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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297화 (296/438)

〈 297화 〉 이수아 개 미친년 (1)

* * *

이수아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옆으로 누워 있는 하얀 민소매에 검은 돌핀팬츠 차림의 이수아가 대본에서 시선을 떼고 나를 쳐다봤다.

“왜 자꾸 늦어?”

“늦은 거는 아니잖아 이번엔.”

“내가 기다렸으니까 늦은 거야.”

헛웃음이 나왔다.

“너무 억지인데.”

“뭐가. 늦었으면 빨리 와서 대본이나 챙기고 해.”

“알겠어.”

책상 위에 놓은 대본을 가지고 이수아의 침대에 풀썩 걸터앉았다. 침대가 삐거걱 소리를 냈다.

이수아가 멀뚱멀뚱 나를 쳐다봤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왜?”

“뭐 해?”

“뭐 하냐니.”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리고 침대 오른쪽을 팡팡 쳤다.

“옆에 와.”

“됐어.”

“발기해도 뭐라 안 할게.”

돌겠네.

“왜 또 발기 얘기하는데.”

“아 그니까 안 한다고. 그 말 하려고 꺼낸 거잖아.”

한숨이 나왔다. 이수아가 픽 웃었다.

“오빠.”

“어.”

“오빠 좀 귀엽다?”

“지랄하네.”

이수아가 히히 웃으면서 대본을 내려놓고 꾸물대며 엉덩이를 옮겨 내 쪽으로 다가왔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몸을 돌렸다.

“또 뭐 하게?”

“뭐 안해.”

이수아가 두 손을 뒤로 젖혀 침대를 짚고 나를 올려봤다. 자세 때문인가 가슴이 부각되어 보였다. 흰 민소매 안으로 비치는 검은 브라가 야했다. 시선을 돌려 벽지를 봤다.

“왜 또 눈 돌려 오빠?”

“너 보면 짜증 나서.”

“왜?”

“네가 화날 짓을 하니까.”

“나 때문에 화나?”

“응.”

“어디가?”

얘가 진짜 미쳤나. 전신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자지에도 피가 몰릴 것 같다는 거였다.

이수아가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킥킥 웃었다.

“왜 웃어?”

“오빠 얼굴 빨개지는 거 존나 웃겨서.”

“... 내 얼굴이 빨개 지금?”

“어. 약간 붉은데?”

“...”

돌아서고 화장대 앞으로 걸어갔다. 얼굴을 보는데 확실히 살짝 달아올라 있는 느낌이었다. 한숨을 쉬었다. 열이 식는 느낌이었다. 만약 지금 거울 앞으로 안 걸어왔으면 자지가 또 제멋대로 커졌을지도 몰랐는데, 이수아의 도발에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거울을 본 게 천만다행이었다.

“거울 좀 그만 봐.”

“열 좀 식히고.”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존나 나르시시스트야? 거울 보고 화 풀게?”

“어 네 말 맞아.”

“아.”

“왜.”

“반응 존나 재미없어.”

“응 맞아. 나 재미없어.”

헛웃음 소리가 들렸다.

“아 개 짜증 나.”

“응 맞아. 나 짜증 나는 사람이야.”

“아... 나 그 말투 개 싫은데 그만하면 안 돼?”

“응 안 돼. 나 짜증 나고 재미없는 사람이라서 계속 해야 돼.”

“아, 짜증 나게 안 할 테니까 그 말투 좀 갖다 버려 제발.”

“진짜?”

“응.”

“또 하면 어쩔 건데?”

“안 한다니까? 왜 말을 못 믿고 그런 거나 묻고 있어.”

“네가 의심스러우니까 그러지.”

“오빠 그거 병이야.”

“응 맞아. 나 의심병 있어.”

아, 하고 이수아가 질겁하는 소리를 냈다. 웃음이 나왔다.

“개 싫어! 적당히 해 진짜!”

“너도.”

“나 안 한다고 했잖아!”

“진짜?”

“어!”

“말투에 화 없애고 말해 봐.”

“... 안 할게 오빠.”

믿을 수 없이 사근사근한 목소리였다. 방금 말투랑 온도 차가 극심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너 연기 개 잘한다.”

“뭐가?”

여전히 사근사근했다. 진짜 가증스러운 수준으로 연기를 잘했다.

“나 말투 바꿨으니까 빨리 와 오빠.”

“나 지금 네 말투 안 익숙하니까 원래 말투로 말해.”

“원래 말투라니?”

“그 어조 말고 평소처럼 툭툭 말하라고.”

“뭐 이렇게?”

목소리가 또 표독스러워졌다.

“어.”

“어.”

침대를 팡팡 치는 소리가 들렸다.

“바꿨으니까 빨리 와.”

“응.”

뒤돌아섰다. 침대 오른쪽에 이수아가 널브러지듯 누워 있었다. 다가가서 구석 자리에 걸터앉았다.

“왜 또 구석으로 가.”

“네가 자리 차지하고 있잖아.”

“뭔 소리야. 아까 오빠 앉아있을 때 그대로구만.”

“그럼 아까 그렇게 밀착해 있었다고?”

“밀착까지는 아니지. 살 닿았어?”

어질어질했다.

“야 너는 꼭 살이 닿아야 밀착이라고 하냐?”

“응.”

“그럼 내가 너 중지랑 엄지로 손목 수갑처럼 잠그고 살만 안 닿으면 밀착 안 하는 거야?”

“오빠 살 안 닿고 내 손목 잠글 수 있어?”

“아니 왜 그 얘기에 집중하는데.”

“궁금하니까. 그리고 오빠가 말 꺼낸 거잖아.”

“그냥 비유한 거지.”

“근데 그 비유가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고.”

“미치겠다.”

이수아가 픽 웃고 오른팔을 들고 손을 쫙 폈다.

“됐고 와서 한번 손목 살 안 닿고 잠가봐.”

“내가 네 하인이야?”

“오빠지. 이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여동생이랑 안 놀아줄 거야?”

“... 넌 필요할 때만 여동생이고 아닐 때는 그냥 남남처럼 대하는 거 같다?”

“뭔 소리야. 나 오빠 오빠로 대했어 항상.”

“이건 진짜 개소린데.”

“진심이야. 궁금하면 타임머신 타고 과거의 나 붙잡고 물어봐.”

실소가 나왔다.

“너 헛소리 되게 진지하게 말하는 능력이 있다.”

“그니까. 연기력을 타고나서 그런가 봐.”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지? 아찔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이제 빨리해봐. 나 진짜 좀만 더 있으면 오늘 팔 세 번째 빠지는 거야.”

“미친년...”

“미친년 인정할 테니까 그냥 빨리해줘 오빠.”

“... 그래.”

오른손을 뻗어 이수아의 오른 손목을 감싸고 중지랑 엄지 끝을 맞닿게 한 다음 다른 손가락을 다 뗐다. 살짝살짝 스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수아가 가만히 있지를 못해서 그러는 느낌이었다. 엉덩이를 옮기고 왼손으로 이수아의 팔을 붙잡아 고정했다. 살이 아예 안 닿게 조정하고 멈췄다. 이수아가 신기한지 눈을 좁게 떴다.

“오...”

“맞지?”

“응. 오빠 손 개 크다. 손 대보자.”

“됐어.”

이수아의 손을 놓아주고 양손에 대본을 쥐었다.

이수아가 오른손 손끝으로 오른팔을 툭툭 쳤다.

“아 잠깐만 대보면 되잖아아.”

이수아의 손이 안 닿게 엉덩이를 왼쪽으로 옮겼다. 이수아가 몸을 시계 방향으로 약간 돌려 각도를 틀고 다시 내 오른팔을 툭툭 쳤다.

“대보기만 해애.”

“왤케 떼쟁이야?”

“아 빨리 대면 떼 안 쓸 거 아냐아.”

진짜 애도 아니고 뭐 이렇게 고집을 부릴까.

“나 대본 좀 보면 안 돼?”

“누가 대본보지 말래? 손만 잠깐 대보자니까?”

“하아...”

오른손을 뻗었다. 이수아가 미소 짓고 오른손을 마주 댔다.

“아 오빠 이거 반대니까 왼손으로 대야겠다.”

“내 왼손을 대라고?”

“응.”

어이없었다.

“네 왼손으로 해.”

“아 힘든데.”

“힘들기는.”

이수아가 씨, 하고 작게 소리를 내고는 오른팔을 침대에 댔다. 그러고는 왼손을 뻗어 내 오른손바닥에 마주 댔다. 맞닿은 이수아의 손은 생각보다 자그마해서 내 손가락 길이가 이수아의 손가락 길이보다 한마디 정도는 더 길었다.

“오빠 손 진짜 개 크다.”

“네가 아기 손인 것도 있는 거 같은데.”

“아니 오빠 손이 개 큰 거야 이거는.”

이수아가 갑자기 손가락을 접어서 깍지를 꼈다. 묘한 감각에 목으로 소름이 타고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왜 손 잡냐...?”

이수아가 히 웃으면서 상체를 일으키고 꼼지락대며 몸을 움직였다. 이윽고 침대 밑으로 두 발을 내린 다음 엉덩이를 옮겨 내 오른편에 걸터앉았다.

“오빠.”

“... 손 떼.”

“싫은데?”

말문이 막혔다. 이수아가 싱글싱글 웃었다. 여태 미소 짓는 모습을 잘 보지 못해서 몰랐는데 이수아도 윤가영처럼 웃는 게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새삼 둘이 모녀 사이라는 게 실감 났다.

근데 왜 둘이 성격은 완전 다를까? 거의 개랑 고양이 정도로 차이 나는데. 이유가 도저히 짐작이 가지 않았다.

“오빠 손깍지 껴봐.”

“왜?”

“대본에 손가락 서로 깍지끼는 장면 있어.”

“... 그래?”

“응.”

왼손 손가락을 접어 이수아의 오른손에 깍지를 꼈다. 이수아가 킥킥 웃었다. 뭔가 속은 느낌이었다.

“왜 웃어?”

“오빠.”

“왜.”

“그걸 믿었어?”

미친. 깍지를 풀었다.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었다.

“손 놔.”

“싫은데?”

“너 나 가지고 장난 치는 게 재밌어?”

“응. 존나 핵 잼. 꿀잼. 존잼.”

“미친년...”

“오빠 또 당황했다.”

“아니야 미친년아.”

이수아가 웃었다.

“당황했네.”

“뭐래.”

오른손 엄지로 내 왼손에 깍지 끼고 있는 이수아의 손가락들을 하나씩 떼어냈다.

“나랑 깍지 끼는 게 그렇게 싫어 오빠?”

“어.”

이수아가 히죽 웃고 바싹 다가앉아 오른팔로 내 왼팔을 휘감았다. 왼팔뚝에 이수아의 가슴이 살짝 스치는 게 느껴졌다.

“싫은데 왜 발기해?”

개 미친년. 혈류가 전신에 빠르게 돌았다.

“너 존나 내가 발기 얘기하지 말랬지.”

“오빠 지금 진짜 발기했어?”

“안 했어 미친년아.”

“어? 진짜 했나 봐?”

“아니거든.”

“해도 돼 오빠. 이해해줄게.”

“지랄하지 마. 힘으로 풀기 전에 빨리 놔라.”

이수아가 히 웃었다.

“알겠어.”

이수아가 내 팔을 풀어주고 뒤로 물러났다. 잠깐만 더 있었으면 진짜로 자지가 우뚝 솟아올랐을 거였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창가 쪽으로 걷고 한숨 쉬었다.

“오빠 지금 현타 왔어?”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뭘 했다고 현타가 와.”

“아니 그냥 뭐 허탈감 같은 거 왔냐고.”

“...”

“현타가 무슨 뜻인데?”

뭐지. 내가 아는 거랑 쟤가 아는 게 다른가? 이상했다.

“네가 말한 거 맞아.”

“내가 뭔 뜻으로 말했는데?”

“그냥 막 뭐 하다가 허탈감 오는 거.”

“그 막 뭐 하는 게 뭔데?”

“...”

“오빠가 말 안 하면 내가 걍 찾아보면 되지.”

씨발? 몸을 돌리고 이수아에게 다가갔다.

이수아가 양손으로 폰을 붙잡고 엄지를 놀리다가 나를 쳐다보면서 눈웃음 지었다. 이수아의 손에서 폰을 뺏듯이 가져가고 침대에 내려놓은 다음 양손으로 이수아의 두 손목을 모아 잡았다.

“왜 잡는데?”

“그냥 폰 보지 말라고.”

이수아가 픽 웃었다. 비웃음당하는 기분이었다.

“안 볼게.”

“... 응.”

이수아의 손목을 놓아줬다.

“뭔 뜻이길래 그래?”

“너 진짜 몰라?”

“몰라. 현실 자각 타임 아니야?”

“아니야.”

“그럼?”

“그냥, 아냐 됐어.”

“뭐가 돼. 오빠가 말 안 하면 내가 찾아보면 되는데 걍 말해.”

“... 자위하고 나서 무념무상되고 현자처럼 현명해지는 거야, 원래.”

이수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진짜?”

“어.”

“아...”

“...”

“그럼 오빠 방금 자위도 안 했는데 현타 온 거야?”

“뭔 미친 소리야 미친년아.”

“어 오빠 또 당황했다.”

“하아...”

이수아가 히히 웃었다. 어지러웠다.

이수아 폰이 진동하면서 벨소리가 울렸다. 이수아가 왼손으로 폰을 잡고 화면을 보고 통화를 연결했다.

“여보세요.”

이수아가 스피커로 넘어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 네, 네, 라고 대답하고 나를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를 냈다.

“배달 왔으니까 나가 봐 오빠.”

왜 내가 나가느냐는 말을 하려다가 이수아 옷차림이 검은 브라가 비치는 흰 민소매에 검은 돌핀팬츠인 게 눈에 들어왔다.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수아 방을 나섰다.

뭔가 자꾸 이수아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느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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