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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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포트를 열어보자 그 안에 적힌 것은 A+라는 표시다. 이번에도 레포트 성적은 전부 좋을 모양이다. 문제는 시험인데. 이번에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싶어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고 있으려니 옆으로 진성이 다가와 어깨를 두드린다. 

“잘 나왔어?”

“응.”

고개를 끄덕이는 태양에게서 눈을 내린 진성은 하얀 종이위에 적힌 점수를 보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이번에도 A+야? 대단하다.”

“레포트만 잘 나오면 뭐해. 시험을 잘 봐야 하잖아.”

태양의 무뚝뚝한 말에 진성은 ‘그건 그렇지.’라고 중얼거렸다. 

태양은 레포트나 몸으로 때우는 일은 전부 우수했는데 문제는 시험이었다. 다른 녀석들처럼 컨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열심히 공부를 해서 시험을 임하는 타입인데, 이상하게도 노력을 했던 것에 비해 성적이 잘 안 나오는 타입이다. 말로는 워낙 공부를 안 해봐서 어떻게 하는지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가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진성은 태양의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이 늘 신기했다. 유일하게 A+의 레포트 성적을 손에 넣었으면서도 말이다. 복잡한 표정으로 레포트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것에 진성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 표정 짓지마. 이번에는 내가 공부하는 거 봐줄게.”

“정말?”

“응. 열심히 하면 이번에는 잘 나오겠지. 그리고 언제나 열심히 수업 듣는 널 교수님들도 많이 좋아하시니까 이번에는 점수가 잘 나올 거야.”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아무리 예쁨을 받는다고 해도 칸을 어느 정도 채워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죽도록 공부를 하고 열심히 매달려도 이상하게도 시험지를 받아드는 순간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다. 일학년 때에는 시험지를 빤히 쳐다보기만 하다가 시험 시간이 그냥 지나간 적도 있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안 생기도록 노력하자면서 한숨을 쉰 태양은 레포트를 가방에 넣었다. 

가방을 어깨에 메며 계단으로 내려가는 태양의 뒤를 쫓으며 진성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이제 집에 갈 거야?”

“오후에 수업은 없어.”

“그러면 우리 같이 어디 좀 가자.”

“어디 갈 건데?”

“응. 옷을 좀 사러 가고 싶은데 나 보는 안목이 없잖아. 같이 가줘. 응?”

딱히 할 일도 없겠다. 같이 가도 크게 상관은 없을 거다. 알겠다고 대답을 하려던 순간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진성에게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 태양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귀에 댔다. 

“여보세요?”

[태양이니?]

“어쩐 일이세요? 일주일 동안 연락한번 하지 않던 불량 아버지.”

[너..너무 그러지마. 안 그래도 오늘 저녁에는 집에 들어갈 거야. 이제 좀 한가해 졌거든.]

“정말 한가해진 거예요? 나 걱정 되서 빈말로 그러는 거면 하지 말아요. 그리고 집에 혼자서 지낼만 하니까 너무 무리해서 올 필요는 없어요.”

[그게 아니라 정말 일 다 끝났어. 그래서 말인데...]

말을 얼버무리는 것이 아무래도 수상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을 텐데 말이다. 

“뭐에요. 나한테 뭐 잘못 했어요? 왜 이렇게 말을 똑바로 못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사실 호영씨가 오늘 같이 집에 가고 싶다고 해서....]

“그래요? 그럼 데리고 오세요.”

대답은 쉽게 했지만 그 순간부터 태양의 머리는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 동안 혼자서 있는다고 집안은 완전 엉망이었다. 빨래감도 잔뜩 쌓여 있었고 바닥도 엉망이고 반찬도 없다. 갑자기 찾아오면 뭘 만들어서 대접해야 하는 걸까. 잘 하는 요리도 화려하지 않는 종류인데. 처음으로 집으로 찾아오는 아줌마한테 된장찌개나 김치찌개를 줄 수는 없잖은가. 그런 생각을 하며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려니 아버지는 바로 나오는 긍정의 대답에 안도한 건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호영씨. 우리 집에 가도 되는 거지?]

“안 될 건 뭐에요? 어차피 식구가 될 건데. 데리고 오세요. 그동안 방 청소하고 요리도 좀 하고....뭐, 대충 맞겠네요.”

시계를 보니 딱 3시다. 잽싸게 집으로 들어가서 청소를 좀 하고 요리를 하고 그러면....좀 빠듯하려나. 어떻게 하지. 점점 표정이 진지해지는 태양이지만 호수는 그것을 모르고 경쾌하기만 한 목소리로 말했다. 

[있다가 8시에나 도착하게 될 거야. 괜찮지?]

“괜찮아요. 더 일찍 오거나 늦게 올 거면 전화주세요. 알았죠?”

[알았어. 고맙다. 태양아.]

“고마울 게 뭐가 있어요. 끊어요. 네네. 있다가 봐요.”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 태양은 폰을 끊는 순간 바로 표정을 굳혔다. 진지하기만 한 표정을 지은 태양은 팔짱을 낀 채로 앞으로 할 요리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다. 

다 같이 먹는 자리라면 분위기를 띠우거나 보다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전골 요리가 좋을까. 그게 아니면 그냥 치킨 같은 것이나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배달 주문해서 살짝 그릇에 덜어 놓을까. 그건 너무 눈에 튀고 이상해 보일지도 모른다. 거기다 돈도 많이 들고. 그냥 삼겹살 파티를 할까. 아줌마가 집에 와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실 텐데 삼겹살을 먹기가 불편할까. 도후에게 아줌마가 뭘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것을 나을까.

“아. 그것 괜찮은 생각이다.”

혼자서 끙끙 대지 말고 그냥 도후에게 물어보는 것이 제일 빠른 방법일거다.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나 싶어 손바닥에 주먹을 내리친 태양은 바로 폰을 꺼냈다. 그러자 옆에서 ‘저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뭔가 싶어 얼굴을 들자 진성이 보였다. 

“집에 무슨 일 있어?”

“아. 미안. 오늘 집에 아버지 재혼 상대 분이 찾아온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지금 정신이 없어서. 네 옷 사는 일은 다음에 가자. 괜찮겠지?”

“괜찮지. 그냥 다음에 가지 뭐. 그런데 오늘 바쁘면 내가 좀 도와줄까.”

“아니. 내가 알아서 할게. 그럼 나 먼저 간다.”

손을 흔들고 너무도 산뜻하게 몸을 돌리는 태양의 행동에 진성은 더 이상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머리 속으로는 이런저런 말들이 둥둥 떠다니는데 결국 입들 다물고 만다. 전에는 이쪽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요즘 태양은 너무 쌀쌀 맞은 것 같다. 말을 붙이거나 같이 있을 수가 없는 분위기다. 괜히 섭섭해진 진성은 어깨에서 힘을 쭉 빼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진성을 뒤로 한 태양은 번호를 천천히 눌렀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확실한 용건이 있어서 거는 전화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긴장이 된다. 왜 이러냐면서 폰을 귀에 댄 태양은 앞을 쳐다봤다. 몇 번의 통화음이 들린 후에 바로 도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전화했어?]

바로 나오는 툴툴 거리는 음성을 듣는 순간 긴장은 모두 풀어진다. 태양은 피식-하고 웃으면서 물었다. 

“내가 전화한 거 아네요?”

[액정에 다 뜨잖아. 그런데 무슨 일이야?]

“뭘 그렇게 재촉을 해요. 내가 전화 걸어서 싫어요?”

[..........뭐 싫은 건 아니고 지금 막 일어나서...]

바로 싫다는 대답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얼버무린다. 그것에 기분이 좋아진 태양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까지 자고 있어요. 그러지 말고 내가 물어보는 것에 대답이나 좀 해줘요. 아줌마 뭐 좋아해요? 먹는 걸로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 몇 가지만 알려줘요.”

[아줌마? 우리 엄마 이야기 하는 거야?]

“오늘 우리 집에 놀러 온데요. 그것 때문에 비상사태에요. 청소도 해야 하고 요리도 해야 하고 아주 바빠요. 그래서 그러니까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걸로 해서 아줌마가 좋아하는 요리 몇 개만 좀 알려줘요.”

[우리 엄마 한식 좋아하는데...그냥 김치찌개나 끓여줘. 잘 익은 김치랑 김만 줘도 잘 먹는 사람이야.]

“그렇게 드리면 좋겠지만 그래도 오늘 우리 집에 처음 놀러 오시는 거잖아요. 아, 오늘 한가하면 좀 와서 도와주면 안되요?”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나 지금 지방이야. 촬영이 있어서 며칠 전에 내려왔어.]

최근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지방에 내려가 있었던 건가. 뭐 며칠 얼굴이 안 보인다고 해서 섭섭함을 느끼거나, 며칠에 한 번씩 얼굴을 봐야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도후가 지방으로 내려가 있어서 이쪽에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알게 되었더니 알게 모르게 ‘흐음.’하는 기분이 된다. 그러는 동안 도후는 다른 생각이 난건지 그것에 대해서 말했다. 

[그러지 말고 오늘은 바깥에서 먹어. 내가 엄마가 좋아하는 식당으로 자리 잡아줄게.]

“안 되요. 아줌마 우리 집에 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는데. 꽤 기합을 넣고 오고 싶다고 아버지한테 말한 것 같은데 바깥으로 나가서 먹자고 하면 내가 피하는 것 같잖아요.”

[내가 알아서 잘 말할게. 집은 다음에 오라고 하면 되잖아. 네가 정식으로 초대하는 식으로 하면 우리 엄마 더 좋아할 거야. 내가 알아서 해서 식당 잡아놓고 연락 할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뭐. 그렇게 하면 알았어요.”

[잠깐 기다려. 바로 처리하고 전화 줄게.]

할 말을 마친 도후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신호음만 울리자 귀에서 핸드폰을 떼 폴더를 내린 태양은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가볍게 어떤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건지 물어보기 위해서 전화를 한 건데 완전히 다른 해결 방법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알아서 말을 해주고 식당을 잡아 준다라. 의외로 믿음직스럽지 않다. 정말로 큰 형이 생긴 것 같다. 

폰을 주머니에 넣은 태양은 도로변으로 나와 옆을 쳐다봤다. 약 10분 후에 버스가 온다. 정차한 버스에 올라타 자리를 찾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폰을 꺼내 귀에 대자마자 도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말했어. 식당도 자리 잡아 놨으니까 거기로 8시 까지 오면 돼. 위치는 문자로 보내줄게. 그리고 나도 오늘 될 수 있으면 시간 맞춰서 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라.]

“지방이라면서요.”

[전에 제대로 된 자리를 마련 못했잖아. 겸사겸사 자리를 마련한 거니까 진지한 분위기에서 대화 좀 나누고 그래야 할 거 아니야.]

그건 그렇다. 처음 만났을 때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으니까 이번에 만나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았다. 확실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윤곽을 잡아야 될 거고 말이다. 수긍을 하고 가만히 있으려니 도후 쪽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난다. ‘이런..’하는 소리를 낸 도후는 급히 말했다. 

[그럼 있다가 보자.]

“그래요. 있다가 봐요.”

전화를 끊은 태양은 핸드폰을 빤히 내려다봤다. 

“의외로 듬직하잖아.”

그래. 의외로 듬직하다. 의지가 되는 사람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말이다. 고개를 갸웃한 태양은 주머니에 폰을 넣고 움직이는 창밖을 쳐다봤다. 

양복을 차려입은 태양은 거울 앞에서 모습을 확인했다. 너무 캐쥬얼한 것으로 고른 건가 싶다. 속에도 셔츠 대신에 편한 옷을 걸쳤다. 보기에는 괜찮지만 아줌마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태양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다듬으면서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괜찮을 지도....”

그래. 이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너무 격식을 차려서 입으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이상할 것 같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머리 모양을 두어번 정리한 태양은 핸드폰과 지갑을 챙기고 현관으로 나갔다. 운동화를 신고 현관 쪽에 붙어 있는 거울 속에 보이는 모습을 살핀 태양은 눈 사이를 손가락으로 누르고는 그대로 바깥으로 나갔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풀어질지 모르겠다. 분명히 결혼에 대한 세부적인 말이 오갈 텐데 그쪽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까 불안하다. 그쪽에서 어떤 말을 꺼내면 이쪽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한다-라는 식의 정보가 있으면 조금 덜 불안할 텐데 말이다. 

문을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은 태양은 엘리베이터로 가면서도 내내 식당에서 아줌마와 어떤 식으로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앞으로 식구가 될 사람이고 아버지와 좋은 감정의 교류를 하는 분이니까 되도록 그것에 맞춰줘야 할 거다. 괜히 불쾌감을 느끼게 할 필요는 없겠지. 자리의 주인공은 어차피 그 두 사람이니 최대한 맞춰주는 쪽으로 나가야 할 거다. 그러면 제일 먼저 어떤 말을 꺼내야 하는....

“안녕하세요?”

심화적인 생각을 하려던 찰나 아래에서 씩씩한 목소리가 들린다. 이건 또 뭔가 싶어 얼굴을 내리자 2호집에 사는 꼬마다. 전에 말을 걸었다가 상당히 서먹한 분위기가 감돌아서 그때 이 녀석하고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웬일로 먼저 말을 거나 싶다. 그것도 저렇게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선 말이다. 의아한 기분이 들었지만 태양은 똑같이 ‘안녕.’이라는 말을 하고는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태양을 뒤따라 엘리베이터에 탄 동석은 주먹을 쥐고 심호흡을 했다. 긴장이 가득찬 표정을 하고 있던 동석은 태양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어디 나가세요?”

“응.”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을 든다. 이쪽에게는 영 관심이 없다는 듯 다른 쪽을 쳐다보는 태양의 행동에 동석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어떻게 할까 싶어 심하게 눈을 굴리던 아이는 용기를 내 다시금 태양에게 말을 걸었다. 

“오...옷 멋지네요.”

“고맙다.”

“그리고 신발도 멋져요.”

“그래.”

“시..시계도 비싸겠다.”

“비싼 거야.”

너무 대답이 짧다. 뭔가 조금 더 연결시킬 수 있도록 장문의 대답을 들려주지 않을 생각인가. 허탈한 표정을 지은 동석은 그래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게 안 되면 다른 방법으로다가 태양과 대화를 할 거다. 그리 결심을 한 동석은 침을 삼켰다.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던 동석은 점점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확인하고는 초조해졌다. 

안 돼. 이대로 이 사람을 보낼 수는 없어. 조금 더 긴 대화를 나눠야 하는데 좋은 화제가 없을까. 그러니까 조금 더 독창적인 그런 대화가....!

“너 말야.”

갑자기 위에서 들리는 음성에 동석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굴을 들었다. ‘네..네네?’라면서 뻣뻣하기 그지없는 대답을 하는 동석의 모습에 태양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나한테 관심 있냐?”

태양의 무뚝뚝한 물음에 순식간에 동석의 얼굴이 붉어진다. 확- 달아올라서는 불타는 고구마 같은 모양새가 되어 버리는 것에 태양은 ‘신기하네.’라고 생각했다. 

별 감흥이 없는 태양과 달리 동석은 지금 이 순간 심장이 터지는 것을 느꼈다. 착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에 빨려가는 착각을 하며 동석은 부들거리며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저...저저저저저 저는...! 혀..혀혀혀형이..!”

“난 꼬마 관심 없다.”

머리가 펑-하고 퍼지는 줄 알았다. 심장이 너무 빠르게 뛰어서 그대로 바깥으로 튀어나가는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그런 동석의 흥분을 태양의 말 한마디가 식혀진다. 

“아래로는 싫다. 난 연상이 좋아.”

확실하게 자신의 의사를 밝힌 태양은 열리는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한 쪽 발을 내밀며 동석을 내려다보고 짤막한 한마디를 건넸다. 

“안녕.”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네며 손을 흔드는 태양이지만 그것을 보고도 동석은 이렇다 할 반응을 취할 수가 없었다. 그저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는 것에 태양은 관심 없다는 듯 앞으로 얼굴을 돌리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점점 멀어지는 태양의 모습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힌다. 아무도 누르는 이가 없어 멈춰진 엘리베이터 안에서 동석은 한참 동안 굳은 상태로 서있었다. 

전부터 저 녀석 눈초리가 이상하다 싶었다. 그래도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모양이다. 그냥 집어서 물어 봤는데 저렇게 얼굴이 굳어지다니. 다음부터는 알아서 저 녀석 앞에 잘 나타나지 말아야 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주머니에 손을 넣은 태양은 약속 장소까지 어떻게 갈 것인지를 머리 속으로 계산해 봤다. 

일단 버스를 타서 지하철로 갈아타야 한다. 그리고 나서 내린 후에 조금 걸으면 된다. 이번에 처음 가보는 한정식 식당이라 얼마가 들지 몰라 돈을 점 넉넉하게 빼냈는데 부족하지나 않을까 모르겠다. 준비한 돈에서 넘치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한 일이지만 말이다. 부디 적당한 식당이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빵-

지갑 사정을 생각하면서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소리가 난다. 어느 몰상식한 놈이 차있다고 자랑질을 하는 거냐며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든 태양은 저 앞에 있는 검은 차를 발견했다. 곧 앞유리가 내려가고 그 안에서 도후의 얼굴이 나타났다. 

“타.”

태양은 눈을 깜박였다. 

아니.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지방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 전화를 하고 지금 겨우 4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왜 저렇게 눈앞에 나타난 건지 모르겠다. 혹시 그 사이에 서울로 올라온 건가? 머리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태양은 도후의 차로 갔다. 다가오는 태양을 확인한 도후는 앞유리를 올리고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그러자 당연한 듯 태양이 옆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면서 묻는다. 

“어떻게 된 거에요?”

“일찍 올라왔어. 바람이 너무 세사 파도가 높더라고. 오늘 일정 다 취소 되서 잠깐 서울 갔다 온다고 했지.”

“잠깐 갔다 온다는 건 그럼 내려가야 한다는 거예요?”

“밥만 먹고 바로 내려갈 거야.”

“그래도 괜찮아요?”

“안 괜찮으면 어째. 이런 자리에 빠질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전처럼 늦을 수도 없고.”

중얼거린 도후는 선글라스를 쓰면서 위에서 유리를 내렸다. 후방을 살피면서 차선으로 들어가는 것에 태양도 입을 다물고 의자에 깊숙이 몸을 눕혔다. 처음 가는 곳인지라 어떻게 갈까 싶어 막막했는데 이렇게 차로 가게 되어서 다행이다. 눈을 깜박이던 태양은 도후를 쳐다봤다. 

“그런데 언제 왔어요.”

“한 20분 전에?”

“그러면 위로 올라오지 그랬어요. 이번에는 화장실 안 급했나 봐요.”

“아. 그건...”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주제에 왜 끄집어내는 거란 말인가. 되도록 잊고 싶었던 추억인지라 바로 표정이 굳어져서 노려보려니 빙글빙글 웃고 있는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아무 악의 없이 웃는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는 태양을 두고 뭐라 따질 수가 없다. 도후는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바깥에서 담배 좀 피고 정신 좀 차리고 있었지. 피곤하단 말야.”

“오후까지 자고 있었으면서.”

“나는 원래 자도 피곤해하는 타입이야. 풀려면 하루 내내 자야 풀어지는 타입이야.”

“그러면 바쁠 때 힘들지 않아요?”

“바빠도 어째. 잘 나갈 때 벌어두고 나중에 그걸로 먹고 살아야지.”

“모델 안하게 될 때의 일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당연하지. 얼굴에 주름살 생기면 이 일도 못해. 다 한철 장사잖아. 나중에 가게 하나 차리고, 집 하나 살 정도는 벌고 싶어서 나도 나름 노력하고 있어. 벌써 27살이니까 모델 쪽에서는 애송이 놈들 몇몇이 벌써 할아버지 취급이야. 뭐, 지금은 잘나가서 얼굴 대고 말하지 않지만 나중에 인기 떨어지면 툭툭 말하겠지. 그 꼴 못 보니까 팍 번 다음에 최고의 자리에 섰을 때 물러 날거야. 그게 지금 내 꿈이야.”

중얼거리며 도후는 인상을 쓰며 앞을 쳐다봤다. 어두운데 선글라스를 쓰고 있으니까 잘 안 보이는 거다. 이렇게 캄캄한 밤에는 그냥 벗고 있을 것이지. 태양은 도후의 선글라스를 빼앗아 대신 자기가 썼다. 그것에 도후는 인상을 쓰며 태양을 쳐다본다. 

“왜 그래?”

“저녁에 선글라스 쓰면 바로 사고 나요. 이렇게 늦은 밤에 누가 댁 얼굴 본다고 이런 걸 쓰고 있어요. 답답하게. 내가 여자인 것도 아니고. 그냥 편하게 운전해요.”

확실히 밤에 선글라스를 쓰는 것은 과민 반응인 것 같기는 하다. 태양의 은근한 지적에 창피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던 도후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난 원래 선글라스 좋아해.”

“지금은 좋아하지 말아요. 나 타고 있는데 사고 나면 안 되니까.”

그러면 혼자 타고 있을 때에는 사고가 나도 된다는 말이냐. 

살짝 울컥하게 되지만 그냥 말을 말자며 도후는 앞을 쳐 보고 운전을 했다. 금세 진지한 얼굴로 운전을 하는 것에 태양은 곁눈질로 그를 흘깃 봤다. 

말만이 아닌지 정말 피곤해 보인다. 살짝 찡그러진 미간 사이의 주름을 펴주고 싶을 정도다. 빤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그 시선이 느껴진 건지 도후가 눈을 옆으로 돌려 태양을 쳐다본다. 

“왜?”

“피곤하면 내가 대신 운전해 줄까요?”

“면허 있어?”

“있어요.”

면허가 있다는 말에도 썩 믿음이 가지 않는다. 태양에게 운전대를 맡긴다는 것이 불안하기만 했던 도후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내가 할게.”

“운전 못할 것 같아요?”

“그건 아니고....”

“걱정하지 말아요. 15살 때부터 오토바이랑 차 몰았는데 사고 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도후는 저도 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다. 아주 잠시 우리나라가 15살짜리에게도 면허증을 줬던가-하는 멍청한 생각을 하고 만다. 대답은 그럴 리가 있겠냐는 것이다. 미성년자가 오토바이에 차라니 당치도 않다. 알고 봤더니 이 녀석 쌩 날라리 였잖아. 그 말을 목구멍 안쪽으로 삼킨 도후는 심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태양을 쳐다봤다.  

“왜 그 나이 때 차랑 오토바이를 몰았는데?”

“낸들 아나요.”

어깨를 으쓱인 태양은 입술 꼬리를 위로 올리며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만약에라도 피곤해지면 말해요. 나 운전 잘 하니까.”

“괜찮아. 내가 할게. 어차피 40분이면 도착하니까.”

“그러면 나 잠시 자고 있을게요. 아, 졸음운전 하지 말아요. 사고 나면 안 되는 거 알죠?”

“....알았으니까 빨리 자버려.”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굴어요. 사고 안 나면 댁도 좋으면서.”

마지막까지 농을 건네기를 멈추지 않은 태양은 도후가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자 그제야 배에 깍지 낀 손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그런 태양의 모습에 입술을 달싹이며 궁시렁 거리던 도후는 색색-거리는 소리에 눈을 내렸다. 그러자 눈을 감고 있는 태양의 얼굴이 보인다. 

“.....자는 거냐.”

계속해서 말을 하면서 신경을 건드릴 것 같더니만 의외로 쉽게 잠이 든다.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도후는 운전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자신도 지금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어머니께 연락을 하고 약속장소로 식당을 잡은 것으로 할 일은 다 한 거다. 일부러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올 만큼 그리 중요한 자리도 아니었다. 물론 재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이긴 했지만 시간이 지금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중에 이쪽이 서울에 있을 때 다시금 만날 약속을 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태양이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묻고 난감해 했을 때 바로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와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자신도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왜 이러지. 전에는 안 그랬는데..

“벌써부터 형 노릇을 하게 된 건가?”

동생 없이 외동으로 자랐더니 앞으로 동생이 될 녀석의 난처한 상황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된 건가. 원래 남이 힘들어해도 그다지 도와주고 싶은 기분은 들지 않았는데. 태양이 앞으로 가족이 될 사람이기도 하니 그것 때문에 심경의 변화가 생긴 건가.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태양 앞에서 보였던 자신의 행동과 모습들이 조금 이상하긴 했다. 평소의 자신과는 아주 거리가 멀기도 한 것 같았다. 원래 남을 살뜰하게 챙기는 성격이 아닌데. 이렇게 누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일일이 울컥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이러지.”

도후는 얼굴을 돌려 태양을 쳐다봤다. 

이쪽은 머리 아프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당사자는 속편한 얼굴로 색색 거리고 있다. 눈을 뜨고 나불거릴 때에는 하나도 안 귀엽더니만 저렇게 눈 딱 감고 자고 있으니 그럭저럭 볼만한 얼굴이다. 살짝 벌려진 입술에서 시선을 뗀 도후는 앞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전부 저 녀석 때문이야.”

워낙 특이한 녀석이라서 저도 모르게 저 녀석의 페이스에 이끌린 것이다. 그래. 그 뿐이다.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한 도후는 굳은 표정으로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태양은 감은 눈을 떴다. 맨 처음 보이는 것은 무성하게 우거진 숲이다. 유리창 앞으로 보이는 나무들에 저절로 입을 벌리게 된다. 늘어지게 하품을 한 태양은 기지개를 하며 의자에서 일어나 멍한 표정을 지었다. 손을 들어 눈을 비비던 그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아무것도 없는 눈 주변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그리고 선글라스를 쓴 채로 팔짱을 끼고 있는 도후를 발견했다. 어느새 가지고 가서 자기가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쪽에서 지 선글라스를 훔쳐 가기라도 할 것 같았나. 한숨을 쉰 태양은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8시 2분이다. 놀란 태양은 손을 들어 도후의 어깨를 흔들었다. 

“이봐요. 일어나요. 어서요.”

“으음. 뭐야.”

“으음. 뭐야가 아니에요. 벌써 8시가 넘었다고요.”

“뭐? 벌써? 정말이잖아.”

차에 붙어있는 시계를 확인하자 막 3분으로 넘어간다. 잠시 눈을 붙인다는 것에 그만 넋 놓고 푹 자버린 모양이다. 도후는 뒷머리를 손으로 비비며 급히 차에서 내렸다. 태양도 차에서 내려 검은 창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며 머리가 뻗친 곳이 없나 하고 확인했다. 다행이 얌전히 자서인지 머리가 뻗친 부분은 없다. 조금 눌린 것 같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태양은 도후의 옆에 서서 바쁜 걸음을 옮겼다. 

“왜 안 깨우고 같이 자고 있었던 거예요?”

“지방에서 올라온 거 알잖아. 피곤하니까 저도 모르게 잠이 든 거지.”

“알람이라도 맞춰두던가.”

“누구는 이렇게 깊이 잠들 줄 알았나.”

“하여간....”

사람이 피곤하다보면 살짝 깊은 잠을 잘 수도 있는 거라서 더 뭐라 할 수가 없다. 그저 급한 걸음을 옮겨 저 앞에 있던 한옥 건물로 걸어가던 태양은 점점 볼의 근육이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눈앞에 보이는 한옥 건물이 너무도 으리으리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여기 도로변이 아닌 것 같다. 도후가 문자로 보내줬을 때에는 어느 역 몇 번 출구에서 내려 오른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고 했는데 이건 역에서 10분 걸어서 올 장소가 아닌 것 같다. 완전히 도심하고 분리가 되어 있잖아. 태양은 걸음을 멈추고 도후를 쳐다봤다. 

“이게 어떻게 된 거에요?”

“뭐가?”

“여기 당신이 가르쳐준 거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내가 중간에 자리를 바꿨거든. 진지한 대화를 나눌 거라면 아무래도 여기가 좋을 것 같았어. 어차피 널 데리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따로 알려주지 않았는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

다들 알아서 여기서 모이게 되었다면 별 문제는 없다.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태양의 주머니 사정이다. 딱 이십만원을 들고 왔다. 하지만 여기는 어떻게 봐도 그 배가 들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어 표정을 굳히고 있으려니 도후가 그런 태양 쪽으로 얼굴을 숙이며 묻는다. 

“왜 그러는 데?”

“여기 4인 식사비용 얼마나 들어요?”

“한 50만원정도?”

“아니. 한 끼 먹는데 뭐가 그렇게 들어요?”

“전에 갔던 레스토랑은 이보다 훨씬 들어.”

그런 식으로 말하면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50만원은 너무 심했다. 태양이 한달 내내 줄창 뭘 시켜먹었을 때에도 그것보다는 덜 나왔는데. 한 끼 먹자고 한달 식비를 다 쓰란 말인가. 태양은 인상을 쓴 채로 투덜댔다.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나 20만원 밖에 안 가지고 왔는데.”

태양의 중얼거림에 도후는 눈을 깜박였다. 빤히 태양의 얼굴을 쳐다보던 도후는 자세를 바로 하고 천천히 옆으로 얼굴을 기울였다. 

아무래도 태양은 자신이 식사비용을 댈 생각으로 온 모양이다. 집으로 초대를 하지 못해서 바깥으로 식사를 하게 되었으니 그것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하지만 식대는 분명 어머니가 내려 할 것이다. 아무래도 그것을 알려줘야 할 듯 싶지만 바로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은 태양이 기특하기 때문이다. 아직 학생인데다 용돈으로 생활을 하는 녀석이 자기 용돈 중에서도 큰 부분을 선뜻 식대로 내려 했다는 것이 꽤나 기특했다. 주변에 얼굴을 믿고 안하무인 식으로 행동하던 녀석들만 봤다가 이런 타입을 봤더니 꽤 생소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도후는 손을 들어 태양의 머리를 토닥였다. 그것에 태양이 뭐 하는 거냐는 식으로 눈을 위로 들고 흘겨본다.

“왜 이래요?”

“아니. 그냥.”

머리 좀 만졌다고 잡아 먹을 것처럼 노려본다. 급히 손을 치우고 대신 주머니에 집어넣은 도후는 건물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기 식사비용은 걱정하지마. 어머니가 낼 거야.”

“하지만 이건....”

“원래 그런 생각으로 오시는 거야. 오늘은 얻어먹고 다음에 집으로 초대할 때 한상 차려주면 되잖아. 아무 말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돈은 분명 어머니가 낼 거야. 그러니까 오늘은 아무 생각 하지 말고 맛있는 거나 먹자.”

도후의 말에 태양은 눈을 깜박였다. 

“뭐. 그렇게 하면 돈이 남는 거니까 나는 좋지만...”

“그럼 좋은 쪽으로 해.”

도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저 안쪽에서 불빛이 비춰진다. 안으로 들어온 차는 태양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주차된다. 그 차에서 내리던 호영은 태양과 도후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나. 너희들 지금 도착한 거니?”

“태양아.”

아줌마 뒤로 차에서 내린 아버지가 밝은 표정으로 다가온다. 거의 이주만에 보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태양도 반가웠다. 앞으로 걸어가 호수의 손을 잡은 태양은 그의 얼굴색이 좋은 것을 눈으로 보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바쁘다고 한 것 치고는 안색이 좋네요.”

“힘들지 않아서 그래.”

“그래요?”

태양의 물음에 호수는 웃으면서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호수의 모습을 보니 달리 아프다거나 피곤한 부분은 없는 것 같다. 나이가 있는데도 무리해서 일을 하는건 아닐까 싶었는데 다행이다. 태양은 이번에는 호영 쪽으로 몸을 돌리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안녕하세요? 바쁘셨다는데 몸은 괜찮으세요?”

“그럼 괜찮지. 나는 원래 건강해서 잘 안 아파.”

“그러면 다행이네요.”

태양과 호영은 서로를 쳐다보며 활짝 웃었다. 

아. 느낌이 좋다. 딱 그런 생각이 들었다. 첫 만남일 때 느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다. 정말 좋은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니 도후가 태양의 등을 슬그머니 눌렀다. 

“자.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 예약한 시간 지나서 연락 올 거예요.”

“그래. 들어가자. 호수씨. 태양씨. 들어가요.”

호영의 말에 태양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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