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1화 〉 오랜만에 지수랑 단둘이서 (1)
* * *
하회탈이 종례를 마치고 바닥을 내려보면서 문 쪽으로 걸어갔다. 하회탈이 뒤를 돌아보면서 입을 열었다.
“주번, 빗자루로 반 한 번 쓸고 가.”
“네.”
하회탈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반을 나갔다. 나갈 준비하고 있던 애들이 우수수 반을 빠져나갔다. 백지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안 까먹었지, 하고 묻는 느낌이었다. 살폿 웃으면서 오른손으로 가방을 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지수도 일어나서 가방을 멨다. 어느새 가방을 멘 송선우가 내 오른편으로 왔다.
“나가자.”
“응.”
백지수랑 송선우하고 같이 반을 나섰다. 너무 같이 다니는 거 아닌가 해서 이래도 되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셋이서 다니는 거라서 별 의심을 살 리 없겠다 싶기도 했다. 그냥 하교할 때만큼은 이대로 쭉 다녀도 될 듯하기도 하고. 살짝 긴가민가했다.
송선우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내 얼굴을 보고 입을 열었다.
“뭔 생각해?”
“그냥 하교하는 거 잠깐 생각했어.”
송선우가 살폿 웃었다.
“으음, 뭔지 알겠다.”
“응.”
“걍 걸어가면 되지 뭐.”
살폿 웃었다. 백지수도 흥, 하고 콧소리를 냈다. 셋이서만 아는 암호를 주고받는 느낌이라 약간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그치.”
본관을 빠져나왔다. 왼주머니에서 폰이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꺼내서 잠금을 풀었다. 백지수가 나를 쳐다봐왔다.
“누구야?”
“잠만.”
상태바를 내렸다. 맨 위에 강성연이 문자를 보냈다는 알림이 있었다. 말하면 지수가 싫어할 거 같은데. 안 할 수도 없고. 일단 얘기해야 할 거였다. 입을 열었다.
“강성연이야.”
“아.”
백지수가 표정을 구기면서 짧게 소리를 내면서 정문 쪽을 봤다. 따라서 시선을 옮겼다. 강성연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 강예린이 태워주는 곳에서 서 있는 모양이었다.
“나 문자 좀 볼게.”
“어.”
강성연이 보낸 문자를 눌렀다.
[너 오늘 집 어케 감?]
또 태워주려고 하는 건가.
[나 오늘 안 태워줘도 돼 고마워]
숫자가 바로 사라졌다. 문자를 쓴다는 표시가 떴다.
[너 어디 가는데?]
[그냥 좀 산책하려고.]
[혼자서?]
[응]
[뭘 혼자 다니냐 넌]
[친구 없어?]
피식 웃었다. 백지수가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뭔 얘기하는데?”
“혼자 산책할 거라고 했는데 왜 혼자 다니냐고, 친구 없냐고 해서.”
백지수가 픽 웃었다. 살짝 가소롭다는 느낌이었다.
정문이 코앞일 때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택시 정문으로 부르자. 아니다, 내가 부를게.”
“응.”
백지수가 폰을 꺼냈다.
“나도 같이 탔다가 중간에 내려줄 수 있어?”
송선우가 물었다. 백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되지 당연히.”
“응. 고마워.”
송선우가 미소 지었다. 내 입꼬리도 같이 올라갔다. 주변에 애들도 있으니 너무 꿀 떨어지는 시선으로 보면 안 될 거였다. 고개 숙여 다시 내 폰을 내려봤다.
[너 지금 뭐 하냐?]
너무 답장을 안 했나. 숫자는 지워졌는데 반응이 없으니 이상할 법도 했다.
[ㄴㄴ]
[네가 말로 때려서 살짝 그로기 걸렸었어]
[ㅁㅊ놈ㅋㅋㅋ]
[친구 없으면 걍 내가 같이 다녀줄까?]
[아냐]
[가끔 그럴 때 있잖아. 진짜 나 혼자 있고 싶을 때]
[있지. 근데 그럴 땐 보통 집에 박혀서 넷플릭스 같은 거 보고 있지 않아?]
[그치. 근데 좀 질려 가지고.]
[ㅇㅇ 그럴 수 있지]
[어]
폰을 왼 주머니에 넣었다. 지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택시 언제 온대?”
“금방 온대. 봤는데 엄청 근처였어.”
“으응.”
“저거 아냐?”
송선우가 말했다. 송선우의 시선을 좇았다. 택시가 감속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어 저거 맞아.”
백지수가 말했다. 천천히 다가갔다. 택시가 정차하고 지수가 뒷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가 중간에 타고 마지막으로 선우가 타서 문을 닫았다. 택시가 출발했다.
“저 중간에 정차해서 저만 내릴 수 있을까요?”
송선우가 물었다. 택시 기사가 예에, 라고 답했다. 송선우가 감사합니다, 라고 하고는 나를 쳐다봤다. 눈을 마주 봤다. 송선우가 왼손 검지 끝으로 내 오른 옆구리를 톡 건드렸다. 꾹 누르지를 않아서 간지럽지 않았다. 살폿 웃었다. 송선우가 코를 찡긋했다가 오른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서 몸을 약간 오른쪽으로 틀어서 내가 보지 못하는 각도로 들었다. 양손 엄지가 분주한 게 문자를 쓰는 느낌이었다. 얼마 안 가 왼 주머니에서 내 폰이 진동했다. 꺼내서 확인했다.
[나중에 우리 집에도 와야 돼]
[엄마아빠 없을 때 부를 테니까]
지수가 나랑 단둘만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게 부러운 건가. 빠르게 키패드를 눌렀다.
[알겠어]
송선우를 바라봤다. 폰을 봤던 송선우가 창문으로 시선을 던지며 모르는 척했다.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게 귀여웠다. 내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했다. 그러면 등교나 드라마 일로 쓰는 시간을 빼고도 여자친구들에게 쏟을 시간이 많아질 텐데. 주어진 시간이 남들과 같다는 당연한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저 저기 버스 정류소 앞에서 세워주세요.”
송선우가 말했다. 택시 기사가 네에, 하고 답하고 감속했다. 택시가 멈추고 송선우가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차문을 열어나갔다. 송선우가 나랑 백지수를 보면서 왼손을 흔들었다.
“낼 보자 지수야, 온유야.”
“응. 내일 봐.”
내가 답했다. 백지수가 이어서 입을 열었다.
“잘 가.”
“응.”
송선우가 차문을 닫았다. 택시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등이 시트에 붙었다.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치는 건물들이 내가 무언가 남겨두고 간다는 인상을 줬다. 아니, 좀 더 명확히 말하면, 내가 행한 결과들이 그대로 남아 결코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왜 갑자기 이렇게 감상적으로 된 거지. 기분이 묘했다. 고개를 돌려 백지수를 바라봤다. 지수는 왼쪽 창문을 보고 있었다. 뭔가에 초점을 두고 있는 느낌은 아니고 그냥 별생각 없이 내다보는 것 같았다.
백지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뭐 할 말 있어?”
살폿 웃었다.
“아니. 너 뭐 보고 있나 해서.”
“나 걍 멍 때렸어. 살짝 졸려 가지고.”
“으응.”
백지수가 흥, 하고 콧소리를 냈다. 눈꼬리가 살짝 휘어지는 게 사랑스러웠다.
“너도 좀 나른하지 않아? 나 요즘 약간 춘곤증 오는 거 같은데.”
“글쎄. 난 좀 괜찮은 거 같아.”
“흠, 그래?”
“응. 근데 날씨 되게 풀리긴 했어.”
“그니까. 나 점심 먹고 나서 수업 듣다가 춘곤증이랑 식곤증 같이 와 가지고 잘 뻔했잖아.”
살폿 웃었다.
“넌 안 그래?”
“사실 나도 잘 뻔했는데 너 앞에서 자꾸 꾸벅이는 거 보고 웃겨서 못 잤어.”
“뭐?”
백지수가 입꼬리를 올리고 오른 팔꿈치로 내 왼팔을 툭 쳤다. 눈웃음 지었다.
“왜.”
“아니, 뭐 잠 깨게 뒤에서 한 번 찌르든가 했어야지.”
“그랬으면 너 짜증 나지 않았을까?”
“네가 쉬는 시간에 내가 짜증 내는 거 받아주면 되잖아.”
살폿 웃었다.
“그것보단 애초에 짜증 안 나게 하는 게 낫지 않아?”
“몰라. 걍 괘씸해.”
“미안해.”
“됐어.”
백지수가 왼쪽 차창을 내다봤다. 옆얼굴이 보였다. 왠지 미치도록 귀여웠다. 별장에 들어가면 바로 뽀뽀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새 택시가 정차했다. 별장 바로 앞은 아니었다. 택시기사가 같이 산다는 생각은 못 하게 하려고 일부러 조금 떨어진 곳으로 지정한 모양이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차에서 내렸다. 백지수가 뒤따라 나왔다. 나란히 걸어갔다. 뒤에서 택시가 떠나갔다. 백지수가 고개를 돌려 봤다가 마이 안주머니에서 키링을 꺼내고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대문 앞에 다다랐을 때 백지수가 열쇠를 다시 꺼내 열었다. 살짝 거리를 유지한 채 서서 백지수를 따라 들어가고 대문을 닫았다. 백지수가 바로 집 문을 열어 안에 들어가 신발을 벗었다. 밖에서 발뒤꿈치를 써 신발을 조금 벗겨놓는데, 어딘가에서 익숙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냐아, 하는 게 약간 애처로운 게 바로 누구인지 감이 왔다.
“잿더미다.”
“데려와.”
백지수가 뒤도 안 돌아보고 말했다.
“응.”
주변을 둘러봤다. 아주 높지 않은 담 위에 잿더미가 도도하게 서 있었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가가서 양팔을 뻗었다. 잿더미가 얌전히 내 손에 들렸다. 품으로 가까이 안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내려놓았다. 신발을 벗고 문을 닫아 잠그고 다시 잿더미를 안아 들어 거실로 갔다. 롱소파에 백지수가 왼 팔걸이에 팔을 올려놓고 등을 푹 기댄 채 앉아있었다. 마이랑 가방은 왼팔걸이 옆에 내려 놓여 있었다. 백지수에게 잿더미를 건넸다. 백지수가 두 손으로 잿더미를 받아들고 무릎 위에 앉혔다. 나도 가방이랑 마이를 빼서 바닥에 놓고 백지수의 오른편에 앉았다. 왼손으로 잿더미의 등을 쓰다듬었다.
“얘는 왤케 뽀송뽀송할까.”
“몰라. 주인이 여럿인가 보지.”
왠지 찔렸다. 멋쩍게 웃었다. 고개를 숙이고 잿더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잿더미가 냐, 하고 울었다. 사랑받는 게 익숙한 듯 보였다. 확실히 잿더미가 우는 모습을 보고도 마음을 내주지 않기는 어려울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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