 동생이 될 사람이다. 앞으로 같이 살게 되는 사람이란 말이다. 도대체 태양의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런 무모한 행동을 한 건지 모르겠다. 생애 27년 동안 지금 이 순간이 대박으로 사고를 친 시점이었다. 처음 모델이 되려고 엄마에게 반항을 했을 때에도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는데... 

“제길....머리 아파 죽겠네...”

신음을 흘리며 태양이 머리를 베지 않은 손으로 머리를 누르고 있는데 옆에서 으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도후는 급히 태양을 쳐다봤다. 또 어디가 불편해져서 그런 소리를 내는 건가 싶었는데 아닌 모양이다.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고 있을 뿐 여전히 잘 자고 있다. 그 모습에 안도를 하면서도 미간에 난 주름이 거슬린다. 도후는 손을 들어 그 주름을 눌렀다. 처음에는 잘 되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눌러주다 보니 평평해진다. 그것에 도후는 휴-하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됐다. 이제 조금 편안해 보인...

“............나 지금 뭘 하는 거야.”

그러니까 지금 태양의 미간 사이에 주름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다. 지금은 이 사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건데 말이다. 아무래도 이쪽이 3살이나 더 연상이니까 무슨 일이 생겼을 시에 책임도 확실하게 져야 할 거다. 이마에 손을 짚은 채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도후는 옆에서 들리는 새근거리는 소리에 눈을 내렸다. 그리고 태양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쳐다봤다. 

“.............예쁘네.”

정말로 예쁘게 생겼다. 여자같이 보이는 그런 예쁜 얼굴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괜히 건드려보고 싶고, 말을 걸어보고 싶다. 손가락으로 태양의 볼을 두어번 토닥인 도후는 얼굴을 내려 태양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기억 속에서 보다 훨씬 기분 좋았다. 한 번 더 태양에게 입을 맞춘 도후는 얼굴을 떼고 태양의 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아무래도 상관없나. 일단 이쪽이 태양을 안은 것은 확실한 일이니까. 일단 그 일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책임을 져야 할 거다. 이제 와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발뺌을 하는 것만큼 치사한 일은 없는 것일 테니 말이다.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되겠지. 도후는 태양의 몸을 끌어안으며 검은 머리카락에 볼을 비볐다. 아까까지만 해도 잡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졌다. 긴장이 사라졌다고 해야 하나,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그저 품 안에 있는 태양에게만 집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 몸이 좀 가늘다고 생각을 하긴 했는데 손목이나 허리 같은 곳이 정말 얇다. 어제 잡은 발목도 가늘었지. 그리고 휘어지던 허리하고 어깨의 선도 굉장히 예뻤다. 

“....................”

도후는 침을 삼키고 주변을 둘러봤다. 태양의 방이 아닌 아저씨의 방이라는 것이 걸리긴 하지만 그대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은 자신들 뿐이다. 무슨 일을 해도 뭐라 하는 자들은 없을 거다. 도후는 태양의 턱을 잡고 그 위로 얼굴을 내렸다. 막 입술이 닿으려던 순간 태양의 입술이 기다렸다는 듯 벌려지고 그 사이에서 하아-하는 한숨을 터져 나왔다. 

“배 아파요.”

“응?”

따뜻한 호흡이 느껴지긴 했지만 설마하니 태양이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분명히 자고 있는 상태였는데. 소스라치게 놀란 도후는 바로 태양에게서 떨어졌고 이쪽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태양과 시선이 마주쳤다. 가슴에 한 손을 올린 채로 태양은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잠든 사람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했어?’라고 묻는 듯 한 그 표정에 도후는 침을 삼키며 물었다.  

“뭐..뭐라고 했어?”

“배 아프다고요. 화장실 가고 싶어요.”

“화장실?”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인상을 쓰며 이쪽의 말을 따라서 말하는 도후의 모습에 태양은 혀를 차며 내뱉듯 말했다. 

“싸겠다고요.”

그 말과 동시에 구르듯이 침대에서 내려온 도후는 바로 태양의 몸을 공주님 안기로 들어올렸다. 

쏴아아악----

닫힌 문 안쪽으로 계속해서 물 트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저 소리만 나고 사람 소리는 안 들리니까 괜히 초조해진다. 

속옷은 커녕 반바지 하나만 입은 상태로 도후는 화장실 문 앞을 왔다 갔다 했다. 턱에 손가락을 대고 불안한 듯 문을 쳐다보던 도후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문을 두드렸다. 

“이봐. 괜찮아?”

들리는 것은 여전히 물 트는 소리뿐이다. 간간이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몸 안쪽에 사정을 했더니 그것 때문에 속이 이상해진 건가? 그래도 너무 안 나오잖아. 벌써 30분 째다. 이번에도 대답이 없으면 젓가락을 사용해서 억지로라도 문을 열 생각을 하며 도후는 문에 손바닥을 눌렀다.  

“이봐. 내가 들어갈....”

달칵.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태양이 나왔다. 아래로 얼굴을 내리고 있는 태양의 얼굴은 창백했다. 밖으로 나와서 멍하니 선 채로 배에 한 손을 대고 있는 모습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할 말이 없었던 도후는 그런 태양의 팔을 잡으며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아?”

“허리 아파요.”

“이리와.”

도후는 바로 태양의 몸을 안아들었다. 공주님 안기를 하려 했지만 이번에 태양은 기다렸다는 듯 바로 신음을 흘리며 아픈 소리를 냈다. 그래서 그냥 겨드랑이와 허리를 팔로 감고 다시금 호수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호수의 침대에 조심스레 앉히자 태양이 배를 양 팔로 감싸고 인상을 쓴다. 정말 아파 보였다. 그런 태양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도후는 아무 말이나 했다. 

“뭐 먹을래?”

“배 아파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아파?”

“내가 당신 안에 한번 싸볼까요?”

“싸보다니! 그런 말을...!”

“그 말이 뭐가 어때서요.”

태양은 침대에 손을 대고 천천히 몸을 눕혔다. 베개에 머리를 대고는 눈을 감고 긴 한숨을 쉰다. 평소 태양답지 않게 약한 모습이다. 그가 지금 이런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이쪽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도후는 그저 고개를 팍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곁눈질로 살피던 도후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난 태양의 위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약 사다줄까?”

“잡채.”

“응?”

“잡채 먹고 싶어요. 해줄 거예요?”

“해줄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일으켜 세운 도후는 바로 방 밖으로 나가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 쪽에서 달그락 거리는 조리 기구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태양은 옆에 구겨져 있던 이불을 끌어 몸 위에 덮으며 중얼거렸다. 

“배가 아프긴 하지만 그래도 편하네.”

이거 해 달라 저거 해달라고 해도 도후는 다 해줄 기세다. 알아서 움직이는 커다란 리모컨을 가지고 있는 듯 한 기분이었다.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태양은 몸에서 힘을 빼고 침대에 편하게 누웠다. 

정확히 1시간 만에 잡채가 완성 되었다. 전에 재료는 전부 완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빨리 된 것이다. 그 외에도 태양이 좋아하는 계란찜이나 된장국 같은 것도 착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밥이 되는 동안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잠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난 태양은 의자에 앉아 허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덜 아파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좀 불편하다. 고개를 털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려니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도후가 하얀 밥이 가득 든 공기를 내밀었다. 공기밥을 받아 앞에 놓은 태양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뭐라고 해야 하나. 마치 몸을 주고 났더니 굉장히 잘해주는 남자의 반응을 눈앞에서 보고 있는 듯 한 느낌이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나. 

식욕은 없었지만 아무려면 어떠냐는 기분으로 태양은 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그리고 바로 잡채를 덜어 먹었다. 우물거리면서 잡채를 씹어 넘긴 후에 다시금 잡채를 떠 입에 넣는 것에 도후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때?”

“맛있어요. 먹어봐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도후는 그제야 젓가락을 들어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잡채나 된장국을 먹으면서도 자꾸 이쪽을 쳐다본다. 힐긋 거리면서 쳐다보는 것에 태양은 일부러 웃어줘야 하나 싶었다. 환하게 한번 웃어줘야지 안심하고 밥을 먹을 것 같다. 그 순간 배에서 꾸룩-하는 소리가 났다. 놀란 태양은 바로 아래로 손을 내렸고 내내 태양의 안색을 살피던 도후가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내밀었다. 

“왜 그래?”

“.......배 아파.”

“또?”

고개를 끄덕인 태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뚱거리는 꼴사나운 모습으로 화장실로 들어가 바로 변기 위에 앉았다. 곧 요란한 소리가 나고 동시에 쏴아악-하고 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에 문 밖에 있던 도후는 초조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괜찮아?”

“안 괜찮아요.”

이번에는 바로 대답이 돌아오긴 했지만 이건 이것대로 곤란하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를 모르겠다. 입을 다물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으려니 문이 열리고 태양이 나온다. 배를 손바닥으로 누른 채로 나오는 태양의 팔을 부축한 도후는 중얼거렸다. 

“그것 때문인가.”

“당신 정액 때문이에요.”

직접적으로 입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암만 빙빙 돌려도 태양은 눈치 없이 바로 지적했다. 정액이라는 단어가 저 귀여운 입에서 스스럼없이 나오다니. 듣는 이쪽이 더 무안하다. 어떻게 그런 말을 저리도 태연하게 할 수 있는 거냐고 생각을 하며 길게 한숨을 쉰 도후는 태양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집에 지사제 없어?”

“지사제요? 그런 걸 먹는다고 설사가 멈출 리가 없잖아요.”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지. 있어. 없어?”

“없어요.”

“사올게 기다려.”

도후는 바로 태양의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자신의 원래 옷으로 대충 껴입고는 모자를 깊숙이 눌러썼다. 순식간에 나갈 채비를 하는 모습에 태양은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사오지 말고 그냥 여기에 있어요.”

“아니. 사와서 먹이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거라도 먹여야지 안심이 되지.”

“지사제 먹어도 아무 소용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따뜻한 물속에 들어가 있어야지.”

거울 앞에 서서 머리 모양을 살핀 도후는 손으로 가슴 부분을 눌렀다. 선글라스가 없긴 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나-싶었던 도후를 거실로 나왔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있는 태양이다. 창백하게 질린 태양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도후는 손을 들어 태양의 머리를 토닥였다. 

“금방 다녀올게. 걱정하지마. 열쇠 내가 들고 간다.”

위로 든 도후의 손가락에는 열쇠가 걸려 있었다. 손가락에 낀 열쇠를 빙글 돌린 도후는 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달칵-하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자 태양은 손을 들어 도후가 토닥였던 머리를 주먹으로 두드렸다. 

“걱정은 누가 한다고...”

도후의 손은 크고 따뜻했다. 그리고 애정이 담겨 있었다. 

태양의 손가락이 머리 속 깊숙이 들어간다. 머리카락을 들어 두피를 건드리던 태양은 절뚝거리며 베란다 쪽으로 갔다. 창을 열고 베란다 쪽으로 나가서 바깥 유리문과 방충망을 열어 아래를 쳐다봤다. 조금 기다리자 아파트에서 나오는 도후가 보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빠르게 단지 바깥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딱 봐도 그가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괜찮네.”

피식-하고 웃은 태양은 방충망을 닫고 다시금 안으로 들어갔다. 

지사제를 사고 들어오는 길에 슈퍼에 들려 쇠고기 두 근을 더 사왔다. 지금 태양은 속이 안 좋아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저도 모르게 지르고 말았다. 맛있게 볶아주면 저녁에라도 속이 좋아져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다. 도후는 들고 있는 검은 봉지를 내려다봤다. 정말이지 지극 정성이다. 지금껏 다른 사람과 사귄 적은 몇 번 없지만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배려를 해준 적은 없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기분은 좋았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뭘 사오고 맛있는 것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좋은 느낌이다. 슬그머니 웃음을 지은 도후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 얼굴을 들어 저 앞에 있는 아파트 10층을 쳐다봤다. 창문이 열려 있는 것 같다. 안 닫았나-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앞에 뭔가가 툭-하고 부딪쳤다. 다급히 얼굴을 내린 도후는 앞에 있는 것이 동석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입을 벌렸다. 

“에?”

“내 이름은 동석이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런 기분으로 동석을 내려다본 도후는 옆으로 얼굴을 돌리고 훗-하는 짧은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동석을 지나쳐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실례.”

“잠깐 어디를 가는 거야?”

“나한테 할 말 있냐? 그런데 난 지금 바쁘니까 다음에 이야기 하자.”

“아앗! 너 거기에 멈추지 못해?!”

바로 달려가 버리는 도후에 동석은 당황했다. 한번 부르면 멈출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다. 바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에 동석도 주먹을 쥐고 급히 그 뒤를 쫓았다. 짧은 다리를 이용해서 후다닥 달려간 동석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열심히 버튼을 눌러대는 도후의 옆으로 가 다시금 왈왈 거렸다. 

“왜 도망가는 거야! 내가 할 말이 있는데 말야!”

“난 네가 하는 말 듣고 싶지 않거든. 그리고 난 지금 바쁘니까 네 말 들어줄 수가 없다. 다음에 나 한가해지면 그때 와라. 알았지? 건방진 꼬맹아.”

“당신 지금 태양씨한테 가려는 거지?”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지금 누구더라 태양씨래! 형이라고 부르지 못해?!”

“웃기지마! 나는 태양씨의 남편이 될 거란 말이야! 그러니까 태양씨라고 부르는 건데 그게 뭐가 나빠?”

“뭐?”

이 녀석이 쥐약을 먹었나.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이가 없어 가만히 있으려니 마침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도후는 고민 했다. 이 시건방진 꼬마를 무시하고 그냥 엘리베이터를 탈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그냥 이 녀석을 상대해줄 것인가 하고 말이다. 그러다가 그냥 무시하는 것이 속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급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바로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데 동석은 잽싸게 손을 뻗어 문을 잡았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지금 태양이 몸이 아파서 있는데 왜 이 꼬맹이가 남의 앞길을 막는 건가. 이번에는 정말 화가 났던 도후는 무시무시하게 동석을 노려봤다. 그 대단한 기세에 동석은 움찔하고 몸을 떨었지만 그래도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눈에 힘을 준 동석은 주먹을 쥐고는 씩씩하게 외쳤다. 

“태양씨한테 떨어져! 이 거대 바퀴벌레야!!”

“이 녀석이...”

누구한테 거대 바퀴벌레라고 하는 거란 말인가. 그 거대 바퀴벌레가 지금 도심 한 가운데에 있는 엄청나게 큰 광고판에 떡하니 찍혀 있다는 것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당장 모자를 벗어서 맨 얼굴을 보여주고서 ‘내가 바퀴벌레로 보이냐!’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참으며 도후는 동석의 손목을 잡아 냅다 바깥으로 던져 버렸다. 

“당장 안 꺼져?! 밤톨만한 게 어디서 시비야. 한 대 맞으면 질질 짤 녀석이..!”

질질 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엉덩이에 불이 나게 해줄까 보다. 확 일을 저지르고 볼까 싶어서 인상을 쓰고 있는데 붕 떠서 바깥으로 던져진 동석이 그래도 물러나지 않고 다시금 엘리베이터의 문에 매달려 악을 써댔다. 

“못 가!”

“너 정말....”

“태양씨한테서 떨어져! 안 그러면 절대로 안 물러나!!”

나이도 어린 녀석이 왜 이렇게 고집이 세고 말을 안 듣는지 모르겠다. 머리에 확실하게 스팀이 오르는 것을 느끼며 도후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지금 유치원에 갈 시간 아니냐?”

“난 어린이집 다녀! 유치원 안 다닌다! 이 쪼다야!”

“..................”

처음에는 재수 없을 정도로 어른스러운 척 하더니만 지금은 쪼다 운운을 해대며 정말 유치하게 군다. 이런 유치한 녀석은 상대하지 말고 그냥 무시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도후는 활짝 열린 엘리베이터 문에 손을 대고 몸을 앞으로 숙였다. 갑자기 접근하는 도후에 놀란 건지 동석은 움찔하고 몸을 떨었지만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눈에 힘을 팍 주고 반항에 가득 차 이쪽을 쳐다보는 것에는 기가 차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 동석을 내려다 본채로 도후는 비틀어진 입술 사이로 질문을 던졌다. 

“너 태양의 남편이 되고 싶으냐?”

“다..당연하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도후는 다시금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손을 냈다. 그리고 한쪽 손을 들어 동석의 어깨를 잡고 꾸욱-하고 힘을 줬다. 

“유감스럽게도 태양의 남편은 네가 아니라 나다.”

“..........뭐?”

“우리 어제 합방했다. 알았냐?”

합방이라는 단어에 동석의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떠졌다. 굳어서는 멍하니 이쪽을 쳐다보기만 하는 동석을 흘겨보며 도후는 천천히 허리를 세웠다. 

“밤톨만한 게.”

“......합방?”

“그래.”

“.....합방이라고...?”

혹시 이 녀석 합방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아까부터 그 단어를 반복하는 건가 싶어 도후는 열림 버튼을 눌렀다. 모른다면 단어의 올바른 쓰임에 대해서 자세하게 일러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 나중에 덜 피곤할 테니 말이다. 

그 때 동석의 입술이 이상하게 비틀어졌다. 

“우........”

“우?”

또 무슨 말을 말을 하려는 건가 싶어 도후는 아래로 몸을 내렸다. 

바로 그 순간 요란한 울음소리가 동석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우에에에에엥!!!!!”

“헉!”

고막 터지는 줄 알았다. 급히 뒤로 물러난 도후는 목청이 나가라 크게 울어 젖히는 동석을 황당하다는 듯 쳐다봤다. 

“너......너 왜 울어?!”

“우아아아아앙!!!”

씩씩하게 덤비던 녀석이 왜 갑자기 우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아니. 그보다 일단 이 자리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 이쪽에서 저 녀석을 울리진 않았지만 여기에 가만히 있다가는 괜한 덤탱이를 쓰게 생겼다. 도후는 재빨리 닫힘 버튼을 연달아 눌렀고 활짝 열어져 있던 문이 천천히 닫혀 이내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저 녀석 머리가 이상한 거 아냐? 요즘에는 어린애도 이상한 놈들이 많다니까.”

정말 무서웠다면서 손바닥을 들어 가슴을 쓰다듬은 도후는 엘리베이터 벽에 등을 기댔다. 처음에는 점점 올라가는 층수를 확인하던 도후지만 점점 뺨이 발그랗게 물이 든다. 곧 엄청나게 얼굴이 달아오른 그는 주먹 쥔 손으로 얼굴을 눌렀다. 

악!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거야! 어린이집에 다니는 꼬맹이를 상대로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건지 모르겠다. 합방이라니. 합방이라니...!

그 순간 도후의 머리 속에 태양의 알몸이 떠올랐다. 유연하게 휘어지던 새하얀 등이 떠오르는 순간 급격히 혈압이 오른다. 목 뒤가 확 당겨지는 것을 느끼며 도후는 열리는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후다닥 달려간 그는 현관문 앞에 서서 열쇠로 문을 따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탕!

크게 들리는 소리에 태양이 주방 쪽에서 얼굴을 내민다. 태양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도후의 모습에 눈을 깜박였다. 

“왜 그래요? 누가 알아봤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면 그렇게 세게 문 닫지 말아요. 옆집에서 뭐라 그래요.”

“.....................”

지극히 현실적인 말만 하는 태양을 상대로 조금 전 동석과 있었던 일을 말할 수가 없다. 솔직하게 다 말을 해봤자 비웃음을 받는 것은 이쪽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도후는 침을 삼키며 신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봉지를 내려놓자 태양이 절뚝거리며 그리로 걸어와 봉지를 열고 지사제를 꺼냈다. 

“이거 먹으면 된데요?”

“응? 응. 하나 먹고 그래도 말 안 들으면 병원에 가보라고 하던데...”

“그래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식탁 위에 내려놓은 태양은 눈을 들고 도후의 얼굴을 쳐다봤다. 아까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얼굴이 아주 잘 보였다. 완전히 발갛게 달아오른 도후의 얼굴을 확인한 태양은 이상하다는 듯 눈을 깜박였다. 

“얼굴이 왜 그렇게 사과 같아요?”

“뭐..뭐가?”

“왜 사과 마냥 그렇게 붉어져 있냐고요.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아니. 아무 일 없었어.”

“정말이에요? 아무 일도 없는데 왜 그렇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어요? 정말 이상하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도후의 상태에 대해서 정말은 궁금하지 않은 듯 몸을 돌리고 냉장고 앞으로 간다. 문을 열고 물을 꺼내는 태양을 쳐다보던 도후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동석에 대해서 묻기로 했다. 

“그런데 말야 그 꼬맹이하고 너 도대체 무슨 사이야?”

“꼬맹이 누구요?”

“그 왜 있잖아. 전에 내 앞을 막아섰던 그 녀석 말야. 작고 땅달만해서는 바락바락 대들던 녀석.”

“동석이 말하는 거예요?”

“그래. 그 녀석에 대해서 묻는 거야!”

주먹을 불끈 쥐고는 거센 콧김을 내뿜는 도후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정말 화가 난 표정을 짓는 것에 태양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 녀석이 여기 이사 온 지 한 일 년 됐나? 놀이터에서 초등학교 녀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기에 가서 좀 도와줬을 뿐이에요. 그때부터 이상한 눈으로 이쪽을 쳐다봤던 것 같은데. 요즘 애들은 조숙하다고 하니까 그렇게 신경 쓰지 말아요.”

“신경 쓰지 말라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널 태양씨라고 부르고 널 신부로 삼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신경 쓰지 말라는 거야?”

“그럼 댁이 날 신부로 삼지 그래요?”

“..........에?”

잔뜩 흥분을 하던 도후지만 지금 태양의 말에는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뭔 말을 들은 건가 싶어 벙 찐 표정을 지으려니 물병을 열어 입에 댄 태양이 한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몸을 섞었는데 날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인 것은 아니겠죠? 한 번 했으니까 앞으로도 날 책임져야 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

“동석이가 다음에 날 신부로 삼겠다 뭐라 하면 당신 신부니까 헛물켜지 말라고 해요. 그러면 간단하죠?”

‘이제 별 문제없는 거죠?’라고 말하는 듯 옆으로 고개를 까닥인 태양은 다시금 식탁 앞으로 와서 지사제를 먹고 물을 마셨다. 맛이 이상한지 인상을 쓰던 태양은 의자에 앉아 도후를 쳐다봤다. 빤히 쳐다보는 것이 왜 계속 서있는 거냐고 묻는 듯 싶다. 그 눈빛을 받고도 서있을 수가 없었던 도후는 주춤거리며 의자를 끌고 그 위에 앉았다. 

- 23

도후가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태양은 젓가락을 들고 다시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 뭘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도후가 해준 잡채가 너무 맛있었다. 처음에는 입맛이 없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어져서 더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게 된다. 열심히 잡채를 먹던 태양은 여전히 가만히 있기만 하는 도후의 밥그릇 위에 잡채를 올렸다.

“왜 안 먹어요?”

“있잖아.”

“네?”

도후는 얼굴을 드는 태양을 쳐다봤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용기가 사라진다. 정말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어떤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다. 지금 이 자리에서 팍-하고 말을 해버려야 태양도 이쪽도 속이 편해질 거다. 

“다음에 또 해도 돼?”

“뭘요?”

“그러니까 그게.....그러니까...”

“섹스요?”

“헉! 그렇게 직접적으로..!”

“직접적으로 말해요. 우리들이 어린애도 아닌데 뭐 어때요?”

그래도 그렇지. 그런 식으로 말 해버리면 이쪽은 도대체 어떤 얼굴을 해야 하는 거냔 말이다. 

태양의 앞에 있는 것조차 무안하기만 했다. 그냥 땅 파고 구석으로 들어가 버릴까. 아니면 집 밖으로 나가 버릴까. 아아. 난 왜 그런 것을 물은 거지. 또 해도 되냐니. 그런 멍청한 말이 어디에 있단 말이야. 주먹을 쥐고 머리를 두드리는 도후의 모습에 태양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식탁에 올렸다. 

“또 하고 싶어요?”

“.............기분은 좋았으니까.”

“다른 사람하고 할 때보다 훨씬 기분 좋았어요?”

“.....비교는 하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난 당신이 처음이니까 확실히 알고 싶어요.”

“처음이라고?”

“네.”

태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뭐가 이상하냐는 듯 묻는 표정을 짓고 있는데 정말 할 말이 없다. 도후는 그런 표정을 짓는 태양을 앞에 두고 손가락을 세우며 재차 물었다. 

“정말 처음이었어?”

“그럼요.”

“그러면 태유는 뭐야? 태유하고는 안 했...”

그 순간 도후의 입으로 시금치가 가득 들어갔다. 태양이 쑤셔 넣은 시금치에 놀라 기침을 하면서도 도후는 착실하게 그것을 씹었다. 우물거리며 시금치를 먹는 도후를 쳐다보며 태양은 빙그레 웃었다. 

“선배하고는 뽀뽀 이상의 진도는 안 나갔어요. 괜한 말해서 나 화나게 하지 말고 그냥 솔직해져 봐요. 나랑 한 거 어땠어요?”

태양하고 한 게 어땠느냐고? 도후는 잠시 태양과 있었던 은밀한 밤을 떠올렸다. 땀이 젖어 거친 숨을 토해내던 태양. 아픈 지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던 태양. 간혹 어깨에 손을 대고 천천히 하라며 아프다고 말을 하던 태양. 늘 뻣뻣하게만 있던 태양의 몸이 유혹적으로 휘어지고 비틀리면서 눈물이 맺힌 눈으로 쳐다보고......아. 코피가 나올 것 같다. 손가락으로 코를 누른 도후는 얼굴을 숙이며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좋았어. 아마도 지금까지 중에서 제일 좋았어.”

“아마도?”

그냥 좀 넘어가 주지 꼭 저렇게 꼬투리를 잡는다. 하지만 태양은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기 전까지 웬만해서는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도후는 다 포기가 되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도후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애초에 비교를 할 수가 없었다니까. 비교를 할 건더기도 없을 정도로 정말 좋았단 말야.”

“그럼 일단은 사귀는 것부터 할래요?”

도후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딸꾹질이 나올 것 같다. 입을 꾹 다물고 아래로 눈을 내리고 있던 그는 목이 탄 지 물을 따라 마셨다. 꿀꺽 거리고 물을 마시다가 잔을 내려놓고 양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초조하고 불안하고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 심적으로 어려운 상황인가 보다. 하지만 태양은 그런 도후를 닦달해서 빨리 대답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언제 대답을 해도 좋으니 일단은 확실한 것을 원했다. 태양 본인은 편안한 상태로 도후의 대답을 기다려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도후를 쳐다보는 태양의 눈동자는 굉장히 진지했다.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멋쩍은 표정을 지은 도후는 잔에서 손을 떼고 태양을 쳐다봤다. 

“우리 부모님한테 뭐라고 말하지?”

아. 사귀는 것에 불만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도후가 같이 잔 마당에 갑자기 모르는 척 할 수 있는 성격이 못 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쪽이 남자이기에 그것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참 다행이다. 처음 잤을 때나 눈을 떴을 때, 그리고 약을 가져다 준 거나 이쪽을 걱정하는 것과 지금의 대답 등등 도후는 여러모로 태양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일만을 하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진 태양은 조금은 들뜬 듯 한 어조로 말했다. 

“말 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그분은 그분 인생이 있는 거고, 우린 우리의 인생이 있는 건데요. 우리 둘 다 어른이잖아요.”

“그렇지. 우리 둘 다 어른이지.”

“그러면 결정 내렸네요. 지금부터 우린 사귀는 거예요.”

“아. 그래.”

고개를 끄덕인 도후는 젓가락을 들고 김치를 들어 입에 넣었다. 

팍 쉰 김치라서 시큼한 맛이 나야 하는데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 맹맹한 김치를 씹는 것 같다. 겨우겨우 김치를 씹어 꿀꺽 삼킨 도후는 앞에 있는 태양을 쳐다봤다. 

“우리 정말 사귀는 거 맞지?”

“맞으니까 밥이나 먹어요.”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도후는 바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밥만 먹는다. 다른 반찬은 먹지도 않고 수저만 움직이며 밥을 떠먹는 것에 태양은 잡채에 있던 고기와 버섯을 골라 도후의 하얀 밥 위에 올려줬다. 그것에 태양을 쳐다본 도후는 어쩐지 좀 기쁜 기색으로 밥 위에 올려진 것들을 먹었다. 

쏴아아악----

크게 울리는 물소리에 도후는 안색을 굳힌 채 화장실을 쳐다봤다. 그러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던 태양이 배에서 손을 떼고 도후를 쳐다봤다. 

“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이쪽을 보는 건데요?”

“아직도 배 아파?”

“괜찮아요. 소변 본 것 때문에 물 내린 거고 이제는 설사 안 해요.”

고개를 저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도후는 입술을 씰룩였다. 태양은 아침부터 오후 7시까지 계속해서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렸다. 지사제를 먹어도 배가 진정되지 않는지 거의 10번은 넘게 화장실을 들어갔던 것 같다. 아무래도 몸 속에 정액을 몇 번이나 토해낸 것이 태양이 화장실에 자주 들어가는 원인이 된 것 같다. 설사만 한다면 모르겠지만 배나 허리나 하반신 쪽이 아픈지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하고 꼭 누워 있으려 했다. 지금도 거실 뒤쪽에 길게 펼쳐 놓은 이불에 앉아서는 배에 양 손을 올리고 있다. 베개에 머리를 베고는 천장을 올려다보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불안해진다. 혹시 화장실에 너무 자주 들락날락 거리는 것에 화가 난 것이 아닐까? 그것 때문에 자신과 한 일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닐까. 태양은 무표정을 하고 있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속을 알 수가 없다. 그냥 태양이 하고 싶은 대로 누워 있게 두는 편이 좋긴 하겠지만 묘하게 말을 걸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게 된다.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는 것은 불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도후는 은근슬쩍 태양 쪽으로 몸을 내렸다. 

“티비에서 재미있는 거 한다.”

“나는 시끄럽기만 한데요.”

도후는 바로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껐다. 그러자 태양이 위로 눈을 들며 묻는다. 

“왜 꺼요? 재미있는 거 한다면서요.”

“시끄럽다고 했잖아.”

안 그래도 티비가 재미없었으니까 겸사겸사 끈 거다. 리모컨을 바닥에 내려놓은 도후는 얼굴을 내리고 눈을 깜박였다. 얼굴 옆으로 태양의 시선이 느껴진다. 왜 저렇게 쳐다보는 거지? 달리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가. 궁금하니까 직접 물어볼까 싶을 즈음 다행스럽게도 태양이 먼저 말을 걸었다. 

“왜 그런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나랑 사귀기로 한 거 고민하는 건 아니겠죠?”

“이미 결정을 내린 일을 가지고 고민을 할 리가 없잖아. 지금 내가 머리가 뽀싸질 것처럼 고민하고 있는 건 지금 몸 상태가 안 좋은 네가 이렇게 된 것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거야.”

“그건 무슨 말이에요? 내가 지금 이 상태가 된 것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할 것 같아요?”

“.....그럴 것 같은데?”

팔짱을 낀 도후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자기에게 손해가 가는 일에 대해서 납득을 하지 않을 것 같은 태양이다. 어찌어찌 사귀자는 걸로 되었지만 몸이 계속 아파지니 지금 후회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도후를 쳐다보며 태양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정말로 마음이 없었으면 남자랑 했을 리가 없잖아요. 어느 정도 마음이 있었으니까 했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 편하지 않아요?”

“뭐...확실히...”

“그쪽도 나한테 마음이 있으니까 한 거고요.”

태양의 말에 두근-하고 심장이 뛴다. 부끄러워진 도후는 헛기침을 하며 손가락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 그를 쳐다보며 태양은 슬그머니 입술을 올렸다. 

“그렇죠?”

“뭐...”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도후는 눈을 내려 태양을 쳐다봤다. 베개에 목을 대고 이쪽을 쳐다보는 태양의 모습에 목이 바싹바싹 탄다. 아무도 없는 방이지만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 한 바퀴 거실을 흩어보던 것도 잠시 도후는 바로 태양의 코앞으로 얼굴을 숙였다. 

“나 뽀뽀한다?”

진지한 얼굴을 해서 또 무슨 말을 하나 싶었더니 고작 뽀뽀인가. 지금 상황이 우스웠던 태양은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도후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 

태양의 입술이 바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얼굴을 하고 있어서 불편하긴 했지만 입을 벌려 태양의 입술을 빨아들이던 도후는 태양의 입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혀로 태양의 치열과 혀를 쓰다듬었다. 양치를 했기 때문에 시원한 맛이 났다. 더불어 예의 달콤함도 입 안으로 퍼진다. 맛있다. 절로 그런 생각이 들 정도다. 쪽-소리를 내며 입술을 떼자 태양이 소리 내 웃으며 입술을 달싹였다. 

“기분 좋다.”

“.....아아.”

“역시 당신하고는 뽀뽀가 제일 기분 좋네요.”

별 생각 없이 중얼거리는 태양이지만 그 말을 들은 도후는 바로 움찔하고 몸을 굳혔다. 내심 ‘뽀뽀가 제일 좋았다니. 그러면 섹스는?’하고 생각해 버리는 도후였다. 하지만 그 물음을 직접적으로 꺼내기가 조금 그렇다. 이쪽이 태양인 것도 아니고 말이다. 우물거리며 옆으로 시선을 피하는 도후의 행동에 태양은 옆에 남은 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이리 와요. 옆에 누워 봐요.”

뭘 또 옆으로 누우라는 건가. 붙으면 바로 하반신에서 반응이 와서 위험할 것 같은데 말이다. 그냥 됐다고 말을 하려는데 이쪽을 쳐다보는 태양의 눈은 ‘어서 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눈빛을 한 채로 쳐다보는데 마냥 무시하고 있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거냐며 도후는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태양의 옆에 누웠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도후의 팔에 머리를 벤 태양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만족스러워 하는 그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이상한 생각이 든다. 태양 쪽으로 몸을 돌린 도후는 다른 손으로 태양의 등을 토닥이며 지나가는 투로 물었다. 

“너 말야. 사실 날 좋아했던 거지?”

“그 쪽이 날 많이 좋아하는 거겠죠.”

“그러니까 너도 조금은 날 좋아했던 거잖아. 그렇지?”

도후의 말에 태양은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는 그냥 눈을 감았다. 아무 말이나 해라. 난 잘 테니-라는 태도를 취하는 태양의 모습에 괜히 초조해진다. 도후는 그러지 말라는 듯 태양의 팔을 잡아 흔드는 손에 힘을 줬다. 

“야. 말 좀 해봐.”

흔들려면 세게 흔들 것이지 지금 이게 뭔가. 너무 살살 흔들어서 정말 몸을 건드리는지 어떤지도 잘 모를 지경이다. 궁금해 죽을 것 같아도 이쪽 몸 상태가 안 좋으니까 그걸 걱정하고 있는 거겠지. 도후의 그 마음을 알 수 있었던 태양은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아. 왜 이렇게 가슴 한쪽이 간질거리는지 모르겠다. 태양은 한 쪽 눈을 떠 도후를 쳐다봤다.  

“좋아해요.”

“....................”

그렇다고 바로 그런 식으로 말 할 것까지야. 

“아주 마음이 없으면 누가 남자랑 이렇게 하겠어요.”

그건 그렇다. 묘하게 마음이 편해진 도후는 이번에야 말로 입을 다물고 태양의 몸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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