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화 〉 금요일, 기상 후 (1)
* * *
알람이 울렸다. 왼손을 뻗어 폰을 찾고 양손으로 잡은 다음 실눈을 떠 알람을 껐다. 6시 45분. 평소랑 같이 설정한 알람인데 왠지 모르게 너무 이른 시각에 일어난 느낌이었다. 최근 주말이면 늦게 일어나는 게 당연해져서 그런 건가. 아마 그럴 것 같았다.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 잠금을 푼 다음 날짜를 봤다. 금요일, 시크네스 뮤비가 드랍되는 날이었다. 유튜브를 켜고 시크네스를 검색했다. 맨 위에 뮤비가 보이지는 않았다. wx 공식 채널에 들어갔는데 티저 말고는 시크네스 뮤비 영상이 없었다. 아마 아직 나오지는 않은 듯했다. 두 번째 티저를 누르고 더보기를 확인했다. 뮤비는 12시 30분에 올라온다고 쓰여 있었다. 점심시간까지 기다려야 할 듯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 빠르게 샤워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방으로 돌아와 침대에 걸터앉아 헤어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렸다. 교복 와이셔츠랑 바지를 입고 폰을 챙겨 방을 나서고 주방으로 갔다. 윤가영이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윤가영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나를 쳐다봐왔다. 윤가영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안녕. 잘 잤어?”
“잘 잤죠. 근데 수아는요?”
“아직 자고 있을걸. 이따 불러와줄래?”
“네.”
이수아 방이 있는 쪽을 살짝 봤다가 윤가영에게 다가갔다. 양손으로 윤가영의 옆구리를 잡고 윤가영의 오른 볼에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윤가영이 히 웃고 양손을 내 어깨에 얹은 다음 까치발을 서서 내 왼 볼에 입술을 쪽 맞췄다. 웃음이 나왔다.
“우리 이래도 돼요?”
“네가 먼저 했잖아...”
픽 웃었다.
“존댓말 안 해요?”
“... 해...?”
“아뇨. 당신한테 반말 듣는 것도 좋네요.”
윤가영이 피식 웃었다.
“뭐야...”
“왜요?”
“아니, 내가 말 놓는 게 당연한 나이 차인데 그러니까... 조금 웃겨 가지구...”
“난 당신 나한테 존댓말 할 때 귀엽던데.”
윤가영이 흐응, 하고 콧소리를 내면서 오른손으로 내 가슴팍을 툭 쳤다.
“하지 마...”
픽 웃었다.
“알겠어요. 나도 커피 주세요.”
“카페라떼로?”
“네.”
“응. 앉아 있어.”
“알겠어요.”
선반에서 머그컵을 두 개 꺼내 윤가영한테 건네주고 테이블로 가 의자를 꺼내 앉았다. 윤가영이 빠르게 카페 라떼 두 잔을 만들고는 내 쪽으로 걸어와 두 컵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왼손으로 의자를 꺼내줬다. 윤가영이 미소 짓고 내 옆에 앉았다. 윤가영이 양손으로 머그컵을 잡고 작게 한 모금을 입에 머금어 마시더니 나를 쳐다보며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지금 이거 아침이니?”
웃음이 나왔다. 장난기가 들었다.
“지금 아침 맞죠.”
“히... 아니이, 너 아침 식사로 커피 마시는 거냐구.”
“빵이나 그런 거 있음 아침 되겠죠.”
“빵 많이 있잖아.”
고개를 돌려 아일랜드 쪽을 본 윤가영이 다시 나를 바라봐왔다.
“내가 뭐 만들어줄까?”
“음, 허니브레드 만들어줄 수 있어요?”
“응.”
“그럼 그거 만들어주세요.”
“알겠어.”
윤가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빵 바구니에서 포장된 통식빵을 꺼냈다.
“내가 뭐 안 도와줘도 돼요?”
“응. 이따 다 만들어지면 수아 깨워주는 것만 해줘.”
“알겠어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씁쓸한 맛이 입에 돌았다. 주방을 눈으로 훑어 바닐라 시럽을 찾고 자리에서 일어나 스푼이랑 시럽을 챙긴 다음 도로 앉아서 카페 라떼에 시럽을 조금 넣었다. 숟가락으로 살짝 섞고 맛을 봤다. 적당히 달았다.
폰을 들고 메시지 앱을 켰다. 지수랑 선우를 찾아서 잘 잤냐고, 일어났으면 답장 보내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둘 다 아직 자는 건지 숫자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뒤로가기를 누르고 메시지함을 슥 훑었다. 서유은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자를 보낼까. 근데 그러면 서예은이 뭐냐고 추궁할 텐데. 그냥 마주해서 얘기를 나눌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서유은에게 안전지대는 학교밖에 없었을 거였다. 서예은이 배우 활동을 안 할 때면 집에 쭉 있을 테니까. 가장 안정을 취할 수 있는 휴식처가 되어야 할 집은 서예은의 휴식기 선언 후로는 가기 두려운 범죄의 온상이 되고 말았을 터였다.
최근에는 서예은이 학교에도 침범하기까지 했으니 서유은은 맘 편히 존재할 장소가 사실상 없었을지도 몰랐다. 요즘에야 시험기간이라 동아리를 안 하니 서예은이 올 만한 명분이 없어져서 다시금 안심해도 될 곳으로써 그나마 의미를 되찾게 되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서유은이 입어온 상처가 치유되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리 위안되는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잠시 숨 쉴 곳이 생기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고생 하고, 실제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겪을 일로 인해 나타날 기분의 낙차가 서유은을 이전보다 더 힘들게 할 수도 있었다.
걱정스러웠다. 서유은을 돕고 싶었다. 차라리 우리 집에서 묵게 하면서 숨겨주고 서예은을 법으로써 다스리고 싶었다. 그런데 당사자인 서유은이 그걸 원치를 않으니 내가 나서서 뭘 할 수도 없었다.
“무슨 걱정 있어...?”
윤가영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허니브레드를 만드는 윤가영을 올려봤다.
“왜요?”
“아니, 너 한숨 쉬어 가지고...”
“저 한숨 쉬었어요?”
“응...”
“음, 그냥 좀 덜 자서 그런가 봐요...”
“으응...”
윤가영이 오븐을 열고 팬을 꺼냈다. 달콤한 냄새가 주방을 채웠다. 윤가영이 허니브레드를 흰 접시에 옮겨 담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입을 열었다.
“고마워요. 수아 부르고 올게요.”
“응.”
주방을 나서서 이수아 방 앞으로 가 문을 노크했다.
“일어났어?”
대답이 없었다. 딱 세 번만 똑똑똑 두드리고 문을 열었다. 침대 위에 눈을 감고 있는 이수아가 있었다. 아직 자나. 다가가서 오른손을 뻗고 왼 어깨를 잡아 살살 흔들었다. 순간 이수아가 눈을 번쩍 뜨면서 내 양 어깨를 잡으려 팔을 뻗어왔다.
“워!”
“...”
이수아가 히 웃었다.
“놀랐지?”
“어.”
“에이. 놀랐으면서 안 놀란 척 가오 잡는다.”
“진짜 놀랐다니까.”
“근데 왤케 반응이 무미건조해?”
“나 깜짝 놀라면 이래. 그냥 꼼짝 못 하고 가만히 멈춰 있어.”
이수아가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아까 윤가영도 이랬던 거 같은데.
“그래?”
“어.”
“응. 알겠어. 나 아침 먹이려고 온 거지?”
“먹이려는 건 아니고 그냥 부르러 온 거지.”
“그게 그거지. 그건 됐고. 일단 먼저 나가봐. 나 씻고 나가게.”
“응.”
이수아 방에서 나가서 주방으로 돌아갔다. 의자에 다시 앉고 허니브레드를 나이프로 조각 내고 포크로 찍어 한 입 했다. 당이 충전된다는 느낌이 즉각적으로 들었다.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윤가영을 바라봤다.
“맛있네요.”
윤가영이 눈웃음 지었다.
“다행이다.”
윤가영이 자기 허니브레드를 한 입 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음, 괜찮네.”
“그쵸.”
“응.”
윤가영이 기분 좋은 듯 히 웃었다. 이수아가 언제 올지 모르니 나도 마주 웃기는 조금 그랬다. 시선을 반대쪽으로 돌리면서 웃음을 참았다.
허니브레드를 먹는데 얼마 안 가 이수아가 왔다. 검은 브라가 비치는 흰 민소매에 검은 돌핀팬츠 차림이었다. 왜 맨날 이렇게 입는 건지 궁금했다.
“너 왜 맨날 그렇게 입어?”
“이게 편하니까.”
이수아가 답하면서 윤가영의 옆에 앉았다.
“근데 왜 엄마랑 오빠랑 붙어 앉았어?”
“그냥 내가 또 친해지려고 가까이 붙은 거지...”
윤가영이 답했다. 이수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가 나를 쳐다봤다.
“오빠. 그냥 오빠가 엄마랑 친해졌다고 선언하고 엄마 좀 편하게 해주면 안 돼?”
픽 웃었다.
“무슨 그런 억지를 부리냐.”
“억지라니. 충분히 할 법하지 않아?”
“난 모르겠는데.”
이수아가 고개를 돌려 윤가영을 봤다.
“엄마도 그렇게 생각해?”
“으음... 그렇지 아무래도...?”
이수아가 콧숨을 내쉬고 허니 브레드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이수아가 으적대다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엄마는 맨날 오빠 편이야.”
“아니야...”
“아닌 게 아닌데. 내가 보기에.”
윤가영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엄마 서운하게 왜 그래...”
“몰라. 나도 삐쳤어.”
이수아가 윤가영한테서 눈을 떼고 나를 쳐다봤다.
“오빠 솔직히 엄마가 친해지려고 달라붙는 거 속으로 즐기고 있지.”
헛웃음이 나왔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수아가 물끄러미 나를 올려봤다.
“내가 정곡 찌른 거 같은데?”
“또 이상하게 몰아간다 진짜.”
“몰아가기는 무슨. 과학적으로 합당한 추론 내린 거인데.”
“네 추론이 뭐가 과학적이라는 건데.”
“경험과 관찰에 기반한 귀납법으로 오빠 심리 분석한 거인데 과학적인 추론이지.”
“너 그런 어려운 말도 할 줄 알아?”
이수아가 피식 웃었다.
“내가 한 말 중에 뭐가 어려운 게 있었는데?”
“아니 너 중학생이니까.”
“중학생도 이 정도는 알 거든? 아님 나 무시한 거야?”
“약간?”
이수아가 코웃음 쳤다.
“아 짜증 나.”
“나도 네가 나 이상하게 몰아갈 때 그래.”
“또 몰아간다 그러네. 과학적 추론이라니까.”
“아닌 게 증명됐으니까 비과학적인 몰아가기지.”
“... 오빠 진짜 짜증 나게 받아친다.”
“너도.”
“하. 오빠 여친 없지?”
“...”
네 엄마 포함해서 네 명 있는데.
“갑자기 여친 얘기를 왜 해.”
이수아가 히죽 웃었다.
“할 수도 있지. 근데 그 얼굴로 한 번도 안 사귀어봤어?”
“너도 모쏠이잖아.”
“그건 주변 남자애들이 다 유치해서 그런 거고.”
“너처럼?”
“아 존나 뭐래?”
“맞는 말 했지.”
이수아가 오른 주먹을 들어 내 왼팔을 툭툭 치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맞는 말?”
“아니.”
나랑 이수아가 대화하는 것을 보는 윤가영이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이수아가 나보고 솔로라고 놀리듯 말할 때마다 억지로 표정을 관리하는 게 힘든 모양이었다.
“딸, 온유야. 그만하고 아침 먹으면 안 될까...?”
“알겠어. 먹을게.”
이수아가 답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이 조용히 허니브레드를 입에 넣었다. 달콤한 내음이 코를 건드렸다.
이제 아침을 다 먹고 나면 문자를 확인하고 이수아랑 같이 등굣길을 걸어간 다음 서유은을 찾아가 봐야 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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