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8화 〉 겁쟁이둘 크랭크인 (1)
* * *
윤가영이 내 어깨에 두 손을 얹고 까치발을 서서 입술을 맞춰왔다. 눈을 마주치면서 마주 입술을 움직였다. 윤가영이 눈웃음 지었다. 눈빛이 미치도록 음란했다. 얽혀드는 혀가 집요했다. 내 등을 더듬는 손길이 끈적했다. 수아한테 시간을 뺏긴 만큼 함께 하는 순간을 더 밀도 있게 보내려고 하는 느낌이었다. 윤가영이 입술을 떼고 발꿈치를 바닥에 붙이고는 양팔로 내 몸을 껴안아왔다. 마주 안았다. 윤가영이 내 목에 입술을 대고 쪼옥쪼옥 빨았다. 드라마 찍어야 되는데. 이래도 돼요? 윤가영이 입술을 떼고 목에 입김을 후 불었다. 짜릿했다. 아무래도 히키가 남은 것 같았다. 짜증 나는 대신 웃음이 나왔다. 이러면 어떡해요. 컨실러로 가리면 돼요. 알겠어요. 윤가영이 살폿 웃고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는 바지를 안 입고 있었다. 윤가영이 양손으로 내 자지를 잡고 입에 넣었다. 침이 가득해서 미끈미끈했다. 윤가영이 양손으로 내 골반을 붙잡고 자지를 빨아댔다. 얼굴에서 수치심이 읽히지 않았다. 눈빛에서는 욕망만 비쳐 보였다. 더없이 야한 여자였다. 왼손으로 윤가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 뭐해? 이수아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렸다.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린 채 이쪽으로 다가왔다. 윤가영이 수아를 흘깃 봤다가 계속 머리를 흔들었다. 배덕감이 들었다. 이수아가 윤가영의 왼편으로 와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윤가영을 밀어냈다. 윤가영이 내 두 다리의 무릎 뒤로 팔을 감아 안고 계속 자지를 빨았다. 이수아가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봤다가 내 오른 고환을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미칠 것 같았다. 오빠. 몸이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일어나. 뭐지.
“일어나라고.”
왼 볼을 맞는 느낌이 났다. 절로 끄응하고 소리가 나왔다. 눈을 떴다. 앞 유리로 한강이랑 촬영장이 보이고 백미러로 윤가영이랑 이수아의 모습이 보였다. 윤가영은 뒷좌석 왼편에 가만히 앉아서 아닌 척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이수아는 조수석에 오른손을 올려 붙잡고 몸을 앞쪽으로 기울여 왼손을 내 왼볼에 갖다 댄 채로 있었다. 오른손으로 목을 괜히 한번 쓸었다. 별 느낌 없었다. 역시 히키 같은 건 있지 않은 거였다. 다 꿈이었구나. 요즘 잘 안 꿨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야한 꿈을 꾸지. 뭔가 찝찝했다. 죄지은 느낌이었다. 이수아가 살폿 웃고 내 볼에서 손을 떼 뒷좌석에 엉덩이를 붙였다.
“왤케 표정이 뚱해?”
“지금 깨서...”
“잠 많이 못 잤어?”
운전석에 있는 김민준 실장이 물었다. 벨트가 풀려 있었다. 내가 일어나는 걸 기다리고 있던 듯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벨트를 풀었다.
“어제 좀 긴장돼서 못 잤어요.”
뒤에서 픽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뒤를 봤는데 이수아는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오른쪽 창문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젯밤에 섹스했던 걸 떠올리기라도 한 건가. 살짝 올라간 입꼬리가 너무 귀엽게 보였다. 입술을 맞추고 싶었다. 윤가영도 미세하게 미소를 띤 듯 안 띤 듯한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짜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고개를 돌려 김민준을 바라봤다.
“저희 이제 내리면 되나요?”
“응. 내리자.”
“네.”
문을 열고 내렸다. 뒷문을 열어줬다. 이수아랑 윤가영이 나왔다. 이수아가 윤가영의 왼팔을 낚아채 팔짱을 끼고는 내 왼편으로 왔다. 윤가영이 나랑 같이 나란히 걷는 걸 원천차단하기라도 하려는 건가. 나랑 윤가영의 사이를 알게 되고 나서도 계속해서 견제하는 게 귀여웠다. 수아랑 윤가영하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세트장 안으로 차례상이 차려져 있는 게 보였다. 살짝 의아했다. 일단 사람들을 향해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면서 안녕하세요를 반복했다. 사람들이 눈웃음 지으면서 인사를 받아줬다. 정서아가 미소 지은 채 다가왔다.
“온유야 수아야 메이크업 받고 온 거야?”
“네. 엄마가 메이크업 아티스트여서 다 해줬어요.”
이수아가 답했다. 정서아가 눈을 크게 뜨고 아 진짜, 하고 소리 내면서 윤가영을 바라봤다. 윤가영이 눈웃음 지었다.
“머리 세팅도 같이하신 거예요?”
“으응...”
“와, 능력이 되게 많으시네요.”
“아니야...”
정서아가 눈웃음 지었다.
“앞으로도 쭉 온유 군이랑 수아 양 메이크업 해주실 수 있으세요? 지금 비주얼이 딱 박제해놔도 되겠다 싶을 정도로 잘 어울리는 거 같아서요.”
“아 정말로...?”
“네. 빈말 못 해요 저.”
“근데 나 진짜 수아랑 온유 메이크업해주면서도 속으로 작중 이미지랑 안 어울린다고 해서 고쳐야 되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진짜 그런 걱정 하나도 안 하셔도 될 거 같아요.”
“으응...”
이쪽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고 있던 오지윤 감독이 한번 박수했다.
“이제 저희 빨리 고사 치르고 촬영 시작하죠.”
바로 고사가 시작됐다. 되게 당연하다는 듯 착착 진행됐다. 남들이 박수할 때 따라서 손뼉을 쳤다. 절을 하라고 할 때 나가서 절을 하고 다시 원래 자리로 가서 섰다. 왠지 살짝 멍했다. 오지윤 감독이 소지를 태워 올렸다. 다들 박수했다. 따라서 기계적으로 박수했다. 갑자기 심장이 쥐어짜이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킹에 처음으로 도전했을 때랑 비슷했다. 정서아가 내 오른편으로 다가왔다. 내 왼편에 선 수아가 정서아를 힐끔 쳐다봤다. 정서아가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 되면 첫 키스 장면 찍을 거야.”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느껴졌다.
“응?”
“제일 어색한 느낌이 살아야 되는 장면이니까 촬영 첫날에 찍기로 결정했어. 일단 알려줘야 될 거 같아서.”
“아... 왠지 오늘 로케 장소가 한강이었던 게 그 이유였구나...”
정서아가 살폿 웃었다.
“응.”
그럼 첫키스하는 과정까지 다 오늘 찍는 거겠구나. 상상만 했는데 어색했다. 대놓고 데이트하는 건 세은이랑도 해본 적 없는데 연기로라도 수아랑 한다고 하니 몸이 간지러워졌다.
이수아가 나를 쳐다봐왔다. 눈을 마주쳤다. 어색하게 웃었다. 이수아가 픽 웃고 시선을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긴장한 기색은 아닌 거 같았다. 그런데 내심 긴장해놓고 아닌 척하는 거일 수도 있을 듯했다. 아니 지금 무슨 하나 마나 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머리가 지저분했다. 잘못하면 흑역사를 만들 게 될 것만 같았다.
*
양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정하윤하고 한강을 느리게 걸었다. 석양이 미지근한 열을 내뿜고 있었다. 공기는 선선해서 걷기 적당하다 싶었다. 카메라가 우리를 따라왔다. 왜 의식되지. 지워야 되는데. 어색했다.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꺼내고 수아, 아니 하윤이의 왼손을 향해 뻗었다. 잠깐 허공을 훑던 손이 겨우 하윤이의 손에 닿아서 잡았다. 하윤이가 손을 맞잡았다. 더 가까워지면 좋을 거 같은데.
“좀 춥다.”
“그래?”
“응.”
조금 더 하윤이의 옆으로 붙으면서 하윤이의 왼손을 잡은 오른손을 주머니로 넣었다. 앞쪽에 벤치가 보였다.
“저기 벤치 앉아서 좀 쉴래?”
정하윤이 피식 웃고 나를 쳐다봐왔다.
“춥다면서?”
“응.”
“근데 왜 또 밖에서 앉아있게?”
“그냥, 많이 걸었으니까. 너 발 아플 수도 있을 거 같아서.”
정하윤이 살폿 웃었다.
“알았어. 앉자.”
“응.”
같이 벤치에 앉았다. 말없이 한강을 봤다. 눈에 무언가 담기지는 않았다. 정하윤만 신경 쓰였다. 정하윤이 바라보는 쪽으로 시선을 던져도 특히 무언가 보이지는 않았다. 눈을 뜨고도 눈이 먼 상태였다.
왠지 점점 어색해지는 느낌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나아질 거 같은데. 도통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은 있긴 한데, 그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고개를 느릿하게 돌려 정하윤의 얼굴을 바라봤다. 정하윤은 여전히 먼 곳을 보고 있었다.
“하윤아.”
정하윤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응?”
“... 키스, 해볼래?”
내가 말했다. 정하윤이 대답 없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나한테 실망했나? 속이 타들었다. 정하윤이 갑작스레 양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고는 얼굴을 가까이해왔다. 코가 맞부딪혔다. 정하윤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픽 웃었다. 정하윤이 웃지 마, 라고 작게 말하고 고개 각도를 살짝 틀었다. 이내 입술이 맞닿았다. 보드랍기 그지없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했다. 그 생각을 할 때 정하윤이 입술을 떼고 몸을 뒤로 물렸다.
“그냥 이렇게 하면 될걸... 뭘 물어보고 있어...”
발그레해진 두 볼이,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는 듯 흔들리는 눈빛이 야했다. 양손으로 정하윤의 옆구리를 잡고 얼굴을 가까이했다. 입술을 포갰다. 입술을 움직여 애무했다. 정하윤이 흥, 하고 콧소리를 냈다. 조금 놀란 듯한 느낌이었다. 커다래진 눈이 귀여웠다. 정하윤이 눈을 감고 입술을 마주 움직였다.
“쯉... 쮸읍...”
정하윤이 입술을 마주 움직이면서 내 양 옆구리를 잡았다가 내 허벅지에 손을 올렸다.
“츕... 쯥...”
정하윤이 입술을 떼고 고개를 뒤로 뺐다. 서로 마주 본 상태로 입으로 숨을 골랐다. 다시 입술을 맞췄다. 금방 다시 떨어졌다. 생각해보면 금방이라고 표현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되게 짧게 느껴졌다. 정하윤이 상체를 뒤로 빼고는 하아, 하고 달콤한 숨을 뱉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 오늘은 그만 돌아갈까?”
키스 더 안 할 생각이구나. 아쉬운데 어쩔 수 없었다.
“응...”
“오케이, 컷!”
오지윤 감독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렸다. 감독의 표정이 좋았다. 재촬영은 없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감독옆에 선 정서아가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우리를 보고 있었다. 정시은이랑 윤가영도 그 곁에 서 있었다. 수아랑 내가 키스하는 걸 직관한 걸까. 뻘쭘했다. 한편으로는 배덕감이 들어서 아래에 피가 몰릴 것만 같았다. 지금 서면 완전 티 날 건데. 속으로 청명한 하늘에 태극기를 펼쳐 들어 마구 펄럭였다. 수아랑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윤가영이랑 정서아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모니터링할래...?”
정서아가 물었다. 멋쩍게 웃으며 고개 저었다.
“못 볼 거 같아...”
“그럼 우리만 볼게...”
정서아가 홀린 듯 멍한 어투로 말했다. 스태프들이 웃었다. 이수아가 정서아한테 다가갔다.
“저는 볼래요.”
“응...”
정서아가 답했다. 이수아가 모니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괜히 고개를 돌리고 모니터로부터 멀어졌다. 정시은이 옆으로 내 왼편으로 다가왔다. 올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오빠.”
소곤거리는 목소리였다.
“응.”
“진짜 긴장한 거예요?”
“... 응...”
정시은이 살폿 웃고 고개를 갸웃했다.
“현실에서도 첫키스였어요?”
뭘 이런 걸 물어보는 건지. 얘도 정이슬이랑 비슷하게 약간 호사가 느낌이 있는 것 같았다. 정서아는 차분하던데. 맏이랑 막내가 닮는 건가. 알 수 없었다. 일단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시은이 으응, 하고 소리 내면서 고개를 작게 끄덕거렸다.
멀리서 석양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점점 아래로 수그러들 거였다. 밤까지 쭉 촬영이 이어질 건데. 언제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 걸까. 지금도 피곤한 감이 드는데 더 지나면 얼마나 지치게 될까. 살짝 걱정됐다.
어쩌면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뻗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