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4화 〉 밥상머리 모녀 캣파이트
* * *
밖에서 윤가영이 나랑 이수아의 이름을 부르며 밥 먹으라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수아가 문 쪽을 보았다.
“밥 먹자 오빠.”
“어.”
이수아가 침대에서 내려가고는 빠르게 걸어서 거실로 나갔다.
뭔가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
화를 낼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진짜로 더 안 놀릴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이수아 나름대로 선을 가늠하고 지키는 방법이 있는 모양이었다.
“온유야. 밥 먹으러 안 오니?”
윤가영 목소리였다. 뒤늦게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갔다.
회색 브라탑에 회색 레깅스 차림인 윤가영이 이수아와 함께 테이블을 세팅하고 있었다.
윤가영이 수저를 내려놓고는 나를 쳐다보며 눈웃음 지었다.
“왔네?”
“네.”
“빨리 앉아.”
“네.”
의자를 꺼내 앉았다. 이수아가 접시를 내려놓고 내 오른편에 있는 의자를 꺼냈다.
“나도 앉을게 엄마.”
“어...?”
이수아가 바로 앉아버렸다. 윤가영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채로 이수아를 바라보다가 나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윤가영이 나를 응시했다. 표정에서 불만과 억울함이 느껴졌다. 이번에는 내 옆에 앉고 싶었던 건가. 귀여웠다.
이수아가 젓가락을 잡고 윤가영을 바라봤다.
“그냥 막 먹어 엄마?”
“어... 응. 먹어.”
“응.”
이수아가 양념이 발라진 장어구이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이수아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뭐 덜 구워졌기라도 했나? 이상했다.
이수아가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고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오빠는 왜 안 먹어?”
“먹을 거야.”
“빨리 먹어 그럼.”
“어.”
뭔가 불길했다. 맛이 이상해서 나한테 하나라도 먹이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장어구이를 한 점 집어서 입에 넣고 씹었다. 맛은 정상적이었다.
그냥 별 뜻 없이 얼굴을 찡그린 건가? 아무래도 내가 너무 이수아를 수상하게만 바라보는 모양이었다.
이수아가 왼손에 상추랑 깻잎을 올리고 구이 두 점이랑 밥을 살짝 얹은 다음 생강초와 부추 무침을 조금 넣어 오른손을 써 둥글게 말았다. 이수아가 왼손으로 밑을 받치고 슬슬 위로 올려서 쌈을 내 입 앞에 들이밀었다.
본인이 먹으려던 거 아닌가?
“왜?”
“오빠 먹으라고.”
“아니 난 내가 알아서 먹을게.”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걍 먹어.”
“...”
“빨리.”
입을 벌렸다. 이수아가 눈웃음 지으면서 장어구이 쌈을 내 입 안에 넣었다. 왠지 기분이 묘했다.
이수아는 왜 자꾸 구이만 먹으면 나한테 쌈을 싸서 먹이는 건지. 심리가 이해되지 않았다.
쌈을 씹어 넘기고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수아가 또 쌈을 하나 싸서 나를 쳐다봤다. 왼손으로 입을 감싸서 막았다. 이수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 해?”
왼손을 떼 입 앞을 가리고 입을 열었다.
“너 나 먹이려고 하는 거 아냐?”
“맞는데.”
“먹이지 말라고.”
“왜?”
“내가 알아서 먹는다고 했잖아.”
“응.”
“응이라니...”
기가 막히다 못해 어지러운 수준이었다.
이수아가 피식 웃었다.
“아, 해.”
“너 먹어, 나 주지 말고.”
이수아가 고개 저었다.
“장어 내 입맛에 안 맞아.”
“그럼 너는 저녁 안 먹게?”
“먹을 거야. 장어 말고 다른 거.”
“뭐?”
“몰라. 오빠랑 엄마 밥 다 먹으면 그때 알아서 뭐 해 먹을게. 빨리 받아먹기나 해. 나 팔 빠질 거 같애.”
어이없었다. 이수아가 왼손을 뻗어 손가락으로 내 목을 간질였다. 웃음이 나왔다. 상체를 뒤로 뺐다.
“너 미쳤어?”
“아 안 미쳤어. 나 이제 진짜 힘드니까 빨리 먹어.”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돌려 윤가영을 바라봤다. 낯빛이 난처해 보였다.
윤가영이 나랑 눈을 마주치고는 이수아를 바라봤다.
“이수아.”
“왜?”
“장난 좀 그만해, 밥 먹는데.”
“그냥 쌈 싸서 주는 건데 이게 왜 장난이야 엄마.”
“오빠가 해달라고도 안 했잖아. 좋아하지도 않고. 너만 막 재밌어하고 웃는데. 그리고 애초에 반찬 맘에 안 들어서 자기는 안 먹고 심심해서 그러고 있는 거니까, 어딜 봐도 장난인 거지.”
윤가영의 목소리가 낮았다. 이수아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쌈을 쥔 오른손을 밑으로 내려 손등이 테이블에 닿게 했다.
윤가영이 이수아를 똑바로 마주 봤다.
“이수아.”
“응.”
“그거 네가 먹어.”
“...”
“안 먹을 거야?”
이수아가 윤가영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두 눈에서 약간의 슬픔과 한 방울의 원망이 엿보였다.
이수아가 시선을 내리깔고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자기 입 쪽으로 가져갔다. 괜히 마음 쓰였다. 그냥 내가 애초에 이수아가 주는 대로 먹어줬으면 윤가영이 수아한테 정색하고 혼낼 일은 없었을 텐데.
“... 내가 먹을게 수아야.”
이수아가 나를 올려봤다.
“나 줘, 그거.”
“... 응.”
이수아가 쌈을 가져왔다. 입을 벌렸다. 쌈이 안에 들어왔다. 이수아의 안색이 사뭇 밝아졌다.
윤가영이 조용히 한숨 쉬었다.
“온유야.”
씹고 있는 것 때문에 답할 수 없어서 고개만 끄덕였다.
“... 수아가 하는 거 너무 다 안 받아줘도 돼...”
“... 네?”
“수아가 장난치고 하는 거 다 안 받아줘도 된다구...”
“... 네...”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적이었다. 옛날 같았으면 수아가 장난을 치고 내가 받아주면 좋다고 미소 짓다가 나중에 나한테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정도로 끝냈을 텐데. 지금은 이런 말을 한다니. 윤가영과 이수아, 그리고 내 관계가 처음과는 확연히 바뀐 것이 실감 났다.
윤가영이 이수아를 바라봤다.
“딸.”
“응.”
“오빠한테 계속 짓궂게 굴지 마. 아무리 잘 받아줘도 그렇지, 속으로는 힘들어 온유도.”
“...”
이수아가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올려보는 눈빛이 어딘가 촉촉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수아가 왼손으로 내 오른팔을 스윽 쓸었다.
“미안해...”
귀여워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괜찮아.”
“응...”
“어.”
이수아가 시선을 돌리고 고개를 살짝 숙여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때 이수아가 속눈썹이 길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다.
욕만 안 하면 진짜 예쁘고 귀여운 얼굴인데. 너무 되는 대로 막 쓴다 싶었다.
“온유야 장어구이 맛은 어때...?”
윤가영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윤가영을 마주 보고 눈웃음 지었다.
“맛있어요.”
윤가영이 빙긋 웃었다.
“그래?”
“네.”
“쌈은 먹어보니까 어때? 괜찮아?”
“맛있었어요.”
“으응...”
윤가영이 히죽 웃었다.
“다 내가 만들었거든... 부추 무침 같은 거...”
“아 진짜요? 진짜 잘하네요, 요리.”
“히... 온유 너도 잘하잖아.”
“새엄마처럼은 못 해요.”
윤가영의 눈이 휘어졌다.
“고마워.”
이수아가 젓가락으로 장어구이를 한 점 집고 내 입 앞에 가져다 댔다. 윤가영이 이수아를 바라봤다.
“수아야?”
“응.”
“왜 오빠 괴롭혀.”
“괴롭히는 거 아니야.”
이수아가 나를 쳐다봤다.
“미안해서 사과하는 의미로 주는 거야 오빠. 받아줘.”
뭔가 애교스러웠다. 목소리 때문인가? 아니면 말 뒤에 오빠라고 붙여서 그런 건가. 뭐가 됐든 짜증스럽지 않고 귀엽기만 했다.
입을 벌렸다. 이수아가 빙긋 웃고 입 안에 장어를 넣어줬다.
“고마워 오빠.”
꼬박꼬박 오빠라고 해서인가 귀엽기 그지없었다. 아까 대본 연습하기 전에는 그냥 발칙하기만 했었는데. 살짝 신기했다.
밥을 한입 해서 장어랑 같이 씹어 삼키고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이수아가 다시 장어구이를 집어 내 입 앞에 가져왔다. 다시 입을 벌리고 받아들였다. 이수아가 히 웃었다. 웃는 모습이 윤가영이랑 닮은 면이 있었다.
뭔가 나 얘한테 사육 비슷한 거 당하는 느낌인데. 살짝 홀리는 거 같기도 하고. 착각인가? 혼란스러웠다.
왼쪽에서 윤가영이 이수아, 하고 낮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수아가 내게서 시선을 떼고 윤가영을 바라봤다.
“왜?”
“... 오빠한테 그만 장난치랬잖아...”
“이건 그냥 주는 거잖아. 오빠가 싫다고 하지도 않고.”
“...”
윤가영이 나를 쳐다봤다. 이수아를 혼내달라고 눈으로 말해오는 것 같았다. 존나 귀여웠다.
이수아도 나를 쳐다봤다. 왠지 느낌이 장화 신은 고양이 같았다. 이수아도 귀여웠다.
그냥 모녀가 하나같이 귀여웠다.
왼손으로 입을 가렸다.
“저 괜찮아요.”
이수아가 미소 지었다.
“오빠가 괜찮다잖아 엄마.”
“...”
윤가영이 나를 쳐다봤다.
“그래도 수아가 그만 주는 게 나을 것 같지 않아...?”
“그렇긴 하죠. 수아도 밥 먹어야 되는데 저만 주니까...”
“으응...”
윤가영이 이수아를 보았다.
“너도 너 밥 먹을 거 먹고, 오빠 편하게 먹게 내버려 둬.”
“나 엄마랑 오빠 다 먹으면 먹는다고 했잖아. 그리고 엄마도 아까부터 밥 먹다 말다 계속 그러고 있는데. 엄마도 밥 먹어 이제.”
“... 너 밥 먹는 거 보고.”
“나 다른 반찬 만들어서 먹는댔잖아.”
“그니까, 딸이 밥을 안 먹으니까 엄마도 밥이 입에 안 들어가서.”
“엄마 아까는 나 혼냈잖아. 오빠한테 신경 쓰여 가지고.”
“... 딸도 신경 쓰지... 왜 오빠한테만 신경 쓴다는 것처럼 말해...”
“엄마 요즘 나보다 오빠 더 좋아하잖아.”
“아니야아...”
“진짜?”
“진짜로...”
윤가영이 이수아의 시선을 피하고 오른손으로 젓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쥐어 들었다.
“엄마도 밥 먹을게. 그럼 됐지?”
“응.”
“너 이따 뭐 먹을 거야?”
“몰라. 배고파지면 오빠랑 피자 같은 거 시켜 먹을 거 같은데.”
“... 그럼 그때 엄마도 불러.”
“아냐 엄마. 내가 두세 조각 접시에 옮겨서 갖다 줄게. 엄만 쉬어.”
“아냐. 엄마 집에서 별로 하는 것도 없어서 쉴 필요도 없어. 너랑 온유랑 어떤 분위기에서 연습하나 보고 싶기도 해 가지고 그런 거니까 내가 내려갈게.”
지금 서로 견제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머리가 어지러웠다.
“알겠어. 배달 오면 부를게.”
이수아가 말했다. 윤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윤가영이 젓가락으로 장어구이를 잡고 쌈을 싸서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다가왔다.
살짝 당황스러워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느껴졌다. 입을 벌리고 받아들였다. 윤가영이 눈웃음 지었다.
“먹고 힘내...?”
목소리가 왠지 야릇했다. 장어를 먹고 힘내서 따먹어 달라는 걸까? 혈류가 밑으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윤가영이 엉덩이를 실룩이며 자리로 도로 돌아가 오른손으로 턱을 괸 채 나를 마냥 바라봤다. 눈빛이 야했다. 손목을 잡아서 2층으로 끌고 올라가 덮쳐버리고 싶었다.
음식을 넘기고 콜라를 마셨다.
“맛있어 온유야?”
“네, 맛있어요.”
윤가영이 히 웃었다. 이수아가 입술을 비쭉 내밀었다.
“엄마는 쌈 억지로 먹여도 되는 거야?”
“억지 아니야. 먹여주는 건 엄마니까 되지.”
“...”
“딸도 엄마가 주는 쌈 먹고 싶은 거면 먹고 싶다 얘기해.”
“나는 장어 싫다 했잖아.”
윤가영이 흐응, 하고 콧소리를 냈다.
“수아 옛날 같았음 ‘엄마가 싸주는 건 먹고 싶어.’라고 하면서 달라고 했을 건데, 엄마 서운하다.”
“엄마 옛날 같았음 오빠 말고 나한테 먼저 가져다줬을 건데, 딸 서운하다.”
“... 이제는 엄마 말꼬리도 잡구...”
지금 이게 뭔 상황이지? 아찔했다.
“둘 다 싸우지 마요.”
이수아가 나를 쳐다봤다.
“안 싸웠어.”
“맞아. 그냥 얘기한 거지, 싸운 거 아냐.”
윤가영이 말했다.
“... 네...”
떨떠름했다.
우리 가족은 어딘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