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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보는 와중에도 도후는 시선에 상관없이 음식을 착착착 해 나갔다. 그 재빠른 움직임에 감탄을 하면서 태양은 식탁 위에 손바닥을 올리며 물었다.
“혼자 있을 때 그냥 시켜먹지 그랬어요? 그게 더 편하잖아요.”
“시켜먹는 돈 아끼면 얼마나 저금할 수 있는 줄 알아? 그리고 그거 몸에도 안 좋아. 대충이라도 집 밥 먹는 게 제일이야.”
“.......................”
저런 인간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오다니. 믿을 수가 없다.
굳은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려니 이쪽의 시선이 느껴진 건지 도후가 눈을 내리며 인상을 쓴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당신이 그런 말을 하니까 되게 이상해서요.”
“내가 어때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는데?”
“여자들 등쳐먹게 생겨.....아니요. 이건 아니에요.”
모처럼 좋은 분위기였는데 엉망으로 만들 필요는 없을 거다. 이 인간하고 아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지만 그래도 앞으로 형제가 될 사람이다. 계속해서 얼굴 생까고 찬바람 쌩쌩 날리면서 지낼 필요가 어디에 있겠나. 그런 생각으로 하던 말을 중간에 자르긴 했지만 이미 들은 것인지 도후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다. 불만이 많은 듯 입술을 두어번 씰룩거리던 그는 가스렌즈 앞에 바짝 붙어서 쓱쓱 수저를 움직였다. 순식간에 참치 김치 볶음밥이 완성되었다. 그릇에 밥을 옮겨 담은 그는 그것을 식탁에 올리려다 여전히 식탁 한쪽에 엎드려 있는 태양을 내려다보며 투명스럽게 말했다.
“뭐해? 좀 닦고 젓가락이랑 수저 좀 올려. 반찬도 좀 꺼내고.”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이면서 태양은 먼저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그릇에 손을 댔다. 동그랗게 볶음밥을 말아 입 안에 넣고는 저도 모르게 ‘맛있다.’라고 말한 태양은 도후의 눈치를 보며 냉장고 앞으로 가서 반찬을 꺼냈다. 대충 좋아하는 나물류만 꺼내서 올려놓고 도후가 의자를 끌고 먼저 자리에 앉는다. 어느새 젓가락이 올려져 있는 것을 확인한 태양은 도후가 꽤 움직임이 빠르다고 생각하며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참치김치 볶음밥은 정말 맛있게 보였다. 보기에도 좋은데 맛도 좋다. 이걸 정말 저 인간이 만든 건가 싶다. 신기해서 빤히 쳐다보자 도후가 먼저 수저를 들어 밥을 떠 입에 넣는다. 그 모습에 태양도 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정말 맛있다. 처음에는 정말 먹을 것을 만들 수 있나 싶었는데 말이다. 점점 속도가 빨라져서 열심히 볶음밥을 먹는 태양을 따라 두어번 수저질을 하던 도후는 혀를 찼다.
“제길.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맞아요. 원래 이러려고 온 게 아니라 따지려고 온 거잖아요.”
먹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것에 도후는 인상을 팍 썼다. 정말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 태양을 쳐다보며 도후는 들고 있던 수저를 내려놨다.
“너 원래 그렇게 성격 나쁘냐?”
“댁 보다는 성격 좋지 않나요?”
“내 성격이 뭐가 어때서?”
“지금까지 살면서 성격 좋다는 말 얼마나 들어봤는데요? 아니지. 오늘 한명 이상한테 성격 좋다는 말 들어봤어요?”
태양의 물음에 도후의 표정이 굳어진다. 무표정으로 있던 도후의 눈이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누구한테 성격 좋냐는 말을 들어봤나 싶어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 모양이다. 그런 도후의 모습에 태양은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안 들어봤죠? 성격 나쁘다는 말은 좀 들어봤겠지만 어디서 성격 좋다는 말을 들었겠어.”
태양의 말에 도후는 울컥했다. 확실히 오늘 오전에 일을 할 때에 재수 없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그것도 상대가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고 농담 식으로 건넨 말이긴 했지만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태양에게 뭐라 반박을 할 수가 없다. 원래 생겨먹은 게 눈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간 타입이라 뭘 하지도 않아도 성격 나쁘다는 평판도 자자했고 말이다. 그것은 도후가 꽤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콤플렉스였는데 그걸 태양이 후벼 파니 썩 기분이 좋지가 않다. 밥 먹을 때는 입 다물고 밥이나 먹으라고 한 방 날리고 싶었는데 그 순간 태양이 수저를 아래로 내리며 이쪽을 빤히 쳐다봤다.
“나도 처음에는 성격 나쁜 줄 알았는데 아니네요.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알게 되어서 이상한 기분이 들어요. 그렇다고 당신이랑 막 친하게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리 말한 태양은 다시금 얼굴을 아래로 내리고 열심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토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저렇게 급하게 먹는지 모르겠다. 저렇게 먹다가 또 토하지-라는 생각을 하며 도후는 얼굴을 아래로 내렸다.
.....의외로 괜찮은 사람인가. 뭐 그쪽도 꽤 괜찮은 성격인 것 같기도 한데...
도후는 눈을 들어 태양을 쳐다봤다. 나물을 밥 위에 올려 크게 한입 먹더니 눈을 위로 올린채로 우물거리며 입을 움직인다. 마치 부유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며 맛을 보고 있다. 그 모습이 신기했기 때문에 빤히 쳐다보던 도후는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급히 주머니에 손을 넣고 검은 핸드폰을 꺼내 몇 번 누르고 태양 앞으로 내밀었다.
“이거 네 번호냐?”
“맞아요.”
액정에 찍힌 번호는 분명 태양의 것이었다.
오늘 식당에서 밥을 먹다말고 도후에게 통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찍힌 모양이다. 안 받아서 번호가 잘못 되었나 하고 걱정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호박 나물을 들어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도후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누가 내 번호 알려줬어?”
“아줌마가 아빠한테 알려주고 아빠가 나한테 알려줬죠.”
“제길....그 아줌마가....”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 아무한테나 번호가 가는 거 싫어한다는 거 빤히 알면서도 잘도 이런 짓을 했겠다. 인상을 쓴 채로 핸드폰을 닫아 뒷주머니에 넣으면서 도후는 음산한 어조로 말했다.
“혹시라도 번호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면....”
“그런 짓 안 해요. 나 저장안 하고 그냥 머리로 외워들 거니까 다른 사람에게 유포되는 걱정도 하지 말아요."
“번호 머리로 외웠어?”
“숫자는 원래 잘 외워요.”
“흐음. 그래?”
건성으로 대답을 하면서 도후는 수저로 밥을 꾹꾹 눌렀다.
정말로 태양이 번호를 아무에게나 알려주지 않을까 싶다. 건방지긴 해도 남의 번호를 여기저기에 뿌릴 것 같은 타입은 아닌 것 같지만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판단을 할 수 없는 거다. 거기다 만난지 이번에 두 번째고 말이다. 도후는 슬그머니 눈을 들어 태양을 쳐다봤고 마침 얼굴을 들던 태양과 눈이 마주쳤다. 바로 옆으로 얼굴을 돌리며 ‘나 안 쳐다봤어요.’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도후지만 태양은 상관하지 않고 묻고 싶은 것에 대해서 물었다.
“오늘 안 바쁜가 보네요?”
물음에 도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전에 일 끝내고 오는 길이야. 어제 저녁부터 오늘까지 밤새서 일 했어.”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피곤했는데 너 보니까 잠이 다 달아난다. 너처럼 독한 놈은 또 처음이라니까.”
“내가 뭐가 독해요. 이 정도면 귀여운 동생 아닌가요?”
그 순간 도후의 손에 들려있던 수저가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진다. 그것을 다시금 들어 올릴 생각을 하지도 못한 채 두후는 얼굴을 들어 멍한 표정으로 태양을 쳐다보며 물었다.
“귀엽다고? 네가?”
“네. 내가 귀엽다고요.”
태양은 서비스라는 기분으로 손가락을 들어 볼을 콕 찔렀다. 그러자 바로 도후가 손으로 눈을 가리며 ‘눈이 썩을 것 같잖아! 그만 두지 못해!’라면서 소리를 친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양은 다른 손가락을 마저 들고 볼을 콕 찔렀다. 양 손으로 볼을 찌르며 ‘나 귀엽잖아요.’라는 말을 해대는 뻔뻔한 말을 해대는 태양 때문에 도후는 악을 써대며 자꾸만 뒤로 몸을 물렸다.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서 일부러 더 장난을 건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태양은 속으로 혓바닥을 길게 내밀면서도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볼을 손가락으로 콕. 콕. 찔러 댔다.
식사 시간은 이상할 정도로 긴 시간이 걸렸다. 많은 대화가 오간 것은 아니고 대부분이 잘 이야기를 나누다가 울컥한 양쪽에서 한마디씩 가시가 돋은 말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서 이를 드러내고 있다가 또다시 다른 식으로 대화가 연결되는 식이었다.
원래 오랫동안 밥을 먹는 성격이 아닌데도 불구, 이번에는 2시간에 가깝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도후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그가 돌아갈 시간이 되어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대충 그릇을 치운 태양은 설거지를 하려는 도후를 말리고 그의 옷을 건넸다. 그냥 가라는 표시에 도후도 일이 바빴는지 별다른 말없이 옷을 건네받고 현관 쪽으로 갔다.
느리게 신발을 신으면서 도후의 눈은 내내 아래로 고정되어 있었다. 느리게 신발을 신는 거나 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은 분명 이쪽에게 달리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던 태양은 도후의 말을 기다렸다. 꽤 오랫동안 시간을 끌며 입을 다물고 있던 도후는 허리를 세우고 뒷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나 처음에는 너 재수 없다고 생각했어.”
“나도 처음부터 댁은 별로였어요.”
역시나 말 한마디를 지지 않았다.
도후도 전이라면 바로 울컥해서 몸을 돌렸을 테지만 지금은 안 그런다. 태양이 원래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도후는 말없이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태양은 앞으로 내밀어진 손을 무끄러미 쳐다봤다.
이 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내쳐 버릴까. 그도 아니면 그냥 무시할까. 그도 아니라면...
태양은 눈을 위로 해 도후를 쳐다봤다. 그리고 도후가 그답지 않게 꽤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요.”
손을 잡고 가만히 있었다. 악수를 하고 가볍게 흔들었으니 이제 손을 빼고 서로 바이바이를 해야 할 텐데 손을 언제 놓아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잡고 있는 손을 빤히 쳐다보던 태양은 도후를 쳐다봤다. 그 순간 도후도 눈을 들어 태양을 쳐다봤다. 서로의 시선이 교차되는 순간 도후는 뜨거운 것에 닿은 듯 서둘러 손을 떼고 잠바 쪽에 꽂혀 있던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그럼 다음에 보자.”
도후는 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서둘러 가 버리는 그 모습에 태양은 슬리퍼에 발을 구겨 넣고 닫히려는 문에 손을 댔다. 문을 활짝 연 태양은 저 앞에 등을 보이고 있는 도후를 불렀다.
“이봐요.”
“왜?”
도후는 멈칫하며 뒤를 쳐다봤다.
지난 10년 동안 살았던 낡은 복도에 서있는 도후는 정말 어울리지 않아서 웃음이 난다. 그래도 명색이 잘 나가는 모델이라 그런 모양이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괜찮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며 태양은 슬그머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조심해서 들어가요. 어제 잠 한숨 못 잤다고 운전하다가 졸지 말고요.”
태양의 말에 도후는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멍하니 반쯤 열린 문 사이에 기대고 서있는 태양을 쳐다보던 도후는 헛기침을 하며 급히 걸음을 옮겼다. 서둘러 걸어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 버리는 도후의 모습을 확인한 태양은 어깨를 으쓱이며 집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탁-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다. 그것에 도후는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꺼내 눈앞으로 올렸다.
조금 전 태양의 손을 잡았던 감촉이 떠오른다. 생긴 것이 곱상해서 손도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로 크고 단단했다. 약간 까칠하기도 했다. 손을 많이 사용한 사람 같은 느낌을 풍기는 손이었다.
“....이상한 녀석...”
중얼거린 도후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태양아!”
부르는 소리에 태양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저 안쪽에서 진성이 달려와 앞에서 멈춘다. 어디서부터 달려온 건지 모르겠지만 앞까지 와서는 허리를 숙이고 거친 숨을 헐떡이는 모습에 태양은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물었다.
“왜? 할 말 있어?”
“아니. 그게 말이지.”
침을 삼킨 진성은 허리를 세워 태양을 쳐다봤다. ‘나 바쁘니까 용건을 빨리 말해줘.’라고 말하는 듯 한 얼굴을 하고 있는 태양을 확인하는 순간 바로 용기가 꺾인다. 고개가 아래로 수그려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진성은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저기 어제 말이야. 그 사람...누구야?”
“내 형이 될 사람.”
“......정말이야?”
“응.”
태양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진성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어제 태양의 집 앞에서 돌아가는 순간부터 진성의 머리 속은 굉장히 복잡했다. 왜 저 유명한 모델인 도후가 태양을 만나러 온 것인지, 그 둘의 사이가 과연 무엇일 것인지, 어쩌면 자신이 사람을 잘 못 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완전히 복잡해진 상태였다. 급기야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된 진성은 용기를 내 태양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원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태양이니까 제대로 말을 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대꾸를 해준다. 그렇구나. 그 사람이 재혼할 상대의 아들이구나-라고 간단하게 넘어가려 했지만 그 순간 또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 주변을 둘러본 진성은 태양의 팔을 잡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제 본 그 사람 말야. 네 형이라는 사람 말야.....그러니까..”
“그 사람이 유도후냐고 묻고 싶은 거지?”
이쪽에서 말하고 싶지만 도저히 쉽게 나오지 않는 말을 태양이 먼저 말해준다. 그것에 고마움을 느끼며 진성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아. 내가 묻고 싶은 게 바로 그거야. 그 사람 진짜 유도후는 아니지? 그냥 닮은 사람이지? 그렇지?”
“그 사람이 유도후야.”
산뜻한 대답에 진성은 ‘응?’하는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진성을 똑바로 보며 태양은 똑똑한 어조로 말했다.
“그 사람이 유도후 본인이야. 내 형이 될 사람이 지금 굉장히 유명한 모델인 바로 그 사람이야.”
태양의 말에 진성은 크게 입을 벌렸다. 정말 놀란 듯 경악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던 진성은 주먹으로 가슴을 꾹 눌렀다. 며칠간 변을 못 본 사람처럼 순식간에 누렇게 뜬 얼굴이 된 진성은 경직된 어조로 물었다.
“......못 생겼다고 했잖아.”
“그런 말을 했던가.”
“했어! 분명히 했단 말야!”
태양이 처음으로 부친이 재혼할 상대를 만나러 간다고 한 날 저녁에 바로 전화를 걸어서 그 대답을 들었다. 얼굴도 못생기고 성격도 이상하다고 말을 했으면서 그 유도후가 재혼할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을 하는 건가? 태양의 심미안이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 심하잖아.
진성은 손을 들어 머리를 부여잡았다. 진짜 연예인을 몇 번 본 적이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가까운 거리에 유명한 사람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건지 머리를 양손으로 잡은 채 굳어버린 진성을 앞에 두고 태양은 태연한 어조로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에는 재수 없고 못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만나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
태양의 말에 진성을 눈을 꿈뻑였다. 머리를 잡고 있던 손을 내린 그는 금방 표정이 굳어서는 태양 쪽으로 얼굴을 내리며 물었다.
“그건 무슨 말이야?”
“뭐가?”
“어제 만나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말은 무슨 말이야. 저기 어제 두 사람 무슨 일 있었어?”
“아무 일도 없었어.”
그렇게 말하는 태양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진성은 직감적으로 태양과 도후인가 뭔가 하는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나 재수 없어 하는 사람을 떠올리고도 표정이 부드러울 수가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기분이 점점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진성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태양아. 어제 그 사람과....”
“진성 오빠!”
중요한 말을 하려는 순간인데 누가 부르는 건가 싶다. 진성은 뒤를 돌아봤고 저 뒤에 손을 흔드는 일단의 무리가 보였다. 뭔가 했더니 이학년 들이다. 같은 학년이지만 나이 차이가 나서 평소에는 잘 말을 하지도 않는 이학년들이 왜 갑자기 아는 척을 하는 건가 싶어 가만히 있으려니 태양이 턱을 들어 그들을 가리킨다.
“가봐. 부르잖아.”
“나중에 가 보면 되지 뭐. 지금은 너랑 이야기 하는 게 더 중요....”
“나랑 이야기 하는 게 뭐가 중요해.”
말문이 막힌다. 말을 하려던 자세 그대로 굳어서 이쪽을 쳐다보는 진성의 어깨를 두드리며 태양은 말을 이었다.
“너 과대잖아. 할 일 많을 거 아냐? 나랑만 있지 말고 다른 사람들하고도 있어야 하는 일이잖아. 나 혼자서 너 독점한다는 말은 듣기 싫으니까 어서 가봐. 있다가 보자.”
“으....으응...”
너무도 산뜻한 얼굴로 말을 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반응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영부영 고개를 끄덕이고만 있자 손을 흔든 태양이 몸을 돌리고 아래로 내려가 버린다. 점점 멀어지는 그 모습을 보고도 붙잡을 수가 없다. 정확히 딱 선을 그어두는 느낌이 섭섭하기만 하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진성은 뒤에서 다시금 이름을 부르자 그 쪽으로 어기적거리며 걸어갔다. 진성은 자신을 불렀던 자들 쪽에 멈추며 칙칙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 불렀어?”
“아까부터 계속 불렀어요. 태양 오빠랑 무슨 말을 하기에 그렇게 못 듣고 있어요?”
“.........글쎄. 무슨 말을 했더라..”
이쪽은 꽤 진지한 말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태양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너무도 산뜻한 얼굴로 이쪽을 돌려보내고는 혼자서 횡-하는 가 버린 것에 상처 받아 버렸다. 침울한 얼굴로 길게 한숨을 쉬려니 그런 진성과 태양이 사라져 버린 쪽을 번갈아 보던 여학생이 손을 들어 머리를 긁적인다.
“태양 오빠도 같이 있었는데 부를 걸 그랬나? 그래도 태양 오빠는 좀 어려운데...”
여자의 말에 진성은 그렇지 않다는 듯 한 표정으로 손을 저었다.
“생긴 게 좀 깐깐해서 그렇지 의외로 좋은 녀석이야.”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말 붙여서 무시한 적 한 번도 없고 친절하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태양 오빠가 앞에 있으면 괜히 답답하단 말이에요.”
손을 들어 양 볼을 감싼 여학생은 안타까운 듯 길게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언제가 되면 태양 오빠 앞에서 능숙하게 말을 할 수 있을까. 확 고백해서 그냥 사귀어 버릴까?”
그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여학생이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서라. 그런 짓 했다가는 과 여자애들한테 단체로 미움 받는다. 태양 오빠가 얼마나 인기 많은 줄 알고 그런 말을 하니? 다른 과에서도 넘보는 게 바로 태양 오빠야.”
“하긴 그렇게 멋있는데 다른 여자들이 가만히 둘리가 없지. 그런데 인기 많은 것 치고는 지금까지 사귄 사람은 한명도 없지 않나?”
“또 모르지 몰래 사귀는 사람이 있을지도 말야. 그런 사람이 혼자라면 그게 더 이상하잖아.”
“하긴 그게 그렇다.”
고개를 끄덕이며 ‘응. 맞아. 그래.’라며 맞장구를 치는 분위기에 진성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태양은 또래 남자치고는 미모가 뛰어나고 깔끔한데다 매너도 좋아서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 무엇보다 여자애들이 이런 식으로 태양에 대해 말한 것을 들어본 적은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생소하기만 하다. 이상한 기분이 든 진성은 저들끼리 좋다고 대화를 나누는 여자애들 사이로 파고 들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태양이가 그렇게나 인기가 많아?”
“말밥이죠. 얼마나 인기 많은데요? 폭탄 밖에 없는 우리 과에서 유일하게 건질만한 남자라고요. 아, 진성 오빠도 꽤 괜찮아요. 그런데 너무 태양 오빠랑만 있어서 접근할 수가 없어요. 여자 친구 사귀고 싶으면 너무 태양 오빠한테만 잘해주지 말고 우리들한테도 신경써주지 그래요? 지금부터 시작하자고요.”
금세 진성쪽으로 타겟을 바꾼 여학생은 여우같은 표정을 지으며 진성의 팔에 매달렸다. 그러자 그것에 질 새라 반대편에 있던 여학생도 진성의 팔에 매달리며 말했다.
“그래요. 지금부터 시작해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 밥이나 좀 사줘요.”
“읏! 뭐하는 거야. 할 말이 있어서 나 부른 거 아니었어?”
“배고픈데 오빠가 딱 보이잖아요. 그래서 부른 거였어요. 자 매점으로 가요. 가자. 가자.”
“신난다~”
그쪽은 신날지 어떨지 몰라도 이쪽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니, 배가 고프면 자기들 돈으로 사 먹을 것이지 왜 괜한 사람을 끌고 가는 거란 말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무시하고 태양과 함께 있는 건데 말이다. 진성은 이미 보이지 않는 태양이 있었던 자리를 쳐다보며 울상을 지었다.
턱에 손가락을 댄 태양은 진지한 눈으로 당근을 쳐다봤다.
잠시 태양의 머리 속으로 당근으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들이 떠올랐다. 그냥 썰어서 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되고, 갈아서 마셔도 되고, 심심하며 깎아서 그냐 먹어도 된다. 해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많구나. 고개를 끄덕인 태양은 손가락으로 당근을 가리키며 노점에 앉아있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이거 절반만 사면 안 되요?”
“천원 주면 다섯 개 넣어줄게.”
“그렇게 주세요.”
자리에서 일어난 할머니는 검은 비닐에 당근 다섯 개를 넣고는 서비스라며 하나를 더 놓었다.
“총각이 요리해서 밥해 먹는 건가. 다른 건 필요 없어?”
“다른 건 글쎄요. 잠시만요.”
중얼거린 태양은 눈을 내려 주의 깊게 야채들을 살펴봤다.
몇 개에 천원, 몇 개에 이천원 식으로 해서 슈퍼보다는 훨씬 싸긴 하지만 문제는 저것들로 어떤 요리를 해 먹냐는 거다. 전에는 부친이 집에 들어와서 반찬을 해주곤 했는데 최근에는 아줌마 병원에만 붙어있어서 얼굴을 잘 보이지도 않는다. 거의 일주일 동안 얼굴을 못 본 것 같다. 그동안 반찬을 꾸준히 먹어서 지금 남아있는 것도 그다지 없는데 말이다. 전에 가만히 있지 말고 아버지가 요리를 할 때 옆에서 좀 봐두는 건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오늘 밤은 그냥 당근에다가 고추장 찍어서 먹어야 겠다. 그렇다고 당근만 사서 가기는 뭐했던 태양은 쉽게 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계란 한판이랑 상추 좀 주세요.”
“그래. 알았어.”
할머니는 당근을 먼저 건네고 계란 한판을 노끈으로 잘 묶은 후에 태양에게 건넸다. 그것을 받고 계산을 한 태양이 꾸벅 인사를 하자 노인은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기에 있네. 종종 와. 잘생겼으니까 내 싸게 더 많이 줄게.”
“고맙습니다. 수고하세요.”
“저녁 맛있게 먹어.”
마지막까지 말을 해주시는 할머니에게 다시 한 번 인사를 한 태양은 산 것들을 들고 언덕 위를 올라갔다.
괜히 이것저것을 산 모양이다. 집에 마땅히 먹을 반찬이 없으니까 잘 산 것 같기도 하지만 과연 이걸 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 며칠 동안 계란만 줄창 먹으면 금방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태양은 들고 있는 계란 한판을 눈높이로 올렸다.
“..........흐음...”
오늘은 계란 후라이에다가 고추장 풀어서 비빈 후에 상추 좀 뜯어서 넣어야 겠다. 그렇게 먹으면 오늘 저녁은 대충 때울 수 있겠지.
원래 배가 고프면 대충 가격을 비교해서 음식을 시켜 먹거나 먹고 들어가는 편이었는데 얼마 전에 도후가 집에 왔다 간 후로는 일부러 집에서 밥을 먹으려 하고 있다. 그가 했던 ‘사 먹는 돈 모으면 그게 얼마인데.’라는 말이 태양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앞으로 아버지는 재혼을 할 거고, 그러면 그쪽 아줌마랑 살게 될 거다. 앞으로 졸업을 하고 나서 취업을 하게 되면 당장은 독립을 할 수는 없어도 몇 년 안에는 나가서 살아야 할 거다. 그 때를 위해서 지금 수중에 있는 돈을 조금씩 저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아줌마가 나가서 살라는 눈치를 줄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태양 쪽에서 불편할 것 같았다. 새로운 삶을 사시는 분들이니 만큼 두 분이서 더 자주 있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효도가 달리 있겠는가. 신혼 때 눈앞에서 알짱거리지 않으면 그게 효도다. 그리 생각하며 태양은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인기척이 들린다. 뭔가 싶어 눈을 내리자 허리에도 채 오지 않는 작은 아이가 굳은 얼굴로 서있다. 누군가 했더니 2호에 사는 동석이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서 놀다가 지금 돌아오는 건지 모르겠다. 저 집 엄마가 꽤 목소리가 괄괄했던 것 같던데. 오늘 저녁도 그 아줌마의 큰 목청소리를 들을 수 있겠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가 자꾸만 이쪽을 흘깃 거리며 쳐다본다. 달리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그냥 무시할 까도 싶었지만 같은 층에 살고 있는데 인사나 좀 할까 싶다.
“안녕.”
“헉..!!”
그냥 인사를 한 것뿐인데 지나치게 놀란다. 괜히 인사했나 보다. 다음부터는 인사하지 말자고 생각한 태양은 마침 열리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바로 동석이 태양의 뒤를 쫓아 안으로 들어와 10층을 누른다. 양 손에 짐을 잔뜩 들고 있어서 버튼을 누르기 힘들 것 같았는데 이렇게 알아서 눌러주니 고맙기도 하다. 그래서 또 말했다.
“고맙다.”
“.............”
고맙다고 하는데 아무 말 안하고 슬그머니 눈을 내린다. 구석에 붙어서 다소곳이 서있는 모습에 태양은 눈을 들었다.
이상하다. 저 녀석 원래 저렇게 얌전떠는 녀석이 아닌데. 지금까지 몇 번이나 동석을 멀리서 본 적이 있었는데 그 때마다 동석은 큰 소리를 치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뒤를 동석의 모친이 쫓아디니곤 했다. 이 단지나 어린이집에서는 꽤 사고뭉치로 소문난 녀석이 저렇게 입 다물고 얌전히 있으니까 이상하다. 혹시 이쪽에서 저 아이에 대해서 잘 못 알고 있었던 걸까 싶다.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하자 ‘저기...’라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내리자 얼굴을 잔뜩 붉히고 있는 동석이 보인다.
“왜?”
“....그거 다 먹으려고 산거에요?”
“그럼 다 먹으려고 사지 버리려고 살 것 같아?”
“.........................”
평소대로 하는 말투로 말을 했더니 바로 동석의 표정이 굳어진다.
확실히 이쪽이 듣기에도 좀 쌀쌀맞은 말투였던 것 같다. 그래도 의도한 바는 아니었는데 왜 저렇게 충격 받은 표정을 짓는 건지 모르겠다. 저런 표정을 지으면 달리 더 할 말이 없어지는데. 어떻게 할까 싶어 눈을 굴리자 문이 열린다. 할 말이 없었는데 잘 되었다며 태양은 냉큼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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