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4화 〉 혼란스러운 금요일 (1)
* * *
몸이 흔들렸다. 이미 누가 나를 꼭 껴안아서 속박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내 왼 어깨를 잡고 흔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눈꺼풀을 들었다. 윤가영이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여 내 왼 어깨를 살살 흔들고 있었다. 나를 내려보는 두 눈이 처연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궈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미안했다. 무어라 말을 해야 할 거 같은데 꺼낼 말이 없었다.
“일어났어요...?”
“네...”
윤가영이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답답함과 슬픔을 억지로 삼키는데 차마 억누르지 못한 게 코로 새어 나온 느낌이었다.
일단 일어나서 윤가영이랑 방을 나서고 달래야 할 듯했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이수아가 오른팔이랑 오른 다리를 내 몸 위에 얹은 채 새근새근 자는 중이었다. 자는 얼굴은 어떤 죄도 저질러 본 적 없는 사람인 듯 순결해 보였다. 아마 수아는 자기 엄마가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모를 터였다.
수아 팔이랑 다리를 옮겨놓아야 일어날 수 있는데. 좀처럼 손 쓰기 어려웠다. 우선 내 몸 위에 덮인 이불을 걷었다. 내 가슴팍이랑 골반에 이수아의 오른팔이랑 오른 다리가 걸쳐져 있었다. 이수아가 아무 것도 몸에 안 걸쳐서 가슴이랑 보지가 보였다. 윤가영도 보고 있을 건데.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최대한 빨리 나가야 했다. 너무 느리게 해도 깨어날 거고 급히 해도 일어날 터였다. 입으로 조용히 숨을 내쉬고 양손을 써 조심스레 이수아의 팔부터 들어 이수아의 옆구리에 올렸다. 상체를 세우고 이수아의 다리를 잡아 들면서 빠르게 내 다리를 빼냈다. 도로 내려놓고 이불을 덮어줬다. 침대에서 내려가고 윤가영을 바라봤다. 서글픈 눈을 한 윤가영이 나를 마주 보고는 말없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옷을 입어야 하나.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다. 반 팔 티만 오른손에 쥐고 뒤늦게 방을 나서서 문을 닫았다. 윤가영이 계속해서 멀어져 갔다. 조용히 뒤따라가면서 뒷모습을 보는데 왠지 한없이 안쓰러워 보였다. 뭐라 말해야 할 거인데. 머리가 복잡했다. 반팔 티를 빠르게 입으면서 따라갔다. 윤가영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그대로 자기 방문을 잡고 안에 들어갔다. 같이 들어가고 문을 닫았다. 윤가영이 그제야 뒤돌아서 나를 올려봤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미치도록 미안했다.
“여보...”
윤가영의 목이 메어 있었다. 자기 남자친구가 바로 어제 자기 딸이랑도 했다는 사실을 딸의 알몸을 봄으로써 마주하게 된 거인데 심사가 얼마나 복잡할까. 도저히 상상이 안 됐다. 착잡했다. 한편으로는 윤가영 입장에 나는 딸까지 손댄 개새끼인데도 나를 여전히 여보라고 불러준다는 게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솔직히 기뻤다. 나는 끔찍이 이기적인 놈이었다.
“네...”
“... 수아랑, 했어요...?”
“...”
고개를 끄덕였다. 맞을 각오를 하고 시선을 밑으로 내렸다.
“히잉...”
순간 윤가영이 와락 안겨 와 내 가슴에 이마를 댔다. 잠깐 사고가 정지하는 느낌이었다. 이내 정신이 돌아왔다. 두 팔로 윤가영을 마주 안았다. 윤가영이 더 꼬옥 안겨들었다. 오른손으로 윤가영의 등을 쓸었다.
“으흐응...”
우는 소리가 애처로웠다. 가슴이 무거워졌다. 윤가영은 나 때문에 아파도 차마 나를 미워하지는 못할 만큼 나를 너무 깊이 사랑해버렸구나. 이렇게까지 사랑받을 자격 없는 놈인데. 속이 뜨거워졌다.
“미안해요.”
“으으응...”
투정 어린 목소리가 귀여웠다. 윤가영이 지금 느끼는 감정에 공감하고 아파해야 할 거 같은데 윤가영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자칫하면 웃음이 입꼬리에 걸쳐질 것만 같았다.
왼손으로 윤가영의 등을 토닥이면서 오른손으로 윤가영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윤가영이 말없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 때문에 눈물지으면서도 내 품에서 안정하는 윤가영이 가엾으면서도 고마웠다. 쓰레기 같은 나를 변함없이 아껴주는 윤가영을 정말 평생토록 책임져야 할 거였다.
윤가영이 내 가슴팍에서 이마를 떼고는 양손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그러고는 말없이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봤다. 눈물 흘리느라 상기된 얼굴이 안쓰럽고 예뻤다. 윤가영의 입술이 열렸다.
“수아가 밤에 찾아간 거예요...?”
“네. 근데 제가 흥분해서 못 밀어낸 거니까 제 잘못이에요.”
“...”
윤가영이 다시 내 품에 안기면서 두 팔로 나를 꼬옥 조여왔다. 윤가영의 가슴이 짓눌려왔다. 너무 자극적이었다.
“나빴어...”
“미안해요.”
“흐으응...”
콧소리를 내는 게 강아지 같았다. 왠지 윤가영은 내가 어떤 잘못을 해도 언제나 사랑해줄 듯했다. 아니, 아마 그럴 거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여자친구들이 다 그랬다. 세은이도 지수한테 의지하고 입술을 맞댄 나를 용서해줬고, 지수도 자기를 기만하고 선우랑도 해버린 나를 용서해줬다. 선우도 윤가영이랑 한 나를 용서해줬고, 윤가영도 자기 딸이랑 한 나를 용서해줬다. 수아도 내가 윤가영을 포함해서 여자친구가 네 명이나 있다고 했는데도 별 질타 없이 넘어갔다. 모두가 나를 버리는 대신 관용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랑하는 거였다.
내가 대체 뭐라고. 넘치도록 사랑받아 마땅할 여자들이 모든 걸 양보하면서까지 나만을 바라볼까. 나는 지금 있는 여자친구 중 한 명과도 사귈 자격 없는 놈인데. 이토록 과분하게 사랑받는다는 게 죄스러웠다.
윤가영을 안은 왼팔에 더 힘을 줘 꽈악 안았다. 오른손으로 윤가영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목이 메었다. 억지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요...”
“...”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윤가영이 오른손을 들어 내 왼볼을 쓰다듬었다.
“왜 울어요...”
“... 나 지금 눈물 안 흘리지 않아요?”
윤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슬픈 건 맞는 거죠...?”
“...”
윤가영의 눈에 측은함이 물들었다. 지금 가장 아프고 가장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본인인데. 미련하리만치 착해빠져 있었다. 윤가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왜요...?”
“당신한테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끔찍한 놈인데...”
“아니에요...!”
윤가영이 다그치듯 답했다. 더 말할 게 있었는데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여보가 사랑받을 자격 없는 거면 저는 뭔데요... 새엄마면서 이미 여자친구 있는 새아들 유혹하고, 사랑받으려고 아양 부리는 사람인데...”
“아니에요...”
“맞잖아아...”
윤가영이 앙탈 부렸다.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어지러울 지경인데 윤가영이 너무 귀엽다는 생각이 다른 모든 걸 흐리는 느낌이었다. 윤가영의 이마에 입술을 맞췄다. 윤가영이 히끅, 하고 딸꾹질했다.
“으응...”
끼잉대는 소리가 너무 귀여웠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까 목멘 소리를 낸 사람이 웃는다니. 분명히 우스워 보일 거였다. 그런데 도저히 얼굴 근육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히꾹...”
미치도록 사랑스러웠다. 두 팔로 윤가영의 허리를 감아 조심히 안아 들었다.
“히끅...”
윤가영이 딸꾹질하면서도 빠르게 내 어깨 위로 두 팔을 감아서 안겨 왔다. 두 팔에 반동을 줘 윤가영의 몸을 조금 더 위로 올리면서 자세를 안정시켰다. 눈높이가 조금 맞춰졌다. 윤가영의 왼볼에 입술을 맞췄다. 윤가영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다 금방 또 히꾹, 하고 딸꾹질했다. 웃음이 나왔다.
“웃지 마아...”
“귀여운데 어떻게 안 웃어.”
“흐응...”
윤가영의 오른 볼에 입술을 맞췄다. 윤가영을 안은 채 한 발 한 발 걸음을 떼 침대로 갔다. 그대로 상체를 조심히 기울여 윤가영을 조심히 침대에 안착시켰다. 내 몸을 감았던 윤가영의 두 팔이 스르르 흘러내려 두 팔이 침대에 늘어졌다. 윤가영이 오른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
“히끅...”
딸꾹질하느라 몸이 약간 들썩이는 게 너무 귀여웠다. 상체를 세우고 입을 열었다.
“물 가져다줄까요?”
윤가영이 고개를 저었다.
“옆에 있어줘요... 히끅...”
“알겠어요.”
윤가영의 왼편에 앉았다. 윤가영이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고 고개 숙여 히꾹, 하고 딸꾹질했다.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딸꾹질 멈추는 법 알아요...?”
“음, 혀를 좀 길게 잡아당기고 있으면 된다고 했던 거 같아요.”
“으응... 히꾹... 근데 그건 좀 추해보일 거 같은데...”
“한다고 하면 안 볼게요.”
“... 그럼 잠깐만 고개 돌리고 있어요.”
살폿 웃었다.
“알겠어요.”
윤가영의 얼굴이 뾰로통해졌다.
“... 왜 웃어요... 자기가 알려줘 놓구...”
“그냥 여보가 혀 잡아당기는 거 상상하니까 귀여워가지고 웃음 나왔어요.”
“흐응... 히꾹...”
“빨리 해요.”
“여보나 고개 돌려요.”
토라진 듯한 어투도 귀여웠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잠시 침묵이 방 안을 메웠다. 언제 돌아보면 될까. 빨리 다시 얼굴을 마주 보고 싶었다.
“아아아... 히꾹...”
고개를 돌렸다. 윤가영이랑 눈이 마주쳤다. 윤가영이 멋쩍은 듯 히 웃었다. 순간 윤가영의 혀끝에 침이 맺혀있는 게 언뜻 보였다.
“좀 짧게 잡았나 봐요...”
“다시 고개 돌릴까요?”
“히꾹... 네...”
“알겠어요.”
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속에 뜨거운 게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불길이라도 되는 것처럼 점점 더 거세져 갔다. 윤가영을 덮치고 싶었다. 고요함 사이에 끼어서 속만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아...”
“됐어요?”
“네...”
“돌아볼게요.”
“네...”
고개 돌려 윤가영을 바라봤다. 고개를 왼쪽 아래로 내려 바닥을 보고 있던 윤가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울음기도 옅어지고 발그레해진 볼만 남아서 한없이 예쁘고 색정적이었다. 윤가영이 다시 멋쩍은 듯 히 웃었다.
“저 바닥에 침 흘렸어요...”
참을 수 없었다. 상체를 기울이면서 왼팔로 윤가영의 허리를 감으며 윤가영의 입술을 덮쳤다. 윤가영이 눈웃음 지으면서 입술을 마주 애무해왔다.
“아움... 쮸읍... 츄읍...”
윤가영이 엉덩이를 옮겨 내 옆에 바짝 붙으면서 두 팔로 내 허리를 감아왔다. 나도 양팔로 윤가영을 꼬옥 안았다.
“쯉... 하웁... 쮸읍...”
혀가 얽혀들었다. 바닥을 치던 기분이 치솟아 올랐다. 행복감과 미안함, 배덕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앞으로 남은 나날 동안 계속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며 살게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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