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화 〉 오디션 보는 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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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울렸다. 눈도 안 뜨고 왼손을 뻗어 꺼버렸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오늘 오디션 보는 날인데. 간밤에 대본을 읽느라 피곤하기도 했고, 가기도 귀찮으며, 솔직히 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괜히 불안해서 가기 싫었다. 그래도 진짜 안 갈 수야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빠르게 씻고 교복을 입었다. 조끼까지 입은 다음 폰으로 백지수랑 송선우에게 잘 잤냐고 문자를 보낸 다음 방에서 나가 주방으로 향했다. 베이지색 브이넥 니트 카디건에 청바지 차림인 윤가영이 의자에 앉아 테이블에 오른팔을 대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윤가영이 빙긋 웃었다.
“온유야.”
“언제부터 여깄었어요?”
“별로 안 됐어. 그냥 아침 뭐 만들까, 너 깨워서 물어봐야 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왔네?”
눈웃음 지었다.
“그럼 커피에 와플이나 해줘요.”
“와플? 무슨 와플?”
“그냥 와플이요. 크로플 할 수는 없잖아요.”
윤가영이 그렇네, 라고 답하고 배시시 웃었다. 평소에 잘 웃기도 했는데 요즘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웃는 느낌이었다.
나랑 섹스하기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웃음이 많았던 것 같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귀여웠다.
“수아는 일어났어요?”
“아직 안 일어났을걸? 확인해봐야 돼.”
“제가 깨울게요.”
“아냐. 자고 있으면 그냥 자게 둬.”
눈웃음 지었다.
“알겠어요.”
“응.”
이수아 방 앞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대답이 없었다. 문을 열고 오른발만 안에 들이고 상체를 옆으로 기울여 침대 쪽을 내려봤다. 왼쪽으로 누운 이수아가 이불을 끌어안고 있었다. 오른 눈을 감고 있는 게 아마 자는 모양이었다. 조용히 뒤로 물러서고 문을 닫았다.
주방으로 돌아갔다. 와플 기계를 닫고 있는 윤가영의 뒤로 가 하던 것을 마칠 때까지 기다라고 말없이 껴안았다.
“음?”
윤가영이 고개를 뒤로 돌려 나를 올려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윤가영이 히 웃었다.
“하지 마아...”
“뭘 하지 마요.”
“수아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자지가 커져서 윤가영의 왼 엉덩이를 툭 건드렸다. 윤가영이 왼손을 뒤로 보내 내 자지랑 엉덩이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럼 안 돼애...”
“섹스는 안 할 거였어요.”
“... 근데 왜 세워...”
“여보가 보이니까 세우지.”
양손으로 윤가영의 가슴을 움켜쥐고 입술을 포갰다. 윤가영이 눈을 감았다.
“아움... 쮸읍... 츄읍...”
향긋한 민트 냄새, 카페에 온 듯한 커피 내음, 와플 구워지는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입술을 떼고 윤가영의 배를 안은 채 윤가영을 내려봤다. 윤가영이 내 품 안에서 꼼지락대며 뒤로 돌아 나를 꼬옥 껴안고 내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윤가영도 히히 웃었다. 또 입술을 포개고, 혀를 섞은 다음, 다시 입술을 떼었다. 민트 향이 감돌았다.
“에피타이저가 너무 맛있는데 어떡하죠?”
“그럼 메인디쉬 먹어야 해요...?”
“메인디쉬라니요?”
“네...?”
섹스 얘기하는 건가?
“하자고요?”
“... 그 뜻 아니었어요...?”
살폿 웃었다.
“난 그냥 와플 먹어야 된다는 뜻이었어요.”
“아...”
윤가영이 내 가슴에 이마를 박았다.
“당신 왜 이렇게 야해요?”
“... 여보가 헷갈리게 말한 거잖아요...”
“그런 거예요?”
“네...”
“근데 지금 너무 과감하지 않아요?”
“네...?”
윤가영이 화들짝 놀라며 나를 안은 두 팔을 풀고 내 뒤쪽을 보았다.
“수아 없는데...?”
“나도 알아요.”
“근데 왜요...?”
“그냥 들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해서.”
“그럼 왜 저 안 놓아요...?”
“들켜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어 가지구요.”
“... 안, 안 되어요...”
피식 웃었다.
“나 진짜 되어요라고 풀어서 말하는 사람 처음 봤어요.”
“놀리지 말고 풀어줘요...”
“왜 갑자기 무서워해요. 키스까지 해놓고.”
윤가영이 두 손을 내 가슴에 얹고 흐으, 하고 입김을 냈다.
“여보가 무섭게 했잖아요...”
사랑스러웠다. 입술을 가볍게 맞추고 윤가영을 놓아주었다.
윤가영이 작게 한숨 쉬고 양손을 내 어깨에 얹어 까치발을 하고 짧게 입 맞췄다. 그러고는 뒤돌아서 아무렇지 않은 듯 와플을 확인했다. 뒷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뽑고 스팀 밀크를 만들었다. 그러고 선반에서 머그컵 세 잔을 꺼내 카페라떼를 만들었다.
윤가영이 와플을 꺼내 세 개의 접시에 하나씩 옮기고 테이블에 놓았다. 그다음 생크림이랑 누텔라를 가져왔다.
“이제 수아 데려올까요?”
“... 응...”
존댓말을 쓰면 안 될 것 같았나. 픽 웃었다.
“수아 얘기 꺼내서 그런 거예요?”
“응...”
“되게 조심조심하네요.”
“... 들키면 수아랑 진짜 서로 막...”
윤가영이 양손을 들어 허공을 잡더니 짧게 앞뒤로 흔들었다. 그 순간 양팔 사이에 있는 윤가영의 커다란 가슴이 좌우로 흔들렸다.
“할지도 몰라서...”
윤가영의 눈빛이 살짝 서글퍼졌다. 세상에 새엄마가 새아들 때문에 딸이랑 드잡이질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진지하게 말하는 상황이 말이 되는 걸까. 어지러웠다.
“내가 조심할게요.”
“응...”
“수아 데려와요?”
“응... 데려와...”
“알겠어요.”
이수아 방 앞으로 가서 똑똑 노크하고 3초만 대답을 기다린 다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대에 이수아가 없었다. 왜지? 설마 방에서 나왔다가 윤가영이랑 내 모습을 보고 사라진 건가? 근데 아무 소리도 안 들렸는데? 목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멍했다. 그때 이수아 방에 딸린 화장실 문이 열리고, 검은 브라에 분홍색 팬티만 입고 있는 이수아의 모습이 보였다.
이수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씨발 오빠!”
이수아가 끼야악, 하고 비명 지르며 두 팔로 가슴을 감싸며 골을 가리고 쪼그려 앉았다.
“존나 왜 씨발 여깄는데?”
뒤늦게 눈을 질끈 감았다.
“너 아침 먹으라고 깨우러 왔는데, 미안해.”
“개 씨발 변태 새끼...”
“수아야 왜?”
하고, 뒤에서 윤가영이 크게 목소리를 내며 도도도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온유 이 새끼가 내 몸 다 봤어!”
“어...?”
윤가영의 목소리에서 당황이 묻어났다.
“뭐 어떻게 된 건데...?”
“아 몰라 존나 나 깨우러 왔다는데 나 알몸 보고 눈도 안 감고 존나 멀뚱멀뚱 보다가 엄마 오니까 눈 감았다니까?”
“이게 무슨 소리야 온유야...?”
미칠 것 같았다.
“수아 깨우러 온 거는 맞죠. 근데 멀뚱멀뚱 봤다는 거는 일부만 맞는 게 제가 순간 당황해서 그런 거니까 일부러 한 거는 아니예요.”
“멀뚱멀뚱이라는 표현이 정신 안 챙기고 마냥 본다는 뜻이거든 병신아?”
“수아야 너 당황한 건 알겠는데 오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아 몰라 저 미친 변태 새끼 때매 존나 쪽팔린데 욕이라도 해야 될 거 아냐.”
한숨 소리가 들렸다. 필히 윤가영이 낸 거일 터였다.
“안 나가 오빠 새끼야?”
“눈 감고 있어서 못 움직이는 거야.”
“아 진짜 존나...”
“온유야 내가 손 잡고 이끌어줄 테니까 나가자.”
윤가영 목소리였다.
“네, 알겠어요.”
“응. 내가 네 왼손 잡을게.”
“네.”
왼손이 자그마한 양손에 잡혔다. 윤가영의 손이 분명했다.
“천천히 움직여.”
“네.”
윤가영을 따라 옆으로 느리적 걸었다. 순간 왼발이 문턱에 걸렸다.
“괜찮아?”
“네.”
왼발로 넘어서고 오른발을 조금 크게 올렸다가 다시 바닥을 디뎠다. 그대로 두 발짝 더 갔다가 멈춰섰다.
“나온 거죠?”
“응. 나왔어. 이제 손 놔도 돼.”
“네.”
윤가영의 손을 놓고 눈을 떴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며 은은히 미소 짓고 있었다.
“주방 가. 수아 데리고 나올게.”
“... 네.”
윤가영이 이수아 방으로 들어갔다. 이수아 방 안에서 이수아가 아 존나 아침부터 씨, 하고 성을 내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윤가영이 괜찮아, 라고 하며 이수아를 달래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잘 해결될 듯싶었다. 홀로 주방으로 향했다.
의자에 앉고 한숨을 쉬었다. 카페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괜히 평소보다 쓰게 느껴졌다. 시럽을 넣고 유리 머들러로 휘저었다. 다시 한 모금을 마셨다. 이제야 좀 마실 수 있을 법했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내고 잠금을 해제했다. 송선우랑 백지수, 그리고 김민준 실장한테서 온 문자가 있었다. 백지수 문자부터 확인했다.
[선우 때매 못 잤어]
[왜?]
답장하자마자 뒤로 가기를 누르고 송선우가 보낸 문자를 봤다.
[나 엄청 잘 잤어]
[지수랑 이야기가 다른데?]
답장을 보내고 2초 정도 뒤에 전화가 왔다. 백지수였다. 지금 전화하면 안 되는데. 일단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빠르게 걸어 들어가 문을 잠갔다. 화장실 안에 들어가고 전화를 연결했다.
“여보세요.”
ㅡ왤케 늦게 받아.
“사람 있어서.”
ㅡ누구?
“새여동생이랑 뭐...”
ㅡ네가 따먹은 새엄마?
어투가 공격적이었다.
“미안해.”
ㅡ미안할 짓을 하지나 말지.
“... 미안해.”
한숨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무거워졌다.
ㅡ됐어.
또 미안하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ㅡ너 나 어제 왜 못 잤는지 알아?
“선우 때매?”
ㅡ하아... 어...
ㅡ온유랑 통화해 지금?
송선우 목소리였다.
ㅡ아 또 왜.
ㅡ아 또 왜라니. 나도 같이 전화 좀 하자.
ㅡ아니 내가 먼저 통화하고 있었잖아. 나중에 따로 해.
ㅡ싫어. 같이 해. 그래도 되잖아.
ㅡ아...
ㅡ스피커폰으로 해줘.
ㅡ... 그래.
ㅡ흐흫. 고마워. 안녕 온유야!
“어 안녕. 잘 잤어?”
ㅡ응. 지수 진짜 껴안고 자기 최적화된 몸이더라.
이래서 못 잤다고 한 거구나.
“지수가 싫다 하지 않았어?”
ㅡ나 진짜 계속 말했어. 계속.
ㅡ근데 결국엔 허락해줬잖아.
ㅡ허락은 무슨, 말 안 통해서 그냥 얘기하는 거를 관둔 거지.
ㅡ암묵적 동의 아니었어?
ㅡ아니야아!
“지수 불쌍하다.”
ㅡ불쌍하면 좀 보러 와 제발.
“알겠어. 오늘 갈게.”
ㅡ오늘 언제?
“저녁 먹는 시간 전에는 갈게.”
ㅡ나 휴일이면 저녁 네 시에 먹는데.
피식 웃었다.
“너 안 그랬잖아.”
ㅡ바뀌었어. 네가 몰라서 그래.
살폿 웃었다.
ㅡ존나 그때 안 오기만 해봐.
“최대한 빨리 갈게.”
ㅡ어.
ㅡ지금 끊는 분위기지?
“몰라?”
ㅡ그럼 사랑해 온유야.
웃음이 나왔다.
“나도 사랑해 선우야.”
ㅡ야 너 나랑 통화하는 거거든 이온유?
“사랑해 지수야.”
ㅡ아 억울해.
ㅡ뭐가 억울해.
ㅡ최소한 내가 먼저 들었어야 되는 거 아니야.
ㅡ에이, 그게 뭐가 중요해. 사랑받는 게 중요한 거지.
ㅡ나한테는 중요해.
둘 다 귀여웠다. 나도 모르게 살짝 웃음이 나왔다.
“지수야.”
ㅡ어.
“사랑해.”
ㅡ... 나도 사랑해.
ㅡ뭐야 온유 너 지수한테만 두 번 말해줄 거야?
“사랑해 선우야.”
ㅡ흐흫... 응.
ㅡ아니 그럼 존나 무슨 차이야 이게.
“사랑해 지수야. 이렇게 끝낼게. 너 세 번 선우 두 번.”
ㅡ... 알겠어.
ㅡ특별히 이번은 봐줄게 온유야.
“고마워. 근데 둘 다 아침은 먹었어?”
ㅡ우리 아직 안 먹었어.
송선우가 답했다.
“으응... 잘 챙겨 먹어.”
ㅡ알겠어.
ㅡ밥 챙겨 먹이고 싶으면 와서 요리해줘.
목소리가 퍽 애교스러웠다. 예전에 틱틱대던 지수가 맞나 싶었다.
“알겠어. 나도 이제 아침 먹으러 갈게.”
ㅡ어.
ㅡ이따 봐 온유야.
“응. 끊어.”
ㅡ으응.
ㅡ온유 바이.
“응.”
전화를 끊었다.김민준이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오늘 오디션 보는 날인 거 알죠?]
[12시쯤에 집 앞에서 차 세우고 기다릴게요. 점심 먹어둬요.]
[네 알겠습니다.]
폰을 주머니에 넣고 방에서 나갔다.주방으로 가서 내 자리에 앉았다.왼편에는 평소랑 다르게 윤가영이 앉아 있었다.
“온유 왔네?”
“네.”
윤가영이 나를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고 누텔라 묻힌 와플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맞은 편에 앉은 이수아가 와플을 우물우물 씹어먹으면서 가만히 나를 째려보았다.
“미안해 수아야.”
이수아가 눈길을 피했다.얼굴이 살짝 붉은 느낌이었다.
요전부터 나한테 발기니 뭐니 하더니 몸을 보여주는 건 또 창피한 건가.살짝 이상했다.
이수아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뭘 봐?”
쏘아붙이는 수아의 얼굴이 아까보다 더 발그레했다.
내가 방에 들어갔을 때 가슴을 가리며 부끄러워 한 게 본 모습이고 근 며칠 발칙한 모습을 연기했던 걸까? 근거는 없는데 직감상 왠지 그럴 것만 같았다.
“뭘 보냐니까?”
“그냥 네가 먼저 나 보길래.”
“와플이나 처먹어.”
“응.”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입을 열었다.
“아까 일 진짜 미안해.”
“됐다니까.”
“응.”
이수아가 시선을 내리고 와플을 크게 한 입 했다.지금 보면 수아도 귀여운 애였다.
와플에 누텔라를 바르고 생크림을 올린 다음 한 입 베어 물었다.달콤함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남자 주인공 배역을 따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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