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2화 〉 왜 자꾸 딸한테 질투해요
* * *
종례가 끝났다. 친구들이 반에서 우수수 빠져나갔다.
백지수가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나를 쳐다보며 오른손을 까딱거렸다. 다가가서 책상을 짚고 상체를 숙였다.
백지수가 다시 손을 까딱거렸다. 귀를 가져다 댔다. 백지수가 작게 목소리를 냈다.
“너 또 집 가지?”
“응...”
“자위하지 마.”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콧숨을 내쉬며 억지로 참았다. 고개를 뒤로 빼고 백지수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어...?”
백지수가 눈살을 찌푸리고 다시 손짓했다. 또 귀를 가져다댔다.
“내일 정액 다 뽑을 거니까 자위하지 말라고.”
“... 알겠습니다.”
“어.”
상체를 세웠다. 송선우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송선우의 눈이 휘어졌다.
“흐흫...”
왜 웃는 걸까. 일단 마주 웃었다.
백지수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방을 메고 나를 쳐다봤다.
“우리 먼저 갈게.”
“응.”
“근데 너 반에 남아있게?”
“아니 나도 나갈 건데, 일단 먼저 가.”
“어.”
송선우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응. 너도 잘 가.”
“응.”
백지수가 양손을 주머니에 꽂았다.
“잘 가.”
“어. 잘 가 지수야.”
“응.”
백지수랑 송선우가 반에서 나갔다. 난 왜 남아있는 거지. 스스로 이해가 안 됐다. 뒤늦게 교실을 나섰다.
복도를 걷는데 멀리서 서유은이 나를 쳐다보며 다가오는 게 보였다. 걷다가 적당히 가까워졌을 때 멈춰 섰다. 서유은도 걸음을 멈추고 나를 올려봤다.
지금 보니 서유은의 호흡이 약간 불안정한 느낌이었다. 눈빛도 살짝 흔들리는 게 무슨 염려라도 있는 사람 같았다.
서유은의 입술이 열렸다.
“오빠...”
“응. 왜?”
“저...”
서유은이 시선을 왼쪽으로 피했다가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보며 멋쩍게 웃었다.
“할 말 까먹었어요.”
“...”
얘가 왜 이러지. 걱정스러웠다.
“뭐 걱정 같은 거 있어?”
“아니에요...”
“... 응... 도움 필요하면 얘기해.”
“네 감사해요...”
“응. 지금 집 가?”
“네...”
“같이 나가자.”
“좋아요...”
나란히 복도를 걸어 건물을 빠져나갔다.
“어떻게 가는데?”
“저 부모님이 데려다주세요...”
“으응.”
“태워다 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교문 쪽에 서 있던 강성연이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온유야 지금 집 가?”
“응.”
강성연이 내 왼편에 붙었다. 서유은이 내 오른쪽에서 반 발짝 정도 멀어졌다. 그렇게 성연이가 싫은 걸까. 아무래도 유은이한테 어지간히 밉보인 모양이었다.
강성연이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집에 어떻게 가는데?”
“어떻게든 가지.”
“그럼 내가 태워줄까?”
눈이 휘둥그레지는 게 느껴졌다. 바쁘신 분 아닌가?
“또 어머니 오셔?”
“응.”
“아냐 괜찮아.”
강성연이 히죽 미소 지었다.
“사양하지 마. 나 챙겨주는 거 고마워서 뭐라도 해주고 싶어 가지고 그러는 거니까.”
“... 그래 그럼. 고마워.”
강성연이 생글생글 웃었다.
“어.”
서유은이 나를 쳐다보며 양손을 흔들었다.
“저 그럼 갈게요 오빠...”
“응. 잘 가. 내일 봐.”
“네... 내일 봐요...”
“잘 가 유은아.”
강성연이 말했다. 서유은이 입꼬리를 올렸다. 뭔가 억지로 미소 짓는 것 같았다.
“안녕히 가세요 선배...”
“응.”
서유은이 교문 밖으로 걸어갔다.
강성연이랑 같이 나란히 걸어서 서유은이 간 방향의 반대쪽으로 조금 걷고 멈춰 섰다.
“근데 성연아.”
“응?”
“너 왜 교문에 서 있었어? 평소에 어머니 오실 때 여기에서 기다리는 거면.”
“그냥...”
강성연이 또 배시시 웃었다. 얘 진짜 뭐지? 원래 이렇게 웃음이 많았나?
“너 오면 태워줄까 하고 말하려고?”
“으응... 고마워.”
“아냐. 이정도야 뭐...”
강성연이 도로로 시선을 던졌다.
“왔다.”
강성연이 보는 방향을 바라봤다. 하얀 테슬라 세단이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섰다.
조수석의 앞 유리가 열렸다. 강예린이 조수석에 오른손을 짚고 나를 올려봤다.
“안녕 온유야.”
웃으면서 고개 숙였다.
“안녕하세요.”
“응. 빨리 타.”
“네.”
강성연이 뒷문을 열고 먼저 안에 들어갔다. 뒤따라 차에 탑승하고 문을 닫았다.
강예린이 강성연이랑 나를 보고는 정면을 주시하며 엔진을 밟았다. 차가 앞으로 나아갔다.
강예린이 백미러를 흘깃 보며 입을 열었다.
“딸.”
“응?”
“오늘 학교 어땠어?”
강성연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냥 괜찮았어...”
“으응. 어땠니 온유야? 성연이 애들이랑 어울렸어?”
장본인이 코앞에 있는데 이런 질문을 한다니. 웃음이 나왔다.
“성연이 무안해지는 거 아니에요? 친구랑 잘 지내냐 그런 거 물으면?”
“아 그런가? 미안해 우리 딸.”
“아냐 괜찮아.”
강예린이 미소 지었다.
“응. 고마워.”
차가 교통 신호에 걸려 감속하고 멈춰 섰다. 강예린이 백미러를 보며 입을 열었다.
“온유 너한테도.”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강예린이 눈웃음 지었다. 무표정할 때는 되게 차가운 인상인데. 이렇게 웃을 때는 살짝 포근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한 아이의 어머니이셔서 그런가? 아마 그 이유가 맞을 듯싶었다.
차가 다시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등이 좌석에 붙었다. 순간 성연이가 평소에는 어머니 차를 타고 귀가하지는 않았던 거 같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원래 이렇게 성연이 태워다 주시지는 않았죠?”
“어? 응... 평소에는 좀, 일만 했지 내가...”
강예린의 미소가 씁쓸해 보였다. 죄책감을 느끼시는 건가. 아차 싶었다.
“죄송해요.”
“아냐. 죄송할 게 아니지 전혀.”
잘못 말했다 싶었다. 아주 짧게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침묵이 차 안을 누볐다. 그나마 차량들이 내는 소음이 있어서 숨막히는 고요는 찾아오지 않았다.
강성연이 말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야.”
“응?”
“너 우리 집 언제 올 거야?”
“어, 나도 모르겠어.”
“될 수 있음 정해줘. 언젠지. 우리 엄마 너 언제 저녁 먹으러 올지 몰라 가지고 새벽에 일하러 나가서 학교 끝날 때쯤 되면 다 접고 여기로 오니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정도면 하늘이 감동하지 않을까 싶은 수준으로 지극정성이었다.
“아니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강예린이 멋쩍게 웃었다.
강성연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토요일이랑 일요일은 아예 나가지도 않을걸?”
강예린이 소리 내어 웃었다. 무안함을 감추려는 느낌이었다.
“아니 그걸 왜 말해 성연아...”
“왜, 맞잖아. 엄마도 일해야 되고 한데. 일정이라도 잡아달라고는 할 수 있지.”
“근데 듣는 엄마 무안해지잖아... 없을 때 얘기하지.”
“그냥 옆에 온유도 있고 엄마도 보니까 갑자기 생각나서.”
강예린이 입으로 조용히 한숨을 흘렸다.
“그래. 알겠어.”
“응.”
강성연이 강예린에게 답하고 나를 쳐다봤다.
말하라는 거겠지. 짧게 궁리했다. 오늘이 금요일이고, 내일 드라마 작가랑 감독을 본 다음 백지수랑 송선우한테 가야 했다. 그럼 최소한 일요일 점심까지는 가는 게 불가능할 거였다. 어쩌면 저녁 때까지도 나를 붙잡고 있을지도 몰랐다.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한데 이번 주 토요일이랑 일요일은 안 될 거 같아요.”
“으음... 그래. 알겠어.”
“죄송해요.”
“아냐. 죄송할 거 전혀 아니야.”
“그럼 다음 주 중으로는 오는 거야?”
강성연이 물었다.
“아마? 근데 지금 확답 주기 어려워.”
“으응...”
“미안.”
“아냐 괜찮아. 오히려 와주는 게 고마우면 고마운 거니까...”
강성연이 그리 말하고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말을 왜 이렇게 예쁘게 하지. 도저히 강성연 같지가 않았다.
얼마 안 가 차가 멈춰 섰다. 차창 밖을 내다봤는데 집이 보였다.
“다 왔어 온유야.”
강예린이 말했다.
“아 넵.”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면서 감사합니다, 라고 말했다. 강예린이 미소 지었다.
“응. 잘 가 온유야.”
“네. 안녕히 가세요.”
강성연이 양손으로 좌석을 짚어 엉덩이를 붙였다 떼면서 뒷좌석의 오른편으로 옮겨 앉고 나를 우러러봤다.
“잘 가.”
“응. 잘 가.”
“어. 내일 봐.”
“응.”
“내가 문 닫아줄게.”
“어 고마워.”
뒷문을 닫아줬다. 이윽고 차가 출발했다. 잠깐 보다가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현관에 신발을 벗은 다음 거실로 걸어갔다. 소파에 검은 브라가 비치는 흰 민소매랑 검은 돌핀팬츠 차림의 이수아가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
“너 좀만 더 늦었음 전화 걸 뻔.”
웃음이 나왔다.
“야 이거 빨리 온 거야. 늦은 게 아니라.”
“그래? 몰랐어. 근데 그건 상관없고, 빨리 얼굴 닦고 발 씻은 담에 내 방으로 와서 연습이나 해.”
헛웃음이 터져나왔다.
“뭘 당연하다는 듯이 시키고 있어.”
이수아의 눈썹이 삐뚤어졌다.
“왜? 싫어?”
“내가 네 오빠잖아.”
“아오, 계에속 오빠 오빠. 그렇게 오빠 소리가 듣고 싶어 오빠?”
“어.”
이수아가 피식 웃었다.
“존나 솔직하네. 오히려 호감이다, 이러니까.”
“그래서 오빠라고 부를 거야?”
“알겠어, 오빠.”
“응.”
이수아기 픽 웃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민소매가 달라붙어서 브라가 더 잘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으...”
이수아가 왼눈을 찡그리며 나를 쳐다봤다.
이수아가 두 팔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안 씻을 거야?”
“씻을 거야.”
“그럼 빨리하고 내 방으로 들어와.”
“왤케 시켜.”
이수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뭘 자꾸 구시렁거려. 내가 오빠 잘되라고 말하는 거지 나 좋으라고 하는 거야?”
피식 웃었다.
“너 나 아니면 그 드라마 안 한다며. 그럼 너 좋으려고 하는 것도 맞지 않아?”
“... 그럼 나도 좋으려고 한다고 정정할게.”
“그래.”
“이제 빨리 씻기나 해. 할 말 다 했으면.”
“그래.”
“나 먼저 방 들어간다.”
“응.”
이수아가 몸을 돌리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뒤돌아서 내 방으로 들어갔다.
빠르게 씻고 화장실을 나왔다. 회색 브라탑에 회색 레깅스 차림을 한 윤가영이 내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존나 야했다. 자지가 바로 솟아올랐다. 윤가영이 자지에 시선을 맞추고 눈웃음 지었다. 미칠 것 같았다.
“할 말 있어요?”
윤가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안에 들어와요.”
“네...”
윤가영이 안에 들어왔다.
문을 닫고 윤가영을 마주 보았다.
윤가영이 나를 올려보며 입을 열었다.
“수아가 씻으라고 한 게 무슨 의미예요...?”
웃음이 나왔다. 무슨 오해를 하는 건지.
“그냥 더럽다고 씻으라고 한 거예요.”
“아...”
“어디서 들었어요? 그 얘기.”
“그냥, 주방에 앉아서 저녁 고민하는데 들려 가지구...”
“그래요?”
“네...”
“그래서 무슨 오해한 건데요?”
“...”
“내가 수아랑 뭐라도 할 것 같았어요?”
“...”
윤가영이 말없이 시선을 피했다. 눈웃음 지었다.
“여보왜 자꾸 딸한테 질투해요.”
윤가영이 다시 시선을 마주쳐왔다. 눈이 서글퍼 보였다.
“죄송해요오...”
미치도록 귀여웠다. 왼손으로 윤가영의 볼을 만졌다.
“나 수아랑 안 해요. 그런 오해하지 마요.”
“... 다행이에요...”
“키스할래요?”
“좋아요...”
윤가영을 품에 안고 입술을 포갰다.
윤가영이 행복한 눈웃음이 지으며 나를 꼬옥 껴안았다.
“하웁... 아움... 쮸읍... 츄읍... 쯉... 츄릅... 헤웁... 하움...”
입술을 뗐다. 윤가영이 흐릿하게 눈 뜨고 나를 쳐다봤다.
“더 안 해여...?”
“저 이제 수아 보러 가야 돼요.”
“아...”
눈웃음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네... 안 할게여...”
“사랑해요 여보.”
“저두 사랑해요...”
가볍게 입술을 맞췄다.
“이제 놓아줘요.”
“네...”
윤가영이 나를 품에서 풀어줬다.
다시 입술을 맞추고 윤가영을 놓아주었다.
“갈게요.”
“네...”
윤가영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고마워요.”
문을 열고 방에서 나가고 뒤돌아보며 뒷걸음질 쳤다.
윤가영이 내 방 안에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저녁 장어구이인데 괜찮아요...?”
웃음이 터져나왔다.
“진짜 좋아요, 장어구이.”
윤가영이 해맑게 웃었다.
“네...! 맛있게 해줄게요...!”
“네.”
뒤돌아서고 이수아 방으로 향했다.
걷는데 자꾸만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웃음이 그친 다음에 들어가야 할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