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화 〉 음탕한 윤가영, 미친년 이수아 (2)
* * *
윤가영이 포크랑 그릇을 두 개씩 가져와서 자리에 앉았다. 이수아가 윤가영을 향해 양손을 뻗었다.
“내가 나눠줄게 엄마.”
“응.”
윤가영이 이수아에게 포크랑 그릇을 건넸다. 이수아가 왼손으로 그릇을 잡고 포크로 스파게티를 옮겨담았다. 첫 번째 그릇은 양이 적었고 두 번째 그릇은 알루미늄 용기에 담긴 것보다 양이 많았다.
윤가영이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양 많은 게 온유 거야?”
“응.”
“너무 많이 준 거 아니야?”
“오빠가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까.”
윤가영이 이수아를 보며 한숨 쉬고 나를 쳐다봤다.
“온유야 저거 다 먹을 수 있어?”
“네.”
“으음... 내가 좀 나눠 먹어줄까?”
“아뇨. 이정도는 먹을 수 있어요.”
“그래.”
“거봐.”
이수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윤가영이 말없이 이수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아가 왼손에 양이 적은 그릇을 들어 윤가영에게 내밀고 오른손으로 양이 많은 그릇을 들어 내게 내밀었다.
“받아.”
윤가영이 양손으로 이수아가 건네주는 것을 받고 오른손으로 포크를 잡았다.
나도 내 그릇을 받아들고 포크를 잡아 바로 한 입 했다.
확실히 이수아가 말한 대로 막상 먹으니 맛있기는 했다.
이수아가 나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맛있어 오빠?”
“응.”
이수아가 빙긋 웃었다.
“내가 말했잖아.”
나를 바라보는 윤가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고 했는데?”
“수아 뭐 그냥 막상 먹으면 맛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 얘기만 했어?”
이수아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거기에 뭐 더 얘기할 게 있어?”
“아니, 뭐 덧붙인 말 있나 하고 물은 거야.”
“딱히 없어.”
윤가영이 나를 쳐다봤다. 수아를 못 믿는 건가. 수아가 평소에 신뢰를 못 준 건지 아니면 윤가영이 질투심에 차서 내 말만 믿으려 드는 건지 분간이 안 됐다.
만약 질투심 때문에 의심하는 거라 해도 이수아가 막상 먹으면 맛있을 거라는 말만 한 것은 아니었으니 윤가영의 의심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윤가영은 뭐랄까, 합리적인 선의 끝자락에 매달려 질투하는 느낌이었다. 최소한의 이성만 챙긴 채 여성으로서 날을 곤두세우는 것만 같았다. 그리 생각하니 미치도록 귀여웠다.
이수아가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엄마랑 오빠 왤케 오래 눈 마주쳐? 말도 안 하면서?”
“어...?”
윤가영의 눈이 커졌다. 당황했나.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나 새엄마가 나한테 할 말 있으신 건가 하고 기다리고 있었어.”
이수아가 윤가영을 쳐다봤다.
“엄마는?”
“나도... 네가 진짜 덧붙인 말 없는 건가 온유한테 말 들어보고 싶어서 쳐다봤는데 아무 말도 안 해 가지구...”
“그럼 엄마가 내가 더 말한 거 없냐고 물어봤으면 되는 거 아냐?”
“으응...”
“근데 왜 안 물어봤어?”
“그냥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야 하나...?”
이수아가 피식 웃었다.
“무슨 타이밍?”
“그니까, 잠깐 정적 흐르고, 상대가 내 시선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구나 하고 깨달은 다음 말할 타이밍이 있는데 그걸 놓쳤어.”
“그 타이밍 놓치면 말 못 꺼내는 거야?”
“꺼낼 수는 있는데 힘들지...?”
이수아가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엄마 진짜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윤가영이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수줍은 듯 웃었다. 이수아 말마따나 너무 귀여웠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수아가 그 말 말고 더 말한 거 없어...?”
“음...”
말해줘야 하나. 못할 말도 아니니 해도 되겠다 싶었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다 같이 나눠 먹자는 말 안 나왔으면 억지로라도 먹였을 거라고 했어요.”
윤가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
윤가영이 이수아를 바라봤다. 이수아가 웃었다.
“오빠. 그걸 말함 어떡해.”
윤가영이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너 오빠한테 왜 그래 진짜.”
“왜애. 장난으로 말한 거야.”
“장난이 너무 지나치잖아... 한두 번 그러는 거면 몰라도.”
이수아가 나를 쳐다보았다.
“오빠 힘들어?”
“어. 많이 말했잖아. 너 때매 피곤하다고.”
“음? 피곤하다고는 안 하지 않았어?”
“뭐가 됐든. 대충 힘들다고는 말했잖아.”
“으음... 그래도 재밌지 않아? 쾌활한 여동생 있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재밌는 거는 너 아니야? 잘 받아주는 오빠 있어서?”
이수아가 픽 웃었다.
“본인 입으로 잘 받아주는 오빠 이래도 돼?”
“너는 네 입으로 쾌활한 여동생 그래도 되는 거고?”
“나는 객관적으로 귀엽고 쾌활하니까.”
어이없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윤가영이 소리 나게 스파게티를 빨아들였다. 고개를 돌려 윤가영의 얼굴을 바라봤다. 입가에 스파게티 소스가 살짝 묻어 있었다.
“입가에 묻었어요.”
“어? 그래?”
“네.”
윤가영이 이수아를 봤다.
“휴지 있어?”
이수아가 화장대 쪽을 바라봤다.
“저기. 화장대 앞.”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네가 안 가져다줘?”
“나 지금 일어서기 힘들어.”
실소가 나왔다.
윤가영이 시선을 내게 고정한 채 스파게티를 입에 넣다가 면을 그대로 주르르 흘려버렸다. 소스가 묻은 스파게티 면들이 원피스 아래 면에 떨어졌다.
“아...”
윤가영이 울상을 지었다. 슬픈 눈을 한 윤가영이 그릇을 내려놓고 양손으로 원피스 밑 단을 잡아 아래로 끌어내렸다. 윤가영의 원피스가 가슴에 착 달라붙어서 젖꼭지가 튀어나온 게 보였다. 양 가슴 가운데에 존재하는 어둡고 깊은 계곡도 보였다. 미칠 듯이 섹슈얼했다. 윤가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물티슈도 좀 가져와주라 온유야...”
일부러 스파게티를 흘린 건가? 알 수 없었다.
“네.”
휴지랑 물티슈를 가져오고 적당히 뽑아서 윤가영에게 건넸다. 윤가영이 휴지로 입가를 닦고 스파게티 건져서 빼낸 다음 물티슈로 손을 닦고 원피스에 문질렀다.
“이거 처음 입는 건데...”
“그니까 조심하지.”
이수아가 말했다.
“그러게...”
윤가영이 한숨 쉬고 피자 엣지 부분을 베어 물었다. 이수아도 조용히 스파게티를 입에 넣었다. 이제 대화보다는 조용히 먹기만 하는 타이밍인 듯했다. 나도 포크를 잡고 스파게티를 먹었다.
윤가영이 이수아랑 내 눈치를 봐가며 스파게티를 거의 다 비워갔다. 이수아가 윤가영을 보았다.
“엄마 다 먹었어?”
“거의 다...”
“나도 슬슬 배부른데.”
이수아가 나를 쳐다봤다.
“오빠는?”
“나도 슬슬 배불러. 저녁 먹어서.”
“그래? 그럼 피자 조각 먹던 거 마지막으로 먹고 스파게티만 먹자.”
“응.”
피자를 입에 구겨넣었다. 목으로 넘기고 콜라를 마셨다.
윤가영이 나를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온유야.”
“네.”
“네가 보기에 내가 입은 원피스 어떤 거 같애?”
“그냥 귀엽네요. 학생이 입을 만한 거 같아요.”
“아, 그래...?”
“네.”
윤가영이 멋쩍게 웃었다.
이수아가 나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오빠 지금 엄마 디스한 거야?”
“어? 이게 왜 디스한 거야?”
“엄마 나이에 안 맞는 거 사 입었다고 한 거잖아.”
이게 그렇게 되나? 고개 돌려 윤가영을 봤다. 윤가영이 시선 피했다.
“아 저 그 뜻 아니었어요.”
이수아가 싱글싱글 웃었다.
“그럼 뭔데?”
“아니 이게, 그니까. 약간 고도화된 칭찬이지. 학생들이 입을 법한 옷이다. 그 옷이 막 안 맞는 게 아니라 잘 어울린다. 그만큼 젊어 보인다. 이거지.”
“아, 그러세요?”
익숙한 놀리는 톤이었다. 아무래도 이수아는 나를 골려주는 것을 심히 즐기는 듯했다.
이수아가 윤가영을 바라봤다.
“엄마 상처받지 마. 오빠 안 그렇게 보여도 막말 되게 잘하는 사람이니까.”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뭔 소리야. 내가 언제 막말을 잘했어.”
이수아가 왼손 새끼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어지러웠다.
“아니 솔직히 막말은 따지면 네가 더 잘하지. 욕 같은 거도 엄청 하고 방금도 나 음해하고 했는데.”
“나 요즘 욕 안 하잖아.”
“그럼 존나, 미친, 개, 이런 거는?”
“줄였잖아? 그리고 개는 욕 아니지 않아?”
“개라고 하는 것도 비속어지.”
“그니까. 욕은 아니잖아.”
“어. 그래서 내가 욕 같은 거라고 했잖아.”
“음... 응.”
실소했다.
“반응 진짜 돌겠다.”
이수아가 픽 웃었다.
“아니 뭐만 하면 돌겠다고 그래.”
“네가 하는 게 다 나 미치게 하는 거라서 그래.”
윤가영이 얼굴을 심각하게 굳히고 나를 쳐다봤다.
“수아가 어떻게 하는데?”
“그냥 정신적으로 피곤하게 해요.”
“그니까 무슨 짓 하길래 그래?”
“엄마. 무슨 짓이라니.”
이수아가 말했다.
“왜?”
“내가 엄마 딸인데 너무 험한 단어 쓰는 거 아냐?”
“으음... 알겠어. 미안해.”
윤가영이 나를 쳐다봤다.
“수아가 무슨 말과 행위를 했니?”
이수아가 아이처럼 웃었다.
“엄마 그게 뭐야.”
“뭐. 말 순화해줬잖아.”
이수아가 히 웃었다.
“엄마 귀여워.”
윤가영이 콧숨을 내쉬고 나를 쳐다봤다.
“수아 뭐 했어 온유야? 빨리 말해줘.”
조금 곤란했다. 이수아도 있는 자리에서 발기니 뭐니 하면서 나를 놀렸다고 이르듯이 말하는 건 좀 뭐 했다.
“그냥 저 갖고 놀려요. 옛날에 제가 잘못했던 거나 흑역사 같은 거 가지고.”
“으응... 그게 끝이야?”
“네.”
이수아가 히죽 웃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엄마 나 너무 의심하는 거 아니야?”
“... 미안해.”
“됐어 엄마.”
“으응...”
윤가영이 스파게티를 입에 넣었다. 이수아가 엉덩이를 떼고 상체를 살짝 들어 윤가영의 그릇을 보았다.
“엄마 다 먹었네.”
“응.”
“으음... 근데 지금 몇 시지?”
이수아가 그리 말하고 자기 폰을 켜서 보았다.
“오빠 우리 빨리 대본 봐야 될 거 같애.”
“그래?”
“응.”
이수아가 윤가영을 보았다.
“엄마 우리 이제 연습할 거야.”
“... 나도 보면 안 돼...?”
“안 돼. 집중해야 돼. 미안해.”
“아니, 어차피 연기하면 사람들 많이 볼 때 하는 건데 나 있어도 되지 않아...?”
“안 돼 엄마.”
윤가영이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귀엽고 안쓰러웠다. 이수아가 픽 웃었다.
“그래도 안 돼 엄마.”
“알겠어... 그럼 그릇 같은 거 내가 다 가져갈 테니까 너희 스파게티 다 먹으면 나갈게.”
“알겠어. 빨리 먹자 오빠.”
“응.”
스파게티를 입에 넣었다. 윤가영이 말없이 나랑 이수아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윤가영이 그릇이랑 포크를 챙기고 밖으로 나가면서 내게 서운한 눈빛을 보냈다. 살짝 미안했다. 그보다 귀엽다는 느낌이 더 크게 들었다.
이수아가 일어서서 침대로 가 바로 드러눕고는 천장을 보다가 조용히 한숨을 흘렸다.
“너 왜 한숨이야?”
이수아가 고개를 획 돌려 나를 바라봤다.
“엄마 원피스 제대로 봤어 오빠?”
“... 그냥 분홍색에 딸기 원피스 아니었어?”
“... 응. 맞아.”
얼버무리는 게 윤가영이 노브라였던 거를 봤냐고 물은 느낌이었다. 모른 척한 게 다행이었다.
“근데 오빠 엄마랑 엄청 친해졌더라?”
“어... 그냥 네 엄마가 되게 친화력이 좋아서 그런 거 같아.”
“네 엄마라고 하지 말랬지 내가.”
“미안.”
“됐어.”
이수아가 대본을 들어서 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오빠.”
“어.”
“내일 오디션 조지면 내가 오빠 조질 거야.”
피식 웃었다.
“안 조지게 노력할게.”
“믿는다.”
“응.”
내가 상대역이 아니면 드라마를 안 찍겠다고 선언한 수아를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서 남주인공 역을 따내야 할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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