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화 〉 오디션 후 (1)
* * *
히 웃는 소리가 들렸다. 정하윤이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오른손을 들더니 내 가슴을 찰싹 때렸다.
“오빠. 끝났어.”
“... 응.”
고개를 끄덕거렸다.
“순간 멍 때린 거야.”
“퍽이나 그러시겠다.”
“...”
받아칠 말이 없어서 몸을 돌려 객석을 봤다. 오지윤 감독이랑 눈을 마주쳤다. 빙긋 웃고 있는 게 괜찮게 봐준 모양이었다.
“온유 군.”
“네.”
“소속사 결정은 난 거예요?”
“아...”
고개를 돌려 김민준 실장을 바라봤다. 덕분에 여기까지 왔으니 AOU 엔터로 들어가야 할 거였다. 다시 오지윤 감독을 봤다.
“네.”
“그래요. 그럼 연락은 김민준 실장님한테 하면 되는 거죠?”
“네.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민준 실장이 빠르게 답했다.
“네 알겠어요.”
오지윤 감독이 나를 쳐다봤다.
“온유 군, 오디션 영상 찍은 거 다시 보고 싶지 않아요?”
“아, 네. 보고 싶어요.”
“그럼 수아 양한테 보내줄까요?”
“네. 저한테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수아가 재빨리 답하고 나를 쳐다보며 히죽 웃었다. 웃기는 애였다. 절로 혀가 내둘러졌다.
고개를 돌려 오지윤 감독을 바라봤다.
“온유 군 우리 드라마 작가가 되게 강하게 주장해서 온 거 알아요?”
“그랬나요?”
정서아를 바라봤다. 정서아가 멋쩍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말 편히 해도 돼요, 저희 동갑이니까.”
“아, 그럼, 알겠어.”
다들 피식 웃었다. 나를 관찰하면서 미소 짓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굉장히 사랑받는 반려동물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약간 부끄러웠다.
“저 그럼 일단 오디션 끝난 거죠?”
“맞아요. 가면 돼요. 수고했어요.”
오지윤 감독이 답했다.
“아 넵.”
“오늘 오디션 보러 와줘서 고마워요.”
“아뇨, 불러주셔서 제가 감사하죠.”
오지윤 감독이 피식 웃었다.
“부른 사람은 서아니까 서아한테 고맙다고 해요.”
정서아를 보며 고마워, 라고 했다. 정서아가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지윤 감독이 윤가영을 바라봤다.
“근데 어머니는 진짜 연기하실 마음 하나도 없으세요? 하윤이 어머니 역할 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서 그래요.”
윤가영이 곤란한 듯 웃었다.
“근데 제가 그런 거를 잘 못 해서요...”
윤가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 역 비중 되게 적어요.”
오지윤 감독이 미소 지었다.
“맞아요. 라인 한두 줄 정도씩만 나오니까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카메라 앞에서 한마디도 못 하시는 것만 아니면.”
“아, 네...”
“오늘 집 가셔서 한번 생각해보고, 해봐야겠다 싶으시면 연락 주세요.”
오지윤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윤가영에게 다가와 명함을 건넸다. 윤가영이 양손으로 공손히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윤가영이 내게 가까이 다가와 조용한 목소리로 빨리 가자, 라고 말했다. 귀여웠다. 웃음이 나오지 않게 표정을 관리하고, FD에게서 대본을 돌려받은 다음 다 같이 스튜디오를 나가는 길로 향했다. 정시은이 양손을 흔들며 담에 봐요, 라고 말했다. 다음에 보자고 화답하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수아가 윤가영을 바라봤다.
“감독님이 엄마 되게 마음에 드셨나 본데?”
윤가영이 말은 못 하고 멋쩍게 웃기만 했다.
“온유야...!”
정서아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봤다. 왼손에 폰을 들고 있는 정서아가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응.”
“갑자기 불러세워서 미안한데, 번호 좀 줄래?”
윤가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수아가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고 정서아를 바라봤다.
“번호는 왜요?”
정서아가 이수아를 바라봤다.
“아 뭐 대본 관련해서 이것저것 소통하고 싶어서...”
“그럼 저한테 문자 하시지. 제가 작가님 폰으로 오빠 번호 드렸을 건데.”
“아니 이런 건 직접 물어봐서 직접 받아야 할 것 같아 가지구.”
“그래요 그럼.”
내가 말했다. 정서아에게 양손을 뻗었다.
“어, 아.”
정서아가 눈꼬리를 휘면서 히 웃었다. 웃는 모습이 누굴 닮았다 싶었다.
“고마워.”
정서아가 폰을 켜고 내게 건넸다. 번호를 적어주고 넘겨줬다.
정서아가 전화를 연결했다. 오른 주머니에서 내 폰이 울렸다. 꺼내고 연결했다.
“여보세요.”
정서아의 폰에서 여보세요, 하고 소리가 들렸다. 정서아가 싱긋 웃으면서 전화를 껐다.
“알려줘서 고마워.”
“아냐 내가 고맙지. 대본 내용 알려주는 건데.”
“으응... 붙잡아서 미안해. 빨리 가.”
“응. 너도 잘 가.”
“응.”
정서아가 손을 흔들었다. 마주 흔들고 뒤돌아서서 걸어갔다. 이수아가 연방 뒤를 돌아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니 뭐 대본 때매 연락할 일이 많이 있나?”
투덜대는 투가 귀엽기 그지없었다. 픽 웃었다.
“있으니까 물어봤겠지.”
“아니... 대본 다 완성해놓은 거면 그걸로 연락할 일이 뭐가 있는데?”
“... 넌 그럼 다른 이유 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 몰라.”
웃음이 나왔다. 괜히 질투하는 건지 뭔지. 왜 정서아를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지 이유는 확실히 알지 못하겠는데 엄청 귀엽게 느껴졌다.
건물을 빠져나오고 타고 왔던 밴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윤가영이랑 이수아가 뒷좌석에 타고 김민준 실장이 운전석에 타서 벨트를 맸다.
“잠깐 시간 있어요?”
지수랑 선우가 저녁 먹을 즈음에는 오라고 했는데. 그래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잠깐은 괜찮을 거였다.
“네, 있어요.”
“대표님이 온유 학생이랑 수아 학생 보고 싶다고 하셔서요.”
“아 진짜요?”
“네. 오늘 우리 회사 가서 계약서 좀 볼래요? 어머니도 같이요.”
“아, 네 좋아요.”
윤가영이 답했다.
“근데 저는 계약하는 거 아니죠...?”
“네. 그런데 연기하실 마음 있으시면 달라질지도 모르죠.”
“아 네...”
윤가영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설레발 비슷하게 한 게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수아 학생은 시간 있어요?”
“네. 가요.”
이수아가 짧게 말하고 창문에 시선을 던졌다. 얼굴이 복숭아처럼 익은 윤가영이 가만히 나를 쳐다봤다.
“할 말 있어요?”
“음? 어... 아니.”
윤가영이 얕게 고개 저었다. 살폿 웃었다. 무슨 말을 숨기고 있는 걸까.
“할 말 있으면 그냥 말해요.”
“... 응...”
“무슨 말 하려고 했어요?”
“그냥, 드라마 작가 있잖아, 정서아인가...?”
“네.”
“그 애가 너한테 번호 물어본 이유가 뭔가 하고 계속 생각나 가지고... 온유한테 관심이 있어서 물어본 건가 생각도 들구...”
윤가영이 왼쪽 차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발그레 달아오른 옆얼굴이 예뻤다. 모녀가 쌍으로 질투를 한다니. 밑부분이 바짝 설 것만 같았다.
“수아도 그거 때문에 다른 이유 있는 거 아니냐고 한 건가 해서...”
“아니야 엄마.”
이수아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냥 대본 얘기 꺼내면서 그 이유로 번호 물어본다는 게 좀 말이 안 맞아 가지고 그런 거지 무슨...”
“어...?”
윤가영이 이수아를 바라봤다.
“내 얘기가 그 뜻이었는데...?”
“...”
오른쪽 차창을 바라보는 이수아의 얼굴이 점점 붉어져서 복숭아가 되었다가 곧장 사과처럼 되었다. 이수아가 우물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아 엄마가 이상하게 말했잖아.”
목소리가 앙칼졌다. 창피해서 괜히 더 목소리를 날카롭게 세우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뭘 이상하게 말했는데?”
“아니 뭐, 내가 설명해야 돼?”
“아냐. 미안해.”
“...”
이수아가 몸을 살짝 틀고 폰을 꺼냈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봤다가 다시 이수아를 바라봤다. 그렇게 잠시 수아를 보다가 윤가영도 폰을 꺼내 양손 엄지로 화면을 두드렸다.
나도 폰을 꺼내 봤다. 이수아한테서 문자가 온 게 있었다.
[이상한 오해하지 마라]
[진짜 뒤진다]
픽 웃었다.
[뭔 오해?]
[ㅈㄹ ㄴ]
[아니 뭐 했다고 내가]
[걍 아무 말도 하지 마]
[안 했잖아]
윤가영한테서 문자가 왔다. 사랑한다는 문자를 서로 보낸 게 들키면 안 되는데. 이수아한테 안 보이게 주의하면서 문자를 확인했다.
[방금 수아가 내 말 듣고 나서 생각한 게 그거 같지. ‘수아도 너한테 관심 있어서 서아가 번호 물어본 게 사심인 것 같아 가지고 짜증이 났고, 그래서 다른 이유가 있냐고 물은 거 아닌가?’]
[내 말 이해됐어?]
[이해됐어요. 근데 이유가 진짜 그게 맞을까요?]
[맞을 거야. 수아 너 좋아하니까.]
윤가영이 이수아를 힐끔 봤다. 서로 사귀지도 않는데 새오빠한테 다가오는 사람을 견제하는 여동생이랑 그 여동생을 남몰래 견제하는 엄마라니. 어질어질했다
“오빠 폰으로 뭐해?”
섬찟했다. 황급히 뒤로 가기를 눌렀다. 다시 생각해보니 자기가 보낸 문자는 안 보고 뭐 하냐고 묻는 듯했다. 조용히 한숨 쉬면서 이수아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새로 온 것은 없었다. 톡을 켰다. 이수아가 보낸 게 있었다.
[(고양이가 오른 주먹을 날리는 사진)]
픽 웃었다.
[고양이 좋아해?]
[응]
[(회색 고양이가 오른 주먹을 날리는 이모티콘)]
[너 지금 창피해서 괜히 이러는 거지]
[뒤진다.]
[왜]
[뭐라 하면 뒤진다 했지 내가.]
웃음이 나왔다. 폰을 끄고 주머니에 넣은 다음 고개를 돌려 이수아를 바라봤다. 얼굴이 아직 붉은 느낌이었다. 이수아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폰 봐.”
“대화할 거면 걍 입으로 하면 되잖아.”
“싫어.”
“나 폰 안 볼 거야.”
“... 관둬 그럼.”
이수아가 폰을 자기 왼 주머니에 넣고 눈을 감더니 등을 등받이에 딱 붙였다. 그러고는 두 손을 포개 자기 배 위에 얹었다. 이수아가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가슴이 살짝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귀여워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윤가영이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살짝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미치도록 귀엽고 야했다. 자지가 더는 참지 못하고 솟아올랐다. 왼손을 주머니에 넣고 자지를 억누른 다음 오른손으로 폰을 꺼냈다. 김민준이 보지 못하게 하고 문자 앱을 켜 윤가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랑해요 여보]
폰을 도로 집어넣고 윤가영을 바라봤다. 윤가영이 나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가 폰을 꺼내봤다. 윤가영이 입꼬리를 올렸다가 도로 표정을 되돌렸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화면을 두드렸다. 이윽고 주머니에서 폰이 진동했다. 굳이 보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윤가영을 그대로 바라보면서 빙긋 미소 지었다. 윤가영이 싱긋 웃었다. 존나 야했다. 자지에서 쿠퍼액이 새어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내게 마음이 있는 새여동생이 모르게 은밀히 새엄마와 섹스를 하며 서로 여보라고 부르는 사이로 진척하는 것도 모자라서, 새여동생이 바로 옆에 있어도 문자를 통해 서로 사랑한다고 속삭인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한없이 비정상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도저히 관둘 수 없었다. 윤가영과 나는 더 나아갈 수는 있어도 물러날 수는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갈 수 있는 길이 대체 어떤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리 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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