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5화 〉 이준권 장례식 (3)
* * *
조금 숨돌릴 만한데, 하면 사람이 왔다. 지금이 그 타이밍이었다. 가만히 입구 쪽을 응시했다. 흰 교복 와이셔츠에 검은 블레이저를 입은 여자랑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강성연이랑 강예린이었다. 둘이 신발을 벗었다. 강예린이 양손으로 자기 구두랑 강성연의 운동화를 잡고 신발장에 집어넣었다. 강성연이 강예린을 기다리고는 뒤따르듯 하면서 함께 걸어왔다. 강예린이 명부에 이름을 적고 다가와 무릎을 꿇어서 분향을 했다. 그 뒤 강성연이랑 함께 영정에 절을 하고 우리랑 맞절을 했다. 강예린이 윤가영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윤가영이 악수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윤가영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강예린이 왼손으로 윤가영의 오른팔을 쓸고는 나한테 왔다. 강예린이 두 팔을 벌리고 나를 안았다. 양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강성연은 양손을 모은 채 병풍처럼 서서 멀뚱멀뚱 나를 보다가 강예린이 나를 안자 입구 쪽으로 눈을 돌렸다. 살짝 당황스러웠다. 강예린을 마주 안았다.
“와주셔서 감사해요...”
“응...”
강예린이 내 등을 토닥이고는 팔을 풀어줬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측은함이 깃들어 있었다. 강예린이 이윽고 시선을 돌려 이수아를 바라봤다. 이수아가 먼저 오른손을 내밀었다. 강예린이 손을 맞잡았다.
“온유 여동생이지?”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머니는...”
“네 오빠 친구 어머니야. 온유랑 면식이 있어서 같이 왔어.”
“아, 네...”
이수아가 손을 놓았다. 강예린이 한 발짝 물러나고 뒤를 봐 강성연을 바라봤다. 강성연이 강예린이랑 눈을 마주치고는 시선을 돌려 나한테 다가왔다. 나를 올려보는 눈에 확신이 없어 보였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한 눈치였다. 내가 먼저 팔을 벌렸다. 강성연이 그제야 나한테 한 발 더 다가와서 나를 안았다.
“내가 위로 같은 걸 잘 못 해서...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어.”
“괜찮아. 와줘서 고마워.”
“응...”
강성연이 내 등을 토닥였다. 강예린이 한 걸 따라 하는 느낌이었다.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강성연이 나를 놓아주고 한 발짝 물러났다.
“너 근데 왜 밴드부원들이랑 안 왔어?”
“나 엄마랑 같이 오느라...”
“아직 부원들이랑 조금 어색한 것도 있는가 봐.”
강예린이 말했다. 강성연이 얼굴을 찡그렸다.
“아 엄마. 아니야. 나 괜찮아, 애들이랑.”
“알겠어.”
“하아 진짜...”
강예린이 엷게 눈웃음 지었다. 강성연에 대한 애정이 엿보였다. 강예린이 헬리콥터 맘처럼 강성연한테 무리한 요구를 해왔으면서도 둘이 사이가 나쁘지는 않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강예린이 강성연의 왼손을 잡았다. 가려는 것 같았다.
“밥 먹고 가세요.”
강예린이 고개를 주억였다.
“알겠어.”
강예린이 강성연을 바라봤다. 둘이 같이 걸어가서 빈자리에 앉았다.
입구 쪽을 봤다. 이제 나랑 관련된 사람으로는 누가 더 와야 하는 거지. 외조부모님, 드라마 관계자랑 매니저 형, 정이슬 자매랑 서유은 자매 정도인가. 세은이 보고 싶다. 올 수 있으려나. 한창 바쁠 때인 거 같은데. 괜히 한숨이 나왔다. 이수아랑 윤가영이 나를 바라봤다.
“왜...?”
윤가영이 물었다. 고개 저었다.
“그냥요. 저 잠깐 가볼게요.”
“응...”
강성연 모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강성연 옆자리 의자를 꺼내 앉았다. 입을 우물거리던 강성연이 나를 바라보고 눈을 크게 떴다.
“부원들 왔을 때 같이 앉아서 얘기 나눴는데 너는 그냥 아무 말 없이 보내는 건 아니다 싶어서 왔어.”
강성연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콜라 마실래?”
강성연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개 돌려 강예린을 바라봤다.
“어머님도 콜라 드실래요?”
강예린이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응... 고마워.”
“네.”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를 열어 캔콜라 두 개를 꺼내고 돌아와 건넸다. 강성연이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고마워...”
“응.”
강성연이 콜라를 땄다. 강예린이 나를 바라봤다.
“드라마 촬영한다고 들었는데.”
“네. 성연이가 말해줬어요?”
“응. 어디에서 촬영하는 거야?”
“학교랑 한강에서 찍었어요. 그 외 장소에도 찍을 거 같기는 한데 아무래도 학교 신이 되게 많아서 주로 학교에서 찍게 될 거예요.”
“으응... 나중에 나오면 꼭 챙겨볼게.”
눈웃음 지었다.
“감사합니다.”
강예린이 마주 눈웃음 지었다.
“드라마 제목이 뭐였지?”
“겁쟁이둘이요.”
“으응...”
강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성연이 콜라를 한 모금 마시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로맨스야?”
“응... 한국형 하이틴물.”
“으음...”
“드라마 자주 봐?”
“난... 글쎄. 잘 안 보는 거 같아. 근데 네 건 볼 거야.”
살폿 웃었다.
“고마워.”
강성연이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돌렸다.
“촬영할 때 밥은 어떻게 잘 먹니?”
고개를 끄덕였다.
“굶지는 않아요.”
“잘 못 먹는구나.”
“음, 꼭 그렇게까지 표현할 정도는 아닌 거 같아요.”
“으응... 네 나이에는 잘 먹어야 하는데.”
“얘 정도면 클 만큼 컸잖아.”
강성연이 말했다.
“그래도. 그게 먹을 만큼 못 먹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건 아니잖아.”
“잘 먹어요. 제가 말을 잘못한 거 같아요.”
“그렇대.”
강성연이 말했다. 강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미심쩍어 보였다. 그냥 처음부터 잘 먹는다 할 걸 그랬다 싶었다.
강성연이 소고기뭇국을 떠먹었다. 지켜보다가 뭔가 눈치를 주는 거 같아서 시선을 돌렸다.
“왜 말 안 해?”
강성연 목소리였다. 다시 고개를 돌려 강성연을 바라봤다.
“내가 너무 말 시키는 거 같아서. 먹으라고.”
“말해도 돼. 그냥 계속 걸어.”
“아냐. 먹어.”
“그래.”
강성연이 다시 숟가락을 국에 넣었다. 가만히 지켜봤다. 강성연이 숟가락을 들어 올리다가 도로 내려놓고 나를 쳐다봤다.
“왤케 봐.”
“그냥. 국 어떤 거 같아?”
“맛있어. 왜?”
“오신 분들 대접하는 거라서 맛이 중요하니까.”
“... 다른 분들도 맛있게 드셨을 거야.”
“다행이네.”
“응.”
강성연이 다시 국을 퍼먹었다. 고개 돌려 강예린을 봤다. 밥그릇이 비워져있었다.
“더 드세요.”
강예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더 드셔도 괜찮아요.”
“많이 먹었어. 고마워.”
“알겠어요. 커피 드실래요?”
“내가 만들어 마실게. 너도 마실래?”
“네.”
“설탕은?”
“한 스푼 넣어주세요.”
“응. 찬 거로?”
“뜨거운 거로요.”
“알겠어.”
강예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컵 두 개에 커피를 타서 돌아와 도로 앉았다. 강예린이 종이컵 하나를 건네왔다. 양손으로 받았다. 뜨거웠다.
“감사합니다.”
“응.”
강예린이 커피를 마셨다. 나도 커피를 홀짝였다. 강성연이 꾸준히 밥을 입에 넣어서 그릇을 비웠다.
“너도 커피 마실래?”
강성연이 고개 저었다. 입구 쪽에서 발소리가 울려왔다. 꽤 많은 사람이 오는 모양이었다. 강예린이 고개를 입구로 돌렸다가 나를 바라보고 오른손을 뻗어 내 오른손등에 포갰다.
“우리 이만 가볼게 온유야.”
“네.”
“도움 같은 거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줘.”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해요.”
강성연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예린이 뒤이어 일어났다. 나도 일어나서 의자를 집어넣었다. 강예린이 목례해왔다. 마주 고개를 꾸벅였다. 강성연도 따라 목례했다. 모녀가 입구 쪽으로 걸어가 신발을 꺼내 신었다. 뒷모습을 보다가 윤가영이랑 이수아 가운데로 가 섰다. 입구에서 오지윤 감독이랑 낯익은 스태프들이 나타났다. 김민준도 끼어있었다. 김민준이 가장 먼저 신발을 벗고 뛰어와 우리를 보고 목례를 했다. 그러고는 명부에 이름을 적고 분향한 뒤 영정에 절하고 우리랑 맞절했다. 김민준이 윤가영에게 먼저 가 악수를 건넸다. 윤가영이 양손으로 손을 맞잡았다.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윤가영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김민준이 다음으로는 나한테 와서 끌어안았다.
“늦게 와서 미안해.”
“괜찮아요. 와줘서 고마워요 형.”
“당연히 와야지...”
김민준이 내 등을 토닥이고 포옹을 풀었다. 김민준이 이수아를 바라봤다. 이수아가 손을 뻗었다. 김민준이 악수하고 수아의 오른팔 상완을 토닥이고 뒤로 물러났다.
“밥 먹고 가세요 형.”
“응...”
김민준이 비켜섰다. 명부를 써놓고 대기하던 오지윤 감독이 오디오 감독이랑 촬영감독과 함께 와서 영정에 절하고 우리랑 맞절했다. 오지윤이 말없이 윤가영을 짧게 안았다. 그다음으로는 나한테 와서 안았다.
“드라마 지연되게 해서 죄송해요...”
오지윤이 팔을 풀고 내 얼굴을 마주 봤다.
“변이잖아요. 죄송할 거 하나도 없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오지윤 감독이 자애로운 미소를 띠었다. 이윽고 오지윤이 수아도 품에 안았다가 풀어줬다.
“다들 식사는 하고 가세요...”
윤가영이 말했다. 오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뒤이어 스태프분들이 세 명씩 와서 영정에 절하고 우리랑 맞절을 했다. 목례를 하고 문상 인사를 받기를 반복했다. 문상객이 윤가영한테 무어라 말을 건네는데 순간 듣지 못했다. 소리가 왼쪽 귀로 들어와서 오른쪽 귀로 새어나가기라도 한 느낌이었다. 살짝 멍했다.오늘 하루는 계속 이렇게 정신이 없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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