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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409화 (408/438)

〈 409화 〉 이준권 병문안

* * *

“감사합니다.”

택시 뒷문을 열고 나가 먼저 바닥을 밟았다. 윤가영이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뒤따라 내렸다. 뒷문을 닫았다. 윤가영이 내 왼편에 붙었다. 폰을 꺼내고 차단 목록에서 이준권 번호를 찾아 차단을 풀고 전화 걸었다. 수신음이 세 번 가고 연결됐다.

“여보세요.”

ㅡ웬일이니 아들아. 네가 먼저 전화를 다 하고.

“면회하러 왔어요. 저 들어갈 수 있게 얘기나 해둬요, 주치의분한테.”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ㅡ병실 번호는 아니?

“7014호 아니에요?”

ㅡ맞아. 보호자 출입증 받고 바로 올라와. 기다릴게.

“끊어요.”

전화를 끊었다. 윤가영과 함께 나란히 병원으로 들어갔다. 이준권의 이름을 대고 출입증을 받았다. 바로 빠져나오고 이준권의 병실이 있는 병동에 들어가 엘리베이터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냥 수아도 같이 오잘 걸 그랬다...”

“왜요?”

“그냥... 언니들 사이에서 어려워할 수 있잖아...”

“괜찮을 거예요. 걔가 인간관계 못 하는 편도 아니니까. 괜히 여기 와서 그 사람 보게 하는 것도 별로 좋을 것도 없고.”

“으응...”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위로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빨갛게 표시된 엘리베이터 층수가 지하 3층에서 점차 높아졌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안에 탔던 사람들이 빠져나왔다. 잠깐 비켜서 있다가 윤가영이랑 같이 안에 들어갔다. 이준권이 있다고 했던 7층을 누르고 닫음 버튼을 눌렀다.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면서 엘리베이터가 상승했다. 붉게 표시된 숫자가 빠르게 바뀌었다. 어느새 7층에 도달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하얀 복도가 펼쳐졌다. 왜인지 숨이 턱 막혔다. 윤가영이랑 살짝 거리를 좁히고 같이 걸어 나갔다. 1인실만 있어서인지 병실 번호판 간격이 생각보다 좁았다.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갔다. 전체적으로 조용해서 윤가영이랑 내가 걷는 소리만 들렸다. 이 고요가 숨을 막히게 하는 듯했다. 이준권이 있다고 한 병실 앞에 섰다. 한숨 쉬고 노크했다.

“들어갈게요.”

출입증을 대고 문을 열었다. 그리 크지는 않은 방 안, 측면 구석에 있는 침대에 이준권이 누워 있었다. 지금은 안경을 안 쓰고 있었다. 수염도 전부 깎여있었다. 이준권이 두 손으로 침대를 짚고는 끄응 소리를 내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거기 명부부터 써.”

출입 명부 말하는 건가. 방 안을 빨리 훑었다. 2인 소파 옆에 붙은 작은 서랍 위에 클립보드가 있었다. 휘갈겨 쓰고 윤가영한테 펜을 넘겼다. 윤가영이 한 자 한 자 눌러 적었다. 손이 떨리는 듯 보였다. 긴장한 모양이었다. 안쓰러웠다.

“가영 씨.”

이준권이 말했다. 윤가영이 흠칫하고는 어깨를 움츠렸다가 이름을 마저 쓰고 몸을 돌려 이준권을 바라봤다.

“네...?”

이준권이 살폿 웃었다.

“까먹고 인사를 안 해서요.”

“아, 안녕하세요...”

“잠깐 나가줄래요? 한 명씩 면회하는 게 원칙이라고 해서.”

“알겠어요...”

윤가영이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쳐왔다.

“갈게 온유야...”

“네.”

윤가영이 뒤돌아서 병실을 나갔다. 고요가 찾아왔다. 소독제를 짜 손을 씻었다. 말없이 안을 둘러봤다. 침대에서 바로 볼 수 있는 티비, 테이블이랑 1인 소파, 그 옆에 2인용 소파랑 작은 서랍이 있었다. 옷장이랑 싱크대, 그리고 문이랑 가까운 구석에 화장실도 있었다. 여기에 식사도 조달되니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사람은 노트북 정도만 들여놓는다면 거주도 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마음에 드니?”

“... 뭐가요?”

“병실, 이 공간.”

“그냥 뭐 적당히 살만해 보이는데요.”

“그렇구나.”

“... 무슨 일이에요?”

“계속 그렇게 먼 곳에서 얘기할 생각이니?”

등받이 없는 의자를 들고 침대 옆에 가서 앉았다. 이준권이 환자복을 입은 모습이 생소했다. 아무리 봐도 안 어울렸다.

시선을 내려 배 쪽을 봤다. 살짝 비치는 재질이어서 그런지 배 왼쪽에 드레싱이 되어 있는 게 보였다. 고개 들어 이준권의 얼굴을 봤다.

“허리 근처에 맞았어요?”

“허리보다는 조금 위에.”

“어디 있었는데 칼에 찔려요?”

“그냥 초인종 울리길래 대문 열어주고 나갔는데 찔린 거다.”

“누가였는데요?”

“옛날에, 대학생 시절에 사귀었던 사람. 되게 좋게좋게 헤어졌었는데, 뭐가 또 원한인지 찾아와서 찌르더구나.”

“... 그 사람인지는 어떻게 알았는데요?”

이준권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취조당하는 거 같구나.”

“그냥 궁금한 거 묻는 건데 왜요.”

“아들로서 묻는 거니?”

“... 아무 사이 아니었으면 여기 안 왔죠.”

이준권이 피식 웃었다.

“음... 나도 얼굴을 잘은 못 봤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근데 나 찌르고 도망칠 때 뒤에서 체형 보니까, 누구인지 대충 알겠더라.”

“당신은 사람을 몸으로 기억해요?”

“너 같아도 얼굴 빼면 몸으로밖에 알아챌 수 없지 않겠니?”

입을 닫았다. 확실히 그 여자가 찌르면서 무슨 말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목소리나 분위기 같은 거로 사람을 식별하기는 어려운 게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이준권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미친 헛소리로 느껴졌다.

이준권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들.”

“아들이라 부르지 마세요.”

이준권이 살폿 웃었다.

“넌 어쩔 수 없이 내 아들이다, 아들아.”

소름 끼쳤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일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준권이 왼손으로 내 왼손목을 붙잡았다. 손아귀 힘이 억셌다.

“넌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거니?”

“전혀 안 돼요.”

“음.”

이준권이 미간을 찌푸리고는 손을 놓아줬다. 그러고는 등을 침대 헤드보드에 댔다.

“나는 네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구나. 내가 보기에 너만큼 나를 닮은 사람이 없는데.”

“지랄하지 마요.”

“지랄이라니. 진짜 그렇게 생각하니?”

“네.”

이준권이 콧숨을 내쉬었다.

“나는 사랑받는 게 좋았어, 항상.”

갑자기 존나 뜬금없이 뭔 소리를 하는 거지.

“상대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느끼면서 기뻐했고. 사실 누구나 그렇지 않아? 너도 그럴 거고.”

“뭔 개소리가 하고 싶은 거예요.”

“개소리라니. 내가 말한 문장 중에 잘못된 내용이 하나라도 있었어?”

“...”

“계속 들을래?”

“말하려는 이유가 뭔데요.”

“그냥, 아빠가 아들한테 이해해달라고 청하는 거지.”

“...”

“물 좀 줄래? 저기 테이블에 놨는데.”

뒤를 돌아봤다. 일어나서 페트병을 들고 다시 의자에 앉아서 병을 이준권한테 건넸다.

“고맙다.”

이준권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가끔은 과분하게 사랑받을 때도 있었어. 여러 명한테. 연애도 사랑도 다 일대일이라고 하니까 과분한 거였지... 그런데 이상하게 한 명만 택하고 다른 사람을 포기하기가 싫더라고. 내가 받게 될 사랑이 그만큼 줄어드는 거니까. 그래도 그러면 안 되니까, 최대한 한 명만 사랑하려고 했어.”

“엄마 있는데 불륜해 놓고 그딴 개소리를 한다고?”

“들어봐. 사람이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잖아.”

“다 당신 선택이었잖아. 왜 불가항력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러니까 들어보라는 거잖아.”

“...”

“한 명만 바라보고 살려고 하는데, 자꾸 흔들렸어. 그걸 눈치라도 챈 건지 달려들어서 덮쳐지기도 하고... 그러고 나서부터는 그냥 동시에 두 명을 만나게 되더라. 그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한 명에게도 소홀하지 않은 채로 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러다 우연히 한 번 여자친구한테 들킨 적이 있었는데, 그때 울면서도 나한테 헤어지자고는 못 하더라. 기이하게 그 순간에 살면서 제일 사랑받는 순간이 지금이구나 느꼈어.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상대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그때 가장 확실하게 느꼈어.”

이준권이 다시 물을 한 입 마셨다. 그냥 목을 조를까. 이준권이 또 입을 열었다.

“사랑받는다고 느낄 때의 고양감이 있잖아. 그걸 위해서 그날부로 자꾸만 사랑을 확인하려고 들게 되더라. 일부러 들키기도 하면서까지, 계속... 나를 미워하고 혐오하면서도 그보다 큰 사랑을 품고 나한테 안겨들 때가 너무 행복해서, 습관적으로 그랬어. 그런데 증오가 사랑을 넘어섰다고 느껴질 때부터는 상대에 대한 마음이 식더라. 이제 더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싶고 해서. 언제까지나 견고할 줄로만 알았는데... 가슴 찢어지더라, 사랑에 실패할 때마다.”

기가 찼다. 어이가 없어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당신은, 사람이 사람으로 안 보이죠?”

“아니? 섭섭한 소리 하지 마라. 난 가능하면 네 엄마하고 영원히 사랑하려 했어.”

“지랄하지 마요!”

침대의 사이드 레일을 주먹으로 내리치면서 일어났다. 돌아서서 걸어가는데 천둥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나. 생각해보니 이준권이 말하던 중간에 우수수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도 같았다. 여기 올 때까지는 빗방울도 안 내렸는데. 천둥소리에 레일을 내리찍은 소리가 묻혔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행이다 싶었다. 병실 문을 잡았다.

“가기 전에 하나만 물어보자, 아들아.”

가만히 섰다. 돌아보지는 않았다.

“너한테 못 해준 것도 없고, 반대로 언제나 너를 위해 오기만 했는데, 왜 나를 적대하는 거니?”

진짜 의문스럽다는 듯한 말투였다. 구역질이 났다.

“역겨워서요.”

문을 열고 나갔다. 병실 앞 의자에 앉아있던 윤가영이 일어났다.

“가요.”

“잠깐만 얘기는 해야 하지 않아...?”

“...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고 나와요.”

“알겠어...”

윤가영이 이준권 병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문에 귀를 대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의자에 앉았다. 잠깐이라고 했으니 금방 나올 거였다.

폰을 꺼내서 문자를 확인했다. 이수아가 문자를 보내온 게 있었다.

[지수랑 선우 언니한테 면회하러 갔다고 얘기했어]

[근데 언제 와?]

키패드를 열어 빠르게 타이핑하고 전송했다.

[곧 들어갈 거야]

숫자가 거의 즉시 사라졌다.

[알겠어 빨리 와]

[어 뭔 일 없었지?]

[응]

[그래]

폰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 들어 문을 봤다. 괜히 발을 굴렀다. 빨리 나왔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얼마 안 지나 문이 열렸다. 벌떡 일어섰다. 윤가영이 나와서 병실 문을 닫고 내 오른편으로 붙었다. 심장이 떨렸다. 말할 수 없이 기분 좋았다. 말없이 복도를 걸었다. 윤가영이랑 내가 내는 걸음 소리가 복도에 퍼졌다.

“뭐라고 얘기했어요?”

“그냥...”

윤가영이 속삭이듯 말했다. 몸을 기울여 귀를 가까이 가져다 댔다. 윤가영이 양손을 모아 내 귀를 덮었다.

“사랑 안 한다구요...”

살폿 웃었다. 몸을 다시 똑바로 세워 걸었다. 윤가영을 바라봤다. 웃음을 참으려는지 입술을 입 안에 넣고 깨물고 있었다. 미치도록 귀여웠다.

윤가영은 내 여자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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