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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어머니가 생겼다-289화 (288/438)

〈 289화 〉 소시지가 먹고 싶은 강성연

* * *

“이온유 왔다.”

“이온유 하이.”

“어 하이.”

애들의 인사를 받으며 가방을 책상 걸이에 걸었다.

강성연이 나를 쳐다보면서 왼손으로 책상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유야. 밴드부 가자.”

“어? 어.”

강성연이 내게 다가왔다. 같이 반을 나서고 복도를 나란히 걸었다.

반에는 밴드부 애들이 없던 거 같은데. 강성연은 그럼 나만 기다렸던 건가.

“성연아.”

“응?”

강성연이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철현이나 수원이 같은 애 밴드부 가지 않았어?”

“갔지?”

“그때 같이 가지 왜 지금 가.”

강성연이 멋쩍게 웃었다.

“그냥. 네가 편해서.”

“... 그래?”

“응.”

말없이 복도를 쭉 걸었다. 어색해 죽을 것 같았다. 입을 열었다.

“성연아.”

“응?”

“아침 먹었어?”

“먹었지. 너는?”

“오야코동 먹었어.”

“오야코동? 그거 부모자식 덮밥 아니야?”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알았어?”

강성연이 흣, 하고 웃었다.

“나 그거 보고 알았어. 스푸파. 백종원이 해외 돌아다니면서 음식 먹는 프로그램.”

“아, 아. 나 그거 알아.”

“너도 본 적 있어?”

“그냥 유튜브로 나오는 거 조금 본 적 있었을걸?”

“오. 대박. 근데 그거 영상미 개 좋지 않아?”

강성연의 눈빛이 밝아졌다. 강성연이 최근에 이렇게 해맑은 표정을 지었던 적이 있었나? 아마 아닐 거였다. 기억들을 다 뒤져도 별로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랬다.

지금의 강성연은 뭐랄까, 약간 호들갑을 떠는 느낌이었다. 마치 쾌활한 여자애라도 되는 것처럼.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강성연을 두고 여자애 같다고 생각하는 날이 오다니.

순간 강성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얘 또 왜 이러지?

“왜 그래?”

“아니, 아냐...”

강성연이 시선을 피했다. 진짜 이상하네.

“왜?”

“... 아니, 너 별로 관심도 없는 주제인데 내가 약간 나대는 거 같은 느낌 들어서...”

“뭐?”

자존감이 완전히 박살 났나? 잠깐 대답을 안 해줬다고 나대서 안 받아준다고 생각한다니.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사고회로였다.

“아냐. 미안해. 순간 머리 방전나 가지고 대답 못 했어.”

“... 그래...?”

“어. 영상미 진짜 좋더라. 나 그것도 봤는데? 음식 만드는 순서 따라서 시간 되감는 연출? 그거 보고 육성으로 감탄했어.”

강성연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어 맞아. 그거 개 대박이야 진짜.”

웃음이 나왔다.

“응.”

“진짜 나오는 음식들 다 존나 맛있어 보이게 찍고... 나 스푸파 보고 내장류 고기 한번 먹어볼까 생각하고 국밥집 찾아갈 뻔했다니까?”

“어? 너 평소에 국밥 드립 치지 않았어?”

“어. 근데 사실 먹어본 적은 없었어. 걍 컨셉충 짓. 다 그러지 않아?”

“내가 알기로는 트루 국밥 신봉자도 있어.”

“아 그래? 근데 그건 모르겠고, 너 그것도 봤어? 대만인가? 거기 가서 소시지 먹는 거?”

“음... 봤던 거 같아.”

“나 그거 보고 진짜 존나 먹고 싶었어, 소시지.”

“어, 진짜. 인정.”

“레알 그 소시지 보면 한입에 반절은 씹어 먹을 자신 있어.”

강성연의 표정에서 열망이 엿보였다. 살짝 무서웠다. 왜 무서운 거지? 이해가 안 됐다.

강성연의 낯빛에 살짝 먹구름이 몰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아, 빨리 대답해야지. 입을 열었다.

“어. 그거 진짜 되게 식욕 자극하더라. 마늘 까먹는 것도 그렇고 되게 먹고 싶었어. 약간 맛이 상상되는 느낌이라서 그랬나?”

“오, 맞아 맞아. 상상이 되니까 더 먹고 싶은 느낌.”

다시 또 밝아지네. 조금 신기했다.

강성연이 감정 기복은 조금 있었어도 이렇게 반응 하나하나에 좌지우지되는 애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강성연이 또 입을 열었다.

“나 나 그것도 먹고 싶었어. 터키 카이막.”

“아 그 우유로 만드는 거 맞지? 꿀이랑 먹고.”

“어 맞아. 나 그거 보고 와 이건 버킷리스트 감이다 생각했잖아.”

“으응...”

어느새 밴드부실 앞에 다다랐다.

“안에 들어갈까?”

“어...”

강성연이 멋쩍게 웃었다.

“잠깐만 더 얘기하고 들어갈래?”

진짜 이상하네.

“춥지 않아? 일단 안에 들어가자.”

“아니 난 괜찮은데.”

“난 좀 추워.”

“그래 그럼 들어가자...”

“응.”

문을 열었다. 곧장 음악 소리가 커졌다. 안으로 발을 뻗었다. 강성연이 나를 뒤따라 왔다.

안에 있던 부원들이랑 인사를 나눴다. 1학년 여자애 두 명 빼고는 남자밖에 없었다. 강성연이 오기를 꺼릴 만도 한 것 같았다. 그래도 못 올 거는 없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들었다.

강성연도 부원들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고는 또 내 왼편으로 붙어왔다.

내가 안 시켜도 알아서 인사는 나누니까 조금 나아졌다고 해야 되는 건가? 감이 잘 안 왔다.

의자에 앉았다. 강성연이 바로 내 왼편에 앉았다.

“야. 온유야.”

피식 웃었다.

“한 번만 불러.”

“알겠어. 아 근데 내가 뭐 말하려고 했지?”

“천천히 생각해.”

“어 잠만. 아, 맞아. 너 나중에 이거는 해야겠다, 아니면 이거는 하고 싶다 하고 생각하고 있는 거 있어?”

“약간 버킷리스트 느낌으로?”

“응. 근데 좀 장기적인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거.”

“으응... 너는 있어?”

“난 그거. 엄마랑 해외 각국 돌아다니면서 먹방 찍는 거.”

“먹방?”

“아니...”

강성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말하다가 말고 갑자기 웃는 것도 여자 같았다.

생각해보니까 원래 강성연이 말하다가 웃는 사람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내가 너무 강성연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상한 프레임에 갇혀서 강성연을 그릇되게 바라보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강성연이 오른손바닥으로 내 가슴을 툭 쳤다. 아 이것도 여자 같은데. 아닌가? 복잡했다.

“그냥 먹는다는 뜻이었어. 약간 배 터질 정도로. 그리고 복스럽게 잘.”

“으응...”

“암튼. 맛있다고 하는 거 다 먹고 돌아다니는 거. 그게 내가 하고 싶은 거야.”

“으응...”

고개를 주억였다.

“근데 너 진짜 마마걸이다.”

“어?”

강성연이 피식 웃었다.

“아니야.”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아니 나 진짜 억울하네.”

웃음이 나왔다.

“말투 뭐야.”

“어? 왜?”

“아니 맺음이 웃겨 가지고. 약간 길 화법이었어.”

“아 그거 말하는 거지. 나 이런 거 좋아하네.”

“응.”

“근데 내가 말한 게 맞나? 원본이랑 좀 다르지 않아?”

“몰라, 별로 안 중요하잖아.”

강성연이 픽 웃었다.

“그치.”

오른 주머니에서 폰이 울렸다.

“나 잠깐만.”

“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성연이 나를 따라 일어섰다.

“일단 앉아 있어.”

“아, 응...”

강성연이 도로 앉았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화면에 백지수라고 떠 있었다. 문 쪽으로 가면서 전화를 연결했다.

“여보세요.”

ㅡ어딨는데 전화를 이렇게 늦게 받아?

“밴드부. 소리 들리지.”

ㅡ응.

“일단 나갈게.”

ㅡ어.

문을 열고 밖에 나섰다.

“나왔어.”

ㅡ누구랑 있었어?

“그냥 부원들 있었어.”

ㅡ네 옆에는 누구 없었어?

“... 강성연.”

ㅡ강성연? 지금도 옆에 붙어 있어?

“아니.”

ㅡ네가 같이 가자고 한 거야?

“어... 원래는 내가 가자고 할 생각이었는데, 성연이가 먼저 나한테 같이 가자고 했어.”

ㅡ뭐 씨발? 미친년인가 강성연?

“왜 그래.”

ㅡ왜긴 존나 레즈년이 무슨 씨발.

볼륨을 줄였다. 내가 다 무안해서 멋쩍은 웃음이 나왔다.

“너 지금 너무 폭력적으로 말하는 거 같은데?”

ㅡ아 몰라 썅. 존나 맘에 안 들어 미친년. 개 빌어먹을 레즈년.

카톡 고백이 그렇게 충격으로 남았던 건가. 웃음이 나왔다.

ㅡ아 씨... 나 밴드부 간다. 기다려.

“응. 옆에 선우는 있어?”

ㅡ어. 왜 온유야?

송선우 목소리였다.

“그냥. 궁금해서.”

ㅡ으응.

“기다릴게.”

ㅡ응.

ㅡ야 이온유.

백지수 목소리였다.

“응.”

ㅡ만약에 걔 좀 이상한 거 같다 싶으면 바로 쳐내.

픽 웃었다.

“뭐가 이상할 거 같다는 거야.”

ㅡ아 몰라. 네가 느낄 수 있을 거야.

“알겠어.”

ㅡ진짜 혹시 모르니까 잘해.

“응.”

ㅡ그래.

“전화 끊을까?”

ㅡ어.

“나 밴드부 안에 들어가 있을게.”

ㅡ네 맘대로 해.

“응. 끊을게.”

ㅡ어.

전화를 끊었다. 폰을 주머니에 넣고 부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있던 강성연이랑 곧장 눈을 마주쳤다.

계속 문 쪽만 보고 있던 건가? 살짝 기분이 이상했다. 설마 나만 기다린 건 아니겠지? 그냥 내 자의식과잉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터였다. 강성연이 누구한테 의지할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원래 앉았던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 강성연이 입을 열었다.

“누구랑 통화했어?”

백지수라고 말해도 되나. 근데 그럼 통화내용을 물어볼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냥 밴드부원.”

“몇 학년?”

“2학년. 밴드부 지금 열려 있냐고 물어서. 열렸다고 했어.”

“으응... 그럼 온대?”

“어 온대.”

“아... 알겠어.”

강성연이 고개를 주억였다.

“근데 성연아.”

“응?”

얼굴을 조금 가까이 했다. 강성연이 눈을 크게 뜨고 머리를 뒤로 뺐다. 오른손을 까딱였다. 강성연이 그제야 얼굴을 가까이 해왔다. 입을 열고 조용히 소리 냈다.

“너 나 나갔을 때 다른 부원들이랑 얘기는 했어?”

“아니...?”

“교우관계 회복하고 잘 지내야지.”

“... 그럴 건데... 좀 천천히 하게...”

“천천히 하려면 최소한 지금 말을 한두 마디는 섞어야 할 거 아니야.”

“으응...”

“나랑만 친해질 거야?”

“그건...”

“나랑만 친해져도 되는 거면 지금처럼 하든가.”

“...”

강성연이 시선을 밑으로 깔았다.

아차 싶었다. 화가 난 건 아니었는데 너무 꾸짖는 조로 심하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미안해.”

강성연이 고개 저었다.

“아니야...”

“...”

말없이 왼손으로 강성연의 오른 어깨를 툭툭 쳤다.

강성연이 고개를 들고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순간 강성연이 얼굴부터 어깨, 그리고 분위기까지 가녀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내가 강성연이 여자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프레임에 갇혀서 생각하는 것만은 아닌 듯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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