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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423화 (422/438)

〈 423화 〉 작은 어른

* * *

김세은이 왼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켰다가 바로 껐다. 안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 김세은이 폰을 주머니에 넣고 나를 끌어안으면서 품에 파고들었다.

“나 이제 가야 될 거 같아...”

“으응...”

오른손으로 김세은의 등을 쓸었다. 이번에 김세은을 보내면 언제 다시 보게 되는 걸까. 아직 서로 껴안고 있는데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김세은이 고개를 들고 내 오른볼에 왼손을 얹었다. 김세은이 내 입술에 입 맞췄다. 나도 김세은의 입술에 짧게 키스했다. 김세은이 눈웃음 짓고 내 눈을 보다가 왼손으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일으켰다. 뒤에서 안고 싶었다. 그런데 그러면 가지 못하게 붙잡는 게 될 것 같았다. 그냥 세은이가 일어설 때 조용히 따라 일어났다. 세은이가 뒤돌아 나를 바라보고 꼬옥 안겨 왔다. 마주 안았다. 김세은이 내 목에 얼굴을 대고 있다가 내 오른 볼에 뽀뽀하고 나를 놓았다. 김세은의 왼볼에 입술을 맞추고 나도 놓아줬다. 김세은이 가만히 내 얼굴을 들여다봤다.

“왜?”

“그냥. 엄청 뽀뽀해 가지구 자국 안 남았나 해서.”

“없어?”

“음, 물티슈로 문지르기는 해야 될 거 같아.”

“어, 알겠어.”

방 안을 슥 둘러봤다. 물티슈를 찾아 한 장 뽑았다. 김세은이 오른손으로 낚아채듯 가져가서 왼손을 내 어깨에 얹은 채 물티슈를 내 볼에 살살 문질렀다.

“된 거 같아?”

“응. 나는 얼굴에 뭐 없어?”

“음, 그냥 예쁜데?”

김세은이 살폿 웃었다.

“장난 치지 말구.”

“진짜 예뻐.”

“아니, 얼굴에 뭐 안 묻었냐구.”

“딱히 보이지는 않아.”

“근데 일단 닦아는 줘.”

“응.”

물티슈를 한 장 뽑고 왼손으로 목을 부드럽게 감싸 잡은 다음 물티슈를 김세은의 얼굴에 문질렀다. 김세은이 눈웃음 지은 채 나를 올려봤다. 입술이 닿았던 곳을 다 닦고 물티슈를 뗐다. 김세은이 바로 나한테 안겨들었다. 마주 안았다.

“또 뽀뽀하면 안 되지 않아?”

“입술에다가만 하자.”

“응.”

김세은의 입술에 입 맞췄다. 김세은이 빙긋 웃고 내 입술에 뽀뽀하고는 팔을 풀었다. 김세은을 놓아줬다. 김세은이 양손으로 내 볼을 잡았다.

“나 이제 갈게.”

“응... 밖에 바래다줄게.”

“여기 있어야 하지 않아?”

“밤이잖아.”

김세은이 히 웃었다.

“알겠어. 같이 나가자.”

“응. 택시 타고 가는 거야?”

“응.”

김세은이 내 입술에 또 뽀뽀했다.

“사랑해.”

“사랑해 세은아.”

“응... 이제 나가자.”

“응.”

김세은이 돌아서서 문 앞으로 갔다. 내가 문을 열고 나갔다. 앉아있던 윤가영이랑 수아가 우리를 보고는 일어섰다. 김세은이 윤가영에게 고개 숙였다.

“죄송해요... 아까 인사도 안 드렸죠... 괜히 말도 길어져서...”

“괜찮아요. 온유랑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요.”

“네... 감사해요.”

윤가영이 눈웃음 지었다. 김세은이 팔을 벌려 윤가영을 안았다. 윤가영이 김세은을 안았다. 김세은이 윤가영을 놓아주고 수아를 봤다.

“온유 동생이지...?”

“이수아예요.”

“응...”

김세은이 이수아를 안았다. 수아가 가만히 안겼다. 김세은이 수아를 놓아주고 눈을 바라봤다.

“담에 기회되면 같이 얘기하자.”

“네.”

“응...”

김세은이 윤가영을 봤다.

“저 이만 가볼게요...”

“밥은 안 먹고 가요...?”

“네... 시간이 조금 그래서요...”

“알겠어요... 잘 가요.”

“네.”

김세은이 고개를 꾸벅이고 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다시 썼다. 김세은이 신발장 쪽으로 갔다. 나란히 걸다가 김세은의 신발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내 신발도 꺼내 신었다. 김세은이 무릎을 굽혀 신발을 하나씩 신었다.

“고마워.”

“응.”

같이 입구를 지났다. 별 말하지 않고 우리 둘 다 바로 계단으로 갔다. 조금이라도 같이 있고 싶었다. 근거는 없지만 김세은도 그런 마음일 것 같았다.

1층으로 가 자동문을 넘어 건물을 빠져나왔다. 밤공기가 선선했다. 어둠은 어딘가 포근하게 느껴졌다. 김세은이 가로등 아래에서 멈춰 서더니 하아, 하고 숨을 내뱉었다. 나도 멈췄다. 김세은이 나를 바라봤다. 눈빛이 깊었다. 김세은이 나를 꼭 안았다. 말없이 김세은을 마주 안았다.

“미안해...”

세은이는 미안해할 게 전혀 없는데. 왜 미안하다고 할까.

“같이 있어줘야 되는데...”

“괜찮아... 와준 것만으로 고마워...”

“응...”

김세은이 내 가슴팍에 이마를 댄 채 한숨을 폭 쉬고는 포옹을 풀었다. 김세은을 놓았다. 김세은이 오른손으로 내 왼팔을 쓸었다.

“갈게 온유야...”

“응... 잘 가.”

“응... 다음에 봐...”

“응...”

김세은이 돌아서서 맨 앞에 있는 택시의 뒷문을 열었다. 김세은이 좌석에 앉고는 나를 보고 오른손을 흔들어왔다. 마주 손을 흔들었다. 김세은이 잠시 나를 마주 보다가 문을 닫았다. 김세은이 차 안에서 폰을 켜 기사에게 보여줬다. 이제 가는 거였다. 뒷자리 창문이 열렸다. 김세은이 나를 올려보고 다시 손을 흔들었다. 살폿 웃었다.

“잘 가.”

“응...”

김세은이 손을 내렸다. 택시가 출발했다. 김세은이 줄곧 내게 시선을 보내왔다. 나도 김세은을 바라봤다. 택시가 멀어지는 모습을 마냥 보다가 뒤돌았다. 커다란 장례식장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어째선가 한숨이 나왔다. 눈물이 맺힐 것 같았다. 벤치에 앉아서 가만히 가로등을 봤다. 바닥을 향하는 가로등 빛이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순간 빛이 흐릿해졌다. 볼이 뜨거웠다. 뭔가 했는데 눈물이 타고 흐른 거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미안했다. 김세은한테 너무 많이 미안했다.

눈물이 그치고 주머니에서 물티슈를 꺼냈다. 김세은의 얼굴을 닦던 거였다. 왜인지 모르게 책임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책임지겠노라 무겁게 다짐했다. 경건한 마음으로 살짝 마른 물티슈를 눈가에 비비고 볼에도 문질렀다. 건물 안에 들어가 화장실에서 손을 박박 씻고 세면한 다음 장례식장으로 돌아갔다. 신발을 벗고 신발장에 넣은 다음 윤가영이랑 수아 사이로 가 앉았다. 수아가 나를 응시했다가 입을 열었다.

“오빠 졸려?”

“응? 아니. 왜?”

“얼굴 씻고 온 거 같아서. 졸려 가지고 그랬나 한 거야.”

“으응.”

“안 졸리면 왜 세면했어?”

“그냥 좀 지저분한 거 같아서.”

“실내에만 있었잖아.”

“그래도.”

“응.”

픽 웃었다. 수아가 모른 척햤다. 고개 돌려 윤가영을 봤다. 눈을 감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왼손으로 윤가영의 허벅지를 두 번 두드렸다. 윤가영이 눈을 뜨고는 상체를 꼿꼿이 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나를 쳐다봤다.

“일단 들어가서 자요.”

“아냐...”

“그냥 자 엄마. 새벽부터 힘들었잖아. 나랑 오빠랑 있을게.”

수아가 말했다. 윤가영이 입을 우물거렸다.

“알겠어...”

“빨리 들어가.”

“응... 너희도 졸리면 엄마 깨우고 자...”

“알아서 할게.”

“응...”

윤가영이 일어나서 가족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수아를 바라봤다.

“근데 좀 의외다.”

“뭐가.”

“난 네가 먼저 잘 줄 알았어.”

“커피 마셔서 그런가 봐.”

“으응.”

수아가 뒤통수를 벽에 대고 눈을 감았다. 윤가엉을 재우러 보내기는 했는데 본인도 졸리기는 매한가지인 모양이었다. 고개 돌려 식장을 훑어봤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그런 것 같았다. 좀만 있다가 슬슬 내일을 보낼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페트병을 가져오고 도로 앉아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수아를 봤다. 수아의 머리가 서서히 떨궈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수아가 화들짝 고개를 들더니 머리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아까 윤가영이 했던 거랑 아주 똑같았다. 괜히 귀엽게 느껴졌다. 수아가 양손으로 얼굴 감쌌다.

“오빠는 안 졸려?”

“조금 졸려.”

“응...”

수아가 두 발을 바닥에 대고 무릎을 모으고는 팔로 감쌌다. 수아의 눈이 자꾸만 느리게 깜빡였다.

“그냥 자러 가.”

“... 알겠어...”

“응.”

수아도 가족실로 들어갔다. 혼자 앉아서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다가 괜히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기도 했다. 적당히 조용해서인가 잠이 찾아왔다. 눈이 감기는 걸 막기 어려웠다. 장례지도사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온유 학생도 안에 들어가서 자요. 지금 올 사람도 없는 거 같으니까. 누구 오면 제가 노크해서 깨워드릴게요.”

장례지도사가 말했다.

“한 명은 그래도 밖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네. 그래서 제가 있는 거예요. 들어가서 잠깐이라도 자세요.”

“네... 감사합니다...”

일어나서 가족실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내가 세은이랑 누웠던 자리에 윤가영이랑 이수아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윤가영 옆에는 요가 하나 더 깔려서 베개도 하나 있었다. 내 자리를 마련해 놓은 거였다. 불을 끄고 걸어가 누웠다. 너무 편안했다.

몸이 움찔거렸다. 정신이 들었다. 순간 경련이 인 듯했다. 학교에서 자다 일어난 것 같았다. 폰을 켜 시간을 봤다. 이십 분 정도 잔 듯했다. 그런데 꽤 오래 자기라도 한 것처럼 피로가 꽤 풀린 느낌이었다. 그래도 일단 다시 누우면 눕는 대로 더 자게 될 거였다.

그냥 더 잘까. 그래도 한 명은 밖에 있어야 되겠지. 조용히 일어나서 문을 열고 나갔다. 벽에 등을 기대고앉아있던 장례지도사가 나를 쳐다봤다.

“더 자요, 학생.”

“누구 안 왔어요...?”

“네. 편히 쉬어요. 괜찮으니까.”

“네... 물만 좀 마실게요.”

“그래요.”

페트병을 두 개 챙기고 방에 도로 들어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누웠다. 생각 외로 잠이 잘 오지를 안았다.

왼쪽에서 뭔가 움직였다. 수아가 일어난 거였다. 수아가 문 쪽으로 걸어가더니 소리가 안 나게 문을 잠그고는 돌아와서 자기 베개를 가지고 내 오른편에 눕고 눈을 감았다. 자리가 좁아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 안아줘...”

“응...”

옆으로 누워 왼팔로 수아를 안았다. 수아가 나를 마주 안았다. 숨 쉬는 소리가 귀여웠다. 등을 토닥이다가 나도 눈을 감고 꼭 껴안기만 했다. 수아의 호흡이 금방 안정되었다. 바로 잠든 듯했다. 잠깐 그대로 있다가 수아의 팔을 걷어내고 정면으로 누웠다. 옆으로 누우면 팔이 좀 아팠다.

왼편에 꿈틀거림이 포착됐다. 고개를 돌려 봤다. 옆으로 누운 윤가영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안아주라...”

언제 일어나 있던 거지. 웃음이 나왔다. 오른팔로 윤가영을 안았다. 윤가영이 내 품에 파고들면서 나를 마주 안았다.

“잠은 잤어요?”

“응...”

윤가영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잠깐만요. 물 갖다 줄게요.”

“응...”

윤가영이 나를 놓아줬다. 일어나서 새 페트병을 가져와 앉아 뚜껑을 열고 건넸다. 상체를 세운 윤가영이 양손으로 받았다.

“고마워..,”

윤가영이 꼴깍꼴깍 물을 마시고 나한테 병을 건넸다. 뚜껑을 닫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시 누워서 윤가영을 안았다. 윤가영이 내 가슴에 이마를 댔다.

“잘 못 잔 거 같은데요?”

“사실 잘 못 잤어... 눈만 감고... 전구 깜빡이는 거처럼 잠깐 의식 끊겼다 돌아오고 그래서...”

“으응...”

오른손으로 윤가영의 등을 쓸었다. 윤가영이 왼손을 내 등에 댔다. 윤가영의 손이 조금 작게 느껴졌다.

오른손을 내려 윤가영의 옆구리를 쓸었다. 윤가영이 왼손을 내 오른손등에 올렸다. 손을 뒤집어 윤가영의 왼손을 쥐고 더듬거렸다.

어둠 속에 잡힌 윤가영의 손은 손바닥도 손가락도 자그마했다. 윤가영의 손이 많이 작은 것인지 내 손이 훌쩍 커버린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 둘 모두가 이유일지도 몰랐다.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언제 봐도 애처로운 눈이었다.

“불안해하지 마요.”

윤가영이 희미하게 웃었다.

“응... 고마워...”

마주 미소 지었다. 윤가영을 꼬옥 안았다. 윤가영의 몸은 윤가영의 손만큼이나 작았다. 이것도 어쩌면 윤가영이 작은 것이 아니라 내 품이 너른 것일지도 몰랐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윤가영을 안고도 남을 정도는 되는 사람이란 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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