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화 〉 대본 리딩하는 날 (1)
* * *
시크네스 멤버 전원이 풀샷으로 잡히고 화면이 암전되면서 뮤비가 끝났다. 오른손 엄지로 전체화면을 껐다. CHICNESS 시크네스 ‘No Love’ MV라는 제목 위에 인기 급상승 동영상 1위라고 쓰여 있었다. 제목 밑에 나온 뷰 수는 벌써 삼천만을 넘어 있었다. wx에서 수년 만에 낸 여자 아이돌 그룹이라는 데에서 온 사람들의 기대감이랑 곡 자체의 트렌디함과 중독성이 맞물려서인 걸까. 금요일 오전 열두 시에 드랍됐으니 시간을 따지면 나온 지 이틀도 채 안 된 노래인데 이렇게나 잘 나온다니. 시작으로는 더없이 좋은 성적이었다. 이 정도 주목도면 이제 진짜 논란이 생기는 것만 아니면 순탄하게 성공 가도를 달릴 듯했다. 김세은이 아이돌로서 사는 삶이 지켜질 수 있게 나는 최대한 조심해야 할 거였다.
댓글 창을 켜고 스크롤링했다. 벌써 댓글 창을 덮쳐온 외국인이 많았다. 지금도 이러면 나중에는 진짜 거의 영어 댓글밖에는 안 보이게 될 텐데. 해외 팬들이 많아지는 거니까 안 좋은 건 아닌데, 영어 댓글은 왠지 우리말이랑 다르게 바로 마음에 와닿아 오지는 않고 코드도 다른 탓에 읽을 때 두세 번은 읽어야 이해될 때가 있어서 다소 불편한 감이 있었다. 그래도 이 불편함도 내가 익숙해지면 해결될 일이니 그냥 좋아하면 될 듯했다.
한글로 쓰인 댓글만 슥슥 훑어갔다.
ㅡ식구내쓰: 느낌 딱 옴 이제 여기가 내 본진 될 거 가틈
김지은: 22222 이거 마즘
이얏호응: 전 이미 뼈 묻었어요
소율: 이얏호응 ㅋㅌㅌㅋㅋㅋ 어조 단호한 거 왤케 웃김?
파 파 파: 소율 ㄹㅇㅋㅋ
ㅡㅇㄱ: 와 근데 이틀 정도밖에 안 됐는데 삼천 만 뷰 찍은 거 실화냐
김유현: 더 신기한 건 뮤비 나오고 24시간도 안 돼서 이천만 찍었다는 거임
ㅡ정이슬: 아 진짜 다 왤케 예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
co co: 첨에 풀샷에서 클로즈업했을 때 네 명 비주얼 보고 감동해버림
정이슬: ㄹㅇㄹㅇ wx 안목 미쳐버려씀,,,
정이슬이라는 이름 왼편에 저번에 뮤비 티저에서도 봤던 거랑 똑같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전에는 비주얼부터 미쳤다고 댓글을 쓰더니. 이러다 앞으로도 시크네스 영상마다 출몰해서 주접 댓글을 다는 거 아닐까. 상상만 했는데 살짝 간지럽고 왠지 모르게 부끄러웠다.
댓글 창을 닫고 다시 전체화면을 눌렀다. 뮤비를 재생했다. 다른 멤버가 첫 파트를 부르고 이어서 김세은이 나왔다. 이제 네 시 반에 ‘뮤직 스테이지’에서 데뷔 무대를 한다는데. 이제 정말 시작이구나 싶었다.
김세은은 요즘 얼마나 바쁘게 살고 있을까. 힘들면 안 되는데. 지수랑 선우가 내 옆에서 나를 보듬어주는 것처럼, 나도 세은이의 곁에 있어 주고 싶었다.
콧숨을 내쉬고 머리를 베개에 벤 다음 양손으로 폰을 잡아서 높이 들었다. 순간 방문이 활짝 열리고 누가 상큼상큼 걸어 들어왔다. 아니 상큼상큼 걸어왔다기보다는 쳐들어왔다는 느낌이 어울릴 듯했다.
느닷없이 내 방에 쳐들어온 이수아가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오빠. 오늘이 대본 리딩하는 날인 건 알아?”
“아. 벌써 그렇게 됐어?”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 나한테 한번 뒤져보고 싶어서 그래?”
“아니. 그냥 시간 빠르다고 생각한 거지.”
“이 씨...”
이수아가 내 쪽으로 걸어왔다. 주먹질이라도 하려나. 오른쪽으로 굴렀다. 이수아가 침대로 기어 올라와서 내 옆에 눕고는 나를 바라봤다. 뭐지 얘.
“왜 누우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눕냐?”
“꼬아?”
“어.”
“그래서 어떡하실?”
어이없었다. 이수아가 내가 오른손에 쥐고 있는 폰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근데 너 여자 아이돌 파?”
“응? 아니?”
이수아가 눈을 마주쳐왔다.
“근데 들어올 때 얼굴 보니까 존나 집중해서 보는 거 같던데.”
“인기 있으니까.”
“흠... 그래?”
“어.”
“그, 시크네스지. 그룹 이름.”
“어.”
“거기서 누가 제일 예쁜 거 같애?”
“뭐 다 예쁘잖아.”
“아 씨 다 예쁜 거는 나도 보여. 그냥 한 명 집으라니까. 그게 그렇게 어려워?”
“네가 내 미관을 알아서 뭐해.”
“아니 걍 묻는 거지 뭘 알아서 뭐하냐 이런 소리를 해, 짜증 나게.”
픽 웃었다.
“왤케 과민반응해?”
“아니 오빠가 존나 빡치게 하잖아. 그냥 답해주면 될 거 굳이 트집 잡고.”
“그래, 미안.”
“... 오빠 진짜 나한테 하는 식으로 굴면 여친 못 사귄다.”
“내가 알아서 할게.”
“어. 그래서 대답은?”
“누가 제일 예쁘냐고?”
“어.”
“음...”
뮤비를 다시 틀었다가 멈추고 왼손 검지로 김세은을 가리켰다.
“얘.”
이수아가 꿈틀거려서 내 왼팔에 붙어왔다. 그러고는 눈살을 찌푸리고 내 폰을 올려봤다.
“김세은? 맞나?”
“응.”
“벌써 이름도 다 아나 봐?”
“아니. 김세은만 알아.”
“왜? 진짜 존나 취향이기라도 한가 봐?”
웃음이 나왔다.
“그냥 같은 밴드부 보컬이라서.”
“아니 그건 나도 알아.”
왜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안다고 답하지.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느껴졌다.
“네가 어떻게 알아?”
“... 그거 알아서 뭐해.”
“그냥 궁금하니까 묻는 거지. 너 나한테 부정적으로 말하지 말라 했으면서 너는 그래도 돼?”
“아 걍 넘어가.”
“안 돼. 이유 안 말하면 대본 리딩 가기 전에 아무 연습도 안 할 거야.”
“그럼 다 네 손해거든? 조져서 쪽팔릴 것도 너고?”
“네 오빠가 나니까 너도 좀 창피하긴 할걸.”
이수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 존나... 오빠 나한테 왜 그래?”
“그냥.”
“하... 진짜 개 빡쳐.”
웃음이 나왔다.
“좋아?”
“응. 난 너 열 받아 할 때가 제일 좋아.”
“미친놈... 대본 리딩은 제대로 할 거지?”
“응. 네가 김세은 안 이유만 말해주면.”
“아니 그게 왜 궁금한데?”
“궁금한 거에 왜라고 하면 뭐라 답해.”
“... 그렇네.”
“빨리 얘기나 해.”
“... 오빠 밴드부 영상 좀 봤으니까 둘이 듀엣한 것도 어쩌다가 본 거지.”
“으응... 너 은근히 나 신경 쓰는구나?”
“씨발, 당연히 쓰지. 오빠가 나 조져놨는데... 존나 패기도 하고... 개 쓰레기 새끼.”
“내가 손을 썼다고?”
“한 번 목 조른 적 있잖아.”
“... 그건 미안해.”
“어. 근데 기억에서 지웠어. 딱 아픈 감각만. 별생각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근데 신경 쓰이잖아.”
“그럼 그건 오빠가 알아서 하고. 나 빡치게 안 하고 잘 대해주면서 해소하든지.”
“응.”
“그래서 오빠는 김세은이라는 멤버가 좋은 거지?”
“왤케 캐물어, 동창이라서 꼽았다니까.”
“진짜 그 이유로만 골랐다고? 진지하게 좀 골라.”
“... 진지하게 골라도 김세은이긴 해.”
“그래? 근데 보면, 잠깐 틀어봐봐. 아니 폰 잠시만 나 줘.”
“뭐 하게.”
“영상 틀었다 멈추게.”
“어.”
이수아가 폰을 가져가서 영상 틀었다가 멈췄다. 김세은을 조금 위에서 찍어서 가슴까지만 보이게 찍은 부분이었다.
이수아가 폰을 나한테 돌려주고 나를 쳐다봤다.
“가슴 좀 작지 않아?”
“하. 미쳤냐?”
“아니, 그냥 씹변태 오빠가 슬렌더 취향인 건가 하는 생각 들어서 그런 거지.”
“그걸 네가 왜 신경 써?”
“아니 뭐, 난 가슴 크니까 오빠가 나는 안 노리겠구나 하고 안심하는 게 가능해지잖아.”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존나 미쳤네. 그럼 내가 가슴 큰 거 좋아하면 도망이라도 치게?”
이수아가 흥, 하고 코웃음 치고는 눈꼬리를 휘었다.
“오빠는 가슴 큰 게 좋아?”
“... 너 존나 나댄다?”
이수아가 킥킥 웃었다.
“아 오빠 존나 웃겨.”
이수아가 왼손을 주먹 쥐고 내 가슴팍을 툭툭 쳤다.
“때리지 마.”
이수아가 웃으면서 왼손을 거두고는 자기 오른 볼 옆에 대서 머리를 받쳤다.
“사실 알고 있어. 오빠 가슴 큰 거 좋아하는 거.”
“지랄하네.”
“봐, 오빠 지금 당황 타서 욕하는 거부터 수상하잖아.”
“...”
“정곡 찔려서 말 안 하는 거야?”
“내가 뭐라 하면 네가 이상하게 왜곡할까 봐 그런 거야.”
“변명은.”
“...”
“근데 나 그 의미였는데. 남자는 다 가슴 큰 거 좋아하니까 오빠도 가슴 큰 거 좋아할 거다.”
“... 어.”
“근데 오빠는 뭔 생각했길래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한 거야?”
“...”
뭐라 답해야 되지. 무슨 말을 꺼내든 이수아한테 끌려갈 것 같았다.
이수아가 킥킥 웃었다.
“오빠는 여동생이 꼴려?”
“...”
“이 얘기할 줄 알았어?”
“어.”
이수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내가 꼴린다고?”
“너 자꾸 그러면 진짜 존나 혼낸다.”
“뭐 어떻게 혼내려고?”
왜 이렇게 요망하게 들리지. 한숨이 나왔다.
“나가.”
“왜애.”
“...”
말없이 침대에서 일어나고 폰을 내려놓았다.
“뭐 해?”
오른쪽으로 걸어가서 상체를 숙였다. 이수아가 눈치챘는지 눈을 크게 뜨고 왼쪽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침대 위로 빠르게 기어서 이수아의 옆구리 사이로 두 손을 짚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가두고 이수아를 내려봤다.
“안 나가?”
“응.”
“진짜 혼날래?”
“어떻게 혼내게.”
“그건 일단 너 내쫓고 혼자 잘 생각해볼게.”
“뭐 딸 쳐서 현자타임이라도 되려고?”
“넌 진짜 안 되겠다.”
무릎으로 기어 조금 더 이수아의 몸에 가까워지고는 양손으로 이수아의 옆구리를 간지럽혔다, 이수아가 웃으면서 바둥댈 때마다 이수아의 가슴이 흔들렸다. 얘가 D컵이었나. 왠지 백지수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읏... 아... 아 오빠아...”
이수아의 반응이 격렬해서 침대가 삐걱거렸다. 높은 신음도 귀를 찌르는 듯했다. 얘는 일부러 이러는 건가. 미칠 것 같았다. 자지에 신호가 전해져 왔다. 흔들리는 가슴에서 시선을 떼고 이수아의 얼굴만 바라봤다.
“아... 아흑... 아 하지 마아... 아... 오빠 미안해애...”
“너 간지럼 잘 탄다?”
“아... 맞아... 흣... 아 그만해애...”
“어.”
두 손으로 침대를 짚고 상체를 세웠다.
“이제 나가.”
이수아가 히 웃었다.
“싫어.”
“또 간지럽힌다.”
“해봐.”
“...”
솔직히 내키지 않았다. 계속 간지럽히다 보면 발기할 것 같았다. 아니 아마 그럴 거였고,그럼 또이수아가 여동생이 꼴리나면서 놀릴 것 같았다.
폰을 잡고 이수아의 왼편에 누웠다.
“안 해?”
“포기했어.”
이수아가 히죽 웃고 나를 바라보면서 오른손등을 왼볼에 대서 머리를 받쳤다. 살포시 눌린 볼이 귀여웠다.
눈을 돌리고 폰을 켰다. 그냥 이대로 이수아랑 있다가 아침밥이나 먹어야 할 듯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