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1화 〉 노래가 되어줄게
* * *
송선우가 정이슬의 왼편에 멈춰 서서 정이슬의 두 어깨에 양손을 얹었다. 정이슬이 고개를 돌려 송선우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 선우.”
“안녕 언니.”
송선우가 답했다. 정이슬이 백지수를 보았다.
“지수도 왔고.”
“안녕하세요.”
“으응.”
송선우가 양손의 다섯 손가락을 움직여 정이슬의 어깨를 건반 치듯이 토도독 두드렸다.
“근데 둘이 뭔 얘기했어요?”
“어...”
왠지 모르게 입을 막아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막는 게 더 수상해 보일 테니까.
정이슬이 입을 열었다.
“그냥 내 생각에 온유랑 성연이가 사귀는 거 같아 가지구... 불러 세워서 얘기 좀 했어.”
백지수의 눈썹이 올라갔다.
“뭐라고요?”
백지수가 고개를 돌려 나를 쏘아봤다.
“뭔 개...”
정이슬이 눈웃음 지었다.
“아, 힣. 내가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고.”
백지수가 정이슬을 쳐다보았다.
“네?”
“아니, 그냥 내가 맘속으로 그런 거 아닐까, 라고 망상했는데, 온유한테 물어보니까 역시 아니었다구.”
“... 그러니까.”
송선우가 말했다.
“언니가 온유랑 강성연이 사귀는 것 같다고 망상을 했는데 온유한테 가서 직접 물어보고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거죠?”
“응. 너 정리 되게 잘한다.”
송선우가 빙긋 웃었다.
“그쵸.”
정이슬이 싱긋 웃고 팔짱을 끼고 있는 백지수를 바라봤다.
“근데 지수야.”
“네.”
“너 온유 되게 좋아하나 봐?”
“...”
“나도 그런데.”
송선우가 정이슬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한 발짝 물러났다.
머리가 핑핑 도는 느낌이었다. 정이슬은 또 왜 이러는 걸까.
“언니 치정 드라마 찍어요?”
송선우가 말했다.
“응? 아니. 그냥 말하고 싶어서 말한 거야.”
“언니 되게 직설적이다.”
“맞아. 나 돌려 말하는 거 싫어해 가지고. 하고 싶은 말 있음 그냥 하는 편이기도 하고.”
정이슬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이제 들어가자 온유야.”
정이슬이 양손으로 내 오른 손목을 잡고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헛웃음이 나왔다. 정이슬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안 들어갈 거야?”
“놔주세요. 제가 알아서 걸을게요.”
“그냥 이대로 가자.”
“아 하지 마요.”
“알겠어.”
정이슬이 나를 놓아주었다. 백지수랑 송선우가 어이없다는 듯한 눈을 하고 나랑 정이슬을 바라보았다. 정이슬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옆에 나란히 걷지는 못하고 그냥 뒤를 따랐다. 백지수랑 송선우가 내 양옆에 붙었다.
정이슬이 부실 유리문의 손잡이를 잡고 당겨서 열었다. 부실 내부에서 문 가까이에 서 있던 강성연이 뒷걸음질을 쳤다. 정이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가고 싶으면 나가 성연아.”
“아뇨 저 안 나가요...”
강성연이 그렇게 말하고 멋쩍게 웃었다.
“왜?”
“저 그냥 온유 어딨나 찾으려고 한 거라서...”
“아, 그래?”
양옆에서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오른쪽에 선 백지수가 보내는 시선은 특히나 따가웠다.
표정을 잘 관리하는 송선우도 이게 뭔가 싶은지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왜 다 이렇게 불미스럽다는 눈초리로 보는 걸까? 둘 다 강성연이 레즈인 걸 알아서 나를 좋아할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 텐데.
백지수가 팔짱을 껴고 강성연을 노려보았다.
“네가 이온유는 왜 찾아?”
“응...?”
“네가 온유는 왜 찾냐고.”
“...”
송선우가 멋쩍게 웃으면서 백지수의 뒤로 가 백지수를 껴안았다.
“왜 그래.”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왜.”
강성연이 백지수를 보다가 말없이 나를 올려보았다. 날 본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왜 또 나를 보는 걸까.
강성연이 백지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차마 눈을 마주치지는 못하는지 시선을 밑으로 깔고 있었다. 강성연이 입을 열었다.
“그냥 나 혼자 있기 조금 그래서...”
“부실에 다른 부원 많잖아.”
“그렇긴 한데... 내가 좀 어색해 가지고...”
“온유랑은 안 어색해?”
“조금 나은 편이지...”
“아 그래?”
“응...”
백지수가 흥, 하고 코웃음 쳤다.
강성연이 정이슬의 왼편에 붙었다. 내 양옆에 지수랑 선우가 없었으면 나한테 왔을까? 왠지 그랬을 것만 같았다. 근거는 딱히 없지만.
정이슬이 강성연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정이슬이 왼팔을 벌려 강성연의 어깨 위에 올리고 송선우, 나, 그리고 백지수를 보았다.
“얘들아.”
“네.”
송선우가 빠르게 답했다.
“마침 남녀 보컬에 드럼 기타 베이스 다 있는데 노래 하나하고 반으로 돌아갈래?”
놓치면 안 될 기회 같았다. 바로 입을 열었다.
“그러죠.”
“오케이. 그럼 부장 말대로 하기로?”
백지수가 가만히 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
“그래. 들어가자!”
정이슬이 강성연을 데리고 부실 안으로 들어갔다. 백지수가 제자리에 멈춰 선 채 나를 올려보고 왼손 검지로 강성연의 등을 가리켰다. 그러고는 그 검지를 다시 움직여 나를 가리켰다.
무슨 뜻이지. 일단 부인해야 할 것 같았다. 고개를 저었다.
백지수가 눈살을 찌푸렸다가 도로 무표정을 짓고 정이슬을 뒤따라 갔다.
발을 맞춰 백지수랑 나란히 섰다. 송선우가 내 두 어깨에 양손을 얹고 따라왔다.
“얘들아 우리 딱 한 곡만 해도 돼? 기왕 왔는데 한 번은 부르고 반 들어가고 싶어서.”
정이슬이 부원들을 향해 말했다.
“아 넵.”
다들 고분고분 자리에서 나와줬다.
강성연이 드럼 의자로 가 앉고 드럼 스틱을 들었다.
백지수가 베이스를 챙기고 송선우가 일렉기타를 멨다. 다들 습관적으로 사운드 체크를 했다.
정이슬이 의자에 앉고 내게 손짓했다. 기타를 챙기고 오른편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부실 문 쪽에서 서유은이 쭈뼛쭈뼛 걸어왔다. 정이슬이 서유은을 바라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 유은아!”
“안녕하세요오...”
“응 안녕. 그냥 들어와. 왜 그렇게 주춤거려.”
“아 저, 네...”
서유은이 미소 지으면서 다가왔다.
“안녕.”
백지수가 무심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응.”
송선우가 오른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안녕 유은아.”
“안녕하세요.”
“안녕.”
뒤에서 강성연이 말했다. 서유은이 어색하게 웃었다.
“네...”
그러고 보니 유은이가 강성연을 좀 많이 싫어했었지. 유은이가 대놓고 꺼리는 티는 안 내더라도 미움받는 사람 입장에는 그게 확실히 느껴지기는 할 듯싶었다.
그래서 강성연이 내 생각보다 더 위축되어있는 건가. 아무래도 그럴 것 같았다.
서유은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오빠.”
“응 안녕.”
정이슬이 왼팔을 벌렸다.
“유은아 일루와.”
“네...?”
“일루와. 안겨.”
“그럼 언니 힘들지 않아요...?”
“아냐 너 가벼워서 괜찮아. 그냥 와.”
“네...”
서유은이 정이슬에게 다가가 정이슬의 무릎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정이슬이 왼팔로 서유은을 안았다.
“언니 괜찮아요...?”
“응. 너 엉덩이 되게 말랑푹신해서 괜찮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정이슬을 보고 왼손을 들어 검지로 내 관자놀이 위를 빙빙 돌렸다.
정이슬이 눈웃음 지었다. 서유은이 고개를 뒤로 돌려 정이슬을 보려 했다.
“언니...”
“왜?”
“그런 말 하면 어떡해요...”
“나 그냥 감상 말한 거인데... 웃은 건 온유잖아. 그니까 온유 혼내.”
“무슨 소리예요...”
정이슬이 나를 쳐다봤다.
“온유야. 네가 깔끔하게 사과해.”
“미안해 유은아.”
서유은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다. 얼굴이 붉었다.
서유은이 양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서유은은 진짜 사람 자체가 귀여웠다.
송선우가 물끄러미 서유은을 보다가 정이슬을 바라봤다.
“언니 저희 노래는 뭐 할까요?”
“어? 노래? 그러게.”
정이슬이 왼손으로 서유은의 배를 쓰다듬었다.
“흣...?”
서유은이 양손으로 정이슬의 왼손을 포갰다.
“언니이...”
정이슬이 히히 웃었다.
“노래 뭐할래 유은아?”
“몰라요...”
정이슬이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다.
“뭐 할래 온유야? 남녀 듀엣으로.”
“음...”
피곤해서 그냥 빨리 부르고 돌아가고 싶었다. 머리를 굴렸다. 사랑 노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근데 사랑 노래로 고르면 백지수가 불만스러워 할 거 같은데. 고민스러웠다.
“그냥 내가 정할까 온유야?”
송선우 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응.”
“‘YOUR SONG’ 하자. 샘김 노래.”
“으응.”
정이슬이 호응했다.
“좋다. 난 좋아. 근데 그 노래 기타밖에 안 들어가지 않아? 그나마 드럼 있었나?”
“드럼 있어요.”
강성연이 답했다.
“근데 되게 목소리에 녹아드는 느낌으로 작게 들리는 거라서...”
“으응. 그럼 너희는 어떡해? 지수 선우?”
“저희는 쉬면 되죠.”
송선우가 답했다.
“으응... 지수는 괜찮아?”
“네 괜찮아요.”
백지수가 답했다. 정이슬이 강성연을 바라봤다.
“너 드럼 엄청 두드리는 거 좋아하잖아. 진짜 괜찮아?”
강성연이 수줍게 웃었다.
“네. 저도 괜찮아요...”
강성연이 나를 바라봤다.
“그냥 노래 감상만 하면 되니까...”
가슴이 가려웠다. 진짜 왜 저러지 강성연.
정이슬이 으응, 이라고 하면서 나를 쳐다봤다.
“온유 너는 노래 괜찮아?”
“저도 괜찮아요.”
“유은아 너는?”
“네 저 알아요.”
“그럼 남자는 다 온유가 하고. 음, 내가 권진아 할까?”
“네. 좋아요.”
서유은이 답했다.
“그래.”
“그럼 시작할까요?”
“응.”
머릿속으로 코드를 떠올리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정이슬이 고개를 얕게 끄덕이다 입을 열었다.
ㅡ비가 오면 우산이 되어줄게
깜깜하면 등대가 되어줄게
이어서 입을 열고 성대를 울렸다.
문득 노래를 부르는 게 되게 오랜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유은이 입을 열었다. 나직하고 따스한 화음이 뒤섞였다.
ㅡ니가 있는게 너무 좋아
함께라서 난 너무 좋아
왠지 부드럽고 달콤한 디저트를 먹는 느낌이었다.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왠지 왼쪽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백지수가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순간 입 안이 썼다. 커피를 마신 느낌이었다.
초콜렛도 아니고 달콤 쌉싸름한 맛을 동시에 느낀다니. 살짝 기묘했다.
노래가 어느새 끝을 향해 흘렀다.
한숨 쉬듯 소리를 내어 보냈다.
ㅡ노래가 되어줄게
부원들이 박수를 보내줬다.
입가에 미소가 걸쳐졌다.
언제나 그렇듯 끝은 달콤했다.
앞으로도 끝만큼은 달콤했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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