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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이 있기에는 너무 넓고 좋은 방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가만히 있으려니 바로 음식이 나온다. 순식간에 넓은 상을 가득 채우는 맛있는 음식들에 ‘이건 다 못 먹을 것 같은데..’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호영이 웃으며 말했다.
“많이 먹어요. 오늘은 내가 쏘는 거니까. 태양씨. 많이 먹어요.”
“네. 잘 먹겠습니다.”
저렇게 먼저 쏜다는 말을 하는데 이쪽에서 돈을 대겠다는 말을 꺼낼 수조차 없다. 도후는 이렇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 흘깃 쳐다보자 도후가 살짝 어깨를 으쓱이며 젓가락을 든다. 그것을 따라 태양도 젓가락을 들어 밥과 반찬을 먹었다. 꽤 괜찮다. 오물거리며 먹던 태양은 시선을 느끼고는 눈을 들어 호영을 쳐다봤다. 그러자 호영이 움찔하고 어깨를 굳히더니 오호호-하고 웃었다.
“아니. 보면 볼수록 선이 고운 것 같아서 자꾸만 눈이 가네요. 내가 자꾸 봐서 불편하죠? 미안해요.”
“괜찮아요. 보고 싶으시면 마음껏 보세요. 그래봤자 아버지랑 비슷할 텐데요. 뭐.”
“그러고 보니 그렇네요.”
웃으며 이쪽을 보는 호영에 맞춰 태양도 살짝 웃음을 지었다.
확실히 태양의 전체적인 느낌은 호수와 많이 닮아있었다. 하지만 부친보다는 훨씬 얼굴 윤곽이 뚜렷하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차가운 느낌이 많이 풍겼다. 그것은 모친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호수를 닮았지만 잘 뜯어보면 그 안쪽은 완전히 모친 판박이다. 뭐 호영이 이쪽의 모친을 만날 일은 없으니까 얼굴 생김새가 어느 쪽을 더 닮았는지 일일이 따지는 것도 이상할 거다.
호영은 얼굴을 발그레하게 물들인 채로 태양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어김없이 고기반찬을 들어 태양의 앞으로 놓고는 했다.
“많이 먹어요. 여기 음식 정말 맛있으니까.”
“그러지 마시고 같이 드세요.”
“우리는 간식을 많이 먹어서 별로 밥 생각은 없어요. 그렇죠?”
호영의 말에 호수는 ‘응. 맞아.’라고 말하면서 태양이 좋아하는 음식을 앞으로 밀어내줬다. 그러면서 은근히 도후를 쳐다본다. 아까부터 묵묵히 밥을 먹고 있는 도후에게도 뭔가 말을 걸고 싶은데 겉으로 보기에 가드가 단단해 보이니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를 모르겠는 모양이다. 웬만해서는 입 다물고 가만히 있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는 건가 싶다. 태양은 팔꿈치로 도후의 옆구리를 살짝 찔렀다. 그러자 흠칫 하고 몸을 굳힌 도후가 태양을 쳐다본다. 살짝 찡그린 미간에는 ‘왜 잘 먹고 있는 사람을 건드려?’라는 의미가 서려 있었다. 그것에 태양은 태연한 어조로 물었다.
“뭐 좋아해요?”
“응? 뭘 좋아한다니.”
“좋아하는 음식 있을 거 아니에요.”
“난 원래 아무거나 잘 먹어.”
“그렇게 말하면 다음부터 맛없는 거 있으면 댁한테 다 줄 거예요.”
그러면 곤란하다. 태양이라면 정말 그렇게 행동할 것이 분명했기에 도후는 황급히 ‘생선.’라고 말했다. 그것에 태양은 호수를 쳐다보며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멍하니 있던 호수는 급히 움직여 앞에 있던 조기를 들어 도후의 앞에 놓았다.
“이..이것 먹게나.”
“고맙습니다.”
까닥이고 고개를 숙이는 것 뿐이지만 그것 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모양이다. 헤에-하고 웃는 얼굴이 된 호수를 향해 호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 힘내라는 그 사인에 호수는 머뭇거리며 도후에게 말을 걸었다.
“도후씨는 모델일을 하고 있지? 굉장히 유명한 사람인데 난 지금까지 연예인을 본 것은 처음이라 괜히 떨리고 그래. 내가 좀 어색하게 행동해도 이해해 주게나.”
“어차피 아버지가 되실 텐데 너무 그렇게 격식 차리지 마십시오. 그냥 편하게 대해 주세요.”
“그...그럴까?”
도후의 앞인지 호수는 굉장히 긴장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말투로 힘들게 말을 꺼냈더니 의외로 도후에게서 좋은 반응이 돌아온다. 호수에게 있어서 도후는 첫 만남 때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갔던 인식이 강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하면 어쩌나 싶어 내심 긴장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정말 다행이라는 듯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호영을 쳐다보자 호영도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까칠하게 굴 것이라고 생각했던 도후가 의외로 좋게 나오자 그녀도 기쁜 모양이다.
알고 봤더니 이번 재혼에서 저 두 사람이 제일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도후였던 모양이다. 하긴 첫 만남이 그랬으니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겠지. 태양도 도후와의 첫 만남 때에는 그에 대해서 최악의 인상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뭐,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태양은 눈을 내려 도후를 쳐다봤다. 도후는 생선의 살을 발라 그것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 젓가락질이 굉장히 서투르다. 전에 같이 식사를 했을 때에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생선살을 바르는 것이 굉장히 서툴렀다. 살이 다 부서져서 수저로 모아야지 겨우 한 입 먹을 수나 있을 것 같다. 처음에는 가만히 도후가 하는 양을 보고 있던 태양이지만 점점 원래의 형태를 잃어가는 생선을 보고는 이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 그는 생선이 놓인 접시를 가지고 갔다.
“지금 뭐하는 거예요.”
“아. 그게..”
도후는 심히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런 도후를 흘겨본 태양은 생선의 꼬리를 잡고 순식간에 살을 발라냈다. 머리를 분리하고 뼈를 꺼내고 두툼한 살을 젓가락으로 들어올렸다.
“자. 먹어요.”
도후는 수저 위에 올려진 잘 발라진 생선의 살을 보고는 눈을 깜박였다. 이렇게 잘 발라진 생선살을 처음이다. 이렇게나 크고 깨끗하다니.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오옷.’하는 표정을 지은 도후는 감탄을 하듯 태양을 쳐다보며 말했다.
“너 능숙하잖아.”
“당신이 서투른 거겠죠. 이런 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하고 뭐하는 거예요. 남들이 보면 흉봐요.”
“어쩔 수 없잖아. 생선살이 너무 부드러운걸.”
“그럼 생선살이 부드럽지 딱딱해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혀를 찬 태양은 생선의 살을 전부 발라서 도후의 밥그릇 안에 넣어줬다. 덕분에 하얀 조기의 속살이 밥그릇에 가득 차게 된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렇게 되면 싫은 내색이라도 할 텐데 도후는 그런 게 없다. 마냥 좋은 듯 신이 나서 젓가락질을 해 태양이 골라낸 것을 먹었다. 표정으로 기뻐하는 기색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 졌다.
저렇게나 좋아하다니. 정말 생선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다음에는 이쪽에서 생선을 사서 도후를 초대할까나. 전에 도후가 재료를 잔뜩 사와서 맛있는 고기를 해줬으니 이쪽에도 한번 대접을 해야 할 거다. 그럼 날은 언제로 잡는 것이 좋을까 싶어 머리 속으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얼굴로 시선이 느껴진다. 뭔가 싶어 얼굴을 들자 조금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호영과 호수가 보였다. 왜 저런 얼굴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왜 그래요?”
태양의 물음에 호수와 호영은 흠칫-하고 몸을 굳혔다.
“아니. 그..그게 말이지.”
머뭇거리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한다. 손을 입을 가리는 호영을 대신해서 호수가 태양과 도후를 번갈아 봤다. 이쪽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는 두 사람의 표정은 상당히 닮아 있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신기하다. 호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두 사람 굉장히 친해졌구나.”
“그래요?”
태양은 도후를 쳐다봤고 도후도 우물거리면서 태양을 쳐다봤다.
확실히 서로를 쳐다봐도 전처럼의 거부감은 들지 않는다. 아주 친하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껄끄러운 사이도 아닌 셈이다. 도후는 입에 잔뜩 들어가 있던 밥을 삼키며 말했다.
“엄마가 이 녀석하고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가만히 안둔다고 했잖아. 그래서 그런 거잖아.”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 이 녀석! 괜한 말은 하지마!”
“나 때문에 일 틀어져서 결혼 못하면 알아서 하라고 한 주제에...”
“너 그만 말하지 못하겠니?!”
도후의 말에 당황한 듯 호영은 입술을 깨물었다. 도후에게는 무시무시한 눈빛을 보내면서도 태양에게는 다정하기만 한 눈빛을 보낸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호호호-하고 웃은 호영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애가 괜한 말을 하는 거예요. 신경 쓰지 마세요.”
“네. 신경 안 쓸 겁니다.”
옆에서 도후가 노려보는 것이 느껴졌지만 태양은 방금 말한 바대로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노려보지 말고 생선이나 먹으라면서 조기의 몸통을 들어 옛다-하고 밥그릇에 넣어주자 도후가 바로 얼굴을 내리고 그것을 집어 먹는다. 덩치는 커다란 것이 생선을 잘도 받아먹는다. 커다란 개가 떠오른 태양은 접시에 생선찌개를 덜어 도후의 옆에 내려놨다. 그러자 어김없이 도후가 접시 쪽으로 얼굴을 박고 열심히 먹는다.
어라. 이것 꽤 재미있잖아. 귀엽기도 한 것 같다.
팔짱을 끼고 도후가 먹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 있으려니 그 모습에 감동을 받은 듯 호영은 볼에 손을 댔다.
“두 사람이 잘 지낼 수 있을지 어떨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사이가 좋아진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네. 이제 좀 안심이 되는 것 같아.”
호영의 중얼거림에 태양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재혼은 두 분이서 하는 거잖아요. 저희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재혼을 하면 우리만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태양씨랑 우리 도후도 한 가족이 되는 거니까 신경을 안 쓸 수 있을 리가 없지. 어떻게 신경을 안 써.”
그렇게 말한 호영은 손을 마주 잡으며 긴 한숨을 쉬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잘 지내는 것을 보니 마음에 있던 큰 짐이 덜어진 것 같은 기분이야. 그렇지 않나요?”
“정말 그렇네요. 저는 벌써부터 듬직한 아들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요.”
“호수씨도 참.”
“제가 너무 성급한 건가요?”
“성급하기는요. 당신다워서 더 보기 좋아요.”
“호영씨...”
“호수씨..”
갑자기 호영과 호수 주변으로 빨간 하트가 둥둥 떠다닌다. 식사를 하다 말고 서로를 쳐다보며 뜨거운 사랑 전선을 구축하는 모습이 태양은 그저 보기 좋다고만 생각했지만 도후는 그것이 아닌지 젓가락질을 멈추고 서로만을 쳐다보고 있는 호영과 호수를 쳐다봤다. 도후의 그 어이없다는 시선을 느낀 것일까 정신을 차린 호영을 자세를 바로 하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괜히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전환시켰다.
“실은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은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기 위해서예요. 재혼은 전혀 다른 두 가족이 함께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여러 가지를 생각해야 하는 중요한 행사니까요.”
“그냥 두 분이서 의논을 한 다음에 결론만 말씀해주세요. 최대한 따르도록 할 테니까요.”
태양의 말에 호영은 손을 마주잡으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정말 그렇게 해줄 수 있어요?”
“당연하죠. 다른 누구보다 두 분이 행복해져야 하는 건데요.”
태양의 어른스러운 말에 호영은 정말로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어쩜. 저렇게나 속이 깊을까.’라는 표정을 짓는 호영에 반해 태양의 옆에 앉아있는 도후는 ‘혼자서 착한 척은 다 하는군.’라며 알게 모르게 빈정거리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호영은 옆에 앉은 호수를 쳐다봤다. 그것에 호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에 용기를 얻은 호영은 입을 열어 말했다.
“저기 사실 우리 결혼식 절차는 생략하려고 해요.”
“네? 어째서요? 기대 많이 하셨잖아요?”
결혼식 때 드레스는 어떤 것으로 입을까 하고 소녀처럼 꿈에 부풀어 있었던 호영이 아닌가.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건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자 호영은 볼을 붉히며 우물쭈물 거렸다.
“나이가 이렇게 되었는데 재혼을 하면서 결혼식을 하는 건 다른 사람들 보기에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냥 안 하기로 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상관이에요. 두 분이 하고 싶으시면 하시는 거죠.”
“물론 그런 거지만 사회적인 눈을 생각해서는 그냥 생략해도 될 것 같아요. 지금 호수씨와 나 사이에 필요한 것은 겉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은 아닌 절차 그 자체이니까. 결혼식은 생략하고 이번에 있는 휴가기간을 이용해서 간단히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그 후에 혼인 신고를 하려고 해요.”
호영의 말에 태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버지는 그렇다 쳐도 아줌마는 병원을 가지고 있는 의사였다. 그런데 갑자기 경비원인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것은 주변 보는 눈에 조금 그럴 거다. 그것뿐이 아니라 도후가 있기 때문에 더더욱 조심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한창 잘 나가는 도후이니 아줌마와 아버지의 재혼은 분명 화제가 되겠지. 여러 가지 상황과 주변의 눈을 생각해서 결국에는 결혼식을 생략하기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벌써 다 정리를 하고 저렇게 말을 하는데 이쪽에서 더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태양은 많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결혼식을 하는 두 분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많이 아쉬우면 나중에라도 드레스를 맞춰서 입고 우리들끼리 조촐한 결혼식을 하는 거죠. 뭐.”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그렇지?”
다른 무엇보다 태양이 맞장구를 쳐주는 것이 기쁜지 호영의 표정이 금방 밝아진다.
이쪽의 작은 말에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호영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일부러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면서 이것저것 챙겨 주려고 하는 것도 보기 좋았고, 호수도 도후에게 잘 해주려 노력하는 것도 보기 좋았다. 서로가 아직은 낯설어서 예의를 차리는 서먹한 단계지만 그게 좋았다. 이런 식으로 서로에게 익숙해져서 정말로 가족이 되는 건가 싶다. 그런 과정의 중간에 있다는 것이 정말 기뻤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며 태양은 젓가락을 들어 밥을 크게 한입 떠먹었다.
밖으로 나와 하품을 했다. 그러자 차가운 공기가 입 안으로 들어온다. 이제 곧 4월이 되는데 왜 이렇게 날씨가 쌀쌀한지 모르겠다. 겨울에는 춥지도 않더니만 봄이 되어서는 날씨가 도통 따뜻해지려 하지 않는다. 이러다가 갑자기 온도가 확 올라가서 여름 날씨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
팔을 문지르던 태양은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얼굴을 들었다. 그러자 호수가 이리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왜 나오셨어요? 춥잖아요.”
“괜찮아. 안 추워.”
그리 말한 호수는 다른 쪽을 쳐다보다가 땅을 발로 찼다. 본인은 최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있기를 유도하려는 것 같지만 태양이 보기에는 어색하기만 했다.
“담배 한 대 피실래요?”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한 태양의 말에 호수는 정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담배 가지고 있니?”
“아니 없어요. 그냥 한 번 해본 소리에요.”
“......정말이야?”
“정말이에요. 담배 끊은 지 오래됐어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중얼거리면서 이쪽을 쳐다보는 것에 ‘정말로 담배 안 피는 거지?’라고 묻는 듯한 기색이 진하다.
담배는 고 2때 확실하게 끊었다. 그때 약속을 하고서 담배를 입에 문적은 한 번도 없었다. 태양은 자신의 특징인 동그란 눈을 훨씬 더 동그랗게 뜨고 호수를 쳐다봤다. 그러자 호수도 태양의 기세에 슬그머니 옆으로 얼굴을 돌리며 헛기침을 했다.
“담배는 몸에 안 좋으니까 피지마.”
“알아요. 그래서 안 핀지 오래 됐어요.”
“그래.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인 호수는 발로 바닥을 차면서 얼굴을 내렸다.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굉장히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한 번에 팍 해버리는 것이 좋을 텐데 뭘 저렇게 뜸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호수의 말을 기다리려고 별 말을 않고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호수의 어깨가 부르르 떨린다. 그것에 태양은 걸치고 있던 잠바에 손을 댔다.
“추워요?”
“아니. 안 추워. 괜찮으니까 잠바 벗지마.”
다급히 손을 든 호수는 태양과 눈이 마주치자 헛기침을 했다. 손을 턱을 쓰다듬다가 머리를 긁적인다. 그러다가 조심스레 속내를 끄집어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게 되는 거구나.”
“축하드려요. 아버지 혼자 있으면 굉장히 신경 많이 쓰이겠구나 싶었는데 그래도 좋은 분을 만나서 안심이 되네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물으며 이쪽을 쳐다보는 호수의 눈동자는 촉촉하게 젖어 있다. 약간은 불안한 듯 쳐다보는 것이 정말로 이쪽이 이번 재혼을 찬성하는지 어떤지 불안해하는 기색이다. 그것에 태양은 피식하고 웃으면서 손을 들어 호수의 어깨를 두어번 토닥였다.
“뭘 그런 표정을 지으세요. 나 정말로 이번 결혼에 불만 없어요.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는데 그게 안 느껴지세요?”
“느껴지지만 사실은 내가 더 불안해. 앞으로 잘 할 수 있을까하고 불안해. 난 한 번 이혼을 하기도 했고....”
한 번 이혼을 한데다 전에 있던 어머니와의 결혼 생활이 최악이었던 만큼 더 겁이 나는 걸 거다.
이제 곧 오십줄이 다 되어서 늙은 중년의 모습을 한 남자가 소년처럼 무서워하고 있다. 앞으로 하게 될 사랑이 소중한 만큼 더더욱 두려워하고 겁쟁이가 되어버리는 것일 거다. 그런 그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태양은 양 팔을 들어 호수의 몸을 끌어안았다. 갑작스레 몸을 끌어안는 태양의 행동에 호수의 몸이 굳는다. 하지만 밀쳐내지는 않았다. 뻣뻣하게 굳어서는 가만히 있는 호수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태양은 말했다.
“아버지를 믿어요. 아버지는 행복해지실 수 있어요.”
“.....태양아.”
태양은 몸을 떨어뜨리고 호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금까지 고생하셨잖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아줌마랑 행복해지세요. 알았죠?”
태양의 말에 호수는 빠르게 눈을 깜박였다. 입을 일자로 다물고 있는 것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다. 울면 소매로 대충 닦아줘야 하는 건가-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킁-하고 크게 코를 삼킨 호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마워.”
“고맙기는요. 제가 더 고맙죠. 저처럼 문제 많은 아들 녀석 버리지 않고 이렇게 잘 키워주셔서 고마워요.”
장난을 하듯 말을 한 것인데 그 순간 호수의 얼굴이 굳어진다. 표정을 굳힌 호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너는 문제 많은 아들이 아니야. 내 자랑스러운 아들이야.”
그리 말한 호수는 눈에 힘을 준채로 이쪽을 쳐다봤다. 평소 심약하기만 한 모습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강인한 모습이다. 그 때문에 태양은 의표가 찔린 듯 당장 어떤 반응을 취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는 태양의 눈빛에 호수의 볼에 점점 붉은 물이 든다. 괜한 말을 한 건가 싶어 부끄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는 그 모습에 태양은 호수의 어깨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줬다.
“이만 들어가 보세요. 아줌마 기다리겠어요.”
“같이 들어가자.”
“바람 좀 더 쐬고 들어갈게요.”
“그래. 기다릴 테니까 빨리 들어와.”
“알았어요. 아, 맞다.”
“응?”
‘왜 그래?’라며 이쪽을 쳐다보는 호수의 행동에 태양은 망설였다. 지금 이 말을 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 고민을 하던 태양은 그냥 말을 해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 입을 열었다.
“이번 재혼에 대해서 엄마가 알고 있어요?”
“.....아니. 모르고 있어.”
“그래요?”
모르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질문을 하고 난 후에 바로 그것에 대해서 머리 속에서 지운 태양이지만 호수는 그것이 아닌 듯 조심스런 어조로 물어왔다.
“엄마가 신경 쓰이니?”
“그 여자가 신경 쓰일 리가 없잖아요. 요새 하도 세상이 흉흉하니까 그 여자가 허튼 짓 할까봐서 그런 거죠.”
“태양아. 그래도 네 어머니인 사람인데 그 여자라는 건...”
“아줌마 기다려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모처럼 일이 잘 풀어지고 좋은 일들만 진행되고 있는데 그 여자에 관한 걸로 아버지와 언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쓸데없는 일이 또 없을 것 같다.
웃는 얼굴로 ‘어서 들어가요. 어서요.’라며 손을 휘적이는 태양에게 더 무슨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어정쩡하게 서있던 호수는 찝찝한 표정으로 ‘먼저 들어가 볼게.’라고 말하며 몸을 돌렸다. 호수가 안으로 들어가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태양은 손을 주머니에 놓고 벽에 등을 기댔다.
이제 정말로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되는 구나. 아줌마는 정말 좋은 사람이니까 별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다. 경제적인 능력도 있는 사람이니까 더 이상 아버지를 힘들게 하지는 않겠지. 뭐, 어머니 같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지는 않을 테니 앞으로 아버지에 대한 일은 모두 아줌마에게 맡기고 이쪽은 그저 자신의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자. 생각을 굳힌 태양은 벽에서 등을 떼고 발을 옮기려 했다.
“여기서 뭐해?”
익숙한 목소리다. 얼굴을 들자 보이는 것은 도후였고 그 순간 태양은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을 흘렸다.
“그러는 그 쪽은 왜 여기에 왔어요?”
“담배 좀 피려고.”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을 물던 도후는 태양에게도 권했다.
“필래?”
“피고는 싶지만 끊어서 안 필래요.”
“담배를 끊었어? 역시나 독한 놈이로군.”
‘자고로 담배 피는 놈들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말라고 했는데.’라고 중얼거린 도후는 반쯤 꺼냈던 개피를 집어넣고 불을 꺼냈다. 담배의 끝에 불을 붙이고는 길게 연기를 뿜어낸다. 멍하니 캄캄한 밤하늘을 쳐다보는 그 얼굴이 조금은 심난한 것 같기도 하다.
“왜요? 엄마가 다른 사람의 것이 된다니까 속이 복잡해요?”
물음에 도후는 태양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 마마보이 아니다.”
“마마보이 아닌 거 알아요. 그저 그 나이에 아직도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할 뿐이에요.”
“나도 엄마라고 부르긴 싫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엄마의 상실감이 너무 크고 힘들어하시니까 어렸을 때 응석을 부렸던 게 아직까지 남은 것뿐이야. 27살 먹어서 엄마라고 부르는 게 이상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지만 갑자기 어머니라고 부르면 그게 더 이상할 게 아니야. 그래도 재혼도 했겠다. 슬슬 호칭을 달리 해봐야 겠군.”
“헤에.”
“뭐야. 그 이상한 소리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개를 흔든 태양은 도후의 시선을 무시하고 저 앞을 쳐다봤다.
그런 것 때문에 호영을 엄마라고 불렀던 건가. 호영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어리고 응석을 부리는 것 같아서 거부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이런 이유를 듣게 되어서 그 거부감도 사라진다.
도후는 참 이상하다. 처음에 가졌던 거부감이나 싫은 점들이 하나, 하나 사라지고 좋은 점이나 괜찮은 느낌으로 변하게 되니 말이다. 일부러 그걸 유도하고 행동하는 건가 싶어 옆으로 눈을 돌려 빤히 쳐다보려니 도후가 몸을 움츠리며 투명스럽게 말한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 앞으로 형이 될 사람이구나 싶어서요.”
“뭐?”
“형이잖아요. 안 그래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을 쳐다보면서 말을 하는데 그걸 두고 뭐라고 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재혼에만 대해서 생각을 했는데 그렇구나. 어머니가 재혼을 하면 아버지와 동생도 딸려서 온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도후는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며 싫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형인 건 맞지. 뭐야. 그러면 네가 내 동생이야?”
“그렇죠. 내가 당신의 형인 거죠. 도후형.”
“우왓! 뭐하는 거야!”
도후형이라고 하는 것도 놀라 죽겠는데 갑자기 달라붙으면 더 당황하게 된다. 팔을 양손을 잡으며 매달리는 것에 장난이라고 해도 정말로 놀라고 만다. 기겁을 하면서 옆으로 몸을 피하던 도후는 들고 있던 담배를 놓칠 뻔하고는 급히 손가락에 힘을 주고 태양을 내려다 봤다.
“옷 탈 뻔 했잖아!”
“그러기에 누가 담배 피래요? 담배 피지 말아요. 몸에 안 좋아요.”
“그래. 너는 끊었다 이거냐. 나도 피고 싶어서 피는 건 아니란 말야.”
투덜대며 도후는 들고 있던 담배를 벽에 비비서 끄고는 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러자 태양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그 꽁초를 주워든다.
“그걸 왜 집어?”
“이렇게 하면 쓰레기잖아요. 이렇게나 예쁜 한옥 주변에 담배꽁초가 있으면 얼마나 보기 안 좋겠어요. 안에 들어가서 쓰레기통에 버려야죠.”
“.....너 묘한 구석에서 바른 청년이 된다?”
“원래 바른 청년이거든요?”
“잘도 그러시겠다.”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고 ‘내가 바른 청년인데. 그것에 대해서 무슨 의의라도 있나요?’라고 말하는 표정을 짓는 태양의 태도에 도후는 헛웃음을 흘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으. 춥다. 이제 들어가자.”
먼저 몸을 돌려 가버리는 도후의 뒤를 태양이 뒤쫓는다. 나무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저 앞에서 허둥지둥 뛰어 들어오는 호수와 호영이 보인다. 얼굴을 들던 호영은 도후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마침 잘 왔다. 나 지금 병원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아.”
호영의 말에 도후는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었다.
“왜 갑자기 병원에 가요? 오늘 일 다 끝내고 들어오신 거 아니었어요?”
“그랬는데 갑자기 환자가 생긴 모양이야. 갑자기 가 봐야 할 것 같아서.....미안해요 태양씨. 다음에 우리 더 길게 이야기 나눠요. 알았죠?”
이쪽을 쳐다보는 호영은 정말로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태양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다. 병원에 일이 있다는데 굳이 저런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었다.
“바쁘신데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아버지도 같이 가는 거예요?”
“응. 호영씨만 보낼 수는 없고 내가 운전해야 할 것 같아. 미안하다.”
“미안할 게 뭐가 있어요. 운전 조심해서 가세요.”
“그래. 먼저 갈게.”
태양에게 손을 흔든 호영은 급히 바깥으로 나갔다.
“정말 급한 일인가 보네.”
중얼거린 도후는 태양을 내려다 봤다. 식사를 하고 나면 호영과 호수 그리고 태양이 알아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면 이쪽은 그냥 지방으로 내려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일이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태양은 이쪽의 몫이다. 이쪽에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건가 하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태양이 눈을 들어 이쪽을 쳐다본다.
“왜 그렇게 고민하는 얼굴이에요?”
“널 어떻게 해야 할까 싶어서 말야.”
“나 집에 안 보내고 여기서 덮치려고요?”
태양의 말에 도후는 조금 전에 핀 담배 연기가 목구멍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콜럭-하고 기침을 한 도후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농담으로 한 말인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을 보여요? 정말로 받아들인 거예요?”
“....애초에 그런 말을 하지 말란 말야.”
하여간 만만찮은 녀석이 아니라면서 도후는 바깥으로 나오며 핸드폰을 꺼냈다.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귀에 대자 오랫동안 통화음이 울린다.
아. 왜 이렇게 안 받는 거야. 딱 3번 울리고 나서 받는 게 예의라고 그렇게 말을 했거늘..
막 투덜대려는 순간 수화기 반대편에서 달칵-하는 소리가 들렸다.
“왜 이렇게 늦게 받아? 무슨 일 있어?”
[그건 이쪽에서 할 말이야!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서울.”
[서울? 왜 서울에 있는 건데?!]
“엄마가 재혼한다고 했잖아. 그것 때문에 올라온 거야. 그래. 내가 빠지면 안 될 일이었다니까.”
통화를 하면서도 도후는 태양을 흘겨봤다. 그것에 태양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발을 멈췄고 도후는 태양에게서 등을 돌린 상태로 통화를 마저 했다.
“지금 밤이니까 촬영 안하는 거 맞지? 내일 일정은 어떻게 되는데? 10시? 그러면....내가 그 시간에 맞춰서 갈게. 중간에 못 빠지니까 그러는 거잖아. 내가 빠져서 이번 결혼 무산 되면 어떻게 하라고? 우리 엄마 그동안 혼자서 힘들게 나 키운 거 알면서 그래? 우리 엄마도 이제 행복해 져야지. 나 때문에 엄마가 불행해지면 그게 무슨 소용이야? 나 모델일 때려 치고 그냥 튀어버린다? 정말이야. 그렇게 되는 거 싫으면 그만 좀....아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너무 그렇게 쪼지 좀 마. 형이 자꾸 그러면 내가 머리가 아프다니까.”
통화를 하던 도후는 급히 폰을 귀에서 뗐다. 멀찍이 떨어진 폰에서 사람이 악 쓰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도후는 간신히 폰에 귀를 대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해.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 그래. 그렇다니까.”
몇 번이고 도후는 사과의 말을 하고 나서야 폰을 귀에서 뗐다. 손에 들린 폰을 흘겨본 그는 혀를 차며 ‘괜히 뭐라 그래..’라고 중얼거리며 태양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봐. 이리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내일 11시까지 가면 돼.”
“지금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 혹시 나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싸운 거예요?”
“아니야. 나도 피곤해서 그래. 이 상태로 거기까지 가면 분명 졸음운전 할 텐데 그러면 위험하잖아.”
폰을 집어넣고 열쇠를 꺼내고 곧장 차로 가는 것에 태양은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자리에 앉자마자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할 준비를 한다.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지만 아까부터 피곤하다고 했던 것이 걸린다. 태양은 의자에 머리를 기댄 채로 물었다.
“괜찮으면 내가 운전할 까요?”
“운전하고 싶으면 다음에 나 없을 때 해라.”
“당신 없을 때 이 차 운전해도 되요?”
“절대로 안 되지. 이 차 뽑은지 이제 세달 밖에 안 됐는데.”
‘그 무슨 소리를..!’라는 듯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보는 것에 태양은 ‘치사하게..’라고 중얼거리며 창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럼 나 잘게요. 나 잔다고 뭐라 하지 말아요.”
“그래. 그냥 자라. 있다 도착하면 깨울 테니까 말 하지 말고 그냥 자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자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죠.”
태양의 중얼거림에 도후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태양이 말을 걸어서 그것에 제때제때 대답을 하고는 있지만 사실 도후는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다. 태양의 말에 일일이 반응을 보이고는 있지만 솔직히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끼면서 도후는 도로 쪽으로 차를 몰았다. 처음 10분 동안 무척이나 조용했다. 원래 이렇게 조용할 녀석이 아닌데 왜 이렇게 조용한가 싶다. 너무 졸려서 껌을 꺼내 입에 넣은 도후는 태양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걸었다.
“야. 심심하면 껌이나 좀 씹어.”
아무 반응이 없다. 이상했던 도후는 차선을 바꾸며 다시금 태양의 어깨를 축축 쳤다.
“야?”
어깨를 흔들자 태양의 고개가 이쪽으로 떨어진다. 어느새 태양은 눈을 감고 자고 있었다.
“....머리만 붙이면 자는 거냐.”
그것 참 편한 성격이다. 어이가 없어진 도후는 신호등이 걸린 곳에서 차를 멈추고 태양을 쳐다봤다.
눈을 감고 잠든 모습은 확실히 귀였다. 이마 앞으로 흘러내린 검은 머리카락을 빤히 쳐다보다가 손가락을 들어 그것을 위로 올리자 검은 눈썹이 찡그려진다. 그것에 도후는 급히 손을 치우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자 흐음-하는 소리를 낸 태양이 자세를 다르게 바꾸며 다시금 고른 숨을 토해낸다.
아 큰일 날 뻔 했다. 이쪽이 건드리고 있는데 태양이 쳐다보면 한소리 들을 것이 분명했다. 다시는 저 녀석 건드리지 말자고 생각하면서 도후는 앞에 집중을 한 채로 차를 몰았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다시금 도후의 눈이 옆으로 돌아가 잠든 태양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정말 잘 잔다. 차에서 이렇게 잘 자는 녀석이 또 있었구나 싶다. 태양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도후는 다시금 신호가 걸리는 틈을 타 태양의 볼을 살짝 눌렀다. 그리고 급히 손을 치우고 앞을 쳐다 본 도후는 초조한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부드러웠다. 탱탱한 살의 감촉이 아직도 손가락 끝에 남아있는 것 같다. 왜 이러나 싶어 헛기침을 한 도후는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신호가 바뀌자 다시금 차를 움직였다.
“.......자는 얼굴을 확실히 귀여운데...”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도후는 아차 싶어서 굳은 얼굴로 급히 고개를 저었다.
에비.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란 말인가.
당황한 도후는 계속해서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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