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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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소리를 치는 도후지만 태양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말했다. 

“됐어요.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울컥거려. 무슨 울컥증에 걸린 사람도 아니고. 맨날 소리를 치니까 당신하고는 무슨 말을 못하겠어요.”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저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거란 말인가. 한마디 하려던 도후는 조금 전 태양이 했던 말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며 입을 꾹 다물고 벽에 등을 기댔다. 

두고 보자. 그쪽에서 무슨 말을 해도 이쪽은 완전히 씹어줄 거다. 

분하고 원통해서 인상을 쓴 채로 시근덕거리자 그런 도후에게서 얼굴을 돌린 태양이 앞을 쳐다 보고 나타난 화면에 레포트를 열었다. 쓴 부분을 확인하고는 책을 펼치고 다시금 재확인을 한다. 몇 번이나 책과 화면을 왔다 갔다 하던 태양은 맞게 잘 쓴 것을 확인하고는 자판에 손을 올렸다. 타다닥-하고 자판 두들기는 소리에 도후의 눈이 그쪽으로 향한다. 그냥 무시하는 편이 좋을 것 같지만 궁금하다. 티비에서 뭐 재미있는 것도 안 하는 것 같아서 심심했던 도후는 슬그머니 태양의 옆으로 가 쪼그리고 앉았다. 

“너 지금 뭐하냐?”

“레포트 쓰잖아요.”

“그래?”

도후는 여전히 태양의 옆에 쪼그리고 앉은 상태로 점점 늘어지는 글자를 쳐다봤다. 묵묵이 화면을 쳐다보던 것도 잠시 도후는 손가락을 들어 화면 한 쪽을 눌렀다. 

“이거 글자 틀렸다.”

“에?”

태양은 도후가 가리키는 쪽을 보고는 ‘아, 정말이네.’라고 중얼거리며 틀린 글자를 바로 고쳤다. 그리고 다시금 아래를 연결해서 타자를 쳐 내려가는 것을 도후는 별 말 없이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이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뭐라 한마디라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굉장히 조용하다. 그냥 자기 할 일을 할 생각인 모양이다.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혼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았던 도후는 괜히 얼굴을 들고 거실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왜 컴퓨터가 바깥에 나와 있는 거야?”

“방 안에만 두면 내가 이상한 영상 보니까 아빠가 바깥에 둔 거에요.”

“이상한 영상이라니?”

“야동이요.”

흘겨보며 ‘다 알면서 뭘 물어?’라는 뉘앙스를 팍팍 풍기는 태양에 도후는 크게 입을 벌렸다.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야동을 보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야동은 하나도 볼 것 같지 않게 생긴 태양이 너무도 태연하게 야동을 보기 때문에 아버지가 컴퓨터를 바깥으로 내놓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차라리 다른 사내 녀석들이 이런 말을 했다면 바로 뒤통수를 치면서 ‘아직도 그 나이에 손가락의 도움을 받고 있는 거냐?’라는 식으로 반응을 취했을 거다. 하지만 태양을 상대로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렇게나 깔끔하고 금욕적으로 생긴 녀석이! 남자 냄새도 안 풍기고 인텔리 하게 생겨서는 ‘남자는 이성적인 존재입니다.’라는 대사를 날릴 것 같은 녀석의 입에서 야동이라니! 괜히 이쪽이 더 부끄러워진다.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도후는 아래로 눈을 내리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옆에서 계속 안절부절 못하니 그것이 안 느껴질 수가 없다. 태양은 한숨을 쉬며 도후를 쳐다봤다. 

“뭘 그렇게 안절부절 못해하고 있어요. 나 바쁘니까 뒤로 가서 티비나 봐요. 그것도 아니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던 가요.”

그 순간 도후는 머리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뭐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미간 사이에 주름을 팍 만든 도후는 태양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갈 거다.”

도후의 말과 동시에 태양의 표정도 구겨진다. 어림 반푼도 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착 가라앉은 눈이 된 태양은 도후를 쳐다봤다.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여기서 자고 간다고 말하는 거야. 불만 있어? 있으면 말해. 하지만.”

하지만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도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태양을 째려봤다. 

“난 그 불만 접수 안한다.”

몸을 돌린 도후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곧 물 트는 소리가 들리는 것에 태양은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들며 중얼거렸다. 

“저 인간이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도후가 들어간 화장실을 쳐다보던 태양은 시간이 없는 것을 상기하고는 다시금 화면을 쳐다봤다. 

학교 컴퓨터와는 달리 화면도 작고 작동시간도 오래 걸리는 고물 컴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아끼고 아껴서 잘 사용하고 있었던 컴퓨터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느린 것 같다. 제대로 글이 써지지 않아서 자판이 이상한 건가 싶어 자세히 살펴보지만 딱히 이상한 점은 눈에 띠지 않는다. 왜 이러나 싶어 팔짱을 끼고 있으려니 화장실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바깥으로 나온 도후는 태양과 눈이 마주쳤지만 전혀 상관하는 기색 없이 태양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것에 태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후가 들어갔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도후는 허리에 손을 올린 채로 방의 이모저모를 살폈다. 진지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던 그는 ‘역시나 초라하군.’이라는 대사를 말했다. 그것에 태양은 팔짱을 낀 상태로 문에 몸을 살짝 기댔다. 

“당신 방은 어떤 꼴이기에 여기가 초라하다고 하는 겁니까?”

“삐딱하게 듣지마. 내가 아니더라도 여기에 들어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이 방이 초라하다고 할 걸? 이 방에 온 사람들이 그런 말 한 번도 하지 않았어?”

“누굴 데리고 왔어야 그런 말을 듣기나 하지.”

하지만 아버지에게 이미 몇 번이나 그런 말을 들었다. 방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말. 그러니까 침대랑 책상이나 옷장 말고 다른 가구를 더 집어넣자는 말을 했지만 태양은 지금 딱 이 상태가 좋았다. 여기서 다른 것 뭐를 더 집어넣는단 말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태양에게는 더 큰 부담이었다. 필요한 것만 딱 준비해서 살겠다는 데 이게 뭐가 초라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나 이상한 걸까 싶었던 태양은 도후에게 물어보기 위해서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멍하니 이쪽을 쳐다보는 도후의 시선을 확인하고는 바로 한쪽 눈썹을 위로 올렸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겁니까?”

“아니. 그게 말이지....”

태양의 물음에 도후는 주춤 했다.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 그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이 방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온 적이 없었어?”

“남을 집에 안 들인다고 내가 말하지 않았어요?”

“그런 말을 했던가?”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듣긴 한 것 같다. 그래도 그때에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그냥 넘겼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나 보다. 만약에 이 방이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의 출입을 맞이하지 않는 거라고 한다면 타인으로서는 자신이 처음으로 온 거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건.....

그 순간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진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끼며 눈을 내리뜨자 태양이 방으로 들어와 도후의 팔을 붙잡았다. 

“이봐요. 이만 나가요.”

“왜 나가라는 거야. 나 여기서 잘 거야.”

태양의 잡고 있는 팔을 뒤로 빼내며 도후는 뒷걸음질을 쳤다. 그것에 태양은 ‘이것 봐라?’라는 상태가 되어 한쪽 눈썹을 위로 올렸다. 

“정말 여기서 잘 거예요?”

“당연하지.”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도후는 벌써 그럴 마음인 듯 싶었다. 이쪽에서 뭐라 해도 나는 여기서 잘 거야-라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도후지만 태양은 그런 도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점점 표정이 험악해졌다. 

“쫓아내기 전에 당신 발로 알아서 나가요.”

“싫어. 난 여기서 잘 거야. 어차피 형제가 될 거잖아. 남도 아닌데 뭘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야?”

“아직은 남이니까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예요. 나중에 아버지랑 아줌마 도장 찍고 정말 가족이 되면 그때는 생각해 볼게요.”

“생각하긴 뭘 생각해. 난 그냥 누울 거야.”

태양의 손을 치워낸 도후는 태양이 뭐라 하기도 전에 침대로 몸을 날렸다. 붕-하고 공중에 뜬 도후의 몸에 침대로 떨어진다. 베개를 끌어안고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잘 자세를 취하는 도후의 모습에 입술을 깨문 태양은 바로 침대 위로 올라가 도후의 뒷덜미를 잡아 흔들었다. 

“정말 뭐하는 겁니까? 당장 일어나요.”

“싫어. 피곤해. 난 이대로 잘 거야. 잘 거라고.”

절대로 떨어질 수 없다는 듯 베개를 끌어안고는 그곳에 볼을 비빈다. 그 행동에 태양은 도후의 어깨를 잡아들었다. 하지만 아주 작정하고 누운 도후는 팔과 다리를 쫙 뻗어서는 침대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도후를 들어 올리려 하니 침대 시트가 따라서 위로 들썩거린다. 그것에 태양의 이마에 혈압 마크가 생겼다. 

“정말 이럴 겁니까? 자꾸 이러면 나도 가만히 안 있어요!”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 같다. 그것에 도후의 어깨가 살짝 움찔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는 도후의 팔을 잡으며 태양은 다시금 소리쳤다. 

“두들겨 맞기 전에 빨랑 일어나요! 어서요!”

도후는 고개를 두 번 크게 젖다는 베개에 얼굴을 푹 파묻었다. 그 어린애같은 행동에 심히 어이가 없어진다. 

“지금 당신 내 말을 듣고 있는...!”

점점 화가 나서 정말로 주먹으로 두들겨 패버릴까 하고 생각이 들던 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쿨-하는 소리가 나 태양은 그대로 손을 폈다. 잡혀 있던 옷이 놓아지자 도후의 몸이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진다. 침대에서 내려온 태양은 도후의 턱을 잡아 바깥으로 돌렸다. 그러자 눈을 딱 감고 있는 도후의 얼굴이 보인다. 

이 인간 이 상황에서 잘 수가 있는 신경줄을 가지고 있었단 말인가. 

이쯤 되면 기가 막힌 것이 아니라 당황스럽기까지 한다. 생긴 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오만방자한 왕자님 같은 녀석이 이런 넉살이라니. 기가 막힌다. 태양은 눈에 힘을 주고 도후를 노려보며 투명스럽게 내뱉었다. 

“못생긴 주제에....”

그렇게 말한 태양은 팔짱을 끼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도후가 정말 못생긴 얼굴인 걸까. 잠시 생각을 하던 태양은 아래로 눈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뭐, 얼굴은 봐줄만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서 이 정도 얼굴이만 상당한 거다. 성격도 그럭저럭 괜찮아서 아주 개차반인 것도 아니다. 이 정도의 넉살이라면 앞으로 아버지가 아줌마랑 재혼을 해도 썩 잘 지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손에 턱을 괜 태양은 진지한 얼굴로 도후의 얼굴을 쳐다봤다. 입을 반쯤 벌린 도후는 정말로 피곤한 듯 기절한 듯한 느낌으로 잠들어 있었다. 이렇게나 피곤해하는데 정말로 깨워서 복도로 집어 던지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지금까지 이 방에서 자신 외에 잔 사람은 없었는데..... 

미간 사이에 주름을 만든 태양은 손가락을 들어 도후의 이마를 꾹 눌렀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사이의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보지 못 했는데. 어느새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처음에 아파트 앞에 나타났을 때 아주 확실하게 쌩까버리는 것이 나았을까. 눈빛을 굳힌 태양은 오랫동안 도후의 잠든 얼굴을 쳐다봤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만 봐준다.”

딱 이번만 봐주는 거다. 다음번에도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면 그때는 정말 국물도 없을 줄 알라면서 태양은 바깥으로 나가 방문을 닫았다. 

도후는 더워서 손가락을 들어 셔츠를 간신히 잡고 가볍게 팔락였다. 그래도 더위가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다 셔츠를 잡는데 뭐가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 마치 가슴 앞에 뭔가가 있어서 셔츠에 제대로 손이 닿지 않는 것 같다. 거기다 다리도 답답하고 몸 전체가 답답하다. 나 지금 옷 입고 자는 건가. 그것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바로 눈이 떠진다. 정말로 놀란 듯 크게 눈을 뜬 도후는 캄캄한 공간에 흠칫하고 몸을 굳혔다. 굳은 상태로 주변을 둘러보지만 낯설기만 한 공간이다. 거기다 왜 이렇게 등이 추운건지 모르겠다. 

“여기 도대체 어디....읏!”

말이 끝나기도 전에 뭔가가 옆구리를 강타한다. 놀란 도후는 신음을 흘리며 눈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 앞에 얼굴을 묻고 있는 존재를 확인하고는 크게 입을 벌렸다. 

뭐냐. 뭐냐. 이번에는 또 뭐냐. 나 또 술 마시고 이상한 사람하고 같이 잔건가? 

정말 당황한 도후는 아래로 손을 내려 잠든 상대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상대가 그런 도후의 손을 치워내며 뒤로 조금 물러났다. 덕분에 도후는 자신의 옆구리에 딱 달라붙은 채로 잠이 든 상태가 태양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태양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도후는 자신의 머리가 저 멀리로 날아가 버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

그 순간 도후는 자신이 왜 여기에 이런 꼴로 있는지에 대해서 하나, 둘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뒤풀이에 끼기 싫어서 핑계를 내고 음식 재료를 잔뜩 사서 태양의 집으로 왔다. 태양의 집으로 온 것은 좋았지만 그대로 태양의 방으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태양이 낯선 이의 침입을 그렇게 반기는 것 같지 않았기에 정말 싫어하면 알아서 돌아가자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후부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 또 기절한 것처럼 잠이 들어버린 건가. 정말 그렇다면 난감한데. 

안색을 굳힌 도후는 꼼지락거리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 순간 품에 안겨있던 태양이 얼굴을 들어 도후를 쳐다봤다. 아까까지만 해도 눈을 감고 잘 자던 사람이 갑자기 눈을 뜨고 이쪽을 쳐다보는 것에 도후는 정말 놀랐다. 헉-하고 숨을 들이켠 상태로 가만히 있으려니 태양이 손을 들어 도후의 눈을 가렸다. 

“꼼지락 거리지 말고 그냥 자.”

하고 싶은 말은 그 뿐이라는 듯 눈을 가리던 손이 내려간다. 으음-하며 긴 한숨을 쉰 태양이 안쪽으로 파고들어 딩연한 듯 몸통을 끌어안아도 밀어낼 수가 없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가만히 있던 도후는 귀속으로 파고드는 숨소리에 슬그머니 아래로 눈을 내렸다. 보이는 것은 눈을 감고 있는 태양의 얼굴이다. 

아직 친하지도 않는 사이이기 때문일까. 그게 아니며 잠든 태양의 얼굴이 너무 곱기 때문일까. 괜히 얼굴이 달아오르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안절부절 못해하며 눈을 굴리고 있으려니 태양이 더 안쪽으로 파고 들어온다. 당당하게 허리에 팔을 올리고 다리 사이로 무릎을 밀어 넣는 행동에 도후는 기겁을 하며 뒤로 몸을 물렸다. 

“야. 그만해. 위...위험하잖아.”

딴에는 정말 곤란해서 어깨를 잡아 뒤로 밀어내면서 그런 말을 하지만 깊이 잠이 든 태양은 그런 것 따위 모른다는 듯 도후가 뒤로 물러나면 그만큼 더 달라붙었다. 추운지 몸을 잔득 움츠리면서 달라붙는데 바로 확 떼어내는 것은 조금 매정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되도록 받아들여서 마주 안아주고 싶지만 무릎이 너무 부담스럽다. 지금 태양의 무릎이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와서 다리 사이의 중요한 부분을 자꾸만 자극했다. 그렇게 건드리면 성인군자도 설 판이다. 거기다 이쪽은 요새 쌓였다니까. 그 순간 딱 맞춰서 태양의 무릎이 거기를 쿡 찌른다. 

“읏..!”

기겁한 도후는 급히 몸을 뒤로 빼려 했지만 태양이 워낙 단단하게 잡고 있어서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물러나려고 하면 그것에 딱 맞춰 끌어안고 있는 팔에 힘을 준다. 그것에 도후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만 갔다. 

“뭐...뭐야. 이건....일부러 그러는 거 아냐?”

정말 당황해서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하며 아래로 눈을 내리지만 눈 딱 감고 고른 숨을 토해내는 태양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자고 있는 사람을 흔들면서 너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거기다 태양의 성격상 그런 질문을 던지면 바로 ‘당신 변태 아냐?’라는 식으로 되려 이쪽을 매도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태양에게 잔뜩 끌어 안겨진 도후는 여전히 다리 사이의 자극을 계속해서 받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다른 생각을 하자. 절대로 세우는 것은 안 된다. 남자를 상대로 거기를 세우다니.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 암. 그렇고 말고. 

딴에는 진지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식은땀까지 흘리면서 열심히 다른 생각을 하는 도후였지만 그 품에 안겨있는 태양의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 

“아. 잘 잤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기지개를 켜며 개운한 표정을 짓는 태양을 본 도후의 얼굴빛은 칙칙하기만 했다. ‘잘 잤다니. 잘 됐네.’라고 생각하면서 음침하니 티비 채널을 바꾸는 모습에 태양은 그리로 가며 물었다. 

“언제 일어났어요?”

“....새벽에...”

“피곤하다면서 먼저 곯아떨어진 주제에 새벽에 일어났어요? 의외로 잠이 없나 봐요?”

“잠이 없다라...”

촬영장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눈을 감고 있어서 매니저나 다른 사람들에게 잠탱이이라고도 불리는 자신이다. 원래 한 번 눈을 감으면 오후가 되기 전까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데 어제는 정말 한 숨을 잘 수가 없었다. 

태양에게 그런 식으로 끌어 안겨지고 남자의 중요한 부분을 자꾸만 자극 받아야 했다. 거의 두 시간을 참으려 했지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도후는 있는 힘껏 끌어안고 있던 태양을 밀쳐내고 침대에서 일어나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직접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민망한 일을 한 후에 죽은 이 마냥 얼굴이 칙칙하게 변한 도후는 바깥으로 나와 침대에 누워있는 태양에게 갔다. 아주 혹시라도 태양이 이쪽을 골려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어 그것을 확인하려 다시 방으로 들어간 그는 이불을 다리 사이에 끼고 답지 않게 굉장히 귀여운 표정으로 잠이 든 태양을 보고는 슬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잠든 얼굴을 하고 있는 태양은 정말 위험해서 그 옆에 붙어있을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내 살다 살다 남자 얼굴을 보고 위험하다 생각하게 되다니. 아니. 그 전에 남자가 주는 자극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손의 도움을 받다니. 하긴 전에도 일을 하다가 남자 녀석들에게 유혹을 받은 적이 몇 번 있었지. 그때에는 아무 느낌이 생기지 않아서 그냥 무시 했는데 왜 지금은 그렇게 되지 않는 거지? 왜 나는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부터 일어나 애국가를 듣고 재미도 없는 아침 새벽 뉴스를 지금까지 보고 있다가 다른 채널로 돌려 여성 전문 프로그램을 보고 있느냔 말야. 거기다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된 연유냔 말이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느낌에 한숨만 푹푹 쉬고 있으려니 옆으로 태양이 와서 앉는다. 

“배 안 고파요?”

“....안 고파.”

대답을 하면서 도후는 옆으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딴에는 태양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한다고 살살 움직이는 것 같지만 태양의 눈에는 다 보인다. 태양은 그런 도후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왜 나를 피해요?”

“내가 언제 피했다고 그래?”

“방금 피했잖아요. 여기에서부터 여기로 이동했잖아요.”

"그건 티비가 잘 안 보여서.....“

“정말이에요?”

“당연하지. 내가 왜 너를 피해. 뭐 뒤가 구린 것도 없는데...”

뒤 구린 거 엄청 많지만 솔직하게 말을 할 수는 없다. 

말을 얼버무리며 눈을 아래로 내리뜨는 것에 태양은 눈을 가늘게 뜨고 도후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다가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나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아침에 뭐 먹을래요?”

“응? 네가 하려고?”

“해야죠. 어제는 당신이 만들어 줬잖아요. 뭐 먹을 거예요?”

묻는 말에도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눈만 댕그랗게 뜨고 있다. 그 모습에 태양은 짧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적였다.  

“말 안하면 그냥 내가 먹고 싶은거 만들 거예요. 나 오늘 오전부터 강의 들어가야 해서 바쁘거든요. 그쪽은 어떻게 할 거에요?”

“나도 오후에 누구랑 만나야해.”

“그러면 나 나갈 때 같이 나갈래요? 오후에 사람 만난다고 하면 굉장히 시간이 어정쩡한데..”

그렇다고 이쪽만 집에 두고 나갈 수는 없을 거다. 둘 사이가 아주 좋은 것도 아니고 서로를 믿고 열쇠를 건넬 수 있는 사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도후는 벽에 등을 기대며 지나치듯 말했다. 

“그냥 너 나갈 때 같이 나가지. 뭐.”

“그래요? 당신 차 가지고 왔죠?”

“응. 왜 그런 걸 묻는데?”

싱크대 앞에 서있던 태양은 저 위에 있던 냄비를 꺼내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시간 많이 남으면 나 학교에 좀 데려다 주라는 말을 하려고 했죠. 그냥 가려면 버스 타고 지하철 타야해서 아주 귀찮거든요. 차타면 추운데서 안 기다려도 되고 쉽게 차를 탈 수 있잖아요.”

“........그런가.”

어쩐지 대답이 시원찮다. 이쪽을 데려다 주기가 싫은 건가. 

“싫으면 냅두고요.”

“아니. 태워줄게.”

차가 있는데 태워다 주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냥 저 녀석을 태워다 주고 적당히 시내를 돌거나 차 안에서 눈 좀 붙이다가 오후에 사람을 만나면 되겠지. 간단하게 그렇게 생각한 도후는 쿠션을 잡아 겨드랑이 쪽에 밀어 넣으며 딱딱한 맨바닥에 그대로 누워버렸다. 

먼저 바깥으로 나온 도후는 열쇠를 들고 밖으로 나오는 태양을 쳐다봤다. 장갑을 끼고 있어서인지 열쇠가 잘 되지 않는 모양이다.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하는 것을 쳐다보고 있던 도후는 그 손에서 열쇠를 가지고 가 대신 문을 잠가줬다. 그러자 태양은 몸을 돌려 가방을 뒤로 보이며 말했다.

“가장 두 번째 주머니에 넣어주세요.”

시키는 대로 가방에 열쇠를 집어넣던 도후는 밖으로 나올 때 봤던 좁은 현관 한쪽에 붙어있던 자전거를 떠올리고 물었다. 

“자전거는 사용하지 않는 거야?”

“날씨가 풀리면 다시 사용할 거예요. 요즘 갑자기 추워졌으니까 당분간은 안타요.”

“그래?”

열쇠를 가방에 집어넣은 도후는 먼저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버튼을 눌렀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올라오는 숫자를 쳐다보던 그는 슬그머니 눈을 내려 태양을 쳐다봤다. 

모자를 쓰고 있어서 인지 얼굴이 살짝만 보인다. 오늘은 안경도 쓰지 않고 있어서 전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전에 이 녀석의 나이가 24살이라고 들었는데 긴가 민가 하다. 아직 대학을 다니는 것을 보면 군대를 다녀온 걸까. 그게 아니면 군대 안 다니다 뻗대서 이제 4학년이 된 걸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서 쳐다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태양을 눈을 든다. 갑자기 이쪽을 쳐다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도후는 의외의 공격을 받은 것 마냥 움찔하고 몸을 굳혔다.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리지 못하고 그저 이쪽만 쳐다보는 것에 태양은 슬그머니 입술 꼬리를 올리면서 말했다. 

“어제 당신이 다시 찾아와서 정말 의외였어요.”

“......뭐가?”

“기분 나빠져서 다시는 안 찾아올지 알았거든요.”

“뭐. 그건....”

기분 나빠져서 안 찾아오려 했던 것은 확실히 사실이다. 어제도 마땅한 핑계거리가 없어서 온 것뿐이지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찾아오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하기에 태양의 텅 빈 냉장고가 좀 거슬리긴 했지만....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그곳으로 들어가면서 태양은 다시금 물었다. 

“다음에 또 이런 식으로 와서 맛있는 거 해줄 거예요?”

물음에 도후는 입을 다물고 위를 쳐다봤다. 

다음에 또 여기를 와야 하는 걸까. 오는 거야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앞으로 형제가 될 사람이고 사이좋게 지낸다면 어머니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도후는 곧 오늘 새벽에 있었던 일도 떠올렸다. 그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민망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오싹하니 뒷목으로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지만 그것을 진정시킨 도후는 눈에 힘을 줬다. 

지금까지 내내 생각했던 거지만 새벽의 그 일은 태양이 의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 그런 상황만 좀 피해지면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태양도 의도해서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아니고 이쪽에서 그런 상황이 다시 되는 것을 피한다면 그런 묘한 분위기가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한 도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찾아올게.”

“나 고기 좋아해요.”

‘고기?’라는 느낌으로 도후는 태양을 쳐다봤다. 그러자 빙그레 웃은 태양이 말했다. 

“야채 들어간 요리 해줄 거면 애초에 오지 말고 고기 요리 해주고 싶을 때에만 찾아와요. 나 원래 남이 우리 집에 있는 거 싫어하지만 고기 요리 먹을 수 있으면 참아볼게요.”

“.......................”

“아, 나가요.”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밖으로 나간 태양은 뒤를 쳐다 보며 손을 흔들었다. ‘뭐해요. 빨랑 나와요.’라고 말하는 듯한 그 행동에 어이가 없어진 도후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입을 벌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문이 닫히려 하자 허겁지겁 밖으로 나오며 손을 주먹 쥐었다. 

이게 가만히 있으니까 이쪽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내가 뭐 네 녀석의 고기 요리를 만들어주기 위해서 찾아와야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거야? 나도 사진 한 장 찍을 때마다 수십에서 수백씩 받는 프로 모델이란 이 말씀이야. 지금까지 누구한테 뭐 해달라는 말은 해봤어도 저런 식으로 당당하게 이것저것 해주라는 말은 또 처음이다. 생소한 경험이긴 했지만 전혀 기쁘지 않고 새롭지도 않았다. 다시금 경험하고 싶다는 느낌은 더더욱이나 들지 않았다. 

“차 어디에 있어요?”

부글부글 끓는 도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을 둘러보며 차를 찾는 태양의 얼굴은 태연하기만 했다. 

한참동안 주변을 둘러봐도 차가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했던지 태양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도후를 쳐다봤다. ‘차 정말 어디에 있어요?’라고 묻는 검은 눈동자나 발그랗게 물이 든 하얀 뺨을 보는 순간 불만을 말 할 생각이 쏙 사라진다.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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