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7화 〉 이준권 장례식 (5)
* * *
입구로 정 씨 세 자매가 들어왔다. 다 흰 교복 와이셔츠에 검은 교복 치마를 입고 있었다. 각자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가지런히 넣었다. 정이슬이 앞장 서서 이름을 적고 분향했다. 세 명이 다 같이 영정에 절한 뒤 우리랑 맞절까지 했다. 정시은이 성큼성큼 다가와 수아를 와락 안았다. 수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정시은을 마주 안았다. 정시은이 곧 수아를 놓아주고 나를 꼬옥 껴안았다. 살짝 당황스러웠다. 정시은 뒤에 선 정이슬이 검지로 정시은의 목덜미를 톡톡 건드렸다.
“말도 없이 다짜고짜 허그하는 거는 조금...”
정시은이 나한테서 떨어지고 뒤돌아 정이슬을 바라봤다.
“인터넷에서 말 안 하는 게 제일 좋은 문상 인사말이래서 그랬어.”
목소리는 작았는데 항의하는 듯한 뉘앙스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배우라서 그런 건가.
“아니, 그래도 허그는 좀...”
“괜찮아요 누나.”
정시은이 정이슬 바라봤다. 정이슬이 입을 꾹 다물었다. 정시은이 윤가영까지 품에 안았다. 정이슬이 수아한테 가 짧게 등을 다독이고 나를 안아왔다. 수아랑 정서아가 나를 바라봤다. 느낌이 미묘했다. 정서아가 나를 안은 팔을 풀었다.
“와줘서 고마워요.”
“아냐... 요새 연락 뜸하게 해서 미안해.”
“그건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요. 왜. 오히려 괜찮았어요.”
“으응...”
정이슬이 입술을 삐죽였다.
“저도 연락 안 했으니까 그게 공평하기도 하고요.”
“응...”
정이슬이 윤가영까지 안았다. 정서아가 마지막으로 수아랑 나, 그리고 윤가영을 안았다.
“밥 먹고 가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귀여웠다. 분위기가 묘하게 다른 세 자매가 나란히 서서 같은 반응을 보여서 그런 듯했다.
정이슬이 정서아랑 정시은의 손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가자, 라고 했다. 두 동생이 장녀의 손에 이끌려 마냥 따라갔다. 정이슬이 우리 쪽을 보고 짧게 목례했다. 정서아랑 정시은이 따라했다.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정이슬이 둘을 데리고 가는 뒷모습을 봤다. 뭔가 신기했다. 정이슬은 항상 장난기 넘쳤던 거 같은데. 조금 진중해진 느낌이었다. 여동생 둘이 다 같이 있어서 그런가. 생각해보니까 셋이 모인 건 처음 보는구나.
“또 갈 거지.”
수아 목소리였다. 고개 돌려 얼굴을 봤다. 나를 올려보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다. 수아가 콧숨을 내쉬었다. 왠지 탐탁지 않아 보였다.
“나도 가.”
“그래.”
윤가영을 바라봤다.
“갈게요.”
“응...”
수아를 바라봤다. 수아가 내 오른손을 잡았다. 정전기는 아닌데 손에서 전류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수아가 먼저 발을 뻗었다. 걸음을 나란히 했다. 구석 자리에 셋이 있었다. 정시은이 가장 벽 쪽에 있고 그 옆으로 정서아랑 정이슬이 앉아있었다. 수아가 정시은을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앉기 전에 입을 열었다.
“음료수 뭐 마시고 싶은 거 있어?”
정 씨 자매가 다 나를 올려봤다. 왠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정이슬이 먼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는 콜라...”
“나도.”
정서아가 이어 말했다.
“저도요.”
정시은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수아를 바라봤다.
“너는?”
“난 사이다.”
“응.”
콜라 네 캔이랑 사이다 한 캔을 가지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정서아를 마주 보는 자리의 의자를 꺼내 앉았다. 달라고 한 대로 음료수를 분배했다. 다들 고맙다고 답해왔다. 수아가 내 콜라 캔을 주시했다.
“왜?”
수아가 나를 올려봤다.
“그냥.”
수아가 고개를 돌리고 사이다 캔을 땄다. 내가 마실 거로 콜라 가져온 거 때문인가. 이게 뭐 크게 신경 쓸 거로 보이지는 않는데. 콜라 캔을 따고 한 모금 마셨다. 정서아를 바라보고 입을 열었다.
“드라마 지연되게 해서 미안해.”
“괜찮아. 네 잘못도 아니잖아. 시간도 있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이슬이 나를 바라보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우리 오기 전에 누구누구 왔었어 온유야...?”
“밴드부원들 다 왔었어요. 김세은이랑 서유은 빼고요.”
“으응.”
정이슬이 고개를 주억였다.
“누나 근데 요즘 뭐 했어요?”
“나 그냥 공부 반 놓고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나가서 쇼했어.”
정시은이 정이슬을 바라봤다. 뭔가 내가 알던 정이슬이랑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니까, 어디로 튈지 가늠이 잘 안 되는 장난스러움이 엿보였다. 정시은이 입을 가렸다.
“언니 쇼 앞에 뭐 붙이고 싶었지.”
“뭐.”
“하고 싶은 말 검열한 거 다 티나.”
“... 더러운 말을 여기서 할 순 없잖아.”
똥꼬쇼라고 하고 싶었나.
“그건 그렇지...”
“그니까.”
“누나 탈락한 건 아니죠.”
“응... 아직 숨 붙어 있어.”
“촬영 계속 진행 중인 거예요?”
“응. 파이널까지는 가야지. 일단 나갔는데.”
고개를 끄덕였다.
“첫 방송은 언제 해요?”
“이번 달 중순에 한다고 알고 있어. 월요일 6시인가 그때.”
“네.”
“볼 거야?”
눈빛에서 기대감이 읽혔다. 귀여웠다.
“생각나면 볼 거예요.”
“그냥 본다고 해주지.”
“네. 볼게요.”
“약속.”
정이슬이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내밀어왔다. 손가락을 마주 걸었다. 정이슬이 손을 위아래로 두 번 흔들고는 손가락을 놓았다. 정이슬이 수아를 바라봤다.
“이수아 맞지? 이름.”
“네.”
“온유가 안 보면 티비 앞에 데려다 놓고 억지로 보게 해줘.”
“... 다 자기 맘대로 해서 못해요.”
“그래도 여동생 말은 들어주지 않아?”
“자기가 내키면 하는 거 같아요.”
“으응. 나쁜 남자네.”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남매인데 나쁜 남자라고 하면 어떡해요.”
“남매 사이인데 남자가 오빠면 나쁜 남자지 않아 보통?”
“사이 좋은 남매도 있잖아요.”
“그건 천연기념물이야. 살면서 한번 볼까 말까 할 수준으로 희귀한.”
“근데 저희 사이 그렇게 안 나빠요.”
“그래?”
“네.”
정이슬이 이수아를 바라봤다.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가끔 맘에 안 들 때 있긴 한데 그럴 때 빼면 잘해주는 편인 거 같아요.”
정이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유가 한 스윗하긴 하지.”
“한 스윗은 뭐예요.”
“왜. 뜻 전달 잘 되지 않았어?”
“너무 어휘 구사가 자유분방한 거 아니에요?”
“난 그게 내 장점이라고 봐. 시적이잖아. 낯선 방식으로 어휘 다루는 거.”
살폿 웃었다.
“그쪽 면으로는 천재적이기는 한 거 같아요.”
“고마워.”
눈웃음 지었다. 정이슬이 마주 빙긋 웃었다. 수아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가 푸는 게 보였다. 수아가 내 쪽으로 사이다 캔을 밀었다.
“왜?”
“오빠 마시라고.”
“네가 다 마시지.”
수아가 고개를 저었다.
“싫어.”
픽 웃었다. 몽니 부리는 것도 아니고. 괜한 변덕이었다. 사이다 캔을 잡고 들었다. 별로 안 남은 듯했다. 고개를 꺾어 입을 대지 않고 마셨다. 생각했던 것보다 꽤 남아 있어서 다 마시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고개를 내렸다. 정 씨 자매가 나를 보고 있었다. 정시은의 눈빛이 살짝 멍했다.
“오빠 목젖 되게 예뻐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른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 진짜 처음 들어봐, 목젖 예쁘다는 칭찬.”
“왜요? 목젖 좋아하는 사람 되게 많은데...”
“그래?”
“네... 오빠가 못 들은 건 평소에는 목젖 보여줄 일이 잘 없어서 그런가 봐요.”
“으응. 그것도 있을 거 같긴 한데, 보통 목젖 칭찬은 안 하게 되지 않을까. 다른 부분 얘기하는 것도 가능하니까.”
“확실히 오빠는 다른 데 말할 곳도 많으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네요. 근데 오빠 진짜 목젖 예뻐요.”
픽 웃었다. 정서아가 정시은의 목덜미에 손을 가져다 대고 주물렀다.
“목젖 얘기 좀 그만해...”
“왜?”
“그냥 좀 하지 마...”
“알겠어.”
정서아가 소리 없이 한숨 쉬었다. 정 씨 자매가 밥그릇을 비웠다.
“더 먹고 싶으면 먹어.”
정이슬이 고개 저었다.
“많이 먹었어.”
“네.”
“... 같이 있어 줄까 온유야?”
“괜찮아요. 고마워요.”
“응...”
정이슬이 정서아랑 정시은을 봤다. 셋이 일어났다. 따라 일어났다. 수아도 일어섰다.
“우리 너무 떠든 거 아니었어?”
정서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괜찮아. 나도 말할 사람 필요해서 좋았어. 얘기 나눠 가지고.”
“으응. 나중에 촬영할 때 보자.”
“너도.”
“촬영할 때 봐요 오빠. 수아도.”
정시은이 말했다.
“네. 잘 가요.”
수아가 답했다. 정시은이 수아한테 다가가 꼭 안았다. 정이슬이 나한테 와서 껴안았다. 등이 토닥여졌다. 정이슬이 놓아주자 정서아가 와서 나를 안았다. 정서아가 놓아주니 이번에는 정시은이 와서 나를 안았다. 셋이 다 풍기는 향이 비슷했다. 기분이 미묘했다.
“갈게.”
정이슬이 말했다. 잘 가요, 라고 답했다. 정 씨 자매가 신발을 꺼내 신고 고개 돌려 우리를 바라봤다. 서로 목례했다. 정 씨 자매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수아랑 같이 영정 앞으로 돌아갔다.
“오빠는 왜 지인이 여자만 있어?”
수아가 나를 보지 않고 작게 말했다.
“남자 지인도 있어.”
“아니, 비율이 그렇잖아.”
“따져보면 남자가 더 많을걸.”
수아가 콧숨을 내쉬었다.
“응.”
소리 죽여 작게 웃었다.
“삐쳤어?”
“아냐.”
고개 돌려 수아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표정이 살짝 뚱했다. 귀여웠다. 검지로 왼 옆구리를 톡 건드렸다. 수아가 오른손으로 옆구리를 감싸면서 나를 올려봤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마주 빙긋 웃었다. 수아가 오른손 검지로 내 오른 옆구리를 약하게 찔렀다. 당해주고 왼손으로 감쌌다. 고개 돌려 입구 쪽을 봤다. 또각또각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누군가 또 오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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