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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341화 (340/438)

〈 341화 〉 목요일 아침

* * *

반에 가방을 내려놓고 밴드부실로 갔다. 서유은이 없었다. 다시 본관으로 들어가고 서유은을 찾아 1학년이 있는 층으로 갔다. 마주치는 애들이 얕게 고개 숙여 왔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 서유은 반 어딘지 알아?”

“4반일걸요.”

“어, 고마워.”

반 숫자를 눈으로 세며 뛰어갔다. 6반, 5반, 4반. 뒷문을 바로 열고 눈을 굴렸다. 왼쪽 앞자리에 서유은으로 보이는 뒷모습이 있었다. 그냥 불러야 하나 아님 다른 애한테 서유은 좀 내보내달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했는데 다른 애한테 부탁해서 조용히 부르면 또 모양이 이상해져서 고백하려고 부른 거 아닐까 하는 등 이상한 소문이 생길 것 같았다. 그냥 다른 말이 생길 여지가 없게 내가 직접 서유은을 호명하고 밴드부 관련한 거로 불렀다는 뉘앙스를 품어야 할 듯했다.

“유은아!”

어딘가 움츠러든 구석이 있는 작은 몸이 흠칫했다. 이내 서유은이 고개를 돌리면서 나를 쳐다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어제 왜 밴드부실 안 왔어?”

“아 저, 그때 할 거 있어서요...”

“으응. 그럼 어제 안 한 만큼 더 연습해야지. 부실로 가자.”

“네, 네!”

서유은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반에 있는 다른 아는 애들이랑 짧게 인사하고 서유은이랑 같이 밴드부실로 걸어갔다. 가는 동안 서유은이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나도 말을 할 게 도저히 생각나지 않아서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은 온통 서유은이 보낸 문자와 관련한 것으로만 차 있었다.

부실 앞에 도착하고 멈춰 선 다음 문을 열어줬다.

“먼저 들어가.”

“네...”

서유은이 먼저 부실 안에 들어가고 내가 따라 들어갔다. 문을 닫아 잠근 다음 안쪽으로 들어갔다. 서유은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오른편에 앉고 잠깐 생각을 정리한 다음 입을 열었다.

“유은아.”

“네...?”

“어제 네가 문자 보낸 거 있잖아.”

“네...”

“... 그걸 내가 잠깐 생각을 해봤는데, 이게 진짜 미친 소리일 수도 있거든? 일단 들어줄 수 있어?”

서유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해주세요.”

“... 너 언니한테 성적으로 뭐 강요받고 해...?”

“...”

서유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복잡미묘했다. 얼마나 많은 감정이 뒤섞였는지 도저히 식별되지 않았다. 개중에 그나마 읽히는 건, 안도감과 기쁨, 그리고 슬픔이었다.

“맞아요...”

서유은이 갑자기 양팔을 벌려 내게 달려들 듯 해서 나를 꼬옥 껴안아 왔다. 당황스러웠다. 일단 안심시키는 게 중요할 듯해서 양팔로 서유은을 품에 안은 다음 두 손으로 서유은의 등을 토닥거렸다.

“오빠는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으응... 혹시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얘기한 적은 있어?”

“아니요... 오빠한테 처음으로 도와달라고 신호 보낸 거예요...”

“...”

내가 도와줄 수 있을까 싶었다. 이런 상황은 한 번도 마주해본 적 없었고, 내가 다룰 수 있을 만한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사실 안 되리라는 생각이 컸다. 가정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아이를 도와본 적이 없으니 서유은이 의지해도 좋을 만한 능숙함도 내게는 없었다. 그리고 서예은을 격리하고 수색하는 등 서유은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도와도 될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나보다는 전문가가 필요했다.

내 품에 안긴 서유은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봐왔다. 여전히 혼란한 눈빛이, 물기 어린 눈망울이 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서유은이 입을 열었다.

“오빠...”

“... 응?”

“저 어떡해야 돼요...?”

머리가 복잡했다. 뭘 해야 할지, 뭘 할 수 있을지를 아무리 궁리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에는 나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보는 것을 권유해야 할 듯한데, 나는 그게 무책임하다고 느껴졌다. 서유은이 다른 기관 같은 곳을 찾지 않고 나를 찾은 이유가 있을 건데 내가 바로 다른 공공기관 같은 곳을 입에 올리면 서유은의 뜻을 무시하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래도, 나는 정말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속이 답답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게 이렇게 막막하고 갑갑할 줄은 몰랐다.

“... 경찰에 신고는...”

서유은이 고개 저었다.

“안 돼요.”

“그래도 일단 네가 보호를 받으려면 경찰을 찾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도 안 돼요...”

“... 왜?”

“제 언니잖아요...”

“...”

서예은이 잡혀가는 게 싫은 건가.

“그럼 너는 어떡해...?”

“그걸 모르겠어요... 난, 언니랑 그러기 싫은데, 언니 범죄자 되는 것도 싫어요...”

서유은이 눈물을 흘렸다. 서유은을 다시 품에 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럼 어떡하지. 고민스러웠다. 서유은은 왜 나를 찾았을까. 생각을 거듭해도 알 수 없었다. 그냥 물어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어떡해줄까 유은아?”

“... 그냥... 흑... 몰라요... 누구한테라도 털어놓고 싶어서, 끅... 말한 거였어요...”

“으응... 많이 힘들었구나...”

“흡... 네... 끕... 오빠 도움 필요하면, 윽... 나중에 말할게요...”

“응...”

서유은이 품 안으로 더 파고들어 왔다. 말없이 받아들이고 오른손으로 서유은의 등을 쓸었다. 서유은의 몸은 작고 가녀렸다. 이런 애한테 나이 터울도 많은 언니가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한다니. 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위로밖에 못 해줘서 미안해...”

“그게 제가 필요했던 거예요...”

“응... 근데 문자 보냈던 거 내가 해독한 거면 더 가까이 있는 언니도 알아보는 거 아니야?”

“아뇨 저 그거 언니한테 문자 보낸 내용 그대로 의미라고 둘러대서 괜찮아요...”

“으응... 다행이네.”

“네...”

계속 손으로 서유은의 등을 다독였다. 이것밖에 못 하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퉁퉁퉁, 누군가가 부실 문을 열려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 가서 열고 올게.”

“네...”

자리에서 일어나고 서유은을 내려봤다. 서유은이 양손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붉어진 눈시울을 가리고 있었다.

“... 너 눈물 다 닦고, 조금만 기다렸다가 열까?”

“아뇨, 지금 여셔도 돼요... 여는 데 너무 오래 걸리고 오빠랑 저랑 둘만 있던 거 보면 이상하게 오해할 수도 있으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알겠어. 갈게.”

“네...”

서유은을 두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유리문 너머로 백지수가 맨 앞에 서 있고, 그 뒤로 송선우랑 다른 부원들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백지수가 나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고 팔짱을 꼈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보였다.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었다. 백지수가 바로 안으로 들어오면서 입을 열었다.

“문 왜 잠갔냐? 안에 누구 있어?”

백지수가 말을 하면서 내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따라가면서 멋쩍게 웃었다.

“질문을 두 개 동시에 하면 답하기 까다롭잖아.”

“뭐가 됐든.”

백지수가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는 의자에 앉아 있는 서유은을 내려봤다. 서유은이 무구한 눈을 나랑 백지수를 쳐다봤다. 서글픔은 지워졌는데 붉어진 안색은 아직 그대로여서 울었다는 짐작이 가능할 듯했다.

송선우랑 정이슬, 그리고 박철현, 김수원 등 다른 부원도 부실 안으로 들어왔다. 정이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이슬이 서유은의 왼편에 앉고는 오른팔로 서유은을 안았다.

“유은이 있었네?”

“네.”

“얼굴 왤케 붉어?”

“아 저, 덥게 입었나 봐요... 밴드부 되게 따뜻한데.”

“으응... 온유랑 문 잠그고 뭐 했어?”

이걸 이렇게 직설적으로 묻는다니. 내가 들어도 당황스러울 거 같은데 서유은은 아주 잠깐만 우물거리다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냥 어제 저 부실 안 왔다고 오빠가 찾아와서 불러 가지고 노래 연습 좀 하고 했어요...”

“그래? 근데 문은 왜 잠갔대?”

이 질문에는 내가 답해야 할 듯했다.

“순간 혼자 궁예돼 가지고, 혹시 남들한테 말 못 할 문제 같은 거 생겼으면 제가 들어주겠다고 하려고 문 잠갔어요. 근데 뭐 없다고 하더라고요.”

정이슬이 고개를 획 돌려 나를 올려봤다.

“너 그렇게 유은이만 편애해서 괴롭히기 있어?”

피식 웃었다.

“편애랑 괴롭히는 게 한 문장 안에 들어가도 돼요?”

“내 언어 세계에서는 돼.”

살폿 웃었다.

“누나 진짜 독특한 거 같아요.”

정이슬이 눈웃음 지었다.

“그치.”

원래 같았으면 좀 더 가까이에서 내 유니크함에 대해 더 알아갈 기회를 줄게, 같은 말을 했을 거 같은데. 부원들이 있다고 그런 멘트는 자제하는 듯했다.

오른 주머니에서 폰이 진동했다. 은근슬쩍 부원들이 있는 곳에서 벽면으로 물러나고 폰을 꺼내서 확인했다. 백지수한테서 문자가 온 거였다.

[서유은이랑 뭐했냐?]

뜨끔했다. 여기에서 지수랑 선우한테 거짓말을 해야 할까. 서유은이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아픈 비밀을 나한테만 오픈한 거인데 내가 마음대로 발설해도 되는 걸까. 그러면 안 될 거였다.

[아무것도 안 했어.]

[솔직히 둘이 섹스한 거 아니야?]

[진짜 아니야.]

[근데 왜 걔 얼굴이 붉어?]

[서유은이 말한 거 있잖아. 그리고 내가 걔랑 뭘 했으면 너랑 다른 부원들 왔을 때 문도 바로 못 열어주고 걔 옷도 좀 흐트러져 있었겠지.]

답장이 잠시 안 왔다. 이내 줄임표가 떴다.

[미안해. 순간 너무 속으로 화나서 오바했어.]

[네가 나한테 아무 얘기도 안 하고 서유은 데리고 부실 와 가지고 문 잠가서 은밀하게 뭐 했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엄청 흥분해 가지고. 진짜 미안.]

[괜찮아. 내가 의심 살 행동한 거니까. 우리 서로 잘못한 거니까 화해하자.]

[응.]

[지금 얼굴 보자.]

[이따 봐. 나 지금 너 보기 좀 그래.]

살폿 웃었다.

[알겠어]

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진동이 울려서 또 폰을 꺼내고 잠금을 풀었다. 이번에 문자를 보낸 사람은 송선우였다.

[유은이한테 무슨 일 있어?]

역시 선우는 감이 좋구나. 눈치 좋고 마음씨도 고운 선우라면 서유은한테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서유은이 직접 비밀을 털어놓고 의지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를 듯했다. 그래도 당장 내가 서유은이 숨기고 싶어 하는 사실을 발설해서는 안 됐다.

무슨 일이 없었다고 아예 부정하는 건 이상하게 느껴져서 오히려 의심을 살 테니 부분적으로 긍정하는 게 나을 듯했다. 빠르게 키패드를 두드렸다.

[별일 없대]

[내 생각에 뭔가 있는 거 같기는 한 눈치기는 한데 그랬어]

[응,, 오케이 알겠어]

[그럼 너 계속 유은이 케어해줄 거야?]

뭐라 답해야 할까. 서유은을 마냥 내버려 놓을 마음은 없었다. 서유은은 겪어서는 안 될 힘듦을 홀로 견뎌내고 있었다. 누군가는 구해야만 했고, 서유은이 그 사람으로 나를 지목하였으니 나는 최소한 서유은이 기대한 만큼은 부응해야 했다.

솔직하게 답해야 할 듯했다.

[걔가 필요로 하면 도와줄 수 있을 거 같아]

[알겠어]

[근데 지수는 알아?]

[아니 아직]

[응. 확실히 알면 반응 좀 안 좋게 할 수도 있겠다]

수긍하기 조금 곤란한 내용이었다. 멋쩍게 웃으면서 폰을 오른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어 송선우를 찾았다. 송선우는 부원들이 있는 곳에서 한 발짝 뒤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송선우도 부실을 훑으며 나를 찾았는지 금방 눈이 마주쳤다. 송선우가 살짝 눈웃음 지었다가 나한테서 시선을 떼고 부원이 모여 있는 쪽을 바라봤다. 나도 같은 곳을 봤다. 중심에 서유은이 앉아서 다른 부원들이랑 떠들고 있었다. 목소리는 쾌활했는데, 듣기에 뭔가 애달팠다. 아무래도 서유은의 속사정을 알게 되어서 그런 듯했다.

서예은한테 강요당한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닌 거 같은데. 어떻게 저런 겉모습을 유지하고 살았을까.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서유은이지만, 속은 썩어들어 있을 것 같았다. 심히 걱정스러웠다.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머리를 쥐어짤수록 무력감만 들었다. 나는 서유은이 무너지지 않도록 감정적 지지를 해주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서유은이 나한테 자기 사정을 털어놓으면서 바랐던 게 위로라고 말은 했지만, 단순히 다독이기만 하기에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머리로는 도와줄 방법을 찾기 어려울 듯했다. 서유은이 도움을 청해올 때 적극적으로 응하는 것밖에는 별반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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