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6화 〉 스타 이즈 본, 잠자리
* * *
수건 물기를 짜내 세탁기에 넣고 화장실을 나섰다. 티비 소리가 났다. 영화를 보는 모양이었다.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수아가 리모컨을 들었다. 소리가 멈췄다. 티비 화면이 정지했다. 수아랑 붙어 앉아있던 윤가영이 오른쪽으로 가 내가 둘 사이에 앉을 수 있게 자리를 내줬다. 살폿 웃고 가운데에 앉았다. 수아가 나를 쳐다봤다.
“오빠 안 와서 먼저 보고 있었어.”
“계속 봐.”
“처음부터 안 봐도 돼?”
“나 이제 또 얘기하러 올라갈 거야.”
“뭐? 어디서 잘지 말하는 거야?”
“응.”
“그 얘기는 나도 같이 가서 해야지. 일단은 영화나 같이 보자.”
“알겠어. 문자 좀 보낼게.”
“어.”
“영화 틀어놔.”
“문자 먼저 보내.”
“그 사람 때문에 폰 꺼놔서. 일단 켜야 돼.”
“아. 알겠어.”
수아가 영화를 재생했다. 폰을 켜놓고 고개를 들어 티비를 봤다. 화면이랑 배우가 익었다. 스타 이즈 본, 봤던 거였다. 지수랑 선우한테 영화를 보고 올라가겠다고 문자 보냈다.
[뭐 보는데?]
선우 답장이었다.
[스타 이즈 본]
[응 재밌게 봐]
[응]
지수한테서 문자가 왔다.
[난 좀 자고 있을게]
[응]
[다 보고 올라왔는데 아직 자고 있음 깨워]
[알겠어]
[잘 자]
[응]
뒤로 가기를 눌렀다. 통화 최근 기록을 살펴서 이준권 번호를 차단 설정했다. 혹시 모르니 에어플레인 모드로 바꾸고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여자친구인 모녀를 사이에 두고 지고지순한 사랑 영화를 본다니. 이래도 되는 건가. 기분이 미묘했다.
*
대극장, 밴드와 줄지은 현악기 연주자들이 배경처럼 있는 조용한 무대 위. 식당 주방에서 일하던 앨리가 긴 머리를 올려 묶고 파란 드레스를 입은 차림으로 눈 감은 채 서 있다. 앨리의 앞에는 수많은 관객이 앉아 숨죽여 음악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다. 피아노 반주가 시작되고, 앨리의 앞모습이 체스트 샷으로 잡힌다. 아크 라이트로 돌아가면서 현악단과 어두운 조명이 배경으로 비춰진다. 이윽고 앨리가 눈을 뜨고 입을 연다.
ㅡWish I could, I could've said goodbye
I would've said what I wanted to
Maybe even cried for you
아크 라이트가 이어지며 현악단과 청중, 무대 전경이 비춰진다. 아크 샷이 좌우로 반복되면서 잭슨 메인의 무대에 같이 섰던 기억, 함께 누워 검지로 얼굴을 훑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현악단이 활을 들고 선율을 더한다.
ㅡDon't wanna feel another touch
Don't wanna start another fire
점차 노래가 고조됐다. 내 숨이 다 벅차 갔다.
ㅡAnd I don't wanna give somebody else the better part of me
I would rather wait for you, ooh
앨리가 울음을 참아내고 다음 프레이즈로 넘어갔다. 내가 대신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장면이 급전환되고, 둘만의 집에서 잭슨 메인이 앨리와 뜯은 노트 한 장을 앞에 두고 피아노를 쳤다.
ㅡDon't wanna give my heart away
To another stranger
참기 힘들었다. 슬쩍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다. 수아의 눈에 눈물이 작게 맺혀 있었다. 확실히 이건 울 수밖에 없었다. 수아처럼 은근 속이 여린 애라면 더욱 그랬다.
앨리가 잭슨의 머리를 끌어안고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잭슨이 미소 지은 채 노래를 이어나갔다.
ㅡNever love again
Oh, I'll never love again
앨리와 잭슨이 입을 맞췄다. 화면이 다시 무대로 전환되고, 위를 바라보는 앨리의 얼굴이 클로즈업 샷으로 나왔다. 눈물이 흘러 한줄기 길이 나 있었다. 입으로 숨을 고른 앨리가 고개를 내려 화면을 응시했다. 이어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갔다.
오른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 돌렸다. 윤가영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윤가영이 잘게 어깨를 들썩였다. 미치도록 귀여웠다.
“엄마 울어?”
수아가 왼쪽에서 말했다. 그리 말하는 수아 목소리도 살짝 잠겨 있었다. 둘 다 말도 안 되게 사랑스러웠다.
“흑... 응... 끄읍...”
“울보.”
“흡... 아냐앙... 슬픈데, 흑... 어떠케...”
살폿 웃었다. 양팔로 윤가영을 안았다. 수아가 일어나서 윤가영의 오른쪽로 가 팔걸이에 앉고 윤가영을 안았다. 윤가영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으으응...”
귀여워서 죽을 것 같았다.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윤가영의 왼손에 입술을 맞췄다. 윤가영의 머리에 코를 박고 있던 수아가 나를 째려봤다가 왼손등으로 눈 밑을 훔쳤다. 영화 엔딩에서 눈물을 살짝 흘려서 그런 모양이었다. 미치도록 귀여웠다. 엄마나 딸이나 다 사랑스러움으로 가득했다.
“흑... 끕...”
윤가영의 울음이 차차 잦아들었다. 윤가영이 두 손을 내려 무릎 위에 올렸다. 윤가영의 어깨가 들썩이는 빈도가 줄었다. 수아가 윤가영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윤가영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엄마 다 울었어?”
“흡... 응...”
수아가 살폿 웃었다.
“다 안 울었는데?”
“너두, 흑... 울었잖아...”
“울진 않았거든요.”
“연기자면서, 끅... 엄마보다 이입 못 하면 어떡해...”
“그럼 오빠는?”
윤가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눈물 젖은 얼굴이 미치도록 예쁘고 귀여웠다. 키스하고 싶은데 수아가 눈치 보였다. 윤가영이 입을 열었다.
“온유는, 끅... 알아서 잘하니까...”
“또 오빠 편애하는 거야?”
“아냐아... 히꾹...”
갑자기 딸꾹질을 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괜찮아요?”
윤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히끅...”
수아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거짓말해서 딸꾹질 나오는 거 아냐?”
“아냐... 히꾹...”
“알겠어. 미안해.”
수아가 윤가영의 오른볼에 입술을 쪽 맞추고 일어나서 휴지랑 물티슈를 가져왔다.
“휴지랑 물티슈 있는데 뭐 줘?”
“물티슈 줘... 히끅...”
“응.”
수아가 물티슈를 한 장 뽑아 건넸다. 가영이 오른손으로 받았다.
“고마워...”
윤가영이 눈 밑을 꾹꾹 눌러 닦았다. 그러면서도 계속 딸꾹질을 하느라 몸이 들썩였다. 봐도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윤가영은 하는 모든 게 귀여웠다. 오른손으로 소파 등받이를 잡고 일어났다.
“물 가져올게요.”
“응... 히꾹... 고마워.”
“네.”
주방으로 향했다. 정수기로 뜨거운 물이랑 시원한 물을 섞어 미지근한 물을 뽑았다. 거실로 돌아갔다. 이수아가 윤가영 옆에 앉아 오른손으로 윤가영의 등을 쓸고 있었다.
“엄마 진짜 애기 같애.”
“엄마가 애기면, 히꾹... 넌 어떻게 낳았어?”
“몰라. 그래서 신기해. 나 어떻게 낳았어, 이렇게 애긴데.”
윤가영이 살폿 웃었다.
“히꾹... 웃기지 마아...”
수아가 히 웃었다. 나도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윤가영한테 물컵을 건넸다.
“마셔요.”
“응... 고마워... 히꾹...”
“네.”
수아 왼편에 앉았다. 윤가영이 물을 홀짝홀짝 마셨다. 바로 멈추지는 않는지 계속 딸꾹질을 했다. 수아가 윤가영을 바라보면서 내 오른팔에 몸을 붙이고 자연스럽게 기대왔다. 오른팔을 뒤로 해 수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수아가 이제는 양팔로 나를 꼭 안았다. 양손으로 컵을 든 윤가영이 나랑 수아를 봤다.
“히꾹...”
“부러워 엄마?”
윤가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엄마 놀리면 안 돼...”
“히... 근데 재밌는데 어떡해.”
윤가영이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얼굴에 속상함이 드러났다. 미치도록 귀여웠다. 윤가영이 다시 물을 머금고 삼켰다.
“히꾹...”
“딸꾹질 잘 안 멈출 거 같아요?”
“모르겠어...”
“그럼 혀 잡아당기고 있어 봐요.”
수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혀 잡아당기라고?”
“응. 그게 딸국질 잘 멈추는 방법인 거 같아.”
“으응...”
“암튼. 저 일단 올라가서 잠자리 얘기하고 올게요.”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아도 일어났다.
“나도 가.”
“그럼 나도... 히꾹...”
윤가영도 일어났다. 살폿 웃었다.
“근데 지수 개인 공간이라서, 다 같이 들어가도 될까요.”
“으응... 그럼 안 될 거 같네...”
“근데 그렇다고 우리가 필요해서 말하러 가는 건데 우리가 움직이는 게 맞지 않아?”
“그것도 일리 있네.”
“그럼 가자.”
“알겠어. 같이 가자.”
“응.”
“응...”
윤가영이 내 오른편에 붙었다. 수아가 내 뒤에 왔다. 등에 가슴이 맞닿는 느낌이 왔다. 수아가 나를 껴안아 왔다. 윤가영이 수아를 바라봤다.
“수아야...?”
“왜?”
“오빠 불편하게 하지 말구...”
“오빠 불편해?”
“이러면 걷기 불편하긴 하지.”
“그냥 가자.”
“수아야...”
“엄청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그냥 가자 엄마.”
윤가영이 콧숨을 내쉬었다. 윤가영이 나를 올려봤다가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고 내 오른팔에 슬쩍 팔짱을 껴왔다. 진짜 동작들이 전부 사랑스러웠다.
“가자.”
윤가영이 호기롭게 말했다.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네.”
셋이서 다 같이 걸어갔다. 계단 앞에서는 수아가 일시적으로 떨어져서 내 옆구리를 잡은 채 뒤에서 함께 올라갔다. 2층 복도에서는 또 내 등에 달라붙은 채 걸었다. 왼손으로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와, 하고 선우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었다. 침대 오른쪽에 지수가 엎어져 자고 있었고, 왼쪽에 선우가 정자세로 누워서 고개를 문 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선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같이 왔네?”
“응. 얘기할 거 있어서.”
“어어...”
선우가 상체를 일으키고 선우가 왼손으로 지수의 오른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지수가 으음, 하고 소리를 내고 오른 눈을 슬며시 떴다.
“뭐야...”
“일어나 봐.”
“으응...”
지수가 양손으로 침대를 짚어 밀어내면서 고개를 뒤로 젖혀 스트레칭했다. 그러고는 상체를 세우고 침대에 쪼그려 앉았다.
“왜 다 같이 왔어...?”
“할 얘기 있대.”
“뭔데 이온유...?”
“그냥 잠자리 어떻게 할지 논의하려고. 다 같이 불쑥 와서 미안해. 부르는 것보다는 우리가 움직이는 게 맞는 거 같아서 방까지 왔어.”
“괜찮아... 어차피 집까지 들어온 건데...”
지수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아직 졸린 듯했다.
“근데 잠자리 어떡하냐구...?”
“응.”
“음, 난 그냥 너, 나, 선우가 침대에서 자고 네 새엄마랑 수아는 소파에서 자는 거 생각했는데.”
“근데 저 오빠랑 같이 자고 싶어요.”
수아가 말했다.
“어?”
지수가 눈을 크게 떴다. 잠이 달아난 듯 보였다.
“안 돼.”
“엄마 여기에서 언니들이랑 자고 저는 오빠랑 자면 안 돼요?”
윤가영이 말없이 양손으로 내 오른팔을 꽉 붙잡았다. 나한테 의지하는 듯했다. 난감했다. 이 상황에서는 내가 크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안 돼. 여기 있는 이유가 온유랑 같이 있으려고 그러는 건데.”
“근데 저 오빠랑 사귄 지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양보해주시면 안 돼요?”
지수가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대답을 안 하다가 나를 쳐다봤다.
“온유야, 일로 와 봐.”
“왜?”
“걍 와.”
“응...”
윤가영이 내 오른팔을 놓아줬다. 내 뒤에 있는 수아가 나를 꼭 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양손으로 수아의 손목을 잡고 주물주물거렸다. 수아가 콧숨을 내쉬고 나를 놓아줬다. 침대로 갔다. 지수가 왼손으로 침대를 팡팡 쳤다.
“누워.”
갑자기 왜 누우라는 걸까. 생각이 있어서 그런 거일 테지만 왠지 두려웠다.
“응.”
지수 옆에 누웠다.
“선우야. 너도 누워봐.”
“응.”
선우가 내 오른편에 누웠다. 지수가 오른팔로 나를 안고 눈을 감았다.
“이대로 내일까지 있자.”
“저녁밥은?”
선우가 순수하게 물었다.
“몰라.”
당황스러웠다. 농담 식으로 도발 차원에서 말한 거 같기는 한데, 마음만 먹으면 지수는 저녁밥은 건너뛰고 내일까지 있을 수도 있어서 살짝 무서워졌다.
“농담하는 거죠?”
수아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 죄송해요.”
지수가 픽 웃었다.
“응.”
“...”
수아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윤가영이 수아의 살짝 뒤로 가서 왼손으로 수아의 왼팔 상완을 잡고 오른팔로 수아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느낌이 당장이라도 물러나자고 할 기세였다. 수아가 입을 열었다.
“침대 옆에 이부자리 깔고 자는 건 돼요?”
지수가 눈을 뜨고 수아를 바라봤다.
“소파가 훨씬 편할 건데. 침대처럼 쓸 수 있는 거라서.”
“그래도 조금이라도 가까이 있는 게 좋아요.”
“알겠어 그럼. 맘대로 해.”
“네.”
지수가 오른손으로 내 배를 통통 쳤다. 가도 된다는 것 같았다. 선우가 먼저 나와줬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수가 뒤늦게 일어나서 옷장을 열었다.
“이부자리 깔아줄게요.”
“내가 도울게.”
윤가영이 도도도 뛰어서 붙었다. 나랑 선우, 수아도 걸어갔다. 다 같이 이부자리를 받아 침대 왼편에 깔고 베개를 두 개 올렸다. 뭔가 느낌이 얼떨떨했다.
“베개 하나 더 주시면 안 돼요? 껴안고 잘 거 필요해서 그러는데.”
수아가 물었다.
“줄게.”
지수가 흔쾌히 답하고 베개를 던져줬다. 수아가 양손으로 받고 두 베개 가운데에 내려놓았다.
*
밤도 왔고 눈도 감았는데 잠이 안 왔다. 지수랑 선우 사이에 껴서 자는 게 처음은 아닌데. 섹스를 안 해서 피곤하지 않아서 그런가. 근데 그렇다기에는 지수랑 선우는 잘 자는 거 같은데. 밑에 있는 가영이랑 수아도 잘 자는 거 같고.
여자친구 네 명이랑 다 같이 자는 게 처음이라서 잠이 잘 안 오는 걸까. 아무래도 그 이유밖에 없었다.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슬며시 떴다. 어두운 시야로 왼쪽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키가 딱 수아였다. 수아가 왼손을 뻗어 내 배를 콕 눌렀다.
“오빠...”
수아 목소리였다.
“잘 나와 봐...”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억지로 참고 조심히 지수랑 선우의 팔을 걷었다. 이불 속으로 들어가 침대 밑쪽으로 빠져나왔다. 수아가 나를 꼭 껴안고 히 웃었다. 마주 미소 지었다. 소리 죽여 킥킥 웃었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가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로 갔다. 가운데 베개에 머리를 벴다. 수아가 베개를 하나 더 달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왼쪽에 있던 윤가영이 눈을 감은 채 내 배에 왼팔을 얹었다. 윤가영도 안 자고 있던 모양이었다. 살폿 웃음이 나왔다. 윤가영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얼굴을 가까이해 오른 볼에 입술을 맞췄다. 이수아가 뒤에서 나를 껴안아 왔다.
“엄마만 좋아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냐.”
왼손으로 수아의 왼 볼을 쓰다듬었다.
“너도 좋아해. 사랑해.”
수아가 흐응, 하고 작게 콧소리를 냈다.
“뽀뽀나 해줘.”
“응.”
입술을 가볍게 맞췄다. 수아가 오른손으로 내 목덜미를 잡고 진하게 입술을 맞췄다가 뗐다. 흥분됐다. 새엄마한테 볼 뽀뽀를 하고 바로 새여동생한테 키스를 한다니. 내가 생각해도 대범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어둠이 나를 보다 용기 있게 한 느낌이었다.
수아가 오른팔로 내 배를 감싸 안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제 자자...”
수아가 말했다. 응, 이라고 작게 답했다. 윤가영도 작게 응, 이라고 답했다.
여자친구인 선우랑 지수 사이에서 자다가 다른 여자친구인 새여동생의 부름을 받고 나와서 또 다른 여자친구인 새엄마 옆으로 가 누워서 새엄마랑 새여동생하고 같이 잔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쳐버린 상황이었다.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이제 내일 드라마 촬영하러 가고 이준권도 대응해야 했다. 이준권은 왜 하필이면 지금 한국에 와서. 부담감이 극심해서 버거울 정도였다. 내가 다 잘할 수 있을까.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솔직히 두려웠다.
윤가영이 내게 더 다가들어 왼팔로 꼬옥 안아왔다. 윤가영은 나밖에 믿을 사람이 없었다.
가능 여부를 따질 게 아니었다. 무조건 내가 잘해야만 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