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화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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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자다가 태양이 눈을 뜬 것은 목이 말랐기 때문이다. 옆으로 누운 상태로 눈을 뜬 태양은 처음에는 멍하니 있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너무도 익숙한 자신의 방을 확인하고는 눈을 깜박였다. 다음에는 눈을 내린 태양이 자신이 옷을 입은 상태로 자고 있었음을 확인하고는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왔다. 그러자 보인 것은 쿠션에 머리를 베고 이불 한 장 덮고 맨바닥에서 자고 있는 도후의 모습이다. 캄캄했지만 밤눈이 밝은 태양은 자리가 불편해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도후의 표정도 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멍하니 도후의 모습을 보고 있던 태양은 손을 들어 목을 긁적였다. 

저 인간이 왜 저러고 자나 모르겠다. 저렇게 궁상맞게 잘 거면 차라리 옆에 와서 자든가 아버지 방에서 자면 될 것이 아닌가. 손을 내려 팔을 긁으며 태양은 도후에게 다가갔다. 도후의 옆에 쪼그리고 앉은 태양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도후를 불렀다. 

“이봐요. 일어나 봐요.”

불러도 반응이 없다. 계속 인상을 쓴 채로 고른 숨을 토해내는 것에 태양은 손가락을 들어 도후의 가슴을 꾹 눌렀다. 

“여기서 이러고 자면서 인상 쓰지 말아요. 내가 일부러 여기서 재우는 것도 아니잖아요.”

태양의 손가락이 거슬린 지 그 손을 옆으로 치워내긴 해도 역시나 눈을 뜨지 않는다. 덮고 있는 이불을 앞으로 그러모으더니 작게 기침을 하고 긴 한숨을 쉰다. 잠자리의 불편함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마는 그 행동들에 태양은 다시금 도후를 불렀다.  

“이봐요. 이봐요.”

손바닥으로 뺨을 찰싹찰싹 때려도 눈을 뜨지 않는다. 

목이 말라 눈을 떴다가 이 무슨 일인가 싶다. 그냥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갈까도 싶지만 몸을 잔뜩 움츠린 채로 잠이 든 도후를 그냥 두려니 양심이 조금 걸린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어 길게 한숨을 쉰 태양은 도후의 팔을 잡고 그의 몸을 들어올렸다. 등에 짊어지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비틀거리긴 했지만 가까스로 걸칠 수 있었다. 하지만 도후가 이쪽보다 키가 크고 덩치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질질 끌리는 상태가 된다. 그렇게 도후를 끌고 방 앞에 선 태양은 고민을 했다. 자신의 좁은 침대에서 재우기에는 무리다. 그렇다면....

“아버지 방으로 보내야겠다.” 

태양은 흘러내리려 하는 도후를 고쳐 잡으며 부친의 방으로 들어갔다. 

며칠 동안 방주인이 찾아오지 않은 방은 어쩐지 좀 쌀쌀했다. 그 침대 위에 도후의 몸을 집어던진 태양은 침대에 쓰러진 도후의 몸 위에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야 밖으로 나와 물을 마실 수 있었다. 

차가운 물이 목구멍을 타고 흐르자 그나마 낫다. 좋은 듯 길게 한숨을 쉰 태양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시간을 확인해보자 아직 새벽 3시다. 더 자도 되겠다면서 기지개를 하며 방으로 들어간 태양은 이불을 올리고 침대로 들어갔다. 그 짧은 사이 바깥으로 나갔다가 왔다고 금세 열이 식어 버렸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쪽으로 몸을 밀어 넣으며 태양은 몸을 움츠렸다. 

베개에 볼을 비비며 하품을 한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자볼까-하는 기분이 들려 하는 순간 등 뒤로 끼익-하는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 

“응?”

이건 뭔가 싶어 태양은 눈을 뜨고 뒤를 쳐다봤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침대에 한쪽 무릎을 올리고 있는 도후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도후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태양은 바로 입을 벌렸다. 

아니. 이 사람이 왜 이 방으로 온 건지 모르겠다. 분명 옆 방에 눕히고 왔는데. 

그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태양은 입을 열었다. 

“이봐요. 당신 지금 왜 여기에....”

“졸려.”

“에?”

그건 또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던 찰나 도후의 몸이 크게 흔들린다. 그리고 그대로 태양의 몸 위로 쓰러졌다. 그 묵직한 무게에 태양은 바로 욱-하는 소리를 내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있는데 그 후로 아무 일이 없다. 그제야 태양은 눈을 뜨고 아래를 쳐다봤다. 보이는 것은 자신의 몸 위에 엎드려 있는 도후다. 

태양은 눈을 깜박였다. 지금 일어난 일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정말 이런 일이 생기고 있는 건지 긴가민가했던 그는 손을 들어 도후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이봐요. 여기서 이렇게 자면 어떻게 해요. 여기 좁아서 아버지 방에 눕힌 거잖아요.”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우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워낙 무게가 많이 나가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슬슬 태양의 미간 사이에 주름이 만들어진다. 

“무시하지 말고 어서 일어나요. 이봐요. 이봐..?”

“.....쿨..”

긴 한숨을 쉰 도후는 다음에는 코를 골기 시작했다. 드르렁 거리며 울리는 소리에 태양은 천장을 쳐다보며 눈을 깜박였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한단 말인가. 난감하기만 해서 인상을 쓰고 있던 태양은 위에 엎드려 있던 도후의 어깨를 잡아 냅다 옆으로 밀어버렸다. 아슬하게 침대 끝에 걸린 도후를 확인하고는 몸을 돌려 이불로 돌돌 감았다. 

아버지 침대에서 일어나 이곳으로 온 것은 도후다. 이불을 덮지 못해도 다 그쪽 책임이다. 감기에 걸려도 모른다면서 태양은 눈을 감고 다시 잘 준비를 했다. 

드르렁. 드르렁.

“.......제길...”

자려고 마음을 잡아도 계속해서 들리는 코고는 소리 때문에 힘이 든다. 이게 도대체 무슨재앙인가 싶어 태양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다시 한 번 도후를 거실이나 아버지의 방으로 돌려보낼 생각을 하고 얼굴을 들었는데 그 순간 묵직한 것에 가슴에 올려진다. 갑자기 퍽-하니 올려지는 것에 태양은 억-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태양이 어떤 반응을 취하기도 전에 도후가 태양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려 그 몸을 끌어안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뒤에서 도후에게 끌어안긴 상태가 된 태양은 눈을 크게 떴다. 

“뭐야. 이게...”

아연해져서 중얼거리는 순간 앞으로 넘어온 도후의 큰 손이 태양의 머리를 잡는다. 그리고는 가슴 쪽으로 끌어당기고는 태양의 정수리에 입술을 누르고 긴 한숨을 쉬었다. 

“좋은 냄새....”

잠결에 중얼거린 도후는 태양의 정수리에 두어번 볼을 비비고는 다시금 긴 한숨을 쉬며 몸에서 힘을 뺐다. 그 후로 도후는 코를 골지 않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태양은 그런 도후에게 뒤에서부터 끌어안긴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정말 지금 이 일이 자신에게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확인도 불가능하다. 굳어서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으려니 도후의 숨이 자꾸만 뒷머리를 건드린다. 간지러운 그 감촉에 몸을 움츠리자 몸을 끌어안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간다. 

이건 어떻게 해도 이쪽을 놓치지 않을 듯 한 손길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 다른 사람에게 이런 식으로 안겨진 적은 또 처음이다. 거기다 싫어할 상황임에도 불구, 손가락 하나 까닥이기 싫다는 것이 더더욱 이상했다. 

왜 도후에게 이런 식으로 안겨진 것에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거지? 체온이 닿아서 따뜻하기 때문일까? 원래 사람 체온이 닿는 것은 싫어하는데. 그래서 일부러 접촉을 가하는 자가 있으면 바로 떨어뜨리곤 했는데 말이다. 정말 이상한 일이라면서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고 있으려니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태양은 나른하게 하품을 하며 눈을 깜박였다. 자려면 자세를 바로 해야 했다. 이 상태로 가면 몸이 베길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기가 귀찮다. 그냥 이대로 있어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태양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팔이 저렸다. 왜 이렇게 팔이 저린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던 도후는 미간 사이에 주름을 접었다. 

끙-하고 신음을 흘린 그는 눈을 떠 앞을 쳐다봤다. 그리고 보이는 동그랗고 귀여운 뒤통수를 확인하고는 정말 놀라 숨을 삼키며 뒤로 얼굴을 확 치웠다. 그 순간 굳어있던 목에서 뚜둑-하는 소리가 들리고 엄청난 통증이 엄습했다. 

“아야얏.”

괜히 움직였다면서 베개에 머리를 댄 채로 신음을 흘리던 도후는 눈물이 맺힌 눈을 내려 지금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확인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뒤통수나 입고 있는 옷에서 그가 누구인지 대충은 알 것 같다. 태양이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분명히 태양만 여기에 두고 자신은 거실에서 나와 자고 있었는데 말이다. 거실에서 일어나 태양의 방으로 들어온 기억도 없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당황스럽기만 한 도후는 태양의 몸을 끌어안고 있는 팔을 천천히 치웠다. 

“..읏..”

팔을 살짝만 움직였을 뿐인데 엄청나게 아프다.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도후는 저린 팔을 주무르며 방을 둘러봤다. 여전히 뭐가 없는 방이다. 손을 뒤로 해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으려니 태양이 이쪽으로 몸을 돌린다. 이불에 얼굴을 대고 볼을 비비는 것에 도후는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깨면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바로 태양이 눈을 떠서 이쪽을 쳐다본다. 태양의 검은 눈동자와 마주하는 순간 도후는 말문이 막혔다. 막 잠에서 깨어났기 때문인지 착 가라앉은 눈매가 묘하게 색스러웠던 탓이다. 

태양은 굳은 채로 이쪽을 쳐다보기만 하는 도후의 행동에 입술을 올렸다. 

“잘 잤어요?”

“아. 그래. 잘 잤어?”

대답을 하면서도 어색함을 느낀다. 

뭐냐. 드라마에서나 나와야 할 것 같은 이 대사들은. 마치 전날 밤에 썸씽이 있었던 둘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말로 그런 관계인 것은 아니지만 태양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진 도후는 괜히 뒷머리를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방을 둘러봤다. 

그런 도후의 행동에서 그의 당황을 느낄 수가 있다. 아무래도 거실에서 자는 것만 기억이 나지 지금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는 영문을 알 수 없는 모양이다. 친절하게 설명을 해줄까. 아니면 조금 더 놀릴까. 눈을 굴리던 태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도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갑작스런 태양의 접촉에 도후는 움찔하고 몸을 굳히며 뒤로 몸을 물렸다. 그런 도후 쪽으로 몸을 가까이 하며 태양은 입술의 양 끝을 슬그머니 올렸다. 마치 요부 같은 웃음을 짓는 태양의 모습에 도후는 자꾸만 움찔거리게 된다.  

“왜..왜 그래?”

“어제 좋았어요.”

머리 속이 하얗게 비워졌다. 

눈앞에 태양의 입술이 달싹 거리는 것은 분명히 봤지만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진 도후는 멍한 태도로 반문했다.  

“...............뭐?”

“어제 좋았다고요.”

윙크를 한 태양은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밖으로 나갔다. 

주방으로 들어간 태양은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꺼냈다. 

어제 공기가 차가워서 그런지 목이 좀 아프다. 가글을 한 번 하고 난 후에 물을 마시고 있는데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우당탕하고 구르듯이 방에서 나와 식탁에 매달리는 도후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것에 태양은 눈을 흘기며 ‘왜 그래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태연하기만 한 태도에 도후는 입술을 바들바들 떨면서 물었다. 

“자..잠시만 나랑 이야기 하자.”

“이야기 하세요. 여기서 들어줄게요.”

태양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도후를 쳐다봤다. 이쪽을 쳐다보는 태양의 태도는 당당하기만 하다. 그런 태양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주욱 내려다보던 도후는 침을 삼키고 자세를 바로 했다. 완전히 차렷 자세가 된 그는 딱딱하기만 한 어조로 물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

“그걸 본인이 모르고 지금 나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

숨이 막혔다. 숨이 목구멍에서 턱 막히면서 혈압이 팍 오른다. 뒷목을 잡은 도후는 식탁에 엎드린 상태로 석고가 되어버렸다. 

절망이다. 도대체 나는 무슨 짓을 한 거란 말인가. 어떻게든 기억을 해내서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하고 싶은데 아무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머리 속이 하얗게만 비워진 것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사고를 치고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면서 발뺌을 하는 것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의 유형이다. 그런데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을 내가 할 수는 없다. 

도후는 머리를 양 손으로 잡으며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나갔다. 끙끙 거리며 괴로운 소리를 내며 식탁에 머리를 비비는 도후의 행동에 태양은 눈을 깜박이며 입술에 대고 있던 물병을 내렸다. 

살짝 장난을 치려했을 뿐인데 뭘 저렇게 진지한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 저래서야 이쪽에서 장난을 한 것이라고 말을 할 수도 없잖은가. 물병을 싱크대에 내려놓은 태양은 식탁에 양 손을 올렸다.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태양의 말에 도후는 슬그머니 얼굴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한 손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있고 안색은 칙칙하다. 고민이 많이 되는 듯 한참동안 눈을 굴려대던 도후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 내가 어제는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야.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는데 말을 좀 해줄래?”

“말을 해달라고요?”

별 생각 없이 반문을 한 것이지만 도후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은 모양이다. 

안색을 굳힌 그는 손을 저으며 급히 말했다. 

“발뺌을 하려는 게 아니라 정말 기억이 나지 않아. 그러니까 나는 말이지..!”

의외였다. 이런 남자가 필사적으로 변명의 말을 하려는 것이 말이다. 뭐, 애초에 아무 일이 없었으니 변명을 하고 있다는 표현도 우습지만 말이다. 

말을 않고 턱에 손가락을 댄 채로 무끄러미 쳐다보기만 하는 태양의 모습에 도후는 더더욱 당황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기에 저 녀석이 저렇게 조용한 걸까? 평소에도 말로 사람을 치고 건드리고 아주 골려먹는 녀석인데 말이다. 그런 태양이 저렇게 입을 다물고 있을 정도로 나는 말이 안 되는 행동을 한 것일까. 정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점점 사색이 되는 도후와 달리 태양의 얼굴은 태연하기만 했다. 무끄러미 도후를 쳐다보던 태양은 식탁에 손을 올리고 아래로 몸을 숙였다. 

“정말로 아무 기억도 안 나요? 내 침대 위로 올라왔잖아요.”

“뭐...뭐라고!!”

“침대로 올라와서는 날 덮쳤잖아요.”

“헉!!”

침대 위로 올라온 것은 사실이고 덮친 것도 사실이다. 그 상태로 잘 자는 사람 뒤에서부터 끌어안고 그대로 잠만 잤다. 그렇게 말을 하고나서 장난 좀 한 건데 뭘 그렇게 긴장을 해요-라는 식으로 말을 꺼내려고 했는데 눈을 크게 뜨고 금방이라도 숨넘어갈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도후를 보자니 문득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생긴 남자가 이런 표정을 짓기도 하는 구나. 왠지 귀여운 것 같다. 그리 생각만 할 생각이었는데 저도 모르게 얼굴이 내려간다. 태양은 도후에게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닿았을 때 도후의 입술이 크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당황한 듯 여전히 눈을 크게 뜨고만 있는 도후를 마주 쳐다보며 태양은 입을 벌려 도후의 입술을 빨아들였다. 

꽤 부드럽다. 거칠고 단단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부드럽고 좋은 감촉이 느껴졌다. 때문에 더 하고 싶어졌다. 

눈을 감은 태양은 식탁에 엎드린 상태로 더 세게 도후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꾸욱 하고 입술을 누르고 천천히 얼굴을 뗀다. 손가락 하나 차이만 날 정도의 거리에서 도후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을 깜박였다. 그것에 따라 도후도 눈을 깜박였다. 

“........이게 뭐야?”

“글쎄요. 뭘까요?”

사실 입술을 뗀 순간부터 태양은 당황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어 살짝 불안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마나 도후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물었다. 

“내가 어제 이런 행동을 했어?”

“기분 나빠요?”

“........뭐가?”

“지금 기분 나쁘냐고요.”

물으면서 태양은 손가락으로 도후의 입술을 꾸욱 눌렀다. 

갑자기 입맞춤을 한 것은 이상한 행동이긴 했지만 크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도후의 입술은 생각보다 훨씬 부드러워서 다시 한 번 입을 맞추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얼굴을 가까이 해 다시 한 번 입을 맞춰 볼까도 싶었지만 그 순간 도후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화장실 좀 갔다 올게.”

“다녀오세요.”

식탁에 엎드린 상태인 태양은 느긋하게 손을 흔들었고 그런 태양의 행동에 도후는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가 급히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고 얼마 안 있어 물 트는 소리가 들린다. 그 사이로 드르륵-하고 휴지를 뜯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라면 지금 도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진 않을 것이다. 손으로 입술을 누른 태양은 식탁에 늘어진 상태로 중얼거렸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처음부터 농담을 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을 해줄 것을 그랬나? 그랬으면 이런 식으로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거기다 입을 맞추는 일은 더더욱이나 없었을 거다. 

태양은 손가락으로 입술을 꾸욱 하고 눌렀다. 

도후의 입술은 정말 부드러웠지. 하얗게 튼 부분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손을 들어 조금 전 도후에게 입을 맞췄던 부분을 쓰다듬던 태양은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만 두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쪽 만화책을 너무 봤더니 머리가 이상한 쪽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냐고 주먹으로 머리통을 두드리며 태양은 냉장고에서 호빵을 꺼내 렌지에 넣고 돌렸다. 위잉-하고 렌지가 돌아가는 동안에도 화장실에서는 계속해서 물 트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을지 모르겠다. 태양은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이며 냉장고에서 우유도 꺼냈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찬장에서 사과 무늬가 일정하게 찍힌 도시락 가방을 꺼내 그곳에 우유를 넣고 렌지에서 호방을 꺼내 세 개를 집어넣었다. 고기, 팥, 거기다 야채 호빵까지 골고루 들어가 있으니까 자기 입맛에 맞는 것을 알아서 꺼내 먹겠지.

주섬주섬 챙기고 있으려니 화장실 문이 열리고 도후가 나온다. 무안하기는 정말 무안했는지 얼굴만 빼곰이 내밀고 있다. 눈을 굴리며 눈치를 보던 도후는 바깥으로 나와 거실에 널려져 있던 옷을 주섬주섬 챙겼다. 주머니에 핸드폰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한 도후는 주방에 들어가 있는 태양을 쳐다봤다. 

“저기. 나 이만 가볼게.”

“아침도 안 먹고 가려고요?”

“배 안 고프니까 그냥 갈게.”

“그래요? 그러면 이거 가지고 가요.”

태양이 내민 것은 사과 모양이 귀엽게 찍힌 도시락이다. 내미는 거라 일단은 받아두자 싶어 앞으로 가 도시락을 받은 도후는 뜨끈뜨끈한 열을 풍기는 것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게 뭐야?”

“간단하게 먹을 거요. 지방으로 갈 건데 빈속이면 힘들거 아니에요.”

“........고마워.”

설마하니 태양이 이런 것을 준비해 줄지는 몰랐다. 

뜨끈한 열기가 느껴지는 도시락을 빤히 쳐다보던 도후는 눈을 들어 태양을 쳐다봤다. 눈이 마주친 태양은 눈꺼풀을 깜박였다. 잠시 아래로 내려가던 태양의 속눈썹이 너무 길어서 멍하니 그것을 쳐다보던 도후는 헛숨을 들이키고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는 경직된 자세로 태양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기.....이번 일은 다음에 이야기하자.”

“다음에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되요. 그냥 잊어요.”

“하지만....”

“괜찮으니까 서로 잊자고요.”

“.............갈게.”

태양이 먼저 저렇게 선을 그어버리면 이쪽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진다. 되려 말을 꺼내는 것이 더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 뿐이라고 생각한 도후는 가방을 한 손에 쥔 채로 몸을 돌렸다. 

현관으로 가서 신을 신은 도후는 따라 나와 벽에 한쪽 어깨를 기대고 있는 태양을 흘겨봤다. 이거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괜히 잡고 있는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도후는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럼 나 간다.” 

“다녀오세요.”

웃으면서 말을 하는 것에 도후가 이쪽을 빤히 쳐다본다. 그것을 알면서도 태양은 모르는 척 물었다. 

“왜요? 또 여기에 안 올 거예요?”

“글쎄. 그건....”

머뭇거리며 확실한 대답을 하지 않는 도후의 행동에 태양은 바로 선수를 쳤다. 

“늦겠네요. 어서 가 봐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도후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태양이 살짝 눈인사를 하는 것에 도후도 어정쩡하게 고개를 까닥였다. 그러자 문이 닫히고 바로 잠그는 소리가 난다. 

닫힌 문을 멍하니 쳐다보던 도후는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나 정말 뭐한 거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도대체 태양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떠올려 보려 하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이 없다. 머리 속이 암전 되어서는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끙끙거리고 있으려니 얼굴로 시선이 느껴진다. 뭔가 싶어 얼굴을 들자 저쪽 복도에 예의 그 애어른인 유치원생 꼬마가 보였다. 그 꼬마를 보는 순간 여기서 이러고 있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도후는 급히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러자 정석이 그 옆으로 다가와 눈으로 도시락을 쳐다봤다. 

“그거 뭡니까?”

“뭐가?”

아까부터 이쪽을 흘깃거리며 쳐다보는가 싶더니만 이번에는 뭘 묻는 건지 모르겠다. 아이가 빤히 쳐다보는 쪽으로 눈을 내리자 손에 들린 도시락이다. 사과 무늬가 귀엽게 찍힌 도시락은 확실히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것을 들고 있음으로 해서 얼굴이 팔린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도후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도시락을 들어 자랑하듯 턱을 올렸다. 

“태양이가 싸준 거다.”

“...윽!”

잘난 척을 하는 듯 말하는 것에 동석은 바로 얼굴을 구겼다. 똥 씹은 것 마냥 얼굴을 굳힌 동석은 팔을 뻗어 도후에게서 도시락을 빼앗아 가려고 했다. 그것에 도시락을 위로 든 도후는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그것 줘요!”

“주기는 왜 주냐. 이건 내 건데. 이상한 꼬마일세.”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이상한 녀석이다. 별 시답잖은 말을 한다면서 눈을 흘긴 도후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바로 안으로 들어가 일층을 눌렀다. 그리고 들고 있는 도시락을 뒤로 숨기며 잔뜩 인상을 쓴 채로 동석을 쳐다본다. 그 도후의 시선에 동석은 움찔거리면서도 도후의 손에 들린 도시락을 노려봤다. 동석의 얼굴에는 ‘도시락이 탐나. 미치도록 탐나.’라는 의사가 진하게 깔려 있었다. 정말 욕심이 난다는 듯 침까지 삼켜가며 도후의 손에서 눈을 때지 못하던 동석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왜..왜 태양씨가 당신에게 도시락을 싸주는 건데요?”

“태양씨? 그러는 너는 왜 태양이를 태양씨라고 부르냐. 그냥 형이라고 불러야지. 요즘 어린 것들은 건방지단 말야.”

지가 무슨 어른도 아니고 태양하고 특별한 관계도 아니면서 태양씨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고 여겨진다. 도후의 그런 말에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동석은 바로 인상을 쓰며 도후를 노려봤다. 

“나랑 태양씨는 특별한 관계에요. 그러니까 내가 태양씨를 뭐라고 부르던 간에 상관하지 말아요.”

“뭐라는 거야. 건방진 녀석.”

가만히 있자니 줄줄줄 이상한 말을 잔뜩 늘여놓을 것 같다. 

도후는 인상을 팍 쓴 채로 손가락을 들어 동석의 이마를 세게 쳤다. 다분히 감정이 실린 일격이었다. 때문에 억-하는 소리를 낸 동석은 뒤로 물러났다.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친 동석은 맞은 이마를 손으로 누르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로 도후를 쳐다봤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잽싸게 바깥으로 튀어나가는 도후의 모습에 동석은 얼굴을 붉히며 그 뒤를 따랐다. 

“너 거기 안 멈춰?!”

“너라니. 진짜 건방진 녀석일세.”

요즘 애들이 건방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음 같아서야 바로 발을 멈추고 저 건방진 녀석의 교육을 새롭게 해주고 싶었지만 도후는 지금 상당히 바빴다. 

동석을 무시하고 차에 올라탄 도후는 도시락을 옆 자리에 두고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저 앞에 주먹을 쥐고 시근덕 거리는 동석이 보인다. 당장 쫓아와서 주먹질을 할 것 같던 녀석이 더 가까이는 오지 못하고 그저 노려보기만 하고 있다. 

분한 듯 이쪽을 쳐다보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이쪽이 가진 차 때문인가 보다. 하긴 웬만한 녀석들이 감히 앞으로 오지 못할 만큼 좋은 차이긴 했다. ‘넌 평생가야 이런 차는 못 타볼 거다.’라는 느낌으로 도후는 턱을 살짝 위로 올렸다. 그것에 동석의 표정이 확 구겨진다. 똥 씹은 얼굴이 된 동석에게 비릿한 웃음을 날린 도후는 차를 몰아 유유히 아파트 단지에서 나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 날 상대하려면 아직도 멀었다.”

고작 꼬마를 상대로 얻은 승리이건만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운전대를 손가락으로 툭툭 치던 도후는 옆에 있는 도시락을 내려다봤다. 

저렇게 선명한 사과 무늬가 찍힌 도시락이라니. 저게 태양의 집에서 나왔다면 태양도 저것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는 말인데....

“그냥 집에만 두고 있었던 거 아냐? 이런 것을 어느 녀석이 들고 다니겠어.”

아주 귀여운 여자애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투덜댄 도후는 신호가 걸린 틈을 타서 도시락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호빵을 하나 꺼냈다. 그 동안 식었는지 미지근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좀 따뜻하다. 

원래 호빵 같은 것은 잘 먹지 않는데 이상하게 이건 잘 넘어간다. 마침 먹은 것이 야채 호빵인 모양이다. 빵도 맛있고 속도 괜찮았다. 요즘 호빵은 이렇게 맛있게 나오는 건가 싶어 도후는 열심히 호빵을 뜯으면서 운전을 했다. 호빵을 우물거리면서 아무 생각 없이 운전을 하던 도후지만 점점 그 표정이 진지하게 변한다.

오늘 아침 일은 평생이 걸려도 잊지 못할 아주 멍청한 일이었다. 태양이 입을 맞추는 순간 바로 아랫도리에서 신호가 왔다. 태양이 좀 반반하게 생겼다고 해도 남자다. 전날에 입던 옷 그대로 입고 자서 후즐근하고 뒷머리도 뻗은 상태로 있었는데 어쩌자고 그런 녀석의 입맞춤을 받고 냅다 화장실로 달려가 욕구를 토해낸 거란 말인가. 혈기 왕성한 십대도 아니고 말이다. 

그 전에 왜 나는 거실에서 잘 자고 있다가 태양의 방으로 들어간 거지? 이건 아무리 생각을 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거짓말처럼 그 부분만 텅 비어있다. 원래 그렇게 머리가 나쁘지 않는데 이건 도대체가...... 

잔뜩 인상을 쓰며 주먹으로 머리를 두드리고 있는데 그 순간 태양의 부드러운 입술 감촉이 떠오른다. 부드럽고 촉촉했다. 그리고 굉장히 좋은 냄새가 났다. 다른 여자들의 화장품 냄새와는 확연히 다른 향이었다. 그 향을 떠올리는 순간 아랫도리가 다시금 뻐근해진다. 

“이거 위험한 거 아냐....”

낭패감에 중얼거리며 옆으로 차선을 옮겼다. 

잔뜩 인상을 쓴 그는 선글라스를 찾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 녀석 얼굴을 또 어떻게 보느냔 말야.”

그렇다고 아주 안 볼 수도 없는데 말이다. 내가 미쳤지.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한 건지-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선글라스를 찾아 눈에 쓰는 도후였다.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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