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8화 〉 월요일, 귀가 후 (3)
* * *
“아 목 존나 마르다 진짜.”
이수아가 나를 쳐다봤다.
“물 있어?”
“아니. 가져와.”
“방에 마실 것 좀 챙겨놓지.”
“됐어. 그런 거 없어.”
이수아가 치, 하고 소리 내고는 침대에서 내려가 방을 나섰다. 뒷모습을 보다가 대본집으로 시선을 돌렸다. 텍스트가 눈에 잘 안 들어왔다. 약간 집중이 깨진 느낌이었다. 괜히 아, 하고 소리 냈다. 소리가 미세하게 갈라졌다. 뭔가 목마른 거 같기도 하고. 이수아한테 내 것도 가져다 달라고 할걸. 그냥 센스 있게 내 것도 챙겨오기를 바라야 할 거 같았다.
달리할 게 없어서 가만히 문 쪽을 봤다. 이내 방문이 열리고 오른손에 컵을 든 이수아가 걸어 들어왔다.
“내 거는?”
“어?”
이수아가 문을 닫으면서 나를 내려봤다.
“가져다 달라고 말 안 했잖아.”
“그래도 센스 있게 내 것도 챙겨줬어야지.”
이수아가 픽 웃고 침대로 와 걸터앉고는 컵에 담긴 걸 한 모금 마셨다. 꼴깍이는 소리가 갈증을 자극했다. 옆얼굴을 따라 목으로 이어지는 선이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청량감마저 느껴지는 게 cf라도 보는 느낌이었다. 일부러 맛있게 마시는 건가. 약올랐다.
“물이야?”
“응.”
이수아가 컵을 침대 옆 테이블에 내려놓고 내 왼편으로 왔다. 이수아가 자기 대본집을 가지고 고개를 살짝 숙여 내려봤다. 물을 금방 마셔서인지 입술이 촉촉해 보였다. 이수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
“왤케 봐. 나랑 또 키스신 하고 싶어?”
“뭐래. 나도 물 달라고 눈치 준 거야.”
“어.”
이수아가 테이블에 놓았던 컵을 왼손으로 잡고 내게 건넸다. 오른손으로 받아서 내려봤다. 물이 반쯤 남아 있었다. 이수아가 입을 댄 반대쪽으로 돌리고 남은 거의 반 정도를 마셨다. 이수아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내가 컵을 입에서 뗐을 때 왼손을 뻗었다. 컵을 건넸다. 이수아가 컵을 원래 놓았던 자리에 돌려 놓고 다시 나를 쳐다봤다.
“나 오빠 목 만져봐도 돼?”
“아니.”
“한 번만.”
“아냐 느낌 이상해, 만지면.”
“아냐 안 이상해.”
피식 웃었다.
“내가 이상하다는데 왜 네가 괜찮다고 해요.”
“아니 그냥 갖다 대보기만 할게. 응? 나 한번 고집 부리기 시작하면 될 때까지 부탁할 거 알잖아.”
“... 어.”
이수아의 눈이 커졌다.
“만져보라고?”
“어.”
“응...”
이수아가 히 웃고 왼손으로 침대를 짚었다. 그 상태로 몸을 내 쪽으로 약간 숙이면서 오른손을 뻗어왔다. 이수아의 오른손끝에 내 목울대에 닿았다. 이수아가 오른손 검지랑 중지를 붙였다 떼기를 반복했다. 힘을 준 느낌은 없었는데 뭔가 느낌이 묘했다.
“된 거 아냐?”
“응...”
이수아가 오른손을 떼고 침대를 짚은 다음 입을 열었다.
“되게 단단하다...”
“뼈니까.”
“으응...”
이수아가 눈을 마주쳐왔다. 올려보는 각도가 절묘했다. 그러니까, 당장이라도 키스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슴도 전체적으로 다 보여서 눕히려고 하면 바로 눕히는 것도 가능해 보였다. 뭔 이런 생각을 다 하는 거지. 한심했다. 얼마 전에 나랑 키스했던 이수아의 입술이 열렸다.
“근데 이게 아담의 사과래.”
“응? 갑자기?”
“뭔지 알아?”
“성경 얘기 아냐? 선악과 먹다가 생겼다고.”
“응. 맞아.”
이수아가 뒤로 물러나서 베개에 등을 붙이고 다리를 굽혀 두 팔로 감쌌다.
“근데 하느님 좀 너무하지 않아?”
“왜?”
“아니, 전지전능하면 하지 말라고 했을 때 사람인 이상 더 하고 싶어 할 것도 알 텐데 그랬던 거잖아.”
“으응. 설득력 있는 개소리다.”
“아니 진짜 개소리 아니지 않아? 아예 몰랐음 별생각 없었을 건데. 만약 손 데려고 하면 그때 가서 먹음 안 돼, 지지야, 하고 먹지 말라고 하면 되고. 아냐?”
“듣고 보니 맞는 거 같기도 하네.”
“그치.”
“응. 근데 진짜 사람들은 다 약간씩은 청개구리 심보 있는 거 같애.”
“그니까. 안 된다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고.”
“응... 근데 넌 좀 그게 심하게 있는 거 같긴 해. 반골 기질 수준으로.”
이수아가 피식 웃었다.
“에반데.”
뭔가 또 계속 수다떨게 될 것 같은데. 그냥 몸을 스르르 내려서 그대로 드러눕고 베개를 끌어 머리를 댔다. 이수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만할까?”
“왜?”
“솔직히 할 만큼 하지 않았어?”
“그래도 촬영 전까지는 최선을 다해야지.”
“흐음. 일단 밥 먹을 때까지는 좀 쉬자.”
“그래.”
이수아가 침대 머리 쪽에서 등을 떼고 베개를 내린 다음 나처럼 누웠다.
“넌 네 방으로 가.”
“나 일어나기 싫어.”
“내쫓는다.”
“왜애. 좀 누워있음 안 돼?”
“어. 나 편히 눕게 비켜.”
“자리 많이 있잖아.”
“난 혼자 있는 게 편해.”
이수아가 흠 하고 소리 냈다.
“해피 타임 필요한 거야?”
“개소리 말고 가라.”
이수아가 히 웃었다.
“진짜 혼자 있어야 돼?”
“어.”
“알겠어. 가줄게.”
이수아가 침대에서 내려갔다. 왼손으로 이수아가 남긴 대본집을 들고 팔을 뻗었다.
“대본집 가져가.”
“어.”
이수아가 오른손을 뻗어 대본집을 받았다.
“컵도 가져가고.”
“물 안 마실 거야?”
“응.”
“응.”
이수아가 문을 열어놓고 왼손으로 컵을 들어 나갔다. 뒷모습을 보는데 자꾸 엉덩이로 눈길이 갔다. 돌핀팬츠랑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가 남자라면 볼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너무 유혹적인 라인을 형성했다. 솔직히 어쩔 수 없었다.
침대에서 내려가 문을 닫고 잠갔다. 다시 돌아가 침대에 누웠다. 천장 무늬를 보는데 이수아의 몸매가 생각났다. 괜히 키스했을 때 느꼈던 입술 감촉도 떠올랐다. 미칠 것 같았다. 자위라도 해야 하나. 평소에 이수아를 보기 전후에는 미리 자위를 해둬서 성욕을 잠재워놓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숨이 나왔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다 하는 거지. 살짝 탈력감이 들었다. 내가 성욕에 미친 괴물인 건지 이수아가 인간 서큐버스인 건지.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제 할 게 뭐 있지. 밥 먹기 전까지는 딱히 뭔가 할 게 없었다. 그냥 위로 올라가서 윤가영을 볼까. 근데 이수아한테 들킬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살짝 난감했다. 그냥 폰을 손에 쥐고 윤가영한테 전화 걸었다. 수신음이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금방 연결됐다.
“여보세요.”
ㅡ응. 끝났어?
목소리가 너무 발랄했다.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끝났어요. 이제 저녁 먹고 또 할 거 같아요.”
ㅡ으응... 좀 천천히 식사 준비할까?
“그래도 괜찮구요. 근데 수아 있잖아요.”
ㅡ응... 수아가 뭐 했어...?
“딱히 뭐 한 거는 없어요. 그냥 걔가 브라 안 입고 와서 내쫓아 가지고 다시 입고 오게만 했어요.”
ㅡ으응... 내가 혼내야겠다...
살폿 웃었다.
“네. 그럼 제가 일단 밥 먹을 때 말 꺼낼게요. 따로 연락해서 안 거면 수아가 왜 이리 가까워졌냐고 좀 의심할 수 있으니까.”
ㅡ알겠어... 지금 올라올 수는 없는 거지...?
“네. 수아한테 들킴 좀 난처해서. 근데 일단 가고 둘러댈 수도 있죠. 노브라 입은 거 이르러 온 거다, 그렇게.”
ㅡ으응...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일단은 보면 안 되겠다...
“알겠어요.”
ㅡ응... 이따 저녁 먹을 때 보자.
“네. 끊을게요.”
ㅡ응...
윤가영은 대답할 때 목소리가 왜 이렇게 귀여울까. 살폿 웃었다.
“사랑해요.”
ㅡ나두 사랑해...
“나두요. 진짜 끊을게요.”
ㅡ응...
전화를 끊었다. 폰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누워 눈 감았다. 새엄마랑 사랑을 속삭이고 그 사람이 낳은 딸이 나를 유혹하지 못하게 제재할 계획을 세운다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살짝만 멀찍이서 생각해 봐도 비현실적인데, 막상 상황에 내던져지면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건지.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눈을 뜨고 지수랑 선우한테 뭐 하고 있냐고 문자를 보냈다. 거의 즉각적으로 선우한테서 답장이 왔다.
[나 지금 집에서 누워 있엉]
[너희 집?]
[응응]
[원래는 지수 별장 갔다가 좀 전에 엄마 아빠가 너무 매일 친구랑 같이 있는 것도 안 좋다구 하면서 걔도 자기 혼자만 있는 시간 좀 필요할 거니까 며칠씩은 집에서도 있고 하라 해서 집 왔어]
[응... 되게 좋은 말씀해주셨네]
[그치]
[그럼 너 얼마 정도 집에 있을 예정이야?]
[몰라? 사나흘은 있을 거 같기도 하구 그래]
[으응 알겠어]
[응응. 넌 드라마 촬영 시작할 쯤에 지수 별장 돌아간댔지?]
[응 아마도 그럴 거야]
[알겠어 근데 지금 바빠?]
[아니 딱히. 나도 누워 있어. 근데 이따 밥 먹고 또 대본 연습할 거야.]
[응. 너 찍는다는 드라마 이름 뭐였지 근데?]
[겁쟁이둘]
[그거 로맨스 코미디였지]
[응]
[그럼 막 키스신 같은 것도 있어?]
[있어 되게 소프트한 신]
[다행이다]
[근데 진짜 나도 연기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사람들 앞에서 너랑 키스 쪽쪽 하고 싶어]
피식 웃었다.
[되게 짜릿하겠다]
[진짜루,,,]
[너 나중에 로맨틱한 드라마나 뮤비 찍을 거면 나한테 꼭 얘기해줘야 돼]
[알겠어]
[응 기대하고 있을게]
[나도 기대할게]
[ㅋㅋㅋㅌㅋㅋ 응응]
전화가 걸려왔다. 선우였다. 연결했다.
ㅡ사랑해.
살폿 웃었다.
“나도 사랑해.”
ㅡ흐흫... 그 말 들으려구 전화 했어.
“우연이다. 나도 듣고 싶었는데.”
ㅡ흐흫. 그럼 또 말해줄게.
“응. 해줘.”
ㅡ사랑해.
“나도 사랑해 선우야.”
ㅡ히... 나도 사랑해 온유야.
“응. 사랑해.”
ㅡ나두... 그럼 듣고 싶은 거 다 들었으니까 끊을게.
웃음이 나왔다.
“응. 사랑해.”
ㅡ나도 사랑해.
“응. 끊어.”
ㅡ응응. 쪽.
뽀뽀하는 소리를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뽀뽀는 선물]
[잘 수령했어?]
[응 나 소리 듣고 허겁지겁 볼 가져다 댔어]
[ㅋㅋㅋㅌㅋㅋㅋㅋㅌㅌㅌㅋㅋㅋㅋ 담에 보면 진짜 볼에다가 해줄게]
[기대하고 있을게]
[응]
[저녁 맛있게 먹엉]
[너도 맛있게 먹어]
[잉]
말투가 되게 귀여워졌네. 엄청 사랑스러웠다.
뒤로가기를 누르고 지수 메시지함을 열었다. 아직 숫자가 사라지지 않았다. 자고 있나? 만약 자고 있는 게 맞으면 전화 걸었다가 깨우게 되는 거 아닌가. 그냥 이따 연락해야 할 듯했다. 완전 밤도 아니니 이따가 깨기는 깰 테니까. 키패드를 열고 빠르게 타이핑했다.
[자고 있어?]
[일어나면 저녁 챙겨 먹어야 돼]
문자를 보내놓고 폰을 꺼 테이블에 놓고 눈을 감았다. 방이 따스해서인가, 졸음이 몰려왔다. 폰을 잡고 20분 뒤 울리는 알람을 1분 간격으로 두 개 맞춰놓고 다시 눈 감았다. 금방 수마가 찾아왔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