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8화 〉 수요일 종례 끝나고 (1)
* * *
학교 종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이제 종례 시간인가. 시간이 금방 흐른 느낌이었다.
서예은이 눈을 치켜떴다.
“얘들아, 지금 이거 끝났다는 소리지?”
네, 라고 답하는 애가 조금 있었다. 목소리에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응. 그럼 일단 여기에서 마쳐야겠네. 다음 주는 너희 시험 기간이라서 동아리 시간 없다 들었는데 맞아?”
“맞아요...”
김예빈이 답했다.
“그래. 그럼 공부 열심히 하고. 담에 볼 수 있으면 보자.”
“네? 언니 다다다음주인가에는 다시 안 와요?”
“몰라. 일단 얘기해놓은 게 오늘까지였어서. 내가 말 안 했나?”
애들이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딱 학기 끝날 때까지만 와주시면 안 돼요?”
“응. 그거는 안 돼.”
“매정해요...”
서예은이 살폿 웃었다.
“미안. 백수로만 있을 순 없잖아. 그리고 이제 너희도 집 가야지. 빨리 나가자.”
““네.””
다들 답했다. 우지연이 손을 번쩍 들었다.
“언니 마지막이면 단체 사진 한 장만 찍으면 안 돼요?”
“어? 그래. 한 장 찍자. 일로 올라와.”
“좋아요!”
애들이 달려갔다. 뒤따라 가서 송선우의 옆에 섰다.
“누가 찍어?”
서예은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물었다. 앞쪽에 있던 김예빈이 자연스레 빠져나가서 앞에 섰다.
“일단 제가 찍을 테니까 누가 또 폰 들어서 저 들어간 사진도 찍어주세요.”
“너 담에 내가 찍을게.”
내가 답했다. 김예빈이 히히 웃었다.
“감사해요 오빠.”
“응.”
“다 포즈 뭐 안 해요?”
“요즘 고등학생 사이에서 유행하는 거 없어?”
서예은이 물었다.
“딱히 없어요.”
김예빈이 답했다.
“그럼 손가락 하트라도 할까?”
서예은이 물었다. 다들 좋아요라고 답하고 엄지랑 검지로 하트를 만들었다. 가운데에 선 서예은은 몸을 왼쪽으로 살짝 기울이며 양손 검지랑 중지로 하트를 그렸다. 김예빈이 사진을 찍었다.
“이제 내가 찍어주면 되지.”
“네!”
김예빈이 달려와서 폰을 건네줬다. 조심히 받고 앞으로 걸어가 거리를 좀 두고 수평을 맞춰 사진을 찍었다. 서예은이 연예인이라 확실히 다른 사람들이랑은 다르게 얼굴이 혼자 그림체가 다른 느낌이 들었다. 뭔가 더 선이 선명하다고 해야 하나. 그밖에는 예쁘다는 말 정도 말고 적절한 설명을 찾기 어려웠다.
하나 기분 좋은 건 송선우가 서예은이랑 비슷하게 예쁜 외모만으로 튄다는 거였다. 서예은처럼 키가 커서 더 비슷하다는 느낌이 드는 듯했다.
사진을 확인하고 김예빈에게 다가가 폰을 건넸다.
“다 찍었어.”
“네 감사합니다!”
김예빈이 부원들을 둘러봤다.
“예은 언니도 있는 단톡 파서 올릴게요.”
서예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가시면 안 돼요?”
“그래.”
김예빈이 히 웃었다.
“이제 진짜 가자 얘들아.”
““네!””
다들 흩어졌다. 서예은이 가장 먼저 소강당을 나갔다. 애들이 우수수 빠져나갔다. 송선우랑 뒤늦게 소강당을 빠져나가 반으로 갔다. 하회탈이 기다리고 있었다.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시험 기간인 거 다 알지? 공부 열심히 하고. 새벽에는 폰하지 말고 잠들 자라.”
““네엡!””
“그래. 이상. 주번 창문 다 잠그고 가라.”
“네.”
하회탈이 반을 나갔다.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메고 지수랑 선우를 봤다. 다 같이 익숙하게 반을 빠져나갔다. 오늘은 이수아랑 대본을 봐야 해서 집으로 가야 했다.
교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서유은이 다다다 달려 운동장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뭐지 생각하면서 교문을 넘어섰는데 교문 근처에 서예은이 하얀 벤츠 옆에 서 있었다.
서예은 앞에 멈춰 선 서유은이 몸을 살짝 숙이고 두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헥헥 댔다. 서예은이 귀엽다는 듯 미소 지었다.
“왔어?”
“헤엑... 왔어요...”
“그래. 이제 집에 가자.”
듣는데 뭔가 느낌이 묘했다. 눈을 가리고 맥락을 하나도 모르는 상태로 들으면 자매 관계보다는 모종의 주종관계를 떠올리게 될 것만 같았다. 그냥 내가 미친 건가? 아마 그럴 거였다.
서예은이 말없이 양손을 서유은에게 내밀었다. 여전히 헥헥대는 서유은이 두 손을 서예은의 손 위에 올리고 상체를 똑바로 세웠다. 아무 소통 없이 동작이 척척 되는 게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해왔거나 눈빛만 보아도 상대가 품은 뜻을 읽어낼 정도의 사이인 듯했다. 아니면 서유은이 엄청 눈치가 좋은 걸 수도 있겠고.
서예은이 왼팔을 벌려 서유은을 품에 안고 걸어가 조수석 문을 열었다. 서유은이 하아, 하, 하고 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잠깐만 공기 마시고 있음 안 돼요?”
“일단 들어가. 차창 열면 되잖아.”
“... 네...”
서유은이 몸을 차 안으로 넣으려고 몸을 살짝 숙일 때, 순간 서유은이랑 눈이 마주쳤다. 뭔가 눈빛이 다큐에서 본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되게 슬프고 처량했다. 그냥 집에 가는 거일 텐데. 이상했다. 집에 바로 가기 싫은데 언니한테 억지로 붙잡혀서 가는 건가? 근데 자매면 그 정도는 해도 될 텐데. 언니가 엄청 싫은가? 괜히 생각이 많아졌다.
서유은이 안에 안 들어가고 어정쩡한 자세로 서예은을 올려봤다.
“언니 저 선배들한테 인사는 해도 돼요?”
목소리가 되게 작았다. 남들은 못 듣게 하려는 듯했지만 내 귀에는 들렸다.
서예은이 얕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
“감사해요.”
서유은이 상체를 세우고 나랑 지수, 선우를 바라봤다. 서예은도 우리를 봤다. 서유은보다 서예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너희 지금 집 가니?”
“아, 아뇨?”
송선우가 나랑 지수를 보면서 말했다.
“저희 좀 돌아다니려구요.”
“으응. 그래. 재밌게 놀아.”
“네. 언니는 집 가시는 거예요?”
“응.”
서예은이 미소 지으면서 왼팔로 서유은을 안았다.
“우리 유은이 데리고.”
서유은이 멋쩍게 웃었다.
“안녕히 가세요... 선우 언니, 지수 언니, 온유 선배.”
왜 갑자기 선배라 하지? 언니 옆이라 그런가? 근데 언니가 옆인 게 무슨 상관이지. 이상했다.
“응.”
송선우가 답했다. 백지수가 입을 열었다.
“잘 가.”
“잘 가 유은아. 예은 배우님도 안녕히 가세요.”
“그래.”
서예은이 짧게 답했다. 송선우가 입을 열었다.
“안녕히 가세요 언니.”
“응.”
“안녕히 가세요.”
백지수가 말했다. 서예은이 미소 지었다.
“너희도.”
서예은이 서유은을 바라봤다. 서유은이 바로 벤츠에 탑승했다.
서예은이 운전석으로 빠르게 걸어가 안에 들어갔다. 벤츠가 곧 시동을 걸고 빠른 속력으로 떠나갔다.
지수랑 선우하고 천천히 걸어갔다. 강예린의 차가 자주 서던 곳에 강성연이 서 있었다. 폰을 보고 있어서 우리를 보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백지수가 왼손으로 내 오른팔의 옷깃을 잡고 약하게 당겼다.
“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백지수가 오른손 검지로 강성연을 가리켰다가 양손 검지로 x자를 만들었다. 강성연네 차 타지 말라는 건가. 살폿 웃음이 나왔다.
내가 웃는 소리를 들었는지 뭔지 강성연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백지수랑 있어서 그런가, 살짝 흠칫거렸다. 그러고는 아는 척도 해오지 않고 다시 폰을 내려봤다. 진짜 강성연도 보다 보면 귀여운 구석이 있기는 했다.
백지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택시 타고 갈게.”
“... 어.”
백지수가 답했다. 송선우가 히히 웃으면서 백지수의 뒤로 가 양팔로 백지수를 안고 뒤뚱뒤뚱 걸었다.
“지수 진짜 너무 귀여워.”
“내가 뭐 했다고 귀엽대.”
“그냥 보면 귀여운걸?”
백지수가 콧숨을 내쉬었다. 귀여워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백지수랑 선우하고 같이 걸으면서 강성연에게서 점점 멀어졌다.
익숙한 하얀 테슬라 세단이 멀리에서 접근해왔다. 얼마 안 가 점차 감속하면서 우리의 조금 앞에서 멈춰 섰다. 조수석 차창이 열리고, 검은 블라우스에 검은 슬랙스, 그리고 베이지 트위드 자켓 차림을 한 강예린이 양손을 조수석에 댄 채 몸을 우리 쪽으로 숙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안녕 온유야. 그리고 두 친구도.”
“안녕하세요.”
답을 하고 멋쩍게 웃었다. 송선우가 안녕하세요, 라고 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백지수도 마지못한 듯 안녕하세요, 라고 하고 나를 바라봤다.
“성연이 어머니야.”
백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왜 강예린이 우리 앞에 멈춰 섰는지가 궁금한 모양이었다. 당장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너희 다 집 가니?”
“온유는 집에 가고, 저희는 근처 좀 돌아다니려구요.”
송선우가 답했다. 강예린이 으응, 하고 소리 냈다.
“그럼 너희는 당장 차 탈 일은 없는 거니?”
“네.”
“그래.”
강예린이 나를 올려봤다.
“타, 온유야.”
백지수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언제 이렇게 강예린한테 차 타는 걸 먼저 권유받을 정도로 가까워졌는지 물어보고 싶은 걸 억지로 참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져왔다. 집에 가고 전화나 문자로 해명해야 할 듯했다.
멋쩍게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저 안 태워주셔도 돼요.”
“아냐, 안 타면 또 대중교통이나 그런 거 탈 거잖아. 그냥 타.”
백지수가 왼 팔뚝으로 내 오른팔을 툭 쳤다.
“타고 가, 빨리.”
“으응...”
송선우가 오른손을 흔들었다.
“잘 가 온유야.”
“응. 너도 잘 가. 지수도 잘 가.”
“어.”
강예린의 차에 가까이 가 뒷문을 열고 탔다. 강예린이 좀 더 나아가서 강성연이 있는 곳에 멈췄다. 강성연이 뒷문을 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너 왜 여깄어?”
강예린이 히 웃었다.
“내가 태웠어.”
“... 얘 옆에 친구들 없었어?”
“있었지? 근데 걔들 따로 할 일 있다고 하던데.”
“... 알겠어.”
“빨리 타.”
“응.”
강성연이 내 옆에 앉고 문을 닫은 다음 차창 바깥을 내다보았다. 차가 금방 앞으로 나아갔다. 등이 좌석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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