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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422화 (421/438)

〈 422화 〉 조금만 천천히

* * *

김세은이 내 오른볼을 쓰다듬다가 조금 밑으로 내려가 내 가슴팍에 이마를 댔다. 오른팔로 김세은을 끌어안은 채 김세은의 머리칼을 쓸었다. 결이 부드러웠다. 염색을 안 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감촉이었다.

“머릿결 진짜 좋다.”

“그치...”

“응. 맨날 만지고 싶어.”

히 웃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매일 만지면 되잖아...”

“그러려면 나 숙소로 침투해야 되는 거 아냐?”

“그래 줄 거야?”

살폿 웃었다.

“그러면 한 번은 봐도 그 뒤로는 못 보게 될 거 같은데.”

“그럼 안 되지...”

“그니까.”

두어 번 더 김세은의 머리카락을 쓸다가 김세은의 등에 손을 대고 눈을 감았다. 김세은의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이대로 오랫동안 있고 싶었다. 가혹하리만치 짧게 주어진 시간을 잘라 길게 늘어뜨리고 싶었다. 한숨이 나왔다.

“왜 한숨 쉬어...?”

“이따 너 가야 하니까.”

“으응...”

김세은이 왼손으로 내 등을 쓸었다.

“금방 다시 볼 수 있을 거야...”

“응...”

“잘 참을 수 있지?”

“참을게...”

김세은이 살폿 웃고 내 등을 토닥였다. 무거운 죄악감이 들었다. 세은이한테 내가 다른 여자친구를 더 사귀었다고 말을 꺼내야 할 텐데. 나중이 되어도 말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말을 아예 안 할 수도 없었다. 상대를 기만하면서 사랑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근데 나 생각해보니까 새어머니랑 여동생한테 인사도 안 했다...?”

“이해할 거야.”

“응...? 조금 이상하지 않아...? 얼굴 보자마자 우는 거 바로 옆에서 보구, 또 너랑 나 같이 안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안 나오니까... 나였으면 바로 막 둘이 무슨 사이지...? 그런 생각했을 거 같은데...”

“그치.”

“응...? 무슨 의미야...? 설마 알아...?”

“응...”

김세은이 고개 들어 눈을 마주쳐왔다.

“진짜?”

“진짜 알아...”

“언제 말했는데...?”

“얼마 안 됐어...”

“으응... 우리 뭐 하는지 궁금할 텐데 왜 안 들어오시지...? 이런 생각했는데... 그럼 지금 우리 둘만 있는 거 이해해주시겠네?”

“응.”

“으응... 다행이다 진짜...”

“응...”

세은이가 다시 고개를 숙여 내 가슴팍에 이마를 댔다.

“얼굴 보여줘.”

세은이가 으으응, 하고 콧소리 냈다. 웃음이 나왔다.

“왜.”

“화장 다 지우고 급하게 와서 별로 안 예쁘단 말야...”

“예뻐, 화장 안 해도.”

“그래두... 최고로는 안 예쁘잖아...”

“어떻게 해도 예뻐. 화장하면 화장한 대로 예쁘고,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예뻐.”

“응...”

“얼굴 보고 싶어.”

“알겠어...”

세은이가 고개를 들었다. 눈웃음 짓고 짧게 입술을 맞췄다. 김세은이 빙긋 웃었다. 다시 입술을 맞췄다.

“히힣...”

김세은이 상체를 들어 내 몸 위로 올라오면서 내 오른볼에 뽀뽀를 퍼부었다. 양팔로 김세은을 품에 안았다. 김세은이 내 왼볼이랑 오른볼에 번갈아 입술을 맞췄다. 절로 미소 지어졌다.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행복했다. 김세은이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나를 내려봤다. 세은이가 잠깐 입술을 맞댔다가 다시 나를 내려봤다.

“사랑해 온유야...”

“나도 사랑해 세은아...”

“응...”

김세은이 내 오른 볼에 입술을 맞췄다. 갑자기 김세은의 얼굴이 급격히 달아올랐다. 오른손을 들어 김세은의 왼볼을 쓰다듬었다.

“너 얼굴 되게 붉어졌어.”

“나 지금 좀 부적절하지 않나 싶어서...”

빙긋 웃었다.

“괜찮아. 나 위로해주려고 한 거잖아.”

“으응...”

김세은이 옆으로 다시 내려갔다. 옆으로 누워 오른팔로 김세은을 안았다. 김세은이 내 가슴팍에 머리를 박으면서 나를 꼭 껴안아왔다.

“미안...”

“아냐. 미안해하지 마.”

“알겠어... 근데 진짜 미안해...”

“괜찮아.”

“응...”

오른손으로 김세은의 등을 쓸었다. 손끝에 머리카락이 스쳐서 기분이 좋았다. 해변에 가서 고운 모래를 손으로 훑는 것만 같았다.

“나 되게 철없어 보이지 않았어...?”

“하나도 안 그랬어. 엄청 사랑스러웠어.”

“정말...?”

“응. 뭘 해도 사랑스러울 거야.”

“으응...”

김세은이 나를 꼭 안았다.

“다행이다...”

살폿 웃었다. 너무 귀여웠다.

“이대로 껴안고 자고 싶어...”

김세은이 말했다. 오른손으로 세은이의 등을 토닥였다.

“나 진짜 자라구...?”

“자.”

“안 되는데...”

“잠들면 한 삼 분 정도 있다가 깨워줄게.”

“그래두... 그만큼 정신 깬 상태로 같이 있는 시간 줄어드는 거잖아...”

“으응...”

“되게 설득력 있었지...”

“응. 순간 감동했어, 속으로.”

“히힣...”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 너 웃는 거 너무 좋아.”

“그래?”

“응. 들을 때마다 귀여워.”

“뽀뽀해주고 싶을 만큼?”

“응.”

“그럼 해줘.”

김세은의 왼볼에 입술을 쪽 맞췄다.

“히힣...”

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들도 그 얘기하지 않아?”

“하지...?”

“어떻게 말하는데?”

“그냥 되게 예쁘게 웃는데... 듣는 자기가 기분 좋아지는 웃음이라구... 진짜 그래?”

“응. 너 웃기만 해도 덕후몰이될걸?”

“으응...”

“진짜 짤 모이면 그거 모음집 영상 유튜브에 뜰 거야.”

김세은이 피식 웃었다.

“네가 올릴 거야?”

“그럴 수도 있지.”

김세은이 살폿 웃었다.

“너무 티 내면 안 될 건데...”

“나인 거만 안 드러내면 되겠지.”

“그래두 나중에 들키면 무슨 사이냐구 막 유추할 수도 있잖아...”

“그때는 내가 악질팬이었다고 해야지.”

김세은이 픽 웃었다.

“악질팬이 뭐야...”

“악질이지. 막 너 덮치잖아.”

“그건 그렇네...”

살폿 웃었다. 김세은도 입꼬리를 올렸다.

“팬분들은 내가 이러는지는 상상도 못 하겠지...?”

“그렇겠지. 보통 남들 연애도 잘 상상 안 하는데 아이돌들 연애는 더 안 떠올리겠지. 애초에 연애할 거라는 생각도 안 할 거고.”

“으응...”

김세은이 내 품에 더 파고들면서 왼팔을 조여왔다. 껴안아지면서 느껴지는 사소한 압박감이 기분 좋았다. 김세은이 하아, 하고 입으로 숨을 내뱉었다.

“안고 있으니까 너무 좋다...”

김세은이 말했다. 김세은이 내 가슴에 이마를 비볐다. 살폿 웃고 김세은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온유야.”

“응?”

“내가 되게 예쁜 인형 옷 구해줄 테니까, 그거 입고 우리 숙소로 들어올래?”

웃었다. 김세은의 머리카락을 쓸면서 입을 열었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껴안고 자고 싶은 거야?”

“응. 내가 음식도 다 조달해줄게.”

“나 엄청 먹는데.”

“괜찮아. 얼마나 먹든지 다 지불할 수 있어.”

“근데 방에 자꾸 음식 들고 가면 의심할 거 아냐.”

“혼자 먹는 게 좋다고 하는 거지.”

“그래도. 몸매 유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을 건데.”

“그건 타고났다고 해야지.”

“음... 미움 받겠다.”

김세은이 픽 웃었다.

“아냐. 다 나 좋아해.”

“싫어하기가 어려우니까.”

“히...”

김세은이 고개를 들어 기습적으로 내 입술에 뽀뽀해왔다. 짧은 입맞춤을 마치고 김세은이 내 베개에 머리를 같이 올려 얼굴을 마주봐왔다. 김세은이 왼손을 내 오른볼에 댔다.

“나 진짜 너 숙소에 데려오고 싶어.”

“근데 그럼 범죄 아냐?”

“인형옷 입음 다 귀여워할걸.”

“아무리 귀여워도 집 앞까지 오면 무섭지 않을까.”

“으응, 그건 그렇네...”

“그치.”

“흐응... 진짜 어떡해? 너랑 있고 싶은데.”

“기다려야지... 시간 날 때까지.”

“응...”

김세은이 입술을 삐죽였다. 눈웃음 지었다. 김세은의 입술에 입을 댔다. 김세은이 눈웃음 짓고는 눈을 감았다. 입을 움직여 짧게 애무하다가 입술을 뗐다. 김세은을 품에 끌어안았다. 김세은이 바로 안겨들어왔다. 안고 있는 감각이 익숙했다. 이 자세가 디폴트인 것만 같았다. 몸에 습관이 스며들 만큼이나 오랫동안 서로를 끌어안아 왔구나 싶었다.

김세은의 숨소리를 들었다. 밖에서 나오는 대화 소리가 미세하게 섞여들었다. 아직도 조금은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윤가영이나 수아랑 얘기를 나누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나갈 타이밍을 언제 잡아야 하는 거지. 살짝 난감했다.

“근데 엄청 밤인데 문상객분들 되게 많이 계신 거 같아...”

“일 마치고 오신 분들도 있으시니까.”

“야근하셨나...?”

“그런 분도 있을 거고, 좀 오래 남아주시는 것도 있는 거 같아.”

“으응... 좋은 분들이네...”

“응...”

김세은이 말없이 내 등을 쓸었다.

“근데 새어머니랑 새여동생 있잖아...”

“응.”

“우리가 이부자리 깔아놓은 거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앉는데 바닥이 딱딱해서 깔았다고 할게.”

김세은이 살폿 웃었다.

“그럼 베개는?”

“앉아 있을 때 다리 위에 올리고 껴안을 만한 게 필요했다고 해야지.”

“그건 그냥 눕는 데 썼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수상하지 않아...?”

“그럼 앉아있다가 누웠다고 하지 뭐.”

김세은이 피식 웃었다. 마주 웃었다.

“별 소리 안 냈잖아 우리. 밖에 안 들리게 되게 소근소근 얘기하고.”

“응...”

“게다가 이부자리도 안 구겨졌잖아.”

“짐승.”

“짐승. 찌찌뽕.”

동시에 말했다. 김세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보통 변태라고 하잖아.”

“그치.”

“그니까. 짐승이라고 할 거 어떻게 알았어?”

“뭔가 네가 선호하는 단어 같아서. 변태라고 하는 것보다.”

“으응.”

“근데 너 얼마나 맞아야 되지?”

김세은이 픽 웃고 내 가슴팍을 찰싹 쳤다.

“아. 왜 때려. 내가 때려야 되는데.”

“얄미워서.”

“왜.”

“그냥.”

눈웃음 지었다. 김세은이 마주 웃었다.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추고 양쪽 볼에 한 번씩 뽀뽀했다.

“앞으로 많이 남았어.”

“뭐가?”

“입술로 두드려주는 거.”

김세은이 살폿 웃고 눈을 감았다.

“지금 다 때려.”

“응.”

김세은의 볼이랑 입술에 여러 번 입을 맞추다가 다시 베개에 머리를 대고 김세은을 끌어안았다. 김세은이 미소 지은 채 내 가슴팍에 이마를 댔다. 눈을 감았다. 고요함 사이로 시계 초침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이 끔찍이 안타까웠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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