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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375화 (374/438)

〈 375화 〉 목요일 귀가 후 (1)

* * *

집 문 앞에 섰는데 한숨이 나왔다. 이수아가 또 연습한답시고 발칙하게 굴 거 같은데. 걱정이 차올랐다. 발뒤꿈치로 밀어서 신발을 반쯤 벗어놓고 문을 열어 들어갔다. 허리를 숙여 신발을 빨리 벗고 내 방 쪽으로 급히 걸어 들어갔다. 문을 잠그고 가방을 내려놓았다. 교복을 벗은 다음 화장실에서 씻었다. 반 팔 반바지로 옷을 갈아입어 침대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이제 오늘이랑 내일만 연습하고 나면 토요일부터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니까 지수 별장으로 가서 잘 수 있을 거였다. 그때까지만 좀 참으면 더는 힘든 일이 딱히 없을 거였다.

왼편에서 폰이 진동했다. 왼손으로 들어봤는데 이수아가 문자를 보내온 거였다.

[집?]

[어]

바로 숫자가 사라졌다, 작성 중 표시가 떴다.

[이번엔 오빠가 내 방으로 와]

[귀찮은데]

[아니 ㅈㄴ 맨날 내가 갔잖아]

[오늘은 오빠가 와야지]

[나 집 온 지 별로 안 돼서 아무것도 하기 싫어]

[걍 빨리하고 쉬어]

[싫어]

[그냥 밥 먹고 하면 안 돼?]

[아니 ㅈㄴ]

[진짜 밥 먹고 나서 할 거면 자기 전까지 계속해야 돼]

[그건 조금]

[뭐가 그건 조금이야]

[이틀 뒤가 촬영일인데]

[그렇게 귀찮으면 아예 촬영하는 날에도 귀찮다고 안 나가고 할 거야?]

[그건 아니지]

[왤케 오바해]

[오빠가 ㅈㄴ 짜증나게 하잖아]

[빨리 와 개 화내기 전에]

지금 가면 진짜 기 빨릴 거 같은데.

[그냥 이따 밥 먹고 나서 시작하자]

바로 답장이 안 왔다. 작성 중 표시가 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더니 뒤늦게 답장이 왔다.

[그럼 진짜 바로 해야 돼]

[그래도 한 20분 정도는 쉬고 하자]

[ㅈㄹ]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수아가 절로 떠올랐다. 픽 웃음이 나왔다. 잘은 몰라도 꽤 심술이 나 있을 것 같았다. 아 그런데 그럼 이따 밥 먹고 나서 더 피곤하게 하려나. 마냥 웃을 일은 아닌 듯했다.

일단 밥을 최대한 나중에 먹어야 이수아가 이상한 짓을 못 할 거였다. 뒤로가기를 누르고 윤가영한테 문자 보냈다.

[나 집 왔어요]

이어서 타이핑하는데 숫자가 사라졌다. 폰을 보고 있던 모양이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전화해도 돼요?]

웃음이 나왔다. 별 꾸밈 없는 문자에 윤가영의 목소리가 묻어나는 것 같았다. 통화 아이콘을 눌러 전화 걸었다. 바로 연결됐다.

“여보세요.”

ㅡ여보세요.

나긋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사람을 안심시키는 감이 있었다.

“여보.”

ㅡ히... 네, 여보.

살폿 웃었다. 그냥 올라가서 대면할까. 보고 싶은 마음이 솟아올랐다.

“이따가 밥 먹고 나서 수아랑 대본 연습 시작하기로 했으니까, 우리 저녁 조금 늦게 준비하기로 해요.”

ㅡ네... 그럼 한 일곱 시 반쯤에 할까요?

“좋아요.”

ㅡ알겠어요. 근데 우리 수아가 배고프다고 하면 어떡해요?

“그땐 그냥, 오늘 왠지 모르게 피곤한데 좀만 이따 하면 안 될까? 이런 식으로 얘기해요.”

ㅡ으응, 그래도 수아가 계속 배고프다고 하면 주방으로 가게 될 거 같아요...

확실히 딸이 배고프다는데 외면하기는 어려울 거였다. 그런 짓을 하기에는 윤가영이 너무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때는 당연히 괜찮죠.”

ㅡ히.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네. 그때까지 나 시간 좀 남는데. 내가 올라갈까요?”

ㅡ아, 저 씻어야 될 거 같은데 좀만 이따 올라와 줄 수 있어요...?

“알겠어요. 다 씻으면 전화해요.”

ㅡ네... 이따 봐요.

“그래요. 끊을게요.”

ㅡ네... 사랑해요.

웃음이 나왔다.

“나도 사랑해요 여보.”

ㅡ히... 알겠어요... 이따 봐요.

“그래요.”

전화를 끊었다. 빨리 올라가서 보고 싶었다. 수아가 있는 탓에 같은 공간에 있어도 좀처럼 함께하지 못하니 갈망이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검은 화면을 괜히 만지작거렸다. 그러는데 갑자기 알아서 켜졌다. 문자가 왔다는 표시가 떴다. 윤가영일 리는 없는데 누구지. 일단 잠금을 풀고 상태바를 내렸다. 이수아였다.

[배달 주문한 거 왔대 나가주라]

갑자기 뭔 배달이라는 거지.

[뭐 시켰는데?]

[치킨]

[오빠 오기 전에 시켜놨어]

아니 무슨.

[왜?]

[그냥 먹고 싶어서 시켰지]

[그리고 저녁 먹는데 너무 시간 뺏기는 거 같아서 먼저 먹어두고 할 생각이었어 원래]

미친.

[뭔데 철두철미하냐?]

[뭐래]

[빨리 나가서 받아 배달원 기다릴 건데]

[아니 받을 거면 네가 받아야지 날 시키냐]

[지금 못 나가?]

[아니. 나갈게]

[응 고마워(홍조를 띠고 미소 짓는 이모티콘)]

헛웃음이 나왔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고 현관으로 갔다. 지금 치킨을 받아서 먹으면 윤가영이랑 있을 시간도 없게 되는 건데. 허탈했다. 저녁을 먹고 연습하자고 내가 얘기를 꺼냈으니 뭐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짜 제대로 낚였다 싶었다. 슬리퍼를 신고 문을 열어 대문으로 달려갔다. 배달원한테 봉투를 건네받고 도로 집 안에 들어갔다. 주방 쪽으로 갔다. 흰 끈민소매에 분홍 돌핀팬츠를 입고 있는 이수아가 싱크대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어깨에 민소매 끈 말고도 다른 끈이 하나 있는 게 이번에는 브라를 잘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테이블에 봉투를 내려놓고 무랑 치킨을 꺼냈다. 이수아가 마른행주에 물기를 닦고 뒤돌아봤다.

“엄마는 불렀어?”

“아니.”

“엄마랑 얘기 잘 안 해?”

“... 어.”

이수아가 눈썹을 치켜세우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왜 뜸들여?”

“걍 네 어머니인데 말 잘 안 섞는다고 하기 쉽지는 않잖아.”

“으음. 그래.”

이수아가 자리에 앉았다. 싱크대로 가서 손을 씻은 다음 이수아 맞은 편으로 가 의자를 꺼내 앉았다. 폰을 오른 귀에 갖다 대고 있던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왜 거기로 가?”

“걍.”

이수아가 입술을 삐죽였다가 오른손을 내려 핸드폰을 봤다.

“엄마 왜 전화 안 받지.”

“몰라. 자거나 하겠지.”

“으음. 나 그럼 일단 올라갔다 올게.”

“어.”

이수아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이윽고 이수아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럴 게 아니었는데. 착잡했다. 박스를 열었다. 순살이었다. 식사에 시간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박스를 닫았다. 컵 세 잔에 콜라를 따르고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이수아랑 윤가영을 가만히 기다렸다. 시간이 얼마 안 지난 거 같은데 서로 팔짱을 끼고 있는 이수아랑 윤가영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윤가영은 머리를 채 말리지 못했는지 멀리서 봐도 머리카락이 촉촉했다. 옷차림은 검은 박스티에 검은 트레이닝 바지였다. 몸매가 잘 부각이 안 되는 게 아무래도 이수아가 야한 느낌이 안 들게 단속한 듯했다. 이수아도 진짜 독한 애였다.

“먼저 먹고 있지.”

이수아가 걸어오면서 말했다.

“걍 혼자 먹고 있음 좀 그렇잖아.”

“으응.”

이수아가 자연스럽게 윤가영의 왼팔을 풀어주면서 내 오른편 의자에 앉았다. 윤가영이 내 왼편에 앉았다. 살짝 젖어있는 것만으로 처량한 느낌이 드는데 표정까지 조금 어두웠다. 나랑 같이 있을 시간이 증발해버렸다는 게 슬픈 모양이었다. 나도 울적해져야 할 거 같은데 윤가영이 시무룩한 게 너무 귀여워서 우울함이 상쇄되는 느낌이었다.

“목욕하는데 이수아가 억지로 끌고 왔어요?”

“응...?”

윤가영이 살폿 웃었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응? 엄마! 뭐야!”

윤가영이 고개 돌려 이수아를 바라봤다.

“왜애, 맞잖아. 빨리 나오라고 하구 그랬는데.”

“그건 맞는데, 내가 막 억지로 엄마 씻는데 억지로 멈추고 한 거는 아니잖아.”

“그치... 근데 머리 말릴 시간도 안 주고 끌고 왔잖아.”

“식으면 안 되니까 빨리 가자 한 거지. 암튼 빨리 먹자.”

“으응...”

이수아가 나무젓가락을 뜯어 오른손에 쥐고 박스를 열었다. 윤가영이 나무젓가락을 나한테 건네줬다. 양념치킨 한 조각을 집어 든 이수아가 윤가영을 봤다가 왼손으로 밑을 받치면서 내 입 앞에 치킨을 갖다 댔다.

“뭐해?”

“주는 거잖아. 아 해.”

“알아서 먹을게.”

“어. 딱 이것만 먹고 알아서 먹어.”

“... 어.”

입을 벌렸다. 이수아가 내 왼입가에 양념을 묻히고 입속에 넣었다. 입을 다물고 우물거렸다. 이수아가 내 얼굴을 보면서 히 웃었다. 웃는 모습이 윤가영이랑 닮아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윤가영이 순수하다면 이수아는 짓궂었다는 거였다.

이수아가 오른손을 뻗어왔다. 상체를 뒤로 물려 피했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뭐해.”

“오빠는?”

“너 이상한 짓 할까 봐 피했지.”

“아냐 걍 닦아주려 한 거야.”

윤가영이 휴지를 뜯어 내게 건네줬다. 왼손으로 받았다.

“고마워요.”

입술을 닦았다. 이수아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진짜 개노잼.”

“뭐가.”

“걍 하는 짓이 재미가 없잖아.”

흥, 하고 코웃음 쳤다.

“먹기나 해. 밥 먹을 때 장난치지 말고.”

이수아가 눈을 찡그리면서 입술을 삐죽였다. 대충 못 본 체하고먹던 걸 마저 씹어서 넘겼다. 이수아도 간장 치킨을 한 조각 입에 넣어 겨우 조용해졌다. 윤가영도 양념치킨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시선이 마주쳤다. 윤가영이 순간 눈을 찡그려 애교스러운 표정을 짓고 고개를 돌려 콜라가 담긴 잔을 내려봤다. 이마에서 콧대랑 입술을 타고 턱까지 이어지는 옆얼굴 선이 고왔다. 윤가영이 우물거릴 때마다 볼이 조금씩 움직이는 게 귀엽기 그지없었다. 꼭 껴안고 싶었다.

이따 이수아랑 대본 연습을 마치고 새벽에라도 찾아가 봐야 할 듯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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