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3화 〉 푸드트럭 (3)
* * *
“너 왜 자기변호는 안 했어. 입 다물고 있으니까 진짜 대역죄인인 줄 알았잖아.”
강성연이 말했다.
“잘못했던 게 맞으니까.”
“그래도 좀 놀리지는 말라고 항의하듯이 말할 수는 있잖아.”
“그냥 아직도 많이 미안해서...”
강성연이 으음, 하고 소리 냈다.
“그래.”
강성연이 스테이크를 입에 넣었다. 뭔가 더 말하기 싫다는 분위기가 풍겨왔다.
순간 갑자기 조용해져서 괜히 뻘쭘했다. 정시은이 침묵에 별로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근데 지금 보니까 언니랑 오빠 사이 떨어진 거 되게 눈에 띄네요.”
“아까보다는 좀 가까워졌잖아.”
내가 답했다.
“네. 근데 묘하게 멀어요. 약간 붙어 있어서 그런가 아예 떨어진 것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거 같아요.”
“으응.”
“많이 신경 쓰여요 언니?”
수아가 물었다.
“아니? 그냥 순간 눈에 들어와서 말한 거야.”
강성연이 안절부절못한 채 자기보다 어린 시은이랑 수아를 급히 번갈아 보다가 엉덩이를 들어 내 옆으로 좀 더 붙었다.
“나 자리 옮겼어...”
“아, 안 그러셔도 되는데.”
정시은이 두 손을 올리고 무안한 듯 웃었다. 강성연이 마주 웃음 지었다.
“아냐, 나도 좀 신경 쓰고 있었던 거라.”
“아아... 네. 다행이네요.”
강성연이 작게 웃었다. 옆에서 보는데 퍽 씁쓸해 보였다. 다행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였기에 이럴까. 그냥 자기가 강성연한테 눈치를 줘서 억지로 옮기게 한 게 아니라 위안이 된다는 의미로 말한 거 같은데.
“근데 거리 좀 두고 있는 게 심적으로 더 편하지 않아...?”
강성연이 물었다.
“왜?”
“아니 뭐, 붙어 앉음 불편할 수도 있지 않나...? 나만 그런 생각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근데 개인적으로는 친구 사이에 그러면 살짝 서운해질 수도 있을 거 같아. 막말로 내 옆에 앉기가 창피한 건가? 그런 생각 들고 할 수 있으니까.”
“오빠 창피해할 사람 세상에 한 명도 없어요.”
정시은이 말했다. 너무 훅 들어와서 쑥스럽기까지 했다. 머쓱하게 웃었다.
“고마워.”
“아니 진짜로요. 근데 오빠는 남사친 여사친 있을 수 있다고 봐요?”
“갑자기 남사친 여사친 논쟁을 꺼낸다고?”
“그냥 궁금해서요.”
“음, 근데 남사친 여사친이 정확히 무슨 의미야?”
“그냥 정말 이성적인 관심이 하나도 없는 정말 순수한 친구 사이.”
“어, 가능하지 않나?”
“없죠!”
정시은이 갑작스레 크게 소리 냈다. 묵묵히 경청하면서 밥을 먹던 정서아가 순간 몸을 움찔하면서 획 고개 돌려 정시은을 바라봤다. 정시은이 아차 싶은 표정을 짓고 왼손으로 정서아의 오른팔을 쓸었다.
“놀랐지 언니, 미안.”
“응... 괜찮아.”
“근데 너무 단호하게 없다고 말하는 거 아냐?”
“아니, 들어봐요. 아까 했던 자리 얘기를 예로 들면, 상대가 자리를 떨어져서 앉고, 그거를 내가 서운해한다고 해요. 만약에 정말 상대가 의식해서 거리를 두는 건 남녀관계로 보이기 싫어서 그러는 거니까 이성으로서 의식을 하고 있는 거죠, 나한테는 마음이 없어도 상대한테는 마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끼고 본능적인 차원에서 미리 차단을 한다거나 해서. 그리고 만약 상대가 딱히 의식해서 그런 게 아니라도, 내가 그거에 기분 상해하면 그건 이미 상대를 이성적인 관계로 나아갈 수도 있는 존재로 봐서 서운해하는 거잖아요.”
“이성에 관심이 조금 심한 수준으로 치우친 사람 시각이지 않아?”
“아녜요. 무의식적인 영역에서 그러는 게 더 크니까 여미새 남미새랑 무관해요. 그니까, 이렇게 정의할게요. 친구 사이면 아무렇지도 않을 일에 나도 모르게 미묘한 감정이 발하면 그건 친구 사이가 아니에요.”
“어어...”
“설득당했죠.”
“응. 근데 만약에 내가 느끼는 게 사랑이 아니고, 이성적으로 의식해서 내가 창피한가 같은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 사이인데 이러면 안 되지, 같은 느낌으로 서운해하는 거면? 그럼 별로 크게 감정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
“상대가 이성으로도 안 보이는 거죠?”
“기본적으로 그런 거지?”
“근데 그게 일단 이론적으로는 안 되잖아요. 상대가 다른 성을 가지고 있는 게 의식이 될 수밖에 없는데.”
“그래도 나는 그렇다고 하면.”
“근데 또 상대는 오빠를 이성으로 의식하면 그건 또 쌍방으로 같은 관계를 형성한다고 할 수 없잖아요.”
“상대도 완전히 아무런 이성적 호감을 안 느낀다고 하면?”
“너무 말도 안 되는데요.”
“왜?”
“제 지론 상 일단 둘이 서로 이성으로서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하거든요. 근데도 일단 그렇다고 인정하고 들어가면, 그때는 뭐 가능은 하겠죠. 그래도 한순간이라도 이성으로서 인식하게 되면 깨지는 거고요.”
“너 되게 강경하다.”
“전 제 생각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정시은이 당당히 말했다. 표정이 꽤 뿌듯해 보였다. 자기 의견을 펼쳐서 후련한 모양이었다. 뭐랄까, 남 눈치를 조금 더 안 보고 귀여움이 약간 더 많아진 정이슬 같았다.
“그럼 넌 남사친 아예 없어?”
“어... 그건 아니에요.”
묘한 말이었다. 그런데 느낌은 알 것 같았다.
“이성끼리 관계적으로는 친구가 될 수 있는데, 의식적인 영역에서까지 순수한 친구 사이일 수는 없다는 거지?”
“네. 그거예요. 오빠 천재예요?”
“아니 네가 이미 다 말해준 거잖아.”
“그래도 딱 정리하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네가 머릿속에서 잘 정리되게 말한 거지. 나 별로 안 똑똑해.”
“그냥 고맙다고 하고 끝내 오빠.”
수아가 말했다.
“알겠어. 고마워 시은아.”
정시은이 헤헤 웃고 강성연을 바라봤다.
“성연 언니는 여사친 남사친 가능하다고 봐요?”
“어? 응...”
“왜요?”
“음...”
강성연이 생각에 잠긴 듯 잠시 있다가 입을 열었다.
“상대방을 성적으로 의식하고 야릇한 감정을 가진다는 게 친구를 가르는 기준점이라고 한다면, 동성끼리도 온전히 순수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세상에는 동성에게 흥미를 느끼는 게 당연한 사람도 존재하고, 모든 사람한테는 동성애적 기질이 일정 부분 있다는 얘기도 있는데, 동성끼리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당연하다면 이성끼리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지.”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쪽으로는 생각을 못 해봤어요.”
“보통 여기까지 생각하기는 힘들지. 이것도 파다 보면 심리학이랑 철학적으로 빠져서... 프로이트에서 시작해서 주디스 버틀러도 나오고.”
“어, 저 궁금한데 얘기해주면 안 돼요?”
강성연이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잘은 몰라. 그냥 그런 인물들이 있고 어떤 주장을 했는가 정도만 들어본 거지... 그래도 일단 말해보면. 프로이트는 성 발달 단계 중에 고착이 이뤄져서 이성애로 나아가지 못하고 동성애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고 그랬어. 주디스 버틀러는 동성애에 대한 금기가 이성애적 기질을 창조한다고 했고... 그러니까, 무언가를 부정하는 건 그것의 존재를 전제함으로써 가능한 거라는 거지. ... 이해 안 되지.”
시은이 표정이 아리송해 보였다. 내가 대신 그렇다고 답해야 할 듯했다. 입을 열었다.
“어려운데 무슨 말인지는 대충 감 오는 거 같아.”
“다행이네... 나도 내가 뭔 말하는지 갈피 안 잡혀서 되게 불안해했는데.”
“잘 설명했어. 걱정 안 해도 돼.”
“응.”
“근데 어떻게 알았어 그런 건? 어렵잖아.”
“그냥 궁금해서 찾아서 읽고 한 거지. 머리에 남은 건 별로 없어. 이상하게 다 배배 꼬아서 말해 가지고.”
“으응...”
강성연이 목이 마른 지 빨대를 입에 물고 콜라를 마셨다.
프로이트는 익숙해도 주디스 버틀러는 이름을 들어본 적도 적은 학자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 읽을 만한 텍스트는 못 될 터였다. 아니 어쩌면 성연이는 지금보다도 어릴 때 읽었는지도 몰랐다. 올해 들어서야 자신의 동성애적 기질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면 그럴 확률이 높았다.
가뜩이나 예민해지고 혼란스러울 시기에 강성연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고 어떤 마음으로 있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현학적인 텍스트들 속에서 얼마나 헤맸을까.
가끔 지나치게 감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싶던 강성연이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성연이가 왜 이럴까를 여태껏 별로 이해하려 시도하지도 않았던 것 같았다. 그저 강성연이 헬리콥터맘이었던 강예린의 기대감에 짓눌려 신경질적이고 성미가 급한 사람이 되었겠다며 제멋대로 판단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그보다 깊었다. 아버지의 부재라는 결핍 속에서도 버젓이 자라나 어머니의 막대한 기대감에 부응하려 노력하고, 동성애자인 자기 존재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을 거듭하며 살아오고 있었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니 지금껏 작다고만 느껴온 강성연이 큰 존재로 보였다.
지수에게 고백했을 때 강성연은 전송 버튼 앞에서 얼마나 큰 두려움을 이겨내야 했을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에 내몰려서 떠밀리듯 한 감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고백하는 데 필요한 용기가 줄어드는 건 아닐 거였다.
고백 카톡을 보고 나서 강성연을 비웃었던 내가 한심했다. 성연이를 감히 낮잡아 봐온 과거를 수정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이미 흐른 시간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저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