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6화 〉 이준권 장례식 (4)
* * *
입구에서 정장 차림의 백채영이 나타났다. 백채영이 구두를 벗고 신발장에 넣는데 곁에 아무도 없었다. 아무래도 혼자 온 모양이었다. 백채영이 이쪽으로 차분히 걸어왔다. 눈이 마주쳤다. 백채영이 목례해왔다. 마주 고개를 꾸벅였다. 백채영이 명부에 이름을 적은 다음 분향하고 영정에 절을 했다. 백채영하고 맞절했다. 백채영이 윤가영에게 먼저 가 짧게 허그하면서 등을 토닥였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당연히 와야죠.”
“밥 드시고 가세요.”
“그럴게요.”
백채영이 옆에 선 나한테 와서 포옹하고는 등을 토닥였다.
“되게 많은 일을 겪는구나. 아직 어린데.”
무어라 답할 말이 없었다. 백채영이 내 오른팔을 한 번 쓸고는 수아를 껴안았다. 수아가 두 팔을 들었다가 어정쩡하게 백채영을 마주 안았다. 껴안는 게 익숙하지 않다는 듯한 반응이 귀여웠다. 백채영이 수아를 놓아주고는 물러나서 밥을 먹으러 갔다. 수아를 바라봤다.
“또 가게?”
“응. 같이 갈래?”
“할 얘기 없는데. 왜 계속 오는 사람마다 보러 가는 거야?”
“오셨는데 그냥 보내는 건 아니잖아.”
수아가 입술을 삐죽였다.
“사회생활 되게 잘한다.”
“배워.”
“씨...”
수아가 왼손 검지로 톡 건드렸다. 간지럽지도 않았다. 지나치게 장난치는 건 아니다 싶었는 모양이었다. 눈웃음 지었다. 고개 돌려 윤가영을 바라봤다.
“가실래요?”
“난 수아랑 있을게...”
“알겠어요.”
커피를 챙길까 하다가 물 페트병만 하나 들고 백채영한테 가서 반대편에 앉았다. 적지 않은 시선이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백채영을 보는 듯했다.
백채영이 숟가락을 국그릇에 내려놓았다. 국에 밥이 말아져 있었는데, 밥도 국도 양이 많지 않았다. 백채영이 우물거리다 삼키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밥 더 드시지 그랬어요.”
백채영이 나를 바라보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미안. 적당하다 생각했는데 적었나 봐.”
고개 저었다.
“죄송하실 거 없어요. 소식하시나 봐요.”
“응... 난 개인적으로는 소식 안 한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나 보면 꼭 소식한다고 하더라...”
“스스로 절제하는 게 아니라 그냥 조금밖에 안 먹게 되는 거예요?”
“응... 먹으려고 마음먹어도 몸이 좀 안 받아.”
“현대인으로서는 되게 부러운 타입이네요. 체중 관리에 용이하니까.”
백채영이 눈웃음 지었다.
“그런 거 같아. 선사시대 같았으면 위험했을지도 몰라. 칼로리 축적할 수 있을 때 못하거나 해가지고...”
백채영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너도 먹어.”
“네.”
절편을 하나 집어 들었다.
“음료수 마시고 싶은 거 없어요?”
백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고마워.”
절편을 작게 한 입 물어서 깨작거렸다. 백채영이 국밥을 떠먹었다.
“드라마 다음에 하고 싶은 거 있어?”
백채영이 나직이 물었다.
“음악이죠, 당연히.”
“으응. 싱글?”
“앨범이요. 전부 자작곡으로요.”
백채영의 눈이 커졌다.
“가사랑 곡은 준비된 거야?”
“완전히는 아니에요. 수록곡으로 뭐 넣을지 정하고, 그것들 조금 더 다듬어야 될 거예요. 그리고 믹싱이랑 마스터링은 혼자서는 못할 거 같아요.”
“그거는 도움받으면 되지. 그럼 앨범 주제도 다 정해놓은 거야?”
고개를 끄덕였다.
“음... 계속 일 얘기 해도 될까?”
“네.”
“응. 말해줘.”
“앨범 제목은 ‘드림’으로 정했어요. 조금 중의적으로 꿈이랑 편지 마지막에 누구누구 드림할 때 그 드림이라는 의미로. 어린 시절 기억이랑 음악에 관한 생각, 그리고 지금까지 그려온 삶의 궤적을 담을 거예요.”
“으응. 앨범은 누구에게 바치는 거인데?”
“어머니요. 아웃트로로 헌정곡 하나도 넣을 생각이에요.”
“응...”
“괜찮은 거 같아요?”
“당연하지. 최고지. 너 말고 못 할 얘기들인데. 물론 음악을 다 들어봐야 알겠지만, 솔직히 기대돼. 지금 말한 것들만 생각하면.”
“실망하시지 않을까 무서워지는데요.”
“아냐, 부담 갖지 마.”
“이미 부담 지워진 거 같아요.”
“그럼 누가 들어도 명곡이라고 느낄 걸 만들어놓으면 되지.”
“그럴 생각이에요.”
백채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드라마 촬영 끝나면 바로 들어갈 생각이야?”
“네.”
“미리 들어볼 수는 없을까? 데모 같은 거 있으면.”
“그거는 조금 어려울 거 같아요.”
“알겠어 그럼.”
“삐친 거 아니죠?”
“아냐. 이런 거로 왜 삐쳐.”
“네.”
백채영이 눈웃음 짓고는 국밥을 마저 먹었다. 백채영이 밥을 다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 일어섰다.
“음악 들을 날 기다리고 있을게.”
“일단 생각 저편으로 치워 놓으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건 알아서 할게.”
“네.”
백채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팔을 벌려 다가왔다. 마주 안았다. 백채영이 내 등을 토닥였다.
“갈게.”
“네. 안녕히 가세요.”
“응.”
백채영이 나한테서 떨어지고 윤가영이랑 수아가 있는 쪽에 목례했다. 백채영이 구두를 꺼내 신고 입구로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목례했다. 백채영도 목례를 하고 다시 앞을 보며 걸어나갔다. 제자리로 가 섰다.
“대표님이랑도 친하게 지내네.”
수아가 조용히 말했다.
“나랑 엄마하고 같이 갔을 때 다 같이 처음 본 거 아냐?”
“그치.”
“근데 왤케 붙임성 좋게 다가가?”
“그냥 애써서 하는 거야.”
“그게 애써서 돼?”
“응. 나 되게 아싸 기질 강한 거 몰라? 내향적이고.”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가 입술을 삐죽였다.
“욕할 뻔했네.”
“하지 마.”
“안 했잖아 그래서.”
“응.”
수아가 콧숨을 내쉬었다.
“오빠 좀 내향적인 건 맞는 거 같아. 소심하고.”
“뭔가 비꼬는 거 같은데.”
“아냐. 인터넷에 그 유명한 짤 있잖아. 논리정연하게 말하려 했는데 소심해서 한마디만 하고 끝냈다고.”
보지 년아, 라고 했다는 거 얘기하는 건가. 소리 없이 웃었다.
“그건 소심한 게 아니잖아.”
“그니까. 그런 게 오빠라고. 따지면 느낌이 좀 다르긴 한데. 암튼.”
“아냐.”
“응.”
얄미웠다. 수아가 정면만 보면서 시선을 피했다. 그러다가 살폿 웃음을 터뜨렸다. 귀여웠다. 볼을 만지작거리고 싶었다. 계속 보고 있자면 만지고 싶은 욕구가 커질 것 같았다. 고개 돌려 입구 쪽을 봤다. 검은 옷을 입은 외조부모님이 보였다. 두 분이 함께 신발을 벗고 가지런히 신발장에 놓으시고는 함께 걸어와 명부에 이름을 적으셨다. 외할머니께서 봉투를 꺼내셨다. 나도 모르게 다가섰다.
“부조금은 안 내셔도 돼요...”
“아니다, 온유야.”
외할머니가 봉투를 집어넣으셨다. 외할아버지가 오른손으로 내 왼팔을 툭툭 쳤다.
“어른이 주는 건 거절하는 거 아니다.”
“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거 없다.”
고개를 꾸벅 숙이고 자리로 돌아갔다. 두 분이 영정에 절을 하고 우리랑 맞절했다. 외할아버지가 먼저 다가와 나를 안았다. 외할아버지가 내 등을 토닥였다.
“이젠 힘든 일 없을 거다.”
“감사해요...”
외할아버지가 나를 놓아주고 윤가영을 바라봤다.
“우리 온유 잘 좀 지지해주십시오. 우리 손자, 온유, 생각보다 되게 연약한 놈입니다.”
“네...”
윤가영이 고개를 숙였다. 외할머니가 눈웃음 지었다.
“곁에 있어 보니까 아셨죠?”
외할머니가 말했다.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제가 본 온유는 굳센 면이 더 컸어요...”
“그럼 다행이네요.”
외할머니가 내 왼팔을 쓰다듬었다.
“그새 또 컸구나.”
멋쩍게 미소 지었다. 외할아버지가 고개를 두리번거리시다가 가족실 문을 열었다.
“잠깐만 안에서 얘기 좀 하자 온유야.”
“네.”
들어갔다. 외할머니가 문을 닫으면서 들어왔다. 외조부모님이 바닥에 앉았다.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밖에 사람이 왜 이리 많은 거냐.”
외할아버지가 물었다.
“드라마 관계자분들이에요. 새엄마 지인분이랑 아버지 지인분도 있고요.”
“으음... 그래. 너는 어찌 괜찮으냐.”
“괜찮아요...”
“네 사람들한테는 잘하고 있냐.”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잘하려고 하고 있어요...”
“... 그래. 그거면 됐다.”
외할머니를 바라봤다. 눈이 슬퍼 보였다. 측은함 같았다. 외할머니가 몸을 기울여 내 왼팔을 쓸었다.
“사랑한단 말에 인색하면 안 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응...”
외할머니가 다시 몸을 바로 세웠다. 외할아버지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쿨럭쿨럭 기침했다. 기침이 그다지 거세지는 않았는데 외할아버지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외할아버지가 코를 찡긋거리셨다.
“물 드릴까요?”
외할아버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
외할아버지가 말없이 고개 숙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는 고개 들어 나를 바라보셨다.
“장소가 장손지라 소연이 생각나서 곁에는 못 있어 주겠다. 미안하다.”
“와주신 것만으로 감사해요.”
“그래. 굳세게 살아라.”
외할아버지가 일어나셨다. 따라 일어섰다. 외할머니도 같이 일어나셨다.
“밥은 드시고 가세요...”
“알겠다.”
외할머니가 말했다. 외할머니가 다가와서 나를 껴안고 등을 토닥였다. 외할머니가 나를 풀어주고 나서는 외할아버지가 다가와서 나를 안았다.
“너는 네 아버지처럼은 되지 말아라.”
“절대로 안 그럴 겁니다.”
“그래... 최소한 행복하게는 해야 한다.”
“네...”
외조부모님이 문을 열고 나가 밥을 드시러 가셨다. 외할머니를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외할아버지가 밥을 한 숟갈 뜨고 국에 푹 담갔다가 드시면서 나물 반찬을 집어 드셨다.
“음료수 드릴까요?”
외할아버지가 고개 저었다.
“나도 괜찮다.”
“네...”
외할아버지가 묵묵히 드시다가 밥을 넘기고 나를 바라봤다.
“네가 하는 게 많잖냐. 공부도 하고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하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살면서 뭔가는 포기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다른 건 다 버려도 좋으니까 꼭 사람을 챙겨라. 너는 그래야 한다.”
“네...”
“그래.”
“넌 뭐든지 잘할 수 있을 거야...”
외할머니가 말했다. 고개를 주억였다. 무거운 책임감이 들었다. 무엇 하나 허투루 할 수 없었다. 누구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 됐다.
외조부모님이 묵묵히 그릇을 비우셨다.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라 일어났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안았다.
“가보마.”
“네... 나중에 봬요...”
“그래.”
외할아버지가 나를 놓았다. 외할머니가 나를 안았다가 놓아주시고는 윤가영이랑 수아가 있는 곳을 봤다. 수아가 목을 깊이 숙였다. 윤가영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외조부모님이 마주 목례하고 신발을 꺼내 신으셨다. 나도 신발을 신고 택시가 있는 곳까지 배웅했다. 외할아버지가 다시 나를 품에 안으셨다.
“... 내가 못난 탓에 같이 못 있어 줘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와주신 것만으로 감사해요, 정말.”
“... 그래...”
외할아버지가 나를 안은 채 한숨을 내쉬셨다. 외할아버지가 그대로 한동안 나를 안고 계시다가 놓아주셨다. 외할머니가 나를 짧게 안았다가 놓아주시고 외할아버지의 옆에 서 부축이듯 했다.
“다음에 봬요...”
“응...”
“그래...”
외조부모님이 택시에 타셨다. 택시가 떠나갈 때까지 보다가 장례식장 건물 안으로 도로 들어갔다. 복도로 내가 걷는 소리가 낮게 울려퍼졌다. 세은이가 간절히 보고 싶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어떤 낯으로 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마음 깊이 바라면서도 두려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