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6화 〉 목요일 귀가 후 (2)
* * *
콜라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을 오물거리는 윤가영이 나를 쳐다봤다. 이수아도 나를 올려보면서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대본 챙기고 내 방 와.”
“너 다 먹고 방 들어갔을 때 문자 보내.”
“어.”
컵을 들고 싱크대 앞으로 가 씻었다. 방에 들어가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지수랑 선우한테 문자를 보냈다. 둘 다 누워있다고 답장해왔다. 밥은 먹었냐고 물었는데 둘 다 아직이라고 했다.
[이따 김치볶음밥 해먹을 예정]
지수 문자였다.
[으응]
[나 이제 요리 도전해볼 생각이야]
[너 요리 잘하니까 나중에 나 알려줘야 돼]
[당연하지]
[응]
[대신에 내가 베이킹 좀 알려줄게]
웃음이 나왔다.
[기대할게]
[뭔가 별로 안 기대하는 눈치다?]
[아냐 텍스트가 내 마음의 뉘앙스를 못 담아서 그래]
[알겠어 함 봐줄게]
[고마워]
[어]
[나 이제 요리하느라 바쁠 거니까 좀 이따 연락해]
[응]
뒤로가기를 눌렀다. 보는데 뭔가 지수랑 선우가 보내온 문자에서 둘이 함께 있다는 느낌이 없는 게 선우는 아직 지수 별장으로 안 가고 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선우한테서 새 문자가 왔다. 눌러서 확인했다.
[넌 뭐 하고 있었어?]
[나 방금 저녁 먹고 쉬고 있었어]
[이제 또 이수아랑 대본 연습해야 돼]
[웅,,, 토요일이 촬영일이랬지?]
[응 그때부터는 가능하면 지수 별장에서 자고 하려고]
이수아한테서 문자가 왔다. 빨리 와, 라고만 쓰여 있었다.
[응응 그럼 그때 나한테도 얘기해주라]
[알겠어]
[나 지금 이수아가 재촉해서 가야 될 거 같애]
[알겠엉]
살폿 웃었다.
[사랑해 선우야]
[나도 사랑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하트 이모지를 보내고 이수아 문자를 열어보는데 선우한테서 하트 이모지가 왔다는 게 상단에 떴다. 왜 이모티콘만 보이는데 귀엽지. 신기했다.
이수아한테 양치하고 감, 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화장실에서 빠르게 양치하고 대본을 챙겨 이수아 방 앞으로 갔다. 왼손으로 노크했다. 들어와, 하고 이수아가 크게 목소리를 내는 게 들렸다. 자세히 들으니 헤어드라이어 소리도 들렸다. 금방 씻었나. 일단 문을 열었다. 바로 좋은 향이 코를 덮쳐왔다. 여자 방은 왜 이렇게 냄새가 좋은 건지. 미스터리였다.
안에 들어갔다. 이수아가 침대에 앉아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머리를 말리고 있었다. 옷은 갈아입었는지 아까랑 다르게 여러 색깔의 삼각형, 사각형, 원이 곳곳에 박힌 푸른색 잠옷을 입고 있었다. 원래는 야하게만 입더니 왜 갑자기 이럴까. 포기라도 했나? 제발 그랬으면 좋겠는데.
“거기 서서 뭐해?”
계속 머리를 말리는 이수아가 큰 목소리로 물었다.
“걍 너 구경.”
이수아가 피식 웃고 헤어드라이어를 꺼서 나를 올려봤다. 살짝 부스스한 머리가 이수아를 이수아 나이 대의 애로 보이게 했다. 그러니까, 그냥 영락없는 중학생 애였다. 문을 닫고 이수아의 옆으로 가 앉았다.
“당연하게 앉네?”
“그럼 단 데 가?”
“아니?”
이수아가 헤어드라이어 코드를 뽑고 화장대에 내려놓은 다음 내 오른편으로 왔다.
“확실히 내 두상이 좀 예쁘기는 해.”
“뜬금없이?”
“뭐. 오빠가 나 머리 구경했다면서.”
“그건 맞지.”
“그럼 내가 말한 게 맞잖아.”
픽 웃었다.
“그래. 그렇다 해.”
“그렇다 해는 무슨.”
이수아가 두 손을 침대에 대고 그대로 몸을 굴려 드러누웠다.
“아. 좋다.”
“대본 연습하자면서.”
“해.”
“너 대본은?”
이수아가 오른손을 뻗어 침대에 있던 자기 대본을 쥐고 펄럭거렸다.
“있잖아.”
“어. 뭐 할 건데.”
“나 그거 하고 싶어. 그, 그 뭐였지.”
“걍 대본을 보고 말해.”
“응.”
이수아가 양손으로 대본을 들고 페이지를 넘겨댔다. 좀 시간이 걸릴 거 같은데. 폰을 잡아들었다.
“아 뭐해.”
“너 할 데 고르고 있잖아.”
“그래도 매너가 아니잖아. 폰 내려놔.”
“어.”
폰을 침대 옆 테이블에 놓았다. 이수아가 대본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오빠는 뭐 하고 싶은 장면 없어?”
“어.”
이수아가 입술을 삐죽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삐쳤어?”
“어. 오빠 평소에도 그렇게 존나 의욕 없고 비협조적이야?”
“아니. 그리고 따지고 들면 지금도 협조적인 거야.”
“아닌 거 같은데.”
이수아가 대본집을 말아 꾹꾹 눌렀다.
“여기 하자.”
“뭐 어디.”
“와서 봐봐.”
콧숨을 내쉬었다. 침대에 눕고 이수아의 대본을 보려 했다. 이수아가 대본을 자기 가슴팍으로 끌어서 두 팔로 안아 숨겼다. 이수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뭐하는데?”
“좀 더 옆으로 붙어.”
“왜 또 굳이.”
“떨어져 있음 보여주기 불편하니까.”
“걍 들면 다 보이는데 뭐가 불편하다고 그러는데.”
이수아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막 일일이 다 따지지 말고 걍 붙으면 안 돼? 내가 그렇다고 하는 건데.”
“근데 내가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떡해.”
이수아가 치, 하고 소리 냈다. 진짜 유치하다 싶었다. 한편으로는 나도 못지않게 유치해지고 있는 것도 같았다.
“걍 빨리 보여줘.”
“알겠어.”
이수아가 대본을 들어서 보여줬다. 키스신일까 했는데 그냥 정하윤이랑 이윤우만 나와서 뜻이 애매모호한 말을 주고받는 일반적인 장면이었다. 뭔가 기분이 미묘했다. 얘가 진짜 날 꼬이는 걸 포기한 건지 방법을 달리하기로 마음먹은 건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이수아가 의아하다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안 할 거야?”
“아니.”
상체를 세우고 침대 머리에 베개를 세웠다. 등을 붙이고 대본집을 내려봤다. 이수아도 일어나서 내 옆에 베개를 세우고 등을 붙였다. 약간 얼떨떨한 상태에서 대사를 뱉었다. 이수아도 바로 받아쳤다. 그냥 정상적으로 하려는 듯했다. 싫은 건 아닌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쭉쭉 장면을 진행하다 보니 다른 캐릭터도 등장하는 신이 나왔다. 이수아를 쳐다봤다.
“이런 데는 걍 건너갈까?”
“음, 그러지 말고 여자는 내가 하고 남자는 오빠가 하는 거 어때.”
“그래.”
“어. 바로 하자.”
“응.”
나는 이윤우가 됐다가 머리가 까진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이윤우의 부랄친구가 되기도 했다. 이수아는 정하윤이었다가 이서은이었다가 정하윤의 어머니가 되었다. 이수아는 다른 캐릭터를 할 때는 다 웬만큼 잘 소화를 했는데 유독 정하윤 어머니 캐릭터를 할 때만 실없이 웃음을 터뜨려 댔다.
“너 왜 그 캐릭터 할 때만 몰입 깨져?”
“아니 그냥 우리 엄마도 생각나고, 내가 어떤 의미에서 내 엄마 된다고 생각하니까 속에서 약간 붕괴 와 가지고.”
“으음.”
“됐고 계속 이어서 하자.”
“어.”
이어서 대사를 쳤다. 왠지 대본 리딩을 할 때보다 더 빨리 목이 말라가는 느낌이었다. 신이 끝나는 지점에서 나 물 좀, 이라고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방을 나서고 주방으로 갔다. 일단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컵에 물을 가득 채워 돌아갔다. 이수아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좀 쉬고 싶어졌나. 나도 좀 힘들던 차였다. 침대에 걸터앉고 테이블에 컵을 놓으려는데 이수아가 상체를 일으키고 양팔을 뻗어왔다.
“나도 마실래.”
“응.”
컵을 이수아한테 건넸다.
“고마워.”
이수아가 잔을 양손으로 받아 꼴깍꼴깍 마시고 다시 나한테 줬다. 컵을 도로 내려놓고 나도 침대에 드러누웠다. 이수아가 히 웃었다. 복장 때문인가 새삼스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왜 웃냐?”
“걍 오빠가 아무 말 없이 눕는 게 웃겼어.”
“그게 왜?”
“몰라? 그냥 서로가 약간 익숙해진 느낌이 든다는 게 미묘해서 그런가? 암튼.”
“... 개 이상하네.”
“어, 그런 발언 하면 안 되지. 이제 공인될 건데.”
“뭐가.”
“게이가 상한다 했잖아. 성소수자 차별 발언하면 큰일 나는 거 몰라?”
피식 웃었다.
“진짜 미쳤냐.”
이수아가 히히 웃었다.
“좆 까.”
이수아가 갑자기 몸을 뒤집어 내 몸 위로 몸을 포갰다. 이수아의 가슴이 짓눌려오면서 잠옷의 얇은 면 너머로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브라를 안 입었구나. 순간 살짝 띵했다. 이수아가 입술을 덮쳐왔다. 더없이 부드러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댔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더운 숨을 내뱉었다. 양손으로 이수아의 얼굴을 붙잡고 다시 고개를 돌려 이수아를 바라봤다.
“존나 장난해?”
“왜. 있는 장면이잖아.”
속이 끓어올랐다. 와중에 머리는 기억 한편에서 이수아가 말한 신의 대본을 착실히 건져 올렸다. 정하윤이 좆 까라고 말하는 건 맞지만 적어도 둘이 같이 누워서 입술을 포개는 신은 아니었다.
“뭐 할 거면 말을 하고 해.”
“어차피 오빠도 아는데 굳이 말할 필요 있어?”
“최소한 맘의 준비는 해야 할 거 아냐.”
“알겠어. 근데 이미 됐잖아. 빨리 놔줘 나 힘들어.”
어이없었다.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려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고개가 살짝 젖혀져 있으니 힘들기는 할 것 같았다. 손을 놔줬다. 자유로워진 이수아가 양손으로 내 볼을 감싸고 곧바로 다시 입술을 포개왔다. 이게 진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이대로 뒤집어서 밑에 깔아뭉개고 덮쳐버리고 싶었다.
“아움... 쯉...”
이대로 해도 되나? 키스 정도는 이미 몇 번 했으니까 되지 않을까. 아니 뭔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입속으로 이수아의 혀가 들어왔다. 내 혀가 이끌리듯 얽혀들었다. 침이 뒤섞였다. 존나 흥분됐다. 온몸이 달아올랐다. 미칠 것 같았다.
“츄읍... 우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연기인 건가.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냥 이대로 키스만 하고 싶었다.
“쮸읍... 츄읍... 하웁...”
이수아가 내 얼굴을 잡던 두 손을 뗐다. 이수아의 왼손이 내 오른 가슴을 더듬고 오른손이 내 왼 허벅지를 쓸었다.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양팔로 이수아를 안고 몸을 돌려 옆으로 눕혔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이수아가 계속 내 입술을 쪽쪽 빨아왔다. 존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랫도리가 이수아를 향해 치솟아댔다. 이러면 안 됐다. 양손으로 이수아의 양팔을 붙잡아 침대에 붙이고 밀어내면서 상체를 일으켰다. 키스에 열중하던 이수아가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할 때마다 이수아의 가슴이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주무르고 싶었다.
“하아... 왜...?”
“... 아냐. 안 돼 수아야.”
“...”
안 그래도 달아올라 있던 이수아의 얼굴이 조용히 붉어졌다.
“뭐가.”
“안 된다고.”
“...”
“이건 아냐, 진짜로.”
“... 꺼져 그럼.”
“... 어.”
이수아가 다시 못 달려들게 조심하면서 침대에서 내려갔다. 그대로 대본이랑 컵도 안 챙기고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문을 닫아 잠갔다. 숨이 거칠었다. 바지가 너무 불편했다. 팬티랑 같이 바로 벗어버렸다. 자지가 바짝 서 있었다. 귀두도 이미 쿠퍼액으로 촉촉하게 젖어있었다. 충동적으로 화장실에 들어가 오른손을 뻗어 자지를 잡고 존나 흔들었다. 눈을 감고 이수아의 모든 것을 되새겼다. 이수아가 뿜는 향, 입술 감촉, 목소리, 달콤한 숨, 눈빛, 홍조, 가슴. 야하다는 말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이수아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키스하고 벗기고 젖어있는 보지에 내 걸 넣어주고 싶었다.
“하아...”
사정감이 몰려왔다. 바로 분출했다. 눈을 떴다. 자지가 계속 껄떡거리면서 정액을 쏟아내는 탓에 화장실 벽이 정액으로 칠이 되어갔다. 씨발. 자괴감이 몰려들었다. 왜 이렇게 꼴리지. 내가 개새끼인가. 착잡했다. 샤워기를 집어 들어 자지에 물을 끼얹었다. 정액이 묻은 벽이랑 바닥에도 물로 씻어내려 배수로로 흘려보냈다. 곱씹어보면 이수아한테도 죄가 있었다. 나만 쓰레기라 하기에는 이수아가 너무 요망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