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3화 〉 딸무새 이수아
* * *
이수아의 방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검은 브라가 비치는 민소매에 검은 돌핀팬츠를 입은 이수아가 침대에 누워 양손으로 대본을 붙잡아 들고 있었다.
이수아가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왔어 오빠?”
“어.”
“문 닫아.”
“응.”
문을 닫고 이수아에게 다가갔다.
이수아가 상체를 일으키고 침대의 머리 판에 베개를 대고 등을 기댔다.
“옆에 와서 똑같이 해.”
“응.”
베개를 하나 가져와 이수아의 왼편에 놓고 이수아처럼 등을 기대어 앉았다. 좋은 향기가 났다. 이수아의 살 내음인 걸까. 난 뭘 이런 걸 의식하고 있는 걸까. 살짝 자괴감이 들었다.
이수아가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빠 학교 가서 대본은 봤어?”
“아니?”
“... 근데 오빠 지금 대본은?”
“아, 갖고 오는 거 까먹었어.”
“어디다 뒀는데?”
“아마 방에 있을걸.”
“그걸 안 챙기고 왔다고? 존나 개 빡대가리세요?”
“미안. 바로 가져올게.”
“아냐 됐어. 걍 내 거 같이 봐.”
“불편하지 않아?”
“뭐가 불편해 걍 같이 보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할 거 같은데. 근데 또 내가 뭐라 말을 꺼내면 그냥 보자고 고집부릴 거 같았다.
그냥 같이 봐야 할 듯했다. 보다가 자기가 불편해지면 가져오라고 말할 거 같기도 하니까 잠깐만 불편을 감수하면 될 거였다.
“안 볼 거야?”
“볼 거야.”
“빨리 붙어 그럼.”
“응.”
등을 댄 베개를 이수아가 쓰는 베개 옆에 붙이고 자리를 옮겨 몸을 가까이 했다. 살짝만 움직이면 허벅지가 닿을 것만 같은 거리였다.
이수아가 대본을 내게 건넸다.
“오빠가 들어. 내가 들기 힘드니까.”
“알겠어.”
대본을 받고 이수아가 보고 있던 장을 빠르게 훑었다. 정하윤이 앞서 걷던 이윤우의 뒤통수를 후리는 장면이었다.
“뭐야 이거.”
이수아가 피식 웃었다.
“왜?”
“얘 왜 맞아?”
“그것도 몰라? 오빠 대본 안 읽었어?”
“읽긴 읽었어. 샅샅이는 안 읽었고.”
“... 오빠 오디션 좆 될 수도 있겠네.”
“미안해.”
“뭘 미안해. 여동생 처음으로 연기할 수도 있던 기회 날려 먹을 수도 있지.”
“... 난 안 돼도 넌 마음먹으면 할 수 있잖아.”
이수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어제 내 말 안 들었어? 나 오빠 남주 아니면 안 할 거라니까?”
“...”
내가 아닌 사람이랑은 키스 신을 찍기가 그렇게 싫은 걸까. 그럼 나중에도 로맨스 같은 거를 찍어야 하면 어떡하려는 걸까.
나를 쳐다보는 이수아의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듯했다.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왜 대답을 안 해?”
“아니 그냥, 너 나중에도 키스 신 같은 거 있는 작품 있으면 어떡할 건지 궁금해서.”
“... 그런 걸 왜 생각해?”
“생각할 수도 있지. 너 그런 거 거절하면 생길 수 있는 커리어 다 없어지는 건데.”
“... 그건 나중에 생각하면 되잖아.”
“지금 생각해야 되는 것도 있지 않아? 나 안 되면 바로 이 드라마 할지 말지 선택해야 되는 건데.”
“너 안 되면 이거는 안 한다고 했잖아!”
“그니까 진짜 그럴지 말지를 생각해 봐야 된다고.”
이수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장난해? 내가 오빠한테 그 얘기 꺼낼 때 생각을 아예 안 했겠어? 이미 다 이것저것 고려하고 말한 거인데, 그걸 또 생각해보라고? 개 미친놈이 진짜.”
“... 미안해.”
이수아가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고는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존나 무시하지 마. 나도 다 생각할 줄 아니까.”
“알겠어. 미안해.”
“... 존나 오빠가 나이가 나보다 얼마나 많다고 그런 거로 훈수를 해? 겨우 두 살 많은 거 아냐? 뭐 내 아빠라도 되고 싶어?”
“...”
윤가영이 내 밑에 깔려 나를 올려보면서 수아 아빠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이런 게 생각나면 안 되는데. 나도 진짜 미친놈인 게 분명했다.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자꾸 나 가르치려고 하지 마.”
“알겠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 어.”
이수아가 시선을 대본으로 옮겼다. 나도 대본으로 눈을 돌렸다.
이수아가 대본을 스윽 훑고 입을 열었다.
“이거 뒤통수 왜 맞는 건지 설명 아직 안 해줬지 내가.”
“응.”
이수아가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이거 이윤우가 정하윤한테 연애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면서 짜증 나게 굴어 가지고 화 쌓여서 뒤통수 갈긴 거야.”
“으응...”
이수아가 히죽 웃었다.
“이거 한번 해보자.”
“어?”
“한번 해보자고.”
“나 뒤통수 맞기 싫은데.”
이수아가 눈을 찡그렸다.
“연기 연습하기 싫다는 거야?”
“...”
왠지 내 뒤통수 후리고 싶어서 화난 연기하는 거 같은데.
“안 할 거야?”
“해야지... 해야 되고, 할 건데, 이 장면 말고 다른 거 하면 안 돼?”
이수아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나랑 키스해보고 싶다고?”
“아니...”
이런 미친.
“키스 신 말고 다른 장면 많잖아.”
“뭐. 뭐 있는데.”
“아니 그건 내가 잘 안 봐서 모르겠는데...”
“결국에 알고 있는 거 키스 신밖에 없으면서 그런 말 꺼낸 거면, 키스 신 연습해보고 싶다는 거 아냐?”
분명히 궤변인데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냥 대본을 제대로 읽어두지 않았던 내 잘못이었다.
이수아가 픽 웃었다.
“존나 반박도 못 하시네?”
“대본 안 읽은 거 미안해서 안 한 거거든.”
“아, 그렇구나. 그런 변명을 하시는구나.”
이수아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짜증 났다. 자지도 성을 내며 들고일어났다. 아 존나 왜 이런 상황에. 오른손을 빠르게 주머니에 넣어 자지를 억눌렀다.
이수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왜 양손으로 대본 안 들어?”
이수아가 그리 말하면서 눈으로 내 오른팔을 훑고 내려갔다. 대본으로 이수아의 시선을 가리고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갔다.
“왜 내려가?”
“나 화장실 가야 될 거 같아서.”
“씻을 때 안 쌌어?”
“응.”
“지랄.”
“뭐가 지랄이야.”
뒤에서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지금 발기해서 그런 거지?”
미친년이.
“뭔 개소리야 미친년아.”
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당황해서 욕한다.”
“존나 개소리하지 마.”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침대에서 내려왔나? 뭘 하려고 내려올까. 불길했다. 문 쪽으로 걸었다.
“어디 가.”
“화장실 간다 했잖아.”
도도도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수아가 문을 가로막고 나를 올려봤다.
“절대 못 가죠?”
“... 나와.”
이수아가 눈웃음 지었다.
“가서 딸 치게?”
머리가 핑핑 돌았다.
“존나 너 미쳤어?”
이수아가 대답은 안 하고 실없이 웃으면서 왼손으로 문손잡이를 잡고 고개를 숙였다.
“아... 존나 웃겨 진짜.”
“... 난 안 웃겨. 비켜.”
이수아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뭔가 말을 할 거 같은데 정작 입은 안 열고 나를 물끄러미 위아래로 훑기만 했다. 이런 표현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뭔가 눈으로 온몸을 핥아지는 느낌이었다.
“오빠.”
“... 뭐.”
“오빠는 여동생이 꼴려?”
“헛소리하지 마.”
“근데 왜 발기해?”
어지러웠다.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수아가 씨익 웃었다.
“빨리 딸 치고 싶은데 길 막으니까 힘들어?”
돌아버릴 것 같았다.
“너 나한테 원한 있어?”
“아니?”
“그럼 왜 그래 나한테.”
“그냥 존나 웃기니까?”
“아...”
이수아가 또 실없이 웃어댔다. 초마다 피로가 첩첩이 쌓이는 느낌이었다.
“그만해.”
“뭘?”
“나와.”
“딸 쳐야 되니까?”
“안 쳐 미친년아...”
“그럼 뭐 하게?”
“그냥...”
한숨이 나왔다. 발기한 걸 안 들키려고 나가려 한 거인데 다 알고 있는 이상 나갈 이유가 없는 거였다.
“안 나가.”
“왜? 딸 안 쳐도 돼?”
“하아...”
“왜 또 한숨이야?”
“너 때문에 돌아버릴 거 같아서.”
“으음. 그러시구나.”
미칠 것 같았다.
“너 나 갖고 노는 거 재밌어?”
“응. 개 존잼인데?”
“...”
“그래서, 왜 발기했냐니까?”
“... 원래 내 나이에는 여자가 민소매에 돌핀팬츠 입고 있는 사진만 봐도 발기가 돼.”
“그렇구나... 그럼 그런 거 보고 딸도 쳐?”
“너 존나 왜 딸무새됐어 갑자기?”
이수아가 히죽 웃었다.
“오빠 놀리려고.”
목 뒤쪽이 당기는 느낌이었다. 극도로 어질어질했다.
“이정도면 다 놀린 거 아냐?”
“음. 많이 놀린 거 같긴 해.”
“그럼 그만해줘 제발.”
“알겠어.”
이수아가 그리 답해놓고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왜 계속 있어?”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응? 오빠 화장실에서 소변 눌 것도 아니고 딸 칠 것도 아닌데 나갈 이유 없지 않아?”
꽤 설득력 있는 소리였다.
이수아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제 다시 대본 봐야지.”
“... 내 방에서 내 거 대본 가져올게.”
“가져올 필요 없다고 처음에 내가 말했잖아.”
“... 너랑 보는 거 내가 불편해.”
“뭐가 불편한데?”
이수아의 눈이 휘어졌다.
“내 옆에 있으면 또 발기해서?”
아뜩했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발기 얘기 좀 그만해.”
이수아가 히히 웃었다.
“아니 오빠가 그렇게 웃기게 반응하는데 어떻게 그만둬 이거를.”
“... 개 미친년...”
이수아가 또 킥킥 웃었다. 웃음소리가 귀에 들어올 때마다 정신력이 깎이는 느낌이었다.
이수아가 문손잡이를 손에서 놓고 문에서 비켜섰다.
“빨리 대본 갖고 와 오빠.”
“... 어.”
이수아의 방에서 빠져나갔다. 자지를 억누르던 오른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내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이수아는 왜 갑자기 저렇게 발칙하게 구는 걸까. 아니 발칙한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았는데, 왜 나를 성적으로 자극하는 걸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터덜터덜 움직이며 대본을 찾고 방을 나섰다. 반대편에서 이수아의 방문이 보였다.
돌아갔는데 이수아가 다시 나한테 발기니 뭐니 하면서 장난을 쳐대면 어떡해야 할까. 끔찍이 고민스러웠다.
그냥 하지 말라고만 하면 말을 도저히 안 듣는데. 차라리 진심으로 정색을 하고 화를 내야 할 것 같았다.
이수아의 방을 향해 발을 뻗었다. 부디 화낼 일만 없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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