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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302화 (301/438)

〈 302화 〉 오디션 보러 가는 길

* * *

내 방 침대에 걸터앉아 대본을 보는데 폰이 울렸다. 김민준이었다. 연결했다.

“여보세요.”

ㅡ온유 학생 나갈 준비 다 했죠?

“네. 다 됐어요.”

ㅡ그럼 저 이제 금방 도착하니까 밖으로 나와요.

“네. 근데 새엄마도 같이 와도 될까요?”

ㅡ음, 왜요?

“그냥 구경하고 싶으시다 해서...”

ㅡ아아...

“안 되면 말고요.”

ㅡ아니 막 안 된다는 건 아닌데, 옆에 계시면 또 눈길 끌까 봐.

“으음... 눈길 끌리면 안 돼요?”

ㅡ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오지윤 감독님이 배역이랑 분위기가 맞는 일반인 있으면 연기력 좀 보고 바로 캐스팅하려고 한다는 일화가 좀 있어서요.

“... 근데 저번에는 오디션 보는 곳 안에 저 넣으시려고 하지 않았어요?”

ㅡ음, 저 여동생분 오디션 보는 거 보러 오지 않겠냐고만 묻지 않았어요?

“그게 살짝 유도한 거 아니에요?”

ㅡ아. 아 맞네. 맞아요. 근데 그때 의식하고 물은 건 아니에요. 아마 무의식적으로 온유 학생 캐스팅되면 좋으니까 그랬나 봐요. 근데 나 이제 다 왔는데 밖으로 나올래요?

“알겠어요.”

전화를 끊었다.

윤가영도 보러 가도 된다고 한 거인가? 정확히 답은 안 한 거 같은데. 일단 같이 나갔다가 대면해서 물어봐야 할 듯했다.

대본을 챙기고 방을 나섰다. 거실 소파에 교복을 입은 이수아랑 베이지색 브이넥 니트 카디건에 청바지를 입은 윤가영이 앉아 있었다.

이수아가 대본을 보다가 나를 쳐다봤다.

“나가?”

“응. 실장님한테 전화 왔어.”

“어.”

이수아가 오른손에 대본을 쥔 채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윤가영도 자리에서 일어나 느릿느릿 걸어왔다.

이수아가 양손으로 내 오른팔을 붙잡고 품으로 끌어서 앞으로 걸어갔다. 이수아와 발맞춰 현관을 향했다.

“막 잡지 말고 그냥 가자고 말을 해.”

“네가 나가자고 말했잖아.”

“그건 그런데 끌고 가는 건 아니지.”

“아 군소리하지 말고 걍 가.”

헛웃음이 나왔다.

“알겠어.”

이수아가 신발에 발을 넣고 몸을 숙여 발뒷꿈치를 넣었다. 나도 신발을 신었다.

윤가영이 뒤따라와서 쪼그려 앉아 신발을 신었다. 이수아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윤가영이 몸을 일으키고 나를 쳐다봤다.

“근데 나도 가도 되는 거 맞아 온유야?”

“되는 거 같아요. 일단 가서 물어보죠.”

“으응...”

윤가영이 밖에 나와 문을 잠그고 다 같이 대문을 나섰다. 정차해 있는 검은 밴 한 대와 조수석 오른편에 서 있는 김민준 실장이 보였다. 고개 숙이며 천천히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김민준 실장이 미소 지으며 차 문을 열었다.

“저번처럼 다 같이 가는 건가요?”

윤가영이 배시시 웃었다.

“네... 근데 저도 가도 되는 거 맞나요...?”

“돼요. 전에도 같이 가셨잖아요.”

“근데 그때는 오디션장까지는 같이 안 들어갔으니까...”

김민준이 눈웃음 지었다.

“돼요. 감독님이나 스태프분들이 어머니가 조금 자녀를 유별나게 아끼시는 분이구나 생각하고 마는 정도일 거예요.”

“아 그럼 저 가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아뇨 아뇨 괜찮아요. 다들 별생각 안 하실 거예요. 들어오세요.”

“네...”

윤가영이 차 안으로 들어가 왼쪽에 앉았다. 이어서 이수아가 들어갔다.

김민준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온유 학생은 어디에?”

“저 조수석에 탈게요.”

“알겠어요.”

김민준이 문을 닫고 조수석 쪽을 열어준 다음 반대편으로 갔다. 조수석에 오르고 문을 닫은 다음 벨트를 맸다. 김민준이 운전석에 올라타고 벨트를 맸다.

“출발할게요.”

“네.”

내가 답했다. 윤가영도 작게 네, 라고 답했다.

밴이 앞으로 나아갔다. 김민준이 전방을 주시하며 입을 열었다.

“온유 학생 대본 다 읽어봤다고 했죠?”

“네.”

“몇 번 읽었어요?”

“두 번 정도 읽었어요.”

“으음... 좋네요.”

“좀 부족한가요?”

“아뇨, 얼마나 읽었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죠. 해석이 중요한 거지. 배우나 감독도 아닌 사람이 이런 거 말하기는 좀 뭐하긴 한데.”

“배우분들 많이 봐오셨으니까 말씀하실 수 있죠.”

김민준이 미소 지었다.

“고마워요.”

더 이을 말이 없었다. 이수아는 대본만 보고 윤가영은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어서 밴에 침묵이 맴돌았다.

김민준이 입을 열었다.

“온유 학생 여기 콘솔박스에 대본집 있는데 꺼내서 나눠줄래요?”

“네.”

콘솔박스를 열자마자 작은 책자 같은 게 여러 권 보였다. 측면에 방영사의 로고가 박혀있고, 가운데 상단에 제목이 쓰여 있었다. 책은 ‘겁쟁이둘 Ⅰ’, 그리고 ‘겁쟁이둘 Ⅱ’ 두 권으로 나뉘어 있었다.

“두 권 다 하나씩 줘요?”

“네, 주세요.”

일 권이랑 이 권을 세 부씩 꺼내 들고 뒤를 보았다. 이수아가 어느새 대본에서 눈을 떼고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눈을 마주쳤다. 이수아에게 먼저 건네줬다. 이수아가 내 손에서 앗아가듯이 바로 받았다. 윤가영에게도 주고, 몸을 도로 앞으로 돌렸다.

“근데 이거 대본집은 내용 면에서 뭐 크게 바뀌거나 한 게 있는 거예요?”

“아뇨 내용은 바뀐 거 별로 없을 거예요. 근데 대사 살짝 바꾸거나 한 거는 있긴 할 거예요.”

“아아, 네.”

“한번 읽어봐요. 이따 오디션 봐야 하니까.”

“네.”

일 권을 펼쳐봤다. 세 장 정도 넘겨봤는데 아무래도 집중이 잘 안 됐다. 고개를 들었다.

“근데 드라마 관계자분들은 어떻게 저 부른 거예요?”

“음. 온유 학생 여동생분이 오디션 보는 날에 FD 한 분이랑 마주쳤죠?”

“네.”

“그분이 감독님한테 수아 학생이랑 같이 있는 남학생이 한 명 있었다 하고 얘기를 꺼냈는데, 그 말을 되게 진지하게 들었대요. 그래서 수아 학생 데려왔던 저한테 따로 연락을 해 가지고 혹시 그 남학생 이름 좀 알 수 있겠냐고 묻고 그래서, 제가 온유 학생 이름 알려드렸거든요. 근데 그러고 나니까 드라마 작가님이랑 감독님이 그럼 우리가 꼭 좀 보고 싶은데, 한번 봐야겠는데 어떻게 안 되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아아... 네.”

“드라마 작가분 얘기 나와서 생각난 건데, 제가 저번에 드라마 작가님이 고1이라고 했잖아요.”

“네.”

“최근에 다시 알고 보니까 온유 학생이랑 동갑이더라고요. 고2. 초고는 고1 때 완성한 거고. 제가 좀 잘못 알고 있던 거였어요.”

“그래도 대박이네요. 그 나이에 이런 대본을 쓰고.”

“그쵸. 오지윤 감독님이 직접 해보겠다고 나서기까지 했으니까. 그냥 대박도 아니고 초대박이죠.”

차가 코너를 돌았다. 몸이 잠깐 부드럽게 왼쪽으로 쏠렸다가 다시 돌아왔다.

“와, 운전 되게 잘하시네요.”

윤가영 목소리였다. 김민준이 백미러를 흘깃 보며 살폿 웃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그 말을 끝으로 차 안이 조용해졌다.

이제는 대본을 보아야 할 듯했다. 표지부터 다시 보고 차근차근 장을 넘겼다.

왠지 모르게 내용은 잘 안 들어오고, 드라마 작가 이름이 정서아라는 것만 기억에 남았다.

왜 이러는 거지? 바보라도 된 느낌이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뜨고 대본을 노려봤다. 뭔가 활자가 뇌로 들어오려다가 마는 것만 같았다. 진짜 갑자기 왜 이럴까. 답답했다.

눈살을 찌푸리고 집중하려 하는 건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머릿속으로 정서아라는 이름을 굴렸다.

정서아. 나랑 같은 열여덟 살에 여자 작가. 정 씨. 이름에 모음은 어랑 아가 들어가고, 자음은 시옷과 이응이 들어간다.

이마 쪽이 가려운 느낌이 들었다. 왠지 뭐라도 생각이 날 것 같은데. 정작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느낌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온유야 머리 아파?”

윤가영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윤가영을 바라보고 미소 지었다.

“아뇨 저 안 아파요.”

“으응... 난 너 눈 찡그리고 있길래, 어디 아픈가 했어.”

“저 그냥 뭐 생각이 날까 말까 하는 거 있어 가지고, 그거 신경 쓰여서 그런 거예요.”

“으음... 알겠어.”

“네.”

다시 앞을 봤다.

“만약에 어디 아프면 얘기해.”

윤가영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살폿 웃고 뒤돌아봤다.

“알겠어요.”

윤가영이 히 웃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응...”

귀여웠다. 윤가영을 보면서 너무 웃으면 이수아가 안 좋게 볼 것 같아서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대본을 내려봤다. 글자가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귀에 파고 들어오던 도로 소음이 멀어지는 듯했다. 지금의 집중을 놓치면 안 될 거였다. 장을 하나씩 넘겨 갔다.

“다 왔어요.”

김민준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었다. 유리 너머로 방송국 건물이 보였다. 정문 입구에는 플래카드 같은 것을 들고 있는 여학생들이 있었다.

“저분들은 뭐예요?”

“팬덤이에요. 오늘 토요일이라 음방해 가지고 있나 봐요. 이따 본인이 응원하는 아이돌 있는 소속사 차 보이면 바로 달라붙고 그럴 거예요.”

“아아, 네.”

김민준이 감속하면서 방송국 정문으로 차를 몰았다.

“제가 AOU 엔터에서 매니저 일하면서 차에 여학생 팬분들 붙은 적이 진짜 한 번도 없거든요. 근데 이제 온유 학생이 계약서 사인하고 들어오면 그런 일 생길 거 같네요.”

피식 웃고 설마요, 라고 말했다. 김민준이 말없이 미소 지었다. 어딘가 의미심장했다.

고개를 돌려 옆유리를 보며 눈을 살짝 찌푸렸다. 순간 여학생 한 명이랑 눈을 마주쳤다.

나랑 시선이 교차한 여학생이 눈을 크게 뜨고 멍하니 입을 약간 벌렸다. 하품하는 거 같지는 않은데. 이상했다.

차가 더 앞으로 나아갔다. 나랑 눈빛을 교환한 여학생이 갑자기 다다다 달려 차 뒤를 쫓아왔다. 당황스러웠다.

“지금 뒤에 누구 붙은 거 같은데요?”

이수아가 툭 말했다.

“네?”

김민준이 되물으면서 침착하게 주차했다.

“어디요? 농담 아니죠?”

그때 차 옆유리로 까치발을 선 여학생이 보였다.

입을 열었다.

“제 오른쪽에요.”

김민준이 내 시선을 좇아 여학생을 보고는 즐거운 듯 웃었다.

“제가 틀렸네요. 데뷔도 안 했는데도 따라오는 거 보면.”

멋쩍게 웃었다.

“일단 저 먼저 나갈게요.”

김민준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여학생이 김민준에게 졸졸 다가가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저 갑자기 따라와서 진짜 죄송한데, 매니저님이 데리고 다니시는 분 이름만 좀 알 수 있을까요?”

“아 근데 아직 데뷔를 안 해 가지고, 일반인이에요.”

“아니 그게 무슨 변명이에요, 방송국 와놓고.”

되게 저돌적인 분이시네. 차에서 내렸다. 멋쩍게 웃던 김민준이 나를 쳐다봤다.

여학생 앞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학생의 눈이 커졌다.

“아 네 안녕하세요!”

여학생이 갑자기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 초면에 죄송한데 이름만 알 수 있을까요...?”

“이온유예요, 이름.”

“아, 그럼 성이 이 씨시고, 이름은 ‘온리 유’라고 할 때 온하고 유인 거죠?”

표현을 재밌게 하는 사람이었다. 싱긋 웃었다.

“네 맞아요.”

“아 감사해요. 근데 진짜 데뷔 안 하신 거예요...?”

“네. 아직 안 했어요.”

“왠지 진짜, 제가 웬만한 연예인 거의 다 꿰고 있는데 순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가지고요... 근데 이름 모르고 그냥 지나치면 진짜 크게 후회할 거 같아서 무리하게 쫓아왔어요. 아 지금 시간 뺏기면 안 되시죠? 죄송해요. 데뷔 언제쯤에 하시는 거예요?”

말이 되게 빠른데 또박또박하기까지 했다. 래퍼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살짝 멍했다.

김민준이 미소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금방 할 거예요.”

김민준이 양손으로 내 양팔을 툭툭 쳤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이제.”

“아, 네.”

여학생을 보며 꾸벅 인사했다. 여학생이 배시시 웃으면서 마주 고개 숙여 인사하고 만족한 듯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혼자 건물 내부로 들어가고 김민준이랑 윤가영, 이수아가 오기만 기다렸다. 이내 세 명이 문을 넘어 내게 다가왔다.

삐죽 나와 있는 이수아의 입술이 내 전방 1m로 근접하자 바로 열렸다.

“존나 사람 매수해서 심어둔 거 아니지?”

픽 웃었다. 이수아랑 나란히 걸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야. 그런 거 해서 뭐 해.”

“몰라. 과시나 그런 거 하는 거지.”

“안 해 그런 거.”

“... 나 순간 개 당황했잖아.”

“나도 엄청 당황했어.”

김민준 실장이 나랑 이수아를 보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얼마 안 있으면 익숙해져야 될 거예요 온유 학생은.”

“왜 저만, 그럼 얘 이수아는요?”

“난 배우잖아.”

“배우인 것도 있는데, 대개 스케줄 보고 따라다니고 하는 팬덤은 남자 아이돌 팬덤이라서요.”

“네? 저 아이돌 안 한다고 했잖아요.”

김민준이 씩 웃었다.

“근데 온유 학생 얼굴이 그렇잖아요. 방금만 해도 온유 학생 이름도 모르는 사람도 따라붙고 했으니까, 아이돌 같이 되는 건 운명이라고 봐야죠.”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수아가 악동처럼 웃으면서 왼손을 말아 쥐고 내 오른팔을 툭 쳤다.

“얼굴 잘생겼다 소리 들으니까 좋아?”

“글쎄.”

“글쎄 이러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빠져나오고 김민준이 오른손 손바닥을 내보이며 안쪽을 가리켰다.

“들어가세요.”

“네.”

답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수아랑 윤가영이 들어오고, 김민준도 안에 타서 버튼을 눌렀다. 몸이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진짜 오디션을 보러 가는 거구나, 하고 갑자기 실감이 났다.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왠지 살짝 기대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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