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4화 〉 푸드트럭 (4)
* * *
먹기 시작한 건 가장 늦었는데 제일 먼저 다 먹어버렸다. 그래도 다들 거의 비슷하게 식사를 마쳤다.
정시은이 오른손을 배에 얹고 몸을 살짝 뒤로 젖혔다.
“아, 맛있었다.”
정시은이 자세를 바로 하고 강성연을 봤다.
“잘 먹었어요 성연 언니.”
“응... 근데 난 한 것도 없는데...”
“그래도 휴일인데도 여기로 와서 주문받는 일까지 맡아서 했잖아요.”
“그 정돈 누구나 하는 거니까... 요리가 힘든 거지.”
“요리가 어렵다고 언니가 한 게 쉬워지는 건 아니잖아요.”
“응... 고마워.”
“제가 고마워해야 하는데 언니가 고맙다 하면 어떡해요.”
강성연이 살폿 웃었다.
“맛있게 먹었니?”
강예린 목소리였다. 고개 들었다. 베이지 카디건에 흰 티셔츠, 연청바지 차림을 한 강예린이 가까이 와 있었다. 야무지게 묶어 올린 머리칼에 땀이 살짝 젖어 있었다. 앞치마랑 조리모를 벗은 걸 보면 일단 일을 마치고 온 듯했다.
“응.”
강성연이 답했다. 정 씨 자매랑 수아가 강예린을 보고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한마디씩 했다.
“입에는 맞았어?”
“네, 너무 맛있었어요.”
내가 답했다. 강예린이 다행이다, 라고 말하면서 강성연의 옆에 앉았다.
정서아가 자리에 일어서서 분주히 탁자를 정리했다. 정시은이랑 수아도 거들었다. 나도 앉아서 정리를 돕다가 같이 쓰레기를 버리러 가기 위해 일어서려 했다.
“우리 셋이 갈게 온유야. 앉아있어.”
정서아가 말했다. 기세에 밀려 도로 앉았다.
“저희 이거 치우고 올 테니까 얘기하고 계세요.”
정서아가 똑 부러지게 말했다.
“으응.”
정서아가 정시은이랑 수아랑 같이 쓰레기를 들고 갔다. 강예린이 세 명의 뒷모습을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내쫓은 거 같이 됐네...”
“그냥 저희 편히 얘기할 수 있게 센스 있게 자리 비워준 거 같아요.”
“그건 아는데... 너희도 뭐 대화하고 있었을 거고, 나는 다 있어도 괜찮았는데 괜히 가게 한 느낌이라.”
“대화하던 건 딱히 없었어요. 타이밍 좋게 오신 거니까 괘념치 마세요.”
강예린이 살폿 웃었다.
“알겠어. 근데 너 말하는 게 좀 딱딱하다, 어딘가.”
“그런가요?”
“응. 근데 괜찮아. 매력 있어. 고칠 필요는 전혀 없는 거 같아.”
“다행이네요.”
“응.”
“근데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된 거예요?”
“그냥 소속사에 연락해서 협의하고 왔지.”
“원래는 엄마가 밥차 얘기했을 때 내가 가지 말자고 했는데, 엄마가 갑자기 나한테 가기로 했다고 통보해 가지고...”
강성연이 덧붙였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왜 먼저 연락은 안 해줬어?”
“엄마가 혼자 준비하고 있다가 아침에 갑자기 나한테 얘기한 거라서. 문자는 했었어.”
“아, 그랬어?”
“어. 폰 확인 안 했구나.”
“나 촬영하느라고. 미안.”
“한 번 확인해봐.”
강성연이 말했다. 톤에서 조금 서운한 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굳이 안 해도 되잖아.”
“걍 해.”
폰을 꺼내 각도를 교묘히 틀어 나만 보이게 하고 메시지함을 확인했다. 진짜로 강성연한테서 온 메시지가 있었다.
“진짜지?”
“응... 미안해.”
“됐어.”
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강예린이 턱을 괸 채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랑 강성연을 바라봤다. 모성애 어린 눈꼬리에 장난기도 이따금 읽혀서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러고 보니까 내가 성연이가 친구랑 같이 노는 모습을 육안으로는 잘 못 봤던 거 같아.”
“친구가 다 학교에 있는데 엄마가 어떻게 봐.”
강성연이 말했다. 강예린이 눈을 마주쳤다.
“그니까. 집에 데려오고 해봐.”
“싫어. 귀찮아.”
“다 귀찮으면 할 수 있는 거 하나도 없어.”
“알아서 할게.”
강예린이 고개 돌려 나를 쳐다봤다.
“가끔 성연이 보러 집으로 와줄래?”
“아니 학교에서 보는데 뭘 그런 부탁을 해.”
강성연이 질색했다.
“왜. 엄마가 딸이 친구랑 있는 것 좀 보겠다는데.”
“아니 밴드부 영상이나 보든가.”
“업로드 잘 안 되잖아. 그리고 최근에 올라왔던 건 그거였고.”
평범한 버스킹 영상이었지만, 거기에는 출석 정지당했던 나랑 강성연이 없었다.
“하자고 건의할게.”
강예린이 희미하게 웃었다.
“응...”
“셰프분이시죠? 푸드트럭에서 요리해주신.”
음식을 다 비운 컵을 들고 지나가던 남자 스태프 한 명이 강예린을 보고 말했다.
“네. 맞아요.”
“진짜 맛있었어요. 감사해요.”
“입으로 호강했어요.”
“커피차보다 좋았어요.”
식사를 마친 스태프들이 붙여오는 말에 강예린이 배시시 웃었다.
“감사해요.”
“근데 업체 이름은 뭐예요?”
“업체는 아니에요. 이벤트성으로 온 거라서...”
“아 그럼 또 오실 확률은 아예 없는 거예요?”
“지금 뭐라 말씀드리기 좀 어려울 거 같아요.”
“아,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스태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걸어갔다. 적당히 멀어졌다 싶었을 때 작게 목소리 냈다.
“또 안 오셔도 돼요.”
“응... 근데 난 또 오고 싶어.”
“진짜 괜찮아요. 빚지는 거 같아서 더 받기 힘들어요.”
“빚은 내가 졌지... 그리고 나는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질 거 같아서... 이기적인 동기지만 받아주면 좋겠어.”
난감했다. 준다고 해서 넙죽넙죽 받는 건 아무래도 껄끄러웠다. 여러 사업장을 운영하고 직원들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인 강예린에게 내 쪽으로 신경을 쏟게 하는 건 역시 아니다 싶었다. 아무리 스태프들이 맛있게 먹었다고 해도 그랬다.
“그럼 이렇게 서프라이즈 형식으로 하지는 말고, 먼저 연락이라도 해주세요.”
“알겠어.”
“그리고 무리하게 오시지는 않아도 돼요.”
“음? 당연하지.”
강예린이 기분 좋은 듯 싱그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걱정이었어? 아, 뭔가 엄청 신선하다. 고마워 온유야, 걱정해줘서.”
명백한 아이 취급이었다. 왠지 부끄러웠다. 강성연의 뒤에라도 숨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오기가 들었다. 용기 내 입을 열었다.
“과로로 문제 생기면 안 되잖아요.”
“응. 그치. 조심할게.”
강예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한테 걸어오고 끌어안았다. 얇은 면 너머로 단단한 복근이랑 부드러운 가슴이 느껴졌다. 강예린이 오른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온유야. 성연이랑 잘 지내주는 것도.”
“친구니까요...”
“응.”
강예린이 나를 놓아줬다. 그리고는 난 쉴 만큼 쉬었으니까 직원들 좀 도우러 갈게, 다음에 보자 온유야, 라는 말을 남기고는 푸드트럭 쪽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네, 라고 답하고 멀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시선이 저절로 강예린의 실룩이는 엉덩이로 갔다. 아무리 봐도 태가 남달랐다. 억지로 눈을 돌려 탁자를 보고 오른손을 뻗어 콜라를 잡아 한 모금 마셨다.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하반신에서 변화를 일으킨 것을 억눌렀다. 친구 엄마한테 성욕을 느낀다니. 자괴감이 들었다. 물론 강예린이 여러모로 매력적인 것은 맞았다. 강성연의 어머니인 것치고는 나이가 젊고, 운동으로 몸을 관리해서 몸매가 예쁜 것도 있고, 냉미녀인 듯하면서도 모성애가 담긴 따스한 미소도 지을 줄 알고,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가지는 자신감이나 안정감까지 가지고 있었으니까. 웬만한 남자는 강예린에게 반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미안...”
강성연이 사과했다. 고개 저었다. 괜찮다는 의사를 표시하기보다 방금 상황에서 빠져나올 필요가 있어서였다.
“괜찮아.”
“아냐... 우리 엄마 좀 부담스럽지...?”
“부담은 아니고, 약간 당황했다 정도?”
“그게 부담되는 거잖아...”
“그건 아냐. 막상 받으니까 감사하고 그래.”
“뭐?”
“푸드트럭 얘기한 거야.”
“아, 하고 넘어가 주기에는 존나 이상한 거 같은데?”
“그냥 넘어가 주라.”
“뭐 미친놈아. 우리 엄마 가지고 이상한 드립친 건데. 진짜 뒤지고 싶냐?”
강성연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치가 떨린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싶었다.
“미안해.”
“씨발...”
“진짜 미안해. 순간 생각 없이 선 넘었다. 이제 안 할게.”
오른손을 들어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약속.”
강성연이 말없이 내 눈을 응시하다가 새끼손가락을 마주 내밀어 고리를 걸었다.
“존나 생각도 하지 마라...”
“알았어.”
강성연이 손을 내렸다.
“복사는 안 해?”
“복사 안 하면 하게?”
“그건 아니지.”
“그럼 됐어.”
강성연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누구 찾아?”
“아니, 네 여동생이랑 두 명 안 오나 해서.”
“어머님도 갔는데 오지 않을까.”
“아 씨, 지금 오면 안 되는데...”
목소리가 꽤 초조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왜?”
“아, 일단 있어 봐.”
“응.”
강성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걸어갔다. 쭉 보는데 아무래도 방향이 푸드트럭으로 가는 것 같았다. 뭘 하려고 하는 걸까. 궁금한데 올 때까지 지켜보는 건 왠지 실례일 거 같아서 그냥 고개를 숙이고 폰을 봤다. 메시지함을 열고 수아한테 문자 보냈다.
[지금 뭐 해?]
숫자가 금방 사라지고 말줄임표가 떴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아직 오빠 친구 어머님이랑 있어?]
[아니. 정리 돕는다고 가셨어]
[인사는 했어야 됐는데]
[괜찮을 거야]
[그럼 나 지금 언니들 데리고 오빠 있는 데 갈까?]
[아냐. 이제 쉬는 시간도 거의 다 끝나갈 건데 거기 있어. 이따 갈게]
[알겠어 빨리 와]
[응]
홈 버튼을 눌렀다. 강성연이 왜 수아랑 정 씨 자매가 안 오기를 바란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할 만큼은 한 거겠지.
“폰 그만 보고 일어나 봐.”
강성연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왼손에는 접이식 과도, 오른손에는 사과 한 알을 들고 있는 강성연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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