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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306화 (305/438)

〈 306화 〉 오디션 후 (2)

* * *

밴이 AOU 엔터 사옥 지하 주차장에 멈췄다. 김민준이 벨트를 풀었다.

“가시죠.”

“네.”

벨트를 푼 다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뒷문을 열어주고 이수아랑 윤가영이 나오는 것을 기다린 다음 김민준을 따라 걸어갔다. 괜히 긴장됐다. 느낌상 아까 연기를 할 때보다 더 떨리는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선 김민준이 입을 열었다.

“뭐 마시고 싶은 거 있어요?”

“저 지금 좀 단 거 마시고 싶어요.”

김민준이 픽 웃었다.

“당 떨어졌어요?”

“그런 거 같아요.”

“그럼 1층에 카페 있으니까 주문하고 마시고 있어요.”

“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다 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김민준이 1층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위로 상승했다.

“계약서는 카페에 계속 있으면서 보실래요 아님 조금 조용한 데에서 보실래요?”

나는 어디든 상관없는데. 고개를 돌려 이수아를 바라봤다. 이수아랑 눈이 마주쳤다.

이수아가 김민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카페에 있을게요.”

“그래요 그럼. 계약서 가져올 테니까 앉아 있어요. 아, 그리고 제 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주문해주세요.”

“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김민준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와서 오른손을 들어 카페를 가리키면서 저기 있어요, 라고 말했다. 네, 라고 짧게 답했다. 김민준이 빙긋 웃으면서 도로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갔다. 윤가영이랑 이수아와 나란히 걸어갔다.

이수아가 윤가영의 왼팔을 잡아 팔짱을 끼고 4인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오빠 나 돌체 콜드브루랑 조각 케이크 아무거나.”

윤가영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윤가영이 이수아랑 나를 번갈아 보다가 시선을 내게 고정했다.

“온유야 나는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

웃음이 나왔다.

“알겠어요.”

생크림 조각 케이크랑 치즈 케이크 조각,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둘, 돌체 콜드브루,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주문했다. 진동벨을 갖고 윤가영이랑 이수아가 있는 테이블을 찾아가 의자에 앉았다.

윤가영이 두 팔을 테이블에 대고 양손의 네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다다닥 두드렸다.

“온유야.”

윤가영의 목소리가 낮았다. 나도 나직이 답해야 할 듯했다.

“네.”

“잠깐만.”

윤가영이 폰을 들어서 진지한 표정을 짓고 양손 엄지로 화면을 다다다 두드리다가 내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계약할 마음 있는 거야?]

이수아가 고개를 들이밀어 화면을 같이 보았다가 자기 폰을 꺼냈다.

윤가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나도 폰을 꺼내 타이핑한 다음 화면을 윤가영에게 보여주었다.

[그쵸. 많이 도와주시기도 했고. 저번에 봤던 계약 조건도 좋았으니까.]

윤가영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또 키패드를 두드리고는 자기 화면을 보여주었다.

[응. 그래도 다 확인은 해야 돼.]

빠르게 타이핑하고 화면을 보여줬다.

[그럴 거예요.]

내 화면을 빼꼼 본 윤가영이 썼던 걸 지우고 다시 타이핑을 하고는 내게 화면을 보여줬다.

[알겠어(홍조를 띠고 미소 짓는 이모티콘)(홍조를 띠고 미소 짓는 이모티콘)]

피식 웃었다. 윤가영이 나를 마주 보며 히 웃었다. 진짜 미치도록 귀여웠다.

이수아가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고 나를 쳐다봤다.

“뭔데?”

이수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윤가영의 폰을 보려 했다. 윤가영이 왼손으로 폰을 잡아서화면 윗부분을 가렸다.

“아 뭐야 엄마.”

“왜?”

“아니 이상하잖아... 이모티콘 안 써도 되는데.”

“왜, 쓸 수도 있지.”

이수아가 윤가영을 보며 콧숨을 내쉬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엄마 이상해.”

“뭐가 이상하다구 그래...”

“그냥, 몰라.”

이수아가 자기 폰으로 시선을 돌리고 양손 엄지를 놀렸다. 내 폰이 진동했다. 이수아 문자가 떴다. 확인했다.

[ㅈㄴ 우리 엄마랑 사이 왤케 좋아짐?]

왠지 모르게 웃겼다. 그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드나?

[네가 원한 거잖아]

[아니 근데 ㅈㄴ]

[엄마 내 엄마인데]

[너한테 먼저 말 걸고 너한테 먼저 의견 물어보잖아]

자지가 급격히 커져서는 바지 속에서 껄떡거렸다. 친딸한테서 어머니를 뺏은 배덕감이 목덜미를 강타하는 느낌이었다. 미칠 듯이 짜릿했다.

[더 친해지려고 일부러 더 챙겨주고 그러나 보지]

[아니 정도가 심하잖아]

[안 느껴져?]

[심하다는 게 뭔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보내는 순간 윤가영에게서 문자가 왔다. 수아랑 무슨 얘기하고 있어? 라고 쓰여 있었다. 윤가영 쪽으로 넘어가서 타이핑했다.

[그냥 왜 이렇게 사이 좋아졌냐고 물어요]

[으응]

진동벨이 울렸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가 갈게요.”

“응...”

윤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아가 나를 쏘아보다가 자기 폰을 봤다.

주문한 걸 받으러 걸어가는데 폰이 진동했다. 화면을 내려봤는데 이수아가 보낸 문자가 있었다.

[방금 문자 누구한테 보낸 거야?]

미친. 얘는 무슨 동물인가? 감각이 날 서 있었다.

폰을 주머니에 넣고 포크가 네 개 올려진 사각 트레이를 받은 다음 원래 자리로 돌아가 트레이를 내려놓았다. 윤가영이 양손에 돌체 콜드브루랑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잡아서 이수아랑 자기 앞에 각각 놓아줬다. 이수아가 케이크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나 무슨 케이크 먹어?”

“너 먹고 싶은 거 뭔데?”

“나 지금 둘 다 당기는데?”

“그럼 나눠먹지 뭐.”

“응.”

이수아가 망설임없이 포크를 들고 치즈 케이크를 한 입 했다. 윤가영을 바라봤다.

“케이크 하나 더 주문할까요?”

“아니, 괜찮아.”

윤가영이 히히 웃었다.

“고마워. 권해줘서.”

이수아가 돌체 콜드브루를 한 모금 마시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뭘 이런 거로 고맙다고 해.”

“해야지. 사소한 거에도 고맙다고 해야 서로 마음 안 상하고, 더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화목해지는 거야.”

“...”

“할 말 없지?”

“... 엄만 오빠만 좋아해.”

“아니야아...”

이수아가 윤가영의 애교에 화답하지 않고는 포크로 생크림 조각 케이크를 크게 한번 떠서 한 입 했다. 크림이 이수아의 왼 입술에 묻었다.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리고 우물우물 씹다가 혀로 입꼬리를 날름 핥았다. 혀가 닿지 않는 곳이 있어서 하얀 게 아직 남아 있었다.

이수아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오빤 안 먹어?”

“먹을 거야.”

“그럼 포크 들어.”

픽 웃었다.

“응.”

“왜 웃어?”

“너 귀여워서.”

“으, 지랄.”

윤가영이 이수아를 째려봤다.

“엄마가 그런 말 하지 말랬지.”

“실수야.”

윤가영이 조용히 한숨 쉬었다. 이수아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별 표정 변화 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포크를 들어 치즈 케이크를 한 입 했다. 부드럽고 달콤했다. 이따 지수랑 선우한테 갔을 때 조금 이르게 저녁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니 조금 자제해서 먹어야 할 듯했다. 라떼를 한 모금 마시고 윤가영을 보며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드세요.”

윤가영이 히 웃었다.

“난 너랑 수아 먹는 거만 봐도 배부른데...”

이수아가 불경한 눈빛으로 윤가영을 바라봤다.

“엄마 왜 오빠가 먼저 나와?”

“어?”

윤가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눈빛에 황당함이 물들어있었다.

“그럴 수도 있지 않아...?”

“아니, 내가 먼저여야 되는 거 아냐?”

윤가영이 곤란한 듯 웃으면서 왼손으로 이수아의 등을 쓸었다.

“미안해. 근데 온유랑 얘기하고 있었으니까 온유 먼저 언급한 거잖아.”

“그래도 내가 우선이어야지. 맨날 오빠만 챙기고.”

“아니야... 왜 자꾸 엄마 속상하게 말해. 괜히 이상하게 억지 부리고...”

이수아의 표정이 뚱해졌다.

“내가 억지 좀 부리면 안 돼?”

“... 부려도 되기는 한데...”

“... 됐어. 엄마랑 얘기 안 해.”

이수아가 포크로 생크림 케이크를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윤가영이 심란한 듯 좋지 않은 안색을 하고 이수아를 마냥 보았다. 이수아는 오기라도 생겼는지 윤가영은 보지 않고 나만 바라봤다.

멀리에서 손에 파일을 들고 있는 김민준이 천천히 걸어왔다. 빨리 와줬으면 했다.

이수아가 돌체 콜드브루를 한 모금 마시고 치즈 케이크를 한 입 했다. 얘는 스트레스 생기면 막 먹는 타입인가. 여배우 돼서 가십이라도 생기면 살찌게 되는 거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계약서예요. 어머님은 한 분이랑 같이 붙어서 보시면 될 거 같아요.”

김민준이 나랑 이수아한테 계약서를 나눠주고는 빈자리에 앉았다.

윤가영이 이수아랑 나를 번갈아 보다가 내 옆으로 왔다.

“엄마 나한테 와.”

이수아가 말했다.

“으응...”

윤가영이 이수아의 옆으로 가서 같이 계약서를 봤다. 김민준이 나랑 이수아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근데요 수아 학생.”

이수아가 고개 들었다.

“네.”

“입술 왼쪽에 크림 묻어있어서요.”

“아 그래요?”

이수아가 나를 쳐다봤다. 왠지 얼굴이 무슨 짓을 벌일 듯한 기운을 풀풀 풍겨대는 고양이 같았다.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닦아줘 오빠.”

김민준이 웃음을 참으려는지 입술을 입 안에 넣어 이로 깨물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가영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닦아줄게.”

“아냐 엄마 손 더러워지니까 하지 마.”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내 손은 더러워져도 돼?”

“응. 빨리 닦아줘.”

이수아가 두 팔을 테이블에 대고 내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왠지 주변의 이목이 이쪽으로 집중되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빨리 해치워야 할 듯했다. 아니 근데 왜 냅킨이 없지? 부조리했다. 오른손을 뻗어 엄지로 이수아의 왼 입술 끝자락에 있는 크림을 훑었다. 이걸 어떻게 처리할까. 곤란했다.

“그거 먹어도 돼 오빠. 나 입술에 뭐 안 발랐어.”

미친년. 어질어질했다. 윤가영이 불안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윤가영이 입을 열어 조용히 소리 냈다.

“내가 먹어줄까 온유야...?”

아니 이 여자는 또 왜 이래. 미칠 것 같았다. 뒤에서 김민준이 걸어왔다.

“냅킨 가져왔어요.”

“아 저 한 장만 주세요.”

오른손 엄지가 안 보이게 숨기면서 양손을 뻗었다. 냅킨을 받고 엄지를 닦았다. 김민준이 자리에 앉고는 눈을 크게 떴다.

“이미 닦았네요?”

“오빠가 닦아줬어요.”

“예?”

김민준이 나를 쳐다봤다가 내 오른손을 내려봤다. 김민준이 충격에 물든 표정을 짓는 건 처음 보는 거 같은데. 왠지 귀한 광경이다 싶었다.

“아, 음. 네. 냅킨 안 필요해요?”

“하나 주세요.”

“네.”

김민준이 냅킨 한 장을 이수아에게 건넸다.

“오빠한테 줘요.”

아니 또 뭘 하려고.

“왜?”

“걍 받아.”

“...”

김민준의 손에서 냅킨을 가져갔다.

“닦아줘.”

미친. 왜 갑자기 이렇게 폭주할까. 머리가 어지러웠다.

윤가영이 가만히 보다가 기습적으로 내 손에서 냅킨을 낚아채고는 이수아의 왼 입술을 닦았다. 이수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윤가영이 미소를 띠었다. 왠지 모르게 만족감에 차 있는 강아지 같아 보였다.

“됐지?”

이수아가 황당하다는 듯 윤가영을 바라봤다.

“... 응...”

윤가영이 이수아를 보며 히 웃었다.

“계속 먹어.”

“알겠어.”

이수아가 더 할 말이 없는지 커피를 마셨다. 윤가영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는 빙긋 웃었다. 왠지 강아지처럼 복슬복슬한 꼬리를 양옆으로 마구 흔드는 환각이 보이는 듯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칭찬이라도 해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진짜 미치도록 귀엽고 예뻤다.

이래서 설령 윤가영이 새엄마라고 해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거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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