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화 〉 경찰 조사
* * *
경찰차가 정차했다. 경찰관들이 벨트를 풀었다.
“내리세요.”
“네.”
“네...”
나랑 윤가영이 각자 뒷문을 열고 나갔다. 두 경찰관이 앞장서서 경찰서 정문으로 걸어갔다. 윤가영이랑 같이 경찰관들을 뒤따라갔다. 서 안으로 들어갔다. 오는 내내 묵묵했던 경찰관 한 명이 서 내부로 들어가면서 고개를 돌려 우리를 봤다.
“계속 따라오세요.”
“네...”
윤가영이 답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 경찰관이 다시 앞을 보며 성큼성큼 걷다가 문을 하나 열고 윤가영을 바라봤다.
“가영 씨는 이쪽으로.”
“넵...”
윤가영이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불안보다는 결연함 같은 게 엿보였다. 왠지 애를 내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윤가영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 왜 이런 걸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뭔가 잘못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경찰을 보면서 입을 열었다.
“묻는 거에 사실대로만 말하면 되는 거죠?”
“음? 맞아요.”
“네.”
윤가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들은 걸까. 제발 그랬으면 하는데. 윤가영이 다시 정면을 보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관이 안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닫았다.
“학생.”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고개 돌렸다. 경찰관이 문손잡이를 잡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네.”
빠르게 걸어 경찰관이 문을 연 곳으로 들어갔다. 좁은 방이었다. 프린터랑 컴퓨터 모니터가 놓인 작은 책상을 가운데에 두고 양옆에 의자가 하나씩 있었다.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구조였다.
“앉아요.”
“네.”
안쪽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잠깐만 있어 봐요.”
“네.”
경찰이 빠르게 걸어서 시야에서 사라졌다. 경찰이 잠시 뒤에 종이를 쥔 채 돌아와서는 문을 닫고 맞은편으로 들어가 앉았다. 경찰관이 모니터를 보면서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잡았다.
“바로 협조해줘서 고마워요 학생. 진짜 금방 끝날 거예요.”
네, 라고 작게 답했다. 프린터가 작동했다. 경찰이 뽑힌 종이를 건넸다. 참고인 권리 안내서였다. 담당수사관 이름은 김영건이었다. 청년치고는 나이 들어 보이는 이름이었다. 담당수사관 인적 사항 밑에는 ‘권리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 사항이 있었다. 맨 위에 ‘참고인진술 시 변호인을 참여하게 할 수 있습니다’, 라고 쓰여 있었다. 오면서 안내를 받은 것이기는 했는데 막상 문서를 마주하고 있자니 경솔하게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건이 메모지랑 모나미 볼펜을 건넸다. 양손으로 받았다. 김영건이 양손을 키보드 위에 올리고 어, 하고 소리 냈다.
“학생 아버지가 귀국하고 나서 바로 학생이랑 만났죠?”
“네. 점심시간에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불러서 갔어요.”
김영건이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편히 내용을 적을 수 있게 조금은 느리게, 핵심만 말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나도 메모를 하면서 속도를 맞추면 될 듯했다. 끝을 눌러서 심이 나오게 하고 볼펜을 바로 쥐었다.
“근데 그때가 귀국을 하고 곧바로 절 본 건지는 모르겠어요.”
“네? 학생 아버지인데 몰라요?”
“네. 아버지가 불륜을 해서 제 친엄마랑 이혼하고 바로 새엄마랑 재혼해서 사이가 안 좋아졌어요. 그래서 연락도 잘 안 해 가지고, 일정 같은 거는 잘 몰랐어요.”
“아...”
“아버지는 그래도 제가 아들이라고 계속 다가오려고 한 거 같기는 해요.”
김영건이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고개를 주억였다.
“그런데 사이가 안 좋았는데 불렀다고 굳이 나간 이유가 있었어요?”
“... 시간 벌려고 나갔어요.”
김영건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슨 시간?”
“새엄마랑 새여동생이 도망칠 시간이요.”
“어어...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어요? 왜 도망치게 한 거인지?”
“둘이 아버지를 싫어했으니까요.”
“음, 새여동생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새엄마는 좋아해서 재혼한 거이지 않아요?”
“처음에는 그랬죠. 근데 점점 싫어하게 됐다고 해야 될 거예요.”
김영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말해요.”
“네. 원래 새엄마는 아버지가 불륜 저질러서 자기랑 재혼하게 된 건 줄은 모르고 있었어요. 제가 말하고 나서야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실망감이 생겼을 거예요. 그러고 또 얼마 안 지나서 아버지가 저나 새엄마, 새여동생한테 별말도 안 하고 해외로 출국했어요. 그담에 시간 조금 지났을 때 낮인가 밤인가 새엄마한테 전화 걸어 가지고 자기가 바람피우는 거 소리 듣게 해서 가슴앓이하게 했고요.”
김영건이 키보드를 두드리다 멈췄다.
“이거 조서에 내용 들어가도 돼요?”
“일단 사실대로 써야 되니까요.”
“그래요. 맞죠.”
김영건이 다시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가슴앓이하게 하고, 또 있어요?”
“음, 제 친엄마가 아버지랑 이혼하고 되게 마음 고생하셔서 앓으시다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을 치렀었어요. 그때 친엄마 후배분이라고 하는 기자분이 오셔서 우리 복수하자고, 아버지 기사 쓸 수 있게 허락해줄 수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승낙했었어요. 나중에 기사 나온 거 봤을 때 희생자라고 해야 되나, 아버지한테 당한 사람이 제 친엄마랑 새엄마 말고도 더 있더라고요. 아마 그거 보고 새엄마가 완전히 아버지한테 정이 떨어졌을 거예요.”
김영건이 말없이 고개를 주억였다.
“학생은 새엄마랑은 사이가 원만한 거네요?”
“네. 처음은 엄청 싫어했는데, 제 친엄마랑 처지가 비슷하다는 거 알고 조금 누그러지더라고요.”
“으음, 그럼 밥 먹고 나서는 새어머니랑 새여동생이 집을 빠져나간 거고... 그러면 아버지가 둘을 보지는 못했겠네요?”
“네. 어젯밤에 새엄마랑 제가 병문안 갔을 때가 아버지가 귀국하고 처음으로 새엄마 본 순간일 거예요.”
“그래요... 밥 먹을 때 별 얘기는 안 했어요?”
“아버지는 대화하려고 했어요. 해외에만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제 근황 은근슬쩍 얘기하면서 기사 같은 거 다 봐줄 테니까 화해하자고 말해 가지고, 소름 끼쳐서 물 뿌리고 도망쳐 나왔었어요.”
“아... 아까 병문안 얘기 나와서 그러는데, 그때 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기 있어요? 아니면 평소랑 다른 모습을 보였다거나.”
“누가 자기 배 찔렀는지 얘기해주기는 했어요.”
“누군데요?”
“대학 시절 여자친구랬어요. 되게 좋게좋게 헤어졌었는데 무슨 원한인지 찔렀다, 라고 말했었어요.”
“이름 같은 건 안 말했어요?”
“네.”
“그 인물인지 어떻게 확신했는지는 들었어요?”
“도망치는 뒷모습 보고 체형으로 누구인지 짐작했다고 했어요.”
“으음, 그것 말고는 특별히 더 기억에 남거나 들은 거 없어요?”
“자기가 불륜하는 이유 들려주더라고요. 자기는 사랑받는 게 좋은데, 여러 명한테 받으면 더 좋다. 불륜을 들켰을 때 상대가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면 사랑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어서 최고다. 그런 얘기들. 더 듣기 싫어서 빠져나왔어요.”
“... 이거는 지울까요.”
“일단 남겨두고 이따 조서 확인할 때 뺄지 말지 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래요 그럼.”
김영건이 음, 하고 소리냈다.
“그 병원 cctv 보니까 학생이 먼저 병실에 있다가 다음에 새어머니가 들어가시더라고요.”
“네.”
“그때 새어머니가 무슨 얘기 나눴는지 학생한테 얘기해준 게 있어요?”
신중하게 답해야 할 거 같은데. 일단 병원 안에서는 안 사랑한다고 했다고 귓속말로 말했었고, 오늘 병원으로 오기 전에는 더는 보기도 싫다고,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고, 이혼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있었나 봐요?”
“네. 들어가서 이혼 얘기 꺼냈다고 했어요.”
“으음. 그것 말고 더 말해준 거 없었어요?”
“당신은 사랑받을 자격 없는 사람이다, 이런 말 했다고 하더라고요.”
“네. 그럼 그 병문안 갔던 날 돌아가면서 새어머니가 귓속말했던 거로 보이는데, 그때 무슨 말 했는지 기억나요?”
“제가 금방 말했던 내용, 그런 거 말했던 거 같아요.”
“사랑받을 자격 없는 사람이다?”
“네. 대충 그런 내용이었을걸요.”
“음, 알겠어요.”
심장이 두근거렸다. 윤가영도 같은 질문을 받을 텐데, 만약에 별장에서 내가 했던 이상한 지시대로 사랑한다고 했다고 말했다면 말한 내용의 일관성이 사라져서 모든 게 무너지게 될 거였다. 제발 모두 사실대로만 얘기해줬으면 했다.
김영건이 눈살을 찌푸리고 자기가 가져왔던 a4 용지를 들여다봤다.
“그, 아버지가 유서처럼 남긴 종이가 있었잖아요.”
“네.”
“봤어요?”
“박스 안에 있어서 봤습니다.”
“그럼 평소 아버지 서체랑 비교했을 때 아버지가 쓴 것이라고 느꼈어요?”
“네. 아버지 글씨체였어요.”
“알겠습니다... 그 내용 중에 ‘내가 져버린 행복’이라고 말한 게 있는데 짐작이 가는 게 있어요?”
“아마 새엄마 아닐까요. 장기간 해외 나가서 불륜하는 거 알리면서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가 확인하려고 해봤는데, 결국엔 실패해서 낙심해버린 거 같아요. 이혼하자는 소리만 듣게 됐으니까.”
“흐음...”
김영건이 큼,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 아버지가 굉장히 독특한 사람이었네요.”
독특하다는 긍정적 뉘앙스가 담긴 말은 다소 부적절한 듯하지만,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려해서 말해준 거에 굳이 정정하려 들 필요는 없었다.
프린터가 작동했다. 김영건이 기지개를 켰다.
“일단 끝났어요. 조서 보고 정정할 부분 있으면 말해요.”
“네.”
“시간 제한 같은 거 없으니까 느긋이 봐요.”
“알겠습니다.”
프린터가 동작을 멈췄을 때 김영건이 한 번에 종이를 꺼내서 건네줬다. 양손으로 받고 글귀를 차분히 훑으면서 장을 차차 넘겼다. 특별히 빠지거나 더한 것 없이 성실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네, 이대로 좋은 거 같은데요.”
“그, 아버지가 말했던 내용은 안 빼도 돼요?”
“있어야 마지막 내용까지 이어져서 이해가 될 거 같아서요.”
“으음, 알겠어요 그럼.”
“네. 이제 완전히 끝난 거예요?”
김영건이 고개를 선선히 끄덕였다.
“네. 그런데요.”
“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크게 당황을 안 하셨네요?”
당황스러웠다. 얼굴이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문이 벌컥 열렸다. 지긋해 보이는 경찰이 들어와서 김영건의 뒤통수를 때렸다. 시원한 일격이었다.
“아.”
김영건이 뒤를 돌아봤다. 경찰이 김영건의 멱살을 잡았다. 김영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찰이 손을 놓아줬다.
“잠깐만요 학생.”
“네...”
경찰이 고갯짓했다. 나오라는 듯했다. 경찰이 먼저 나가고 김영건이 고개를 숙인 채 나갔다. 문이 닫혔다. 잠깐 고요했다가 내 귀가 좋아서인지 다그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부모님 다 돌아가셔서 별로 익숙하지도 않은 새엄마 빼면 고아인 애야. 누구보다 당황했을 건데 안 울고 성실히 답하는 게 대견한 거지. 거기다 대고 씨... 뭔 개소리를 하고 있어. 의심할 건덕지도 없는데. 죄송합니다. 거 애한테 말할 걸 왜 나한테 말해. 가. 옙.
문이 열렸다. 김영건이 돌아와서 나를 바라보며 오른손을 뻗어왔다. 얼떨떨한 채로 맞잡았다.
“미안해요 학생. 조사 성실하게 임해줘서 고마워요. 일어나요. 가도 돼요.”
“네.”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영건의 뒤통수를 때린 경찰이 다시 또 다가와서 양손으로 김영건의 목덜미를 주물렀다.
“태워줘야지 인마.”
“에, 나와요 태워줄게요.”
“네...”
김영건을 따라나섰다. 메모했던 종이랑 참고인 권리 안내서를 접어서 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걸어가면서 윤가영이 들어갔던 방을 봤다. 안에 아무도 없었다. 윤가영은 어떻게 된 거지.
“저 근데 새엄마는요?”
“글쎄요, 아마 진술이 빨리 끝나서 갔나 봐요.”
“저 두고요?”
“태워준대서 먼저 갔는가 봐요. 장례식 관련해서 할 일도 좀 많을 테니까.”
김영건이 문을 열고 나가서 잡아줬다. 빠르게 나왔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간헐적으로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슬슬 비가 그칠 모양이었다. 김영건이 경찰차로 가 운전석에 올랐다. 뒷문을 열어 올라탔다. 경찰차가 출발했다.
한동안 말없이 차만 앞으로 나아갔다. 김영건이 백미러를 힐끔 봤다.
“미안해요. 추리 소설 같은 거 보면서 자라서 저도 모르게 가끔 무리하게 몰아가고 그래요. 뭐 궁색한 변명이긴 한데...”
“괜찮아요. 저도 셜록 홈즈 소설이랑 드라마 다 재밌게 봐서 이해돼요.”
“고마워요, 이해해줘서.”
멋쩍게 웃었다. 더 붙일 말이 없었다. 창문을 내다봤다. 경찰서가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거 같은데. 조금만 있으면 도착할 거였다. 눈을 감았다. 잠을 덜 자서인가 졸음이 몰려왔다. 자고 싶었다. 오른손 검지랑 엄지로 왼손등을 꼬집어서 잠을 몰아냈다. 눈을 떴다. 병원이 코앞이었다. 경찰차가 감속하고 멈췄다. 문을 열고 나갔다.
“감사합니다.”
김영건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네. 미안했어요.”
“네... 안녕히 가세요.”
“그래요.”
뒷문을 닫았다. 병원 쪽으로 걸어가다가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뒤로 돌아 고개를 들어봤다. 먹구름이 걷히고 여명이 터오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 연락처를 찾아 윤가영에게 전화 걸었다. 송신음이 두 번 들리고 연결됐다.
“여보세요.”
ㅡ여보세요...
“저 이제 다 조사받고 병원 왔어요.”
ㅡ으응...
“수사관이 그 cctv에서 귓속말로 뭐라고 했었는지 물어봤어요?”
ㅡ응... 안 사랑한다고 했다고 사실대로 말했어...
웃음이 나왔다. 천만다행이었다.
“네. 지금 뭐 필요한 거 있어요? 편의점에서 사고 갈게요.”
ㅡ물이랑 간단하게 먹을 거...
“알겠어요. 끊을게요.”
ㅡ응...
전화를 끊었다. 폰을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뒤돌아서서 병원으로 향했다. 내부에 들어가자마자 편의점이 보였다. 왜인지 모르게 꽤 허기졌다. 빨리 뭐든 먹고 싶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